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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제안에 힘쓰자
디가오는 6월 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 기독교단체들이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을 제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경우는 2012년 치려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이러한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는 한국교회총연합과 함께 10대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큐메니컬 성향의 단체에서도 기독교대선행동이라는 단체를 출범하면서 탄소중립 구현과 한반도 평화협정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정치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책무 중 하나이다. 기독교적인 정책을 정치인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 나라에 기독교세계관을 반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은 기독교인뿐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초저출산 극복정책으로 아동돌봄청을 신설해야한다고 했으며 이외에도 재난상황을 대비한 민관위기 관리시스탬 구축과 유사종교 피해방지를 위한 법률제정 등의 정책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저출산 문제의 경우 국가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며, 재난상황의 극복또한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사실이다. 유사종교로 인해 피해를 보는 시민들을 구제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들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유익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같은 악법반대 운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이제는 악법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좋은 법안과 정책등을 제시할 때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그러한 법안과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이러한 정책제안의 시간이 이번 선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편화가 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해 모든 시민이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과 법안을 제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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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사역에 매진하자.
한국교회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함께 어린이 주일을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1880년부터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하여 '꽃주일'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정환, 마해송 등의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 주일이라는 절기도 성경에는 없지만 어린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주일로 지켜지고 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에 대한 특별한 가르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잠22:6)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회초리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회초리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 그리고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에게 안식을 주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 이것은 교회는 물론 부모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따라서 교회는 어린이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디모데의 믿음과 유산을 가르치는 사역이 되도록 하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에 속에 있더니 네 속에 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디모데가 아들이 아니지만, 디모데가 신앙 성장의 합당한 인격을 갖추는데 바울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딤전1:2)이라고 부르고 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이 전수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올바른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디모데의 가정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정은 신앙 교육의 장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차 기관이며 교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하나님의 진리로 양육하는 근본적인 책임은 가정에 있으며 교회 교육과 학교 또는 세속 사회의 교육 간에 생기는 갈등을 신앙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참된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신앙으로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복음 전파 사역과 유업을 물려주는 일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다(신6:4-9).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참믿음을 가진 차세대에 대한 교육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을 한 번 지키고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의 출발로서 교회학교의 전문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행함으로써 ‘믿음’의 사역이 부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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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기혼 연대하는 공동체를 세우자
작년 기준, 만 19~34세 청년 5명 중 4명이 미혼으로, 미혼율이 80%를 넘었다는 통계는 한국 사회의 결혼·가정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현실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3년 조사에서 전체 기독교인 중 미혼 비율은 40.5%에 달했다. 교회 내 싱글 신자들의 수와 연령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이제 뚜렷한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부담, 주거난,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결혼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전통적 가정 중심의 사역과 인식에서 벗어나, 미혼 신자들을 적극적으로 품고 새로운 공동체의 길을 모색해야 함을 시사한다. 교회는 미혼을 ‘문제’로 여기거나, 결혼만이 신앙적 성숙의 완성이라는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강조했듯, 결혼과 미혼 모두 각자의 소명과 가치를 지닌 삶의 방식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혼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은사와 삶을 온전히 나누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혼 성도들이 주체적으로 신앙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 멘토링, 사역의 기회를 확대하고, 결혼과 출산만을 강조하는 지원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포용적 사역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는 ‘올바른 가정’의 기준을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로 한정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는 공동체로 확장해야 한다. 부부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미혼·기혼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더 본질적인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교회가 미혼의 삶 역시 신앙 안에서 의미 있고,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며, 다양한 가족과 1인 가구를 포용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진정한 연합과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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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21대 대통령 보궐선거가 6월 3일로 정해졌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나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 우리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가 성경의 원리에 맞는지를 평소에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나랏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마6:10)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딤전2:2)을 위한 민주주의의 척도다. 올바른 선거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킴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가정치적 제도지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역사는 선거가 바꾼다.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부(富)를 키운다. 정의, 법치, 자유, 배려 등 사회의 미덕이 자라나는 토양도 결국 유권자가 가꾼다. 단순히 당선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 국가보다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해치는 현혹적 수사 등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본원리지만 다수결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수의 많음보다는 다양함 때문이다. 현혹적 구호에 매몰된 다수는 자칫 국가의 백년대계를 흔든다. 또한 공명한 선거는 또 하나의 과제다. 자유 보통 비밀 직접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지만 우리는 6·3대선을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기 때문에 기독인들의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은 국가와 가정,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태어날 때 한 가정에 속하게 되며 동시에 한 국가에 속한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굴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지만 육신이 사는 동안에는 국가의 법과 제도와 관원들을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대선 후보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방법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살펴봐야 하겠다.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올바른 투표밖에 없다. 이념과 우상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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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2025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4월 2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올해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오전 인천 제물포항에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공식 입항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가 시작된 지 140주년을 맞는 해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담아, 한국 71개 교단과 전국 17개 지역 기독교연합회도 동일한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 정신을 되세겼다. 부활절(復活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 3일째 되는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최대 축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절기로서 관습화되고 형식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교회사에서 부활절이 언제냐는 문제를 두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간의 논쟁이 계속되다가 서기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춘분이 지난 뒤 최초의 보름달이 지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나 부활의 의미가 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짜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인12월 25일은 예수님 탄생하신 날과는 상관없는 날이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달력으로 니산월 정월 14일,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에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달력 니산월 14일의 3일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양력으로는 3월 하순에서 4월 초에 항상 연결이 된다. 그래서 이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가 확실하다. 바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그러는데 그 의미는 ‘확 튀어 오른다’ 즉 봄에는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SPRING'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그 부활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만큼 확실한 사실이기에 이를 증거 해야 한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이 믿는 모든 것이 허사(虛事)가 된다. 우리의 구원도 헛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역대의 모든 사람들의 삶도 헛것이 된다(고전15:17-19).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있었고, 그분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의 행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이 잡힐 당시 뿔뿔이 도망치던 그 비겁자들이 부활을 직접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믿음을 일상화해야 한다. 우리는부활절을 맞아 절기로서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 안에서 ‘하나 됨’으로 많은 영혼들이 부활을 체험하여 부활의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세상에 증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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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돌봄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자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심각한 상황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하 상황에서 기독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란 성경말씀을 기억하고 출산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성도들에게 출산을 하는 것을 권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람들이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을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아동돌봄이다. 이러한 아동돌봄에 교회가 앞장을 서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사역에 동참을 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학교 후부터 부모들의 퇴근까지의 돌봄공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자식들을 학원으로 보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2021년에 발표된 교회의 돌봄사역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둘째 출산 계획이 없는 워킹맘 중 41%가 돌봄 문제가 해결된다면 둘째 출산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교회가 아동돌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큰 이유이다.동일한 조사에서 교회 운영의 돌봄기관 이용 의향률을 보면 기독교인 어머니는 84%가 의향률을 밝혔다. 그리고 비기독교인 어머니도 29%가 이용을 원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교회가 이러한 사역을 해야할 필요성이 보인다. 꼭 출산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회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섬길 필요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야 한다. 또 많은 성도와 시민들이 이러한 부분에 필요를 느낀다. 교회가 이러한 필요를 체움으로써 사랑을 흘려내보낼 필요가 절실하다. 위 조사에서 돌봄 사역을 하지 않는 목회자 중 앞으로 돌봄 사역을 할 의향이 있는 목회자는 74%에 달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돌봄사역에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돌봄사역은 작은교회부터 큰교회까지 모든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이다. 한국교회가 돌봄사역을 하기 원하는 교회들이 사역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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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제안에 힘쓰자
- 디가오는 6월 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 기독교단체들이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을 제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경우는 2012년 치려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이러한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는 한국교회총연합과 함께 10대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큐메니컬 성향의 단체에서도 기독교대선행동이라는 단체를 출범하면서 탄소중립 구현과 한반도 평화협정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정치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책무 중 하나이다. 기독교적인 정책을 정치인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 나라에 기독교세계관을 반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은 기독교인뿐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초저출산 극복정책으로 아동돌봄청을 신설해야한다고 했으며 이외에도 재난상황을 대비한 민관위기 관리시스탬 구축과 유사종교 피해방지를 위한 법률제정 등의 정책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저출산 문제의 경우 국가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며, 재난상황의 극복또한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사실이다. 유사종교로 인해 피해를 보는 시민들을 구제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들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유익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같은 악법반대 운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이제는 악법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좋은 법안과 정책등을 제시할 때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그러한 법안과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이러한 정책제안의 시간이 이번 선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편화가 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해 모든 시민이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과 법안을 제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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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제안에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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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사역에 매진하자.
- 한국교회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함께 어린이 주일을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1880년부터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하여 '꽃주일'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정환, 마해송 등의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 주일이라는 절기도 성경에는 없지만 어린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주일로 지켜지고 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에 대한 특별한 가르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잠22:6)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회초리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회초리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 그리고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에게 안식을 주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 이것은 교회는 물론 부모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따라서 교회는 어린이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디모데의 믿음과 유산을 가르치는 사역이 되도록 하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에 속에 있더니 네 속에 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디모데가 아들이 아니지만, 디모데가 신앙 성장의 합당한 인격을 갖추는데 바울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딤전1:2)이라고 부르고 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이 전수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올바른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디모데의 가정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정은 신앙 교육의 장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차 기관이며 교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하나님의 진리로 양육하는 근본적인 책임은 가정에 있으며 교회 교육과 학교 또는 세속 사회의 교육 간에 생기는 갈등을 신앙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참된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신앙으로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복음 전파 사역과 유업을 물려주는 일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다(신6:4-9).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참믿음을 가진 차세대에 대한 교육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을 한 번 지키고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의 출발로서 교회학교의 전문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행함으로써 ‘믿음’의 사역이 부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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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사역에 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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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기혼 연대하는 공동체를 세우자
- 작년 기준, 만 19~34세 청년 5명 중 4명이 미혼으로, 미혼율이 80%를 넘었다는 통계는 한국 사회의 결혼·가정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현실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3년 조사에서 전체 기독교인 중 미혼 비율은 40.5%에 달했다. 교회 내 싱글 신자들의 수와 연령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이제 뚜렷한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부담, 주거난,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결혼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전통적 가정 중심의 사역과 인식에서 벗어나, 미혼 신자들을 적극적으로 품고 새로운 공동체의 길을 모색해야 함을 시사한다. 교회는 미혼을 ‘문제’로 여기거나, 결혼만이 신앙적 성숙의 완성이라는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강조했듯, 결혼과 미혼 모두 각자의 소명과 가치를 지닌 삶의 방식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혼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은사와 삶을 온전히 나누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혼 성도들이 주체적으로 신앙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 멘토링, 사역의 기회를 확대하고, 결혼과 출산만을 강조하는 지원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포용적 사역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는 ‘올바른 가정’의 기준을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로 한정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는 공동체로 확장해야 한다. 부부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미혼·기혼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더 본질적인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교회가 미혼의 삶 역시 신앙 안에서 의미 있고,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며, 다양한 가족과 1인 가구를 포용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진정한 연합과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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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21대 대통령 보궐선거가 6월 3일로 정해졌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나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 우리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가 성경의 원리에 맞는지를 평소에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나랏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마6:10)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딤전2:2)을 위한 민주주의의 척도다. 올바른 선거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킴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가정치적 제도지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역사는 선거가 바꾼다.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부(富)를 키운다. 정의, 법치, 자유, 배려 등 사회의 미덕이 자라나는 토양도 결국 유권자가 가꾼다. 단순히 당선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 국가보다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해치는 현혹적 수사 등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본원리지만 다수결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수의 많음보다는 다양함 때문이다. 현혹적 구호에 매몰된 다수는 자칫 국가의 백년대계를 흔든다. 또한 공명한 선거는 또 하나의 과제다. 자유 보통 비밀 직접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지만 우리는 6·3대선을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기 때문에 기독인들의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은 국가와 가정,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태어날 때 한 가정에 속하게 되며 동시에 한 국가에 속한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굴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지만 육신이 사는 동안에는 국가의 법과 제도와 관원들을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대선 후보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방법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살펴봐야 하겠다.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올바른 투표밖에 없다. 이념과 우상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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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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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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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 ‘2025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4월 2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올해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오전 인천 제물포항에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공식 입항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가 시작된 지 140주년을 맞는 해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담아, 한국 71개 교단과 전국 17개 지역 기독교연합회도 동일한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 정신을 되세겼다. 부활절(復活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 3일째 되는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최대 축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절기로서 관습화되고 형식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교회사에서 부활절이 언제냐는 문제를 두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간의 논쟁이 계속되다가 서기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춘분이 지난 뒤 최초의 보름달이 지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나 부활의 의미가 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짜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인12월 25일은 예수님 탄생하신 날과는 상관없는 날이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달력으로 니산월 정월 14일,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에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달력 니산월 14일의 3일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양력으로는 3월 하순에서 4월 초에 항상 연결이 된다. 그래서 이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가 확실하다. 바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그러는데 그 의미는 ‘확 튀어 오른다’ 즉 봄에는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SPRING'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그 부활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만큼 확실한 사실이기에 이를 증거 해야 한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이 믿는 모든 것이 허사(虛事)가 된다. 우리의 구원도 헛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역대의 모든 사람들의 삶도 헛것이 된다(고전15:17-19).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있었고, 그분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의 행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이 잡힐 당시 뿔뿔이 도망치던 그 비겁자들이 부활을 직접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믿음을 일상화해야 한다. 우리는부활절을 맞아 절기로서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 안에서 ‘하나 됨’으로 많은 영혼들이 부활을 체험하여 부활의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세상에 증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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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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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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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돌봄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자
-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심각한 상황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하 상황에서 기독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란 성경말씀을 기억하고 출산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성도들에게 출산을 하는 것을 권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람들이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을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아동돌봄이다. 이러한 아동돌봄에 교회가 앞장을 서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사역에 동참을 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학교 후부터 부모들의 퇴근까지의 돌봄공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자식들을 학원으로 보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2021년에 발표된 교회의 돌봄사역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둘째 출산 계획이 없는 워킹맘 중 41%가 돌봄 문제가 해결된다면 둘째 출산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교회가 아동돌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큰 이유이다.동일한 조사에서 교회 운영의 돌봄기관 이용 의향률을 보면 기독교인 어머니는 84%가 의향률을 밝혔다. 그리고 비기독교인 어머니도 29%가 이용을 원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교회가 이러한 사역을 해야할 필요성이 보인다. 꼭 출산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회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섬길 필요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야 한다. 또 많은 성도와 시민들이 이러한 부분에 필요를 느낀다. 교회가 이러한 필요를 체움으로써 사랑을 흘려내보낼 필요가 절실하다. 위 조사에서 돌봄 사역을 하지 않는 목회자 중 앞으로 돌봄 사역을 할 의향이 있는 목회자는 74%에 달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돌봄사역에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돌봄사역은 작은교회부터 큰교회까지 모든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이다. 한국교회가 돌봄사역을 하기 원하는 교회들이 사역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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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돌봄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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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추수’ 넘어 ‘영적 추수’기념 절기
- 추수감사절이다. 이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역사에서 나온 것이다. 1620년 4월 5일에 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자인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남자 78명, 여자 24명, 도합 102명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나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항해하다가 도중에 51명이 죽었고, 그들이 신대륙인 뉴잉글랜드 프리마우스에 정박하게 되었다. 원주민 인디언들과 사이좋게 지냈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원망 없이 청렴하게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했다고 하여 청교도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정착한 다음 해에 토지를 개간하여 옥수수, 원두, 밀, 보리 등을 파종했고, 많은 수확을 거두어 11월에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추수감사절은 각 나라의 형편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나, 대개 11월 중에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단지 수확에 대한 감사 뿐이라면 신약으로 넘어 오지 못한 구약적 율법에 매인 절기의 성격이 짙어질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 생명 경시풍조와 물질 만능주의 풍조에 찌들은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헌금 봉투를 잘 준비하는데 머물지 말고, 절기 이상의 절기가 돼야 한다. 구약성경은 물질 추수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역사적 상황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절기로 지켜졌다. 구약성경에서는 유월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이라는 3대 절기를 제시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에 대한 감사와 영적 추수를 감사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육적이며 물질적인 추수를 넘어서서 영적 추수, 즉 교회가 처음 열매로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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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추수’ 넘어 ‘영적 추수’기념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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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기도회, 한국교회의 성회가 되도록 하자
- 다니엘기도회는 1998년 12월 1일 서울 오륜교회(담임=김은호 목사)에서 시작, 2013년 38개의 교회와 함께한 것을 기점으로 한국교회와 연합하는 기도회로 발전했다. 이후 열정적인 예배, 온전한 치유와 변화가 있는 회복을 추구하며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성회로 자리를 잡았다. 2015년 1,076개 교회, 2017년 10,091개 교회, 2020년 작년에는 1만 3천여 교회, 40만 성도들이 참여했고, 올해는 1만 4천여 교회가 온라인으로 참여한다. 코로나 시대에 다니엘기도회 추최측은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온라인으로 기도회에 동참하며 기도의 제단을 쌓을 수 있도록 프르그램을 만들었다. 주최측이 상황에 맞춰 현장예배와 영상예배로 진행하도록 기도자료와 영상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매년 인쇄물로 배포하던 다니엘기도회 가이드북도 개인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도록 제작했다. 다니엘기도회는 한국교회가 연합해서 함께 기도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기도와 예배에 목마른 성도를 위해 많은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무엇보다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 함께 30일 동안 기도의 성회를 한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연합과 갱신을 매우 필요한 일이다. 과거 한국교회는 여의도광장에서 100만의 교인들이 모여 기도회를 진행한 적도 있다. 이후 기도원이나 수양관에서 수천 명의 성도들이 모여 뜨겁게 기도했다. 이것이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것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가정이나 각 교회에서 동참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위기일수록 더 기도했던 한국교회의 영적인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니엘기도회는 한 교회의 주도적인 행사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지금 수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동참하는 연합기도회의 성격을 갖게 됐으므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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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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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기도회, 한국교회의 성회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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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시대’, 방역의 모범을 보이자
- 이른바 ‘위드 코로나시대’로의 전환을 준비 중이다. 말 그대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높은 백신접종률로 인해 코로나와의 동거에 일정정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위드 코로나로 한국교회는 대면예배의 길로 다시 나가고 있다. 방역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백신접종자의 경우 인원제한 없이 예배에 나올 수 있다. 물론 식사는 여전히 금지된다. 성가대도 허용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교회는 어느 정도 코로나 이전의 상황을 점차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확진자는 늘고 있으며, 중증환자와 사망자도 나오고 있다. 자칫하면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할 수 있고, 이렇게되면 그동안 힘들게 다져놓은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따라서 위드 코로나 시대에 철저한 방역에 더 힘써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드 코로나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신학과 교회의 모델을 준비하고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코로나 위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코로나 세대’를 어떻게 신앙으로 양육하고 이들을 다음세대의 일꾼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여러 교단과 교회는 전부터 이러한 작업을 진행했다. 코로나 세대는 온라인 예배를 경험했다. 굳이 교회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예배를 했다. 소통은 SNS, 카톡으로 한다. 대화보다는 이러한 디지털 기기가 이들에게는 더 자유롭고 편하다. ‘오프라인’ 세대는 가고, ‘온라인 세대’가 오고 있다. 과연 이들을 어떻게 신앙으로 인도할 것인지 교회는 명운을 걸고 준비해야 한다. 방향은 나와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 속에서 소모임의 중요성이 증명됐다. 수만명, 수천명이 모이는 것보다 두세 사람이 모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효율적인지가 증명됐다. 이러한 소모임이 위드 코로나 시대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소모임 중심’의 모델과 신학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코로나 세대에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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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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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시대’, 방역의 모범을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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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기관 다시 뭉친다
-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소강석·이철·장종현목사),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송태섭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임시대표회장=김현성변호사)는 지난달 22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기관통합 준비위원회 모임을 가졌다. 이는 기관 통합 논의가 시작된 지 2개월여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날 한교총, 한교연, 한기총 등 3개 단체 대표들은 한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연합기관 통합에 힘을 모으겠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김태영 한교총 기관통합준비위원장은 “과거에도 연합기관의 통합을 시도했다가 결국 결렬됐는데, 감염병으로 예배가 압박을 받는 이 시기가 되레 하나님이 주신 통합의 적기”라고 말했다. 또한 소강석 대표회장도 “한국교회가 그동안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 탓에 한국교회를 지키기 너무 힘들고 벅찼다.”면서 “위드코로나 시대를 맞아 진정한 예배 회복을 위해 한국교회가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 기관이 통합의 필요성과 시대적 요구에 대해 공감했다. 하지만, 통합을 위한 세부 요구조건에서는 여전히 견해차를 보였다. 반면에 한기총 김현성 변호사는 통합 기관 명칭을 한기총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김변호사는 “연합기관 통합의 상징과 의미는 32년 전 한기총이 처음 만들어질 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교연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다른 일부 교단이 가입된 한교총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한기총과의 고소·고발 건 등 내부 문제 해결과 정상화가 선결과제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또 교계 일각에서 통합을 위해선 한기총 내 이단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일각의 문제제기도 있다. 이에 대해 한기총은 통합을 먼저 추진한 뒤 이후에 재심의하면 된다는 주장을 편다. 이러한 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연합기관이 뭉쳐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최근 소강석 예장 합동 직전 총회장이 연합기관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오는 12월 초에 열리는 한교총 총회를 전후해서 세 기관들의 기구통합 선언이 이어지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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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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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기관 다시 뭉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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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개혁의지’, 한국교회의 방향
-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이번 입법의회는 한국 감리교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정개정위원회에서 수개월에 걸쳐 제안한 개혁안들이 논란은 있었지만 대부분 통과됐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감리회의 이번 결정이 한국교회 전체가 나아갈 개혁의 방향이라는 점이다. 이번 입법의회에서 결정된 방향은 ‘축소와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본부조직을 ‘슬림화’했고, 일부 조직은 폐지했다. 내부의 반발도 있었지만 개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대의원들이 의견이 우세했다. 기존의 12개 연회를 5에서 6개의 연회로 광역화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통합되면 당연히 내부의 반발이 있다. 그럼에도 감리회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늘리고 확대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다보니 방대해지고 막대한 유지비용이 들어간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3개의 신대원을 하나로 통합하는 결정도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은 국내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한다. 그래서 산하에 서너 개의 신학(대)교를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소속 목회자를 배출하고 이를 통해 교세의 확장을 이뤘다. 그러나 지금은 위기에 직면했다. 인구감소는 직격탄이었다. 법적인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신학대가 속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감리회는 과감한 통합의 길로 방향을 잡았다. 물론 내부의 반발은 예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적인 토론과 투표를 통해서 법적으로 강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교회에 주는 분명한 메시지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본부 혹은 총회 중심의 사고에서 개 교회 중심의 사고로 변화돼야 한다. 개 교회가 있어야 연회도 있고 총회도 있는 것이다. 이번 감리회 입법의회는 단순한 이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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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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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개혁의지’, 한국교회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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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퇴치에 앞장 서야 한다
- 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한국교회는 가난과 빈곤의 퇴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난 1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이 빈곤퇴치를 위한 한국교회의 행동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굶주림은 성경에서 큰 주제이다. 무엇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굶주림과 가난에 대해 어떤 입장과 행동을 취해야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5천명의 사람들이 굶주렸을 때 예수님은 그 배고픔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렇게 봤다면 대중들에게 집에 가서 알아서 밥을 먹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굶주림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고 한 아이가 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다. 비결은 감사와 나눔에 있었다. 예수님은 그 작은 것을 받고 감사한 후에 제자들에게 나누라고 했다. 그랬을 때 5천명이 함께 먹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교회의 이 사건에 주목해야한다. 빈곤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개인이 게으르고, 능력이 없어서 가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오늘날 빈곤은 개인의 차원을 떠나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현상, 즉 ‘워킹 푸어’(working poor)는 빈곤의 구조적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워킹 푸어의 기원은 불평등한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소수의 부자들과 다수의 가난한 자들로 나위는 심각한 양극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조적이고 심각한 양극화는 인간을 더욱 비참한 존재로 만들 것이고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교회는 빈곤퇴치를 위한 제도를 만드는 일에 시민사회와 더불어 함께 나서야 한다. 물론 법을 만들고, 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정치권의 몫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당위성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교회의 몫이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빈곤퇴지를 위해 기부와 선행의 길로 나서야 한다. 이러한 자기비움이야 말로 추락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위상을 더욱 높여 새로운 부흥의 전기를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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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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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퇴치에 앞장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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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과제가 아니라 생존이다
- 종교개혁기념일을 맞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개혁은 단순히 하나의 종교적 사건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1517년 독일의 한 작은 성당문에 붙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새로운 역사, 문명, 사상, 종교의 시작이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종교개혁의 정신과 유산 위에 서있다. 그래서 선교초기 한국교회는 망해가는 조선에 개혁과 변화를 이끌었다.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던 백정이 교회에서 장로가 됐고, 백정의 아들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됐다. 학교 근처도 갈 수 없었던 소녀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종교개혁의 후예 한국교회는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와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교회는 개혁의 주체에서 개혁의 대상이 됐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물론 한 두 해의 문제는 아니다. 또 종교개혁을 맞을 때마다 개혁과 변화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개혁을 실천할 때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개혁은 과제가 아닌 생존이 됐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더 깊은 침체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방향은 언제나 정해져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지나친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져있던 것을 회개하고 반성해야 한다. 부흥하고 성장했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제는 건물보다는 한 영혼을, 성장보다는 나눔을, 권력보다는 섬김이라는 개혁의 본질로 나가야 한다. 감사하는 것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변화와 개혁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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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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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과제가 아니라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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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호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
- 성산생명윤리연구소 등 기독교단체가 참여하는 ‘생명을 위한 40일간의 기도’가 시작됐다. 전 세계 64개국 900개 도시에서 10만명이 참여하는 이번 기도는 매유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 교회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1973년 여성의 합헌적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미국에서 낙태 문제는 문화전쟁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전투지가 되었다. 기독교적 가치 및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하는 기독교 진영과 이를 적대시하는 또 다른 진영의 권리(동성결혼 합법화, 성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법 등)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프로라이프는 낙태를 반대하는 진영의 슬로건으로서 개별적인 프로라이프 단체들은 저마다의 정체성과 고유의 활동을 지니고 있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은 궁극적으로 ‘생명권 보호’라는 기독교적 생명윤리를 지향한다. 프로라이프는 낙태 허용을 주장하는 ‘프로초이스’ 진영과 첨예한 대립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 대립은 단순히 개인의 의견 대립, 또는 시민단체 간의 대립을 넘어 ‘공화당 대 민주당’이라는 정당적 대립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많은 프로라이프는 단체들은 고유의 활동들을 통해 임신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여성들을 돕고 있는데, 이들의 활동은 위기임신센터 운영, 산전 무료 초음파검사 제공, 상담 서비스, 낙태 클리닉 앞에서의 시위, 낙태 반대 행진, 청소년 교육, 교회와 협력을 통한 생활 보조, 입양 연계 뿐 아니라 낙태 반대 입법을 위한 의정활동까지 스펙트럼이 광범위하다. 실제로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 덕분에 현재 미국에는 낙태 클리닉보다 임신 돌봄센터가 더 많아졌다. 성서는 태아 역시 존엄한 생명이라고 제시한다. 따라서 교회는 태아를 포함한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기도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산모의 생명도 존중받아야 한다. 산모가 건강해야 태아도 건강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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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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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호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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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서 위임한 안건, 임원회 처리 주목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총회장=배광식목사)를 비롯한 통합측과 고신측, 백석측 등 장로교단 총회가 폐회했다. 이번 총회들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기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로 말미암아 단 하루만에 회무를 처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부분 총회에서, 정해진 안건, 총회예산안 등을 통과한 후 총대들이 위임한 안건과 각종 분쟁 사건 등은 총회임원회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또한 회의록채택 등 잔무도 임원회에 위임하고 파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통합측과 합동측의 경우, 과거 4박 5일간 처리하던 회무를 처리하다 보니까, 잔치 분위기에서 치러지던 총회 임원선거 수기 투표를 하지 않고, 전자투표로 실시했다. 그러나 지난달 13일 합동측 총회에서 실시된 임원선거 시간에 총회 현장을 벗어나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결국 총회에 출석한 총대수와 곧 이은 투표에 참여한 총대수가 다른 역사상 초유의 결과가 나와 일파만파 파장이 일고 있다. 서기는 재석수를 계수도 하지 않았고, 기표소 앞 선거인명부 설치 및 본인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이날 총회 출석 총대는 총 1,180명이었고, 3개 교회로 분산돼 전자투표방식으로 투표한 결과 총투표수가 1,436명으로 처음 출석총대수보다 256표 더 많았다. 이에 따라 18표차로 낙선한 목사 부총회장측이 이를 문제 삼아 재검표를 요구했지만 총회 임원회가 기각했다. 3년 전에도 제104회 총회에서선관위가 위탁한 전자투표업체 시스템 오류로 인해 임원선거와 재판국원·선거관리위원 투표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이제 9월 총회가 끝났다. 이후 총회 임원회가 위임받은 안건들을 처리해야 한다. 이 안건들은 교회성장과 부흥, 교회의 개혁과 갱신의 차원에서 논의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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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서 위임한 안건, 임원회 처리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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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법 논란이 우려된다
-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지난 8월 31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대한 논란과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예정된 수순이다. 핵심은 인사권 문제이다. 개정한 내용에 따르면 교원을 임용할 때 필기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이 시험을 시·도교육감에게 위탁하도록 한다 것이다. 사실상 정부가 인사권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사립학교법 문제를 두고 한국교회는 선교 이래 가장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당시는 학교 설립정신과는 무관한 인사가 학교 이사로 선임될 수 있도록 이사회를 개방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개정안대로라면 신학대학교 이사에도 타 종교인이 들어 올 수도 있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실제로 경기도 안양의 한 기독교대학에서는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교육으로 기여한 부분은 일일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혁혁하다. 봉건적 조선에 기독교는 근대적 교육의 정신과 시설을 심었다. 그리고 이 뿌리에서 자주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끝내 해방과 독립을 쟁취했다. 한국전쟁이라는 비극과 어려움 속에 대한민국이 지금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교육의 힘이었다. 정부는 한국교회가 이룬 이러한 교육적 성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결정했으니 너희는 따르라’는 식의 강압적인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기독교계가 어떤 이유에서 반발하는지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한다. 더욱이 현 정부는 소통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진지한 대화와 협상을 전개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왜 정부가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려는지 그 원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 기도교계통의 사립학교에서 교원임용을 두고 소위 ‘사학비리’가 횡횡하고, 그래서 결국 당사자들이 감옥에 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렇게 정부의 진지한 소통과 교계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서로 함께 할 때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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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법 논란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