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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적 건강을 굳건히 지키며, 생명나눔 사역에 함께하자
      코로나19로 인해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움에 빠진 지도 수 주일이 지났다. 자고 일어나면 늘어나 있는 확진자의 수를 볼 때마다 기독교인으로서 이 어지러운 시국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제대로 된 일상생활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오늘의 이런 현상은 무엇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그 중심에는 신천지가 있다. 그들로 인해 무섭도록 빠르게 퍼져간 전염병을 바라볼 때 사이비 종교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멍들게 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 맞물려 우리 사회에 그 민낯을 공개한 사이비 종교를 바라볼 때, 둘이 참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도 않아 소리소문없이 사람의 몸을 잠식하는 바이러스처럼 사이비 종교도 우리가 생각지 못한 순간 사회 깊은 곳에 뿌리내려 많은 이들의 영을 잠식하고 있다. 많은 젊은이가, 한때는 열심히 교회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진실된 믿음마저 저버린 모습을 볼 때 선배 신앙인으로서 몹시 마음이 아프다. 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바이러스와도 같은 사이비 종교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것일까? 건강관리의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적 건강도 중요하다. 우리의 인간 됨은 먼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의 목적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삶의 목적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어있어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나의 믿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와 겉모습만 그럴싸한 거짓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를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이기기 위해 육체적 건강이 중요하듯 사이비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영적 면역력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 말씀 중심에 서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나의 삶을 돌아보며 철저하게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우리 교회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 달려왔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그 안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았던 이들을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귀 기울이고, 손 내밀며 말씀을 그저 아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기독교인 중 100만여 명에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통해 우리 사회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왔다.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한 방법으로 장기기증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가 58%에 육박하지만, 우리나라는 2.9%로 그 수치가 아주 미비하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서 14장 8절)’라는 말씀을 행함으로 실천하며 생명도 아끼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날 나누겠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특별히 코로나19로 인해 큰 피해를 겪은 이들 중에는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도 많다고 한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은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하고, 병원을 오가는 일처럼 중요한 일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이런 이들이 하루속히 건강을 되찾아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또한 예수님을 만나 영적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도록 바이러스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기독교인들이 더욱 힘을 합쳐 생명나눔에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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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0-03-11
  • 아픔을 딛고 함께 일어서자
      교회 교우들에게 유무선 통지를 보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감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하여 이번 주일부터 성찬식을 비롯한 일체의 예배를 중지하오니 교회에 오시지 마시고 온라인 예배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성도들에게 교회에 오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에 한동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온 국민이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겪고 있다. 예배와 회의는 취소되고 따뜻한 악수도 사라졌다.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줄을 서고 사회적 거리나 판데믹이라는 생소한 단어도 등장했다.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혹시 확진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지하철에서 앉아가려면 기침을 크게 두 번만 하면 앉아 있는 사람이 알아서 자리를 비켜준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돈다. 왕관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으면서 실상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정말 야속하고 밉다.     흔히 고통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면 우리는 희생양을 찾는다. 그리고 그를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원망함으로써 답답한 마음에 위로를 얻으려 한다. 그 비난과 원망의 대상은 대통령이나 정부 당국일 수도 있고 정치인일 수도 있고 때로는 정책이 되기도 한다. 나중에는 바이러스 확진자에게까지 비난과 원망의 화살은 쏟아진다.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감염되었는가? 고의로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는가?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고 자신도 모르게 전파된 것이 아닌가? 감염자는 단순한 피해자일 뿐인데 어느새 죄인 아닌 죄인이 질시를 받는다.   하지만 비난이나 원망, 희생양 찾기로는 이 사태를 끝낼 수 없다. 설사 사태의 책임자를 찾아 감옥에 보낸다 한들 이미 엎질러진 물 같은 코로나19 사태를 종식할 수 없다. 오히려 서로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만 남길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너와 나의 구별 없이 모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는 반드시 이겨내리라는 각오와 다짐이다. 어려움과 고난 앞에서 두려움과 원망의 마음으로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이겨내고 극복해 내겠다는 의지를 앞세울 때 다양한 방법론들을 찾아낼 수 있다. 둘째는 합심이다. 서로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는 사이에도 바이러스는 쉬지 않고 활동한다. 비난의 대상을 찾거나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정부와 국민이 함께 힘을 모으는 일이다. 힘을 모아도 힘든 바이러스와의 싸움인데 분노와 비난만으로는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다. 셋째는 위로와 격려이다.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전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다. 정책당국, 감염환자, 의사, 간호사, 방역당국, 나아가서 자영업자, 항공회사, 여행업계 등등 사실 고통받지 않는 국민이 없다. 이럴 때 비록 빈말일지라도 필요한 것이 위로와 격려이다. ‘이겨냅시다. 물리칠 수 있습니다. 힘내세요. 잘 버텨주셔서 고맙습니다. 응원할게요’ 이런 말들이 온 나라에 파도치게 해야 한다. 목숨 걸고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에게 마음속 큰 박수를 보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이번 코로나 사태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대도 헤쳐나왔다. 더 어려운 역사의 고통도 자랑스럽고 슬기롭게 싸워 이긴 민족이다. 코로나19도 반드시 이길 수 있음을 믿는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양에서 불뱀에 물려 큰 고통을 당한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단다. 뱀에게 물린 이들이 놋뱀을 쳐다봄으로 모두 살게 된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사태는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놋뱀을 바라보아야 한다. 온 국민의 하나 된 마음과 이길 수 있다는 의지가 모일 때 코로나19는 우리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루터회 전 총회장·새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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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0-03-05
  • 관념적 애국보다 실천적 애국을
      사람은 저만을 위해 살 수도 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 수도 있다. 나라와 민족이 안중에 없노라고 억지 쓸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대다수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노라고 자처한다.   평상시에 별로 개의하지 않다가도 유사시를 당하거나 외로운 환경에 처하면 누구나 나라와 민족을 그리워한다. 사랑을 부인하는 자에게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잃는 경우도 있다. 얻음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다가 잃게 될 경우, 그 손실은 더욱 아프고 중대할 수도 있다. 사랑이 관념에 그칠 때에 도리어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고, 한낱 감상에 그침으로써 소득이 없을 수도 있다. 비분강개와 호언장담이 애국의 실증이라고 오인하면 허무한 메아리만 거둘 것이요, 나아가서 광포와 망동이 뒤따르면 그 해독은 사랑 없는 것보다 더할 것이다. 파시즘이나 미디어의 일면에는 그러한 점이 있다. 그러한 경우를 위하여 사랑은 실천적이어야 하고, 실천은 이성적이라야 한다.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여 남의 자식을 미워한다면 이는 비이성적인 사랑이라 할 것이요, 극진히 사랑한다고 해서 나쁜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은 맹목적이요, 비과학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당면 과제가 정치를 바로잡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있다 할 경우, 만일 독선을 강요하는 일이 있다면 관념적이요, 비이성적인 예라 하겠고, 투자 효과를 무시하고 재원을 낭비한다면 역시 그러하다.   가난한 살림살이를 하는 주부가 빚을 걸머지면서 백만장자의 생활양식을 흉내내는 것을 잘 사는 것인 줄로 오인한다면 이는 스스로 속는 것이니, 나라의 살림살이도 같은 예가 많다. 경제 개발을 연구하는 학자나 실무자들이 시정의 투자 효과를 논하고 투자 순위를 야무지게 따지는 데 반하여, 항간에 비경제적인 투자 행위가 없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무슨 까닭에 생기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무원칙적인 자원 분배를 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절대 비애국적인 행위라 할 것이다. 둘째로는 애국심이 관념적이어서 무엇이든지 큰 사업이나 큰 시설을 일으키면 큰 개발이 될 줄로 안다거나, 외국의 형태를 모방하는 것을 능사로 안다거나, 타인에게 과시하고 국민에게 과시하는 것이 국위를 높이고 정부의 권위를 세우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투자 효과의 과학적인 분석의 내용이 결여되어 한정된 자원을 절도 있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것을 비과학적인 애국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위정자는 물론이요, 국민 전체가 크게 각성해서 관념적이 아닌 실천적인 애국심을, 독단적이 아닌 과학적인 애국심을 구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실천적인 사랑은 숭고한 정열을 욕할 뿐 아니라 심원한 이성도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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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0-02-26
  • 교회의 사회적 책임
      복음이 한국에 처음으로 전해진 지 1세기가 되기까지 그리스도인은 사회를 이끌었지만, 오늘날은 더 이상 그렇지 못하며 오히려 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구실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의 삶은 대부분 개인의 영역이나 믿음의 공동체 울타리 안에서 행해지는 종교 의식이나 활동에 국한되고 만다. 사회는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사회문제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책임 있는 참여를 하지 않는다. 믿음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실현이다. 이 신앙의 명제를 한국교회는 잘 알아야 한다. 그것은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함과 아울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개인의 영역에 그치거나 교회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영역까지 확대된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있다고 그리스도인은 고백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은 창조질서와 분리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구원은 오로지 유아독존만 남는 불교식 수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구원은 그것을 구속하는 것 곧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분야가 자기희생의 사랑이 실천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스도인은 사회가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실현되는 방향, 곧 끊임없이 새롭게 되고 소통하고 연합하며 평화와 정의, 자기희생의 사랑이 실천하고 구성원이 서로 섬기는 개방의 공동체가 되게 변혁시켜가야 한다. 이렇게 진정한 영성은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대돼야 한다.   예컨대 피어선이 케직사경회에서 강조한 영성은 거룩함과 봉사에 맞춰졌다. 이러한 영성은 알려진 모든 죄를 즉각적이고도 최종적으로 버리는 회개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영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주는 모든 복을 즉시에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한껏 누리는 것이다. 또한 영성은 성령의 인도 아래 참된 지혜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영성은 기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참된 영성은 개인의 회개에서 시작해 사회적 실천으로 나가이웃을 섬기고 사회와 세상을 봉사하는 것이다.   더불어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직면한 시급하고 절실한 사회 문제는 부의 양극화, 공동체 정신의 함양, 사람의 기본권이 확립된 사회 제도 마련, 나눔과 섬김의 일상화, 소통과 통합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차원에서 성실하게 감당함으로써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전 평택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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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0-02-19
  • 샘터마을요양원 정숙자원장
      뇌졸중으로 쓰러진 모친 간호가 알려져 간호요청 쇄도 믿지 않는 자녀들도 요양원통해 자연스럽게 교회 출석     샘터마을요양원의 정숙자원장(사진)은 1995년부터 동 요양원을 통해 치매노인을 돌보며 섬기고 있다. 정원장은 “12살 때 권사님들 따라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며, “그러던 어느날 기도를 하는데 환상 중에 예수님께서 나는 너를 위해 내 몸을 주었는데 너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줄 것인지를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어린 나이에도 주님을 위해서 이 몸을 바치겠다고 서언했다”고 고백했다.   어린시절 가난과 투병생활로 인해 고통받던 정원장은 자주 환상을 보았다. 정원장은 “환상 중에 누군가 나에게 작은 마을에 성경책을 전해주라고 말했고, 내가 엉겅퀴가 가득한 산을 넘고 강을 헤엄쳐 건너가 작은 마을에서 성경을 전해주는 모습을 보았다”며, “그 마을의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할머니들이었고, 할머니들은 병마로 고통 받고 있었다. 고통스러워 하시는 할머니들께 성경과 함께 죽을 끓여서 드리니까 할머니들께서 너 때문에 내가 살았다고 말씀하셨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계시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건강이 너무도 안 좋은 상태였기에 정원장은 선뜻 노인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픈 와중에도 신학을 공부하고 선호재목사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정원장은 걷기에도 힘에 부칠정도로 건강과 영양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러던 중 정원장의 모친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고, 온전히 누군가의 간호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정원장은 “당시 나는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다. 그래서 남편이 4년간 우리 어머니 간호를 했다. 매일같이 목욕을 시키고 음식을 먹이고 정성껏 간호를 하니 동네에 효자라 소문이 났고, 각종 언론에서도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며, “그러면서 전국 각지에서 자신도 선목사의 간호를 받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우리 부부는 도저히 다른 사람을 돌볼 여건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내가 평생을 주님께서 주셨던 노인사역에 관한 환상을 외면했기에 하나님께서 어머님을 치셨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렇게 정원장 부부는 한 폐암말기 환자를 집에 들였고, 그에게 당시 고3이었던 외아들의 방을 내어주고 간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 환자의 상태가 호전됐고, 또 다시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 더 많은 사람들이 간호를 요청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집이 비좁아 많은 이들을 돌볼 수 없었기에 정원장은 대출을 받아 더 큰 집을 월세로 구했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1995년 정원장은 정식으로 샘터마을요양원을 설립했고, 요양원에서 돌봄을 받던 대부분의 노인들이 치매환자였기에 동 요양원은 치매전문 요양원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정원장은 월세집을 개조하여 지붕을 유리로 만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이 욕창에 걸리는 것을 예방했고, 이러한 치매환자 돌봄에 관해 미국의 치매전문의가 배워가기도 했다. 또한 매끼 소갈비가 끊이지 않게 하고, 최고로 좋은 옷을 환자들에게 입혔으며 환자들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항시 적정온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요양소 곳곳에 꽃을 심어 환자들이 직접 물을 주게 하며 환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도왔다.   정원장은 “주위의 오해도 많이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한 치매환자들에게 너무 과하게 대접하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했다”며,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살아가고 있는 치매환자들이 사람답게 살면 왜 안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따듯한 곳에서 꽃과 함께 살 수 있게 돕는 일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지 그들도 이해했음 좋겠다. 하나님께서도 분명 치매환자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같이 기뻐하실 것이라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원장은 이렇게 치매환자를 무상으로 돌보면 그 가족이 구원된다고 설명했다. 그 자녀들은 부모를 돌보는 일에서 자유로워져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고, 또 부모를 돌보는 일로 불화를 겪었던 자녀들도 우애를 되찾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치매환자의 회복을 위해 전념하고 있는 동 요양원은 더욱 많은 환자를 돌보기 위한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600평 부지를 확보한 상태이며 최소 300평 이상의 실버타운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교계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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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0-02-18
  •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자
      텔레비전에서 유명 철학자가 하는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같은 헬라 철학자들로부터 근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이야기하는데, 한마디로 인생은 철학에서 해답을 얻어야 된다는 것이다.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1시간 죽 들으면서 마음속에 ‘아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철학으로서는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의 가장 중요한 답은 성경에 있으며, 성경에서 인생의 근원을 배워야 한다.   신학생 시절에 박윤선, 박형용목사 같은 분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분들을 통해 설교 속에서 삶의 의미와 목회를 발견했다. 성경에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 말씀했다. 한국교회의 훌륭한 스승에게 목회와 신학을 배운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솔로몬은 전도서 9장 11절에서 성공은 인간의 능력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인간의 능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세상에 능력이 있으면서도 실패하는 자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 없는 모든 수고는 헛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전도서 12장 1 3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한다. 이 말씀이 전도서의 대미이다.   전도서는 결코 인생의 허무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신앙은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다고 말할 때 헛되지 않은 길, 허무하지 않은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기독교신앙이다.   허무를 극복하는 길은 허무하지 않은 것을 바라보고 거기에 모든 희망을 거는 것이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하는 것처럼 생명수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셔야 한다. 그러면 모든 허무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처럼 우리의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모든 사람의 본분’에 집중한다면 한국교회는 여전히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다. 한국교회가 최근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한 것은 어느 순간 성경이 말하는 이 본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한국교회는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나의 욕망과 죄를 벗어던지고 순순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어둠이 깊었을 때 새벽이 온다. 절망과 좌절이 클 때 위로와 소망도 큰 것이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다.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받은 희망과 소망을 다시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  /한기총 증경대표회장·왕성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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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0-02-12
  • 새해 새로워지는 방법
      17세기 영국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운 존 드라이든은 책벌레였다.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내마저 그 책에 질투를 느낄 정도가 되어 어느날 이렇게 푸념했다. 책 신세가 차라리 부러워요. 나도 책이나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드라이든이 웃으면서 말했다. 책보다 달력이 나을것이요. 왜요? 그럼 매년 새로워질 테니까.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말이다. 그날이 그날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것은 물론 내일도 오늘같이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드라이든의 이 말은 매일 새로워질 것을 권유하고 있다.   요즘 각 기업체에서는 시간 활용 보고서라는 것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루도 모자라 매시간 매분을 철저히 관리하라는 요구일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하루하루 변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된다는 위협도 이 안에 들어있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변화의 요구는 새로운 압력이다.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40대 남성들의 돌연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래된 결과이다. 드라이든의 말처럼 하루하루는 아닐지라도 매년 변화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자기관리는 지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올해는 담배를 끊고 술을 덜마시는 등의 자기관리 지침을 세워야 비로소 거기에 합당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노력을 기울여도 잘 실천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것들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 객관적인 기준을 세운 후에 말이다.   이 지침이라는 것을 말씀 안에서 찾다보면 그 어느 기준보다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올해는 두도 두고 기억에 남은 선한일 10가지를 실천하자고 결심했다고 치자 선한 일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의문부터 풀어야 실천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 기준들을 세상에서 찾다보면 혼란만 가중된다. 매일 매일 새롭게 되는 방법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 속에는 우리가 금과옥조로 삼을 교훈들이 가득하다. 옳고 그른 것이 명확하게 제시돼 있다. 그 어떤 철학도 말씀을 능가할 수는 없다.    든 신학자들이나 학자들이 종국에는 신을 찾지 않던가. 새해 매일을 새롭게 살기 위해 하루 한 말씀씩만 묵상하자. 거기에 샘솟는 말씀의 은혜가 담겨있다. 삶의 활력이 담겨있다.    /예장(합동한신) 증경총회장·목포중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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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0-01-20
  • 사랑의 시대
      보다 넓은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이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한양의 건학 정신인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들 중에는 사랑의 실천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의 모든 곳은 사랑을 실천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바야흐로 사랑의 시대가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거의 도외시되었던 말이다. 수천 년 전부터 수많은 성현들이 사랑과 자비를 가르쳤으나 인류는 이 가르침을 외면해 온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가르침에 역행이라도 하려는 듯이 약육강식의 처절한 역사를 빚어내고야 말았다. 더구나 인류는 사랑의 실천을 부정하는 공산주의까지 만들어냈다. 이 공산주의야말로 바로 약육강식의 역사가 빚어낸 부산물이다. 스스로가 빚어낸 이 공산주의 때문에 오늘날 인류가 도처에서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인류가 생존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는 바로 공산주의를 극복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진실로 살기 위해서는 공산주의를 이겨낼 수 있는 처방이 필요하다. 그러한 처방은 사랑의 실천 이외에는 하등의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사랑의 실천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될 사랑 부재의 시대인 것이다.   사랑의 시대는 약육강식의 유물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인류가 이러한 유물을 간직하는 한 우리는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이제 새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이 트이기 위해서는 약육강식으로 점철되어 온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새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이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이 시대에 부과된 절대의 소명이라 할 것이다. 사랑의 시대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파괴가 아니라 창조를, 분열이 아니라 화합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이 바로 사랑의 실천이 이루어진 곳이며, 그 정신을 구현하는 행동이 이 시대처럼 절실히 요구되는 때도 일찍이 없었다. 이를 위하여 우리 모두는 과거를 청산하고 반성 참회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이 되어 새로운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인간은 누구이겠는가? 바로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이 시대는 지금 이러한 새로운 인간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증오하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 속이 좁은 사람, 부정적인 사람을 거부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사랑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이러한 못난 사람을 선동하여 사랑의 새 길을 한사코 방해하려고 한다. 이러한 방해를 극복하고 사랑의 길을 이 땅에 넓히는 일만이 우리의 조상이 물려준 이 땅을 보존하고 사는 길이며, 나아가 자유와 행복과 번영을 이룩하는 길일 것이다.  /본지 전 발행인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20-01-14
  • [신년 메시지]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자 -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무대의 장막이 열리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을 한 몸에 받는 새해가 밝은 태양과 함께 떠올랐다. 새해가 되면 모든 사람이 지나간 것을 뒤로 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새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불신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자년 쥐띠의 해이기 때문일까? 불신자는 운세를 보며 그 해에 일어날 행복과 불행을 가늠한다. 그로 인해 불안에 떨기도 하고 평안을 찾기도 한다. 그러한 자세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에게는 적절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새해를 의미 있게 맞이 해야 한다. 그렇다면 새해에 축복의 근원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숙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새해를 허락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첫째는 일정한 간격으로 흘러가도록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다. 일 년을 하나의 단위로 끊어서 연 수를 헤아리도록 새해를 만드신 분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시간은 인간의 힘으로 멈추거나 변경할 수 없다. 고무줄처럼 속도를 늦추거나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빠르게 할 수도 없다. 영원이란 영역에 머물고 계신 초월적인 하나님만이 그것을 멈추거나 영원한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시간의 주인 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그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새로운 일 년을 허락하였을까? 한 해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시간의 주인 앞에 겸손히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것이 새해를 맞이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새해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지극히 작은 나를 통해 더욱 진행되기를 소망하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의 마땅한 자세이다.   둘째는 새해를 허락하신 하나님은 천국 곳간에 수많은 보화를 보관하고 창고의 문을 열어 방출하는 집주인과 같다.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화를 얻는 비결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하늘의 보화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하였다(마태복음 19장 21절). 내게 맡겨준 재물을 나누어 주는 구제보다 더 좋은 비결이 없다. 새해를 맞이하는 그리스도인이 경제적으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이 되면 하늘의 보화를 얻을 수 있다.   그 기회를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해를 허락하셨다.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이 하나님을 찾고 그 분을 만나 동행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밭에 숨겨진 보화를 발견한 이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새해에 진정한 보화 되신 하나님을 만나 부요한 그리스도인이 넘쳐나기를 기대한다.   /서울한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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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12-31
  • 성탄과 가치발견
      매년 성탄절은 새해를 눈앞에 둔 연말에 맞이하기 때문에 성경의 거울을 자신의 심령에 비추어보면서 지난 한 해의 그릇된 삶을 회개하게 된다. 그리고 새해를 바라보는 시점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전보다 더 나은 믿음 안에서 참신하고 성실하게 살겠다는 결단을 하게 된다. 또한 성탄절은 추운 겨울철에 맞이하기 때문에 가난하거나 병들고 소외된 이웃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을 절감하게 된다.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는 적어도 다음 몇 가지 가치를 발견해야만 한다.    첫째로 성탄은 생명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한다.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인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인간 한사람의 생명의 가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고 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이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시고 영혼을 구원하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는데 까지 희생을 치르신 십자가의 사건이다.    둘째로 성탄은 변화됨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한다. 죄를 짓고도 죄인인줄 모르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게 된다. 세리 삭개오는 예수를 만난 후에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부했고, 자신이 의인인줄로만 여겼던 바울도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다. 어거스틴은 19세부터 28세까지 9년간 세상 유혹을 받기도 하고, 타인을 유혹하며 속임을 당하고 남을 속이는 등 여러 가지 정욕과 범죄에 빠져 있다가 로마서 13:11-14절 말씀을 읽고 변화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셋째로 성탄은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한다. 성탄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이 선포된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고, 인권을 존중히 여기게 되며, 교회공동체에서는 섬기고 나누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슈바이처 박사, 테레사 여사, 앙리뒤낭, 장기려 박사, 쉰들러 등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세상 부귀영화를 배설물처럼 버리고 작은 예수로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성탄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러 오신 날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끊어지면 어느 누구도 존재할 수가 없다.    넷째로 성탄은 사명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한다. 우리는 바른 신앙, 바른 생활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할 선교적 사명자로 부름 받은 존재들이다. 성탄절을 맞아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참 가치를 발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삶을 살자. 인류가 평화와 자유와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성탄이 되기를 바란다.      /예장 합동선목 전 총회장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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