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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후안무치의 세대
         우리는 염치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대에 살고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은 허탈함을 넘어 절망에 이르는 수준이다. 국민소득 삼만불·경제대국·일류아이티산업·조선산업·K문화 등 정량적 면에서 선진국에 가까워졌으나, 정상적 면에서는 선진국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다. 이러한 괴리가 오늘 진통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성취를 위해 못할 짓이 없는 정치꾼들·법률보다 이념에 따라 판결하는 판관들·저울을 속이는 장사꾼들·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환자들을 나 몰라라하는 의사들·사람을 쉽게 죽이고도 자책이 없는 살인자들 그리고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큰소리 쳐대도 아무렇지 않는 세대에 우리기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염치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는 말인가. 정말 인간다움을 포기한 듯한 그런 것들이 우리들의 모습일까! 생명경시·물질만능·이기주의·도덕불감증·가치관상실 등 이런 것들의 극복없이는 사회의 병폐는 치유될 수 없으며 국가의 밝은 미래는 담보되지 못한다.    이제 교회가 하여야할 일은 뚜렷해졌다. 우리사회의 병폐를 치유하는 성경적 가치관 회복이 요청되는 것이다. 사회교육과 학교교육이 붕괴되고 가정교육마저 상실된 현시점에서는 교회교육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 공공의 선이 우선되는 가치관·너와 나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통합·도덕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건설·각자의 깨끗한 삶과 정직한 삶 그리고 나라사랑함, 국가가 없으면 국민도 없고 교회도 존재하기 어렵다. 이러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이다. 한국교회가 이 일을 감당함에 있어 절대적 명제는 하나님께 의뢰함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나는 매일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이 나라를 보우하사 아름답고 튼튼하고 정의로운 나라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부여하실 세계사적 사명을 감당하며 그 안에서 국민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나라되게 하소서 아멘” /서울신대 전 총장·한기총 전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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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4-03-05
  • [사랑의 실천] 성경으로 돌아가자.
       종교개혁자들이 뼈를 깎는 자성과 함께 깊은 묵상과 연구를 통해 체득된 신앙의 노하우, 생명을 내건 투쟁의 목표는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사도들의 전승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사선(死線)을 넘나들면서까지 이렇게 항거(Protest)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반추해 볼 때 교회가 부흥하던 다섯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첫 번 시기는 A.D 100년을 전후해 사도들이 순교를 마다하지 않고 생명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던 시기요, 두 번째는 A.D 300년에서 430년 사이 황금의 입으로 불리며 성경을 바르게 깨달아 전했던 크리소스톰과 기독교의 교리체계를 확립한 어거스틴이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세 번째 시기는 수도원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12세기에서 13세기로 이때는 중세 천년의 암흑기를 말씀으로 밝히던 시기입니다. 다음은 16세기인데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펼쳐졌던 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영국과 미국에서 존 웨슬리와 요나단 에드워드, 찰스 스펄전 등이 주도하던 각성 운동의 시기입니다.    지난 2천 년 역사 가운데 다양한 교회들과 메신저들이 존재 하였지만 이 다섯 시기에 가장 안정되고 성경적인 건강한 부흥을 이룩하였는데 그 내면을 들여다 보니 로고스로 기록된 성경을 바르게 깨닫고 올곧게 전하던 말씀의 사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회복과 부흥을 갈망하는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은 자명해졌습니다. 그것은 두말없이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회복은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의 회복이며, 이렇게 될 때 실추된 교회의 권위 역시 회복될 것이고 전도의 문도 활짝 열릴 것입니다.      인간사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신인(神人)관계가 뒤틀린 데서 기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셔서(시 147:18) 그 말씀으로 우리를 고치고 살리는 일(시 119:50)을 하십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성육하셨기에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은 곧 예수님께,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됩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길 때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평안해지듯 말씀 안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신측 총회장·예향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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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4-02-20
  • [사랑의 실천] 선한 목자 리더십
        성서에 나오는 여러 비유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슴뭉클한 비유가 있다. 바로 목자와 양떼의 비유이다. 그런데 이 비유속에는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 외에 더 깊은 내용이 있다. 바로 양떼는 목자의 음성을 아는 고로 목자가 앞서가면 따라간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양떼가 그 목자를 따라가는 것은 단순한 꼴을 얻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그 목자에게 맡길만큼 절대적으로 목자를 신뢰한다는 말이다.    그 목자에 대한 백퍼센트의 신뢰가 없다면 양들은 그 목자의 음성을 무시할 것이다. 그때는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해 볼 수 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전적인 신뢰로 그 목자를 따를 수 있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이름 몇 번 불러주고 엉덩이 서너번 두드려 주었다고 양떼들에게 그 목자의 음성을 믿고 따르는 신뢰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르기 까지는 생명을 나누는 전 단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목자는 아침마다 우리에 들어가 양들을 쓰다듬으며 잠에서 깨웠을 것이다. 더러운 양들은 목욕을 시켜 주었을 것이고 상처난 양은 싸매주고 치료해 주었을 것이다. 눈꼽 낀 양은 자기의 손수건을 꺼내어 닦아 주었을 것이다. 더러는 약한 양이나 병든 양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목자는 밤새도록 그 양을 가슴에 안고 토닥여주었을 것이다. 양들이 위급에 처하면 언제라도 달려와서 구해주었을 것이다.        그 목자는 양들이 잠들기 전에는 먼저 잘 수 없었고 양들이 먹기 전에는 먼저 식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양들은 목자를 믿게 되고 목자의 음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속에서 작은 목자이다.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이 목자이고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이 목자이다. 직원들에게는 사장님이 목자이다. 백성들에게는 대통령을 포함하는 모든 지도자들이 목자이다. 조만간 나라의 일군을 뽑는 국회의원선거가 있다.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지도자, 백성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려주는 지도자, 백성들이 전폭적으로 그 음성을 듣고 의심없이 따라가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 그런 참으로 선한 목자같은 나라의 일군들을 기대한다면 너무 지나친 한 마리 양떼의 과욕일까?/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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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4-02-05
  • [사랑의실천] 야곱의 씨름
       주님을 쫓아 사는 것은 종종 아픔이 따른다. 어떤 경우는 한시적이나마 나를 낳아준 부모를 버려야 할만큼 뼈아픈 일도 생기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물들을 버려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이런 것들에 얽매여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람은 평생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뿐 결국 손에 쥐는 것은 허무밖에 없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데 하는 회한이 그를 잠식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참 용기를 아는 사람들은 한시적인 이런 고통들을 참아낸다.야곱이 그런 인물이었다. 하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멀쩡하던 뼈가 부러지는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을 잘 모를 만큼 극심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살리고 죽이는 권한을 가진 이에게 모든 것을 바칠 결심으로 그 샅바를 놓지 않았다.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간혹 이런 고통 속에 처해진다. 일주일마다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바쳐야 하고 그러다 보니 세상 일에 또는 사람들과 소홀해지기 쉽다. 이런 것은 그래도 감수하기가 쉬울 수 있으나, 내가 세상에서 취득한 모든 경험과 재산, 가치관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맞닥치면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된다.    마치 자기 스스로를 송두리째 부인해야 하는 것만 같아 자기 안에서 또 다른 자기가 극심하게 반발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과거를 완전히 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말씀하신 것도 세상의 것은 일단 버리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기를 창조하는 작업이며, 영원히 사는 길을 가는 사람이 취해야 할 자세이다.    하나님 편에 서서 진리의 편에 서서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인생의 짧은 경험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역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믿고 자기의 보잘것없는 헌 부대를 버려야 한다. 자식이 떡을 달라는데 독을 내미는 부모는 없다. 이것이 독인지 떡인지 미리 먹어보는 위험을 감수할망정 자식을 사망의 길로 이끄는 부모는 없다. 하물며 태초부터 우리의 인생을 계획하신 분이 우리를 죽음의 길로 이끌겠는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히 높고 깊다. 야곱이 믿음의 조상으로 추앙을 받기까지 그 또한 연약한 인간이었고 얄팍한 경험과 지식을 잣대 삼아 세상을 살던 사람이었다. 그가 만일 환도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참으면서도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을 붙잡지 않았다면 그가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우리의 손에 무언가 쥐고 있는 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그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굳게 믿고 실천한다면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주님께서 영원한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예장 합동한신측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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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4-01-23
  • [사랑의 실천] 인생의 커다란 밑거름
         1977년 3월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여 입학식을 한지 벌써 46년의 세월이 금방 지나가버렸습니다. 고 김연준 총장님의 훈화의 말씀과 교훈(校訓)인 ‘사랑의 실천’이 가슴에 뜨겁게 와닿았습니다. 그해 1학년 1학기말 종강파티를 마치고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져 한 달 반 동안 식음을 전폐한 채 병석에서 신음했습니다. 그러다 아픔 속에 있던 저는 로마서 12장 1절에서 2절을 읽고 죽을병에 걸려 고생했던 것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령님의 기적적인 치유로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고 저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길로 오게 되었습니다.     행당동산을 떠난지 46년이 흘렀지만 그 때의 ‘사랑의 실천’은 그 후로도 저의 일생의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야간신학교(성서침례신학교)와 함께 대학교를 졸업한 후 군대(수도경비사령부 군종사병)에 다녀와서 장로회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프린스턴신학대학원(신학석사)과 시카고신학대학원(철학박사)에 가서 공부할 때도 ‘사랑의 실천’은 저의 학업의 기초가 되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는 말씀을 따라 치유상담을 연구하고 치유목회에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전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에서 26년 째 가르치다가 정태기총장님의 뒤를 이어 총장이 되고 지금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의 총회장까지 되어 섬기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저의 신앙과 삶의 기초가 된 행당동산에서의 ‘사랑의 실천’ 덕분이었습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려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다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9~17)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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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4-01-09
  • [사랑의실천] 탈북 가정에 복음통일의 마중물
    ◇ 고향에 갈 수 없는 탈북·다문화가족들이 추석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붕어빵을 굽던 삶에서 영혼을 낚는 어부의 삶으로 전환 예수마음교회. 탈북 어린이들을 통일한국 인재로 양육   강화에 자리한 예수마음교회의 담임인 이무열목사(사진)는, 사업의 실패로 어려워진 생계를 잇고자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고, 1년 반을 매일 전도지를 나눠주며 장사했다. 그런 그에게 교회 성도들은 “물고기 빵만 구울 게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기도 끝에 교사로 봉사하고 있던 그는, 그저 아이들에게 제대로 말씀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에 광신학대에 입학했다. 그 후 이목사는 “내가 네 아버지가 되어준 것 같이 너도 탈북자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어라’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연고도 없는 김포에 무작정 정착했다. 한국에 가족이 없는 탈북 청소년 10명과 함께 개척교회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교회사택에서 아이들과 살며 이렇게 탈북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하는 소중한 교회가 탄생되었다. 이목사가 시무하는 예수마음교회는 크게 3가지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첫 번째, ‘우리두리하나센터’ 사역이다. 이 센터는 탈북 청소년·다문화가정 및 위기가정(아동학대 등) 청소년 “5대 영역의 빈곤 퇴치”를 목표로 2012년에 설립된 기관이다. 5대 영역의 빈곤퇴치는 △경제적 빈곤퇴치 △사회 정서적 빈곤퇴치 △교육을 통한 지적 빈곤퇴치 △영양실조 및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신체적 빈곤퇴치 △인간의 존엄성을 알게 하는 영적 빈곤 퇴치를 말한다. 두 번째는 ‘진심예배’ 사역이다. 매월 네째 주 주일에 '진심예배‘가 열린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남과 북의 성도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예배하며, 남한과 북한이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자는 의미를 담아 ’진심‘이라 이름 지었다. 이목사는 “예수마음교회에 북한에서 온 친구들만 공동체를 이루면 또 하나의 북한이 되고 마는 상황을 많이 봤다”며, “남한 아이들과 만남을 통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진심예배는 여느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완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전문가를 초청해 통일에 관한 강연을 듣고 교제를 나누는 시간으로 꾸며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통일 한마당‘ 사역이다. 매년 명절에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탈북자 가족들을 위한 위로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추석에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갈 수 있는 고향도 없는 외로운 나그네 같은 이들이 서로 위로하고 행복한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한 행사다. 참석자들은 매년 서로를 가족처럼 챙기며 풍성한 한가위를 보낸다. 송편을 비롯해 북한의 전통음식인 두부밥과 인조고기를 만들어 먹으며 정을 나누고, 윷놀이 등의 게임으로 마치 고향에 있는 것과 같은 명절 기분도 누리게 된다. 이목사는 “참석자들이 행복한 통일 한국을 이곳에서 경험하길 바란다”며, “다양한 이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한다. 끝으로 이목사는 “통일이 되어도 북한사람들이 남한사람들을 처음부터 환영하지는 않을 것 같다. 때문에 이 아이들이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성장해서 통일한국에 가교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바램을 전했다. 예수마음교회는 지난 달 25일 성탄절에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성탄찬양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탈북·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산타가 되어달라는 요청과 함께 우리 사회의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행사로 진행되었다.   또 이목사는 예수마음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사역인 ’숨, 쉼, 삶 힐링센타‘사역에도 많은 기도를 부탁했다. 이 센타는 쉼과 안식이 필요한 탈북인과 일반인들을 위한 안식의 터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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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3-12-26

실시간 사랑의 실천(칼럼) 기사

  • [사랑의실천] 주님의 사랑으로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에는 사랑을 의미하는 네 개의 단어가 있다. 그중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때 쓰는 단어는 네 가지이다. 먼저, 남녀지간의 사랑을 에로스라 한다. 그리고 혈통적 사랑을 스톨게라 하며, 이는 가족간의 사랑을 가리킨다. 또, 친구지간의 우정과 사랑을 필리아라고 한다. 그리고 죄인이나 원수까지도 구원하고 복을 받게 하기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한다. 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그리스도를 닮은 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부부지간의 사랑도 그리스도처럼 해야 한다. 이삭은 임신이 안 되는 리브가를 위해 간구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구한대로 되게 하셨다.(창25:21) 요나단은 친구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삼상20:17) 다윗이 왕위에 오른 것은 주님의 은혜와 함께 친구의 도움이 컸다. 가나안 여인은 개 취급을 받은 수치도 흉악한 귀신들인 딸의 구원을 위해서는 감수해야했다.(마15:21~28) 모두 다 주님의 사랑을 닮은 자들이다.   이제는 우리들 차례다. 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어도 사랑의 실천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고전13:1~3)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전11:1). 우리도 바울같이 해보자. 남을 구원하고 돕기 위해 지기를 희생해보라. 주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시리라.   예수님 믿어 구원받고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들이여,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자. 영광의 영 하나님이 함께하시리니(눅6:38).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행복이라.(신33:29)   그리고 내가 먼저 주지 않고 받을 것만 생각하여 불만을 품고 원만했던 일들을 회개하자. 주와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처럼 해보자. 가정과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직접 세워주신 공동체이다. 주님께서 실천으로 본을 보여주신 것은 우리도 그렇게 하게 하려하심이다.(요13:12~15) /예장 백석측 증경총회장·해오름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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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3-05-04
  • [사랑의 실천] 또 하나의 선진국 지표
         선진국 여부를 판단하는 여러 가지 지표가 있다. 그중의 중요한 것 하나가 경제규모이다. 경제규모 측면에서만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세계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G7 국가중의 하나인 이탈리아를 추월하여 GNI (Gross National Income) 6위를 달성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경제규모만으로 선진국가임을 자부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상대적 빈곤율, 지니계수, 복지예산비중 등등 사회보장 제도가 얼마나 발전해 있는가가 또한 중요한 선진국을 가름짓는 지표가 된다. 그리고 나아가서 법과 제도, 그리고 통계로 표출되는 사회보장 제도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민적 배려의식이다. 국민들의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식이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선진국 지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의식을 신앙적 용어로 치환하면 곧 사랑과 섬김이라는 말이 된다. 소외계층에 대한 사랑의 실천여부와 배려의식의 크기가 경제규모에 못지 않는 또 하나의 선진국을 평가하는 바로메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이 가져야할 선진의식, 곧 약자에 대한 사랑과 섬김의 정신은 어떠해야할까? 그 해답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는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가 가져야할 사랑과 섬김의 정신을 여실이 보여주셨다. 종이 주인의 발을 씻기고,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겨야 정상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시 사회통념을 정반대로 뒤집으심으로써 진정한 섬김과 사랑의 무엇인지 보여주시고 계신다. 진정한 섬김과 사랑! 그것은 강자가 약자를 섬길 때 가능하다. 나아가서 또한 주님께서 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이제는 너희가 내발을 씻기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이제는 너희가 또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라는 것이다.    언젠가 칭찬릴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릴레이 마인드이다. 진정한 선진국은 경제규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 곳곳에 온 국민들의 마음속에 이러런 약자를 향한 사랑의 실천과 섬김의 릴레이 정신이 굽이칠 때, 그때 우리는 당당하게 G7을 넘어서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이다/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총회장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칼럼)
    2023-04-11
  • 북한에 사랑의 식량을 보내자
      손양원목사는 여순 반란 사건 때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위해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한 아들은 때려 죽이고, 다른 아들은 총으로 쐈던 안재선에게 사형언도가 내리자, 손목사는 판사에게 눈물로 용서해 주라고 부탁했다.   나아가 손목사는 안재선을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데, 밥이 입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나 참으면서 함께 살았다. 원수에 대한 용서와 사랑을 삶으로 나타냈다. 손목사의 위대한 삶은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으로 출판됐고, 영화도 만들어졌다. 손목사는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기도 했고, 결국 한국전쟁 중에 순교하셨다.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신 것이다.   우리는 북조선 사람들을 원수로 여기면서 살아왔으나, 이제는 우리의 사랑하는 동포로서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북조선에서는 기아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60만명에서 100만명에 이른다고 하며, 개성에서도 매일 수십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대북제재, 한재, 홍수, 코로나로 국경무역 완전봉쇄 등 악재가 겹치고 있다. 김정은위원장은 2023년 2월 전체회의를 소집해 ‘농업’ 하나만을 주제로 토론했고, 김여정을 개성에 보내어 실태를 조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한 듯하다.   남한에서는 버리는 음식이 30조원에 이르고,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북에 즉시 긴급식량지원을 해야 한다. 쌀, 식량 150만톤을 보내서 기근에서 구하고, 희토류 등을 교환해 와서 북의 자존심을 높여주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전달해야 한다. 파주 남북세관(CIQ)에 가져다가, 북측 주차장에 쌓아 놓고 오면 된다. 주겠다고 말하지도 말고, 신문, TV, SNS에 공개하면 안된다.   필자가 신앙 간증하는 것은 북조선 사람들을 위해서 식량문제를 돕는 일을 2007년부터 고 백승인장로와 더불어 계속하고 있다. 밤, 잣, 사과, 토마토 농장 등을 조성해 많은 식량지원을 직·간접적으로 해 왔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가 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다”, “나와 함께 천국 잔치에 참여하라”고 하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다. 지금 가장 어려운 일들을 당하고 있는 북한동포에게 먹을 것을 주게 되면, 우리는 천국 잔치에 초대될 것이다. /연세대 명예교수,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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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3-03-17
  • [사랑의실천]아름다운 섬김의 봉사 인생
      유태인들이 즐겨 읽는 「탈무드」에 보면 사람을 평가하는 세가지 기준이 있다. 그 세가지 기준은 첫째, 키이소오(돈주머니)요. 둘째는 코오소오(술잔)이요. 셋째는 카아소오(노여움)이라는 것이다.   먼저, 그 사람의 인격을 측정해 보려면 그 사람에게 돈 보따리를 맡겨보라는 얘기다. 그가 그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쓰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을 잘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론 돈 못지않게 그 사람의 인격을 뒤흔드는 게 “술”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술을 좋아 하다가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도가 넘치면 결국 술에 사람이 본정신을 잃고 술이 사람을 망가뜨리게 된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자신도 망하고 상대방의 생명을 잃게하는 일이 얼마나 비극인가. 술이 도가 넘치면 큰 사고를 만든다. 비극이다.   그리고 사람이 노여운 일(카아소오)을 겪을 때 그 사람의 인간성을 엿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스스로를 자제하고 잘 참는 사람이 덕스러운 인격자임을 알게 된다. 분노로 폭력을 수반하기도 하고 큰 죄로 번질 수도 있다. 그래서 잠언서에도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시킨다”고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인격을 다듬으며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게 된다. 인생을 돈의 노예가 되어 목적을 삼고 살 게 아니라 돈은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로 알고 돈을 보람있게 쓸 것이요, 술에도 노예가 되듯이 술에 도취 되어 탈선하지 말 것이며 우리가 사는 동안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잘 조절하고 자제하면서 무엇보다 배려하고 섬기는 봉사하는 삶을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 봉사는 희랍말로 디아코니아(Diakonia)로서 “시중드는 일” 섬김을 뜻하고 영어의 서비스(Service)는 라틴어의 노예를 뜻하는 Servus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봉사(섬김)는 주는 것이요 희생하는 것이다. 에릭 프롬은 봉사에는 사랑의 행위를 실천함으로 돌봄(Caring)과 책임(Responsibility)과 존경(Respect)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역시 봉사(섬김)에는 자발적이며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봉사란 “타인의 필요와 의도에 따라 행동하는 의욕”이라고 했다. 행동하는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밝은 등불이요 희망일 것이다. 내가 아는 목사님 중에는 서울역 앞 빈민촌에서 노숙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헌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목사님이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예수의 모습이라고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예장통합측 증경총회장·경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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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3-03-14
  • [사랑의실천 - 칼럼] “둘째도 그와 같으니”
      오 헨리(1862~1910)가 쓴 『현자의 선물』이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돈리’는 직장을 잃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추운 겨울철 구걸에 나서 고급식당 앞에 자리를 잡고 식당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구하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합니다. 그러나 식당 안으로 들어가던 한 여인이 돌아와 ‘1달러’를 돈리의 손에 쥐어 주면서 살리는 일, 너무 훈훈한 일이 시작됩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돈리를 중심으로 노인과 신문팔이 소년, 그리고 길 잃은 강아지에 이르기까지 1달러라고 하는 지극히 작은 돈이 시너지효과를 나타냄으로 배고픔이라고 하는 지극히 원초적인 문제에서부터 인간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현자의 선물』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팁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대단히 짧고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는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랑이 담긴 그 1달러는 주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새 희망이 되고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토라에는 613가지의 계명이 나오는데 248가지는 “하라”는 긍정명령이고, 365가지는 “하지 말라”는 부정명령입니다. 십계명의 1에서 4까지의 계명은 하나님관계 계명이고, 5에서 10까지는 대인, 대물관계 계명입니다. 이 계명이 예수님 앞에 왔을 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축약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사이에서 놓치지 말아야 될 핵심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둘째도 그와 같으니”(마 22:39)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자신만 사랑해 달라고 하는 철저히 이기적인 분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무시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 하듯 형식적으로 대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듯 너희끼리도 그렇게 사랑하라”고 주문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심은 ‘사랑은 모든 율법의 총체’이자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자’(롬 13:8)가 되는 것이고, 인간이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의 핵심이 사랑이며, “하나님은 사랑”(요일 4:8)이시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펜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 이상기온으로 인한 식량을 포함한 주요 자원의 안전망에 구멍이 뚫린 가운데 이제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의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 지구촌의 앞날이 캄캄하고 살아갈 방도마련에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때를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와 사랑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주셨으니 더욱 깨어 영적으로 무장하고 사랑을 실천함으로 신앙생활의 진수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예장 합동한신 총회장·예향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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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3-02-21
  • ‘예수 생명’과 ‘사랑’, 잊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입춘과 함께 봄이 오기 시작하면 대지의 생명이 충만해지고 푸른 새싹들이 고개를 내민다. 생명이 다시 움트는 계절은 우리들에게도 삶의 기쁨과 의욕으로 다가온다. 푸르른 숲과 생기 넘치는 자연을 보노라면, 만물을 살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영적 생명도 마찬가지이다. 영적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나 공동체를 보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쁜 일이다. 영적 생명이 충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살린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영적 생명이 충만한 사람들은 상처받고 파괴되는 관계를 용서하고 화목하여 생명을 낳는 활기찬 공동체로 바꾸는 능력을 발휘한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영적 생명이 죽어 있는 공동체는 아무리 애를 써도 되는 일이 없기 마련이다. 수고하고 힘써도, 시기하고 다투고 싸우려 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냉랭하고 점점 더 썩어들어간다.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려면, 영적 생명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세속적인 이해타산으로 영적 생명을 죽이지 않도록, 모두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구하며 공동체 안에 있는 영적 생명이 불타오르도록 서로 격려해야 한다.   영적 생명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이 없는 공동체는 반드시 무너진다. 계산과 이해관계로만 얽혀있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세상적으로는 인정과 칭송을 받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일에는 무익(無益)한 종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을 살리고, 학교를 살리고, 국가를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교회가 영적 공동체로 바로 서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속한 공동체 안에 사랑과 용서와 섬김이 나타나고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영적 생명력이 가득해야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진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며, 그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는 창조적인 삶으로 나타난다. 예수 생명, 예수 사랑이 갈수록 풍성해지는 한국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예장 백석 총회장·백석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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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칼럼)
    2023-02-10
  • 예수님은 참 빛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주신 세가지 빛이 있다. 첫번째는 햇빛이다. 이 햇빛에 사십여만종의 식물들이 생육하고 번성한다. 사람의 먹이가 되는 오곡백과도 햇빛에 의해 꽃을 피우고 맺은 열매를 무르익게 한다. 산에 사는 동물도 상처난 부위를 햇볕에 쪼이면서 치료를 받는다. 사람들은 햇볕에서 몸에 필요한 비타민 D를 공급받는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런 햇빛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다 공급된다(마5:45).   둘째 과학자들이 찾아낸 빛들이 있다. 엑스 광선을 통해 몸속의 상태를 본다. 레이저 광선을 통해 수술도 하고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생겨난다. 이런 빛들은 과학의 눈을 뜬 사람들을 통해 나타난다. 과학이란 이미 하나님께서 창조해놓으신 물질들이나 원리나 불변의 법칙들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셋번째는 참 빛이 있다. 이 빛은 죄악으로 어두어진 사람들의 영혼과 마음을 밝히고 치료하여 구원하는 빛이니 곧 예수그리스도이다. 세례요한은 이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히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낸자 이다(요1:7~8). 예수님은 참 빛이다. 이 참 빛은 치료하는 광선이다. 그리하여 38년된 난치병자가 고침을 받는다(요5:1~18). 12년된 혈루병 여인도 고침을 받는다(막5:25~34).   예수님은 지은죄로 마음이 어두웠던 여리고의 세무서장 삭개오에게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참 빛이 되어 주셨다(눅19:1~10). 그래서 예수님은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큰빛이 되셨고 사망의, 그늘에 앉은자들에게 구원의 빛이 되셨다(마4:16).   우리나라 조선말기는 흑암에 갇혀 있었다. 남존여비로 주색잡기로 각종 우상숭배로 문맹자가 많은 나라였다. 그때에(1884,4,5) 미국에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가 왔다.   그들의 전도로 기독교 인구가 20만명 되었을 때에 민족대표 33인중에 기독교인이 16명이었다. 그들이 일본에 항거 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 후 미국 다음으로 해외선교사를 많이 보내면서부터 현재 우리나라는 10위귄으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참 빛이신 예수님만 유일한 소망이다. 예수님이 참빛로 왔으나 그를 구주로 영접 하는자 에게만 하나님의 자녀가되는 귄세가 주어진다(요1:12~13). /예장 백석측 증경총회장·해오름교회 원로목사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칼럼)
    2022-12-13
  • 말하는 힘
      사람들은 말하기는 좋아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지혜자가 되려면 말하기 훈련을 하기 전에 반드시 듣는 훈련을 해야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란 야고보서 1장 19절 말씀을 듣고 가슴에 새기기만 해도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상담의 제1원리는 경청하는 것이다. 잘 들어주기만 하면 자기 스스로 결론을 다 내리고 털어놓고 나서 ‘시원하다’고 말하며 일어난다. 그런데 가르치려 하고, 훈계하려고 하면 기분이 나빠 마음을 열지 않고 돌아갑니다. 그래서 듣는 훈련이 중요하다. 이렇게 사람의 말을 들어 줄 때 성공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한국 기독교가 열심히 모여 예배하고 날마다 말씀을 듣는데, 세상을 향한 영향력은 점점 떨어지는가? 그것은 말씀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 속에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시온성이 나오고, 소원의 항구에 도달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세상사람들은 강한 것이 이기고 오래간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혀와 치아를 비교해 보라. 부드러운 혀가 딱딱한 치아보다 훨씬 오래간다. 잠언 25장 15절에서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고 말한다. 노자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고 말한다. 물방울은 부드러우나 계속 떨어지면 돌을 뚫는다.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은 약한 사람 같으나 강한 사람이다. 강한 사람은 충돌하고, 부러지고, 상하지만, 온유한 사람은 감싸고, 덮어 주고, 위로자가 된다.   세상에 생명이 왕성한 것은 모두 부드럽다. 어린아이는 부드럽다. 그러나 숨이 끊어진 시체는 한 시간만 지나면 돌덩어리가 되고 만다. 부드러운 것에 생명이 있다. ‘나는 성질이 급해서 틀렸어’라고 말하지 말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사람이란 별명을 가졌던 요한도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구약에서 한 성질 하는 것으로 유명한 모세도 ‘온유함이 세상사람들 중에 최고’란 칭찬을 받았다.   한국교회가 힘차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다시 굳게 일어서길 기대하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선 우리 성도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깨어지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한국교회가 말씀의 힘을 회복해 말로 새로운 생명들을 얻길 소원한다. /거룩한빛광성교회 원로목사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칼럼)
    2022-12-02
  • 노숙인의 자활을 위한 사역활동 앞장
    (서울역노숙인 자활센터 최성원목사) 서울·용산역서 무료로 급식제공,  목욕과 생필품 등 지원   주민등록 회복시켜주는 작업과 취업 연계등 자활활동도     서울역노숙인 자활센터 최성원목사(사진)는 27년간 노숙인들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월남전 참전용사 시절 서원을 하고 목회자가 된 그는 노숙인들을 위한 사역으로 ‘노숙인의 대부’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2년 전 후암로 인근에 개설된 이 센터는 서울역과 용산역 일대에서 무료급식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노숙인들을 위한 숙소제공을 비롯한 사역을 하며, 궁극적으로 자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목사가 노숙인들을 향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IMF사태와 연관이 있다. IMF사태 당시 대우빌딩 앞 지하도에서 수백명의 노숙인들을 본 최목사는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목사는 “이들을 볼 때 눈물이 났다. 어렸을 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어려웠던 과거가 떠올렸다. 내가 저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진짜 목사가 되고 싶었다. 그 당시 목회를 했지만, 갈등이 있었다. 진짜 목회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 이들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매주 서울역과 용산역 일대에서 200명 가량의 노숙인들에게 급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노숙자들을 위해서 잠바, 양말, 수건, 칫솔, 치약 등 생필품등도 나누어주고 있다. 그리고 무료로 목욕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제공하고 있다.   ◇ 서울역노숙인 자활센터는 노숙인들을 위해 급식배식과 취업연계 등의 사역을 하고 있다.   그가 노숙인들에게 우선적으로 하는 사역은 ‘신분의 회복’이다. 많은 수의 노숙인이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최목사는 말소된 이들의 주민등록을 회복시켜주는 행정상 절차를 지원하고 있다. 또 노숙인들이 지원 받을 수 있도록 기초생활 수급자로 등록시켜주는 일도 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지원비로 노숙인들을 위한 숙소를 연결해 준다.   그의 사역에 핵심은 노숙인들의 자활이다. 지금까지 최목사를 통해 4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취업해서 자활에 성공했다. 최목사는 “자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터가 있어야 한다. 노숙인들이 취직하기 위해서는 보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그들의 보증을 서준다”면서. “청소부, 목욕탕 때밀이, 건설 신호수, 주차관리원 등으로 취업을 시켜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목사는 노숙인의 취업에 앞서 그들이 금연과 금주를 할 수 있게 한다. 이로 인해 그들의 마음과 몸이 회복되면 각자의 여건에 따라서 일자리를 연결해주고 있다. 특히 출소 후 자립하도록 주거를 지원하는 등 출소자에게 미래를 꿈꾸도록 집중하여 사례관리도 하고 있다. 또 그는 현재 센터에서 5명의 노숙인과 함께 지내고 있다. 그들은 최목사의 사역을 함께 도우면서 자활에 나서고 있다.   최목사는 ‘노숙인의 자활’을 이 사역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최목사는 “군인장교 출신이 이혼당해 노숙자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자활에 성공하고 재혼까지 해서 잘살고 있다”면서, “또한 자활에 성공한 노숙인 출신이 고맙다면서 노숙인들에게 수박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가장 큰 보람이다”고 말했다.   한편 월남전 참전용사이기도 한 그는 베트남에 대한 관심도 크다. 그래서 이들을 위한 사역도 하고 있다. 베트남 여성 중 한국에서 결혼을 원하는 이들에게 100불씩 지원하여 한국어를 가르치고, 결혼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고 있다.   ◇ 노숙인 자활센터, 목욕지원과 노숙인들과 숙식을 하고있다.  마지막으로 최목사는 사역을 위한 후원을 요청했다. “사회복지 안전망 바깥에서 자활을 지원하는 노숙인 사역은 그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서비스를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어렵다”고 말했다. 코로나사태로 시민후원금이 끊어지면서 센터 경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센터 운영을 위해 본인의 기초생활수급자비와 월남참전 용사 국가유공자 수당까지 보태는 중이다.      현재는 전기세 미납으로 인해 센터에 전기가 끊겨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기가 끊기니 목욕지원과 부식보존, 식사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잠자리에까지 밀려들어오는 겨울 추위는 센타가 겪는 어려움, 이중고이다. 최목사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리는 성탄되도록 사회적 약자들에게 기도와 지원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 전기가 끊긴 노숙인 자활센터, 식재료보관과 목욕지원, 난방이 중지되었다.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칼럼)
    2022-11-29
  • 한국교회여, 젊은이들 빼앗긴 죄악을 참회하고 통회하라
      이태원 사고는 그것을 당한 분들의 부모와 가족과 친지와 우리 국민 모두에게 큰 충격과 놀람과 고통을 준 불행한 사건이다. 왜 이런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우리 모두의 반성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철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사고를 성경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여기에 담긴 영적 차원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진단하며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할로윈 데이'라는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전해온 축제를 맞이하여 엄청나게 많은 젊은이들이 좁은 도로에 한꺼번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압사를 일으킬만한 정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왜 그곳에 가게 되었는가? 아마 사고를 당한 분들에게도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들리는 말에는, 많은 젊은들이 호기심으로 그들의 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단순한 마음으로 갔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특히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현실에서 초등부와 중고등부는 물론 대학청년부에 이르기까지 출석하는 인원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주일학교 자체가 없어진 교회들이 대단히 많다고 듣고 있다. 기독교적 정신과 가치와 이념을 따라 세워진 대학들에서조차 기독교인 대학생들의 숫자가 전체 학생의 5% 이하이며 그래서 오늘날 대학생들을 가리켜 '미전도 종족'이라고 말하는 어느 대학교 교수의 말을 들은 것이 최근이다. 자라나는 세대가 이렇게 점점 더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반면, 교회와 상관없는 모임과 나아가 교회를 거부하고 반대하며 배척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일어난 젊은이들의 ‘탈-교회’ 현상이다. 한국의 손흥민 선수가 뛰는 축구 경기 중계 화면을 보면, 그렇게 큰 축구 경기장에 관중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러한 모습은 연로하신 소수의 신자들이 크고 웅장한 영국 교회의 예배당에 모여 쓸쓸하게 예배를 드리는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왜 젊은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나오도록 인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복음과 상관없는 것에 정신이 팔리도록 만들어 왔는가? 우리는 왜 젊은이들의 영혼을 그들의 주인이 되신 주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인가? 이태원 사고를 놓고 우리는 외면만 화려하고 풍성하게 보이지, 영적으로 처참하게 파괴되어 무능하고, 무력하며, 무책임한 한국교회의 영적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각성해야 한다.  나를 비롯해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주 하나님 앞에서 젊은이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 빼앗긴 우리의영적인 무능력과, 무책임과, 무관심을 애통하며 통곡하며 회개해야 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교회를 버리고 떠나가고 있는 상황을 방치하고 내버려 둔 죄악을 참회하고 통회하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호 6:1).   젊은이들의 영혼을 복음으로 붙잡기 위해 지금 눈물로 기도하며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도 유럽과 북미 교회들의 전철을 따라갈 것이다. 사탄의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세속의 물결과 죄악의 물결과 사탄의 물결(계 12:15)에 우리도 다 휩쓸리고 마귀의 밥이 되어 배교의 벼랑 끝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아마겟돈으로 부르는 영적인 최후 전쟁(계 16:16)을 앞두고 있는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종말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벼랑 끝에 서있는 절박하고 위급한 마음으로 독수리의 두 날개를 보내주시도록(계 12:14) 절박하게 급박하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금 심각한 영적 위기의 때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총장대행·대전 늘사랑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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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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