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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내려온 종교가 기독교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탕자와 같이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 몰두하며 살았지만 그런 인간을 참되게 하기 위해 세상에 와서 진력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그리스도만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찾아온 도의 화신이라고 요한은 증언했다. 또한 그리스도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는 인간 중에서도 버림받고 소외된 인간들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가 환자·병자·빈자·창기·죄인·세금원 등 세간의 혐오와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을 때, 그 당시의 종교인들은 그가 종교 교사로서의 체면 유지도 못 한다고 비판했었다. 그때 그는 ‘성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으나 병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나는 죄인을 부르려고 세상에 왔노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무관심할 수 없었지만, 자칭 ‘의인’이라고 자만하는 사람들만은 구태여 찾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기원 313년 이후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고 교회 국가가 권력 구조의 주요한 부분이 되면서부터 이 방향은 흐려지고 스스로 귀족화하는 경향이 늘어 갔다. 그러나 바라건대 기독교회가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봉사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방향을 되찾아 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은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우며 또 얼마나 소외되고 위축되어 있는가. 살아야 하고 살고 싶어 발버둥치면서도 스스로 죽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고통이 극에 이른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그들을 한번 찾아 주지도 못하고 위로하지도 못하고 그 고통의 얼마라도 분담하겠다는 마음도 없이 교회당 안에서 스스로 거룩하고 고고한 체하며 방관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광명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하여 나는 왔노라’고 그리스도 자신이 나사렛 회에서 첫 증언을 외쳤던 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있단 말인가.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다면 기독교 무용론이 나올 까닭이 있을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종교에 무관심할 인사도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기독교가 진실로 세상을 구한다는 근본적인 뜻을 갖고 있다면, 구세주의 길을 역행하는 어리석음을 떠나 바른 방향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세간의 의혹과 방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요, 우리 기독교인이 걸어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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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8-27
  • 사랑만이 인공지능을 이긴다
    ▲ 김철환목사   교회에는 두 기능이 있다. 제사장의 기능과 예언자의 기능이다. 제사장의 기능은 예배와 백성 돌봄이다. 그리고 예언자의 기능은 공의이다. 미래를 미리 보면서, 바르고 행복한 길로 이끌어 가는 기능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공부해야 한다. 미래를 공부해야 한다.  지금 교회는 겉으로는 말하지 못해도, 속으로 불안해 하는 것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속에서, 과연 교회는 미래가 있을 것인가?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용기를 내어 A.I. 즉 인공지능이 이끌어가는 가까운 미래에 교회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몇 해 전 바둑에서 알파고가 인간 최고의 바둑기사를 이겼다. 그리고 빠르게 프로 기사는 인공지능에게 바둑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우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과연 교회와 우리 인간은 4차 산업 속에서 설 공간은 있는가?  이 짧은 지면에 교회와 인공지능의 관계를 다 말할 수는 없다. 교회가 더 성장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4차 산업 속에서 교회는 더 필요해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채우지 못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첫째가 창의성이며 둘째는 감정의 공유이다. 감정의 공유란 사랑의 함께 나눔의 공간이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진정한 사랑에 목마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회는 필요할 것이고, 다시금 부흥의 선물도 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교회가 물어야 하는 심각하고도 진지한 질문이 있다. 지금 교회는 ‘사랑이 넘쳐나는 사랑 공동체인가’라는 질문을 혹독하게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본질인 사랑의 회복 없이는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 가짜 사랑 아닌 진정한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자신이 죽고 남을 살리는 사랑, 철저하게 타자를 위해 존재하겠다는 결단적 사랑이 필요하다. 또다시 말해서 교회는 이 사랑 본질을 찾고 실천하는 노력을 늦지 않게 지금 해야 한다. 예배 공동체로서의 교회, 좋다. 섬김 공동체로서의 교회, 좋다. 선교 공동체로서의 교회, 좋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시대 4차 산업을 이기는 비밀은 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다른 표현인 교회는 분명 4차 산업도 이길 수 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드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장 34~35절)  이 말씀이 2,0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흔들림 없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요, 4차 산업 속에서도 진리이다.  본 필자는 시골에서 이 사랑의 운동을 펼치고 있다. 바로 스데반돌봄사역이다. 주제는 「우돌하치」이다. ‘우리가 돌보면 하나님께서 치유하신다’ 나 죽어 너 살리는 사랑의 돌봄만이 오는 교회의 희망이기에 외치고 있다. 또 이렇게 외친다. “예수님을 만나 작은 예수가 되어 예수를 돌본다” 사랑을 회복하여 4차 산업이 오히려 교회의 성장기회로 삼자. 사랑만이 인공지능, 4차 산업을 이긴다.  /작은예수들교회 목사·루터교 증경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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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8-12
  •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 한영훈목사 최근에 우리나라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로 인해 주변 국가들과 다양한 측면에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미 사드 문제로 중국과 갈등 관계에 놓여 관광을 비롯한 경제 제제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적대 국가인 북한은 핵무기를 완성하여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일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를 위한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하여 한국 경제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군용기는 중국과 함께 한국방공식별구역에 들어와 독도 영공을 침범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불안정한 국제정세는 한국 사회를 불안정과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하였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어느 때보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도전과 위협이 증가하는 시기에 한국교회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한국교회는 점증되는 강대국의 영향력에 직면하여 어떤 길을 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찾아야 한다. 예수님은 군사적 지배와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세금 납부를 강요한 로마의 경제적 압박에 적대적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로마를 물리치려는 열성 당파의 과격한 정치, 군사적인 방식을 거절하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여 로마의 경제적인 세금 정책에 면죄부를 주었다. 모든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질서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주된 관심은 죄로부터 영혼을 구원하여 사단의 영향에서 자유롭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있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는 한국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 창조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국가의 백성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아 하나님 나라 백성을 창조하는 일에 열심을 품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열강들의 움직임에 무관심으로 일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처럼 세상의 흐름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유익한 방향으로 국제질서가 형성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교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기독교 복음이 세상에 확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혼 구원이 최우선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본질적인 문제인 만큼 선교적인 마인드로 세계 질서의 재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광복절이 열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해방을 넘어 죄와 사단의 영향 아래 고통받는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인 출애굽 운동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해 본다. 여기에 광복절을 맞이하여 한국교회의 나아갈 영적인 길이 있다. /서울한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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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8-06
  • 전원으로 돌아가자
      인간은 자연 안에 살면서도 자연을 초월하여 그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통제하고 이용한다. 이용하기 위하여는 인간이 만든 도구로 자연을 인공화해야 한다. 인공적인 기술 문명이 발달될수록 인간은 자연에서 멀어진다. 생활의 편리와 번영을 위하여 현대 기술적인 도시를 건설하고 거기에 집결한다. 도시화가 바로 그것이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자연은 자취를 감춘다. 흙은 시멘트의 굳은 껍질속에 눌려 버리고 나무나 풀은 뿌리째 뽑혀 나가고 그 자리에 건물이 서고, 푸른 언덕은 불도저 앞에 허물어져서 대단위 주택 단지가 세워지게된다. 도시 속에서 자연이 저절로 사라져 간다. 인간이 자연에 굴복해서도 안 되지만, 인간이 자연을 학대하고 그 아름다움을 빼앗고 황폐하게 하는 폭군 노릇을 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자연을 보호하고 그것이 본연의 생태를 간직하면서 인간 생활과 협동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산을 보면 자연이 얼마나 학대받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도시화의 급속한 과정을 밟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인간은 도시 속에서 자연의 천연성을 잃고 비인간화의 구렁 속에 던져질 것이다. 탐욕과 살벌한 경쟁 의식과 부정과 부패가 갈수록 인간성을 먹어 들어갈 것이다. 이른바 선진 국가 사회에서 청년들이 기성 세대에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반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주로 기성 사회의 지나친 인공적·비자연적인 생활 양태에 싫증을 느낀 까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생활 구조 속에서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낼 것인지는 의문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새로운 생활 기류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 도시의 심각한 공해 문제도 이런 전원화 운동에 한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전원의 아름다움과 그 건전성, 천연성이 새로운 생활 가치로 인식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의 농공 병행 정책과 아울러 전원화의 생태학적 평가도 실행되어야 한다. 전원화 운동을 위하여는 도시와 농촌의 경제권을 일원화해야 하겠지만 우선 교통의 편의와 문화의 교류, 그리고 보건 위생 시설의 개선 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책이 실현되기까지는 전원에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는 체념 상태에 머물러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우선 도시와 농촌의 생태를 비교하여 전원의 가치를 드높이는 운동부터 장기적으로 추진하자는 것이다. 복잡하고 긴장된 도시 생활이 인간에게 미치는 노이로제 증상의 급증과 농촌의 자유롭고 유장한 삶, 도시의 각박하고 답답한 공가과 농촌의 시원스럽고 넓은 공간감, 맑은 공기와 자연 그대로의 산하 등등을 소개하여 도시인의 전원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겠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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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7-30
  • 기독교교육이 필요한 시대
    인류는 지금 두 가지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기후변화이다. 구글에 속한 ‘딥마인드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기사의 역사적인 대국이 벌어진 지 3년이 지났다. 대국 이후 교육부와 전국의 대학들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인재양성’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기술혁신이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것이라는 점이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의 도전 역시 심각하다. 현재 추세라면 급격한 온난화를 피할 수 없고 해수면 상승을 비롯해 파국을 초래할 것으로 예견된다.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로 인해 생명체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는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래에 대한 견해에 있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로 나뉘고 있다. 낙관주의자들은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를 위협했던 여러 도전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 많은 기회와 자유를 선사했듯 4차 산업혁명도 궁극적으로는 축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낙관주의의 인간이 죽음조차도 극복하고 신체를 교환해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는 트랜스 휴먼, 즉 신인류의 탄생까지 기대한다. 반대로 비관주의자들은 인공지능과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가 절멸될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인공지능을 ‘마지막 발명품’이라고 부르며 인공지능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 것라고 주장한다. 또한 지구환경을 ‘가이아’로 비유하며 인류에게 받은 상처를 깊기에 인류 문명을 파괴함으로써 복수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두 가지 도전은 모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기독교 교육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다. 기독교 교육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목적과 아울러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고 깨닫는 실천적 학문이다. 기독교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다른 피조물들을 돌보고 사명을 부여받았고, 다른사람과 사랑을 나누며 평화롭게 살도록 지음받은 존재’이다. /성공회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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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7-24
  • 자사고 폐지보다 대입제도부터 개선하자
    자사고는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의 약칭이다. 자사고는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라 불리는 국정과제와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개정 등 관계법령 제·개정에 의거하여 사립학교의 건학이념에 따라 교육과정 학사운영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학교별로 다양하고 개성있는 교육과정을 실시하기 위해 설립된 고등학교다.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수익자가 교육비를 부담하고, 교육과정 운영도 학교가 선택하는 자율학교다. 사립법인의 재정자립도와 학교경영의 투명성 및 장학제도, 학생후생복지제도 등을 종합평가하여 학교를 선정하며, 교육부의 심사를 거쳐 지정된다.  학교의 운영은 교육개혁의 목표가 학교현장에 가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하며 현행 교육관계법의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규제를 최소화하여 자유롭게 학교를 운영하여 궁극적으로는 각급 학교현장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다양한 학교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고 단위학교의 자율적인 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신축성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교사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을 교육활동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모든 교육활동에 관한 사항을 단위학교 자체에서 결정하고 조성할 수 있다.   좋은 취지로 설립된 자사고가 적폐청산의 대상처럼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일부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까지 내걸고 있는 현실은 또 무엇 때문일까?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교육감의 정치적 이념 때문에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지구촌 한마을시대의 유능한 인재양성을 위해서 자사고는  필요한 제도인지도 모른다. 빈부의 격차로 발생되는 교육의 불평등 문제는 사회적 합의로 풀면 된다. 자사고 문제는 대학입시제도의 문제라고 본다. 자사고의 폐지보다 대입제도부터 개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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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7-18
  • 초심으로 돌아가자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위기란 위험하지만 기회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위기로 알고 돌이키면 한국교회가 다시 살고 부흥할 수 있으나 위기로 인정하지 않고 이대로 가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의 촛대를 옮기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부흥케 하시고 성장케 하심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자만에 빠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경종의 소리와 세상 사람들의 쓴 소리에 귀를 막고 있었기에 자기 혁신 없이 교회가 부패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으나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여기 저기서 한국교회의 세속화는 가중되고 있고 세상도 깜짝 놀랄 일을 서슴없이 교회의 지도자들이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각 교회의 총회장(감독)선거나 연합기관의 회장을 선거하는 일에 노골적으로 금력이 난무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물질과 성적 타락과 폭력과 명예의 다툼은 끊임없이 세상에 보도되고 있으며 한국교회의 영적 권위는 이미 상실되고 안티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향해 개독교라고 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어느 누구도 한국교회가 서구교회처럼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도리어 한국교회가 서구교회처럼 쇠퇴해 가고 있는 징조가 이미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교회를 향해 우리 주님이 책망하신 말씀에 우리 모두 청종하고 회개하여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국교회가 살고 다시 부흥의 축복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요사이 어느 젊은 목회자가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라고〉란 책을 썼는데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 못하고 교회가 세상에 절망이 되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제 교회가 세상을 향해 걱정하기보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게 되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제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이다. 이 기회에 초심의 신앙, 결심, 행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도 우리는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감 전 감독회장·비전교회와함께하기운동본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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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8
  • 거짓 이기는 정직한 삶
     거짓은 허위, 사기, 헛소리, 가짜란 말로 쓰인다. 거짓말의 종류로 유언비어, 거짓증언, 아첨하는 것, 약속을 어기는 것 등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거짓말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다.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거짓말을 하는 자의 결과는 심판과 저주가 가득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업으로 받는다”라고 말했다. 거짓말은 눈 뭉치처럼 자주 하면 커진다. 한 번 하면 두 번 하고, 열 번 하면 백 번 하는 게 거짓말입니다. 한국의 독립운동가 안창호는 “농담으로도 거짓을 말하지 말라. 꿈에라도 정직을 잃었거든 통회하라”라고 말했다. 거짓말은 농담조차도 해서는 안 된다. 탈무드에서는 하나님 앞에 절대로 설 수 없는 사람을 거짓말을 하는 사람, 중상모략하는 자, 이간질시키는 자, 불순종하는 자, 교만한 자라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사람이 하루에 얼마나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조사했다. 20명의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하여 조사한 결과 사람은 하루에 8분에 한 번꼴로 총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밝혔다. 사람이 살면서 거짓말을 한 번이라도 안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공인들이 상습적으로 쉽게 거짓말을 하거나, 정치적 득실 때문에 상대를 모함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경향이 너무 짙어졌다. 세월이 지나 자신의 말이 거짓으로 판명되어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뻔뻔하게 변명을 일삼는 낯 두꺼운 모습을 너무 자주 보인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에 따르면 최근 구직자 1026명을 대상으로 ‘취업성공을 위해 거짓말할 의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적당한 수준으로 거짓말하는 것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수준에서 거짓말하는 것으로 총 53.7%가 거짓말을 할 의사가 있다고 나타났다.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국민이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나라가 잘될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거짓말하면 망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정직하게 행하여 흥하는 축복을 받자.  /강남금식기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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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7-09
  • 가문의 철학으로 여깁니다
    ▲ 김연준박사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한양대학교의 교훈은 ‘사랑의 실천’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독교 신자이니까 기독교의 사랑과 연결지어 성경에서 그 말을 가져온 것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은 종교적이기보다는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성장기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가 있는데, 굳이 근원을 따지자면 철학적인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자산에 나의 인생 철학을 보태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비록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참된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랑의 실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성경에는 ‘실천’이라는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이 말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할 때에는 교회나 사회에서도 거론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반세기 전에 나는 이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의 실천 정신임을 간파하고 줄기차게 그것을 외쳐 왔다. 그러므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말은 내가 처음으로 만들고 또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데 앞장서 온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당시의 학생들은 잘 이해를 못했으나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이해를 한다고 하였다. 내가 학생들에게 늘 강조해 온 것도 사랑이란 먼저 주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당시에는 어려서 그 깊은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사회에 나가서 현실에 부딪혀 보니까 저절로 터득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교직원들 가운데도 ‘사랑의 실천’을 가훈으로 정한 분들이 많다고 한다. 가정과 가족 구성원으로까지 넓고 깊게 확산되어 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훈훈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도 바로 그점이다. 우리 사회의 개개인마다, 그리고 나아가서 세계의 인류 모두가 ‘사랑의 실천’에 앞장서는 때가 오면 인류의 역사는 일대 전환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말을 생각하고 또 교훈으로 정하였던 것이다.  /본지 전 발행인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07-02
  • 지도자 다윗
    ▲ 이홍렬목사  토끼가 이끄는 백 마리의 사자보다 사자가 이끄는 백 마리의 토끼가 강하다는 의미의 말이 있다. 리더십의 중요성을 설파한 말이다.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다시 한번 살펴볼 인물이 있다. 바로 다윗 왕이다.  다윗은 유대 역사상 최고의 전성시대를 만든 인물이다. 여러 가지 신앙적 차원에서의 공과가 있으나 리더십의 측면에서는 참으로 기억할 점이 많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다윗의 포용의 리더십이다. 비록 통일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북쪽 10지파의 정서는 여전히 사울을 지지하고 있는 가운데 사울의 집안이 몰락하게 된다. 이때 다윗은 몰락한 사울 집안에 남아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가 므비보셋이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온전히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다. 그런데도 다윗은 그를 데려다가 아들처럼 온전한 왕자 대접을 했다. 재산을 나눠주고 하인들을 붙여주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던 원수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포용했다. 다리를 저는 지체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사실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치도 없었다. 짐이 되면 되었지 도움이 못 되는 인물이었다. 바로 여기, 원수의 손자까지도 포용하는 그 넓은 마음이 바로 이스라엘 12지파의 모든 백성의 마음까지도 통일시킬 수 있었던 다윗 리더십의 본질이었다. 다윗을 한 번 더 들여다보자. 정적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그런데 이스보셋의 신하가 자신의 왕을 배신하고 그의 목을 쳐서 다윗에게 가져온다. 이때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 이스보셋의 목을 쳐온 그 장수들을 죽여 수족을 헤브론 못가에 매달았다. 비록 원수 사울의 아들이지만 그 사울 가문의 권위와 지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함으로 다윗은 북쪽 10지파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마주 서서 노려보고 째려보기’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조직을 원만하게 꾸려나갈 수 없다. 평화가 사라진다. 다윗은 자신의 정적인 사울까지도 포용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의 리더십이 황금시대를 만들었다. 우리 교회, 우리 사회, 우리나라에 다윗 같은 포용의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총회장·새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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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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