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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크리스천과 애국운동
6월은 애국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현충일과 6·25사변 75주년을 맞으면서 나라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에는 국경을 초월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겐 자신들이 속한 국가가 있기에 애국 애족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에 나라를 사랑하고 헌신과 충성을 다 해야만 한다. 크리스천의 애국운동은 교회 역사를 보면 늘 헌신적으로 함께 해왔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는 「금주·금연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당시, 우리는 매우 가난하였다. 그런데도 술과 담배로 낭비하는 생활로 절제하지를 못했다.교회가 앞장 서서 근검 절제하는 생활운동은 지금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도 교단별로 경건 절제운동으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와 기타 생활 전반에 걸쳐 낭비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애국운동임이 분명하다. 이런 운동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과 빛이되라』시는 분부의 실천이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풍족한 생활을 하는 뒷면에서 어두운 음지에 살아가는 장애인들과 노숙자들을 돕는 교회의 실천은 역시 세상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크리스천은 모두 일어나 애국운동에 동참해야만 한다. 6·25사변을 생각하면 그때, 우리의 힘만으론 감당키 어려웠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유엔(UN)군 16개국이 동참하여 준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금도 이 땅에는 평화가 요구되고 있다. 북한은 핵을 무기로 삼고 위협하고 있다. 평화를 깨려는 불안과 두려움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때 평화를 구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고 나라를 지키는데 솔선 수범해야 한다. 그것이 애국운동이다. 평화가 제일이다. 신곡(神曲)을 쓴 유명한 시인 단테는 이 세상의 최고 단어는 「평화」라고 했다. 그가 한번은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날 밤, 위안을 얻기위해 산타크로채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을 때 마침, 저녁 기도를 드리다가 나온 힐라리오라는 수도사가 “무엇을 구하러 왔소?”라고 물어, 단테가 “평화요”라고 해서 남겨진 말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이해 관계가 얽힌 국가 간에도 평화이고, 우리나라 안에서도 계층간의 평화와 정치적 혼란 역시 평화가 우선이고 이 사회 곳곳에, 가정마다에도 서로간의 평화가 제일이다. 애국의 달, 6월이 평화의 기쁨이 있기를 기원한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4~19)”/예장 통합측 증경총회장·경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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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애국하는 길
세계최대 평택 주한 미군사령부 영내에 들어가면 「포 채플린즈 메모리얼 채플」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라틴어 격언이 눈에 띈다. “PRO DEO ET PATRIA”, “하나님과 나라를 위하여!”는 애국심에 대한 헌신을 표현하는 격언이다. 이 채플의 4명의 성직자는 두 명의 개신교 목사, 한 분의 유대교 랍비, 한 분의 로마카톨릭 신부들로 ‘불멸의 성직자’ 또는 ‘도체스터 성직자’라고도 불린다. 1943년 2월 3일 미군 수송선 SS 도체스터호가 침몰하면서 민간인과 군인을 구출하다 사망한 성직자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최악의 해상 참사 중 하나였다. 민간 여객선인 도체스터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선박 관리국의 병력 수송선으로 군용으로 개조되었다. 1943년 1월 23일 뉴욕을 출발하여 그린란드로 향했으며 해안 경비대의 호위를 받는 3척의 선박으로 구성된 호송대의 일원으로 약 900명을 태웠다. 2월 3일 이른 아침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앞바다에서 독일 잠수함 U-223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였다. 목사들은 다른 군인들이 구명보트에 탑승하도록 도왔고 구명조끼가 떨어지자 자신들의 구명조끼를 포기하고 배와 함께 가라앉으면서 팔짱을 끼고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이 네 명의 군목들의 이야기는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수많은 추모비가 세워지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사후에 수훈 십자 훈장과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군목들은 명예훈장(미국최고의 훈장)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기에 수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의회는 명예훈장과 동일한 무게와 가치를 지닌 훈장을 제정했다. 군인이 전장에서 목숨을 마다하지 않고 희생하는 것만이 애국이 아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군인들만의 일은 아니다. 기독교신자를 포함하여 국민 모두는 군인들과 같은 무게로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애국’이 특정집단의 전유물이 될 때 공산혁명이나 나치독재,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정당화되고 만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모든 국민의 애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와 시대 앞에서 “나 몰라라”,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하루살이’ 일상은 애국이 아니라 망국의 고속도로를 까는 것이다. 오늘 탄핵정국과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실 앞에 무관심과 체념은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짐을 내팽개치는 범죄다. 대선 정국 앞에서 골치 아픈 정치 어젠다요 세상 일이라고 외면한다면 이후에 닥쳐올 뻔한 미래를 자초하는 어리석은 자폭행위가 된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개인적 희생과 사랑만으로 멈추지 말고 공동체적 행복과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양보하는 희생이 일반화되는 나라와 국민이 되길 위해 분노 게이지는 의지로 낮추고 조절하며, 필요한 적과 상대를 인정하며 공동선을 추구하며 화합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모든 국민이 실천하는 ‘애국’이 될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누구도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오직 하나님만이 들을 수 있게 하는 ‘골방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지키시고 세우시는 나라, 대한민국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가는 군대를 모아 국경선을 지키지만 교회는 성도를 모아 새벽기도, 철야기도 군대를 비롯한 영적군대를 만들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적과 싸우며 사명을 다하고 있다.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사실은 통치자와 국민 사이에는 분명 인격과 성품의 연결이 있다. 지도자의 나쁜 정책과 성품은 전염성을 가지고 국민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지도자의 인격적 부패와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한 성품은 사회 전반을 파괴하고 만다. 그러기에 국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애국하는 길은 선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국가와 교회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함께 권선징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전국기독교수연합회 회장·칼빈대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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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이루는 축복공간
트럼프 대통령 2기가 시작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남자와 여자를 성별로 인정한다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서명을 하였는데, 이에 때를 맞추어서 유럽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성별만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뉴스에서 회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력한 로비를 바탕으로 동성애를 확산시키려는 퀴어(queer/괴상한) 단체들의 활동 때문이다. 이들 동성애 단체는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매스컴과 정치를 장악하고, 이미 학교와 문화까지도 활동 영역을 넓혀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까지 동성애 이념으로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70세가 넘어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까지 동성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어 손가락질받고 있다. 이혼녀로 혼자 자녀를 양육하며 배우 활동한 것을 필자도 한 때는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자녀를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만 잠잠해도 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 큰 파문을 불러왔다. 그것은 그의 아들이 미국에서 남자와 결혼하였는데, ‘사위가 자랑스럽다’라는 투의 발언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아들은 며느리로 상대집안과 결혼한 것이라는 해괴한 일로 추정된다. 윤여정의 이런 발언은 소수 동성애 단체에는 환영받았겠지만, 대부분 일반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정서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배우도 공인이다. 공인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공인의 발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모방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점에서 윤여정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 하고, 취소하여야 한다. 사과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 공인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3남매를 둔 다둥이 가정의 부모인데, 셋째에게는 국가가 국민건강보험도 제외했다. 내가 결혼하여 자녀를 출생할 때 국가가 나서서 산아제한을 실시하였다. 그 한 예로 예비군 훈련을 가면 정관수술을 간호사들이 시행할 정도였다. 집안에 의사와 간호사가 많아서 들은 이야기로는 정관과 난관수술의 인원이 의료인들에게 할당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망국적인 일을 행한 지난 정부의 의료인들은 반성과 회개를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은 의료분쟁으로 환자의 생명을 더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서 의료인들은 정부 시책을 대할 때 자기들에게 유리하면 생명도 죽이는 불임과 낙태뿐만 아니라, 환자를 방치하고 데모하는 의료분쟁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동성애자는 자녀를 낳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망국적인 동성애와 무분별한 낙태로 가뜩이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결혼하여도 자녀를 낳지 않는 시대에 초저출산 문제로 대한민국이 소멸하여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라는 통계가 심각한 상황이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까? 나는 다둥이 자녀를 둔 신학생들과 농어촌 미자립 개척교회를 돕는 사역을 위해 벌써 24차례나 예수학교로 모였다. 그랬더니 2명 이상 8명까지 자녀를 낳은 다둥이 가정이 모이는 집회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다시 여름에 홍천 시냇가의 숲 펜션에서 한국과 몽골과 일본의 어린이들을 불러서 2박3일 국제영어성경캠프를 무료로 진행한다. 미디어에 종사하는 분들은 다둥이 가정의 행사를 자주 소개하여 사회적 분위기를 고취해야 한다/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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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이루는 축복공간
트럼프 대통령 2기가 시작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남자와 여자를 성별로 인정한다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서명을 하였는데, 이에 때를 맞추어서 유럽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성별만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뉴스에서 회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력한 로비를 바탕으로 동성애를 확산시키려는 퀴어(queer/괴상한) 단체들의 활동 때문이다. 이들 동성애 단체는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매스컴과 정치를 장악하고, 이미 학교와 문화까지도 활동 영역을 넓혀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까지 동성애 이념으로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70세가 넘어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윤여정배우까지 동성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어 손가락질받고 있다. 이혼녀로 혼자 자녀를 양육하며 배우 활동한 것을 필자도 한 때는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자녀를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만 잠잠해도 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 큰 파문을 불러왔다. 그것은 그의 아들이 미국에서 남자와 결혼하였는데, ‘사위가 자랑스럽다’라는 투의 발언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아들은 며느리로 상대집안과 결혼한 것이라는 해괴한 일로 추정된다. 윤여정의 이런 발언은 소수 동성애 단체에는 환영받았겠지만, 대부분 일반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정서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배우도 공인이다. 공인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공인의 발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모방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점에서 윤여정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 하고, 취소하여야 한다. 사과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 공인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3남매를 둔 다둥이 가정의 부모인데, 셋째에게는 국가가 국민건강보험도 제외했다. 내가 결혼하여 자녀를 출생할 때 국가가 나서서 산아제한을 실시하였다. 그 한 예로 예비군 훈련을 가면 정관수술을 간호사들이 시행할 정도였다. 집안에 의사와 간호사가 많아서 들은 이야기로는 정관과 난관수술의 인원이 의료인들에게 할당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망국적인 일을 행한 지난 정부의 의료인들은 반성과 회개를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은 의료분쟁으로 환자의 생명을 더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서 의료인들은 정부 시책을 대할 때 자기들에게 유리하면 생명도 죽이는 불임과 낙태뿐만 아니라, 환자를 방치하고 데모하는 의료분쟁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동성애자는 자녀를 낳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망국적인 동성애와 무분별한 낙태로 가뜩이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결혼하여도 자녀를 낳지 않는 시대에 초저출산 문제로 대한민국이 소멸하여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라는 통계가 심각한 상황이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까? 나는 다둥이 자녀를 둔 신학생들과 농어촌 미자립 개척교회를 돕는 사역을 위해 벌써 24차례나 예수학교로 모였다. 그랬더니 2명 이상 8명까지 자녀를 낳은 다둥이 가정이 모이는 집회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다시 여름에 홍천 시냇가의 숲 펜션에서 한국과 몽골과 일본의 어린이들을 불러서 2박3일 국제영어성경캠프를 무료로 진행한다. 미디어에 종사하는 분들은 다둥이 가정의 행사를 자주 소개하여 사회적 분위기를 고취해야 한다. /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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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차기 대통령,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 결정을 하면서 오는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차기 대통령은 경제, 외교안보, 남북관계 등 총체적 위기의 상황을 극복해야 할 막중한 사명과 역량을 갖춘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지난 1997년 11월 IMF국가경제부도사태로 대한민국이 휘청거렸을 때 이듬해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IMF사태를 조기에 극복하고 하락한 국가신용등급을 다시 끌어 올렸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지금 각 당은 대통령 예비경선을 진행하고 있다. 12.3비상계엄선포와 탄핵 그리고 구속과 파면으로 이어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의 우두머리라는 혐의로 제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치러지는 6.3대선은 IMF를 극복한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탁월한 리더십과 역량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는 어떤 인물이어야 할까. 첫째는 경청(敬聽))하는 지도자여야 한다.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의 의견 제시는 물론 각계 각 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60분 중 55분을 혼자 떠들어대는 사람은 국가를 이끌 지도자로는 부적합하다. 마음과 귀를 크게 열어 쓴소리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판단하고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국정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분명한 사람이어야 한다. 헌법 제1조는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순간 독재자가 되고, 권력을 남용하여 국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고 갈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은 국민이 부여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겸손하게 국정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셋째는 국민 대통합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있다. 심지어 보수는 극보수와 갈등하고 있다. 노사, 계층,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된 초갈등사회다. 이를 극복할 역량과 정책을 제시하고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남북통일 이전에 남남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반대파들도 품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역사의 굴곡을 지나면서도 퇴행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확고하게 유지하면서도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인 것도 우리 국민이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언처럼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할 것이다. 희망을 갖고 국가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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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오직 십자가를 따르라! -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성대곡(放聲代哭)
올해 2025년도는 기독교적으로 선교 140주년(1885년 기점)이 되는 해이며, 정치적으로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얼마나 뜻깊고 가슴 벅찬 해인가. 그리하여 전국에서 환희의 잔치를 벌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기류가 희안하다. 140주년, 80주년이라는 세월은 성숙을 넘어, 안정과 부흥의 역사에 접맥되어야 하리라 믿는데,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는데, 신앙, 정치 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신앙적으로 퇴보하고, 기독교 신앙인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이며, 정치적으로 탄핵 연발, 계엄 발동, 대통령 파면이라는 혼란의 시기를 맞으며, 6월 3일 조기대선까지 숨가쁘게 가야한다. 대한민국의 대전환기라 아니할 수 없고, 위기라면 위기라 판단해야할 시점이다. 그러나 “고지가 바로 저긴데 / 예서 말수는 없다”(이은상). “위기는 기회다.” 언제 들어도 위안과 희망이 되는 명제이다.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지혜와 실천이다. 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실천이 작동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위기를 극복하는데 방해 요소는 무엇보다 양극화이다. 세대간, 남녀 성별간, 지역 간, 빈부 계층간, 그리고 진보와 보수 간에 극명하게 갈리어 이념, 이데올로기 전투를 벌이고 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이 현상이 색깔론으로 포장되어 은근히 갈등을 조장한다. 가히 문화전쟁(Culture War)을 넘어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이라 아니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정국에서 관찰되는 양극화는 또 있다. 예를 들면 진보와 보수가 공히 본회퍼(Bonhoeffer)를 인용한다. 나치 독재와 만행에 저항하다 순교한 목회자인 본회퍼를 진보와 보수가 서로 끌어다 시대적 대안으로 앞세운다. 본회퍼는 우리나라 현 혼란 정국에서 좌우로 쪼개지기 직전이다. 본회퍼 목사가 이곳에 오신다면 스스로도 당황할 것이다.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정의이며 진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극단적 대치 앞에서 본회퍼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위기는 기회다.” 이 명제를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다. 본회퍼 목사가 가르치는 <제자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해답을 얻는 길이다.(혹 “나를 따르라”로 번역). 본회퍼의 대안은 이미 종교개혁에서부터 출원한다. 루터, 칼뱅이 새롭게 발견한 “그리스도의 십자가”(곧 십자가 신학, Theology of the Cross)에 시대적 혼란에 대한 해답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류를 구하시기 위해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사(빌 2:7,8), 모욕, 멸시, 상처, 고통, 고난을 마다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신앙인들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 거룩한 모방(holy imitation)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신의 한 수”이다. 우리의 대한민국이 기회의 파도를 타고 다시 비상하기를 기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라. 양극화의 비인간적 세파를 극복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라.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다./이레문화연구소 소장·전 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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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크리스천과 애국운동
- 6월은 애국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현충일과 6·25사변 75주년을 맞으면서 나라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에는 국경을 초월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겐 자신들이 속한 국가가 있기에 애국 애족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에 나라를 사랑하고 헌신과 충성을 다 해야만 한다. 크리스천의 애국운동은 교회 역사를 보면 늘 헌신적으로 함께 해왔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는 「금주·금연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당시, 우리는 매우 가난하였다. 그런데도 술과 담배로 낭비하는 생활로 절제하지를 못했다.교회가 앞장 서서 근검 절제하는 생활운동은 지금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도 교단별로 경건 절제운동으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와 기타 생활 전반에 걸쳐 낭비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애국운동임이 분명하다. 이런 운동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과 빛이되라』시는 분부의 실천이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풍족한 생활을 하는 뒷면에서 어두운 음지에 살아가는 장애인들과 노숙자들을 돕는 교회의 실천은 역시 세상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크리스천은 모두 일어나 애국운동에 동참해야만 한다. 6·25사변을 생각하면 그때, 우리의 힘만으론 감당키 어려웠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유엔(UN)군 16개국이 동참하여 준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금도 이 땅에는 평화가 요구되고 있다. 북한은 핵을 무기로 삼고 위협하고 있다. 평화를 깨려는 불안과 두려움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때 평화를 구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고 나라를 지키는데 솔선 수범해야 한다. 그것이 애국운동이다. 평화가 제일이다. 신곡(神曲)을 쓴 유명한 시인 단테는 이 세상의 최고 단어는 「평화」라고 했다. 그가 한번은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날 밤, 위안을 얻기위해 산타크로채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을 때 마침, 저녁 기도를 드리다가 나온 힐라리오라는 수도사가 “무엇을 구하러 왔소?”라고 물어, 단테가 “평화요”라고 해서 남겨진 말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이해 관계가 얽힌 국가 간에도 평화이고, 우리나라 안에서도 계층간의 평화와 정치적 혼란 역시 평화가 우선이고 이 사회 곳곳에, 가정마다에도 서로간의 평화가 제일이다. 애국의 달, 6월이 평화의 기쁨이 있기를 기원한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4~19)”/예장 통합측 증경총회장·경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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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애국하는 길
- 세계최대 평택 주한 미군사령부 영내에 들어가면 「포 채플린즈 메모리얼 채플」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라틴어 격언이 눈에 띈다. “PRO DEO ET PATRIA”, “하나님과 나라를 위하여!”는 애국심에 대한 헌신을 표현하는 격언이다. 이 채플의 4명의 성직자는 두 명의 개신교 목사, 한 분의 유대교 랍비, 한 분의 로마카톨릭 신부들로 ‘불멸의 성직자’ 또는 ‘도체스터 성직자’라고도 불린다. 1943년 2월 3일 미군 수송선 SS 도체스터호가 침몰하면서 민간인과 군인을 구출하다 사망한 성직자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최악의 해상 참사 중 하나였다. 민간 여객선인 도체스터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선박 관리국의 병력 수송선으로 군용으로 개조되었다. 1943년 1월 23일 뉴욕을 출발하여 그린란드로 향했으며 해안 경비대의 호위를 받는 3척의 선박으로 구성된 호송대의 일원으로 약 900명을 태웠다. 2월 3일 이른 아침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앞바다에서 독일 잠수함 U-223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였다. 목사들은 다른 군인들이 구명보트에 탑승하도록 도왔고 구명조끼가 떨어지자 자신들의 구명조끼를 포기하고 배와 함께 가라앉으면서 팔짱을 끼고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이 네 명의 군목들의 이야기는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수많은 추모비가 세워지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사후에 수훈 십자 훈장과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군목들은 명예훈장(미국최고의 훈장)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기에 수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의회는 명예훈장과 동일한 무게와 가치를 지닌 훈장을 제정했다. 군인이 전장에서 목숨을 마다하지 않고 희생하는 것만이 애국이 아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군인들만의 일은 아니다. 기독교신자를 포함하여 국민 모두는 군인들과 같은 무게로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애국’이 특정집단의 전유물이 될 때 공산혁명이나 나치독재,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정당화되고 만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모든 국민의 애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와 시대 앞에서 “나 몰라라”,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하루살이’ 일상은 애국이 아니라 망국의 고속도로를 까는 것이다. 오늘 탄핵정국과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실 앞에 무관심과 체념은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짐을 내팽개치는 범죄다. 대선 정국 앞에서 골치 아픈 정치 어젠다요 세상 일이라고 외면한다면 이후에 닥쳐올 뻔한 미래를 자초하는 어리석은 자폭행위가 된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개인적 희생과 사랑만으로 멈추지 말고 공동체적 행복과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양보하는 희생이 일반화되는 나라와 국민이 되길 위해 분노 게이지는 의지로 낮추고 조절하며, 필요한 적과 상대를 인정하며 공동선을 추구하며 화합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모든 국민이 실천하는 ‘애국’이 될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누구도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오직 하나님만이 들을 수 있게 하는 ‘골방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지키시고 세우시는 나라, 대한민국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가는 군대를 모아 국경선을 지키지만 교회는 성도를 모아 새벽기도, 철야기도 군대를 비롯한 영적군대를 만들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적과 싸우며 사명을 다하고 있다.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사실은 통치자와 국민 사이에는 분명 인격과 성품의 연결이 있다. 지도자의 나쁜 정책과 성품은 전염성을 가지고 국민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지도자의 인격적 부패와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한 성품은 사회 전반을 파괴하고 만다. 그러기에 국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애국하는 길은 선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국가와 교회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함께 권선징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전국기독교수연합회 회장·칼빈대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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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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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애국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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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이루는 축복공간
- 트럼프 대통령 2기가 시작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남자와 여자를 성별로 인정한다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서명을 하였는데, 이에 때를 맞추어서 유럽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성별만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뉴스에서 회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력한 로비를 바탕으로 동성애를 확산시키려는 퀴어(queer/괴상한) 단체들의 활동 때문이다. 이들 동성애 단체는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매스컴과 정치를 장악하고, 이미 학교와 문화까지도 활동 영역을 넓혀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까지 동성애 이념으로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70세가 넘어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까지 동성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어 손가락질받고 있다. 이혼녀로 혼자 자녀를 양육하며 배우 활동한 것을 필자도 한 때는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자녀를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만 잠잠해도 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 큰 파문을 불러왔다. 그것은 그의 아들이 미국에서 남자와 결혼하였는데, ‘사위가 자랑스럽다’라는 투의 발언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아들은 며느리로 상대집안과 결혼한 것이라는 해괴한 일로 추정된다. 윤여정의 이런 발언은 소수 동성애 단체에는 환영받았겠지만, 대부분 일반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정서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배우도 공인이다. 공인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공인의 발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모방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점에서 윤여정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 하고, 취소하여야 한다. 사과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 공인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3남매를 둔 다둥이 가정의 부모인데, 셋째에게는 국가가 국민건강보험도 제외했다. 내가 결혼하여 자녀를 출생할 때 국가가 나서서 산아제한을 실시하였다. 그 한 예로 예비군 훈련을 가면 정관수술을 간호사들이 시행할 정도였다. 집안에 의사와 간호사가 많아서 들은 이야기로는 정관과 난관수술의 인원이 의료인들에게 할당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망국적인 일을 행한 지난 정부의 의료인들은 반성과 회개를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은 의료분쟁으로 환자의 생명을 더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서 의료인들은 정부 시책을 대할 때 자기들에게 유리하면 생명도 죽이는 불임과 낙태뿐만 아니라, 환자를 방치하고 데모하는 의료분쟁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동성애자는 자녀를 낳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망국적인 동성애와 무분별한 낙태로 가뜩이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결혼하여도 자녀를 낳지 않는 시대에 초저출산 문제로 대한민국이 소멸하여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라는 통계가 심각한 상황이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까? 나는 다둥이 자녀를 둔 신학생들과 농어촌 미자립 개척교회를 돕는 사역을 위해 벌써 24차례나 예수학교로 모였다. 그랬더니 2명 이상 8명까지 자녀를 낳은 다둥이 가정이 모이는 집회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다시 여름에 홍천 시냇가의 숲 펜션에서 한국과 몽골과 일본의 어린이들을 불러서 2박3일 국제영어성경캠프를 무료로 진행한다. 미디어에 종사하는 분들은 다둥이 가정의 행사를 자주 소개하여 사회적 분위기를 고취해야 한다/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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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이루는 축복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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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이루는 축복공간
- 트럼프 대통령 2기가 시작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남자와 여자를 성별로 인정한다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서명을 하였는데, 이에 때를 맞추어서 유럽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성별만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뉴스에서 회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력한 로비를 바탕으로 동성애를 확산시키려는 퀴어(queer/괴상한) 단체들의 활동 때문이다. 이들 동성애 단체는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매스컴과 정치를 장악하고, 이미 학교와 문화까지도 활동 영역을 넓혀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까지 동성애 이념으로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70세가 넘어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윤여정배우까지 동성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어 손가락질받고 있다. 이혼녀로 혼자 자녀를 양육하며 배우 활동한 것을 필자도 한 때는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자녀를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만 잠잠해도 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 큰 파문을 불러왔다. 그것은 그의 아들이 미국에서 남자와 결혼하였는데, ‘사위가 자랑스럽다’라는 투의 발언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아들은 며느리로 상대집안과 결혼한 것이라는 해괴한 일로 추정된다. 윤여정의 이런 발언은 소수 동성애 단체에는 환영받았겠지만, 대부분 일반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정서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배우도 공인이다. 공인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공인의 발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모방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점에서 윤여정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 하고, 취소하여야 한다. 사과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 공인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3남매를 둔 다둥이 가정의 부모인데, 셋째에게는 국가가 국민건강보험도 제외했다. 내가 결혼하여 자녀를 출생할 때 국가가 나서서 산아제한을 실시하였다. 그 한 예로 예비군 훈련을 가면 정관수술을 간호사들이 시행할 정도였다. 집안에 의사와 간호사가 많아서 들은 이야기로는 정관과 난관수술의 인원이 의료인들에게 할당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망국적인 일을 행한 지난 정부의 의료인들은 반성과 회개를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은 의료분쟁으로 환자의 생명을 더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서 의료인들은 정부 시책을 대할 때 자기들에게 유리하면 생명도 죽이는 불임과 낙태뿐만 아니라, 환자를 방치하고 데모하는 의료분쟁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동성애자는 자녀를 낳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망국적인 동성애와 무분별한 낙태로 가뜩이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결혼하여도 자녀를 낳지 않는 시대에 초저출산 문제로 대한민국이 소멸하여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라는 통계가 심각한 상황이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까? 나는 다둥이 자녀를 둔 신학생들과 농어촌 미자립 개척교회를 돕는 사역을 위해 벌써 24차례나 예수학교로 모였다. 그랬더니 2명 이상 8명까지 자녀를 낳은 다둥이 가정이 모이는 집회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다시 여름에 홍천 시냇가의 숲 펜션에서 한국과 몽골과 일본의 어린이들을 불러서 2박3일 국제영어성경캠프를 무료로 진행한다. 미디어에 종사하는 분들은 다둥이 가정의 행사를 자주 소개하여 사회적 분위기를 고취해야 한다. /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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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이루는 축복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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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차기 대통령,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 결정을 하면서 오는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차기 대통령은 경제, 외교안보, 남북관계 등 총체적 위기의 상황을 극복해야 할 막중한 사명과 역량을 갖춘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지난 1997년 11월 IMF국가경제부도사태로 대한민국이 휘청거렸을 때 이듬해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IMF사태를 조기에 극복하고 하락한 국가신용등급을 다시 끌어 올렸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지금 각 당은 대통령 예비경선을 진행하고 있다. 12.3비상계엄선포와 탄핵 그리고 구속과 파면으로 이어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의 우두머리라는 혐의로 제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치러지는 6.3대선은 IMF를 극복한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탁월한 리더십과 역량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는 어떤 인물이어야 할까. 첫째는 경청(敬聽))하는 지도자여야 한다.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의 의견 제시는 물론 각계 각 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60분 중 55분을 혼자 떠들어대는 사람은 국가를 이끌 지도자로는 부적합하다. 마음과 귀를 크게 열어 쓴소리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판단하고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국정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분명한 사람이어야 한다. 헌법 제1조는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순간 독재자가 되고, 권력을 남용하여 국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고 갈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은 국민이 부여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겸손하게 국정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셋째는 국민 대통합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있다. 심지어 보수는 극보수와 갈등하고 있다. 노사, 계층,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된 초갈등사회다. 이를 극복할 역량과 정책을 제시하고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남북통일 이전에 남남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반대파들도 품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역사의 굴곡을 지나면서도 퇴행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확고하게 유지하면서도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인 것도 우리 국민이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언처럼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할 것이다. 희망을 갖고 국가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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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차기 대통령,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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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오직 십자가를 따르라! -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성대곡(放聲代哭)
- 올해 2025년도는 기독교적으로 선교 140주년(1885년 기점)이 되는 해이며, 정치적으로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얼마나 뜻깊고 가슴 벅찬 해인가. 그리하여 전국에서 환희의 잔치를 벌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기류가 희안하다. 140주년, 80주년이라는 세월은 성숙을 넘어, 안정과 부흥의 역사에 접맥되어야 하리라 믿는데,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는데, 신앙, 정치 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신앙적으로 퇴보하고, 기독교 신앙인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이며, 정치적으로 탄핵 연발, 계엄 발동, 대통령 파면이라는 혼란의 시기를 맞으며, 6월 3일 조기대선까지 숨가쁘게 가야한다. 대한민국의 대전환기라 아니할 수 없고, 위기라면 위기라 판단해야할 시점이다. 그러나 “고지가 바로 저긴데 / 예서 말수는 없다”(이은상). “위기는 기회다.” 언제 들어도 위안과 희망이 되는 명제이다.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지혜와 실천이다. 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실천이 작동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위기를 극복하는데 방해 요소는 무엇보다 양극화이다. 세대간, 남녀 성별간, 지역 간, 빈부 계층간, 그리고 진보와 보수 간에 극명하게 갈리어 이념, 이데올로기 전투를 벌이고 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이 현상이 색깔론으로 포장되어 은근히 갈등을 조장한다. 가히 문화전쟁(Culture War)을 넘어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이라 아니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정국에서 관찰되는 양극화는 또 있다. 예를 들면 진보와 보수가 공히 본회퍼(Bonhoeffer)를 인용한다. 나치 독재와 만행에 저항하다 순교한 목회자인 본회퍼를 진보와 보수가 서로 끌어다 시대적 대안으로 앞세운다. 본회퍼는 우리나라 현 혼란 정국에서 좌우로 쪼개지기 직전이다. 본회퍼 목사가 이곳에 오신다면 스스로도 당황할 것이다.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정의이며 진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극단적 대치 앞에서 본회퍼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위기는 기회다.” 이 명제를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다. 본회퍼 목사가 가르치는 <제자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해답을 얻는 길이다.(혹 “나를 따르라”로 번역). 본회퍼의 대안은 이미 종교개혁에서부터 출원한다. 루터, 칼뱅이 새롭게 발견한 “그리스도의 십자가”(곧 십자가 신학, Theology of the Cross)에 시대적 혼란에 대한 해답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류를 구하시기 위해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사(빌 2:7,8), 모욕, 멸시, 상처, 고통, 고난을 마다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신앙인들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 거룩한 모방(holy imitation)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신의 한 수”이다. 우리의 대한민국이 기회의 파도를 타고 다시 비상하기를 기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라. 양극화의 비인간적 세파를 극복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라.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다./이레문화연구소 소장·전 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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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오직 십자가를 따르라! -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성대곡(放聲代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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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성경이다
- ▲ 이상원교수 추수감사절은 영국 국교회의 박해를 피해 신앙의 자유를 염원하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 온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첫 해의 살인적인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맞이한 이듬 해 첫 수확을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마련한 절기였다. 주로 미국교회로부터 파송된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여 형성된 교회가 한국교회이기 때문에 미국교회의 관행들이 한국교회에도 도입되었고, 그 관행들 가운데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미국교회로부터의 기원과 관련하여만 생각한다면 현대 한국교회에서 그 의미가 약화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현대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도시에 세워져 있고 대다수의 성도들이 농사가 아닌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실 때문에 일 년 단위로 추수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추수감사절은 피부에 와 닿는 절기가 되기 어렵다. 농사를 짓지 않는 성도들의 경우에는 이들이 행한 수고에 대한 보답이 반드시 11월에 한 번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석이라는 한국민족 고유의 전통적인 절기가 이미 국가적인 명절로 크게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한층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국가 최대의 명절 가운데 하나로 지켜지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추수감사절이 교회 내의 절기로서만 지켜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한국에서 추수감사절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다르다. 현대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의미 있게 지키기를 원한다면, 추수감사절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어야한다. 추수감사절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는 성경 상의 절기로는 수장절을 들 수가 있는데, 사실상 수장절은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절기는 아니다. 수장절은 구약성경에서 유월절 - 맥추절 - 수장절로 이어지는 ‘삼대 절기’의 하나로서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짓는 절기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장자를 죽이실 때 어린 양의 피가 문지방에 묻어 있는 집의 장자를 구원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시기적으로는 씨앗을 뿌리는 시점에 거행하는 절기다. 이 절기는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는다. 맥추절은 보리의 첫 열매를 거두는 시점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신약시대에는 성령이 강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뿌리신 구원의 씨앗의 첫 열매를 거두는 것을 기념한다. 그러면 수장절은 무엇을 기념하는 절기인가? 수장절은 완전히 익은 모든 열매를 다 거두어 곳간에 들이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며 모든 믿는 자들을 천국으로 모아들이는 사건을 예기적으로 기념하는 절기가 된다. 현대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에 구약 수장절의 의미를 부여하여 준수한다면 추수감사절은 영구적인 의미를 가진 교회의 절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주님이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때를 묵상하고, 알곡을 모아 곳간에 들여보내듯이 신자들을 모아 천국에 들여보내시는 광경을 생각해보자. 또 쭉정이를 모아 불에 태우듯이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지옥에 넣으시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복음전도의 시급함과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렇게 된다면 추수감사절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의미를 가진 절기로서 유지되며 지금 한국교회에게 큰 유익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총신대 부총장·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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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성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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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감사생활의 길
- 그분이 내게 믿음을 주셨다는 이유만으로 오직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생각과 이론은 쉬우나 실체(진리)가 된다는 면에서는 많은 장애와 어려움이 있다. 감사생활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끊임없는 실패와 좌절을 거치고 나서 숨을 고르며 감사의 평안을 맛보게 된다. 그래도 그 고마운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은 감사할 마음의 조건이 구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 마련된다면, 우리 앞에 축복의 문이 열릴 것이다. 이러한 기사이적을 감사의 생활이 가져다가준다. 우리에게 그 분이 계시다면 그를 향한 믿음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 되어 준다. 가령 나에게 그 분이 없다면 나의 삶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요한일서 5장 12절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은 생명의 길로 나아가나, 그분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는 죽음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가 바로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귀신들린 딸의 질병으로 이미도 가장 큰 고통과 아픔과 수치심과 절망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복잡한 감정의 탄식들은 인생의 큰 장애물인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믿음으로 주님께 신앙고백을 한다.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고 자신의 수치스러운 문제를 숨김없이 다 털어 놓았으나 돌아온 것은 냉대와 무시였다. 이 중복된 장애가 믿음을 없이 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더욱 감사함으로 절을 하며 주님께 나아간다. 참된 예배자의 모습으로 오직 수치심의 상처에 머물지 않고 주님만을 공경하며 나아간다. 이 때 너그러운 은혜가 아닌 더욱 좌절감 속에 내동댕이 쳐진다. 돌아온 답변은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는 말에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여인은 이러한 낮아짐 앞에 감사의 마음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바로 “주여 옳소이다”라고 찬미함에 있다. 주님은 이러한 믿음을 크다고 하셨고, 즉시 질병에서 자유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은 모든 장애를 이기고 사망에서 나와 생명 길을 가게 한다. 이러한 믿음은 바로 “옳소이다”에 있다. 어떤 고통과 좌절과 낮아짐 속에서도 이러한 환경이 내게 합당치 않다고 불평하지 않고 이것은 내가 당해야 할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좋은 환경을 찾지 않음은 이미 믿음이 가장 좋은 환경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나오는 감사를 깊은 감사라고 한다. 주께 날마다 감사함으로 기사와 이적을 이끌어 올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 있다. 이것은 입으로만 하는 감사가 아니다. 자기 의존의 끈이 끊어진 낮아짐 속에 있는 믿음에서 나온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장애를 이긴 믿음의 힘으로만이 가능하다. 주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과정을 거칠 때 나오는 맘이 감사의 마음이다. 가장 낮아진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주님 앞에서 주의 종 앞에서 성도 앞에서 자신을 더욱 낮출 수 있을 때 비로서 감사생활이 가능해 진다. 생명 길로 인도하는 믿음에 감사하기 때문에 모든 장애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겼기 때문에 감사하는 어린 아이같은 마음은 일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 믿음을 가졌음에 감사하는 자는 가장 겸손한 자요, 가장 낮아짐을 맛본 자에게만 있는 감사생활이다. 모든 장애를 이기고 축복의 문으로 안내하는 감사는 이처럼 깊은 데서 나온다. /대전반석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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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감사생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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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 ▲ 안준배목사 은퇴한 광고 에이전시 보스 해리엇(셜리 맥클레인)은 어느 날 신문의 부고 기사를 읽다가 어처구니 없어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의 사망기사인데 터무니 없이 미화된 기사를 읽고는 신문사의 CEO에게 항의 방문 하였다. 그런 후에 부고 작성 전문기자 앤(아만다 사이프리드)을찾아가 따지기 까지 하였다. 이렇게 알게 된 사망기사 전문기자 앤에게 자신의 사망기사를 미리 써달라고 한다. 앤은 해리엇에 대한 부고기사를 생전에 쓰기 위해 ‘해리엇 인생 꾸미기’에 나섰다. 앤은 해리엇이 뽑아준 300명의 지인 명단을 갖고 인터뷰를 하였다. 그녀의 남편과는 오래전에 이혼하였고 의사인 딸은 엄마 해리엇과는 전화조차 하지 않는 단절된 사이이다. 앤은 해리엇이 나가고 있는 교회의 사제를 만났으나 교구 사제마저도 해리엇에 대한 평가가 바닥이었다. 앤은 이런 상태에서 해리엇이 죽기 전에 도저히 부고기사를 쓸래야 쓸 수 없게 되었다. 앤과 해리엇은 이제라도 해리엇의 완벽한 엔딩을 위한 4가지 조건을 갖추기 위해 프로젝트를 세운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친구와 동료들의 칭찬을 받아야 한다’, ‘아주 우연히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구분될 수 있는 나만의 와일드카드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녀의 장례식에 모인 조문객들은 공개된 유언장을 통하여 해리엇의 전재산을 교회와 사회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해리엇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자신들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마천 사기열전에 나오는 진나라 여불위는 투자의 달인이다. 여불위의 투자원칙은 희소성의 원칙이다. 현재 처한 상황이 어려워서 상품가치가 없지만 미래가 있는 것에 주목하였다. 여불위는 왕위 계승 서열이 뒤쳐진 자초왕자에게 전 재산을 투자하여 마침내 진나라 영자초 장양왕이 되게 하였다. 여불위와의 사이에서 임신된 절세미인 애첩 초희를 자초에게 주어서 황후가 되게 하였다. 그 소생 영정이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가 되었다. 진시황은 집권 10년에 여불위를 파면하였다. 그래도 여불위에게 하남 땅을 봉읍으로 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각 나라의 수 많은 선비가 여불위를 찾아오자 시황제는 여불위에게 최후통첩의 서신을 보냈다. “그대가 진나라에 무슨 공로가 있기에 진나라가 그대에게 하남을 봉읍하고 10만 호를 식읍으로 주었는가? 그대가 진나라와 무슨 친족관계라고 중부라고 불리었는가? 그대는 당장 가족과 함께 촉땅으로 옮겨 살아라” 여불위는 참수당할 것이 두려워 스스로 독주를 마시고 목숨을 거두었다. 상국이라 함은 재상중의 으뜸으로서 왕과 비등한 지위이다. 중부는 왕의 부친이라는 호칭이다. 사실상 여불위의 권세는 황제 이상이었다.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 ‘여불위열전’에서 여불위의 인생을 유문무실로 기재하였다. ‘그의 인생은 화려하다는 소문만 무성했지 실제로는 별 볼일 없는 인생이다’는 평가이다. 교비횡령으로 4년 9개월의 형을 받았고 이어서 연금재단 배임 선고공판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된 박아무개는 총회장 6년, 총무 8년을 합하여 14년 동안 교단을 전횡하였다. 그가 지명하면 줄줄이 교단 총회장이 되고 총무가 되고 신학교 총장, 이사장, 헌법위원장, 재판위원장, 선거관리위원장이 되었다. 교단 내에 아무도 그를 견제할 수 없었다. 무소불위의 교단 실세였다. 교단의 절대권력 박 아무개의 판결서에는 교단내에 그 어떤 제동장치도 전무하였다고 기재되었다. 아직도 그런 이를 롤 모델로 삼는 교단과 교계의 실세들이 여전히 출몰하고 있다. 그런 이들은 여전히 추종자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줄을 세우고 위세 한다. 그렇지만 그가 죽고 나서 마지막 들어야 할 말은 ‘화려하다고 소문만 무성했지 별 것 아닌 인생이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이사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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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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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과 희망을 전하는 교회의 소망
- ▲ 이상대목사 서방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선택한다면 누구도 이견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니교와 신플라톤주의로 대표되는 이교 사상과 대립하는 한편, 펠라기우스주의와 도나투스주의 등 이단 사설을 논박하며 기독교 신앙을 굳건히 지켜낸 인물이다. 무너져가는 고대 로마의 끝자락에서 기독교를 수호하기 위해 앞장섰던 그는 생전에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했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그리고 모든 일에 사랑을”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의 신학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하는 교회는 죄와 악이 없는 깨끗한 ‘성소’가 아니라 그것에 고통을 받는 이들이 모여 치료를 받는 ‘병원’이었다. 당대 어떤 이보다도 열정적으로 이단을 적대시했지만, 이단에 몸담았던 이가 올바른 교회로 돌아온다면 이전까지 지녔던 신앙과 성례는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무한한 일치와 관용을 우선시했던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한국교회는 과연 아름다운 모습일까. 수없이 난립하는 교회연합기관들은 수년 동안 통합을 약속했지만, 그 끝은 공허하기만 했다. 각 교단 총회가 끝나고 현재는 각 교단마다 노회가 열리고 있지만 사회에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화합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끝도 없이 일어나는 정치 이슈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퀴어 단체와 반동성애 단체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NAP를,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친 동성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년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남북·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 질서에 어마어마한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제주도 난민 문제와 미투운동은 또 어떠한가. 어느 때보다도 한국교회에서 신속히 논의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이 시기에 교회에 일치와 관용을 필두로 하는 연합은 온데간데없고 자기 자리만을 지켜내고자 하는 모습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이제 한국교회 구성원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삼아 이 땅에 굳건히 서서 새로움을 전해주어야 한다. 이 암울하고 슬픈 세계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반석이 예수님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반석으로 삼음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세우시고자 했던 반석이 무엇인지 숙고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시고자 하는 반석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마가복음 12:29~31) 지난해 전국 곳곳에서 개최한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가 자칫 무색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개혁하는 교회, 변화하는 교회가 되어 한국은 물론 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기로 한 다짐을 힘씀으로 이뤄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이룩하고자 하루빨리 연합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소모적인 분쟁과 논란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끝내고, 한국교회가 진리의 깃발 아래 모여 다 함께 전진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교회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희망의 빛이 되어 세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희망’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분노와 용기이다. 현실이 지금 이대로인 것에 대한 분노와 현실을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바꾸려는 용기”. /미래목회포럼 전 대표회장·서광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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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과 희망을 전하는 교회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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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랑을 전하는 한국교회를 기대한다
- ▲ 박진탁이사장 미국 LA에서 이민 생활을 하던 중 겪었던 일이다. 미국에 살고 있던 옛 친구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3일 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담당의사는 뇌사가 되었다며 사망으로 인정하고,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라고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의사가 가족들에게 “장기기증 의사를 생전에 표시하지 않으셨지만, 가족들이 원하시면 장기를 기증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의 아내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중학교 2학년인 친구의 딸이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것은 인정하는 일이 어렵지만, 이제 하늘나라에 가신다고 생각하면 장기기증이 뭐가 어려워요. 아빠의 건강한 심장이 다른 이에게 옮겨가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정말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라며 엄마를 설득하고 나섰다. 결국 그 다음날, 친구의 가족들은 장기기증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리고 친구는 7개의 장기를 기증하며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장기기증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미국에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장기기증’, 생명을 살리는 이 일을 고국으로 돌아가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기 위해 온 것이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미국에 가족들을 둔 채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와 기도하던 도중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라는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을 받았다. 그때 그 말씀에 은혜를 받고 당장 순종해야겠다는 결심으로 1991년 1월 24일 신장 하나를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을 위해 기증했다. 그리고 그 감동으로 시작된 장기기증운동은 27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장기기증운동은 하나님의 강한 인도하심에 의해 시작되었고, 한국교회의 도움으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장기기증운동은 갈 길이 멀다. 미국 48%, 영국 32%, 대한민국 3%,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각 나라별 인구 대비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의 비율이다. 한국교회가 앞장 서 장기기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이 운동이 사회운동이 되었듯이 생명을 살리는 귀한 사역이 온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가기까지도 한국교회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생명을 나누는 일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동기로 장기기증 희망 등록에 참여한 많은 기독교인들과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고통 받고 있는 장기부전 환자들을 위해 생명나눔운동에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공격은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교회와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더욱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더 널리 퍼뜨리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말과 혀로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목숨까지 내어주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제는 받은 사랑을 나눌 때이다. 특히 병마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많은 환자들을 위해 사랑을 나누고 생명을 나누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눈 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시고, 중풍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삶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사랑의 장기기증서약을 통해 고통 받는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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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랑을 전하는 한국교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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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생명동산
- ▲ 김기석총장 우리는 가장 더운 여름을 경험하였다. 미래에는 이보다 더 더워진다 하니 정말 걱정이다. 기후변화의 문제가 이젠 과학자들의 논쟁거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의 문제이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앨 고어는 인공위성에서 찍은 대기권의 사진을 보여주며, 지구 대기권이 얼마나 얇고 연약한지 설명한다. 지구는 아주 크기 때문에 인간의 영향은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다. 지구 대기권은 아주 얇기 때문에 매우 취약하다(vulnerable). 지구를 농구공이라 치면, 대기권의 두께는 공 표면에 칠해진 광택제 두께에 불과하다. 대기권은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 등 네 층을 합하여 총 140 킬로미터에 달하지만, 기체의 80%는 지상으로부터 약 12 킬로미터 정도까지 뻗어있는 대류권에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는 해발 4,000미터 이하에서만 정상적으로 호흡할 수 있다. 지구가 형성된 이래 대기의 구성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변화해 왔으며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에는 화산이나 판 이동에 따른 지질학적 격변, 생명체 활동에 의한 화학반응, 소행성 충돌 등 자연 환경에 의한 변화였지만, 최근에는 인간에 의한 변화가 주된 요인이다. 바로 산업화로 인한 온실가스의 배출이 그것이다. 지구 기후는 에너지 평형의 흐름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라 태양광선을 통해 지구로 도달한 에너지는 일부는 우주 공간으로 반사되고 일부는 지구에 흡수되었다가 결국 방출됨으로써 지구 전체적으로 볼 때는 에너지 평형을 이룬다. 간단히 말해 기후란 지구 에너지가 평형을 이루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인식해야 할 점은 지구 기후는 항상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지구 기후는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해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개입하기 전부터 지구기후는 변동을 겪어왔다. 기후변동의 주요한 원인으로 세 가지 요인은, 첫째 태양 에너지의 변화 혹은 지구 공전궤도의 변화, 둘째 우주로 반사된 빛 에너지, 셋째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이전에 350ppm 이하였던 지구대기 중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2016년에 400ppm을 넘어섰다. 기후학자들은 수십년 이내에 450ppm을 넘어설 것이며 그렇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기후 격변이 들이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구기후 시스템에 인간이 온실가스 배출 등으로 변화의 방아쇠를 당기면 기후도 막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새로운 평형을 향해 급속도로 변화할 것이다. 기후는 나무늘보가 아니라 순식간에 달려드는 맹수이다. 지난 1만 년 동안의 따뜻하고 안정된 기후는 빙하기 중에 찾아온 행운의 나타난 아주 짧은 기간의 현상이었다. 만일 안정된 기후가 지금부터 격변의 단계로 들어선다면 과연 인류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이러한 전 지구적 규모의 변화로 인한 위기가 닥쳐올 경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학과 종교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과학기술의 지식은 위기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종교는 위기 앞에 자기 혼자만 살려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모든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위기를 극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류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지구는 인간과 수많은 생명들의 유일한 보금자리이다. 이 땅과 하늘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다른 동식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복을 베풀어 주신 생명동산이다. 이젠 시간이 촉박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이 소중한 생명동산을 보존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앞장서 나서야 할 때이다. /성공회대 총장·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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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생명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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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함으로 드리는 삶
- ▲ 민필원목사 미국 미시간주 칼빈신학교에서 유학하고 있는 동안에 갈보리교회라는 현지 미국인들이 다니는 교회를 일 년 넘게 출석한 적이 있다. 그 교회는 매 주일에 대략 5000여 명이 모이는 꽤 규모 있는 교회였다. 어느 주일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그날은 그 교회의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바로 교회 설립 75주년 기념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예배였지만 그 가운데 그 교회의 긴 역사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몇몇 특별한 순서들이 있었다. 그 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순서 한 가지는 헌금시간을 통해 이루어진 바이올린 독주였다. 사실 이 교회는 아주 잘 구성된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아마도 교인 중에는 젊고 훌륭한 연주자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헌금 시간에 바이올린 독주를 하러 나오신 분은 백발의 85세 할머니였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강단 위로 걸어 나오신 그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서서히 연주를 시작하셨다. 조용한 가운데 흘러 퍼진 그 할머니의 바이올린 연주는 그 곳에 앉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동으로 들려왔다. 할머니의 떨리는 손에서부터 전해오는 감동스러운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 그 아름다운 바이올린 독주를 하신 이 할머니가 누구신지를 알게 되었다. 바이올린 독주를 하신 그 할머니는 그 교회가 창립되던 75년 전부터 그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해온 분이셨다. 교회가 설립될 당시 10살이었던 소녀가 무려 75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교회의 예배를 돕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봉사해온 것이었다. 그날 그 할머니의 연주 가운데 느껴지던 감동은 그 바이올린 소리뿐 아니라 그 할머니의 신실함에서부터 오는 감동이었다. 이 할머니의 연주와 신실함이 그 할머니뿐만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감동케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매우 빨리 그리고 쉽게 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너무나 쉽게 바뀌고 움직인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랑도 쉽게 변하고 소망도 쉽게 변한다. 과연 이러한 시대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많은 봉사와 사랑과 섬김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신실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종종 목사님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흔히 나오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성도들 못 믿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종종 설교하시는 목사님들이 성도들에게 “목사는 섬김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성도들에게 말씀하신다. 안타깝게도 목회의 현실에서 이러한 말들이 모두 사실이지만 이것이 가슴 아픈 것은 목사와 성도들 간에 신실함이 상실된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목사를, 목사가 성도들을 믿을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교회의 현실인 것은 매우 아픈 일이다. 나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신실함으로 나누는 삶의 연주가 되기를 소망한다. 75년간 변함없이 신실함으로 한 교회를 섬기셨던 85세의 할머니의 손 떨리는 바이올린 연주가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듯이, 우리도 우리의 신앙과 삶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신실하게 연주함으로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천안반석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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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함으로 드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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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총회를 향한 우리의 기대
- ▲ 김진호목사 매년 9월이 오면 장로교는 성총회가 열리고 교단을 섬기고 이끌어 갈 큰 지도자(총회장)들을 선출하게 된다. 장로교는 한국교회의 장자 교단이기에 그 사명이 막중함으로 항상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을 가져야 한다. 장로교의 한 지도자의 탄생은 한국교회의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에 더더욱 그 책임도 크고 기대함도 큰 것이다. 이제 총회를 앞두고 오늘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로, 오늘의 한국교회를 가리켜 위기라고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바로 한국교회의 지도자 위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장로교단의 성총회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먼저 지도자 된 우리 모두가 각성과 지성으로 한국교회의 정화운동의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뉴스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교회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성(性) 스캔들과 일부 총회장 선거의 타락상과 소수의 대형교회들의 비리와 세습 문제로 인하여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되기보다 실망을 주고 있음이 사실이 아닌가? 먼저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참회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시 34:18에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장로교의 총회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영성과 도덕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둘째로, 총회를 통해 사분오열된 한국교회를 연합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총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주님은 하나 되기를 원하시고 하나 되도록 명령하셨는데 한국교회(특히 장로교회)는 교리와 신학을 핑계 삼아 찢어지고 갈라져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 아닌가? 오죽하면 한국교회를 가리켜 예수와 그리스도가 싸우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니 이제는 서로 용납하고 관용하여 한국교회가 하나 되는 연합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한국교회가 하나 되고 화합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세상을 향해 사랑과 용서와 평화의 메시지를 말할 수 있겠는가? 결코 교리나 신학이 예수의 말씀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총회를 통해서 교단과 교단이 연합하고 여러 연합체 기관들도 하나의 연합체가 되도록 거룩한 결단을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셋째로, 한국교회는 지금 이 나라, 이 사회가 고민하며 해결하려고 애쓰는 저출산 문제와 자살문제에 대해서도 교회도 함께 고민하며 진지한 연구와 대책을 세워나가는데 일조해야 한다. 교회는 구름 위에 떠 있는 공동체가 아니기에 이 사회 속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는 진리의 공동체가 아닌가? 현재 한국교회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급격히 줄어가고 있으며 크리스천 중에서도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지 않은가? 장로교의 총회는 세상과 함께 진지한 연구와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열리는 총회가 총회장 선거나 치루고 마는 행사 위주와 안일한 총회가 되지 말고 한국교회를 새롭게 개혁하고 부흥하게 하는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총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기감 전 감독회장·도봉감리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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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총회를 향한 우리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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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단 총회에 바란다
- ▲ 이정익목사 9월은 장로교단 총회시즌이다. 이제 여러 장로교단들은 마지막 총회준비에 한창이다. 여러 장로교단들은 교단마다 당면한 총회 이슈들이 있을 것이다. 지혜로운 해결과 결의와 치유가 있었으면 한다. 먼저 통합측의 총회 핫 이슈는 명성교회 문제가 아닐까 한다. 총회의 뜨거운 감자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총회 재판국에서 예상을 뒤엎고 합법으로 가결되었기 때문이다. 재심청원을 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재심청원은 판결문을 송부받은 지 30일 내에 신청해야 한다. 재심청원을 하려면 9가지 사항 중 2개 이상의 분명한 위법사항이 있어야 신청할 수 있다. 현재 반대 측에서는 재심청원을 모색하고 있겠지만 문제는 두 가지 이상의 타당한 위법 사항이 있어야 가능한데 현저히 위법하다는 조항이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총회 재판국이 합법으로 판결을 한 근거는 총회에서 이미 세습금지법을 결의한 사항에 대해서 헌법위원회가 금지조항에 대해서 삭제 내지 보완 수정하라는 해석을 내린 것을 근거로 재판을 하였기 때문에 마땅한 재심청구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총회에서는 재판국의 재판사항이 집행부 보고로 끝나기 때문에 이 명성교회 문제는 일단 끝났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반대 측에서는 총회를 보이콧하거나 총회장소를 점거하자는 여러 설이 나오고는 있지만 통합총회는 그런 물리적 수단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합동측 총회의 핫 이슈는 총신대 문제가 아닐까 싶다. 현재 학교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교육부가 개입하기로 한 상태이다. 이미 총장과 이사진은 해임됐고 곧 관선이사가 파송될 예정이다. 누가 관선이사가 될 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교육부는 흔히 관선이사를 파송할 때 교육부가 만들어 놓은 인재풀에서 파송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학교와 관련된 유관 기관 즉 동문회, 후원회 등 기관추천도 받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 방법은 또 총장측이 연관된 인사들을 추천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관선이사들이 파송되면 먼저 이사회를 구성하고 새 총장도 선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신백석측의 총회 이슈는 대신측과의 통합 불발문제가 될 전망이다. 백석측은 대신측과 통합하면서 한국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런데 통합 된지 벌써 몇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근착이 되지 못하고 갈등 중에 있다가 대신 수호측의 소송으로 통합은 불법이고 대신이라는 교단명칭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고법의 판결이 나와 결국 대신 합류파는 백석과 결별하고 대신수호측으로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것은 교단통합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길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장총회는 이번 총회를 제주도에서 개최한다. 이번 기장총회에서는 제주도 4·3사태와 강정마을 사건, 통일문제를 다룰 것 같다. 이런 문제들을 실제적으로 다루기보다 성명서를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 각 교단들은 모두 산적해 있는 난제들을 안고 있다. 물론 각 총회는 당면한 이슈들을 먼저 집중해서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자칫 이런 당면한 문제들에 매몰되어 정작 한국교회가 공히 당면한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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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단 총회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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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후원, 함께 변화하는 여정
- ▲ 양호승 미국에서부터 10년 넘게 후원하는 르완다 아동이 있다. 미국에 거주할 때 미국월드비전을 통해서 인연을 맺게 된 아동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아동에게 자주 편지를 보내거나 선물을 보내며 내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기도하는 것으로 마음의 빚을 대신하고 있는데, 나처럼 게으른 후원자와는 다르게 많은 분들이 후원아동에게 편지를 보내며 사랑을 전하고 마음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들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 번역자원봉사자들이 있는데 월드비전만 해도 약 천 명이나 되는 번역자원봉사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월드비전의 최고령 번역자원봉사자께서 전화를 주셨다. 14년 간 해오던 편지 번역 자원봉사를 이제는 그만해야겠다라는 내용이었다. 봉사를 시작하고 한번도 쉬신 적도, 마감을 어기신 적도 없는 성실한 분이었고 그만큼 귀한 분이어서 아쉬움이 매우 컸다. 하지만 81세로 고령의 나이를 가지고 계시니 어쩌면 힘에 부치셨을지도 모르겠다. 이 분이 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투병 중이던 남편이 천국을 가고 자식들이 출가한 후 허전함과 외로움 속에 3년을 헤매고 있을 때, 동생의 제안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픔과 외로움이 어느새 사라지고 행복이 자리 잡더라고요”라고 말할 정도로 이 분을 힘든 시간 속에서 건져냈다. 나는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해외아동후원이 후원자와 후원아동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그 둘을 잇는 봉사자의 삶까지 변화시키다니. 너무 멋진 이야기가 아닌가! 먼 나라에 사는 해외 아동을 후원하는 해외아동후원이 사업후원이나 특별후원과 다른 점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고, 그 관계를 맺고 깊어 가는 과정 속에서 아동과 후원자, 그리고 가교 역할을 하는 봉사자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된다’는 점이다. 그 변화는 자존감을 높이고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지를 넣어주며, 다른 이를 향한 배려와 사랑을 포함한다. 실제로 후원을 받은 아동이 그렇지 못한 아이에 비해 자존감도 높고 훨씬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해외아동후원, 더 나아가 해외 빈곤지역을 돕고자 하는 경향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약 3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난해와 올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것은 월드비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동종기관들도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렵고 고령화, 청년실업 등의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짐에 따라 전반적으로 나눔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를 도와야 한다고 할 때 흔히들 ‘대한민국은 옛날에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는 우리가 어려운 나라를 도와야 한다’ 또는 ‘기독교인들은 사랑을 실천해야 하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당위성과 책임론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후원과 연결되어 있는 이들의 변화에 주목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앞에서 짧게 언급했듯이 후원은 단순히 돕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관계 맺음이며, 더 나아가 후원자와 아동, 그리고 봉사자의 삶에 기쁨과 보람을 넘어서 변화를 가져다 준다. 주님과 우리가 관계 맺음을 통해 변화하듯 우리도 아동과 더불어 간접적으로 관계 맺는 봉사자까지 관계 맺음을 통해 예수의 향기와 예수의 삶을 전하고 그들과 내가 함께 주님을 닮아 가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에 함께해 주시는 여러분의 손길이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하나님의 축복과 평안이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길 기도하며 이야기를 마친다. /월드비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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