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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사랑의 실천 기사

  • 복지사회를 실현하려면
    ▲ 김연준   현대 문명의 막다른 골목을 타개하고 이상적인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치의 궁극적 원천이 돼야 한다는 것이 저명한 문명 비평가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이 말은 결국 인간애를 모든 생산의 동기와 결과에 앞서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인간애를 실현한다는 것을 개인적인 감성을 통한 자비나 시혜로 국한한다면, 이를 실행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요, 받는 사람도 인격적 긍지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쾌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애의 실현이 공적 기관을 통한 공적 행위로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피한 요청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납세로써 국가에 이바지하는 것도 공적인 사랑의 행위이며, 많은 재산을 들여 교육 기관을 운영하는 것도 사랑의 실천일 것이다. 그것은 곧 인간애가 사회 조직을 통하여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처지에서 전폭적인 복지 사회를 전국적으로 실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진실로 공기관을 통한 ‘사랑의 실천’을 염원한다면, 민간 주도로 작은 복지 기관을 자유롭게 설치, 운영할 수는 있다. 우리가 인간을 위한다는 것은 타인의 일이라 하여 물 건너 불 보듯 방관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인간애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사회 보장이 국가나 공적인 기관을 통하여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이것은 자유 시민으로서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당연히 그래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적인 애정, 연대감, 신념, 책임, 창조적인 소망 등등 인간의 의식적 가치를 마멸 또는 감퇴시키고 소유, 낭비, 지위, 오락 등 무의식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비인간화 경향이 증대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관을 통하여 기능적으로 남을 도우면서도 돕는 사람이 인간적임을 잃지 않고, 도움을 받으면서도 받는 삶이 비인간화되는 것을 면하려면 인간애의 생동하는 모티브에서 역동성을 찾아야만 한다.    사랑은 내가 너를 객관화하거나 물화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안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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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8-02
  • 가나안은 그의 형제의 종이 되어라
    ▲ 이명호목사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 때에 온 땅이 부패하고 포악함이 가득하므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희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노아의 온 가족이 하나 되어 배를 만들어 가는 반면에, 함은 원망, 짜증, 불평, 불만의 씨가 파괴되지 못하니, 시시때때로 불평하고 원망한다. 그때마다 노아는 달래기도 하고 책망도 하고 말씀으로 참과 거짓, 선과 악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양육해 주면서 기도로 이끌어 가도 그 때 뿐이다.   홍수가 끝난 후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드리고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 노아가 술이 깨어 작은 아들 함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함이 노아의 하체를 보았으므로 종이 된 것이 아니다. 끝까지 허물과 죄를 용서할 줄 모르고 비판과 판단의 씨로 형과 아우를 미혹했기 때문에 종이 되라 한 것이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 노아의 심장을 헤아리고 그 사정을 알기에 이불을 덮어드리고 부모에 대한 효심이 우러난 것이다. 함과 야벳과 셈의 심장의 차도가 여기에 있다.   함은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메시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고 영생에 이르도록 하셨다. 이 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함과 같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신다.   인류가 율법으로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제물이 되게 하셔서 죄인을 용서하셨다. 우리도 셈과 야벳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순종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자. 그리하여 성민방주를 짓는데 전심을 다하여 참고 견디어 십자가로 달려가자.  /서산중앙병원 이사장·제일성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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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7-25
  • 사랑의 수고가 한국교회를 살린다
    ▲ 김철환목사   믿음, 소망, 사랑, 바울의 명언 중에 명언이다. 그런데 정확한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다시 설명한다.    믿음에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즉 믿음에는 구원의 역사가 있어야 하고, 믿음으로 인한 기적의 선물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게 뿌리를 내린 소망이 있다면 인내해야 한다. 하나님의 때까지 참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을 설명한다. 사랑에는 노고가 있어야 한다. 즉 땀 흘림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랑의 노고는 무슨 뜻일까? 사랑을 말로만 하지 말라는 뜻 아닐까?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하라는 뜻은 아닐까? 사랑을 명사로 만들지 말고, 동사, 즉 움직임으로 실천하라는 뜻은 아닐까?   혹 한국 교회는 입술의 사랑은 잘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손과 발의 사랑은 여전히 미숙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감정일까? 이제 한국 교회는 사랑의 수고를 고민할 때이다. 그 사랑의 수고의 가능한 그 한 길을 필자는 ‘돌봄=care giving’ 에서 찾는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예외 없이 돌보는 어머니의 사랑의 수고로 생존하게 된다. 교회는 모든 인류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의 수고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를 품어야 한다. 찾아진 자녀이든지, 잃어버린 자녀이든지 품어 돌보아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너무 회자되어 식상한 언어이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해결하여야 하는 숙제는 초 고령화, 세계 1위의 자살, 세계 최저 출산율, 증가되는 우울증 등이다. 이는 지속적인 돌봄 곧 사랑의 수고로만 가능하다.   이제 교회는 사도 바울의 권면 중에 권면, 사랑의 수고, 곧 돌봄을 실천할 때이다. 일천만명이 모두 돌봄자 되어 일천만명의 어려운사람을 돌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2천만명 되지 않겠는가? 2천만명 그리스도인은 필자의 기도이며 동시에 도전이다. 그래서 오늘도 스데반집사로부터 돌봄을 배운다.   오늘도 스데반집사로부터 사랑의 수고의 그 비법을 배운다. 주님 우리 모두가 사랑의 수고를 배우고 실천하여 2천만 그리스도인의 시대를 열게 하소서. 아멘  /루터회 직전 총회장, 작은예수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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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7-18
  • 난민과 기독교인
    ▲ 전병금목사   2015년에 내전이 발발하여 전쟁의 참화를 견딜수 없는 예멘인들이 조국을 탈출하여 말레이시아를 거쳐 우리나라 제주도가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하여 들어왔다.   그들 난민이 561명이고 그들 가운데 549명이 우리나라 정부에 난민신청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들 예멘 난민 수용을 두고 찬반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13일 난민 신청 및 입국을 금지하자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오더니 지난달 30일에는 서울에서 난민 수용 찬반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전쟁중에 탈출하여 이 먼 곳까지 온 이들에 대해서 인권적 차원에서 우리나라에서 난민으로 받아들여 살 수 있게 하자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에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 개헌’을 청원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 정부는 예멘 난민들에 대해서 출도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므로 그들은 제주도에서 빠져 나올수 없게 되었다. 전쟁 난민으로 살 곳을 찾아 왔건만 그들이 그 어디에 발 붙일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형편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난민 허가를 반대하는 이들은 범죄가 크게 늘어 날 것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걱정은 기독교인들의 우리나라가 이슬람화될 것에 대한 우려이다.   그러나 독일의 저명한 교수의 연구논문에서 “난민 증가가 범죄급증을 야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을 지은바 있다.    그런 것은 미리 두려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었인가를 생각하고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6)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가르침대로 오늘의 강도 만난 예멘 난민들을 이 땅에셔 안식처를 삼고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이사장·기장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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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7-11
  • 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의 어록
    ▲ 김연준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역사를 살펴보면, 가톨릭의 경우 이승훈이 연경에서 세례 받은 때인 정조 7년(1783)이며, 개신교의 역사로는 갑신정변이 일어난 다음 해(1885)이다. 이는 짧다면 짧은 기간일지 모르나 기독교가 우리 역사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기간 동안 기독교는 창조자의 피조물로서 모든 개체 인간의 평등성과 존엄성을 기본 정신으로 하는 근대 사조를 교도들의 힘으로 실천에 옮겨 봉건적 계층 사회의 혁신에 공헌했다. 세워진 교회와 학교들은 귀한 자와 천한 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게 차별 없이 문을 크게 열었고, 남자와 여자에게 다 같이 신앙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일부일처를 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가정 제도의 확립과 모든 사람에게 의료의 기회를 제공하는 박애 정신도 인간 평등의 새 규범을 세우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또한 우리 민족의 보배요, 귀중한 자산인 한글이 오랫동안 흙속에 묻혔던 것을 파내고 그 진가를 다시 찾아 성서와 찬송가와 신문과 잡지를 순전히 한글로 발간함으로써 세종대왕의 위업을 재확인케 하였다.  역사적 경험이 기독교인의 잠재 능력을 뒷받침하는 것이며, 흩어짐에 치우친 우리 현실에서 국력의 조직화가 요청된다고 할 때 가장 힘찬 조직력을 자랑할 수 있는 자가 곧 기독교인일 것이다.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힘, 개별 교회가 모여서 이룩하게 되는 기관 조직과 이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수법의 체득, 그리고 교육과 의료와 사회봉사 및 자선 사업들에 대한 남다른 의욕과 자진 참여의 전통, 또한 가장 중요한 실천적인 사람으로서의 사명감과 생활 규범 등은 모든 현대종교가 지향하는 바이거니와, 그것은 특히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에게서 가장 강력하게 이루어진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의 전 인류 사회의 근본적인 병폐는 사랑의 결핍에 있으며 그것은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때야말로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참다운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나라와 사회뿐 아니라 나아가서 인류 사회 전체까지도 사랑으로 충만하게 만들어야 할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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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6-27
  • 먼저 가서 화해하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한반도에 새로운 화해와 평화의 길이 열리고 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고 먼저 사랑하셨고 먼저 용서하셨다. 믿음 없이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화해하기는 불가능하며 원수까지 사랑할 수가 없다.    사람은 죄인이기에 그 누구도 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바로 죄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아무도 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아무도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와 같이 죽음의 운명 속에 갇힌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대속의 제물을 마련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물의 희생제물을 드림으로 죄사함의 은총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실물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희생이 되시므로 더 이상의 제물은 필요 없다. 그리스도의 제물이면 족하다. 이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자는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다는 약속하신 것이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게 우선되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형제와 이웃과 먼저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해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형제와 이웃과 화해를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이와 같이 화해에는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는 내가 가야한다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가서 용서하고 또 용서받을 것은 받고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내가 먼저 가야 한다. 화해는 내 마음이 먼저 열려있어야 한다. 내가 먼저 시작하고 내가 먼저 뜨거운 심정으로 일어나야 한다. 내가 먼저 가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본받아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만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본질이다.   먼저 가서 화해하라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절대적인 명령이요 이 땅에 수없이 일어나는 불화와 갈등은 나 때문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죄임을 깨달아야 한다. 회개하고 화해에 앞장을 서도록 하자. /예장 합동한신 증경총회장·목포중부교회 목사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2.0px '.Apple SD Gothic NeoI'; color: #454545} 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2.0px 'Helvetica Neue'; color: #454545} p.p3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right; font: 12.0px '.Apple SD Gothic NeoI'; color: #454545} span.s1 {font: 12.0px 'Helvetica N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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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6-20
  • 참된 지도자
    ▲ 이홍렬목사   지방자치 단체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끝났다. 선거 홍보물을 보면 모두가 훌륭하고 위대한 지도자감이다. 후회없는 선거가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교회고 사회고 국가이고 지도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을 그 공동체의 크나큰 축복이다.    그렇다면 좋은 지도자란 누구인가? 성경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자신의 백성을 양떼와 목자로 비유하신다. 여기서 목자가 바로 지도자이다. 그런데 목자중에는 좋은 목자와 삯군 목자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목자, 곧 좋은 지도자의 결론적 조건은 하나이다. 바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좋은 목자라는 것이다. 양떼의 아픔을 헤아리고 밤낮으로 양떼를 돌보며 양떼의 이름을 불러주고 양떼를 앞서나가며 양떼가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목자가 참된 목자요 지도자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 교회와 사회 국가에 대입해보자. 교회로 말하면 성도가 양떼요, 국가로 비유하면 백성이 양떼이다. 참된 지도자는 바로 그 양떼와 아픔을 공유하며 양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목사님들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헌금이 많이 들어와야 좋은가? 적게 들어와야 좋은가? 거의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헌금은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정답은 ‘알맞게 들어와야 한다.’이다. 왜 그런가? 젖을 짜내는 양떼의 아픔을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삯군 목자는 자신의 이익이 먼저이다. 참 목자는 양떼의 유익이 우선이다. 삯군 목자는 양을 죽여 자신이 살려고 한다. 참 목자는 자신을 죽여 양떼를 살리려고 한다. 삯군 목자는 양떼를 단지 젖과 털과 고기를 얻는 대상으로 보지만 참 목자는 양떼를 자신의 생명을 바칠 헌신의 대상으로 본다. 삯군 목자는 양을 죽여 내가 사는 목자이지만 참 목자는 나를 죽여 양을 살리는 목자이다. 한국 교회 안에 그리고 우리나라 안에 먼저 양떼의 고통과 아픔을 헤아리며 자신의 생명을 내놓은 참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 총회장·새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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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6-12
  • 사랑이 있는 삶
    ▲ 장차남목사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는 외형의 덩치와 요란한 울림에 비하여 그 소리가 공허하고 그 모양이 왜소한 느낌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다. 성경에 사랑이 없으면 교훈과 언변, 지식과 능력, 봉사와 희생이 있어도 아무 유익이 없다 하였고 그것을 회복하지 않으면 교회의 촛대를 옮길 것이라고 하였다.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는 첫째, 타인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해야 한다. 둘째, 타인에게 베풀고 서로 나누어야 한다. 셋째, 타인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런 신앙을 가지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랑이 있는 삶을 보여 준다면 우리 사회의 교회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되살아나고 급기야 세상의 빛이 되고 향도자가 될 줄 믿는다. 그래서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사랑의 본을 보여준 두 가지 실화를 여기에 소개 하려고 한다.   먼저 가족사랑의 경우로서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 벤자민 B. 워필드라는 뛰어난 변증 신학자가 있었다. 이 분은 화란의 카이퍼와 바빙크로 더불어 19-20세기 세계 3대 칼빈주의자로 일컬어 질 만큼 탁월한 신학자이다.    워필드는 그의 신학도 훌륭하지만 그의 삶이 참으로 훌륭했다. 그는 25세에 결혼하여 독일로 신혼여행을 가다가 폭풍우 속에서 벼락을 맞아 영구 불구자가 된 아내를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9년간 수발들고 간병했다. 이런 헌신적이고 희생적 삶이 그의 신앙과 신학과 삶을 일체화시켜 그를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이다. 이런 분이야말로 말과 삶, 학문과 인격이 하나로 승화된 성도이다.   다음 이웃사랑의 경우로서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한경직 목사가 평양에서 잠시 교편을 잡다가 신의주 제2교회에 가서 목회하면서 보린원이란 고아원을 세웠으며 그 후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를 사임케 된 한 목사님은 보린원 일만 전념타가 해방을 맞았다.   그런데 그가 신변의 위험때문에 1945년 월남할 때 복순이를 데려오지 못한 것을 늘 마음에 걸려했다. 그래서 언젠가 최창근 장로가 한 목사님에게 ‘통일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게 뭐입니까?’ 하니 그의 답변은 ‘이북의 보린원에 두고 온 소녀가 있어, 이름은 김복순이라고, 살았다면 60넘은 할머니가 되었을거야. 피난 올 때 몸이 불구여서 데리고 나오지 못했어. 그 때 함께 피난오지 못한 것이 늘 가슴아파’ 라고 하더란다.   여기 한 신학자와 한 목회자의 사랑이 있는 삶은 이 분들의 신학과 설교를 숨쉬게 했다. 예수께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 하신대로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예장 합동측 증경총회장·온천제일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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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6-07
  • 터치전도 2018, 전국 무료 컨퍼런스 성황
    ▲ 김준행선교사   한국교회의 체질을 바꾸고 있는 터치전도코리아(본부장=김준행선교사·사진)는 2018년 전국 1일 무료 컨퍼런스를 열고, 전도의 확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한다.   터치전도는 단순히 전도방법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적이며 구체적이라는 것이 그동안 터치전도를 진행하며 성장한 교회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   이에 대해 터치전도코리아 본부장 김준행선교사는 “터치전도는 전교인이 함께하는 전도 운동으로 교회 전체를 전도하는 체질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라며 “교회운영 전반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김 본부장은 “특히 복음으로 하나 되는 교회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서는 놀라운 변화를 알 수 있는데 첫째로 회개가 일어나며, 둘째로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며, 셋째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이는 곧 살리는 신앙, 행복한 교회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전도가 바로 터치전도”라고 했다. 교회부흥은 숫자가 아니라 내적 부흥이 진정한 열매다.     교회부흥을 숫자로 말하지 않는다는 김본부장은 내가 먼저 영적으로 변화를 받으면 내적 부흥으로 이어져 반드시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 복음의 진정한 원리처럼, 터치전도 또한, 영혼 구원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교회부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대다수는 이 목표의 우선순위가 다 바뀌어 있기 때문에 먼저 숫자로 판단하고 평가를 받기에 교회는 숫자적 부흥에만 목표를 갖고 있다고 전하는 김본부장은 복음은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으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면 그 결과는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고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터치전도는 교회 규모나 지역과 관계없이 실행한다.   살리는 신앙,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터치전도는 교회의 규모나 지역과 관계없이 생명이 있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며 실행할 수 있다는 김본부장은 ‘1년에 1명 이상 세례교인 세우기 전교인 전도 운동’으로 진행되는 터치전도는 전교인이 100% 전도하고, 정착과 양육을 함께 하는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적용된다고 전한다. 특히 터치전도는 행사가 아니라며, 내가 받은 구원의 축복을 전하며 행복을 나누는 것으로 지금 내 안에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복음을 전하고, 만약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다시 한 번 복음 앞에 설 수 있는 터치전도를 통하여 신앙생활의 실제를 이루어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터치전도는 1회성 전도가 아니라 매년 주제가 새롭다.   터치전도는 현재 1,200여 교회가 정회원 교회로 2박 3일 정기세미나를 통해 교육을 받고, 700여 교회가 실행하여 열매 맺는 교회로 귀한 복음을 전하며 성장해가고 있다고 전하는 김본부장은 터치전도에 참여하는 모든 강사진은 터치전도를 실제로 적용하여 나타난 결과를 갖고 강의를 한다는 것과 1회성 전도가 아니기 때문에 매년 주제를 새롭게 하여 업데이트되는 신규 교재를 제공하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며 자랑이라고 했다.   현재 무료 컨퍼런스는 5월 24일 대구를 비롯해 25일 통영, 28일 대전, 31일 전주, 6월 1일 서울, 5일 당진, 7일 광주, 8일 여수에서 순차적으로 열린다.  또한 터치전도는 일 년에 한번 6월 셋째 주 지난 월~수에 정기세미나를 개최한다. (터치전도코리아 본부장 김준행 선교사 010-4430-0691,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www.goodtouch.net 전화 02-764-7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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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8-05-23
  • 평화와 통일로 가능 멀고도 험한 길
    ▲ 김국경목사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남북이 쌍방 간에 휴전선에 흉측 한 가시 철책을 설치한 후 65년에 세월이 흘렀다. 정전협정 후 반세기가 넘도록 간헐적인 북한의 도발로 또다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남북의 정치적 대립은 물론 사상적인 대결구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사상과 이념의  갈등으로 남한 내에서도 보수와 진보, 좌파 우파로 분열되어 국민 간에, 그리고 계층과 세대 간에, 심지어 가족 간에도 갈등을 느끼고 있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이 선포되자 우리국민들이 열망하던 평화와 통일의 전망이 눈앞에 다가온 듯 환호하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북한이 일방적으로 고위급 회담을 무산시키고 북미정상회담도 줄다리기에 들어감으로 평화조약마저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한편 북핵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동안 유엔과 미국이 북한에 취했던 경제제제조치를 풀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투자와 경제 지원을 시행함으로 북한이 경제 강국이 될 것이며, 이에 따라 북한은 정권과 체제유지를 위해 주민들과 북한을 왕래하는 외국인들에게도 더 철저한 감시와 강압정치를 써서 현재보다 인권유린문제가 강화될 수 있고 통일은 더 요원해진다는 우려도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핵무기 다음으로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에 인권문제를 정상회담에 의제로 삼아 협상하고 북핵문제와 동시에 풀어가야 한다.    인권 운동을 위해 헌신한 역사적인 인물로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마틴 루터 킹 목사,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중국의 류사오보(劉燒波) 등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한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쳐 박사와 인도의 성녀 테레사 여사, 1천여 명의 유대인들을 나치로부터 구출한 오스카 쉰들러, 한국의 성자 장기려 박사 등과 더불어 위대한 인물로 추앙을 받고 있다.    인권문제를 우선시하는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정상회담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5월 9일 평양을 방문해서 협상 끝에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구출해냈다. 심지어 미국정부는 6·25전쟁에 참전해서 전사당한 미군의 유해를 발굴 송환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남한과 북한 땅에서 탐색 발굴 작업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북한에 억류된 6명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남한과 북한 두 개의 체제가 어느 때 까지 유지되고 언제 통일의 날이 올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 아시는 사안이지만,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속히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고 우선 신앙과 사상이 통일되어 인도주의 차원에서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는 대한민국(남북)이 되기를 기대한다.  /예장 합동선목측 총회장·목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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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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