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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리를 지키는 자
      사람은 자기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참으로 어려운 것이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리, 경제인은 경제인의 자리, 교수는 교수의 자리, 학생은 학생의 자리, 목사는 목사의 자리, 승려, 신부 등 종교지도자는 종교지도자의 자리, 교인은 교인의 자리를 지켜야 하고 국민은 국민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작금의 현 정국을 바라보면 서글픔을 넘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난무하고 있다. 가정사는 굳이 제쳐두고라도,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지켜야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한 사람 자신은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며 말하면서 지금은 자유민주주의도 지향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국회청문회장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대한민국의 장관으로 임명되어서는 안 될 이 한 사람으로 인하여 국론이 분열되어 국민이 둘로 나뉘어 갈등과 증오로 치닫고 있으며, 나라가 흔들거리고 있음에도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될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사람을 바르게 세워야할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지켜야할 자리를 팽개치고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며 삼권분립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면서 자신들의 정권을 강화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더 나아가 언론인이라 자처하는 모 유명인사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일방적으로, 비상식적인 잘못된 사람의 대변인처럼 좌충우돌 검찰과 논쟁을 벌이며 시국을 어지럽게 만드는 편파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벌이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청와대의 고위층인사는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민초들의 소리를 외면하고 한사람의 잘못된 임명으로 비롯된 현시국을 어떻게 하든 안정시켜야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임에도,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고, 청와대는 청와대의 일만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말을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에서 나라를 국태민안으로 이끌어야 함에도 국론분열이 아니라는 안일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할 자리에 있으면서 그 자리를 지키지 않고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이 모든 것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하고 우매하기에 지켜야 할 자리에서 벗어날 때가 많다. 늘 사탄의 유혹과 궤계에 휘말려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사탄에게 넘어가 자리를 이탈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 흑암의 세력에 둘러쌓여 있어 어쩔 수 없이 사탄의 노예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기에,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권세자, 흑암의 세력, 공중권세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어 악한 마귀들을 대적해야 한다. 이 세상의 주관자요 권세자인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장 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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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8
  • “스스로 자립하는 기독교인이 되자”
      미국 시애틀 어린이연구기관에 따르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수가 1970년대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아졌는데 그러한 원인을 분석한 결과, 부모들의 비현실적인 과욕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지적했다. 내 자녀는 내 것이라는 착각으로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독이 된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자녀가 자립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결혼해도 부모가 자녀를 끼고 살려고 한다. 자녀를 오래 끌어안고 사는 것은 자녀를 바보로 망치는 길이다. 부모 밑에서만 자라는 아이는 독립심도, 자립심도 없고, 남을 의존하는 습성만 키워서 결국은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 결국 부모의 욕심이 자녀를 망치게 된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모든 욕심은 내 것이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착각하며 사는 사람이 많졌다. 착각은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 선택은 잘못된 결과로 이어진다. 바른 결정과 바른 결과를 얻기 위해선 욕심을 버리고 내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국의 목사 찰스 스펄전은 “내 것이라 하는 것 중에 진정한 내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건강, 재산, 자식, 배우자도 내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믿음만이 내 것이다. 내 손에 있고, 내 주머니에 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다. 착각에서 벗어나야 바르게 살 수 있다. 통계청에서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내 시간이니 내 마음대로 쓴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시간은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 순간 따라가야 한다. 또한 ‘신체발부 수지부모’란 말도 옛말이 되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몸을 손상시키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제 미용성형수술협회는 우리나라가 성형수술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임을 발표했다. 한국이 성형 공화국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중국과 일본 등에서 성형관광이 유행하기도 했다. 동 협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3만 5천 개 성형외과 병원에서 조사한 결과 가슴확대수술(15.8%), 지방흡입수술(14%), 눈 쌍꺼풀수술(12.9%), 코 성형수술(7.6%), 복부 성형수술(7/4%) 등으로 나타났다. 물질도, 시간도, 몸도, 건강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영원히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 마음대로 사용한다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 미국의 부자 록펠러는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모든 기회에는 부담이 나의 모든 소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거꾸로 말하면 의무를 다할 때 권리가 생기고 부담을 감당할 때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책임을 다할 때 소유가 풍성해지는 것이다. 부자는 부자로써의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을 준 것은 개인만 잘 먹고 잘 살라고 준 것이 아니다. 그 부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라고,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바르게 물질을 쓸 때, 하나님께서 더 크게 축복해주시고 높여 주신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결국은 손에 쥐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 그렇게 욕심을 부리며 사는가.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모은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 재산 때문에 다투고 죄짓고 지옥에 가는 일들도 많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것은 재산이 아니라 신앙이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기도하고, 말씀보고, 잘 섬기는 모습을 남겨주는 것이 자녀가 축복받고 성공하는 길이다.           /강남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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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04
  • 효도와 교회
      성경을 바탕으로 사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한다. 성경에 보면(로마서 16장 1~2절) 교인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인 교인에게 합당한 예절이 있다고 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우리 인간에게는 지정의라고 하는 정서를 갖추어 주셨다. 그래서 인간은 창의력이 있고, 질서의식이 있고, 법치와 준법정신이 있고 도덕심이 있게 해주셨다. 그래서 이 세상의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하다고 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성경을 주시고 10가지 계명, 곧 십계명을 주셨는데 그 십계명의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이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계명의 첫 번째가 효도하라는 계명이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다. 그리고 에베소서 6장 15절에도 “너희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고, 에베소서 6장 2절에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부모님을 섬겨 효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효도를 강조하셨을까?  첫째 이유는 자식들은 부모님의 은공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은공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마태복음 15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어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지 말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은공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으며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이다. 두 번째는 자식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세상을 바로 세우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하나님의 창조 통로이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부모를 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나아가 효도는 그 가정을 세우고, 사회를 세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세 번째는 교회도 효도하는 가정처럼 어른을 잘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어른을 존경하고 잘 섬겨야 한다. 출애굽기 6장 14절에 보면 “그들의 조상을 따라 집의 어른은 이러하니라”라고 했고, 출애굽기 6장 25절에 보면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부디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였고 그는 비느하스를 낳았으니 이들은 레위 사람의 조상을 따라 가족의 어른들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은 구약교회요, 구약교회는 신약교회의 모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그들의 후손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가? 그들은 전통을 소중히 여겼고 어른을 존경하는 효도를 귀하게 여겼다고 본다.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가 되면 어른을 섬기는 효도는 안 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효도의 정신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 교회는 은퇴하는 원로목사에게 은퇴금을 드리면서 우리 교회에 나오시지 말고 멀리 떠나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교인들에게 합당한 예절은 과연 무엇일까? 원로목사님과 담임목사님,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화목하게 어우러지며 하나 되는 교회,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 아닐까? /서울신광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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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15
  • 독도는 한국영해의 닻
    ▲ 정성구목사   1964년 나는 외국 유학의 꿈이 있어서, 종로에 있는 시사영어학원에 등록해서 영어강의를 들었다. 타임지를 읽고 해석하는 과목이었다. 그때 강사는 변영태씨였다. 그는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와 서울대 교수,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아서인지 만년에 영어학원 강사로 겨우 생활을 하였다. 마침 변영태선생의 가족이 내가 일하던 동산교회에 출석했다. 동산교회는 박윤선목사와 김성환목사가 목회했고, 나는 당시 교육전도사로 봉사했었다.  변영태선생은 영어의 달인인 데다가 중국어도 능통했기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외무장관으로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외무장관으로서 제네바 회의를 비롯해 6, 7차 U.N. 총회 한국대표로서 이승만대통령의 명을 따라 ‘한미방위조약’을 만들어 서명한 탁월하고 진실한 외교관이었다. 그가 얼마나 올곧고 정직했으면 외국 출장에서 돌아오면 남은 출장비를 반드시 국고에 넣었다. 친척들이나 자녀들의 불평은 그렇게 높은 직책에 있으면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자, 모두 그를 배신하고 욕을 했다. 그래도 그는 가난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과 진실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살았고, 만년에는 병든 아내를 위해서 직접 연탄불을 갈 정도였다. 그는 건국 초기에 한국외교의 기초를 튼튼히 했지만, 특히 독도 문제에 대해서 철저하게 일본의 침략적 계획을 물리친 일이다.  1954년 10월 28일 우리 외교부에서 반박 구상서를 작성했다. 즉 분쟁을 국제 사법재판소에 부탁하자는 일본정부의 제안은 사법적인 가장으로서 허위주장하는 확인을 국제사법재판소에 구하여야 한다는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런 분쟁이 없는데도 유사적, 영토적 분쟁을 조장하는 것은 바로 일본이다. 변영태선생은 독도가 영토 문제가 아닌 역사 문제라는 논리를 폈다. 1954년 9월 24일 구상서에서 “한국은 40년 이상이나 제국적 일본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그의 권리가 약탈당하였다는 사실을 일본에게 환기시키는 바이다. 일본정부가 분명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침략은 차차로 진행되다가 1910년 한국의 일본병합으로서 그 정점에 도달 하였다 … 시네마 현청이 독도를 자칭하여 그의 관할권에 포함시킨 것은 이러한 협정의 1년 후이다”며, “과거에 있어서 일제 침략의 최초로 희생된 독도를 또다시 점유하려 함은 대일강화조약을 파기하고 한국을 재침하려는 의도적 발로이다”고 했다.  변영태선생은 그의 꼬장꼬장하면서도 능숙한 외교로 이승만대통령의 오른팔이 되어 독도를 지켜냈다. 그는 구체적으로 1954년 독도에 독도 등대를 설치하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로태극기와 한국령 표지석을 설치하여 독도가 한국땅인 것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역사가들이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하고 독재의 화신이니, 친일이니 하는 오명을 덮어씌우고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변영태 외무장관 겸 국무총리의 나라사랑과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한미방위조약을 만들어 미국의 우산 아래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초를 놓았고, 독도를 확실히 지켜낸 것을 오늘의 세대는 알는지 모르겠다. 나라사랑을 위한 변영태선생의 애국심과 그의 하나님 중심 사상과 정직과 진실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7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오늘날은 자칭 애국자가 많지만, 그 시대에 자유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외교적 노력과 하나님 앞에서 양심과 정직으로 살려는 지도자가 그립다. /총신대·대신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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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9
  • 고통의 날갯짓
      우리나라의 교회학교 일선에서 땀흘려 수고하시는 지도자들이 가끔 푸념섞인 말들을 이구동성으로 쏟아놓는다. “왜 우리나라의 교회학교는 교사들의 열정이 점점 식어져갑니까” “왜 우리나라의 교회학교는 점점 쇄락하고 있는가?” “왜 우리나라의 교회교육이 더욱 암울해져 가는가? 이러한 생각을 가진 지도자들을 향해 조용히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다음세대들을 향한 교회교육이 시행착오를 덜 하도록 어떤길잡이 노릇을 해 주었고, 올바르게 가르쳐 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얼마만큼 통감하였는가?” 우리는 그 옛날, 예수님께서 아무런 교육장비도 없이 산이나 빈들, 바닷가를 “교실”로 삼고 공중의 새와 길가의 풀 한 포기를 ‘교재’로 삼아 수많은 제자들에게 열정어린 훈육을 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 스승이시다. 기독교교육이 추구할 가치는 대 스승이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디딤돌로 삼아 착실하게 그 가치들을 구현해 나아가는 일이다. 예수님은 공생애동안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사 많은 무리들에게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병든자들을 치유하시면서 땀을 흘리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에 온갖 열정을 쏟아내셨다.(마태복음 9:35) 여기에서 예수님의 참된 지도자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교육의 쇄락현상을 단지 어떤 환경적 요인 탓으로만 돌리려는 나약한 지도자들을 발견하게 되고, 대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사역의 현장에서 눈물어린 땀을 쏟아내어야 참된 복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교훈해 주고 있다. 세상의 학문과 교회교육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그 전달방법도 다르다. 이를테면, 어느 중학교 수학담당 교사가 지난 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취중상태로 욕지거리를 하며 부부싸움으로 하고 이튿날 아직도 취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출근을 하고 지난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생들에게 전과 다름없이 수학공식을 잘 풀어주었다고 했을 때, 만약 그 수학교사가 중학교 교단이 아닌 교회 교육의 현장이었다면 과연 하나님은 어떻게 평가하실까? 기독교 지도자는 달라야 한다. 차원이 다르다. 교회 교육을 맡은 지도자가, 그의 삶은 엉터리면서 교회에 와서는 공과학습시간에 어려운 성경이야기를 마치 먹기 쉽지 않은 약을 캡슐로 포장하듯이 재밌게 들려주었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엔 “외식하는 무리”라고, 언짢아(?)하셨을 것이다. 경건하지 못한 자와 외식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으신다. 아무리 빼어난 재능을 겸비한 자라도 그의 외침은 공중에 떠있는 풍선처럼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나오기까지 많은 고통의 나날을 넘기면서 변화시키려는 “날갯짓”을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고 끝내 인류의 구원역사를 이루셨다. 가을에 곡식단을 수확하기 위해, 과연 농부의 “고통의 날갯짓”이 없이 가능한 일일까? 더군다나 마귀의 손아귀에 매어있는 저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특별히 세움을 받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고통의 날갯짓”을 귀찮아하고 마다한다면 10년, 50년, 100년의 세월이 흘러간들 회복하기 어려운 고난의 행진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오늘의 교회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들은 통감하고 또 통감하여야 할 것이다.  /(사)나눔플러스 이사장·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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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1
  • 성경 관통하여 보자
     지금까지 2500여 회의를 진행한 요한계시록 강해 세미나는 하나님의 일곱 영에 의해서 가감하지 않은 요한계시록을 열어주셔서 하는 세미나이다. 이 세미나는 요한계시록만 다루지 않는다. 세미나는 요한계시록을 기초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를 다루는 세미나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과 연결된 모든 성경구절을 종합해서 완전히 성경의 뿌리까지 보게 하는 세미나이다. 여러 명의 계시록 강해 목사님들이 계시지만 가감하지 않은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는 세미나는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현재는 더 나아가 가감하지 않은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를 강해하고 있다. 가감하지 않는 요한계시록을 깨닫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일곱 영에 의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 일곱 영을 다루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바라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진리의 영과 일곱 영을 구분하자면 진리의 영은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모든 성경을 깨닫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일곱 영은 그중에서 요한계시록을 온전히 깨닫게 해주신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진리의 성령이 임하면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장래의 일’이 요한계시록을 말한다. 우리가 한 해에 약 200회 정도 집회를 하고, 한 해 약 만 명의 성도가 이 세미나에 참석한다. 지금까지 총 15만 명 정도의 사람이 거쳐 갔다고 말할 수 있다. 세미나에 왔던 이들은 대부분 목회자였다. 교인들을 잘 양육하기 위하여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이라 한분 한분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역사적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여러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는데, 요한계시록은 인류 역사 마지막 칠년 환난 시대의 배경이라는 미래사적 관점을 가지고 해석해야 한다. 이를 설명하는 구절이 요한계시록 1장 19절이다. 계시록은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들이 많다. 일곱 영에 의한 계시의 은사를 받아야만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 많은 이단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이 일곱 영을 받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요한계시록의 결론이 나타나는데, 요한계시록은 해석이 다양하지 않고, 정답이 있다. 그것이 가감하지 않은 요한계시록이다. 이는 일곱 영에 의한 계시의 은사를 받은 사람만 가능하다. 나는 그 체험자다. 성령시대의 바울 사도는 계시의 은사로 깨달음을 받았는데, 그 바울이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저주를 받는다고 말한 것처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곱 영에 의해서 계시의 은사를 통해 깨달은 요한계시록이 아니면 가감한 요한계시록이 된다. 지금은 환난시대를 준비하는 성령시대의 끝 무렵이다.  이제 곧 환난시대가 다가오는데, 요한계시록은 필수이다. 가감하지 않은 요한계시록으로 무장하여 영의 양식을 공급받기를 바란다.  /서울성경전문박사원 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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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25
  • 대한민국의 참 역사를 기억하자
      필자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김일성이 남침의 명령을 내려 북한 인민군들이 탱크를 몰고 서울로 쳐들어왔다. 당시 참혹했던 그때를 지금 생각하니 참 비극의 나날이었으며 끔직 했던 69년 전의 동전상잔의 참혹했던 비극의 날을 기억해본다.  당시 남한의 한국군의 행태는 어떠했는가! 평화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며 북한은 242개의 탱크를 앞세워 침공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정치인들과 군 장성들은 무도회에 참석해 춤을 추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북한의 침공에 깜작 놀란 남한의 정부와 한국군대는 후퇴를 거듭하며 대한민국을 북한에 내어 줘야 할 위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그 당시 한국전쟁으로 국내외 적으로 희생자가 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6·25의 참변에 대해서 그리고 천안함 저격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말씀도 없었다.  그저 중심적으로 한다는 말씀이 조선독립군을 지휘하였던 김원봉이라는 사람을 영웅으로 세워주기를 바라는 어처구니 없는 연설만을 이어 같다. 김원봉이라는 사람은 일본군과는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6·25사변 때 남한을 침공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아닌가. 어찌 그런 자가 대한민국의 영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묻고싶다.  6·25침공으로 남침한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호시탐탐 무력으로 남한을 파괴하고자 하는 북한 김정은을 좌북의 인사들은 왜 그리도 영웅적 존경을 하고 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김정은은 지금도 미사일을 마구 쏘아 되며 그것도 모자라 핵을 앞세워 남한에 공갈 협박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과 싱가포로에서 역사적 만남을 갖은지 1년이 되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무조건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며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 조건으로 연합군의 한미연합군사 훈련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전 세계가 바라던 협상이 불발되고 말았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정상의 제2차 정상회담이 깨지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 정부는 북한에 쌀을 전해야 한다느니 무상원조를 해야 한다느니 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허락지 않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북한은 여전히 남한에 데고 쓴 소리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너희들이 정희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둥 협박을 계속하고 있는 처지이다.  정부를 맡아 수고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 그리고 모든 정치인들이여 정신 차리십시다. 당신들을 믿고 살아가는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되는지를 생각하고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위해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부가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한국기독교인연합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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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
    2019-07-10
  • 6·25와 한국교회
    ▲ 류중현목사   6월의 달력을 넘기기 전, 우리는 이 땅의 아픈 상처를 한 번씩 곱씹게 된다. 반세기 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은 이 땅의 현대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6·25전쟁은 한반도를 비극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전쟁의 참화로 국군 14만, 연합군 3만 7천, 중공군 15만, 북한군 52만여 명이 사망했다. 민간인 피해도 컸다. 남한 24만, 북한 28만여 명이 사망했다. 이 중 13만 명은 민간인 학살에 의한 사망이었다. 이념의 갈등으로 군인들의 총칼이 민간인에게 향한 것이다. 3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137만여 명이 이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피해 규모를 생각하면 당시 한반도 인구의 3분의 1이 전쟁으로 인해 인적 피해를 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적 피해 또한 막대했다. 전쟁 기간 남한의 가축 피해는 소, 돼지, 닭 등 가축 280만 마리에 달했으며 주택 61만 채가 파괴되었다. 900개가 넘는 공장이 파괴되면서 공업시설의 43%가, 발전 시설의 41%가 가동 중단되었다. 파괴된 서울의 처참한 모습은 기록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그때를 기억하는 연합군 참전 군인들은 지금의 달라진 서울의 모습을 보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한국교회는 이 땅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교육기관을 건립하고 의료원을 개원하여 서양의 의술을 도입하는 등 애국 계몽 운동과 사회 개혁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3·1운동을 이끈 민족 대표의 중심이었으며 만세운동을 이끌고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임시정부의 주요 요직에서 기독교 신앙인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6·25전쟁 이후에도 한국교회는 전쟁의 참화로 고향을 잃고, 가족을 잃고,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함께 하며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 가난했던 시절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회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렸다. 물질과 규모의 유혹에 빠져 희생과 사랑을 버렸다.  화려한 성장 뒤에 감춰진 한국교회의 미래는 결코 밝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 성장의 상징과 같았던 미국 LA의 수정교회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교회를 기업처럼 운영했던 로버트 슐러목사는 1980년, 1,800만 달러를 들여 엄청난 규모의 성전을 지었다. 그러나 화려한 건물을 세운 지 33년 만에 파산을 신청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가톨릭교회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그리스도 대성당’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롤모델처럼 여겼던 수정교회가 더는 개신교회라는 이름을 담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 리처드 핼버슨은 “기독교는 유럽에서 문화가 되었고, 미국에서는 기업이 되었다”라며 미국교회의 물질주의에 편승한 현실을 비판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이제 기업을 넘어 대기업이 되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전한다고 하더라도 물질에 집착하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려 하지 않는 모습은 울리지 않는 꽹과리와 같이 공허할 뿐이다. 분단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 땅에는 배고픔에 굶주린 영혼이 넘쳐나고 있다. 복음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동포들이 있다. 이 땅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이제 한국교회는 탐욕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버리고, 낮아지고, 부서져야 소망이 있다. 한국교회에 주어진 역사적 소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회가 욕심을 버리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설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주실 것이다. /교통문화선교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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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02
  • 활동은 ‘1냥’, 생각은 ‘5냥’
     이런 말이 있다. ‘활동은 1냥, 생각은 5냥’ 즉, 열심히 일하면 1냥밖에 벌 수 없지만 생각하면 5냥을 번다는 뜻이다. 육체적 수고로 열심히 일하는 것에 나름대로 훌륭함이 있으나 아무리 건강해도 한 사람이 열 사람의 몫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각을 이용하여 도구를 개발하거나 방법을 개발하면 수천 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도 할 수 있다. 한 예로 1000여 명이 일주일 동안 할 일을 이 시대의 10대 발명품인 포클레인은 단 하루에 끝낸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이것이 현실이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장애를 극복하여 가는 능력이다. 따라서 성공이란 문제를 해결한 결과이다. 문제를 알아보는 것, 문제를 파악하는 것, 해결의 솜씨가 좋은 것은 한 마디로 생각을 잘하는 사람이다. 생각을 잘하는 것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머리가 좋다고 한다. 머리가 좋은 것을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사회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에서는 상황판단의 명수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회에서 머리가 좋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기억력으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통찰력, 명철, 슬기로운 것을 말한다. 후자를 우리는 지혜라고 한다.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자신이 가진 정보가 빈약하면 판단의 실수를 하게 된다. 지혜는 사람의 말을 듣고 의미를 파악하고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건을 보고 배후를 추론하고 하나를 듣고 열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그 사람의 정보수집과 정보 분석능력에 의존한다. 어떤 현상이나 사실에 관한 정보와 자기의 지식을 결합하여 그로부터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과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정보에 접해도 그것에서 나오는 반응이나 행동이 다르다는 것은 그 사람의 두뇌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을 판단력이라고 한다. 판단이란 정보를 행동으로 바꾸어가는 사고과정이며 그 변환과정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 두뇌의 구조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판단력은 지식 차원에 속하는 능력이 아니라 지혜의 차원에 속하는 능력이다. 즉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지식은 컴퓨터를 활용하여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의사결정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의사결정은 불완전한 정보로 미래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창조성, 실존성, 정치성이 결합된다. 이처럼 지혜가 생각하는 능력이라면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 혹은 경험을 통해 몸에 익힐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혜가 훈련되는 것이다. 많은 문제를 해결할수록 문제 해결력은 키워진다. 이것이 이론적이든, 경험적이든 문제해결의 과정이 곧 지혜를 기르는 과정이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을 개발하면서 책을 읽고 이를 생각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계속해야 한다. 특별히 문제의식을 느끼고 책을 읽어나간다면 지식과 지혜는 급속히 개발된다. 즉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책을 읽을 때 정보를 취득함과 동시에 그 정보를 현실에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목표를 정확히 세우고 이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정보를 취하고 그 정보를 활용하여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놀랍게 자라게 될 것이다. 이번 달 6월은 6·6 현충일과 6·25전쟁이 있는 호국의 달이다. 이번 달에도 나라 사랑 책 한 권씩을 어른도 청년들도 아이들도 읽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독서이다. 독서는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명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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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2
  • 가슴 설렘
    ▲ 고석찬목사 가슴이 설레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아는가? 마음이 여간해서 가라앉지 않는 느낌,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 그리고 너 무 들뜬 나머지 잠이 오지 않는 느낌이 설렘의 느낌이다. 이런 설렘의 느낌은 사 랑과 기대와 소망의 감정 속에 생겨난다. 어린 시절 소풍 전날 밤의 설렘, 크리스 마스 이브와 캐롤송이 주는 설렘, 반가운 사람을 반나게 되었을 때의 설렘, 새로운  만남과새로운꿈이시작되려할때의기대감과설렘그리고예 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막 영접하려는 순간에 전해지는 영적 설렘까지 우리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설레는 마 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설렘 가운데에서도 가장 크고 놀라우며 두고두고 간직할 만한 자랑스럽고도 아주 귀한 설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지금부터 2천년 전, 하나님 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의 설렘이었을 것이다.  직접 베드로 사도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베드 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의 그 감격이란 아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말로만 듣던 그분이자기배에오셨고깊은곳으로가서그물을내리라고하 셨다. 밤새 허탕친 날이었지만, 그 말씀에 순종했더니 두 배에 고 기가 가득 차게 되었다. 그때부터 베드로는 두려움과 설렘 속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시작하였다. 예수님 가까이서 기 적을 경험할 때마다 그의 삶은 날마다 설레는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또 오병이어 기적 때에 예수님께 도시락을 헌납했던 이름 모를 소년의 설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는가? 아마도 부모가 아 들을시켜주님께먹을것을드리라고하지않았나싶지만어쨌 든그소년은물고기두마리와보리떡다섯개덕분에예수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운 역사의 서막 이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게 하신 그 순간, 소년 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을 목격하게 된다. 광주리 안에서 떡과 물고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해 보자. 놀라움과 설렘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을 것이다. 그 소년은 그 후 평생 그 순간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설렘은 십자가로 죽으셨던 주님의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세상에 어 느 누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그 것이 얼마나 믿기 힘든 일이었으면 복음서 기자들은 제자들조차 도 믿지 못했다는 것을 반복해서 기록했겠는가.  지난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삶을 늘 설렘으로 채우시는 주님 께 두 가지 소원을 품게 되었다. 하나는 남은 삶 동안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을 언제나 기대감과 설렘으로 바라보게 하옵소 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 실때마다설렘으로보실수있는종이되게하옵소서하는것이 다. 죄인 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설레게 할 수 있겠는가마는 신구약 성경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고, 백부장 역시 이방인이었지만, 놀라운 믿음을 가 짐으로 예수님의 기쁨이 되었다.  주님께서 이렇게 반응하신다면 정말 근사하지 않겠는가.“우 리 아들 믿음이 많이 자랐네. 이번에는 또 어떤 기도로 나를 기쁘 게 하려나. 이런, 그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거기까지 생각을 하 다니 말이야......”  /대전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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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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