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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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순절 기간 ‘십자가의 도’를 실천하자.
       사순절(四旬節, Lent)기간이란 2025년 4월 20일 부활절로 부터 46일 전의 기간으로서 주일을 제외한 40일간(四旬)에 십자가의 고난을 체험하는 시간을 말한다. 그 의미는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훈련의 시기이며,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로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사순절기간을 지키는 문제를 두고 찬•반의 양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순절을 거룩하게 지켜야 된다는 찬성측은 모든 교회의 오래된 일반적인 관행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반대측은 주로 미국의 거듭난 복음주의자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체험은 일정기간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일상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순절 기간을 특별하게 지키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사순절 기간이라도 ‘십자가의 도’(고전1:18)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영적성장을 지키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세상 끝날까지 전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책망하며 교회의 설립과 통합의 유일한 기반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그들의 결여된 영적 분별력으로 인해 미련한 것으로 취급되는 반면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이중성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지혜로 된 절대 유일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언제나 분열과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든지 단점과 실수와 잘못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지나치게 믿거나 따르지 말고, 오직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중심으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의 뜻을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십자가에 못 박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라가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하며 그것이 곧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자기 계획, 자기주장, 자기 고집, 자기 욕망, 자기 의지, 자기 이상, 자기 행복을 버려야 비로소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껍데기일 뿐이고 주인은 주님이다. 또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말하는데, 육신을 부인해야 비로소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숙은 사순절뿐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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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25
  • 캠퍼스 이단대책위한 활동에 앞장서자
     새학기를 맞이해 각 선교단체의 전도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런데 정통 기독교에 속한 선교단체가 이닌,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에서도 다양한 포교활동을 진행하고 있어 유의를 요망한다. 신천지 등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학생들에게 접근을 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단들의 포교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도 고심해야 한다. 기독교대학들의 경우는 이단들이 교내에 포교를 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 진행되는 포교에는 제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법적으로 학교 밖에서의 활동은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기 때문에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활발하게 진행해 이단에 빠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 각 교회에서는 매년 새로 입학하는 새내기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야 하며, 선교단체에서 사역시 교회의 감독도 필요하다.     기독교대학에 경우 교목실 등을 통해 이러한 교육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는 채플 등의 시간을 통해 이단의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 실제로 백석대학교의 경우 이단 경계주일을 정하고, 이단의 위험성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기독학생 연합회의 경우 SNS를 활용해 이단경계 활동하고 있다.       건강한 선교단체를 소개하는 일도 필요하다. 선교단체들의 연합체인 학원복음협의회는 안전한 선교단체의 목록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선교단체에서 학생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한다.    이단에 대한 교육과 함께 같이가야하는 것은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비진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진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알려서 이단에 빠지지 않게 할 뿐 아니라 더 성숙한 신앙의 길로 가게 해야 한다. 대학생시기는 신앙에 전념할 수 있는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를 통해 학생들의 신앙이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한국교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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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25
  • 한국교회 신뢰회복을 위해 힘써야 한다.
         예장통합 ‘목회자윤리강령’(2011.10.29)을 보면 한국교회의 세속화의 모습을 밝히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못지않게 세속화되었다. 성경에 대한 무지, 강단의 세속화, 교권주의, 공명(功名)주의, 분파주의, 미신적 사고, 교회의 기업화, 성적(性的)부도덕, 목회자의 독선, 물신(物神)숭배 그리고 지나친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로 인하여 한국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처음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다.    주님은 사랑의 본체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시고, 우리가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게 됨으로서 교리와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교회생활을 위해 우리 속사람 안으로 강건해야만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갖게 된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교회가 세속화를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상처받은 자들의 모임이기에 서로가 영혼의 상처를 치료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내가 새롭게 되는 곳이다. 또한 교회의 위치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교회는 만물 곧 모든 창조물보다 최상위에 있다(엡1:22). 만물 안에는 세상이 있고 교회는 만물 위에 있기에 교회를 함부로 여겨서는 안된다. 더욱이 교회는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 곧 천사들을 가르치는 엄청난 곳이다.(엡3:10). 뿐만 아니라 교회는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엡4:16).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란 없다. 천국에 가서야 완전한 교회가 있다. 이 땅의 교회는 함께 지어져 가는 과정(엡2:22)에 있다. 그러기에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서 바로 처음사랑을 잊었을 때에 모든 교회가 타락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 세속화는 바로 주님의 처음사랑을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은혜와 진리’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고, 끼리끼리 당을 짓지말며, 모든 교회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는 일(롬8:28)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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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1
  • 다음 세대위한 ‘성경’으로 자리매김 - 『새한글성경』 출판에
       「새한글성경」의 번역은 2011년 9월 대한성서공회 이사회에서 "디지털 매체 시대의 젊은이들이 성경을 더 쉽게 이해하고 삶 속에 더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의하면서 시작되었다. 2011년 12월 27일 '성경번역연구위원회'가 조직되어 1년 동안의 번역원칙 연구를 거쳐, 2012년 12월 14일부터 각 교단의 성서학자 36명이 함께 본문을 번역하고, 국어학자 3명이 이를 읽으면서 본문을 다듬었다. 2021년 11월에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먼저 발행한 후, 2024년 12월에 「새한글성경」 완역본을 발간하게 되었다.    「새한글성경」은 ‘새한글’이란 책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한국어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 새롭고 참신한 용어와 방식’을 사용하고, ‘성경’으로서 ‘원문’에 최대한 충실한 번역이 되도록 했다.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어휘와 쉽고 간결한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원문의 문법적 구조뿐 아니라, 어원적 특성과 어순의 강조점까지 최대한 반영하여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었다. 그리하여 강단용인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나 다른 역본들과 함께 읽을 때에 원문의 의미와 분위기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존의 성경은 젊은이들이나 교회학교 학생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구절들이 많았다. 대부분 관념적인 언어나 구어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에게는 고전처럼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젊은이들의 삶 속에서 성경읽기기를 생활화하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이러한 기존 성경에서 벗어나 젊은이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필요한 성경을 발간한 것이다.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이나 다른 디지털매체로 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해에 어려움이 없도록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번역한 것이다. 원문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바탕으로 참신한 우리말 표현을 찾아 새롭게 번역 되었다. 이러한 것은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출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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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24
  • 선교140주년, 한국교회 연합에 매진하자
         올해는 아펜젤러선교사와 언더우드선교사가 조선에서 사역을 시작한지 140년이 되는 해이다. 14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인만큼 다양한 곳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그리고 기독교대한감리회가 14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이 연합예배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선교 140주년을 맞이해서 우리는 초창기 선교사들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초창기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이권과 권리를 버리고 사역을 했다. 또 많은 선교사가 젊은 나이에 순교를 했다. 그들이 조선 땅에 교회를 세웠으며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데는 선교사들의 공도 무시할 수가 없다. 특히 선교사들은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사역을 했다. 자신의 교단을 위해서 경쟁적으로 사역한 것이 아니라 조선 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사역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선교사들의 정신을 토대로 사역해야 한다. 각자의 이권과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사역에 앞장서야 한다. 이러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사역해야 한다. 각자 다른교단과 교회에 속해 있을 지라도 하나님나라 백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신뢰도 하락은 오래된 일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의 분열이 사라져야 한다. 서로의 이권과 권리 때문에 수 많은 교단이 생겨났다. 같은 교단 안에서도 파벌로 나누어지는 경우도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생기는 갈등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한 연합의 길로 나가야 한다. 특별한 행사에서 함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만남과 교류를 지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역에 매진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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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24
  • [사설] 시국의 엄중함을 깨닫고 기도해야 한다 -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과 수사에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은 뇌란죄수사와 ‘탄핵’이란 절차로 심판을 받게 됐다. 12일 제2차 탄핵투표에서 가결되므로써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심의절차에 들어 갔다. 이에 앞서 국회는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위기를 155분 뒤 계엄해제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탄핵문제는 찬성과 반대로 국론이 분열된 가운데 가결된 것이다. 그리고 경찰과 검찰, 공수처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겸허한 자세로 헌법재판소의 심의와 수사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신속한 대응으로 해제와 탄핵,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의 등은 대한민국이 헌법에 기초한 법치국가임을 보여 주었다. 민주화이후 44년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을 6시간 만에 해제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견고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의 결과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국민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성취해온 나라로 평가해 왔다. 이번 대통령의 반헌법적 계엄시도가 6시간만에 끝난 것도,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헌신으로 다져진 민주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러나 재난으로 인한 국가의 위기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누구나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지키라고 대통령으로 선출해준 국민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헌법정신에 반하는 독재적인 발상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데도, 비상계엄으로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정치의 파트너인 야당과 대화하고 협치하려는 노력도 없이, 야당 때문이란 이유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직시하고 예언자적 사명에 따라 잘못된 현 시국을 바르게 이끌어가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잘못과 부패를 막고, 하나님의 공의를 확립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라와 민족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야 하고, 시국의 엄중함을 깨닫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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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6

실시간 사설 기사

  • 인사시스템의 강화로 바른 인물 천거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유은혜 후보를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로 임명했다. 새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우려한 대로 난항을 거듭했으며 야당이 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특정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통령은 유은혜 후보자를 임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과거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라 낯설지 않다.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청문회는 영어로 히어링(hearing)이지만 대체적으로 청문위원들의 공격과 추궁성 질문이 앞선다. 후보자의 정책 소신을 듣는 분위기가 아니다. 청문회장은 여야 정치공방의 장으로 변질된 지 이미 오래다. 시비가 될 법한 인사를 굳이 후보자로 낙점하는 인사검증의 침묵, 청문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후보자의 대범함,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풍파를 일으켜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유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점에 관해서는 “현재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에서 야당이 반대한 것이 일반 국민의 여론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임 유 장관은 위장전입에 아들 병역문제논란, 피감기관사무실 임대로 인한 갑질 논란, 남편 동업자의 비서관 채용 등 여러 가지 의혹을 받았다. 도덕성과 자질 문제가 지적되었다.   유 신임 장관은 문 정부 들어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없이 임명된 네 번째 국무위원이 되었다. 도덕성이 요구되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의혹과 범법행위가 사과 한마디로 넘어가는 일이 계속적으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바른 인재 발탁은 백년대계의 기본이다. 대통령은 앞으로라도 인사 시스템을 강화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도덕성을 갖춘 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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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0
  • 신사참배 회개, 변화의 계기로
      오는 28일 한국교회가 1938년 9월 9일 신사참배를 결의한 죄악에 대해 참회하는 회개기도회가 전국적으로 열린다. 한국교회는 일제 강점기 시절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1935년을 기점으로 조선총독부의 강경책에 신사참배 용인파와 반대파로 분열되면서 큰 갈등을 겪었다.   조선총독부는 기독교계 학교에 보급된 신사참배를 교회로까지 확장시키기 위하여 압력을 행사했고,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결의를 계기로 각 교파의 목회자들이 신사참배에 나서면서 급격히 황민화 정책에 동조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기철목사와, 손양원목사 등이 순교 당하거나 모진 고초를 겪었다. 또 신사참배 거부로 2백여개 교회가 폐쇄되었고 50여명이 순교하는 등 한국교회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때마다 이 문제에 관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한국교회에 용서를 구하는 기회를 가져왔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과를 고백하고 잘못을 돌이키는 일이 연례적으로 반복되면서 이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도회가 연례행사처럼 치러질 경우 과거 일제 강점기에 신앙의 선배들이 저질렀던 죄를 후대에 정죄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 뿐 아니라 교인들도 과거로 돌아가 일제의 탄압 속에 살았다면 과연 생명을 걸고 참배를 거부할 수 있을까? 실제로 신사참배는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와 천주교 등 다른 종교인들도 함께 했으나 이들은 지금까지 이들 종교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뉘우치고 잘못했다 고백하는 종교지도자들의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킨 종교지도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에서 나왔음에도 이러한 회개운동으로 인해 안티 기독교 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도회가 그동안의 회개기도회의 틀에서 벗어나서 한국교회를 하나로 묶는 변화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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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0
  • 가을,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자
      긴 추석(秋夕) 연휴도 어느덧 지나가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기쁘고 풍요로워야 할 때지만 마음 편치 않은 일들이 유달리 많았던 추석인 것 같다. 최저나 최악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일자리 상황 때문이다. 특히 취업자 수가 가장 감소폭이 크다는 보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굳이 지적하자면 현 정권이 줄기차게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이나 ‘최저임금제’등의 문제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정책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신중하게 계획했어도 실패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이라면 자존심 버리고 바로 궤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많은 문제 제기를 무시하고, ‘할 일에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것으로,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뜻’의 오불관언(吾不關焉) 정부의 태도다. 행여 정부가 힘으로 계속 밀어붙이다 보면 효과를 볼 것으로 착각하며 집단 자기 최면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가 추석 명절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자매와 이웃,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변하다 보니 요즘에는 명절이라고 꼭 고향을 가야 한다는 개념이 없어진 것 같다. 한 여론기관에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 이상이 이번 추석에 고향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다행일까 고향에도 못 가고 추석을 혼자 지내는 일명 ‘혼추족’을 위해 식품업체가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고 있어 다소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비록 고향은 못 가도 고향 음식 맛을 볼 수 있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추석은 지났지만 예외 없이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기회는 잃지 않았으면 한다. 쌀과 과일 그리고 생필품 등을 나눔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우리 모두 나눌 수 있는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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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2
  • 대북선교가 위태롭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8일 발의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법안에는 대북전단을 살포하기 위해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최대 3년의 징역과 3천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한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대북전단 행위는 물론 한국교회의 북한선교에도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입장에서 기독교는 체제자체를 흔드는 ‘절대 악’이다. 지금도 지하교회에서 신앙을 지키는 북한주민들은 남한에서 비밀리에 전달받는 성경책과 지원물품으로 신앙을 지키고 있다. 정부가 북한 독재정권을 위해서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이같은 선교활동은 남북간의 ‘평화’를 해치는 행위로 간주되어 처벌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최악의 독재집단인 북한정권을 보호하고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돕는 법안을 자유대한민국의 국회에서 발의했다는 것은 경악할 만한 사건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며 인류가 가져야할 보편적 가치다. 북한주민들이 외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평화라는 이름으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반민주적이며 공산주의에 세뇌된 북한동포들을 구원할 생명 줄을 끊는 행위다.   북한주민들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고 독재정권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그것은 굴종이며 조공을 바치며 항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번 법안은 기독교의 ‘대북선교 금지’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정부가 남북평화를 이유로 북한선교 행위를 금지할 경우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응 할 것인가? 가뜩이나 분열되고 위축되어 제 목소리를 못내는 기독교가 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한마디로 부정적이다. 국가가 형사처벌을 운운하며 나서서 막는데 누가 북한선교에 나서 겠는가!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도 역대급으로 축소하여 진행한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기 위해 자국민의 자유도 억압하는 행태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로 인해 북한주민들에게 전해져야 할 복음의 끈이 함께 잘려나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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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2
  •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안된다
      지난 8일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는. 시작 전 부터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던 광장을 점거한 교인들로 인해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경찰추산 1000명이 모인 반대집회측은 300명이 모인 축제추최측을 에워싸고 폴리스라인을 무너뜨리며 행사자체를 무산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국 퀴어축제 반대를 외치던 교인들은 축제 자체가 열리지 못하게 하면서 승리자가 됐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승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인천에서의 모습은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폭력적이었다. 행사 트럭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타이어에 펑크를 내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아 가진 깃발을 부러뜨리고, 각종 폭언과 신체적 폭행을 가하는 모습은 정말 이것이 기독교인의 모습이 맞는지 질문할 수 밖에 없는 행위들이었다.   행사에 참가했다가 반대집회에 나선 교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심지어 목회자가 경찰에 체포되어 수갑을 찬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이번 인천에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며 나선 교인들이 보여준 모습은 영락없는 폭력이자 린치에 가까웠다.   이미 한국교회는 지난 2014년 신촌에서의 경험을 잊은 모양이다. 당시 동성애 반대를 외치던 교인들은 적극적으로 동성애자들의 퍼레이드를 지지하기 위해 몸을 던져가며 막아섰다. 그리고 승리했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동성애자들은 보다 넓은 광장으로 나왔으며, 이제 서울에서 그들의 축제와 행진은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됐다.   아무리 동성애를 막는것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폭력적인 모습은 보여선 안된다. 물리력을 이용하여 그들을 막으려 한 결과는 결국 서울시청광장에서의 퀴어축제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성이 수반되는 순간, 동성애 반대의 당위성은 훼손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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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12
  •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에 앞장서자
      예장합동과 통합, 백석대신, 고신 등 대형교단 총회가 이번 주부터 시작됐고, 중소형 교단들도 다음 주까지 일제히 개회되어 마친다. 다음주에 개회될 교단총회는 합동개혁과 기장 등으로, 일부 교단들은 이미 총회를 마치기도 했다.    이들 교단들은 한국교회를 이끌어온 리더의 역할을 감당했다. 기독교가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해감에 따라 각 교단의 교세 또한 매년 위축되고 있다. 이번 총회는 그 어느 해보다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한교총과 한기연, 한기총 등 연합기관의 분열문제를 비롯하여, 목회 대물림, 교단 내 소송 건 등은 물론이고 추락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신뢰도 회복을 위한 대안도 모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새롭게 변화될 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한국교회가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며 하나되는 일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예장통합과 백석대신 등 연합기관에 중복되어 가입된 교단들이 있고, 통합논의도 활발히 진행중이다. 각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하나되는 일에 나서야 한다.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연합과 일치의 정신을 고취시키고 이 운동을 확산시키는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사회로부터 외면받는 교회는 생명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동성애와 이슬람,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등 기독교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교회가 목소리를 내려면 신뢰회복이 최우선 과제다.    목회자들의 성문제나 재정문제, 교단과 단체장의 비리, 세상에서 비난하고 있는 대형교회 문제 등이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자기교회만 앞세우는 개교회주의도 문제다. 이번총회는 연합과 일치운동의 대안을 마련하고 추락한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새로워져서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종교로 거듭태어나도록 다함께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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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12
  • NAP는 악법이다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의 독소조항에 대해 교계가 전면 반발하고 있다. 교계가 주장하는 독소조항은 성 평등을 내세운 동성애 실현과 대체복무제의 합법화, 차별금지법 등으로 정책 이름과는 반대로 인권침해적 요소가 산재한 악법이다.   이대로라면 정부 각 부처와 기관들이 국가인권기본계획대로 책임지고 이행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그 이행상황을 국가인권정책협의회에 보고하고, 인권정책자문단과 국가인권위와 시민사회가 이행상황을 점검하여 그대로 실행하게 된다.   국민이 지녀야 할 윤리와 도덕을 파괴하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인권계획은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막지 않으면 미래세대의 재앙이 될 것이다.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폐기되어야 하는 이 법이 제정된 것은 인권이란 이름으로 대다수 국민들의 자유를 구속하려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광화문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칠 자유가 있다던 정부가 이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표현의 자유까지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정부와 뜻을 같이하는 여당이 이를 국회에서 통과시킬 경우 한국은 동성애로 인해 국가적 고통을 받게 될 뿐 아니라 국론분열을 비롯하여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동안 현 정부를 비롯하여 속칭 진보 정치권은 인권이란 이름으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이를 이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 왔다. 매년 서울시청에서 개최되는 퀴어축제를 비롯하여 여호와의증인이 주장하는 대체복무제, 군대 내 동성애 합법화 등 대다수 건강한 국민들 특히 크리스천들이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정책을 강제했다. 이제는 국민이 깨어야하고 기독교인들이 일어나서 이를 막아야 한다.   인권이라는 허울을 이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정치권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국민의 이름이 더 이상 이들에게 악용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치는데 이용되지 않도록 한국교회가 하나되어 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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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05
  • 희망을 주는 총회가 되도록 하자
    장로교 총회가 일제히 열린다. 총회의 중요성은 구성원 모두가 인지하고 있으며 각 교단의 최고 의결기관이 총회다.   이번 각 교단 총회를 통해 한국교회가 보다 더 새로워지길 소망한다. 총대(대의원)들은 자기주장이나 정치서클의 의견을 대변하기보다는 교단 전체를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서의 시각으로 발언을 하고 결의를 해 줄 것을 주문하고 싶다.   자칫 총회가 총회임원만을 선출하는 장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 물론 교단을 1년 동안 이끌 임원선출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총대들은 이 일과 함께 수많은 사안들을 보고 받고, 또 새로운 의제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새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각 총회에 참석해 보면 대부분 임원선거가 끝나면 자리를 뜨는 많은 총대들을 보게 된다. 우리가 국회의원들을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총대 자리를 귀중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우리 기독교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철저한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는 대사회적 입장에 설 때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신앙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바른 판단과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총회현장에서 본 총대(목사, 장로)들의 모습이 교회에서 보았던 모습과 확연히 다른 것을 종종 총회현장에서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같은 목회자인데 교회에서 보았던 자애로운 목회자, 혹은 장로의 모습이 아니란 점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회의하는 모습들을 누가 보더라도 신사적이고 멋있는 성숙한 총회의 모습을 보여 주길 소망한다.    이제는 더욱 신중하게 행동하고 멋있게 회의하며 바른 대안을 제시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총회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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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05
  • 기독교대학을 살려야 한다
      교육부가 대학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결과를 공개하며 대학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인구감소에 따른 대학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한 평가결과 일반대학은 물론 기독교 대학들도 경쟁력 확보에 비상이다.   이번 대학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재정제한 대상으로 지목된 대학들은 학생수급에 치명적인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부 대학들은 정부의 이같은 평가정책을 비판하며 학생모집의 자율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중소규모의 대학의 경우 지난 10년간의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으로 대학 재정이 한계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학과별 특성화와 장학금혜택 등으로 학생들을 모집하려는 대학의 생존노력이 더욱 치열해지는 시기에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기독교 대학들은 교육투자 여력이 거의 없어 경쟁력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으며, 교육 환경과 질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대학 재정난도 심각한 수준이다. 학생들이 부담하는 등록금이 전체 재정의 6~70%를 차지할 정도로 주 수입원일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수년간 대학등록금이 거의 동결되면서 각 대학들은 직원 인건비와 필수 수업운영 비용을 충당하기도 벅찬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최저임금도 올라 인건비 부담이 더욱 커졌다.      기독교 대학들은 교회지도자를 양성하고 리더들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대학 경쟁력이 곧 기독교의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유명 크리스천대학들은 현재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여 세계적인 지도자들을 배출하고 있는데, 한국의 기독교대학은 학령인구감소와 재정난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학을 축소하려는 여러 규제로 인해 본래 목적인 교육의 장기적 투자는커녕 학생모집에 급급한 대학들이 미래를 이끌 지도자를 양성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현실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기독교 대학들을 되돌아보고 이를 지원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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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29
  • 교단명칭이 그렇게 중요한가?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가 사실상 교단명칭문제로 다시 분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단 현재 상황에서 (구)대신 이탈세력은 생각보다 많은 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나 총회 후 교단명칭을 백석으로 회귀할 경우 통합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구)대신 ‘통합정신 지지자들’도 별도의 총회설립을 심각하게 고려하겠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다시 분열되는 것이다. 통합정신 지지자들은 “대신과 백석의 건강한 양 교단이 통합을 하여 한국교회에 자랑이 되었으나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분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통합정신을 지키고, 나아가 하나 된 명문교단을 만들어 내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단명칭을 통합정신 그대로 대신으로, 총대원 수는 5:5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홍태희목사 중심의 일부 (구)백석측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교단명칭을 백석으로 회기하려 든다면 분열이 불가피해 보인다.    교단명칭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중요할 수도 있지만 교단을 둘로 다시 나누면서까지 이전투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한국교회가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마음으로 하나 되어 한국교회를 지켜야 할 위급한 시기에 교단명칭으로 싸운다면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양측 모두 교단명칭 문제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세로 비움을 실천하기 바란다. 그래도 아쉽다면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백석이나 백석대신으로 결정하면 간단한 문제이다. 교인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목회자들이 성도들보다도 안목이 좁아서야 어찌 하나님께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미래를 책임져 달라고 하실 수 있겠는가?   평신도들은 교회를 결정할 때 목회자의 인격과 교회의 복음성을 보고 결정한다. 별것도 아닌 일에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사도바울처럼 목숨을 거는 총대들이 되길 소망해 본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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