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7(월)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사설

실시간뉴스
  • 우리의 정서에 맞는 ‘감사절 시기’ 고려하자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아서 11월 3째 주를 추수감사절로 많이 지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사절의 시기를 우리의 정서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우선 11월 3째 주는 추수가 끝나고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현재 많은 교회들이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은 실제 추수시기와는 거리가 있다. 다만 추수의 개념을 확장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는 날로 생각한다면, 비교적 연말에 가까운 현재의 추수감가절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추수감사절은 성경 속에서 나오는 절기가 아닌 미국의 전통에서 나온 절기이다. 그런만큼 나라와 문화권에 따라서 감사절을 지키는 시기가 다르다. 케나다는 매월 10월 둘째 주 월요일로 지키며, 독일은 10월 첫 주 주일을 지키고 있다. 일본은 11월 23일을 근로감사의 날로 지키고 있는데, 이날이 추수와 노동에 감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에서도 감사와 관련된 절기가 있다. 맥추절이 그것이다. 맥추절은 보리와 밀을 추수한 이후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시기이다. 이 절기는 칠칠절과 오순절과 함께 유대인들이 꼭 지켜야 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이렇듯 감사절시기는 다양하게 지켜지고 있다. 그런만큼 감사절을 꼭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맞추어서 지킬 필요는 없다. 각 나라에서 각자의 정서에 맞는 감사절을 지키고 있는만큼, 우리도 우리나라와 한국교회에 상황에 맞는 감사절 시기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것이 한국의 추수감사절인 추석인 것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인 경동교회와 향린교회는 추석을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보수성향인 기독교학술원 원장 김영한교수도 추석을 감사절로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오피니언
    • 사설
    2025-09-26
  • 장로교 각교단의 총회를 마치며
    예장 합동측 총회가 진행된 충현교회의 모습   전국 각지에서 열린 장로회 주요 교단들의 총회가 일제히 마무리되었다. 이번 총회는 교단마다 각기 다른 안건과 과제를 다루었으나, 공통적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고민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무엇보다도 교단의 내적 갈등을 봉합하고, 교회의 공공성을 강화하며,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총회에서의 결의와 논의가 단순한 선언에 그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는 각 교단과 소속 교회들이 그 결의를 실제 목회 현장 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할 때다.   이번 총회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은 ‘화합’과 ‘자정’이다. 최근 몇 년간 장로회 교단들은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일부 교단에서는 재정 비리와 지도자 선출을 둘러싼 다툼이, 또 다른 교단에서는 교리 문제와 교회 운영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크게 훼손시켰고, 그 결과 교세 감소와 젊은 세대의 교회 이탈이라는 심각한 위기로 이어졌다. 이번 총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직시하고, 교단의 명예와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한 자정 노력이 결의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교회의 공공성 강화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 청년 실업, 저출산, 환경 위기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교회는 단순히 영적인 돌봄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아파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일부 총회에서는 기후 위기 대응, 청년 주거 문제, 다문화 가정 지원 등 시대적 과제를 다루며 교회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변화다.   한국교회가 다시금 세상의 신뢰를 회복하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천’이 중요하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교회의 갱신도 선언문이 아니라 행동으로 완성된다. 이번 총회가 보여준 다양한 논의와 결의가 단순한 문서 속 기록에 머물지 않고, 교회의 실제 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5-09-25
  • [사설] 태아와 여성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 서자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이 지난 16일 창립됐다. 이사장은 온누리교회 이재훈목사가 맡았으며, 영락교회 김운성목사와 신길교회 이기용목사 등이 이사를 맡는다.     기독교계에서 반동성애 운동은 활발히 진행되었지만 태아생명의 중요성을 알리는 운동은 이에 반해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태아생명의 중요성을 알리는 단체가 창립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낙태와 관련해 입법이 시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도 주목할 일이다.    성경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모태에 있을 때부터 생명은 귀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사야 49장 1절에는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라고 말하고 있다.     시편 139편 13절에서는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계에서는 수정이 되었을 때부터 생명이라는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낙태의 위험성을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이번 일을 통해서 태아생명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이 확장되길 원한다.    또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 여성을 보호하는 일임을 알려야 한다. 낙태가 여성들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낙태수술로 인해 신체적 건강이 위협되기도 하며,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올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도 함께 알릴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이유는 태아생명존중 운동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태아의 생명만을 위함이 아닌 여성들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낙태를 한 여성을 향한 무분별한 비판을 삼가야 한다. 그들이 회복되어야 할 대상임을 기억하고 그들의 회복을 위해서 지원하는 일이 절실하다.
    • 오피니언
    • 사설
    2025-09-23
  • 진영을 넘는 선교사역에 힘쓰자
     한국선교협의회와 세계선교협의회는 선교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양 기관은 현지인중심의 동반자선교와 한반도의 평화통일, 한국교회 선교안전 등에 있어서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 이번 협약은 에큐메니컬 진영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복음주의권 선교를 대표하는 한국세계선교협의회가 함께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에큐메니컬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은 세부적인 사안에서 다른 지점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 진영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선교사역을 위해서 힘을 모으기로 한 이번 결정은 한국교회가 진영을 넘어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한 복음전파사역에 있어서는 진영에 국한하지 않아야 한다. 진영을 초월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지상명령을 실천해야 한다. 복음전파 사역은 특정한 진영의 가치가 아닌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번 협약의 내용을 보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현지인 중심의 선교와 한반도통일을 위해서 양 기관이 협력하기로 했다. 최근 선교계는 외부자 중심의 선교에서 현지인중심의 선교로 페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양 진영이 서로 공감대를 가지고 선교사역에 동참을 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통일 이후 한국기독교가 개교회와 개교단 중심의 사역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함께하는 사역이 대두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양 기관이 통일사역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의미가 크다. 통일이후의 북한사역도 에큐메니컬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이 함께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5-09-10
  • 한국교회의 극우주의 대책이 시급하다
     최근 한국교회 일부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극우화 현상이 두드려지고 있다. 다가오는 장로교총회에서도 이 문제가 다루어진다. 예장 고신측에서는 대선 전 주일예배 설교시간에 특정 정치인과 세력을 비판한 설교를 했던 세계로교회 손현보목사의 설교가 교단정신에 알맞는지를 질의하는 안건이 올라왔다. 예장 통합측에서는 정치적인 행보와 신학적으로 문제시되는 발언을 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목사의 이단성에 대한 안건이 올라왔다. 장로교단뿐 아니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나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등 단체들이 기독교의 극우화를 염려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극단적인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경계와 주의의 메시지를 알려야 한다. 극우주의를 비롯한 극단적인 정치성향은 진실은 왜곡하고, 상대진영을 악마화한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교회는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 상대진영을 악마화하는 것이 아닌 대화를 통해서 서로가 화합의 길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와 대책 그리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올 것이다.    모든 것들이 중요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게 하는 길로 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화와 토론의 장을 마련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극우화 현상은 한국교회안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주목하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특정 세력에 대한 비판에 앞서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교회가 특정한 세력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회개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문제를 특정 세력의 문제로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기억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극우화 문제가 특정세력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기억하고, 한국교회가 다시 새롭게 되는 기회가 되길 원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5-09-10
  • [사설]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주력하자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자 분단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통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통일은 평화를 이루는 일이다. 또한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세게교회협의회는 지난 2013년 부산총회 이후 전 세계교회가 매년 광복절 직전 주일을 ‘한반도 평화통일 기도주일’로 지키기로 결의했다. 2025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주일 연합예배도 이러한 결의의 연장선상으로 드려졌다. 세계교회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반도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함께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꼐서 한반도의 통일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통일을 위한 사역이 중요한 사역임을 기억하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남과 북의 통일을 말하기 전에 한국사회의 분열된 현실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남과 북의 통일이 중요한 만큼 한국사회의 화합도 중요하다. 한국사회의 평화의 길이 이루어졌을 때, 남과 북의 평화의 길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화합을 이루지 못하면서 북한과의 화합을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진정한 화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분열이 된다면 우리는 화합과 통일이라는 사명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북한에 있는 지하교회 교인과 주민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통일은 화합을 이루는 일이지만 북한의 체제로 인해서 고통받은 북한의 주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히 신앙을 이유로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화합이라는 말로서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화합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화합으로 가는 길에서 그들의 고통이 치유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사역에 앞장설 때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5-08-11

실시간 사설 기사

  • ‘사랑’과 ‘감사’전하는 절기를 기대한다
      11월 셋째주일은 교회력으로 추수감사절이다. 많은 교회들이 이날을 기념하며 감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일부교회들은 추수에 대한 본래 의미를 살리고자 추석 전후로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구원의 감격과 더불어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해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은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정신을 지키는 절기로 이어지고 있다. 여러 대내외적 여건으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적 한파로 인해 감사절의 따스함을 느끼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소외된 이웃들은 더욱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부유한 사람들도 지갑을 여는데 인색하게 된다. 교회들도 추수감사절을 맞아 지난해만큼 감사헌금이 쌓일지 모르는 상황이다. 감사절의 헌금은 그래서 더욱 가치있게 사용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대해 감사하며 우리주변의 이웃들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것이 감사절의 참된 의미에 부합하는 행동일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타 종교에 비해 우리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앞장서왔다. 그러나 일부 교회와 개인들의 일탈로 인해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으며 나눔과 사랑의 실천이라는 고귀한 행동이 많이 위축됐다. 올해 추수감사절은 그래서 더욱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감사주일이 기독교 절기 중 하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은혜를 이웃과 함께하겠다는 정신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전하는 감사의 기쁨이 우리사회를 따뜻하게 적실 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의 힘이 더욱 빛이 나게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11-14
  • 안보 무임승차가 ‘양심’인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씨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9대4로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가 병역거부 사유로 내세운 신념이 ‘양심적’이라며 병역보다 우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결하면서 묵묵히 나라를 위해 군복무를 하며 헌신했던 일반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14년만에 나온 이번 판결로 인해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문의도 온라인상에서 급증하고 있다. 현재 법원에서 심리중인 병역거부자 대부분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대체복무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주면서 여호와의 증인 교인증은 사실상 병역 면탈의 ‘허가증’이 됐다.   여호와의 증인 한국지부는 논평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며 대한민국 인권 의식의 성숙함을 보여준 역사적인 판결로서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자평하는 등 나라를 위한 헌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국가안보의 혜택을 그대로 누리겠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말하는 소위 양심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소명자료를 제시하면 검사는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不)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검사가 양심을 판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종교 신자가 아니라도 신념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은 어떻게 진정성을 가릴 것인가에 대한 대안도 마땅치 않다. 온라인에서는 이들에게 휴전선 일대의 지뢰제거 임무에 투입하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진짜 평화를 위해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평화주의자라면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지뢰제거나 위험임무에 먼저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온라인상의 주장이지만 실제로 이들은 국방과 관련된 분야에서의 복무는 전면 거부하고 있다. 순수 민간단체에서만 ‘봉사’하고 싶다는 것이다. 자칭 ‘양심적’이라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국가안보에 무임승차 하는 모습이 어디가 ‘양심적’인지 되묻고 싶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11-06
  • 불의가 정의의 주인 된 모습 ‘통탄’
      국권이 침탈되어 왕조가 와해된 유다사회에서 민족을 견인하는 것은 성전과 율법체계였다. 대제사장이 국가원수의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비참하고 침통한 시대였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성전 체계의 탈선과 율법에 있어서 법 제정 당시의 법 정신이 실종되어 왜곡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민중의 죄를 먹고 사는 자들이다. 제사물의 등급과 양은 죄의 심각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민중이 범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제사장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구조였다. 율법은 울타리 율법의 추가로 분량이 비대해지고 방대해졌다. 율법준수 만이 구원의 혜택을 받는다는 당시의 시대정신은 무식한 민초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사항이었다. 율법을 준수하려면 알아야 지키는데 무식하면 못 지키게 된다. 따라서 유다사회는 “무식하면 구원 못 받는다”는 등식의 명제가 보편화 된 사회였다. 이러한 절망감이 일상이 된 민초들에게 상식을 전복시키는 예수는 희망이 된 동시에 보수 세력에게는 눈의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헤롯당과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손을 잡았다. 그들은 앙숙이었으나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재야인사 제거라는 공통분모가 생겼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은 대형 소요 사태가 발생할 시에는 분봉왕의 경질·교체를 단행했다.   따라서 헤롯 정권은 촌 동네 출신의 예수를 요주의 인물로 규정하고 요원들을 보내 계속 추적해 왔다.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성전과 율법체계를 기반으로 먹고 사는 자들 이다. 자기들의 가면을 벗기고 종교적 영향력을 무력화시키는 갈릴리 청년을 좌시하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헤롯당과 바리새파의 결탁으로 예수 제거 음모는 시작되었고 얼마 가지 않아 예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가 부활했다. 예수 당시의 유다 사회는 불의가 정의의 주인된 사회였다. 완전한 세상은 지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 속에 있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작금의 대형교회들을 보면 유다 사회와 다를 바 없는 불의가 정의의 주인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제발 바로 서는 한국 교회가 되자. 
    • 오피니언
    • 사설
    2018-11-06
  • 기독교인은 회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의 ‘아우라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모든 인간의 로망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아우라(Aura)’라는 용어는 독일의 문학비평가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예술이론에서 유래됐다.     ‘아우라’라는 용어를 ‘구별’이라는 기독교적 정서를 담은 용어로 호환(互換)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자에게 아우라가 있기를 요청한다. 그것은 그들이 세상과 구별된 자이기 때문이다. 구별된다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나 거기에는 선행적으로 전제되고 감수해야 될 조건이 발생하며, 불편함과 분골쇄신(粉骨碎身)이 동반된다. 즉 그것은 인간이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회개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과오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왜곡된 과거의 습관과 결별하는 데는 인격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과도기의 예언자 세례요한은 임박한 현실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염두에 두고 회개라는 개념을 구체화했다.   당시에 얼마나 구원에 대한 열망이 보편화됐는지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왔다는 사실로 이를 알 수 있다. 세례요한은 기성정치·종교권에 독설을 양산하는 재야종교지도자였으며, 그들은 유대사회 민중들의 의식을 재편하고 관리하는 기득권이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자긍심 하나로 외세 지배의 수치스러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는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의 ‘배타적 선민사상’을 부정한다. 인간은 선천적 회개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인박히고 습관화되고 체질화된 것을 청산해야 되는 절실한 불편함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과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주님 안에서의 ‘아우라(Aura)’는 기대할 수 없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10-30
  •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에 동참하자
      지난달 28일 한국교회일천만기도대성회가 마무리되고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 회개와 회복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이제야 제시한 것은 어쩌면 늦었다고도 할 수 있다. 분열된 한국교회와 비판받는 기독교 등 사회적 환경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시기에 이러한 한국교회가 하나되는 장을 마련했다는 것은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이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여 문화·교육·사회 등 대한민국을 근대화시키고 한국사회 전반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들이 분열과 이단논쟁, 교권싸움 등으로 분열되면서 매일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 속에서 한국교회가 하나될 수 있겠는가에 대해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도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교회는 이번 성회를 통해 더욱 하나되는 일에 힘쓰고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주님의 명령이자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사명을 등한시한다면 더 이상의 희망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나라와 민족을 부강하게 만들었던 기독교의 현재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추락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고 회복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모두 함께 앞장서고 밀어주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 모든 교회와 기독교단체, 연합기관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만 교회와 사회가 함께 발전하며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합 기관이 하나로 합쳐지기 어려우면 연합기관 전체 대표를 돌아가면서 기관이 맡고 대 사회적 목소리에 대표성을 인정하여 창구로 삼으면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한 목소리로 의논하여 통로가 하나로 정리되면 대 사회적 위상도 찾게 될 것이다.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의지가 문제다.   앞으로 각 교단과 연합기관이 연합하여 한국교회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한국교회만의 과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과제임을 깨닫고 동참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10-30
  • 성도들을 그만 실망시키세요!
      대형교회들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기여한 바도 크지만 일부 대형교회들은 교회의 역기능으로 인해 성도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도는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요즘 명성교회 교인들이 하남시 성안교회로 많이 이동한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광성교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은혜스럽다며 명성교회로 이동한 교인들도 있다. 광성교회에서 명성교회로 그리고 다시 성안교회로 이동한 교인들도 있다는 말이다.    이들 교인들에게 목회자는 상처를 주는 존재(?)다. 주님의 양을 잘 인도해야 할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교인들을 이동하게 만든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리고 일부 교인들은 신앙생활에 매력을 잃고 아직 출석은 하고 있으나 역동성을 상실한 교인들도 있다.    어느 교회는 목회 대물림으로, 어느 교회는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갈등으로 등등 이유도 다양하다.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회개해야 할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의 목회자들과 일반인의 사는 방식이 전혀 다를 바가 없어서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우리는 목회자의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적으로도 실력 있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이 시대는 더욱 그런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교회가 문제 집단으로 인식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광교회는 이명증서 없는 타 교인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교회의 사명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해서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지 타 교인이 이동해 부흥하는 곳이 참다운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성도들을 그만 실망시켜야 한다. 목회자들이 각성하고 회개할 것을 권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10-23
  • 개혁을 빙자한 자해는 멈춰야 한다
      종교개혁기념일은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95개 논제를 공포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면죄부 판매를 비판했고 교황의 권위보다는 오직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다. 오직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 이신칭의를 주장하여 종교 개혁을 시작한 역사적인 날이다.   종교개혁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선언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하는 운동의 결과가 기독교(개신교)의 시작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상은 어떠한가? 지난 18일 문재인대통령은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을 면담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어느 종교보다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기여했으며,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 6·25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대한민국의 재건,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기독교가 ‘평화의 사도’로 불리는 가톨릭 교황의 권위에 기대어 우리민족의 통일 염원을 부탁하고 있는 실정이다. 501년 전 루터가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며 교황보다 성경을 강조하며 개혁정신으로 탄생했던 기독교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북한동포의 자유와 신앙을 위해 헌신했던 기독교의 역할은 사라지고 한국교회는 세속화와 부패의 이미지로 덧칠되어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이러한 기독교의 영향력 상실과 사회적 이슈화의 배경에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교계 지도자들이 일반 언론을 통해 교회의 문제를 폭로하고 비판하면서 교회개혁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교회의 갱신을 요구하기보다 기독교의 치부를 드러내며 비판하기만에 열중하는 언론과 여론의 뭇매에 한국교회를 고스란히 내어주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제 새로워져야 한다. 교회의 문제는 교회에서 해결하는 것이 성경적인 방법이다. 교회 밖에서 교회를 비판할수록 타 종교는 반사이익을 얻고 기독교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의 불신만 초래하고 영향력을 실추시키는 개혁을 빙자한 자해는 멈춰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10-23
  • 비판을 위한 연대는 독이다
      한국교회가 반 기독교세력의 무차별적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일명 ‘가짜뉴스’로 촉발된 기독교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은 사실 여부를 떠나 기독교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다. 오늘날 난무하는 ‘가짜뉴스’란 프레임으로 기독교 전체를 부도덕한 단체로 몰아가려는 시도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기독교 이념과 반대되는 세력들은 자신들이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소수의 위치에 놓여 있거나 역량이 낮을 때 여론을 이용하여 세력을 모으고 기독교를 고립시키는데 앞장서 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하여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는 두 집단은 이슬람과 동성애 세력이다. 이들은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미지 조작에 열을 올린다.   실제로 자신들이 저지르는 부도덕성과 범죄성을 숨기고 선한 이미지를 부각시켜 국민적 동정론을 일으킨다. 현재 한국사회는 누구나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유토피아적 사상이 정의로 인식되고 있어 이를 반대하는 집단이나 세력은 적폐로 규정되어 사회적 탄압에 직면해야 한다.    문제는 기독교를 공격할 때 목표를 고립시키기 위해 이해관계가 같은 세력과 정치적인 연대를 하는데 상대편이 대결과 분열로 자멸할 때까지 지속적인 공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들 뿐 아니라 타 종교들도 반 기독교세력들을 규합하여 고도화된 언어 선동으로 기독교를 분열시키고 있다. 분열되어 싸우는 한쪽 편을 들면서 대외적으로는 기독교의 정상화를 위한 연대임을 외치지만 이들은 기독교 정상화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분열과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고 의도적으로 기독교와 상반되게 자신들의 이미지를 선하게 포장한다.   이처럼 반 기독교세력의 전략·전술은 지능적이다. 일반 국민들은 일부 기독교 단체, 혹은 목사 개인의 향한 비난을 기독교 전체로 확대시키는 선동에 상당수가 넘어가 부화뇌동하고 있다. 진정 한국교회를 위한 길이 어디인지 방향타를 잃은 배처럼 표류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더 이상 외부세력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10-17
  • 이 시대 일부 교회, 역기능 노출 심각
      마태복음서는 제도화된 교회에 특정화된 복음서다. ‘교회의 제도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의 직제가 완성된 시기로서 교회 내부의 구조적 발전을 뜻한다. 제도화를 통해 교회의 체계화와 모양새를 구비했다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기독교에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신앙의 진지함과 열심이 해이해졌다는 역기능도 있었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자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져 공황상태에 빠졌다. 기존에는 ‘박해받음’, ‘순교’라는 상황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증명해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구도자들은 신앙을 증명하고자 ‘봉쇄수도원’에 들어가 금욕 속에서 노동과 말씀, 기도에 증진했다. 그러나 산 아래의 교회는 비단 옷과 산해진미에 취해 가기 시작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는 40일 금식 후 사탄의 제의를 물리쳤다. 사탄은 풍요와 영광의 삶을 제의했다. 사탄은 떡 섭취·고공낙하·경배 받음으로 상징되는 물질·명예·권력을 제의했다.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다. 물질이 충족되면 명예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질서를 자기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권력을 염원하게 된다.   마귀의 첫 제안은 물질에 관한 것이다. 물질은 인간의 편리·안락·용이함을 담보한다. 물질적 토대가 너무 완벽하면 부대상황으로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이론적으로 배제된다.   둘째는 과시욕으로 대변되는 명예욕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물질을 충족하고 나면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대중적 확신을 받고 싶어 한다. 신자는 자신에 대한 인증 샷을 하나님께만 올리면 된다.   셋째, 인간의 최종적 욕망은 권력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섬김’을 제의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며 사셨다. 교회의 그릇됨은 개개인의 안이함과 신앙적 일탈이 조립되어 만들어 진다. 예수께서는 사탄이 제의한 물질·명예·권력이라는 것이 교회를 이루는 치명적 부품이 되지 않기를 촉구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10-17
  • 인사시스템의 강화로 바른 인물 천거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유은혜 후보를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로 임명했다. 새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우려한 대로 난항을 거듭했으며 야당이 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특정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통령은 유은혜 후보자를 임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과거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라 낯설지 않다.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청문회는 영어로 히어링(hearing)이지만 대체적으로 청문위원들의 공격과 추궁성 질문이 앞선다. 후보자의 정책 소신을 듣는 분위기가 아니다. 청문회장은 여야 정치공방의 장으로 변질된 지 이미 오래다. 시비가 될 법한 인사를 굳이 후보자로 낙점하는 인사검증의 침묵, 청문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후보자의 대범함,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풍파를 일으켜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유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점에 관해서는 “현재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에서 야당이 반대한 것이 일반 국민의 여론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임 유 장관은 위장전입에 아들 병역문제논란, 피감기관사무실 임대로 인한 갑질 논란, 남편 동업자의 비서관 채용 등 여러 가지 의혹을 받았다. 도덕성과 자질 문제가 지적되었다.   유 신임 장관은 문 정부 들어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없이 임명된 네 번째 국무위원이 되었다. 도덕성이 요구되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의혹과 범법행위가 사과 한마디로 넘어가는 일이 계속적으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바른 인재 발탁은 백년대계의 기본이다. 대통령은 앞으로라도 인사 시스템을 강화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도덕성을 갖춘 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8-10-1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