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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제106회 예장합동 정기총회를 바라보며
예장합동(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는 매년 9월 총회에서 부총회장 선거를 한다. 올해는 9월 13일에 개최되는 제106회 총회에서 부총회장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부총회장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총대들(매년 구성되며 약 1,500명 내외)의 과반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금권선거가 문제다 2000년대 이후에 부총회장 선출과 관련하여 예장합동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은 후보자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총대들에게 돈을 많이 쓴 사람이 당선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총회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나 총회 임원 등의 관련자들에 의해서 쉽사리 확인될 수 있다. 올해 제106회 총회에서 선출될 부총회장 후보자는 예수인교회의 민찬기 목사와 주다산교회의 권순웅 목사(교회 이름의 가나다 순서를 따름)로 결정되었다. 국민일보는 예수인교회의 민찬기 목사는 서울의 20개 노회가 지지를 하고, 주다산교회의 권순웅 목사는 30여 개 무지역 노회에서 지지한다는 보도를 하였다.(국민일보 2021. 5, 21.) [좋은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합동F신문]에서는 “제106회 총회 임원 후보들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등록 마쳐”라는 제하에서 부총회장 후보등록 자 중 한 사람과 관련된 사람들을 집중하여 기사화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작성한 F기자는 두 후보자 중 한 사람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소문이다. (좋은신문 2021. 7.27.) 사정이 이렇다면 예장합동은 더 이상 장자교단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종교집단이라 하더라도 할 말이 없다. 이러한 편법과 불의를 당장 도려내야 한다. 바른 선거는 칼빈주의의 사상과 교회론을 바르게 아는 데서 시작된다 예장합동은 칼빈주의 사상을 신조로 한다. 그것은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과 그 내용은 모두 진리다. 성부 하나님의 거져 주시는 은혜와 예정, 그리고 성자 그리스도의 의와 대속의 죽으심으로 인생들이 의롭다함을 입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성령님은 이 사실을 깨우쳐 믿게 하시고 우리를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인도하신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은혜 안에서 품으시고 양육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어려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르침 받으며 자라가고 서로 교통하는 은혜의 연합체다. 세계 열방의 온 교회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서로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룬다는 것 역시 말할 필요가 없다. 교회의 표지는 말씀과 성례와 권징이다. 말씀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선포되고 실천되며 성례가 성경대로 지켜지다면 권징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성례는 성찬식의 참여는 물론이고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그와 함께 연합하여 살아가는 삶 자체로 실천된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로 선포되고 실천된다면 성례와 권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말씀의 선포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부총회장은 금권이 아니라 자신의 교회 안에서 어떻게 말씀을 선포하며 모든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연합되게 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중심으로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두 후보자의 4편의 설교(2021년 7월 4일에서 7월 25일까지의 4주간의 주일설교)를 비교하면서 후보자의 선택기준에 대하여 논하기로 하였다. 예수인교회 민찬기 목사의 설교는 자연스럽고 성도와 교감적이다. 민찬기 목사는 7월 4일 주일에 “맥추절을 왜”(출 23:16), 7월 11일 주일에는 “신앙의 경주를 위하여”(히 12:1-2), 7월 18일 주일에는 “영혼의 거울인 성경”(약 1:22-25), 7월 25일 주일에는 “역전의 명수”(단 6:19-23) 등의 설교를 하였다. 민찬기 목사의 설교는 매주 1부, 2부, 3부의 설교가 주제는 같으나 그 내용은 서로 달랐다. 그래서 성도들 중에는 1부 말씀이 더 은혜가 되었다거나 2부 예배가 더 은혜가 되었다고 말하곤 한다는 것이다. 같은 본문을 다양하게 보고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민 목사가 어떤 위급한 상황을 만나도 A플렌 , B플렌, C플렌 등의 계획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민 목사의 설교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자유롭다. 민목사는 7월 한 달간의 설교에서 부총회장 출마와 관련하여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동영상 화면에 헌금을 안내하는 계좌가 나타나지 않았다. 주다산교회 권순웅 목사의 설교는 강해식으로 정형화되어 있고 훈육적이다. 권순웅 목사는 7월 4일 주일에 “맥추감사와 부흥”(신 16:9-17), 7월 11일 주일에는 “시대재앙과 리바이벌 새기비(기)”(시편 91편), 7월 18일 주일에는 “가둘 수 없는 사람”(행 16:19~34), 7월 25일 주일에는 “역사(history)는 하나님의(His Story) 역사다”라는 제목의 설교들을 하였다. 권순웅 목사의 목사의 설교는 학문적이었다. 설교가 조직화되어 있고 충실하다. 그는 설교 도중에 자신이 총신신대원 원우회장이었으며 원우회장으로써 했던 일들을 증언하였다. 권목사 자신이 중심이 되어 복음운동(스파크)를 주도하였다. 이런 점들이 권목사의 설교를 훈육적이게 했다. 7월 11일 주일설교에서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총회장과 부총회장이 중요하다고 하였고, 7월 25일 주일설교에서는 자신이 부총회장에 출마했으며, 내년(2022년)이 주다산교회 30주년이어서 부총회장 출마와 교회행사를 위해 동영상 촬영을 많이 한다고 하였다. 설교하는 동안 오른쪽 상단에 헌금을 위한 계좌가 게시되고 있었다. 이번 부총회장 선거는 가난으로 고생하며 기도하던 민찬기 목사와 총학생회장과 원우회장 출신의 권순웅 목사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예수인교회 민찬기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과 75학번 출신이다. 민 목사는 총신 75동기생들 에게는 기도하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했기에 기숙사생활이 힘들어서 친구의 기숙사 방 한 켠에 자기 짐을 맡겨(?) 놓고는 총신 뒷동산(사당동)의 기도굴 등에서 지내곤 하였다. 일산에서 목회하는 동안에는 가난한 교회 살림으로 인해 여유 있는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검소한 생활이 필수였고 세월이 가면서 이러한 태도가 습관이 되었다. 40여 년의 목회를 통해 현재 3천여 명 이상의 성도가 출석하고 있는 예수인교회는 모든 성도가 가난 속에서 이루어온 기도와 눈물과 땀의 결실이다. 부총회장 입후보도 많이 망설이다 결정되었다. 그는 자신이 헌신해서 전국의 성도들과 함께 총회 산하 모든 교회를 섬기고 그 연합을 이루기를 꿈꾸며 입후보하였다. 주다산교회 권순웅 목사는 영남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이다. 권목사는 총학생회장 출신이라는 유혹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혹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종이 되기로 작정하고 복음에 헌신하는 목회자다. 서울 송파구에서 목회하다 현재의 동탄으로 옮겼으며 이곳에서 8 가정을 중심으로 주다산교회를 시작하였다. 말씀에 따른 헌신으로 주다산교회는 현재 5천여 명의 성도가 출석하는 대형교회로 성장되었다. 권목사의 스파크(SPARK)운동은 타교회의 귀감이 될 만한 복음운동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직과 운영은 총학생회장과 원우회장의 수행경험에서 온 것일 것이다. 학생회장의 경험은 권목사 자신이 직접 수고해서 마련한 자산이 아니기에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 과감하고 대범하게 해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예장합동 부총회장을 선택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총대원들의 믿음에 선 결단이 중요하다. 바라기는 교단에 혁신을 불어넣을 수 있는 분이 되었으면 한다. 이를 계기로 향후 예장합동교단이 하나님 앞과 민족 앞에서 그들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선거혁신을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부총회장 선거, 이렇게 해보자. 첫째로, 입후보자의 조건으로서 자신이 속한 교회 성도들이 공동의회를 통해 과반 이상의 찬성을 받게 하는 것이다. 총회장으로 섬긴다는 것은 후보자 목사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교회의 모든 성도의 몫이다. 그래서 부총회장 입후보자는 성도들의 승낙을 먼저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둘째로, 현행 총대제도는 그대로 두되, 투표방식에서는 비대면 온라인 투표제도를 채용하여 총회 소속된 모든 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이 전체 투표인단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투표인을 늘림으로서 금권에 의한 선거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셋째, 부총회장 입후보자들의 공개토론회(1회 이상)을 실시하는 것이다. 패널리스트를 활용한 질의응답, 입후보자 개개인의 정책과 비전 발표, 또는 후보자들끼리의 자유스러운 질문과 토론 등을 실시하는 것이다. 넷째, 3권역으로 나누어 각 권역에서 한 번 씩 직접 설교하게 하는 것이다. 지역별 순회 설교(각 1회)와 함께 지역별로 후보자와 공식적으로 공개된 자리에서 다수가 참여하여 자유스러운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이런 선거운동 방식은 지역 간의 유대형성에도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부총회장 선거를 예장합동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서로 신뢰하고 화합하는 일종의 잔치로 만들자는 것이다. 새로이 부총회장과 총회 임원이 되신 분들이 전국의 성도들에게 소정의 선물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자유기고가: 문노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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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돌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어려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방도는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14세기 초반에 대유행했던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참혹한 질병이었다. 20세기 초반의 스페인독감, 20세기 중반의 홍콩독감 등도 지구촌을 괴롭혔고, 2000년도에 들어서서도 사스, 신종플루엔자, 메르스, 코로나19 등의 바이러스가 인간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전염병을 통하여 인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 전염병을 히브리어로 ‘데베르’라고 하는데 이는 ‘다바르’에서 유래된 말이다. 다바르는 ‘말하다, 선언하다, 경고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염병(데베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다바르) 계신다는 뜻이다. 어떤 말씀일까요?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의 은혜 아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대속제물이 되셔서 죄의 삯인 ‘사망의 속전’을 지불하셨다. 죄인이 속전을 지불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겸손히 나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어 이 ‘속전’을 지불한 자에게는 결코 전염병이 임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간음을 행하고, 불평, 원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두기 싫어하는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주변국인 앗수르, 바벨론, 메데, 바사를 통하여 그들을 징계하셨다.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과 짝할 때, 예수 안에 있지 않고, 밖에서 방황할 때 하나님께서는 전염병으로 우리에게 ‘다바르’하고 계신다.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격동시켜 죄를 범케 했다고 돼 있다. 범죄한 다윗은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했다. 오늘날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이다. 그곳만이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곳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피난처요. 안식처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는 어떤 질병도 전염병도 죽음까지도 이기는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알고, 믿고 그분께 돌아가자. 그런 사람에게는 전염병이 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께로 돌아가는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바이러스는 힘을 잃고 물러갈 것이다. 코로나 질병이 창궐한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발라져 있는 자들에게는 질병도 재앙도 넘어간다. 그러나 예수 피가 뿌려져 있지 않은 곳, 예수 피가 묻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재앙은 피할 수 없는 전쟁과도 같다. 코로나를 통하여 예수 십자가로 돌아 온자에게는 놀랍게도 전염병은 오히려 축복이다. /분당벧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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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축시
다시 찾은 크리스마스카드 지형은 크리스마스카드를 잃어버렸다 수많은 소식이 바쁘게 오갔는데 크리스마스카드는 없었다 하얀 겨울 사랑으로 꾹꾹 눌러 그린 고운 꿈의 크리스마스를 언제 놓쳤을까 아랫목 앉은뱅이책상에서 머리 맞대고 그린 산타의 크리스마스를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그렇게, 동화와 전설의 시간은 멈추고 시계의 시간에 매여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어젯밤 꿈 창밖의 높은 하늘에 흐르던 별 하나 멈추며 오래 잊었던 소년이 보였다 그 옛날의 크리스마스카드가 떠올랐다 아, 참 다행이다 언젠가부터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여기면서 더 이상 내가 올라가지 않은 다락방, 앉은뱅이책상 서랍에서 빛바랜 카드를 찾았다 꿈과 사랑과 캐럴이 담긴 그 카드에 동화를 잊은 시간의 회한이 눈물로 떨어질 때 다락방 창으로 별빛이 내려앉았다 아, 갑자기 모든 게 다시 살아나고 소년과 소녀가 밝게 웃으며 춤춘다 다시 찾은 크리스마스카드에 쌓인 시간들이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노래한다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한다 (2013. 12. 24 늦저녁, 크리스마스의 축복을 전하며. 2020. 12. 17. 다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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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라(2)
2) 하나님은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는 사랑입니다. 요1서 4:9-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보내어 주시고 십자가 선상에서 그 사랑을 확증하여 보이셨습니다. 롬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 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은 한없이 용서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마18:21-22에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는 사랑, 끝까지 용서를 베푸는 사랑이십니다. 4)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신7:13-14에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인보다 우승하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복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시작이요, 방편이며,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그것은 번성케 하는 복이요, 후손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환경을 축복으로 충만케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성경 본문은 두 계명을 사랑으로 일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13:10에서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사랑이 율법의 내용이요, 목적이요(롬10:4) 전부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부족을 풍성하게 채운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사랑은 율법의 종결이요, 성취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율법에서의 해방이요, 자유입니다. 그래서 상담하실 때 율법의 끈으로 다시 속박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고용인이 있습니다. 이 고용인은 법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계약된 대로 책임을 다하고 임금을 받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 고용인은 처녀이고 주인은 총각이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두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서 결국 결혼을 하기로 되었습니다. 부부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되는 순간 그녀는 이제 종으로서 끝을 맺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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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 진단과 전망
1992년 한중수교 이후 37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의 중국선교를 다시 진단해보 면서 향후의 중국선교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 되어야 할것인지 전망해 본다. 그동안의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조직 적이지 못하고 우후죽순 무분별하며 무계획적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개신교의 특성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이 개방되자 북방선교를 위해 교단과 선교단체 교회와 개인이 연합전선을 구축하지 못하는 개신교의 특성상 무조건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조선족이란 매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시작된 중국선교는 조선족교회가 밀집한 연변지역을 중심으로한 동북삼 성(흑룡강성,길림성, 요녕성)이 선교집중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언어와 문화 공산권 사회주의의 특성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열정만으로 출발한 준비 되지않은 선교이기에 기회비용의 부담이 컷으며 조선족 중심의 건축선교에 한국교회가 서로 경쟁구도로 가시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선교방식 즉 제자양육 보다는 가시적인 기준이 우선 하였다. 서로 협력하는 조화와 균형의 원리가 아닌 한국인 특유의 사고체계의 원리가 선교현장에 작동되었다고 볼수 있다. 중국 14억이 넘는 인구 가운데 200만 (0.001%)밖에 안되는 조선족 선교에 한 국교회가 전방위적으로 올 인한 것은 언어문제였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환율과 당시의 중국 경제상황도 선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중국선교에 뛰어들 수 있는 선교적 생태계가 형성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의 중국선교의 환경은 사회주의 특성상 종교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더 이상 선교가 불가능하기에 선교의 패러다임을 체인지할 때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매스미디어의 발달에 이어 SNS의 새로운 도구가 선교할 수 있는 최적의 생태계가 조성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2000년 들어 유학생이 교과부의 핵심정책이 되면서 빠른 속도로 유학생 수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한류열풍과 함께 한국문화를 습득하고, 한국 대학과 대학원 진학, 취업을 목표로 한 한국어 연수 숫자가 증가추세에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들어와 있는 100만명이 넘는 국내 체류자는 물론 7만 유학생들 그리고 매일 유입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선교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에대한 대비책이 시급하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 온 유학생들은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한국어가 용이할 뿐 아니라 선교가 제한되고 닫힌 본국에서보다 복음에 개방적이다. 한국 선교사들이 아직가지 못한 65개국 출신 유학생도 들어와 있어 주한 유학생 사역이야말로 소중하다. 현재 중국의 디아스포라는 전세계에 8,000만명을 넘고 있으며 유형 무형의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는 무궁무진 하다고 볼 수 있다. 유학생 선교사역의 성공과 실패는 교회의 투자에 좌우된다. 대형교회 유학생 사역자는 한국사회 전체에 선한 영향력과 선교목회역량, 종의 리더십을 가지고 큰 틀에서 사역에 투자하고, 중형교회 유학생 사역자는 차세대 일꾼을 잘 준비시키며, 소형교회도 신속한 목회철학과 프로그램 도입으로 유학생 사역이 가능하다. 목회생태학적으로 모든 교회가 연결된 것을 기억하고 각 교회 규모와 은사에 따라 서로 협력하는 선교문화 확립이 시급하다. /세계선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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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절대적 중요성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창세기 첫 구절에서부터 시작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창1:1). 기독교인들은 이 구절을 통하여 태초에 창조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의 행위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호세아 선지자에 의하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매우 강력하게 요구하신다. 현대에 이르러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자들이 적지 않다. 호세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인간들이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할 뿐이니, 땅에는 피가 피를 뒤이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호세아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호4:1-2)고 한탄하셨다. 서로 잘 아는 관계에선 쟁변할 필요가 없다. 창조주 하나님과 이 땅의 인간들이 쟁변하는 관계를 벗어나려면, 인간들이 진실하게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잊어버리겠노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이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호세아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고 대언하였다. 그럼에도 현대에 이르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들이 제사장 직위를 차지하여 그 자신은 물론 일반 신자들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하고 있음은 통탄할 일이다. 하나님은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내가 그 소행대로 벌하며 그 소위대로 갚으리라”(호4:9)고 선포하셨다. 하나님의 뜻에 따랐던 다윗은 이스라엘 12지파를 묶어 하나의 통일왕국을 세웠다(BC. 1010).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그의 아들 솔로몬은 세상에서 지혜가 가장 뛰어난 왕이었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해서 하나님에게 봉헌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주변 국가에서 다수의 왕비들을 맞아들이고, 그들이 제 나라의 풍습대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홀히 하여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직접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홀히 함에 경고하여, 솔로몬의 사후에 나라를 빼앗아 솔로몬의 신하에게 주시겠다고 선포하셨다. 현대사회에서 기독교의 문제는 성경 66권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전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주장 때문에 기독교는 과학적 지식을 왜곡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현대문명을 구축한 과학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연구하는 과학을 통해서도 습득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과학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과학적으로 습득하고, 과학적 무신론자들과 쟁변하여 승리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여 과학적 무신론자들에게 패배한다면, 그들은 곧 하나님의 진노에 의하여 멸망될 것이다. /신학박사·케리그마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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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돌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
-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어려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방도는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14세기 초반에 대유행했던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참혹한 질병이었다. 20세기 초반의 스페인독감, 20세기 중반의 홍콩독감 등도 지구촌을 괴롭혔고, 2000년도에 들어서서도 사스, 신종플루엔자, 메르스, 코로나19 등의 바이러스가 인간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전염병을 통하여 인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 전염병을 히브리어로 ‘데베르’라고 하는데 이는 ‘다바르’에서 유래된 말이다. 다바르는 ‘말하다, 선언하다, 경고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염병(데베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다바르) 계신다는 뜻이다. 어떤 말씀일까요?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의 은혜 아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대속제물이 되셔서 죄의 삯인 ‘사망의 속전’을 지불하셨다. 죄인이 속전을 지불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겸손히 나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어 이 ‘속전’을 지불한 자에게는 결코 전염병이 임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간음을 행하고, 불평, 원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두기 싫어하는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주변국인 앗수르, 바벨론, 메데, 바사를 통하여 그들을 징계하셨다.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과 짝할 때, 예수 안에 있지 않고, 밖에서 방황할 때 하나님께서는 전염병으로 우리에게 ‘다바르’하고 계신다.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격동시켜 죄를 범케 했다고 돼 있다. 범죄한 다윗은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했다. 오늘날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이다. 그곳만이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곳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피난처요. 안식처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는 어떤 질병도 전염병도 죽음까지도 이기는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알고, 믿고 그분께 돌아가자. 그런 사람에게는 전염병이 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께로 돌아가는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바이러스는 힘을 잃고 물러갈 것이다. 코로나 질병이 창궐한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발라져 있는 자들에게는 질병도 재앙도 넘어간다. 그러나 예수 피가 뿌려져 있지 않은 곳, 예수 피가 묻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재앙은 피할 수 없는 전쟁과도 같다. 코로나를 통하여 예수 십자가로 돌아 온자에게는 놀랍게도 전염병은 오히려 축복이다. /분당벧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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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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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돌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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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
- 20세기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크게 영향을 준 선교 운동을 꼽는다면, 빌 브라이트박사의 대학생 선교운동·빌리 그래함박사의 대중전도운동·맥 가브란박사의 교회성장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가지 운동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크게 성장되고 세계선교의 큰 부흥의 불길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세계 현실은 어둡고 암울하기만 하다. 세계 도처에서 기근과 굶주림, 영양실조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살인과 방화, 강간, 테러, 에이즈, 전쟁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교회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나는 10단계의 교회운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한국교회가 각 단계별 운동들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 사회에 산적한 문제들을 치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줄로 믿는다. 1단계는 교회에 모이기를 우선 힘쓰는 운동이다. 성경에는 오순절의 예를 비롯해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는 구절이 여럿 나온다. 우선 우리가 모이기를 힘써야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2단계는 온 교인들의 뜨거운 합심기도 운동이다. 성경에는 기도운동에 관한 말씀이 여러 번 강조되었다. 헨리 위드비쳐목사는 아침의 기도는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의 보화 창고문을 여는 열쇠요, 저녁의 기도는 그의 보호와 안전의 날개라고 말했다. 하나님께 대한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3단계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읽기 운동이다. 지금부터 우리 모든 교인들이 매일 성경을 읽자는 것이다. 가령, 새벽기도회에서 성경 3장씩 읽고 합심기도하고, 개인기도시간을 갖고 자유롭게 헤어지는 방법도 있겠다.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의 핵심을 깨닫고 구원받는 감격이 있어야 한다. 4단계는 흩어져 전도하는 훈련을 시킨다. 교회에서는 전도이론과 실제현장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구원의 확신과 사명을 깨닫고 전도에 임하게 한다.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전도와 말씀이 바로 훈련인 것이다. 5단계는 교회주차장과 장막터를 넓히는 운동이다. 로버트 슐러목사는 교회가 성장하려면, 살아있는 말씀선포·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넓은 주차장과 아름다운 교회 모습이어야 한다고 했다. 모두 힘을 합하여 주차장을 확보하고 장막터를 넓힌다면 교회성장에 큰 힘이 될 것이다. 6단계는 가정마다 ‘성경선물하기 운동’을 벌인다. 개교회 성장을 위해 성경보내기 선물운동을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펼쳐나간다면 과거 전도방법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으리라 확신한다. 7단계는 내 이웃을 내 가족처럼 돌보기 운동을 한다. 현대의 모든 개인과 가정은 무엇인가 불안하고 쫓기는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역시 주님의 사랑이요, 돌봄이다. 성경을 보낸 그 가정에서도 성경을 받은 그 가정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내가족처럼 사랑하고 돌본다면 반드시 주님께로 구원될 것이다. 8단계는 강권하여 교회로 인도하기 운동을 한다. 교회는 여러 절기들을 이용해 교인들을 교회로 초청할 수 있다. 9단계는 국내 여러 곳을 답사하여 배우고, 돕는 운동을 한다. 아직도 국내에서는 선교하고 교회를 세워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준비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10단계는 세계 여러 곳을 현지 답사하여 배우고 돕는 운동을 한다. 이제 우리 모든 교인들은 앞장서서 국내선교뿐 아니라 국외선교에도 열심을 내야 한다. /성경국제후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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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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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영해의 닻
- ▲ 정성구목사 1964년 나는 외국 유학의 꿈이 있어서, 종로에 있는 시사영어학원에 등록해서 영어강의를 들었다. 타임지를 읽고 해석하는 과목이었다. 그때 강사는 변영태씨였다. 그는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와 서울대 교수,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아서인지 만년에 영어학원 강사로 겨우 생활을 하였다. 마침 변영태선생의 가족이 내가 일하던 동산교회에 출석했다. 동산교회는 박윤선목사와 김성환목사가 목회했고, 나는 당시 교육전도사로 봉사했었다. 변영태선생은 영어의 달인인 데다가 중국어도 능통했기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외무장관으로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외무장관으로서 제네바 회의를 비롯해 6, 7차 U.N. 총회 한국대표로서 이승만대통령의 명을 따라 ‘한미방위조약’을 만들어 서명한 탁월하고 진실한 외교관이었다. 그가 얼마나 올곧고 정직했으면 외국 출장에서 돌아오면 남은 출장비를 반드시 국고에 넣었다. 친척들이나 자녀들의 불평은 그렇게 높은 직책에 있으면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자, 모두 그를 배신하고 욕을 했다. 그래도 그는 가난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과 진실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살았고, 만년에는 병든 아내를 위해서 직접 연탄불을 갈 정도였다. 그는 건국 초기에 한국외교의 기초를 튼튼히 했지만, 특히 독도 문제에 대해서 철저하게 일본의 침략적 계획을 물리친 일이다. 1954년 10월 28일 우리 외교부에서 반박 구상서를 작성했다. 즉 분쟁을 국제 사법재판소에 부탁하자는 일본정부의 제안은 사법적인 가장으로서 허위주장하는 확인을 국제사법재판소에 구하여야 한다는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런 분쟁이 없는데도 유사적, 영토적 분쟁을 조장하는 것은 바로 일본이다. 변영태선생은 독도가 영토 문제가 아닌 역사 문제라는 논리를 폈다. 1954년 9월 24일 구상서에서 “한국은 40년 이상이나 제국적 일본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그의 권리가 약탈당하였다는 사실을 일본에게 환기시키는 바이다. 일본정부가 분명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침략은 차차로 진행되다가 1910년 한국의 일본병합으로서 그 정점에 도달 하였다 … 시네마 현청이 독도를 자칭하여 그의 관할권에 포함시킨 것은 이러한 협정의 1년 후이다”며, “과거에 있어서 일제 침략의 최초로 희생된 독도를 또다시 점유하려 함은 대일강화조약을 파기하고 한국을 재침하려는 의도적 발로이다”고 했다. 변영태선생은 그의 꼬장꼬장하면서도 능숙한 외교로 이승만대통령의 오른팔이 되어 독도를 지켜냈다. 그는 구체적으로 1954년 독도에 독도 등대를 설치하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로태극기와 한국령 표지석을 설치하여 독도가 한국땅인 것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역사가들이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하고 독재의 화신이니, 친일이니 하는 오명을 덮어씌우고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변영태 외무장관 겸 국무총리의 나라사랑과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한미방위조약을 만들어 미국의 우산 아래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초를 놓았고, 독도를 확실히 지켜낸 것을 오늘의 세대는 알는지 모르겠다. 나라사랑을 위한 변영태선생의 애국심과 그의 하나님 중심 사상과 정직과 진실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7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오늘날은 자칭 애국자가 많지만, 그 시대에 자유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외교적 노력과 하나님 앞에서 양심과 정직으로 살려는 지도자가 그립다. /총신대·대신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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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영해의 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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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지키는 자
- 사람은 자기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참으로 어려운 것이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리, 경제인은 경제인의 자리, 교수는 교수의 자리, 학생은 학생의 자리, 목사는 목사의 자리, 승려, 신부 등 종교지도자는 종교지도자의 자리, 교인은 교인의 자리를 지켜야 하고 국민은 국민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작금의 현 정국을 바라보면 서글픔을 넘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난무하고 있다. 가정사는 굳이 제쳐두고라도,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지켜야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한 사람 자신은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며 말하면서 지금은 자유민주주의도 지향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국회청문회장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대한민국의 장관으로 임명되어서는 안 될 이 한 사람으로 인하여 국론이 분열되어 국민이 둘로 나뉘어 갈등과 증오로 치닫고 있으며, 나라가 흔들거리고 있음에도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될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사람을 바르게 세워야할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지켜야할 자리를 팽개치고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며 삼권분립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면서 자신들의 정권을 강화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더 나아가 언론인이라 자처하는 모 유명인사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일방적으로, 비상식적인 잘못된 사람의 대변인처럼 좌충우돌 검찰과 논쟁을 벌이며 시국을 어지럽게 만드는 편파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벌이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청와대의 고위층인사는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민초들의 소리를 외면하고 한사람의 잘못된 임명으로 비롯된 현시국을 어떻게 하든 안정시켜야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임에도,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고, 청와대는 청와대의 일만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말을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에서 나라를 국태민안으로 이끌어야 함에도 국론분열이 아니라는 안일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할 자리에 있으면서 그 자리를 지키지 않고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이 모든 것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하고 우매하기에 지켜야 할 자리에서 벗어날 때가 많다. 늘 사탄의 유혹과 궤계에 휘말려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사탄에게 넘어가 자리를 이탈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 흑암의 세력에 둘러쌓여 있어 어쩔 수 없이 사탄의 노예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기에,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권세자, 흑암의 세력, 공중권세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어 악한 마귀들을 대적해야 한다. 이 세상의 주관자요 권세자인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장 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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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지키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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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립하는 기독교인이 되자”
- 미국 시애틀 어린이연구기관에 따르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수가 1970년대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아졌는데 그러한 원인을 분석한 결과, 부모들의 비현실적인 과욕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지적했다. 내 자녀는 내 것이라는 착각으로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독이 된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자녀가 자립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결혼해도 부모가 자녀를 끼고 살려고 한다. 자녀를 오래 끌어안고 사는 것은 자녀를 바보로 망치는 길이다. 부모 밑에서만 자라는 아이는 독립심도, 자립심도 없고, 남을 의존하는 습성만 키워서 결국은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 결국 부모의 욕심이 자녀를 망치게 된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모든 욕심은 내 것이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착각하며 사는 사람이 많졌다. 착각은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 선택은 잘못된 결과로 이어진다. 바른 결정과 바른 결과를 얻기 위해선 욕심을 버리고 내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국의 목사 찰스 스펄전은 “내 것이라 하는 것 중에 진정한 내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건강, 재산, 자식, 배우자도 내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믿음만이 내 것이다. 내 손에 있고, 내 주머니에 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다. 착각에서 벗어나야 바르게 살 수 있다. 통계청에서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내 시간이니 내 마음대로 쓴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시간은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 순간 따라가야 한다. 또한 ‘신체발부 수지부모’란 말도 옛말이 되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몸을 손상시키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제 미용성형수술협회는 우리나라가 성형수술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임을 발표했다. 한국이 성형 공화국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중국과 일본 등에서 성형관광이 유행하기도 했다. 동 협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3만 5천 개 성형외과 병원에서 조사한 결과 가슴확대수술(15.8%), 지방흡입수술(14%), 눈 쌍꺼풀수술(12.9%), 코 성형수술(7.6%), 복부 성형수술(7/4%) 등으로 나타났다. 물질도, 시간도, 몸도, 건강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영원히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 마음대로 사용한다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 미국의 부자 록펠러는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모든 기회에는 부담이 나의 모든 소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거꾸로 말하면 의무를 다할 때 권리가 생기고 부담을 감당할 때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책임을 다할 때 소유가 풍성해지는 것이다. 부자는 부자로써의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을 준 것은 개인만 잘 먹고 잘 살라고 준 것이 아니다. 그 부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라고,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바르게 물질을 쓸 때, 하나님께서 더 크게 축복해주시고 높여 주신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결국은 손에 쥐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 그렇게 욕심을 부리며 사는가.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모은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 재산 때문에 다투고 죄짓고 지옥에 가는 일들도 많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것은 재산이 아니라 신앙이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기도하고, 말씀보고, 잘 섬기는 모습을 남겨주는 것이 자녀가 축복받고 성공하는 길이다. /강남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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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립하는 기독교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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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와 교회
- 성경을 바탕으로 사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한다. 성경에 보면(로마서 16장 1~2절) 교인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인 교인에게 합당한 예절이 있다고 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우리 인간에게는 지정의라고 하는 정서를 갖추어 주셨다. 그래서 인간은 창의력이 있고, 질서의식이 있고, 법치와 준법정신이 있고 도덕심이 있게 해주셨다. 그래서 이 세상의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하다고 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성경을 주시고 10가지 계명, 곧 십계명을 주셨는데 그 십계명의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이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계명의 첫 번째가 효도하라는 계명이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다. 그리고 에베소서 6장 15절에도 “너희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고, 에베소서 6장 2절에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부모님을 섬겨 효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효도를 강조하셨을까? 첫째 이유는 자식들은 부모님의 은공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은공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마태복음 15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어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지 말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은공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으며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이다. 두 번째는 자식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세상을 바로 세우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하나님의 창조 통로이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부모를 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나아가 효도는 그 가정을 세우고, 사회를 세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세 번째는 교회도 효도하는 가정처럼 어른을 잘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어른을 존경하고 잘 섬겨야 한다. 출애굽기 6장 14절에 보면 “그들의 조상을 따라 집의 어른은 이러하니라”라고 했고, 출애굽기 6장 25절에 보면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부디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였고 그는 비느하스를 낳았으니 이들은 레위 사람의 조상을 따라 가족의 어른들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은 구약교회요, 구약교회는 신약교회의 모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그들의 후손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가? 그들은 전통을 소중히 여겼고 어른을 존경하는 효도를 귀하게 여겼다고 본다.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가 되면 어른을 섬기는 효도는 안 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효도의 정신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 교회는 은퇴하는 원로목사에게 은퇴금을 드리면서 우리 교회에 나오시지 말고 멀리 떠나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교인들에게 합당한 예절은 과연 무엇일까? 원로목사님과 담임목사님,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화목하게 어우러지며 하나 되는 교회,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 아닐까? /서울신광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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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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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영해의 닻
- ▲ 정성구목사 1964년 나는 외국 유학의 꿈이 있어서, 종로에 있는 시사영어학원에 등록해서 영어강의를 들었다. 타임지를 읽고 해석하는 과목이었다. 그때 강사는 변영태씨였다. 그는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와 서울대 교수,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아서인지 만년에 영어학원 강사로 겨우 생활을 하였다. 마침 변영태선생의 가족이 내가 일하던 동산교회에 출석했다. 동산교회는 박윤선목사와 김성환목사가 목회했고, 나는 당시 교육전도사로 봉사했었다. 변영태선생은 영어의 달인인 데다가 중국어도 능통했기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외무장관으로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외무장관으로서 제네바 회의를 비롯해 6, 7차 U.N. 총회 한국대표로서 이승만대통령의 명을 따라 ‘한미방위조약’을 만들어 서명한 탁월하고 진실한 외교관이었다. 그가 얼마나 올곧고 정직했으면 외국 출장에서 돌아오면 남은 출장비를 반드시 국고에 넣었다. 친척들이나 자녀들의 불평은 그렇게 높은 직책에 있으면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자, 모두 그를 배신하고 욕을 했다. 그래도 그는 가난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과 진실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살았고, 만년에는 병든 아내를 위해서 직접 연탄불을 갈 정도였다. 그는 건국 초기에 한국외교의 기초를 튼튼히 했지만, 특히 독도 문제에 대해서 철저하게 일본의 침략적 계획을 물리친 일이다. 1954년 10월 28일 우리 외교부에서 반박 구상서를 작성했다. 즉 분쟁을 국제 사법재판소에 부탁하자는 일본정부의 제안은 사법적인 가장으로서 허위주장하는 확인을 국제사법재판소에 구하여야 한다는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런 분쟁이 없는데도 유사적, 영토적 분쟁을 조장하는 것은 바로 일본이다. 변영태선생은 독도가 영토 문제가 아닌 역사 문제라는 논리를 폈다. 1954년 9월 24일 구상서에서 “한국은 40년 이상이나 제국적 일본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그의 권리가 약탈당하였다는 사실을 일본에게 환기시키는 바이다. 일본정부가 분명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침략은 차차로 진행되다가 1910년 한국의 일본병합으로서 그 정점에 도달 하였다 … 시네마 현청이 독도를 자칭하여 그의 관할권에 포함시킨 것은 이러한 협정의 1년 후이다”며, “과거에 있어서 일제 침략의 최초로 희생된 독도를 또다시 점유하려 함은 대일강화조약을 파기하고 한국을 재침하려는 의도적 발로이다”고 했다. 변영태선생은 그의 꼬장꼬장하면서도 능숙한 외교로 이승만대통령의 오른팔이 되어 독도를 지켜냈다. 그는 구체적으로 1954년 독도에 독도 등대를 설치하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로태극기와 한국령 표지석을 설치하여 독도가 한국땅인 것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역사가들이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하고 독재의 화신이니, 친일이니 하는 오명을 덮어씌우고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변영태 외무장관 겸 국무총리의 나라사랑과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한미방위조약을 만들어 미국의 우산 아래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초를 놓았고, 독도를 확실히 지켜낸 것을 오늘의 세대는 알는지 모르겠다. 나라사랑을 위한 변영태선생의 애국심과 그의 하나님 중심 사상과 정직과 진실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7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오늘날은 자칭 애국자가 많지만, 그 시대에 자유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외교적 노력과 하나님 앞에서 양심과 정직으로 살려는 지도자가 그립다. /총신대·대신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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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영해의 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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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날갯짓
- 우리나라의 교회학교 일선에서 땀흘려 수고하시는 지도자들이 가끔 푸념섞인 말들을 이구동성으로 쏟아놓는다. “왜 우리나라의 교회학교는 교사들의 열정이 점점 식어져갑니까” “왜 우리나라의 교회학교는 점점 쇄락하고 있는가?” “왜 우리나라의 교회교육이 더욱 암울해져 가는가? 이러한 생각을 가진 지도자들을 향해 조용히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다음세대들을 향한 교회교육이 시행착오를 덜 하도록 어떤길잡이 노릇을 해 주었고, 올바르게 가르쳐 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얼마만큼 통감하였는가?” 우리는 그 옛날, 예수님께서 아무런 교육장비도 없이 산이나 빈들, 바닷가를 “교실”로 삼고 공중의 새와 길가의 풀 한 포기를 ‘교재’로 삼아 수많은 제자들에게 열정어린 훈육을 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 스승이시다. 기독교교육이 추구할 가치는 대 스승이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디딤돌로 삼아 착실하게 그 가치들을 구현해 나아가는 일이다. 예수님은 공생애동안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사 많은 무리들에게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병든자들을 치유하시면서 땀을 흘리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에 온갖 열정을 쏟아내셨다.(마태복음 9:35) 여기에서 예수님의 참된 지도자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교육의 쇄락현상을 단지 어떤 환경적 요인 탓으로만 돌리려는 나약한 지도자들을 발견하게 되고, 대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사역의 현장에서 눈물어린 땀을 쏟아내어야 참된 복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교훈해 주고 있다. 세상의 학문과 교회교육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그 전달방법도 다르다. 이를테면, 어느 중학교 수학담당 교사가 지난 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취중상태로 욕지거리를 하며 부부싸움으로 하고 이튿날 아직도 취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출근을 하고 지난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생들에게 전과 다름없이 수학공식을 잘 풀어주었다고 했을 때, 만약 그 수학교사가 중학교 교단이 아닌 교회 교육의 현장이었다면 과연 하나님은 어떻게 평가하실까? 기독교 지도자는 달라야 한다. 차원이 다르다. 교회 교육을 맡은 지도자가, 그의 삶은 엉터리면서 교회에 와서는 공과학습시간에 어려운 성경이야기를 마치 먹기 쉽지 않은 약을 캡슐로 포장하듯이 재밌게 들려주었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엔 “외식하는 무리”라고, 언짢아(?)하셨을 것이다. 경건하지 못한 자와 외식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으신다. 아무리 빼어난 재능을 겸비한 자라도 그의 외침은 공중에 떠있는 풍선처럼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나오기까지 많은 고통의 나날을 넘기면서 변화시키려는 “날갯짓”을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고 끝내 인류의 구원역사를 이루셨다. 가을에 곡식단을 수확하기 위해, 과연 농부의 “고통의 날갯짓”이 없이 가능한 일일까? 더군다나 마귀의 손아귀에 매어있는 저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특별히 세움을 받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고통의 날갯짓”을 귀찮아하고 마다한다면 10년, 50년, 100년의 세월이 흘러간들 회복하기 어려운 고난의 행진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오늘의 교회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들은 통감하고 또 통감하여야 할 것이다. /(사)나눔플러스 이사장·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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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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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날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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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관통하여 보자
- 지금까지 2500여 회의를 진행한 요한계시록 강해 세미나는 하나님의 일곱 영에 의해서 가감하지 않은 요한계시록을 열어주셔서 하는 세미나이다. 이 세미나는 요한계시록만 다루지 않는다. 세미나는 요한계시록을 기초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를 다루는 세미나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과 연결된 모든 성경구절을 종합해서 완전히 성경의 뿌리까지 보게 하는 세미나이다. 여러 명의 계시록 강해 목사님들이 계시지만 가감하지 않은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는 세미나는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현재는 더 나아가 가감하지 않은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를 강해하고 있다. 가감하지 않는 요한계시록을 깨닫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일곱 영에 의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 일곱 영을 다루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바라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진리의 영과 일곱 영을 구분하자면 진리의 영은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모든 성경을 깨닫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일곱 영은 그중에서 요한계시록을 온전히 깨닫게 해주신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진리의 성령이 임하면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장래의 일’이 요한계시록을 말한다. 우리가 한 해에 약 200회 정도 집회를 하고, 한 해 약 만 명의 성도가 이 세미나에 참석한다. 지금까지 총 15만 명 정도의 사람이 거쳐 갔다고 말할 수 있다. 세미나에 왔던 이들은 대부분 목회자였다. 교인들을 잘 양육하기 위하여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이라 한분 한분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역사적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여러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는데, 요한계시록은 인류 역사 마지막 칠년 환난 시대의 배경이라는 미래사적 관점을 가지고 해석해야 한다. 이를 설명하는 구절이 요한계시록 1장 19절이다. 계시록은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들이 많다. 일곱 영에 의한 계시의 은사를 받아야만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 많은 이단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이 일곱 영을 받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요한계시록의 결론이 나타나는데, 요한계시록은 해석이 다양하지 않고, 정답이 있다. 그것이 가감하지 않은 요한계시록이다. 이는 일곱 영에 의한 계시의 은사를 받은 사람만 가능하다. 나는 그 체험자다. 성령시대의 바울 사도는 계시의 은사로 깨달음을 받았는데, 그 바울이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저주를 받는다고 말한 것처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곱 영에 의해서 계시의 은사를 통해 깨달은 요한계시록이 아니면 가감한 요한계시록이 된다. 지금은 환난시대를 준비하는 성령시대의 끝 무렵이다. 이제 곧 환난시대가 다가오는데, 요한계시록은 필수이다. 가감하지 않은 요한계시록으로 무장하여 영의 양식을 공급받기를 바란다. /서울성경전문박사원 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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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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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관통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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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참 역사를 기억하자
- 필자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김일성이 남침의 명령을 내려 북한 인민군들이 탱크를 몰고 서울로 쳐들어왔다. 당시 참혹했던 그때를 지금 생각하니 참 비극의 나날이었으며 끔직 했던 69년 전의 동전상잔의 참혹했던 비극의 날을 기억해본다. 당시 남한의 한국군의 행태는 어떠했는가! 평화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며 북한은 242개의 탱크를 앞세워 침공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정치인들과 군 장성들은 무도회에 참석해 춤을 추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북한의 침공에 깜작 놀란 남한의 정부와 한국군대는 후퇴를 거듭하며 대한민국을 북한에 내어 줘야 할 위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그 당시 한국전쟁으로 국내외 적으로 희생자가 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6·25의 참변에 대해서 그리고 천안함 저격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말씀도 없었다. 그저 중심적으로 한다는 말씀이 조선독립군을 지휘하였던 김원봉이라는 사람을 영웅으로 세워주기를 바라는 어처구니 없는 연설만을 이어 같다. 김원봉이라는 사람은 일본군과는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6·25사변 때 남한을 침공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아닌가. 어찌 그런 자가 대한민국의 영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묻고싶다. 6·25침공으로 남침한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호시탐탐 무력으로 남한을 파괴하고자 하는 북한 김정은을 좌북의 인사들은 왜 그리도 영웅적 존경을 하고 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김정은은 지금도 미사일을 마구 쏘아 되며 그것도 모자라 핵을 앞세워 남한에 공갈 협박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과 싱가포로에서 역사적 만남을 갖은지 1년이 되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무조건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며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 조건으로 연합군의 한미연합군사 훈련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전 세계가 바라던 협상이 불발되고 말았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정상의 제2차 정상회담이 깨지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 정부는 북한에 쌀을 전해야 한다느니 무상원조를 해야 한다느니 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허락지 않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북한은 여전히 남한에 데고 쓴 소리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너희들이 정희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둥 협박을 계속하고 있는 처지이다. 정부를 맡아 수고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 그리고 모든 정치인들이여 정신 차리십시다. 당신들을 믿고 살아가는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되는지를 생각하고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위해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부가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한국기독교인연합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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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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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참 역사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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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한국교회
- ▲ 류중현목사 6월의 달력을 넘기기 전, 우리는 이 땅의 아픈 상처를 한 번씩 곱씹게 된다. 반세기 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은 이 땅의 현대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6·25전쟁은 한반도를 비극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전쟁의 참화로 국군 14만, 연합군 3만 7천, 중공군 15만, 북한군 52만여 명이 사망했다. 민간인 피해도 컸다. 남한 24만, 북한 28만여 명이 사망했다. 이 중 13만 명은 민간인 학살에 의한 사망이었다. 이념의 갈등으로 군인들의 총칼이 민간인에게 향한 것이다. 3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137만여 명이 이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피해 규모를 생각하면 당시 한반도 인구의 3분의 1이 전쟁으로 인해 인적 피해를 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적 피해 또한 막대했다. 전쟁 기간 남한의 가축 피해는 소, 돼지, 닭 등 가축 280만 마리에 달했으며 주택 61만 채가 파괴되었다. 900개가 넘는 공장이 파괴되면서 공업시설의 43%가, 발전 시설의 41%가 가동 중단되었다. 파괴된 서울의 처참한 모습은 기록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그때를 기억하는 연합군 참전 군인들은 지금의 달라진 서울의 모습을 보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한국교회는 이 땅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교육기관을 건립하고 의료원을 개원하여 서양의 의술을 도입하는 등 애국 계몽 운동과 사회 개혁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3·1운동을 이끈 민족 대표의 중심이었으며 만세운동을 이끌고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임시정부의 주요 요직에서 기독교 신앙인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6·25전쟁 이후에도 한국교회는 전쟁의 참화로 고향을 잃고, 가족을 잃고,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함께 하며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 가난했던 시절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회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렸다. 물질과 규모의 유혹에 빠져 희생과 사랑을 버렸다. 화려한 성장 뒤에 감춰진 한국교회의 미래는 결코 밝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 성장의 상징과 같았던 미국 LA의 수정교회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교회를 기업처럼 운영했던 로버트 슐러목사는 1980년, 1,800만 달러를 들여 엄청난 규모의 성전을 지었다. 그러나 화려한 건물을 세운 지 33년 만에 파산을 신청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가톨릭교회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그리스도 대성당’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롤모델처럼 여겼던 수정교회가 더는 개신교회라는 이름을 담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 리처드 핼버슨은 “기독교는 유럽에서 문화가 되었고, 미국에서는 기업이 되었다”라며 미국교회의 물질주의에 편승한 현실을 비판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이제 기업을 넘어 대기업이 되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전한다고 하더라도 물질에 집착하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려 하지 않는 모습은 울리지 않는 꽹과리와 같이 공허할 뿐이다. 분단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 땅에는 배고픔에 굶주린 영혼이 넘쳐나고 있다. 복음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동포들이 있다. 이 땅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이제 한국교회는 탐욕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버리고, 낮아지고, 부서져야 소망이 있다. 한국교회에 주어진 역사적 소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회가 욕심을 버리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설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주실 것이다. /교통문화선교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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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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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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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은 ‘1냥’, 생각은 ‘5냥’
- 이런 말이 있다. ‘활동은 1냥, 생각은 5냥’ 즉, 열심히 일하면 1냥밖에 벌 수 없지만 생각하면 5냥을 번다는 뜻이다. 육체적 수고로 열심히 일하는 것에 나름대로 훌륭함이 있으나 아무리 건강해도 한 사람이 열 사람의 몫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각을 이용하여 도구를 개발하거나 방법을 개발하면 수천 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도 할 수 있다. 한 예로 1000여 명이 일주일 동안 할 일을 이 시대의 10대 발명품인 포클레인은 단 하루에 끝낸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이것이 현실이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장애를 극복하여 가는 능력이다. 따라서 성공이란 문제를 해결한 결과이다. 문제를 알아보는 것, 문제를 파악하는 것, 해결의 솜씨가 좋은 것은 한 마디로 생각을 잘하는 사람이다. 생각을 잘하는 것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머리가 좋다고 한다. 머리가 좋은 것을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사회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에서는 상황판단의 명수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회에서 머리가 좋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기억력으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통찰력, 명철, 슬기로운 것을 말한다. 후자를 우리는 지혜라고 한다.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자신이 가진 정보가 빈약하면 판단의 실수를 하게 된다. 지혜는 사람의 말을 듣고 의미를 파악하고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건을 보고 배후를 추론하고 하나를 듣고 열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그 사람의 정보수집과 정보 분석능력에 의존한다. 어떤 현상이나 사실에 관한 정보와 자기의 지식을 결합하여 그로부터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과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정보에 접해도 그것에서 나오는 반응이나 행동이 다르다는 것은 그 사람의 두뇌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을 판단력이라고 한다. 판단이란 정보를 행동으로 바꾸어가는 사고과정이며 그 변환과정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 두뇌의 구조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판단력은 지식 차원에 속하는 능력이 아니라 지혜의 차원에 속하는 능력이다. 즉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지식은 컴퓨터를 활용하여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의사결정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의사결정은 불완전한 정보로 미래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창조성, 실존성, 정치성이 결합된다. 이처럼 지혜가 생각하는 능력이라면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 혹은 경험을 통해 몸에 익힐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혜가 훈련되는 것이다. 많은 문제를 해결할수록 문제 해결력은 키워진다. 이것이 이론적이든, 경험적이든 문제해결의 과정이 곧 지혜를 기르는 과정이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을 개발하면서 책을 읽고 이를 생각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계속해야 한다. 특별히 문제의식을 느끼고 책을 읽어나간다면 지식과 지혜는 급속히 개발된다. 즉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책을 읽을 때 정보를 취득함과 동시에 그 정보를 현실에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목표를 정확히 세우고 이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정보를 취하고 그 정보를 활용하여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놀랍게 자라게 될 것이다. 이번 달 6월은 6·6 현충일과 6·25전쟁이 있는 호국의 달이다. 이번 달에도 나라 사랑 책 한 권씩을 어른도 청년들도 아이들도 읽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독서이다. 독서는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명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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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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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은 ‘1냥’, 생각은 ‘5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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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설렘
- ▲ 고석찬목사 가슴이 설레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아는가? 마음이 여간해서 가라앉지 않는 느낌,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 그리고 너 무 들뜬 나머지 잠이 오지 않는 느낌이 설렘의 느낌이다. 이런 설렘의 느낌은 사 랑과 기대와 소망의 감정 속에 생겨난다. 어린 시절 소풍 전날 밤의 설렘, 크리스 마스 이브와 캐롤송이 주는 설렘, 반가운 사람을 반나게 되었을 때의 설렘, 새로운 만남과새로운꿈이시작되려할때의기대감과설렘그리고예 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막 영접하려는 순간에 전해지는 영적 설렘까지 우리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설레는 마 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설렘 가운데에서도 가장 크고 놀라우며 두고두고 간직할 만한 자랑스럽고도 아주 귀한 설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지금부터 2천년 전, 하나님 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의 설렘이었을 것이다. 직접 베드로 사도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베드 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의 그 감격이란 아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말로만 듣던 그분이자기배에오셨고깊은곳으로가서그물을내리라고하 셨다. 밤새 허탕친 날이었지만, 그 말씀에 순종했더니 두 배에 고 기가 가득 차게 되었다. 그때부터 베드로는 두려움과 설렘 속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시작하였다. 예수님 가까이서 기 적을 경험할 때마다 그의 삶은 날마다 설레는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또 오병이어 기적 때에 예수님께 도시락을 헌납했던 이름 모를 소년의 설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는가? 아마도 부모가 아 들을시켜주님께먹을것을드리라고하지않았나싶지만어쨌 든그소년은물고기두마리와보리떡다섯개덕분에예수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운 역사의 서막 이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게 하신 그 순간, 소년 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을 목격하게 된다. 광주리 안에서 떡과 물고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해 보자. 놀라움과 설렘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을 것이다. 그 소년은 그 후 평생 그 순간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설렘은 십자가로 죽으셨던 주님의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세상에 어 느 누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그 것이 얼마나 믿기 힘든 일이었으면 복음서 기자들은 제자들조차 도 믿지 못했다는 것을 반복해서 기록했겠는가. 지난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삶을 늘 설렘으로 채우시는 주님 께 두 가지 소원을 품게 되었다. 하나는 남은 삶 동안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을 언제나 기대감과 설렘으로 바라보게 하옵소 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 실때마다설렘으로보실수있는종이되게하옵소서하는것이 다. 죄인 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설레게 할 수 있겠는가마는 신구약 성경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고, 백부장 역시 이방인이었지만, 놀라운 믿음을 가 짐으로 예수님의 기쁨이 되었다. 주님께서 이렇게 반응하신다면 정말 근사하지 않겠는가.“우 리 아들 믿음이 많이 자랐네. 이번에는 또 어떤 기도로 나를 기쁘 게 하려나. 이런, 그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거기까지 생각을 하 다니 말이야......” /대전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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