• 최종편집 2025-06-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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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나라사랑에 앞장서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6월은 호국의 달이다. 현충일과 한국전쟁 등을 통해 나라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달이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동안 기독교는 나라사랑을 위해 앞장서왔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기 독립을 위해 앞장선 것이 기독교인들이었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명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당시 전체 인구 중 기독교인구는 2%가 안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인구비율을 생각해 볼 때 기독교인들의 나라사랑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나라의 독립 이후에도 국가의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또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목회자들은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바른 국가관을 통해 애국운동에 나서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은 지난 현충일 논평에서 “일찍이 칼빈과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아브라함 카이퍼 등 건전한 교회와 교회의 신학자들은 복음과 세상의 관계,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여 가르쳤다”면서, “교회는 신자들이 국가와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쳐야 하고 또한 이렇게 기도하기 위해 바른 국가관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교회와 신자들은 바른 국가관을 가지고 사회 속에서 애국운동을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해서도 소금과 빛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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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10
  •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제안에 힘쓰자
     디가오는 6월 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 기독교단체들이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을 제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경우는 2012년 치려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이러한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는 한국교회총연합과 함께 10대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큐메니컬 성향의 단체에서도 기독교대선행동이라는 단체를 출범하면서 탄소중립 구현과 한반도 평화협정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정치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책무 중 하나이다. 기독교적인 정책을 정치인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 나라에 기독교세계관을 반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은 기독교인뿐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초저출산 극복정책으로 아동돌봄청을 신설해야한다고 했으며 이외에도 재난상황을 대비한 민관위기 관리시스탬 구축과 유사종교 피해방지를 위한 법률제정 등의 정책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저출산 문제의 경우 국가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며, 재난상황의 극복또한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사실이다. 유사종교로 인해 피해를 보는 시민들을 구제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들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유익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같은 악법반대 운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이제는 악법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좋은 법안과 정책등을 제시할 때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그러한 법안과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이러한 정책제안의 시간이 이번 선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편화가 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해 모든 시민이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과 법안을 제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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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9
  • 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사역에 매진하자.
       한국교회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함께 어린이 주일을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1880년부터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하여 '꽃주일'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정환, 마해송 등의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 주일이라는 절기도 성경에는 없지만 어린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주일로 지켜지고 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에 대한 특별한 가르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잠22:6)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회초리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회초리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 그리고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에게 안식을 주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 이것은 교회는 물론 부모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따라서 교회는 어린이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디모데의 믿음과 유산을 가르치는 사역이 되도록 하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에 속에 있더니 네 속에 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디모데가 아들이 아니지만, 디모데가 신앙 성장의 합당한 인격을 갖추는데 바울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딤전1:2)이라고 부르고 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이 전수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올바른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디모데의 가정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정은 신앙 교육의 장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차 기관이며 교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하나님의 진리로 양육하는 근본적인 책임은 가정에 있으며 교회 교육과 학교 또는 세속 사회의 교육 간에 생기는 갈등을 신앙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참된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신앙으로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복음 전파 사역과 유업을 물려주는 일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다(신6:4-9).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참믿음을 가진 차세대에 대한 교육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을 한 번 지키고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의 출발로서 교회학교의 전문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행함으로써 ‘믿음’의 사역이 부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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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9
  • 미혼·기혼 연대하는 공동체를 세우자
     작년 기준, 만 19~34세 청년 5명 중 4명이 미혼으로, 미혼율이 80%를 넘었다는 통계는 한국 사회의 결혼·가정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현실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3년 조사에서 전체 기독교인 중 미혼 비율은 40.5%에 달했다. 교회 내 싱글 신자들의 수와 연령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이제 뚜렷한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부담, 주거난,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결혼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전통적 가정 중심의 사역과 인식에서 벗어나, 미혼 신자들을 적극적으로 품고 새로운 공동체의 길을 모색해야 함을 시사한다.    교회는 미혼을 ‘문제’로 여기거나, 결혼만이 신앙적 성숙의 완성이라는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강조했듯, 결혼과 미혼 모두 각자의 소명과 가치를 지닌 삶의 방식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혼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은사와 삶을 온전히 나누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혼 성도들이 주체적으로 신앙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 멘토링, 사역의 기회를 확대하고, 결혼과 출산만을 강조하는 지원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포용적 사역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는 ‘올바른 가정’의 기준을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로 한정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는 공동체로 확장해야 한다. 부부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미혼·기혼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더 본질적인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교회가 미혼의 삶 역시 신앙 안에서 의미 있고,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며, 다양한 가족과 1인 가구를 포용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진정한 연합과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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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9
  • 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21대 대통령 보궐선거가 6월 3일로 정해졌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나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 우리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가 성경의 원리에 맞는지를 평소에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나랏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마6:10)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딤전2:2)을 위한 민주주의의 척도다. 올바른 선거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킴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가정치적 제도지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역사는 선거가 바꾼다.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부(富)를 키운다. 정의, 법치, 자유, 배려 등 사회의 미덕이 자라나는 토양도 결국 유권자가 가꾼다. 단순히 당선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 국가보다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해치는 현혹적 수사 등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본원리지만 다수결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수의 많음보다는 다양함 때문이다. 현혹적 구호에 매몰된 다수는 자칫 국가의 백년대계를 흔든다. 또한 공명한 선거는 또 하나의 과제다. 자유 보통 비밀 직접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지만 우리는 6·3대선을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기 때문에 기독인들의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은 국가와 가정,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태어날 때 한 가정에 속하게 되며 동시에 한 국가에 속한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굴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지만 육신이 사는 동안에는 국가의 법과 제도와 관원들을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대선 후보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방법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살펴봐야 하겠다.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올바른 투표밖에 없다. 이념과 우상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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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2
  • [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2025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4월 2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올해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오전 인천 제물포항에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공식 입항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가 시작된 지 140주년을 맞는 해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담아, 한국 71개 교단과 전국 17개 지역 기독교연합회도 동일한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 정신을 되세겼다. 부활절(復活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 3일째 되는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최대 축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절기로서 관습화되고 형식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교회사에서 부활절이 언제냐는 문제를 두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간의 논쟁이 계속되다가 서기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춘분이 지난 뒤 최초의 보름달이 지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나 부활의 의미가 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짜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인12월 25일은 예수님 탄생하신 날과는 상관없는 날이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달력으로 니산월 정월 14일,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에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달력 니산월 14일의 3일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양력으로는 3월 하순에서 4월 초에 항상 연결이 된다. 그래서 이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가 확실하다. 바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그러는데 그 의미는 ‘확 튀어 오른다’ 즉 봄에는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SPRING'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그 부활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만큼 확실한 사실이기에 이를 증거 해야 한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이 믿는 모든 것이 허사(虛事)가 된다. 우리의 구원도 헛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역대의 모든 사람들의 삶도 헛것이 된다(고전15:17-19).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있었고, 그분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의 행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이 잡힐 당시 뿔뿔이 도망치던 그 비겁자들이 부활을 직접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믿음을 일상화해야 한다. 우리는부활절을 맞아 절기로서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 안에서 ‘하나 됨’으로 많은 영혼들이 부활을 체험하여 부활의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세상에 증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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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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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사참배 회개, 변화의 계기로
      오는 28일 한국교회가 1938년 9월 9일 신사참배를 결의한 죄악에 대해 참회하는 회개기도회가 전국적으로 열린다. 한국교회는 일제 강점기 시절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1935년을 기점으로 조선총독부의 강경책에 신사참배 용인파와 반대파로 분열되면서 큰 갈등을 겪었다.   조선총독부는 기독교계 학교에 보급된 신사참배를 교회로까지 확장시키기 위하여 압력을 행사했고,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결의를 계기로 각 교파의 목회자들이 신사참배에 나서면서 급격히 황민화 정책에 동조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기철목사와, 손양원목사 등이 순교 당하거나 모진 고초를 겪었다. 또 신사참배 거부로 2백여개 교회가 폐쇄되었고 50여명이 순교하는 등 한국교회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때마다 이 문제에 관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한국교회에 용서를 구하는 기회를 가져왔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과를 고백하고 잘못을 돌이키는 일이 연례적으로 반복되면서 이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도회가 연례행사처럼 치러질 경우 과거 일제 강점기에 신앙의 선배들이 저질렀던 죄를 후대에 정죄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 뿐 아니라 교인들도 과거로 돌아가 일제의 탄압 속에 살았다면 과연 생명을 걸고 참배를 거부할 수 있을까? 실제로 신사참배는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와 천주교 등 다른 종교인들도 함께 했으나 이들은 지금까지 이들 종교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뉘우치고 잘못했다 고백하는 종교지도자들의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킨 종교지도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에서 나왔음에도 이러한 회개운동으로 인해 안티 기독교 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도회가 그동안의 회개기도회의 틀에서 벗어나서 한국교회를 하나로 묶는 변화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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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0
  • 가을,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자
      긴 추석(秋夕) 연휴도 어느덧 지나가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기쁘고 풍요로워야 할 때지만 마음 편치 않은 일들이 유달리 많았던 추석인 것 같다. 최저나 최악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일자리 상황 때문이다. 특히 취업자 수가 가장 감소폭이 크다는 보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굳이 지적하자면 현 정권이 줄기차게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이나 ‘최저임금제’등의 문제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정책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신중하게 계획했어도 실패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이라면 자존심 버리고 바로 궤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많은 문제 제기를 무시하고, ‘할 일에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것으로,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뜻’의 오불관언(吾不關焉) 정부의 태도다. 행여 정부가 힘으로 계속 밀어붙이다 보면 효과를 볼 것으로 착각하며 집단 자기 최면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가 추석 명절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자매와 이웃,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변하다 보니 요즘에는 명절이라고 꼭 고향을 가야 한다는 개념이 없어진 것 같다. 한 여론기관에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 이상이 이번 추석에 고향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다행일까 고향에도 못 가고 추석을 혼자 지내는 일명 ‘혼추족’을 위해 식품업체가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고 있어 다소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비록 고향은 못 가도 고향 음식 맛을 볼 수 있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추석은 지났지만 예외 없이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기회는 잃지 않았으면 한다. 쌀과 과일 그리고 생필품 등을 나눔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우리 모두 나눌 수 있는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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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10-02
  • 대북선교가 위태롭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8일 발의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법안에는 대북전단을 살포하기 위해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최대 3년의 징역과 3천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한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대북전단 행위는 물론 한국교회의 북한선교에도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입장에서 기독교는 체제자체를 흔드는 ‘절대 악’이다. 지금도 지하교회에서 신앙을 지키는 북한주민들은 남한에서 비밀리에 전달받는 성경책과 지원물품으로 신앙을 지키고 있다. 정부가 북한 독재정권을 위해서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이같은 선교활동은 남북간의 ‘평화’를 해치는 행위로 간주되어 처벌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최악의 독재집단인 북한정권을 보호하고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돕는 법안을 자유대한민국의 국회에서 발의했다는 것은 경악할 만한 사건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며 인류가 가져야할 보편적 가치다. 북한주민들이 외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평화라는 이름으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반민주적이며 공산주의에 세뇌된 북한동포들을 구원할 생명 줄을 끊는 행위다.   북한주민들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고 독재정권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그것은 굴종이며 조공을 바치며 항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번 법안은 기독교의 ‘대북선교 금지’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정부가 남북평화를 이유로 북한선교 행위를 금지할 경우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응 할 것인가? 가뜩이나 분열되고 위축되어 제 목소리를 못내는 기독교가 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한마디로 부정적이다. 국가가 형사처벌을 운운하며 나서서 막는데 누가 북한선교에 나서 겠는가!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도 역대급으로 축소하여 진행한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기 위해 자국민의 자유도 억압하는 행태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로 인해 북한주민들에게 전해져야 할 복음의 끈이 함께 잘려나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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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2
  •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안된다
      지난 8일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는. 시작 전 부터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던 광장을 점거한 교인들로 인해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경찰추산 1000명이 모인 반대집회측은 300명이 모인 축제추최측을 에워싸고 폴리스라인을 무너뜨리며 행사자체를 무산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국 퀴어축제 반대를 외치던 교인들은 축제 자체가 열리지 못하게 하면서 승리자가 됐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승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인천에서의 모습은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폭력적이었다. 행사 트럭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타이어에 펑크를 내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아 가진 깃발을 부러뜨리고, 각종 폭언과 신체적 폭행을 가하는 모습은 정말 이것이 기독교인의 모습이 맞는지 질문할 수 밖에 없는 행위들이었다.   행사에 참가했다가 반대집회에 나선 교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심지어 목회자가 경찰에 체포되어 수갑을 찬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이번 인천에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며 나선 교인들이 보여준 모습은 영락없는 폭력이자 린치에 가까웠다.   이미 한국교회는 지난 2014년 신촌에서의 경험을 잊은 모양이다. 당시 동성애 반대를 외치던 교인들은 적극적으로 동성애자들의 퍼레이드를 지지하기 위해 몸을 던져가며 막아섰다. 그리고 승리했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동성애자들은 보다 넓은 광장으로 나왔으며, 이제 서울에서 그들의 축제와 행진은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됐다.   아무리 동성애를 막는것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폭력적인 모습은 보여선 안된다. 물리력을 이용하여 그들을 막으려 한 결과는 결국 서울시청광장에서의 퀴어축제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성이 수반되는 순간, 동성애 반대의 당위성은 훼손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09-12
  •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에 앞장서자
      예장합동과 통합, 백석대신, 고신 등 대형교단 총회가 이번 주부터 시작됐고, 중소형 교단들도 다음 주까지 일제히 개회되어 마친다. 다음주에 개회될 교단총회는 합동개혁과 기장 등으로, 일부 교단들은 이미 총회를 마치기도 했다.    이들 교단들은 한국교회를 이끌어온 리더의 역할을 감당했다. 기독교가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해감에 따라 각 교단의 교세 또한 매년 위축되고 있다. 이번 총회는 그 어느 해보다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한교총과 한기연, 한기총 등 연합기관의 분열문제를 비롯하여, 목회 대물림, 교단 내 소송 건 등은 물론이고 추락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신뢰도 회복을 위한 대안도 모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새롭게 변화될 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한국교회가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며 하나되는 일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예장통합과 백석대신 등 연합기관에 중복되어 가입된 교단들이 있고, 통합논의도 활발히 진행중이다. 각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하나되는 일에 나서야 한다.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연합과 일치의 정신을 고취시키고 이 운동을 확산시키는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사회로부터 외면받는 교회는 생명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동성애와 이슬람,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등 기독교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교회가 목소리를 내려면 신뢰회복이 최우선 과제다.    목회자들의 성문제나 재정문제, 교단과 단체장의 비리, 세상에서 비난하고 있는 대형교회 문제 등이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자기교회만 앞세우는 개교회주의도 문제다. 이번총회는 연합과 일치운동의 대안을 마련하고 추락한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새로워져서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종교로 거듭태어나도록 다함께 힘을 모으자.
    • 오피니언
    • 사설
    2018-09-12
  • NAP는 악법이다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의 독소조항에 대해 교계가 전면 반발하고 있다. 교계가 주장하는 독소조항은 성 평등을 내세운 동성애 실현과 대체복무제의 합법화, 차별금지법 등으로 정책 이름과는 반대로 인권침해적 요소가 산재한 악법이다.   이대로라면 정부 각 부처와 기관들이 국가인권기본계획대로 책임지고 이행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그 이행상황을 국가인권정책협의회에 보고하고, 인권정책자문단과 국가인권위와 시민사회가 이행상황을 점검하여 그대로 실행하게 된다.   국민이 지녀야 할 윤리와 도덕을 파괴하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인권계획은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막지 않으면 미래세대의 재앙이 될 것이다.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폐기되어야 하는 이 법이 제정된 것은 인권이란 이름으로 대다수 국민들의 자유를 구속하려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광화문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칠 자유가 있다던 정부가 이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표현의 자유까지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정부와 뜻을 같이하는 여당이 이를 국회에서 통과시킬 경우 한국은 동성애로 인해 국가적 고통을 받게 될 뿐 아니라 국론분열을 비롯하여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동안 현 정부를 비롯하여 속칭 진보 정치권은 인권이란 이름으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이를 이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 왔다. 매년 서울시청에서 개최되는 퀴어축제를 비롯하여 여호와의증인이 주장하는 대체복무제, 군대 내 동성애 합법화 등 대다수 건강한 국민들 특히 크리스천들이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정책을 강제했다. 이제는 국민이 깨어야하고 기독교인들이 일어나서 이를 막아야 한다.   인권이라는 허울을 이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정치권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국민의 이름이 더 이상 이들에게 악용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치는데 이용되지 않도록 한국교회가 하나되어 저지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09-05
  • 희망을 주는 총회가 되도록 하자
    장로교 총회가 일제히 열린다. 총회의 중요성은 구성원 모두가 인지하고 있으며 각 교단의 최고 의결기관이 총회다.   이번 각 교단 총회를 통해 한국교회가 보다 더 새로워지길 소망한다. 총대(대의원)들은 자기주장이나 정치서클의 의견을 대변하기보다는 교단 전체를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서의 시각으로 발언을 하고 결의를 해 줄 것을 주문하고 싶다.   자칫 총회가 총회임원만을 선출하는 장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 물론 교단을 1년 동안 이끌 임원선출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총대들은 이 일과 함께 수많은 사안들을 보고 받고, 또 새로운 의제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새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각 총회에 참석해 보면 대부분 임원선거가 끝나면 자리를 뜨는 많은 총대들을 보게 된다. 우리가 국회의원들을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총대 자리를 귀중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우리 기독교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철저한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는 대사회적 입장에 설 때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신앙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바른 판단과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총회현장에서 본 총대(목사, 장로)들의 모습이 교회에서 보았던 모습과 확연히 다른 것을 종종 총회현장에서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같은 목회자인데 교회에서 보았던 자애로운 목회자, 혹은 장로의 모습이 아니란 점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회의하는 모습들을 누가 보더라도 신사적이고 멋있는 성숙한 총회의 모습을 보여 주길 소망한다.    이제는 더욱 신중하게 행동하고 멋있게 회의하며 바른 대안을 제시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총회가 되도록 하자.
    • 오피니언
    • 사설
    2018-09-05
  • 기독교대학을 살려야 한다
      교육부가 대학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결과를 공개하며 대학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인구감소에 따른 대학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한 평가결과 일반대학은 물론 기독교 대학들도 경쟁력 확보에 비상이다.   이번 대학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재정제한 대상으로 지목된 대학들은 학생수급에 치명적인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부 대학들은 정부의 이같은 평가정책을 비판하며 학생모집의 자율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중소규모의 대학의 경우 지난 10년간의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으로 대학 재정이 한계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학과별 특성화와 장학금혜택 등으로 학생들을 모집하려는 대학의 생존노력이 더욱 치열해지는 시기에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기독교 대학들은 교육투자 여력이 거의 없어 경쟁력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으며, 교육 환경과 질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대학 재정난도 심각한 수준이다. 학생들이 부담하는 등록금이 전체 재정의 6~70%를 차지할 정도로 주 수입원일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수년간 대학등록금이 거의 동결되면서 각 대학들은 직원 인건비와 필수 수업운영 비용을 충당하기도 벅찬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최저임금도 올라 인건비 부담이 더욱 커졌다.      기독교 대학들은 교회지도자를 양성하고 리더들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대학 경쟁력이 곧 기독교의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유명 크리스천대학들은 현재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여 세계적인 지도자들을 배출하고 있는데, 한국의 기독교대학은 학령인구감소와 재정난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학을 축소하려는 여러 규제로 인해 본래 목적인 교육의 장기적 투자는커녕 학생모집에 급급한 대학들이 미래를 이끌 지도자를 양성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현실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기독교 대학들을 되돌아보고 이를 지원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08-29
  • 교단명칭이 그렇게 중요한가?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가 사실상 교단명칭문제로 다시 분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단 현재 상황에서 (구)대신 이탈세력은 생각보다 많은 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나 총회 후 교단명칭을 백석으로 회귀할 경우 통합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구)대신 ‘통합정신 지지자들’도 별도의 총회설립을 심각하게 고려하겠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다시 분열되는 것이다. 통합정신 지지자들은 “대신과 백석의 건강한 양 교단이 통합을 하여 한국교회에 자랑이 되었으나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분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통합정신을 지키고, 나아가 하나 된 명문교단을 만들어 내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단명칭을 통합정신 그대로 대신으로, 총대원 수는 5:5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홍태희목사 중심의 일부 (구)백석측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교단명칭을 백석으로 회기하려 든다면 분열이 불가피해 보인다.    교단명칭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중요할 수도 있지만 교단을 둘로 다시 나누면서까지 이전투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한국교회가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마음으로 하나 되어 한국교회를 지켜야 할 위급한 시기에 교단명칭으로 싸운다면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양측 모두 교단명칭 문제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세로 비움을 실천하기 바란다. 그래도 아쉽다면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백석이나 백석대신으로 결정하면 간단한 문제이다. 교인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목회자들이 성도들보다도 안목이 좁아서야 어찌 하나님께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미래를 책임져 달라고 하실 수 있겠는가?   평신도들은 교회를 결정할 때 목회자의 인격과 교회의 복음성을 보고 결정한다. 별것도 아닌 일에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사도바울처럼 목숨을 거는 총대들이 되길 소망해 본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08-29
  • 일자리 문제 교회가 나서야 한다
      통계청은 지난 7월 고용동향보고에서 지난달 취업자 수가 작년 7월보다 5000명 증가에 그쳤다고 밝혔다. 8년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월평균 30만명을 넘었던 취업자 증가 폭이 올 들어 6개월 연속 10만명대 이하에 머물렀고, 실업자는 7개월 연속 100만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청와대가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두고 ‘고용쇼크’에 대응하겠다고 하지만 최저시급으로 촉발된 현 경제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시 되고 있다.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종교인과세를 시작하며 80%이상의 교회들이 세금면제 대상으로 알려질 정도로 교회의 재정구조는 무척 취약하다. 무임목회자들이 넘치는 시대에 임지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여기에 교인감소와 고용쇼크까지 겹치면서 중·대형교회들은 교인들의 헌금이 줄어들고, 소형교회들은 그나마 운영조차 어려운 처지가 됐다. 임지가 부족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교인감소와 경제불황 등으로 인한 헌금감소, 이로인해 채용여건이 열악해지는 특수사정도 있다. 기독교 전체적으로 여건이 심각한 상황에서 교인감소가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앞으로도 기독교의 사정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가 4조원 규모의 재정보강과 내년도 일자리 예산 증가율 상향조정 등을 통해 일자리 창출 등의 대응방안을 발표했으나 종교인에 대한 지원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정부의 대책과 별도로 기독교 연합기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현재 기독교 연합기관의 분열 등 내부적 악재로 인해 대사회문제에 목소리를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 국가적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방관할 일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만 기대지 말고 한국교회가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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