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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을 환대하는 교회가 되자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체류자의 수는 251만 명으로 이는 전체인구의 약 5%에 달하는 수치이다. 다문화가구도 약 40만가구에 달한다. 이제 우리는 수 많은 이주민과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유학 등을 이유로 단기에 체류하는 이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세는 환대의 자세이다. 성경은 이방인을 환대할 것을 말하고 있다. 레위기 19장 33절과 34절에서는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이주민을 환영하고 배척하지 않는 자세가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라 할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취약계층이라는 편견으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의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그들의 주거권이다.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선주민과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해야 한다. 상당수의 이주민들 특히 이주노동자는 단체 생활을 하는데 이들의 숙소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의 최소한의 여건이 보장된 주거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이주민들이 초기 묵을 수 있는 숙소 등을 제공할 필요성도 있다. 또한 장기적인 정착을 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와 실생활에서 필요한 상식들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7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열린 이주민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한 유학생은 “가장 힘들때 교회의 환대 덕분에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교회의 환대는 모든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이며, 복음의 전달의 통로도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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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감소’·‘다음세대’ 문제에 집중해야 - 금년 장로교총회에
주요 장로교단 총회가 오는 5일부터 시작해 9월 중에 일제히 끝난다. 머지막 주간인 23일부터 27일까지가 가장 많다. 합동측은 23일부터 27일까지 울산 우정교회를 비롯해 통합측은 24일부터 27일까지 양곡교회에서 개회한다. 이번 정기총회는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을 선출하고, 주요한 선교 및 교육정책, 그리고 각 교단의 현안 문제를 다룬다. 특히 요즘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와 다음 세대 문제, 그리고 교인감소의 극복을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새로운 정책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통합측을 비롯한 합동측, 고신측의 목사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하다. 기장은 장로부총회장에 2명이 입후보했다. 통합측의 경우에는 3명이 입후보해 각 후보마다 선거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금권선거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 각 교단 집행부는 공명선거를 위한 공정한 선거에 집중하고 있지만, 금권선거운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워지고 있다. 교회가 이 금권선거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일꾼을 선출하는 데에 물질적으로 거래되어서는 안된다. 금권선거를 종식시키는 데에 모두가 앞장 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회는 ‘코로나19’이후 급격히 감소되는 교인문제와 다음세대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계속 문을 닫는 교회가 늘고 있는 것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때문에, 교인감소를 현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할 방안도 마련해 다음 회기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세대 문제이다. 출산율의 저하로 인한 교회학교 부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산율 저하문제는 교회도 관심을 갖고 극복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의 몫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출산율 저하는 교회학교가 없어지고, 결국은 교회도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 통합측에서 윤리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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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로잔대회가 한국교회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
로잔대회의 긍정적 효과는 무엇일까. 로잔대회가 성큼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교회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이 복음주의 최대의 선교축제를 준비했다. 많은 기도회와 예배 그리고 간담회와 컨퍼런스 등이 진행되었고 목회자들은 물론 선교사들과 교회 행정가들, 평신도들 역시 모두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기대해 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이 있다. 한국교회 모두가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로잔에 대한 많은 우려의 소리도 있고, 로잔대회 개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몇 개의 교단과 단체들은 로잔대회를 우려한다. 그리고 50년 역사 속에 로잔이 견지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 특별히 로잔대회가 반성경적인 신학의 바탕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하며, 로잔대회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협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 원인들로는 그간 한국교회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성장주의적 교회관, 세속적인 부와 관계된 기복신앙, 사회의 부조리와 정의문제에 등한시하는 한국기독교의 신학의 문제들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로잔대회 역시 이번 행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우려하는 다른 한 편의 목소리에 분명하게 대답해야 하고 논의해야 할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숙제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로잔대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종교적인 권위 없이 세상과 사회에 다가가려고 하는 초월적 신학과 실천적 영성에 있다. 복음의 교리를 전하는 것 이상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복음의 온기를 전하는 일에 가치를 두는 그들의 실천적 제안은, 현재 한국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고 외면당하는 한국교회에 큰 도움과 변화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한국교회가, 이번 제 4차 로잔대회를 기대하고 준비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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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감사의 의미를 생각하는 맥추감사절 되자
‘맥추(麥秋)’의 사전적 의미는 보리를 추수하는 일이다. 대개 봄철이 끝나는 시점이며,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7월 첫째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밭에 뿌리 밀의 첫 열매로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이를 “칠칠절(七七節)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출34:22,민28:26)’이다. 특별히 칠칠절(신16:9-12)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이 끝나는 날부터 7주간이 지난 다음날을 칠칠절 혹은 맥추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했다. 이는 50일 간을 의미하며 마지막 날을 오순절 날이다. 유월절이 없으면 다른 절기의 계산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기본은 유월절이 된다. 칠칠절은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기억하고 풍요로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불우한 이웃과 함께 이를 기념하라고 명하고 있다. 맥추절은 우리의 사정과 다른 절기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비슷하다면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인정하고 서로 함께 나누자는 감사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3대 절기를 통한 교훈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속죄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함이요. 셋째 고난의 생활이 은혜임을 생각하며 감사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물은 바로 은혜이다.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은 은혜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은혜란 하나님이 베푸시는 값없는 선물이다. 특별히 아무런 조건 없이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다. 필요할 때마다 순간순간 도우시는 주의 은혜이다(히4:16). 우리는 이 뜻을 받들어 주님께 감사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 우리 주변에 너무도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에게 은혜의 손길을 보내야 한다. 이제는 주변의 어렵고 고단한 이들과 함께하는 맥추감사절을 지키고자 하는 뜻에 따른 감사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은 한국교회를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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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름성경학교 통한 다음세대 교육에 힘쓰자
교회의 여름성경학교는 여름동안에 교회에서 주최하는 단기간의 성경 수업으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일군으로 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방학 기간에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이다. 여름성경학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하고 예수가 인간을 구원해주어 새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게 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회들의 여름성경학교는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수양회, 수련회 등으로 보완되고 있으나 한편으로 어학이나 여행 등의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정작 필요한 청소년의 신앙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위기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지나친 세속화로 사회를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청소년의 신앙교육 활성화의 길은 무엇인가! 그동안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에만 치우쳐져 있어 성도들의 영적, 지적, 심리적 요구를 돌볼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은 극히 미흡한 상태에 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성경에서 가장 바람직한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계3:7-13)이다. 빌라델비아는 ‘형제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주님은 거룩하고 참되신 분임을 고백하고 인내의 말씀을 지켰던 교회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따라서 하나님이 중심된 교회를 회복하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의 검(엡6:17)으로서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믿음의 소망의 순례길에서 3가지를 중시하고 있다. 첫째 사람들과 다른 옷을 입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옷이다(롬13:14). 둘째 가나안 말 곧 약속된 성경의 말씀을 사용했다. 셋째 ‘헛된 물건’을 사지 않았다. 오직 진리만을 샀다(잠23:23,요8:32). 디지털 시대의 모든 것은 헛된 물건들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유일한 진리인 ‘그리스도’가 중심인 말씀을 깨달아 가는 ‘진리’만을 가르치는 복음의 교육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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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단기선교위한 위기관리 교육 필요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단기선교를 위한 준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기선교를 위한 위기관리 교육의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단기선교지의 현지 상황과 문화 등을 성도들이 잘 알고 갈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여행자보험과 같은 준비를 통해 어려운 상황을 당하게 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항이다. 외교부에서 제공하는 해외안전여행 페이지에서는 여행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현지문화와 유용한 현지어 그리고 사고의 유형 등을 알리고 있다. 유용한 현지어에 경우 한국어로 발음도 적어 이용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정보를 선교지에 방문하기 전에 배움으로써 선교지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지법이나 정서를 알리는 것이다. 현지법을 잘 몰라서 현지에서 구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지정서를 잘 몰라서 폭행 등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는 다른 교통상황도 알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선교지에서 발생하는 사고사례 중 가장 많은 경우가 교통사고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운전석이 다른 경우 운전에 더욱 유의할 것을 알려야 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교회와 선교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이러한 내용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안전한 단기선교를 할 수 있도록 관심을 촉구할 운동이 필요하다.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 등에서는 단기선교 사역 이전에 위기관리교육을 받도록 해서 위기상황을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기관리에 대한 강의와 실습을 통해서 더 은혜가 되는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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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을 환대하는 교회가 되자
-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체류자의 수는 251만 명으로 이는 전체인구의 약 5%에 달하는 수치이다. 다문화가구도 약 40만가구에 달한다. 이제 우리는 수 많은 이주민과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유학 등을 이유로 단기에 체류하는 이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세는 환대의 자세이다. 성경은 이방인을 환대할 것을 말하고 있다. 레위기 19장 33절과 34절에서는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이주민을 환영하고 배척하지 않는 자세가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라 할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취약계층이라는 편견으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의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그들의 주거권이다.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선주민과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해야 한다. 상당수의 이주민들 특히 이주노동자는 단체 생활을 하는데 이들의 숙소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의 최소한의 여건이 보장된 주거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이주민들이 초기 묵을 수 있는 숙소 등을 제공할 필요성도 있다. 또한 장기적인 정착을 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와 실생활에서 필요한 상식들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7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열린 이주민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한 유학생은 “가장 힘들때 교회의 환대 덕분에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교회의 환대는 모든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이며, 복음의 전달의 통로도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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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을 환대하는 교회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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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감소’·‘다음세대’ 문제에 집중해야 - 금년 장로교총회에
- 주요 장로교단 총회가 오는 5일부터 시작해 9월 중에 일제히 끝난다. 머지막 주간인 23일부터 27일까지가 가장 많다. 합동측은 23일부터 27일까지 울산 우정교회를 비롯해 통합측은 24일부터 27일까지 양곡교회에서 개회한다. 이번 정기총회는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을 선출하고, 주요한 선교 및 교육정책, 그리고 각 교단의 현안 문제를 다룬다. 특히 요즘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와 다음 세대 문제, 그리고 교인감소의 극복을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새로운 정책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통합측을 비롯한 합동측, 고신측의 목사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하다. 기장은 장로부총회장에 2명이 입후보했다. 통합측의 경우에는 3명이 입후보해 각 후보마다 선거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금권선거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 각 교단 집행부는 공명선거를 위한 공정한 선거에 집중하고 있지만, 금권선거운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워지고 있다. 교회가 이 금권선거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일꾼을 선출하는 데에 물질적으로 거래되어서는 안된다. 금권선거를 종식시키는 데에 모두가 앞장 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회는 ‘코로나19’이후 급격히 감소되는 교인문제와 다음세대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계속 문을 닫는 교회가 늘고 있는 것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때문에, 교인감소를 현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할 방안도 마련해 다음 회기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세대 문제이다. 출산율의 저하로 인한 교회학교 부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산율 저하문제는 교회도 관심을 갖고 극복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의 몫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출산율 저하는 교회학교가 없어지고, 결국은 교회도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 통합측에서 윤리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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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감소’·‘다음세대’ 문제에 집중해야 - 금년 장로교총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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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로잔대회가 한국교회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
- 로잔대회의 긍정적 효과는 무엇일까. 로잔대회가 성큼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교회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이 복음주의 최대의 선교축제를 준비했다. 많은 기도회와 예배 그리고 간담회와 컨퍼런스 등이 진행되었고 목회자들은 물론 선교사들과 교회 행정가들, 평신도들 역시 모두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기대해 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이 있다. 한국교회 모두가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로잔에 대한 많은 우려의 소리도 있고, 로잔대회 개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몇 개의 교단과 단체들은 로잔대회를 우려한다. 그리고 50년 역사 속에 로잔이 견지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 특별히 로잔대회가 반성경적인 신학의 바탕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하며, 로잔대회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협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 원인들로는 그간 한국교회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성장주의적 교회관, 세속적인 부와 관계된 기복신앙, 사회의 부조리와 정의문제에 등한시하는 한국기독교의 신학의 문제들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로잔대회 역시 이번 행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우려하는 다른 한 편의 목소리에 분명하게 대답해야 하고 논의해야 할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숙제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로잔대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종교적인 권위 없이 세상과 사회에 다가가려고 하는 초월적 신학과 실천적 영성에 있다. 복음의 교리를 전하는 것 이상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복음의 온기를 전하는 일에 가치를 두는 그들의 실천적 제안은, 현재 한국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고 외면당하는 한국교회에 큰 도움과 변화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한국교회가, 이번 제 4차 로잔대회를 기대하고 준비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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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로잔대회가 한국교회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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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감사의 의미를 생각하는 맥추감사절 되자
- ‘맥추(麥秋)’의 사전적 의미는 보리를 추수하는 일이다. 대개 봄철이 끝나는 시점이며,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7월 첫째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밭에 뿌리 밀의 첫 열매로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이를 “칠칠절(七七節)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출34:22,민28:26)’이다. 특별히 칠칠절(신16:9-12)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이 끝나는 날부터 7주간이 지난 다음날을 칠칠절 혹은 맥추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했다. 이는 50일 간을 의미하며 마지막 날을 오순절 날이다. 유월절이 없으면 다른 절기의 계산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기본은 유월절이 된다. 칠칠절은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기억하고 풍요로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불우한 이웃과 함께 이를 기념하라고 명하고 있다. 맥추절은 우리의 사정과 다른 절기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비슷하다면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인정하고 서로 함께 나누자는 감사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3대 절기를 통한 교훈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속죄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함이요. 셋째 고난의 생활이 은혜임을 생각하며 감사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물은 바로 은혜이다.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은 은혜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은혜란 하나님이 베푸시는 값없는 선물이다. 특별히 아무런 조건 없이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다. 필요할 때마다 순간순간 도우시는 주의 은혜이다(히4:16). 우리는 이 뜻을 받들어 주님께 감사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 우리 주변에 너무도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에게 은혜의 손길을 보내야 한다. 이제는 주변의 어렵고 고단한 이들과 함께하는 맥추감사절을 지키고자 하는 뜻에 따른 감사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은 한국교회를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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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름성경학교 통한 다음세대 교육에 힘쓰자
- 교회의 여름성경학교는 여름동안에 교회에서 주최하는 단기간의 성경 수업으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일군으로 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방학 기간에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이다. 여름성경학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하고 예수가 인간을 구원해주어 새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게 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회들의 여름성경학교는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수양회, 수련회 등으로 보완되고 있으나 한편으로 어학이나 여행 등의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정작 필요한 청소년의 신앙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위기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지나친 세속화로 사회를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청소년의 신앙교육 활성화의 길은 무엇인가! 그동안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에만 치우쳐져 있어 성도들의 영적, 지적, 심리적 요구를 돌볼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은 극히 미흡한 상태에 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성경에서 가장 바람직한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계3:7-13)이다. 빌라델비아는 ‘형제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주님은 거룩하고 참되신 분임을 고백하고 인내의 말씀을 지켰던 교회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따라서 하나님이 중심된 교회를 회복하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의 검(엡6:17)으로서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믿음의 소망의 순례길에서 3가지를 중시하고 있다. 첫째 사람들과 다른 옷을 입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옷이다(롬13:14). 둘째 가나안 말 곧 약속된 성경의 말씀을 사용했다. 셋째 ‘헛된 물건’을 사지 않았다. 오직 진리만을 샀다(잠23:23,요8:32). 디지털 시대의 모든 것은 헛된 물건들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유일한 진리인 ‘그리스도’가 중심인 말씀을 깨달아 가는 ‘진리’만을 가르치는 복음의 교육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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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름성경학교 통한 다음세대 교육에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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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단기선교위한 위기관리 교육 필요
-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단기선교를 위한 준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기선교를 위한 위기관리 교육의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단기선교지의 현지 상황과 문화 등을 성도들이 잘 알고 갈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여행자보험과 같은 준비를 통해 어려운 상황을 당하게 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항이다. 외교부에서 제공하는 해외안전여행 페이지에서는 여행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현지문화와 유용한 현지어 그리고 사고의 유형 등을 알리고 있다. 유용한 현지어에 경우 한국어로 발음도 적어 이용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정보를 선교지에 방문하기 전에 배움으로써 선교지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지법이나 정서를 알리는 것이다. 현지법을 잘 몰라서 현지에서 구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지정서를 잘 몰라서 폭행 등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는 다른 교통상황도 알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선교지에서 발생하는 사고사례 중 가장 많은 경우가 교통사고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운전석이 다른 경우 운전에 더욱 유의할 것을 알려야 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교회와 선교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이러한 내용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안전한 단기선교를 할 수 있도록 관심을 촉구할 운동이 필요하다.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 등에서는 단기선교 사역 이전에 위기관리교육을 받도록 해서 위기상황을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기관리에 대한 강의와 실습을 통해서 더 은혜가 되는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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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단기선교위한 위기관리 교육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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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 파괴하는 ‘인권’은 없다
-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 많은 여성들이 모였다. 이들은 남성이 피해자인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몰래카메라)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편파적이라고 성토하면서 대다수의 몰카 범죄가 피해자인 여성의 인권을 위협하고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남성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여 유포한 악질적 사건임이 분명함에도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관용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틈타 거리에 나와 가해자인 여성이 마치 피해자인양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여성인권이 억압받던 시대에 인권향상을 위해 시작됐던 페미니즘은 이제 여성우월주의로 변질되어 남성을 적으로 인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들 여성들 중 일부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자신이 낳은 아들까지도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저주하고 비난하고 있다. 인권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도 서울 시청에서 개최예정인 퀴어축제도 성소수자 인권보호란 명분으로 에이즈 확산과 성병감염 등 추악한 진실을 숨긴채 사회적 약자로 위장하여 우리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 비위생적인 성교로 인해 감염의 위험성이 급증하고 이로 인한 에이즈환자 치료비로 한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지출됨에도 이를 인권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이 파괴되면 우리사회의 근간이 흔들림에도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을 답습하듯 성적 문란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인권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평등 등의 기본적 권리’란 뜻이다. 여성우월주의와 동성애는 본질적인 인권회복이 목표가 아니다. 이들의 목표는 전통적 가정의 해체이며,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섭리를 파괴하는 것이 인권일리 없다. 한국교회도 이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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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 파괴하는 ‘인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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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처절함, 깊은 교훈으로 삼아야
- 처절한 죽음을 그대로 보여준 피(血)의 역사가 흐르는 강이 있다. 금강산에서 발원해 휴전선을 넘고 강원도 양구. 화천 평화의 댐과 한국 전쟁 때 국군이 중공군을 대파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던 인공호수인 파로호를 거쳐 경기도 남양주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북한강이 바로 피의 역사가 흐르는 강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화천의 북한강은 아군과 적군의 피가 폭포수처럼 흐르던 강이었다. 지난 6월 6일은 호국 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현충일이지만 아쉽게도 이날이 한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호국 영령들을 기억하는 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현충일의 의미가 우리 가슴에서 지워지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이 잠든 현충원에는 가 보았는가? 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신을 갖고 있는 지도자와 백성들이 있어야 한다. 6.25 전쟁은 안으로는 민족분단을 더욱 고착시키고, 밖으로는 동. 서양 진영 냉전을 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6.25 전쟁은 결국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원인으로 분단되었기 때문에, 분단국가의 어느 한 쪽 세력이 주도해 한반도 지역 전체를 무력으로 통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왜 우리는 한국 전쟁이 일어 난지 반세기가 흘러갔는데도 6.25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가. 그것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일 뿐만 아니라 같은 민족끼리 비극적인 아픔과 상처를 남겼기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이어 북미정상회담도 이뤄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민족이다. 북한의 만행은 용서하되 그 상처는 잊지 말아야 한다. 6월 한 달 만이라도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나라를 지키다 세상을 떠난 선조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돕는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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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처절함, 깊은 교훈으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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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중립 지대’로 남겨둬야 한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것”이라고 밝히고,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유혈충돌이 벌어졌고, 여전히 그 재발 가능성이 계속 고조되고 있다. UN은 지난 1947년에 ‘결의 제181호’를 발효하면서 “예루살렘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 특별 관리지역’으로 설정한다”는 선언을 했다. 즉 여러 민족의 공존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지난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아랍 국가 및 유대 국가로 강제 분할하면서도 예루살렘만은 국제법에 따라 ‘중립 지대’로 남겨둔 것이다. 그런데 이 국제법을 무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 이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들을 더 괴롭히고 있어서 오늘 이 시간 지구 반대편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무 잘못 없이 무고하게 죽어 가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2천 년 전, 식민지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 제국주의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친 유대인들의 잔혹한 모습이 떠오른다. 유대인 자기들만 선민이고, 구약시대 가나안땅을 되찾겠다고 하는데, 구약에서 자기들만 선민이라고 한 적이 없다. 성경 곡해다. 출애굽 당시 “중다한 잡족”이 나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선민의식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택정하심은 특혜가 아니라 특권이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섬기고, 봉사하며,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의무 말이다. 그런데 큰 문제는 구약과 연속성을 견지하면서 비연속성을 선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인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이 공공연히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들 유대인들과 달리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되찾아야 한다.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기독교의 유대교적 극우성을 보게 돼 실망하면 한국교회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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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중립 지대’로 남겨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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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를 취하는 기독교가 되자
-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종교별로 자신들의 종교적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기독교는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앞장서서 각 정당에 제기하는 등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실질적 로비를 통해 실리를 취하는 타종교에 비해 실질적 이득은 미비한 상황이다. 그 동안 불교와 천주교에 비해 기독교는 고질적인 분열의 핸디캡으로 인해 정치적 이슈에 대해 상대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불교의 경우 정부의 종교문화재 지원금을 비롯해 다양한 정부지원을 통해 실리를 취하고 있고, 천주교도 시민단체 조직을 통한 정치권 로비와 단일화된 움직임을 통해 20대 국회의원 4명중 1명이 천주교 신자로 확인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정치권이 기독교에 비해 타종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문제점을 일부나마 해소하고자 역할을 맡았던 기독교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각 정당은 립서비스 수준의 대응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문제는 기독교의 경우 개교회주의 와 분열로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책을 관철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국책사업 지원을 통해 교세를 늘리는 불교와 시민단체 등을 통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천주교에 비해 기독교는 항상 손가락만 빨고 있다. 이번에 각 정당에 제기된 8가지 질문은 저출산문제와 근대문화 특별위 구성, 반사회적 사이비 집단의 문제, 자살예방 및 낙태반대, 중독예방과 치료, 사랑이 넘치는 청정시군 만들기, 맑고 깨끗한 환경을 위해, 동성애 보호조장 인권조례 등이라고 한다. 이조차도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질문들이 기독교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 지원과는 거리가 있다. 기독교가 정부로부터 물질적 정치적 지원을 받고, 나아가 사회적 인식의 변화까지 이끌어내기 위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 종교의 경우 상대종교를 연구하고 분석하여 공격하는 연구원도 존재하는 반면 기독교는 이에 대한 대응과 인식자체가 전무하다. 내부의 분열로 인해 외부공격에 면역력을 잃은 기독교의 변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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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를 취하는 기독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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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 보전위해 교회가 나서자
- 최근 심해지는 황사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문제가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되는 등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1972년 유엔은 ‘인간환경선언’을 발표하면서 6월 5일을 ‘세계 환경의 날’로 정했다. 한국교회는 1984년부터 6월 첫째 주를 환경주일로 정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보전을 다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1992년부터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회원 교단 전체가 환경주일을 함께 지키며, 공동 예배순서와 공동 설교문, 환경현안 해설자료 등의 내용을 담은 환경주일 예배자료집을 전국 교회에 배포하고, 연합예배와 기념행사를 갖고 있는 등 교회차원의 환경교육에 대한 중요성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특히 교회와 일부 환경단체들이 시행중인 어린이 및 청소년 환경동아리는 미래세대의 환경체험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기독교 환경단체가 촉구하고 있는 녹색교회는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교회 녹화, 초록 가게, 지구온난화 억제를 위한 실천, 생명밥상 빈 그릇 실천, 햇빛발전소 설치, 친환경 조명 십자가 등 교회의 녹색실천에 앞장서는 구체적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또 교회의 예배, 교육, 봉사, 운영 등 교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에서 창조질서 보전을 실천하는 교회로 변화할 것을 촉구한다. 오늘날 대기오염을 비롯한 환경문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인간이 파괴하며 일어난 재난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일을 멈추고 절제와 지혜로운 활용을 통해 삶에서 주님의 질서를 보존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교회와 사회에서 적극 실천하는 캠페인도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이러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다시금 되새기며 생명을 다시 살리는 목회를 추구하는 모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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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 보전위해 교회가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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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상생, 평화는 시대적 요청
- 평화를 갈망했던 이 땅에 그 어느 때 보다 평화와 통일로 가는 문이 가까워 보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또다시 만나 2시간가량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의지를 재확인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역사와 많은 부분에 있어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 갔던 것처럼, 또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뉜 것처럼 현재 우리도 분단 체제의 포로로 잡혀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회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도 끊임없이 죄악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셨다. 지금의 남북한 관계에서도 ‘진정한 회개’라는 의미를 역사를 통해 엿 볼 수 있다. 70년 이상 통일의 문을 걸어 잠근 상태에서 자물쇠를 여는 열쇠는 한국교회가 짊어져야 할 의무이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을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심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영역에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대북관의 차이로 인한 남남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세속적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북한을 볼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셋째로 법적·제도적 장치를 통해 개인 혹은 단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범 교단적으로 일관성 있는 북한선교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통일이 멀리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통일 이전에 준비해야 될 것이 있다. 바로 통일을 대비한 ‘올바른 조직과 선교사’이다. 통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범 교단적 명령체계를 만들고 거기서 올바른 신앙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력자인 선교사가 그 대안이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복음적 평화통일만이 답이라는 기준이 분명히 있어야 하며, 또한 극심한 좌우의 대립 속에 복음적 평화통일을 향한 방향성만이 견고한 이념의 진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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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상생, 평화는 시대적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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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호국의 달, 감사의 마음 가져야
- 다가올 6월은 호국의 달, 순국선열의 뜻을 기리는 달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현충일과 호국의 달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 우리는 이 땅을 지키고 수호한 조상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충원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 순국선열, 순직 군인, 공무원, 경찰관 등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때때로 이곳의 묘비는 떠나간 이들에게 한(恨)이 맺힌 마음을 전하는 게시판이 되기도 한다. 가장을 잃은 아내와 자녀, 아들을 잃은 노부모가 먼저 간 혈육을 그리워하며 갖가지 사연이 담긴 편지나 쪽지를 남기기도 한다. 좌우로 질서정연하게 정렬되어 있는 묘역을 지나다보면 수많은 묘비 사이에 홀로 자식의 묘비 앞에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현충원에 가면 무명용사의 탑을 볼 수 있다. 그 무명용사의 탑이야말로 가히 현충원의 백미(白眉)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새벽녘 잠깐 풀잎에 내려앉았다가 해 뜰 무렵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아침이슬 같은 용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지만 아직도 북녘 땅 어딘가에 묻혀 조국의 가족을 그리워 할 순국선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현충탑에 위패로만 있는 전사자만도 4만여 위에 달한다. 우리 산 자들이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만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조국을 위해 피 끓는 청춘을 조국에 바쳤던 순국선열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대한민국 어느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와 형제, 그리고 아들, 딸들이 이 거룩한 땅을 지키기 위해 초개같은 목숨을 조국에 바쳤다. 이제 2018년 호국의 달을 앞두고 우리 모두가 “나라가 비록 평온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명언을 가슴 속 깊이, 새기야 한다. 힘이 있어야 평화도 지킬 수 있다. 튼튼한 안보의식과 보훈정신으로 온 국민이 똘똘 뭉쳐 하나가 될 때 더 이상 희생과 아픔이 없는 자유롭고 영광된 자유 민주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을 목숨으로 지킨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마음으로 모두가 국가안위를 먼저 생각하며 후손들에게 선열들의 피로 이루어놓은 자유와 민주의 나라를 물려주어야 한다. 자유 대한민국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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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호국의 달, 감사의 마음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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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은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입영거부자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부산지법 서부지원이 병역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A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것에 반해 수원지법은 마찬가지로 종교를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B씨 등 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남부지법의 판결이후 83~86번째 무죄판결로 알려진 이번 판결로 인해 병역에 대한 국민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정 종교를 이유로 병역을 면탈하려는 시도가 만연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그동안 자칭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일관되게 유죄로 판단하고 있는 대법원의 결정이 사회적 분위기가 변함에 따라 바뀔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병무청에 따르면 매년 5백여명 내외의 입영거부자들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고 밝히고 있다. 그들은 입영과 집총거부를 주장하고 있으며 교리에 따라 이를 신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군대는 싸우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고 가는 곳이다. 무죄판결에 대해 종교적 특혜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판결이 계속 나올 경우 국민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20대 청년들은 병역면제를 위해 여호와의 증인에 가입하려고 줄을 설 것이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 의무가 특정종교의 확산을 도와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비판적임에도 불구하고 병역의무에 대한 예외를 허용될 경우 사회적으로 의무이행의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특정 종교가 병역 면탈의 도구로 이용될 경우 사회 통합이 저해 될 것이고 국가 전체의 역량에 심각한 손상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개병 제도에 바탕을 둔 병역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기독교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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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은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