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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21대 대통령 보궐선거가 6월 3일로 정해졌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나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 우리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가 성경의 원리에 맞는지를 평소에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나랏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마6:10)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딤전2:2)을 위한 민주주의의 척도다. 올바른 선거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킴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가정치적 제도지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역사는 선거가 바꾼다.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부(富)를 키운다. 정의, 법치, 자유, 배려 등 사회의 미덕이 자라나는 토양도 결국 유권자가 가꾼다. 단순히 당선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 국가보다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해치는 현혹적 수사 등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본원리지만 다수결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수의 많음보다는 다양함 때문이다. 현혹적 구호에 매몰된 다수는 자칫 국가의 백년대계를 흔든다. 또한 공명한 선거는 또 하나의 과제다. 자유 보통 비밀 직접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지만 우리는 6·3대선을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기 때문에 기독인들의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은 국가와 가정,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태어날 때 한 가정에 속하게 되며 동시에 한 국가에 속한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굴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지만 육신이 사는 동안에는 국가의 법과 제도와 관원들을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대선 후보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방법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살펴봐야 하겠다.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올바른 투표밖에 없다. 이념과 우상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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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2025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4월 2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올해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오전 인천 제물포항에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공식 입항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가 시작된 지 140주년을 맞는 해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담아, 한국 71개 교단과 전국 17개 지역 기독교연합회도 동일한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 정신을 되세겼다. 부활절(復活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 3일째 되는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최대 축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절기로서 관습화되고 형식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교회사에서 부활절이 언제냐는 문제를 두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간의 논쟁이 계속되다가 서기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춘분이 지난 뒤 최초의 보름달이 지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나 부활의 의미가 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짜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인12월 25일은 예수님 탄생하신 날과는 상관없는 날이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달력으로 니산월 정월 14일,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에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달력 니산월 14일의 3일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양력으로는 3월 하순에서 4월 초에 항상 연결이 된다. 그래서 이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가 확실하다. 바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그러는데 그 의미는 ‘확 튀어 오른다’ 즉 봄에는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SPRING'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그 부활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만큼 확실한 사실이기에 이를 증거 해야 한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이 믿는 모든 것이 허사(虛事)가 된다. 우리의 구원도 헛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역대의 모든 사람들의 삶도 헛것이 된다(고전15:17-19).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있었고, 그분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의 행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이 잡힐 당시 뿔뿔이 도망치던 그 비겁자들이 부활을 직접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믿음을 일상화해야 한다. 우리는부활절을 맞아 절기로서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 안에서 ‘하나 됨’으로 많은 영혼들이 부활을 체험하여 부활의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세상에 증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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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돌봄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자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심각한 상황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하 상황에서 기독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란 성경말씀을 기억하고 출산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성도들에게 출산을 하는 것을 권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람들이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을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아동돌봄이다. 이러한 아동돌봄에 교회가 앞장을 서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사역에 동참을 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학교 후부터 부모들의 퇴근까지의 돌봄공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자식들을 학원으로 보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2021년에 발표된 교회의 돌봄사역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둘째 출산 계획이 없는 워킹맘 중 41%가 돌봄 문제가 해결된다면 둘째 출산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교회가 아동돌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큰 이유이다.동일한 조사에서 교회 운영의 돌봄기관 이용 의향률을 보면 기독교인 어머니는 84%가 의향률을 밝혔다. 그리고 비기독교인 어머니도 29%가 이용을 원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교회가 이러한 사역을 해야할 필요성이 보인다. 꼭 출산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회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섬길 필요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야 한다. 또 많은 성도와 시민들이 이러한 부분에 필요를 느낀다. 교회가 이러한 필요를 체움으로써 사랑을 흘려내보낼 필요가 절실하다. 위 조사에서 돌봄 사역을 하지 않는 목회자 중 앞으로 돌봄 사역을 할 의향이 있는 목회자는 74%에 달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돌봄사역에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돌봄사역은 작은교회부터 큰교회까지 모든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이다. 한국교회가 돌봄사역을 하기 원하는 교회들이 사역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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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피해 복구에 교회가 힘을 모으자.
경북 의성과 안동 등 경상권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이 빠르게 인근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그 피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3.28 06시 기준 사망 28명, 중경상 6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주택 117동을 포함한 시설물 3481곳과 이재민은 2407가구 8079명에 이르고 있으며 산림 4만8150ha의 피해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행안부는 이재민들이 재난트라우마로 불안해 하지 않도록 심리회복 지원도 적극 실시하고 있으며, 구호협회 등 민간단체는 기부금 모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매년 우리나라는 연평균(15-24년)546건의 산불이 발생하여 4,003ha의 산림이 소실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후변화 등의 원인으로 전 세계적으로 초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여 산불이 범국제적인 재난으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산불은 큰 피해에 비해 원인은 사소한 부주의로 발생하고 있으므로 사전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일 것이다. 대형산불 등 큰 재난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하는 일이니만큼 정치권은 당리당략적 시각보다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협조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생명과 안전과 직결되는 재난 상황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교회도 예외일 수 없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복구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난의 극복은 정치인이나 특정인들의 가시적인 보여주는 복구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나서야 되는 상황이다. 다행스럽게 우리 국민은 위기 앞에 강한 민족적인 저력이 있다. 그러나 현실이 너무 어렵다. 정치적 갈등이 심화된 속에서 경제적인 위기까지 겹치고 있다. 우리는 7년의 임진왜란, 36년의 일제강점, 6.25의 폐허는 물론 금모우기운동 등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나라를 바로 세웠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견인했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재난은 우연한 것이 아님을 믿고 있다.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주관하에있기 때문이다.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란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대하20:9). 우리가 재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재난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이자 경고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그의 선한 뜻을 이루는 역사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임을 깨닫고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경고하는 목적은 재난에 앞서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며, 재난 중에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가 앞장서서 이 재난을 극복하는데 ‘사랑의 행함’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교회마다 긴급재난이 발생할 경우 특별한 절차 없이 바로 집행할 수 있는 재정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때에 한국교회는 피해지역 교회들은 몰론 일반 재해민들에게 숙소와 식자재를 지원하는 등 이재민을 위한 사역을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힘을 모아 ‘고난과 함께하는 교회’가 됨으로써 이 땅에 복음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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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갈등 조정자의 역할을 감당하자
지난해 12월 3일 있었던 윤석열대통령의 계엄선포 이후로 한국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도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분열을 멈추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로 나가야한다. 예수님은 팔복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히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로마서 12장 18절도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말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과 19절에서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화평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화평함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화목하게 하는 조정자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상임대표이자 기독교학술원 원장인 김영한박사도 이러한 사실을 잘 지적하고 있다. 김박사는 ”우리 뜻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기독교는 사회혼란을 부추기기보다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교회가 사회적 갈등을 키우기보다는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분열로 인한 피로도가 상당하다. 특히 상대진영을 악마화하는 모습이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타파하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화목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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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기간 ‘십자가의 도’를 실천하자.
사순절(四旬節, Lent)기간이란 2025년 4월 20일 부활절로 부터 46일 전의 기간으로서 주일을 제외한 40일간(四旬)에 십자가의 고난을 체험하는 시간을 말한다. 그 의미는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훈련의 시기이며,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로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사순절기간을 지키는 문제를 두고 찬•반의 양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순절을 거룩하게 지켜야 된다는 찬성측은 모든 교회의 오래된 일반적인 관행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반대측은 주로 미국의 거듭난 복음주의자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체험은 일정기간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일상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순절 기간을 특별하게 지키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사순절 기간이라도 ‘십자가의 도’(고전1:18)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영적성장을 지키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세상 끝날까지 전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책망하며 교회의 설립과 통합의 유일한 기반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그들의 결여된 영적 분별력으로 인해 미련한 것으로 취급되는 반면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이중성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지혜로 된 절대 유일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언제나 분열과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든지 단점과 실수와 잘못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지나치게 믿거나 따르지 말고, 오직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중심으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의 뜻을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십자가에 못 박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라가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하며 그것이 곧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자기 계획, 자기주장, 자기 고집, 자기 욕망, 자기 의지, 자기 이상, 자기 행복을 버려야 비로소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껍데기일 뿐이고 주인은 주님이다. 또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말하는데, 육신을 부인해야 비로소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숙은 사순절뿐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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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21대 대통령 보궐선거가 6월 3일로 정해졌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나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 우리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가 성경의 원리에 맞는지를 평소에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나랏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마6:10)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딤전2:2)을 위한 민주주의의 척도다. 올바른 선거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킴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가정치적 제도지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역사는 선거가 바꾼다.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부(富)를 키운다. 정의, 법치, 자유, 배려 등 사회의 미덕이 자라나는 토양도 결국 유권자가 가꾼다. 단순히 당선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 국가보다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해치는 현혹적 수사 등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본원리지만 다수결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수의 많음보다는 다양함 때문이다. 현혹적 구호에 매몰된 다수는 자칫 국가의 백년대계를 흔든다. 또한 공명한 선거는 또 하나의 과제다. 자유 보통 비밀 직접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지만 우리는 6·3대선을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기 때문에 기독인들의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은 국가와 가정,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태어날 때 한 가정에 속하게 되며 동시에 한 국가에 속한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굴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지만 육신이 사는 동안에는 국가의 법과 제도와 관원들을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대선 후보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방법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살펴봐야 하겠다.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올바른 투표밖에 없다. 이념과 우상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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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 ‘2025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4월 2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올해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오전 인천 제물포항에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공식 입항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가 시작된 지 140주년을 맞는 해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담아, 한국 71개 교단과 전국 17개 지역 기독교연합회도 동일한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 정신을 되세겼다. 부활절(復活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 3일째 되는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최대 축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절기로서 관습화되고 형식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교회사에서 부활절이 언제냐는 문제를 두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간의 논쟁이 계속되다가 서기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춘분이 지난 뒤 최초의 보름달이 지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나 부활의 의미가 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짜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인12월 25일은 예수님 탄생하신 날과는 상관없는 날이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달력으로 니산월 정월 14일,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에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달력 니산월 14일의 3일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양력으로는 3월 하순에서 4월 초에 항상 연결이 된다. 그래서 이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가 확실하다. 바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그러는데 그 의미는 ‘확 튀어 오른다’ 즉 봄에는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SPRING'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그 부활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만큼 확실한 사실이기에 이를 증거 해야 한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이 믿는 모든 것이 허사(虛事)가 된다. 우리의 구원도 헛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역대의 모든 사람들의 삶도 헛것이 된다(고전15:17-19).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있었고, 그분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의 행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이 잡힐 당시 뿔뿔이 도망치던 그 비겁자들이 부활을 직접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믿음을 일상화해야 한다. 우리는부활절을 맞아 절기로서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 안에서 ‘하나 됨’으로 많은 영혼들이 부활을 체험하여 부활의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세상에 증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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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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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돌봄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자
-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심각한 상황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하 상황에서 기독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란 성경말씀을 기억하고 출산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성도들에게 출산을 하는 것을 권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람들이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을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아동돌봄이다. 이러한 아동돌봄에 교회가 앞장을 서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사역에 동참을 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학교 후부터 부모들의 퇴근까지의 돌봄공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자식들을 학원으로 보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2021년에 발표된 교회의 돌봄사역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둘째 출산 계획이 없는 워킹맘 중 41%가 돌봄 문제가 해결된다면 둘째 출산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교회가 아동돌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큰 이유이다.동일한 조사에서 교회 운영의 돌봄기관 이용 의향률을 보면 기독교인 어머니는 84%가 의향률을 밝혔다. 그리고 비기독교인 어머니도 29%가 이용을 원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교회가 이러한 사역을 해야할 필요성이 보인다. 꼭 출산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회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섬길 필요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야 한다. 또 많은 성도와 시민들이 이러한 부분에 필요를 느낀다. 교회가 이러한 필요를 체움으로써 사랑을 흘려내보낼 필요가 절실하다. 위 조사에서 돌봄 사역을 하지 않는 목회자 중 앞으로 돌봄 사역을 할 의향이 있는 목회자는 74%에 달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돌봄사역에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돌봄사역은 작은교회부터 큰교회까지 모든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이다. 한국교회가 돌봄사역을 하기 원하는 교회들이 사역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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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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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돌봄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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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피해 복구에 교회가 힘을 모으자.
- 경북 의성과 안동 등 경상권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이 빠르게 인근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그 피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3.28 06시 기준 사망 28명, 중경상 6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주택 117동을 포함한 시설물 3481곳과 이재민은 2407가구 8079명에 이르고 있으며 산림 4만8150ha의 피해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행안부는 이재민들이 재난트라우마로 불안해 하지 않도록 심리회복 지원도 적극 실시하고 있으며, 구호협회 등 민간단체는 기부금 모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매년 우리나라는 연평균(15-24년)546건의 산불이 발생하여 4,003ha의 산림이 소실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후변화 등의 원인으로 전 세계적으로 초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여 산불이 범국제적인 재난으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산불은 큰 피해에 비해 원인은 사소한 부주의로 발생하고 있으므로 사전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일 것이다. 대형산불 등 큰 재난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하는 일이니만큼 정치권은 당리당략적 시각보다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협조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생명과 안전과 직결되는 재난 상황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교회도 예외일 수 없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복구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난의 극복은 정치인이나 특정인들의 가시적인 보여주는 복구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나서야 되는 상황이다. 다행스럽게 우리 국민은 위기 앞에 강한 민족적인 저력이 있다. 그러나 현실이 너무 어렵다. 정치적 갈등이 심화된 속에서 경제적인 위기까지 겹치고 있다. 우리는 7년의 임진왜란, 36년의 일제강점, 6.25의 폐허는 물론 금모우기운동 등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나라를 바로 세웠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견인했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재난은 우연한 것이 아님을 믿고 있다.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주관하에있기 때문이다.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란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대하20:9). 우리가 재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재난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이자 경고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그의 선한 뜻을 이루는 역사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임을 깨닫고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경고하는 목적은 재난에 앞서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며, 재난 중에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가 앞장서서 이 재난을 극복하는데 ‘사랑의 행함’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교회마다 긴급재난이 발생할 경우 특별한 절차 없이 바로 집행할 수 있는 재정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때에 한국교회는 피해지역 교회들은 몰론 일반 재해민들에게 숙소와 식자재를 지원하는 등 이재민을 위한 사역을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힘을 모아 ‘고난과 함께하는 교회’가 됨으로써 이 땅에 복음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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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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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피해 복구에 교회가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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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갈등 조정자의 역할을 감당하자
- 지난해 12월 3일 있었던 윤석열대통령의 계엄선포 이후로 한국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도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분열을 멈추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로 나가야한다. 예수님은 팔복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히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로마서 12장 18절도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말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과 19절에서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화평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화평함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화목하게 하는 조정자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상임대표이자 기독교학술원 원장인 김영한박사도 이러한 사실을 잘 지적하고 있다. 김박사는 ”우리 뜻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기독교는 사회혼란을 부추기기보다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교회가 사회적 갈등을 키우기보다는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분열로 인한 피로도가 상당하다. 특히 상대진영을 악마화하는 모습이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타파하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화목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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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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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갈등 조정자의 역할을 감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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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기간 ‘십자가의 도’를 실천하자.
- 사순절(四旬節, Lent)기간이란 2025년 4월 20일 부활절로 부터 46일 전의 기간으로서 주일을 제외한 40일간(四旬)에 십자가의 고난을 체험하는 시간을 말한다. 그 의미는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훈련의 시기이며,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로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사순절기간을 지키는 문제를 두고 찬•반의 양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순절을 거룩하게 지켜야 된다는 찬성측은 모든 교회의 오래된 일반적인 관행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반대측은 주로 미국의 거듭난 복음주의자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체험은 일정기간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일상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순절 기간을 특별하게 지키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사순절 기간이라도 ‘십자가의 도’(고전1:18)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영적성장을 지키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세상 끝날까지 전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책망하며 교회의 설립과 통합의 유일한 기반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그들의 결여된 영적 분별력으로 인해 미련한 것으로 취급되는 반면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이중성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지혜로 된 절대 유일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언제나 분열과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든지 단점과 실수와 잘못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지나치게 믿거나 따르지 말고, 오직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중심으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의 뜻을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십자가에 못 박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라가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하며 그것이 곧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자기 계획, 자기주장, 자기 고집, 자기 욕망, 자기 의지, 자기 이상, 자기 행복을 버려야 비로소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껍데기일 뿐이고 주인은 주님이다. 또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말하는데, 육신을 부인해야 비로소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숙은 사순절뿐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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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 파괴하는 ‘인권’은 없다
-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 많은 여성들이 모였다. 이들은 남성이 피해자인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몰래카메라)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편파적이라고 성토하면서 대다수의 몰카 범죄가 피해자인 여성의 인권을 위협하고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남성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여 유포한 악질적 사건임이 분명함에도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관용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틈타 거리에 나와 가해자인 여성이 마치 피해자인양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여성인권이 억압받던 시대에 인권향상을 위해 시작됐던 페미니즘은 이제 여성우월주의로 변질되어 남성을 적으로 인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들 여성들 중 일부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자신이 낳은 아들까지도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저주하고 비난하고 있다. 인권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도 서울 시청에서 개최예정인 퀴어축제도 성소수자 인권보호란 명분으로 에이즈 확산과 성병감염 등 추악한 진실을 숨긴채 사회적 약자로 위장하여 우리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 비위생적인 성교로 인해 감염의 위험성이 급증하고 이로 인한 에이즈환자 치료비로 한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지출됨에도 이를 인권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이 파괴되면 우리사회의 근간이 흔들림에도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을 답습하듯 성적 문란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인권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평등 등의 기본적 권리’란 뜻이다. 여성우월주의와 동성애는 본질적인 인권회복이 목표가 아니다. 이들의 목표는 전통적 가정의 해체이며,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섭리를 파괴하는 것이 인권일리 없다. 한국교회도 이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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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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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 파괴하는 ‘인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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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처절함, 깊은 교훈으로 삼아야
- 처절한 죽음을 그대로 보여준 피(血)의 역사가 흐르는 강이 있다. 금강산에서 발원해 휴전선을 넘고 강원도 양구. 화천 평화의 댐과 한국 전쟁 때 국군이 중공군을 대파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던 인공호수인 파로호를 거쳐 경기도 남양주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북한강이 바로 피의 역사가 흐르는 강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화천의 북한강은 아군과 적군의 피가 폭포수처럼 흐르던 강이었다. 지난 6월 6일은 호국 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현충일이지만 아쉽게도 이날이 한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호국 영령들을 기억하는 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현충일의 의미가 우리 가슴에서 지워지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이 잠든 현충원에는 가 보았는가? 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신을 갖고 있는 지도자와 백성들이 있어야 한다. 6.25 전쟁은 안으로는 민족분단을 더욱 고착시키고, 밖으로는 동. 서양 진영 냉전을 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6.25 전쟁은 결국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원인으로 분단되었기 때문에, 분단국가의 어느 한 쪽 세력이 주도해 한반도 지역 전체를 무력으로 통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왜 우리는 한국 전쟁이 일어 난지 반세기가 흘러갔는데도 6.25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가. 그것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일 뿐만 아니라 같은 민족끼리 비극적인 아픔과 상처를 남겼기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이어 북미정상회담도 이뤄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민족이다. 북한의 만행은 용서하되 그 상처는 잊지 말아야 한다. 6월 한 달 만이라도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나라를 지키다 세상을 떠난 선조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돕는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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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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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처절함, 깊은 교훈으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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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중립 지대’로 남겨둬야 한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것”이라고 밝히고,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유혈충돌이 벌어졌고, 여전히 그 재발 가능성이 계속 고조되고 있다. UN은 지난 1947년에 ‘결의 제181호’를 발효하면서 “예루살렘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 특별 관리지역’으로 설정한다”는 선언을 했다. 즉 여러 민족의 공존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지난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아랍 국가 및 유대 국가로 강제 분할하면서도 예루살렘만은 국제법에 따라 ‘중립 지대’로 남겨둔 것이다. 그런데 이 국제법을 무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 이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들을 더 괴롭히고 있어서 오늘 이 시간 지구 반대편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무 잘못 없이 무고하게 죽어 가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2천 년 전, 식민지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 제국주의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친 유대인들의 잔혹한 모습이 떠오른다. 유대인 자기들만 선민이고, 구약시대 가나안땅을 되찾겠다고 하는데, 구약에서 자기들만 선민이라고 한 적이 없다. 성경 곡해다. 출애굽 당시 “중다한 잡족”이 나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선민의식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택정하심은 특혜가 아니라 특권이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섬기고, 봉사하며,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의무 말이다. 그런데 큰 문제는 구약과 연속성을 견지하면서 비연속성을 선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인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이 공공연히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들 유대인들과 달리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되찾아야 한다.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기독교의 유대교적 극우성을 보게 돼 실망하면 한국교회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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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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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중립 지대’로 남겨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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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를 취하는 기독교가 되자
-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종교별로 자신들의 종교적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기독교는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앞장서서 각 정당에 제기하는 등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실질적 로비를 통해 실리를 취하는 타종교에 비해 실질적 이득은 미비한 상황이다. 그 동안 불교와 천주교에 비해 기독교는 고질적인 분열의 핸디캡으로 인해 정치적 이슈에 대해 상대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불교의 경우 정부의 종교문화재 지원금을 비롯해 다양한 정부지원을 통해 실리를 취하고 있고, 천주교도 시민단체 조직을 통한 정치권 로비와 단일화된 움직임을 통해 20대 국회의원 4명중 1명이 천주교 신자로 확인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정치권이 기독교에 비해 타종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문제점을 일부나마 해소하고자 역할을 맡았던 기독교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각 정당은 립서비스 수준의 대응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문제는 기독교의 경우 개교회주의 와 분열로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책을 관철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국책사업 지원을 통해 교세를 늘리는 불교와 시민단체 등을 통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천주교에 비해 기독교는 항상 손가락만 빨고 있다. 이번에 각 정당에 제기된 8가지 질문은 저출산문제와 근대문화 특별위 구성, 반사회적 사이비 집단의 문제, 자살예방 및 낙태반대, 중독예방과 치료, 사랑이 넘치는 청정시군 만들기, 맑고 깨끗한 환경을 위해, 동성애 보호조장 인권조례 등이라고 한다. 이조차도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질문들이 기독교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 지원과는 거리가 있다. 기독교가 정부로부터 물질적 정치적 지원을 받고, 나아가 사회적 인식의 변화까지 이끌어내기 위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 종교의 경우 상대종교를 연구하고 분석하여 공격하는 연구원도 존재하는 반면 기독교는 이에 대한 대응과 인식자체가 전무하다. 내부의 분열로 인해 외부공격에 면역력을 잃은 기독교의 변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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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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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를 취하는 기독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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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 보전위해 교회가 나서자
- 최근 심해지는 황사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문제가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되는 등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1972년 유엔은 ‘인간환경선언’을 발표하면서 6월 5일을 ‘세계 환경의 날’로 정했다. 한국교회는 1984년부터 6월 첫째 주를 환경주일로 정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보전을 다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1992년부터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회원 교단 전체가 환경주일을 함께 지키며, 공동 예배순서와 공동 설교문, 환경현안 해설자료 등의 내용을 담은 환경주일 예배자료집을 전국 교회에 배포하고, 연합예배와 기념행사를 갖고 있는 등 교회차원의 환경교육에 대한 중요성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특히 교회와 일부 환경단체들이 시행중인 어린이 및 청소년 환경동아리는 미래세대의 환경체험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기독교 환경단체가 촉구하고 있는 녹색교회는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교회 녹화, 초록 가게, 지구온난화 억제를 위한 실천, 생명밥상 빈 그릇 실천, 햇빛발전소 설치, 친환경 조명 십자가 등 교회의 녹색실천에 앞장서는 구체적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또 교회의 예배, 교육, 봉사, 운영 등 교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에서 창조질서 보전을 실천하는 교회로 변화할 것을 촉구한다. 오늘날 대기오염을 비롯한 환경문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인간이 파괴하며 일어난 재난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일을 멈추고 절제와 지혜로운 활용을 통해 삶에서 주님의 질서를 보존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교회와 사회에서 적극 실천하는 캠페인도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이러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다시금 되새기며 생명을 다시 살리는 목회를 추구하는 모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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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 보전위해 교회가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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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상생, 평화는 시대적 요청
- 평화를 갈망했던 이 땅에 그 어느 때 보다 평화와 통일로 가는 문이 가까워 보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또다시 만나 2시간가량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의지를 재확인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역사와 많은 부분에 있어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 갔던 것처럼, 또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뉜 것처럼 현재 우리도 분단 체제의 포로로 잡혀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회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도 끊임없이 죄악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셨다. 지금의 남북한 관계에서도 ‘진정한 회개’라는 의미를 역사를 통해 엿 볼 수 있다. 70년 이상 통일의 문을 걸어 잠근 상태에서 자물쇠를 여는 열쇠는 한국교회가 짊어져야 할 의무이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을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심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영역에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대북관의 차이로 인한 남남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세속적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북한을 볼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셋째로 법적·제도적 장치를 통해 개인 혹은 단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범 교단적으로 일관성 있는 북한선교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통일이 멀리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통일 이전에 준비해야 될 것이 있다. 바로 통일을 대비한 ‘올바른 조직과 선교사’이다. 통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범 교단적 명령체계를 만들고 거기서 올바른 신앙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력자인 선교사가 그 대안이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복음적 평화통일만이 답이라는 기준이 분명히 있어야 하며, 또한 극심한 좌우의 대립 속에 복음적 평화통일을 향한 방향성만이 견고한 이념의 진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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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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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상생, 평화는 시대적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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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호국의 달, 감사의 마음 가져야
- 다가올 6월은 호국의 달, 순국선열의 뜻을 기리는 달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현충일과 호국의 달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 우리는 이 땅을 지키고 수호한 조상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충원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 순국선열, 순직 군인, 공무원, 경찰관 등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때때로 이곳의 묘비는 떠나간 이들에게 한(恨)이 맺힌 마음을 전하는 게시판이 되기도 한다. 가장을 잃은 아내와 자녀, 아들을 잃은 노부모가 먼저 간 혈육을 그리워하며 갖가지 사연이 담긴 편지나 쪽지를 남기기도 한다. 좌우로 질서정연하게 정렬되어 있는 묘역을 지나다보면 수많은 묘비 사이에 홀로 자식의 묘비 앞에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현충원에 가면 무명용사의 탑을 볼 수 있다. 그 무명용사의 탑이야말로 가히 현충원의 백미(白眉)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새벽녘 잠깐 풀잎에 내려앉았다가 해 뜰 무렵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아침이슬 같은 용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지만 아직도 북녘 땅 어딘가에 묻혀 조국의 가족을 그리워 할 순국선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현충탑에 위패로만 있는 전사자만도 4만여 위에 달한다. 우리 산 자들이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만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조국을 위해 피 끓는 청춘을 조국에 바쳤던 순국선열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대한민국 어느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와 형제, 그리고 아들, 딸들이 이 거룩한 땅을 지키기 위해 초개같은 목숨을 조국에 바쳤다. 이제 2018년 호국의 달을 앞두고 우리 모두가 “나라가 비록 평온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명언을 가슴 속 깊이, 새기야 한다. 힘이 있어야 평화도 지킬 수 있다. 튼튼한 안보의식과 보훈정신으로 온 국민이 똘똘 뭉쳐 하나가 될 때 더 이상 희생과 아픔이 없는 자유롭고 영광된 자유 민주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을 목숨으로 지킨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마음으로 모두가 국가안위를 먼저 생각하며 후손들에게 선열들의 피로 이루어놓은 자유와 민주의 나라를 물려주어야 한다. 자유 대한민국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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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호국의 달, 감사의 마음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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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은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입영거부자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부산지법 서부지원이 병역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A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것에 반해 수원지법은 마찬가지로 종교를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B씨 등 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남부지법의 판결이후 83~86번째 무죄판결로 알려진 이번 판결로 인해 병역에 대한 국민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정 종교를 이유로 병역을 면탈하려는 시도가 만연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그동안 자칭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일관되게 유죄로 판단하고 있는 대법원의 결정이 사회적 분위기가 변함에 따라 바뀔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병무청에 따르면 매년 5백여명 내외의 입영거부자들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고 밝히고 있다. 그들은 입영과 집총거부를 주장하고 있으며 교리에 따라 이를 신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군대는 싸우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고 가는 곳이다. 무죄판결에 대해 종교적 특혜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판결이 계속 나올 경우 국민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20대 청년들은 병역면제를 위해 여호와의 증인에 가입하려고 줄을 설 것이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 의무가 특정종교의 확산을 도와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비판적임에도 불구하고 병역의무에 대한 예외를 허용될 경우 사회적으로 의무이행의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특정 종교가 병역 면탈의 도구로 이용될 경우 사회 통합이 저해 될 것이고 국가 전체의 역량에 심각한 손상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개병 제도에 바탕을 둔 병역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기독교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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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은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