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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복음 이루고 증거하자
    ▲ 엄정묵목사  인간은 하루 23,000번의 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하나님께서는 호흡의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진행하도록 창조하셨고 우리는 그 속에서 호흡을 잊듯 하나님의 은혜마저 잊고 살아간다. 창조주의 은혜를 잊고 사는 우리는 내가 낫니 네가 낫니 서로 아웅다웅 다투어 가며 세상을 온통 전쟁터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죽음은 비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언젠가 불현듯 닥쳐올 그 흉흉한 죽음을 잊고 살기에 참으로 어리석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장 14절) 인생사 부질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부활하심으로 그 인생의 덧없음을 이겨내셨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무덤을 통해 망자를 기린다지만 그리스도는 무덤이 없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임을 우리 스스로 증명할 수 있었다. 육신은 죽고 영이 살아야 생명이 있고 부활이 있다. 우리가 육신을 살리고자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주권자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대로 행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빠진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한국교회가 위기라고들 말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사랑의 실천은 외면하고 서로들 높아지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듯 서로 높아지기 위해 삶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죽음 이후의 부활을 진정으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들의 육신을 이겨내고 있지 못하고 있음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모든 교계, 교파, 교단이 새롭게 태어나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함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서로들 다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랑은 희생이고 희생은 죽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만이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수의 사랑만이 온건할 수 있다.  /엘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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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25
  • [부활절메시지] 부활은 온 우주에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
    ▲ 길자연목사  성경이 증거하는 최고의 사건 두 가지를 고른다면 그것은 단연 창조와 부활이다. 창조가 우주의 기원이라면, 부활은 사탄으로 인하여 타락한 창조 질서를 회복한 것이다. 그러나 그 회복은 단순회복이 아니라 종말론적 회복이다. 종말론적 완성을 그리스도께서 보증하신 것이다.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새하늘과 새땅이 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씻기시고,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이 다시 있지 않도록 하실 것이다. 이번 부활절에는 영혼구원에 그치지 말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취하신 새로운 회복의 의미를 새겨 보면 좋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부활의 소식이 절실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가정이 해체되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강원도에서 일어난 큰 산불은 많은 분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이런 일을 보면서 인간의 도모가 얼마나 하찮은 일인가 깨닫게 되고, 정의와 평등 인류애를 외치면서 전혀 다른 얼굴을 숨기고 있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게 된다.  또한 날로 황폐해가는 지구 생태계에도 부활의 소식이 전해져야 한다. 환경문제는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조만간에 총체적 황폐로 인간의 생존환경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타락이 우주적 사건이듯이 부활 또한 우주적 사건이다. 환경도 부활의 새질서로 거듭나길 기도해보자. 부활의 소식은 세상만이 아니라 교회에도 전해져야 합니다. 교회가, 교단이, 그리고 한국교회가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가 본질에 충실하고 사회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한다. 남을 보기 전에 자기를 먼저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참된 용기와 혁명적인 사고 전환이 있어야 한다. 부활은 축하할 일일 뿐만 아니라 축하받아야 할 일이다. 부활이란 그리스도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고, 나와 온 우주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부활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기총 증경총회장. 왕성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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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21
  • 십자가의 주변 인물
    ▲ 이영식목사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다 보면 주변의 몇 인물이 특히 생각난다. 가룟 유다가 그 인물 중의 하나다.  유다는 지나치게 자기만을 생각했다.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다. 하나님은 지나친 이기심을 싫어하신다. 빌라도도 그렇다. 그는 유대를 통치하기 위해 파견된 총독이었다. 그는 선동적인 유대인들에게 못 이겨 예수를 죽음에 넘겨준 사람이었다. 죄 없음을 알면서도 넘겨주고 자기는 스스로 죄의 사건을 벗기 위해 군중이 보는 앞에서 손을 씻었다. 이것이 정치가의 행태인지는 모르나 참으로 졸렬한 그리고 비열하면서도 자기중심의 동굴을 벗어나지 못한 소인배의 행태임에도 분명하다. 예수를 죽음에 넘긴 빌라도는 훗날 자살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아무리 나는 죄 없다며 손을 씻었지만 그 한 줌의 물로 어찌 범한 죄가 씻어졌겠는가. 오늘날이라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제비를 뽑아 예수의 옷을 나눈 것 같이 민중을 죽이고 훈장을 단 인물들이 버젓이 같은하늘 아래 숨을 쉬고 있다.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을 고문하던 사람이 훈장을 받고 승진을 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지 이천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끝까지 울음을 삼키던 여인들의 정신이 오늘날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이런 세태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를 찬송했다. 진리를 신봉했다. 옳은 것을 위해 자신을 굽히지 않았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는 않겠다는 절개를 보여 주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보아도 그런 여인들을 닮은 사람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많은데 의인은 없다. 의인이 없다며 주님이 울고 계신다. 십자가 위에서 못질 당한 진리는 그러나 죽지 않았다. 그날에 부활의 기쁨이 온 세상을 메울 그날에 떳떳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일어서야 한다. 끝까지 정조를 버리지 않은 여인이 되어 혹은 가슴을 치며 돌아온 탕자가 되어 만민 앞에 바로 설 일이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지도자와 우리들의 몫은 아닐까! /예장 합동한신 증경총회장·목포중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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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09
  • 이스라엘에서 배운 교훈
    ▲ 김연준박사  내가 주로 미국과의 민간 외교에 치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의 뜻은 변함이 없었다. 일본·프랑스·독일 등에서 음악 발표회를 한 것이나 각 나라 대학들과 자매 학교 관계를 맺은 것도 결국엔 단순한 예술 교류나 학문 교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 중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1987년 4월에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과의 자매 결연을 맺을 때의 일이다. 당시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것은 형식상으로는 텔아비브대학과 자매 결연을 맺는 일이었지만 사실은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나를 초청하여 겸사겸사로 가게 되었다.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텔아비브대학으로 가기 전에 나는 먼저 라빈 총리를 만나 한 시간가량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나는 무척 많은 것을 얻었다. 나는 이스라엘 총리가 들려 주는 그 나라의 특성에 대하여 경청하면서 우리나라의 실정을 견주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것이 많았는데, 특히 그 나라 국민의 애국심과 검소한 생활상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다. 이러한 풍조는 그냥 무심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이 평상시에 우리 국민들이 애국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더 파고든다면 교양과 교육에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라빈 총리의 말을 듣고 또 내가 직접 목격한 바에 의하면 이스라엘 국민들에게는 그런 풍조가 거의 없다.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사는 부자 나라인데도 국민 전부가 너무도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학 교수가 25평 이상의 아파트를 가지고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25평 이하의 집에서 산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서 나는 국민성이라는 것은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따라서 오랜 역사와 전통이 왜 필요한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민의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근검 절약하는 정신이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꾸준한 국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끼고 돌아왔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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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03
  •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
    ▲ 이요셉목사   이 세상은 지금 삶의 자세나 윤리와 도덕은 물론 가장 중요한 가치기준까지도 근본적으로, 그것도 아주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변화가 의미나 목적, 방향도 없는 아주 무가치하고 무질서한 변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변화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올바르게 믿음을 지키고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나서 성전을 깨끗케 하셨다. 여기에서 무화과나무는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저주를 받았고, 성전은 없어야 할 것이 있어서 저주를 받았다. 먼저 우리 한국교회는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다 일엽편주와 같은데, 이 세상은 바다와 같아서 예기치 못한 풍랑이 있고, 심한 안개로 시야를 가로막기도 하며, 해초에 걸리고 암초에 부딪치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당하여 실패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 인생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배 안에 있는 나침반과 같이 끊임없이 자기위치의 자리로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개혁의 의미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에게서 이탈된 자신을 예수님에게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위치를 말한다. 또한 무엇을 개혁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 터로 만든 것은 저들의 인간적인 편리주의와 영리주의 때문이었다. 신앙생활은 어떤 편리를 도모하고 이권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러한 태도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중심이 되기 때문에 자신을 부패하게 하고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며 사회를 어둡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새롭게 거듭나도록 철저하게 개혁하자. 그래야 성도로서 자기 위치를 회복하고 교회 또한 하나님의 교회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이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 뿐만 아니라 이 개혁은 생명이 있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회복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이번 사순절기간에 이러한 개혁의 역사를 이루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이루어가자. /(사)한국교회연합 초대대표회장, 선린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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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6
  • 한기총은 공개토론회를 열어야 한다
    2012년 한국기독교총연합과 당시 한국교회연합의 분열 이후 한기총은 ‘이단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다. 지금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를 재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지금의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지난 1월 30일 한기총의 전광훈회장과 한교연의 권태진회장은 회동을 갖고 올해 6월까지 통합하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분열된 연합기관들이 서로 통합하겠다는 ‘합의서’는 그 동안 무수히 봐왔기에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컸지만 ‘그래도 이번에는’하는 기대를 가지고 양 기관의 행보를 지켜봤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나’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한교연은 통합 불발의 이유에 대해 ‘변승우’라는 이름 석 자를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한기총이 대다수의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인사를 받아줬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이단논란이 통합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한국교회의 다수가 이단으로 규정하는 문제에 대해 한기총이 ‘아무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유에 속하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설득력이 필요하다. 그냥 ‘내가 보니까 이단이 아니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한기총은 ‘다수가 규정한 이단을 풀어주는 단체’라는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다. 이렇게 되면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더욱 어렵게 된다. 한기총이 공개 토론회를 열기 바란다. 신학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들과 함께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인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조사하고 토론해주기를 바란다. 어떤 면에서 이단성이 없는지를 한국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설득력과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정당성 없이는 어떤 통합이나 연합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한다.  한기총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맏형’이다. 당연히 한국교회 안에서 맏형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기총이 공개토론의 자리로 속히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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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14
  • 이웃사랑 실천하는 ‘기독교’ 되자
    ▲ 이정익목사 우리는 몇 주전 3·1절 100주년의 역사를 보냈다. 100년 전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였고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나라는 빼앗겼고 분명 우리는 내 땅에서 살았건만 주권을 다 빼앗긴 채 일본인들의 지배를 받고 살았었다. 나라 없는 민족은 비참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초라하고 불행하다. 그럼에도 100년 전 우리 민족은 분연히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분명히 표현하였고 자주독립을 외쳤다. 그 용기 있는 자들의 뒤편에는 기독교의 후원이 있었다. 당시 기독교는 천도교나 불교에 비해 역사도 짧았고 교세도 소수였다. 그렇지만 한국 기독교는 작지만 강하였다. 그리고 백성들은 한국교회의 교세를 보지 않고 응원하고 신뢰하였고 믿어 주었다. 그것은 당시 기독교가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모습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명성황후의 처참한 죽음으로 한국민족은 자존심이 상하였고 마음의 상처가 컸으며 그럼에도 목 놓아 울지도 못하고 있을 때 한국교회는 용기 있게 나서서 성대하게 명성황후의 추모식을 거행하여 주었다. 명성황후의 시해사건 이후 민심이 흉흉할 때 정주지방을 중심으로 악질이 번져갔다. 길거리에 시체들이 나뒹굴었고 자식이 죽어도 전염될까봐 대문밖에 시체를 버리고 관에서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을 때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거리의 시체들을 수습하였다. 이 같은 기독교인들의 행동이 우리민족에게 상당한 메시지를 주었고 또한, 용기를 주는 모습들이었다. 그 결과 그 시대 우리 민족은 3·1운동을 앞장서서 이끌던 기독교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저항운동에 적극 협력하여 동참하였던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환경과 풍요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교회가 우리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는 그리 신선하지 못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본질에 아주 충실하였다. 그에 반해. 오늘날은 한국교회가 너무 커졌다. 그리고 힘이 막강하여졌다. 그런데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그리 많은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가 본질에서 너무 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선배들의 신앙과 민족 사랑을 본받아 이웃 사랑실천에 매진할 때라고 생각된다.  /기성 증경총회장, 신촌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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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14
  • 내가 먼저 ‘사랑’하는 마음을
    ▲ 김상복목사   돈이 있는 사람만이 남에게 돈을 줄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 평화도 있는 사람이 줄 수 있고, 사랑도 있는 사람이 줄 수 있다. 없는 사람이 어떻게 줄 수 있겠는가?  어려서부터 사랑을 많이 경험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우리가 보기에도 다르다. 그런 아이들은 흔히 웃기도 잘 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른들에게도 쉽게 접근한다. 그리고 사랑을 쉽게 표현한다. 사랑은 있어야 줄 수 있다. 없는 것을 어떻게 주나? 사랑은 줄수록 많아지고 준 것만이 남는 것이다. 사실상 준 것만이 영원히 나의 것이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나? 물론 없다. 남편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는 틀림없이 행복에 굶주릴 가능성이 크다. 자기가 행복한 사람만이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자신의 행복은 대단히 중요하다.  또 이웃에게도 중요하다. 내게 없으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남의 것을 뺏어 버리니까 남에게도 위험하다. 먼저 나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 나를 주위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을 느낀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행복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 줄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을 만나면 그 불행한 사람도 행복해질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행복이 먼저다. 기운이 있어야 남의 물건을 들어줄 수 있지 않은가? 그러면 어떻게 내가 행복하게 될 수 있나? 행복해질 수 있는 행복의 십계명을 소개한다.  첫째, 걱정을 하지 말라 둘째, 검소하게 살라 셋째, 기대치를 낮추라 넷째, 나누어 주며 살라 다섯째, 노래를 자주 하라 여섯째, 놀이를 즐기라 일곱째, 자신을 잊어버리라 여덟째,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주라 아홉째, 가슴에 사랑을 가득 채우라 마지막으로 밝은 햇빛을 널리 나눠주라.  어쨌든 우선 내게 행복이 있어야 한다. 내가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웃에게 행복과 사랑을 전해줄 수 있다. 나 자신을 먼저 잘 돌보라.   /횃불트리니티신대원 명예총장, 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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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10
  • 허심 탄회하게 통일문제 다루자
    ▲ 김연준박사  세계사의 큰 흐름이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극복하고 지역적 분쟁과 단절을 극복해내고 있다. 모처럼의 기회를 헛되어 흘려 버려서는 안 된다. 역사 앞에, 민족사 앞에 부끄러운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아 의식을 떨쳐 버리고 통일의 길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남과 북의 당국자들은 이제 허심 탄회한 통일 일념으로 바로 서길 바란다. 두말 할 것도 없이 통일은 지상 명제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당위적 과제이다. 통일 논의에 어떤 선전, 선동을 위한 술책이나 교언, 영색이 개재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태도는 명분만 내세우면서 통일을 지연시키려는 반통일적 작태에 불과하다. 이제 대화의 당사자들은 민족사 앞에 정대해야 한다. 둘째, 부수적인 문제들을 내세워 통일을 기피해서는 안 된다. 주지하는 대로 남과 북에는 숱한 이질적 요소가 산적해 있다. 국토 분단 이후 상반되는 체제를 오랫 동안 지내 오면서 정치는 물론 각 분야에 있어 너무나 많은 편차가 상존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점들을 빌미삼아 상대 쪽에 요구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에는 대화에 임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반통일적 태도이다. 양쪽에 존재하는 이질적 요소와 가치를 인정하고 통일의 길로 나서야만 한다.  셋째, 이제 모든 사회 제도나 문화도 통일 지향적인 데로 바뀌어야 한다. 아는 바와 같이 남과 북은 전쟁 상대자로 3년에 걸친 참담한 체험을 한 사이이다. 이 전쟁으로 수백만이 죽었으며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다치고 이산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방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을 지니게 되었으며, 이 적개심은 교육·홍보를 통해 증폭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적개심을 그대로 남겨 둔 채 통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할 수 없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상대방을 공존, 공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통일에 대비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남과 북은 모두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도록 교육과 홍보에 나서야 한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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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04
  •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치관
    ▲ 김국경목사 며칠 전에 지인이 찾아와서 30대 중반인 자신의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축하해 달라고 하면서 청첩장을 건네주고 갔다. 청첩장 뒷면에는 ‘저희 두 사람은 행복한 꽃길만 걷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풀이 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인에 의하면 결혼할 당사자들은 명문대를 나와서 일찍이 대기업에 몸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결혼 후 두 사람의 연봉을 합치면 행복한 꽃길만 걸을 것이 아니라 꽃가마를 타고 밀월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좋은 환경에서 특수를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여건에 놓여있다고 할지라도 ‘행복한 꽃길만 걷겠다’는 표현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자만일 뿐 아니라 실업자나 가난해서 결혼을 미루는 청년들에게는 큰 충격일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많은 청년들이 취업을 못하고 방황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영업을 하다가 빚만 지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도 많이 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생존경쟁이 치열한 오늘날에는 재벌과 능력자인 부모를 잘 만나야 좋은 대학도 가고 출세도 하는 세상이 되었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龍)난다는 말을 자주 들을 정도로 가난한집 자녀들의 성공사례가 다반사였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다니던 교회에,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이면서 주일이면 교회를 성실하게 섬기는 장로님이 있었다. 그분의 간증에 의하면 당시 그의 가정이 비교적 부요했으나 부친이 아들 삼형제에게 일단 고등학교만 졸업시키고 대학은 너희들이 돈을 벌어가며 공부를 하라고 하면서 약간의 생활비를 주어서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그들 형제는 부친의 권고대로 객지에서 모진 고생을 하면서 돈을 벌어 공부를 했고 삼형제가 모두 성공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들을 과잉보호 하면서 유약하게 기르기 때문에 그들이 고난을 당하면 도전 의식 없이 두려워하고 역경을 만나면 쉽게 넘어진다. 독일 속담에 쓴맛을 모르는 자는 단맛도 모른다고 했다. 자신을 위해 꽃길만 걸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보람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성경과 우리의 길 되신 예수님에게서 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엠마오영성부흥협의회 대표, 목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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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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