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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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두석언약신학연구소, 성경해석 세미나
      ◇ 김두석교수를 기념하는 세미나를 마치고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언약신학은 목회와 선교현장서 실질적 통찰을 제공 김두석언약신학연구소(소장=김선경)는 지난 1일 서울에 위치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4층 믿음홀에서 「언약과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해석」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언약신학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고 김두석교수(칼빈대학교)의 신학유산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고 김두석교수의 제자인 유영진교수(칼빈대학교)를 초청해 진행된 이번 행사는 사도적 해석방법에 따라 ‘언약과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해석’을 강조하며, 성경 속에서 ‘오직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열방에 전파하는 신학을 지켜온 고 김교수의 신학적 가치를 연구하고 계승하기 위한 취지로 열렸다.   동연구소는 “언약 중심의 신학은 목회와 설교, 그리고 선교 현장에서 매우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한다”며, “이번 세미나는 그 실제적인 적용과 신학적 방향을 함께 나누는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고 행사의 방향성을 설명했다. 이번 행사에는 국제헤세드선교회 이사 이판국목사(잠실새한교회)와 담아서출판사 대표 구부회목사가 함께해 축사와 격려사를 전했고, 서울예술신학원 성악과 이동열교수가 축가를 불렀다.   이판국목사는 “늦은 나이에 목회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늦게 시작한 저에게도 임마누엘의 은혜로 함께하셨다. 50대 이후에는 목회와 신학에 집중하며, 군선교와 시니어를 위한 사역을 공동체로 진행해왔다”며, “인생의 많은 문제에서도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러한 경험이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따르는 우리의 사역이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힘쓰자”고 축사를 전했다.   이후 강의에 나선 유영진교수는 “사마리아 여인에 관한 요한복음의 이야기를 활용해 사마리아 여인의 존재와 영원 그리고 예배라는 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며,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1세기 상황 그리고 그 문화안에서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고 전했다.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과 초대를 의미 유교수는 “성경본문이 말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단순히 윤리적인 평가로 정의내릴 수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복잡한 삶의 역사 속에서 예수를 만났고, 그 만남을 통해 공동체의 복음 전달자로 변화되었다”며, “사마리아 여인이 받은 생수는 개인차원의 구원관에서 우리 주변을 향한 구원의 적용으로 이어진다. 또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을 통한 예배의 초대가 지난 우리의 실수에 의해 거절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회복된다”고 말했다.   한편 김두석언약신학연구소는 2022년 국제헤세드선교회가 부설기관으로 설립된 이후, 성경은 단순 문학이나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의 책이며,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메시아)가 있다는 강한 신학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언약신학(개혁주의) 전통을 계승하는 시도이며, 단순한 학문적 해석을 넘어서, 목회·설교·선교·신앙 생활 전반에 걸친 실제적 적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단순 지식이 아니라 삶과 공동체, 복음 전파에 깊게 뿌리내리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비서구권 지역, 즉 언약신학 전통이 상대적으로 약한 지역까지 보급하려는 글로벌 비전이 있다는 점에서, 이 연구소의 사역은 한국 신학계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에 대한 영향력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김두석언약신학연구소는, 단순한 신학 연구기관이 아니라, 전통 개혁주의 언약신학을 계승하고, ‘언약과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통일된 해석 틀로 성경 전체를 바라보며, 저서 출판, 세미나, 번역, 선교를 통해 국내외에 신학과 복음을 전파하는 복합적 사역 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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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9
  • FIM국제선교회, 창립 29주년 예배 및 세미나
        ◇FIM국제선교회는 창립 29주년 예배 및 이슬람세미나를 진행했다.   시니어선교사의 발굴과 선교비즈니스센터 제안 이슬람언어로 기독교의 메시지를 전한 사역 공유    FIM국제선교회는 지난 1일 총신대학교 주기철기념관에서 창립 29주년 예배 및 이슬람세미나를 진행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다문화적이고 종교다원주의적인 사회에서 타자의 언어가 중요함이 제시됐다.          「중세 이슬람 지배하 레반트 기독교의 변증과 선교적 함의-안디옥 바울과 알카라피 논쟁을 중심으로」이란 제목으로 발제한 김요한박사는 “안디옥 바울의 시도는 오늘날의 선교가 직면한 도전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다문화적이고 종교다원주의적인 사회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자신만의 언어로만 말할 수 없으며, 반드시 타자의 언어와 담론 속에서 자신을 설명하고 변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의 시도는 단지 과거의 실험이 아니라, 오늘날 선교적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물론 그의 방식에는 신학적 긴장과 오해의 소지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슬람의 언어’로 ‘기독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본보기를 남겼다”고 말했다.    「이슬람 상인들의 상업활동을 통한 다와에 관한 고찰- 마울라나 말릭 이브라힘의 활동을 중심으로」이란 제목으로 발제한 강재춘선교사는 “현대기독교 선교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는 비즈니스선교는 이슬람상인들의 다와의 방법으로부터 많은 부분에서 도전을 받고 배워야 할 것이다”면서, “무엇보다 비즈니스와 선교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사업자체가 다와였음과 그들이 확보한 사회적 지위와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다와를 위해 사용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비즈니스선교의 발전과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방법으로 「△비즈니스선교를 위한 산·선 협력을 통한 인큐베이팅 시스템 구축 △전문적인 지식과 현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 시니어발굴과 적극적인 전문인 사역자로의 파송 △산·학·선 협력을 주도할 수 있는 선교비즈니스 센터 설립과 이를 학문적으로 뒷받침 할 수 있는 선교 경영역학과 개설」    「이슬람에 대한 중세 신학자 레이몬드 룰에 견해」란 제목을 발제한 유해석박사는 “룰은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신학적 대화를 시도하며, 무력 대신 학문과 논리를 통해 이슬람선교에 접근한 선구자적 인물이었다. 그는 언어와 철학, 종교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이슬람을 이해하고자 했고, 기독교교리를 논리적으로 설득하여 무슬림들을 개종시키려고 노력했다”면서, “그의 선교적 접근은 당시 십자군 전쟁으로 약화된 기독교와 이슬람관계에서 비폭력적이고 지적인 방식을 제시하였으며, 이러한 접근은 중세의 다른 기독교지도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사 노태진목사의 사회로 드려진 예배는 아델포이교회 임동현목사의 기도 등의 순서 후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은 은혜입니다」란 제목으로 신임 이사장 최광영목사(베들레헴교회)가 설교했다. 최목사는 “사랑하는 FIM 가족여러분, 이제 우리는 30주년을 향해, 그리고 주님오실 때까지 계속죌 선교의 여정을 이어가야 한다. 앞으로의 선교환경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종교적 박해는 심해지고, 선교의 문은 좁아지며, 세속주의의 도전은 거세질 것이다”면서,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난 29년 동안 FIM과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함께하실 것이다.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무익한 종이지만, 주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나라를 완성해 가실 것이다”고 말했다.    선교보고를 한 키르키즈스탄 방치성선교사는 “키르기즈스탄의 미래교회를 위한 다음세대사역을 하고 있다. 이 나라에 주일학교가 없기 때문에 주일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매번 공과를 출간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하고 있다. RSBS 2년과정 말씀학교도 하고 있다. 성경통독사역을 하고 있다. 구약 3박 4일, 신약 2박 3일로 통독을 하고 있다. 키르키즈스탄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반복해서 읽다보니 기쁨으로 하고 있다. 기억나실 때마다 키르키즈스탄에 다음세대와 목회자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길 기도해달라”고 했다.    신임 법인이사장과 이사 위촉시간도 있었다. 베들레헴교회 최광영목사를 이사장으로 위촉했으며, 서기 김은수목사(온사랑의교회), 감사 김성도목사(창원우리교회), 법인이사에는 김용덕목사(새생활교회), 박성호목사(인천신광교회), 임동현목사(아델포이교회), 이창용목사(원당교회)를 위촉했다. 이외에도 총신대학교 총장 박상규목사가 격려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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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5
  • 임지석선교사 아시아 4개국서 선교 진행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목회자와 리더를 위한 기독교 및 교리 교육을 통해서 현지 목회자들을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는 임지석 선교사   정규신학 교육받지 못한 목회자대상으로 교육 재교육사역을 통한 선교의 패러다임 전환 추구  북미주개혁교회 교단 소속의 임지석 선교사(사진)는 지난 9월 중순부터 두 달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스리랑카에서 선교사역을 진행했다.     그는 열방선교회 회장으로 섬기면서 신학교육이 취약한 주로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목회자와 교회 리더들을 세우는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그는 20여 곳 이상에서 「성경적 원리에 중점한 기독교와 기독교 교리」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으며 리더십 세미나와 주일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특별히 이번에 인도네시아 파푸아지역의 오순절 교단이 연례 목회자 컨퍼런스에 초대를 해서 그곳에서 컨퍼런스를 인도한 바 있다.  임선교사의 사역은 현지 목회자와 교단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협력해 진행된다.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오랫동안 관계를 형성한 사역자들이 그를 초대하면서 사역을 하게 된다. 그가 사역하는 나라의 경우 목회자들이 정규신학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별히 이단 세력들이 경제적 지원 등을 통해서 침투해 있는 현실에서 구원이론을 체계적으로 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입각한 믿음을 통한 구원교리를 성경적 원리에 기초해 체계적인 신학적 틀 속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기초적인 신학과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회 성도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20~30명부터 100명 이상이 모일 때도 있다.     임선교사는 “그분들에게 하나님 은혜에 입각한 믿음을 통한 구원교리를 핵심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성경은 무엇인가 등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커리큘럼을 작성해 이틀 간에 걸쳐서 하루에 4-5시간 집중적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특별히 성경 중심으로 전 과정을 이수하는데 300여 구절을 찾으면서 공부를 진행한다”고 한다.    임선교사는 자신의 사역을 디사이플십 즉 제자를 낳는 사역으로 규정했다. 그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대위임 명령에 보듯이 계속 제자를 낳아야 한다. 나는 20여 개 나라를 다니면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그 나라에서 헌신적인 분이 있다면 나와 같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위임한다”면서 “내가 없더라도 일정한 스케줄을 만들어서 계속 사역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임선교사는 “최근 선교의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단세력의 침투 등으로 어려움이 있기에 무엇보다 목사님이나 리더들이 교회의 일꾼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세워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럴 때 그분들을 따르는 교인들이 바른 신학을 깨달아야 온전한 신앙생활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고 했다.     또한 “한국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님들의 장점도 많이 있지만 현지인 사역자들에게 위임하는 일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현지 사역자들이 제대로 사역할 수 있도록 훈련도 시키고 말씀도 공부시키는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복음을 전하는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에서 목회자나 지도자들을 복음으로 훈련하고 양육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지도자들이 제대로 알아야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겠는가? 한국교회가 이 일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임선교사는 사역지의 기후나 사역 환경에 대해서 “파키스탄을 제외하고는 아열대 기후로 무덥고 찌는 더위를 견뎌야 했다. 스리랑카에서는 모기 세례를 많이 받았다. 대부분 호스트가정에서 보내면서 그들의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며 지내게 되었다”면서 “호스트가정들이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데다가 자동차가 없는 관계로 사역지를 옮겨 다니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임선교사는 미국에서 약 30년간 이민목회를 하다가 은퇴 후 세계 곳곳을 돌면서 순회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영어로 가르치며 소통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 헌신 되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러한 사역에 적극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본인의 건강과 사역 및 여행에 필요한 경비가 충족될 수 있도록 기도와 물질로 후원을 요청했다.    임지석 선교사의 후원 구좌는 (국민은행 220401-04-291223)이며 카톡 ID:amorjesus 또는 이메일: pastortedlim@gmail.com 으로 연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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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5
  • 한국CCC, 에수님 생일카페 프로젝트 진행
      스탬프 이벤트·포토존 등 활동으로 성탄의 기쁨 공유 「예수님 생일축하 광고」로 일상 속 성탄메시지 전파  한국대학생선교회(대표=박성민목사)가 이번달 서울·부산·공주에서 동시에 ‘2025 예수님 생일카페’를 진행한다. 서울 도눔엑스티오에서 오는 12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하며, 부산 로베오네에서는 오는 20일과 22일부터 25일 진행한다. 공주 크루1959에서는 오는 20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다.    생일카페는 동 선교회 VLM 팀의 주도로 청년 세대에게 다양한 체험을 통해 성탄의 참 의미와 복음을 전하는 프로젝트로 올해 3번째를 맞이한다.    각기 다른 세 도시에서 진행되는 만큼, 올해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마다 각각의 콘셉트로 공간이 꾸며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채로워진 포토존 △입장 팔찌와 특전 △리뉴얼된 성탄 굿즈가 방문객들에게 풍성한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스탬프 이벤트 △크리스마스 고사 △포토존 인증샷 △방명록 작성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생일카페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고, 성탄의 기쁨을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비기독교인도 방문이 가능하며, 사전 티켓팅 없이 현장 웨이팅으로 등록을 받는다.    3회째 진행하는 예수님 생일카페 프로젝트는 회를 거듭할수록 많은 관심과 새로운 크리스천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생일카페 프로젝트에 4천여 명이 방문하고, 4백여 명의 방문객에게 복음을 전하는 등 뜻깊은 시간이 됐다. 또한 SNS를 통해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면서 외국인 방문자의 발걸음도 줄을 이었다. 최근에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돼 MZ 세대형 크리스마스 행사로 주목받기도 했다.    동선교회 VLM팀은 올해도 거리 광고 캠페인도 이어간다. 이번달 부산대 앞 버스정류장에 「예수님 생일축하 광고」가 게시되며,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탄의 메시지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SNS를 통한 홍보 프로젝트에도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예수님 생일 카페 포스터는 공개 일주일 만에 누적 조회수 400만 회, 반응 수 26만 회를 기록해 국내외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CCC VLM팀 서의원간사는 “해마다 생일카페를 통해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성탄의 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 감사하다”면서, “작년에 거리가 멀어서 오지 못한 분들, 지방에 계신 분들도 많이 방문하고 즐길 수 있도록 올해는 특별히 세 개 지역에서 진행하는 만큼, 더 많은 사람이 예수님 생일카페를 통해 성탄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특별한 경험이 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동 선교회는 지난 2017년 ‘예수님! 2017번째 생일 축하해요~!’라는 문구를 담은 가상지하철 플랫폼광고를 제작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는 공간 대관과 제작비 등 총 3천만 원의 비용을 전액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자세한 내용과 후원 정보는 아래 2025 미션펀드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동선교회 VLM팀은 동 선교회의 사역을 온라인상의 미디어콘텐츠로 제작하고 개발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동 선교회의 여름수련회 영상 등을 제작하기도 하며, 전도도구와 굿즈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필림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선교지에서 미디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단기선교사역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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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2
  • 총신대 평화통일연서 통일기대 선교포럼
    탈북민교회의 평균교세 현황은 어린이 포함 35명 북한선교의 현장이고 실제이자 통일준비의 길잡이  총신대학교 평화통일연구소는 지난달 24일 한반도 통일기대 선교포럼을 진행했다. 이 포럼은 불씨선교회(대표=정형신목사)와 기아대책, 남북사랑나누기협의회의 주관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포럼에서는 「2025년 탈북민교회 현황 보고서: 성장과 동행을 위한 제안」이란 제목으로 불씨선교회 대표 정형신목사(뉴코리아교회)가 탈북민교회의 현황을 발표했다.     특히 이 보고서에서는 탈북민교회들이 탈북민 정착지원을 위한 사역과 쉼터사역 등에 앞장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국 75곳의 탈북민교회가 탈북민성도들을 중심으로 북한선교와 통일준비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탈북민교회 소재지는 서울, 경기, 인천에 각각 30곳, 21곳, 9곳으로 전체 80%의 교회가 수도권에 자리잡고 있다.    소속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이 18곳, 합동 11곳, 고신 3곳, 백석 3곳, 합신 2곳, 예장 소속 기타교단이 14곳이다. 이외에도 기독교대한감리회 9곳, 기독교대한성결교회 3곳,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3곳, 기독교한국침례회 1곳, 나사렛성결교회 1곳, 독립교회 및 기타 7곳이다.    탈북민교회 담임목회자 출신지역은 북한이 51명으로 가장 많았고, 남한출신이 23명, 중국출신이 1명으로 나타났다. 향존직교인이 있는 탈북민교회는 전체의 15%에 불과하며, 예배당 형태는 상가임대가 81%에 달했다.    교세현황은 어린이성도를 포함해서 평균 35명으로 나타났다. 성도 60명이상의 교회는 15%에 불과했으며, 사례비가 없는 탈북민교회 담임목회자가 52%에 달했다. 사례비가 없는 목회자를 포함해 전체 75%의 교회가 담임목회자의 사례비를 100만원 이하로 책정했다.    탈북민교회 사역의 특징은 일반적인 신앙양육과 더불어, 탈북민 정착지원을 위한 NGO사역, 북한선교 동원을 위한 선교단체 사역, 탈북민 쉼터, 탈북청소년 그룹홈, 대안학교 혹은 방과 후 학교, 북한 내지사역, 구출·양육사역 등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목사는 “북한선교의 거의 모든 영역이 탈북민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또한 정목사는 “탈북민교회는 한국교회 북한선교의 분명한 열매이다. 그리고 북한선교의 현장이고 실제이자 통일준비의 길잡이다”면서, “이제는 저 멀리 있는 북한 땅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 곁에 와 있는 3만 여명의 탈북민이웃과 이들이 모여 남북한의 하나 됨을 이루어가고 있는 탈북민교회, 그리고 탈북민목회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끈기로 세우는 탈북민 목회」란 제목으로 발제한 김강오목사(북부중앙교회)는 “하나님은 3만 4천명의 탈북민 중에서 북한 복음통일의 사명자들을 특별히 불러주시고 북한기독교 총연합회에 모이게 하셨다”면서, “북한기독교 총연합회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복음통일이라는 사명으로 하나가 된 탈북민 사역자들의 연합체이다.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일꾼 된 탈북목회자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 땅에 세워지는 모든 탈북민교회와 목회자들은 북기총이라는 연합체 안에서 함께 북한 복음통일을 위해서 사역을 감당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하광민교수(총신대)가 「한국교회의 탈북민 목회현황과 방향연구: 코로나 팬데믹 이후를 중심으로」, 김광호목사(NK생명나무교회)가 「문화와 다음세대 사역을 통한 탈북민 목회」, 윤현기목사(평화나눔재단)가 「교회 내 부서사역을 통한 탈북민 목회」란 제목으로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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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2
  • 감신대학서 '향림 설교 컨퍼런스'
    ◇ 김병삼목사가 예배와 설교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설교의 내용이 좋아도 회중과 소통없는 설교는 오류 경기도 분당에 만나교회(담임=김병삼목사) 브리지 미니스트리는 지난달 24일 서울 감리교신학대학에서 만나교회를 설립한 고 김우영목사의 삶과 사역을 기념하기 위한 「제2회 향림 설교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참석한 목회자들과 설교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설교, 다시 세우다」란 주제로 열린 이번 콘퍼런스에서 주최 측은 “설교가 예배와 신학, 말씀과 이야기 안에서 어떻게 다시 세워질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이번 행사를 주최했다”며, “목회자와 신학생들에게 새로운 설교적 통찰과 실제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설교 본연의 사명을 회복하기 위한 깊은 성찰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다”고 행사의 취지를 전했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만나교회의 담임이며 고 김우영목사의 아들인 김병삼목사(만나교회)를 비롯해 전창희목사(종교교회)와 김경진목사(소망교회) 그리고 설민석대표(단꿈아이)가 강사로 나서 설교에 대한 네가지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먼저 강의에 나선 김병삼목사는 「예배와 설교」란 주제로 “설교는 일방적인 선포가 아니라 성도들을 잘 지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며 살아내게 하는 것이다”며, “목회자 또한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면서 일상의 일들이 목회자 설교에 중요한 모티브가 될 수 있다. 목회자는 강단에서가 아니라 일상이 삶의 예배로 드려질때 하나님께 영광이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전하는 설교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창희목사(종교교회)는 「신학과 설교」란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설교가 아무리 훌륭하고 좋아도 듣는 청중에게 다가갈 수 없다면 아무런 가치없는 설교이다”며, "설교자의 의무에는 설교 내용을 잘 다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과적인 전달도 중요하다. 말씀이 능력이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던져버려도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프로페짜이를 통한 설교자들의 모임과 나눔을 권장 또한 전목사는 "커뮤니케이션은 설교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론신학과 실천신학이 균형을 잡을 때 효과적인 설교가 완성될 수 있다"며, "회중과 커뮤니케이션되지 않는 설교는 결국 설교의 능력을 파괴하게 된다"고 정리했다.   김경진목사(소망교회)는 「말씀과 설교」란 주제로 종교개혁 시대부터 이어져 온 목회자 말씀 묵상 모임인 ‘프로페짜이(Prophezei)’를 소개했다. 설교자들이 같은 본문을 연구하고 묵상함으로 깊이있는 성경핵석을 만들어내는 모임인 프로페짜이는 최근 들어 설교자들에게 주목되고 있는 설교준비의 한 방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목사는 “설교자들이 함께 모여 성경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깊이있는 분석과 이해를 만들어 내는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보다 심도있는 성경연구와 이해를 위해 이렇게 함께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리고 성도는 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 구절이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의미는 무엇인가” 등 성경 본문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분석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강의에 나선 한국사 강사인 설민석대표도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방법에 대해 전했다, 그는 짜임새있는 원고와 호소력있는 전달방법 그리고 메신저의 태도와 자세, 호흡등 기술적인 방법을 통한 설교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말했다. “성경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충분히 그의 입장에서 설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콘퍼런스의 마지막 순서는 토크 세션으로 마무리됐다. 네 명의 강사가 한자리에서 설교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설교에 대한 토크로 모든 행사를 마쳤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5-12-01

실시간 신학/선교/해외 기사

  • [선교사 통신] ‘투명모자’를 쓰고 ‘코로나19’에 대비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들의 사역지인 파우마스에도 계속 번지고 있고, 교인들의 친지들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신 경우가 있다. 우리들도 어떻게 이 상황을 감당해야 할지 지혜를 달라고 주님께 기도한다. 현재까지 거의 4개월 동안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기에 각자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브라질 상파울 동양선교교회 선교팀이 보내주신 마스크와 플라스틱 투명모자를 착용하고 교회 소모임을 가지는 중에 있다.   교인들은 각자의 집에서 부모님들이 예배일지를 기록하고, 오전 9시에는 작은 책자와 함께 주일학교를 연다. 그리고 주일 저녁 7시에는 부모님들이 주석 성경책을 토대로 말씀을 전하며 예배를 드렸다. 지난주부터는 이곳 토칸칭스주도 시청에서 예배를 허용했고, 우리교회도 교회 외부에서 서로 2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알코올로 손을 세정하고,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저녁예배를 시작했다.   우리의 기도제목은 따꽈리에 교육관을 짓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교회 뒤편의 반절 땅을 주님의 은혜로 구입했다. 이곳 따꽈리 샤론의꽃교회는 모교회로서 4지역의 사역지에 있는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위해 교육적 차원의 세미나와 제자교육, 공부교실 등을 열 필요가 있다. 교회 옆 나머지 반절의 땅만 구입하면 이곳에 교육관을 지어 여려 지역의 아이들과 어른들을 위한 교육 장소를 마련할 수 있다.   특별히 동역자분들의 도움으로 4개월 전 빌라자나이나 지역에 2번째 교회 땅을 매입할 수 있었다. 한국 샤론의꽃선교회에서 교회부지 헌금을 해주셔서 주님의 크신 은혜로 땅을 매입했다. 지난 5년 동안 교회가 없어서 아이들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리를 옮겨가며 매주 성경공부만 하곤 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교회 건축을 시작 하려 한다. 우리들의 오랜 기도를 주님은 외면치 아니 하시고 때가 되어 응답해 주셨다. 일주일에 한번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도네이션 빵과 성경암송구절을 가지고 만나고 있다. 계속해서 빌라자나이나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스스로 신앙을 지키며 교회가 건축이 되어 세례도 받고 교회 일꾼들로 자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린다.   주님께 감사한 일은 교인 중 마리아자매가 이미 야간 신학 2년 과정을 하고 3년 차 신학 공부하며 교회를 지키며 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례교인 지울레니와 죠시방 부부도 올해부터 야간 신학교 1학년을 다니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예배 찬양과 주일학교를 섬기고, 딸은 반주자로 섬기고 선교일터에 헌신하고자 공부를 시작하했는데 어려운 형편가운데에서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가정이다. 준비되고 헌신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특별히 이 부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백재원·김은주브라질선교사 
    • 신학/선교/해외
    • 선교
    2020-07-09
  • 21C목회연구소 김두현목사
      자연환경 파괴와 인간의 메커니즘 타락의 문제를 고발 철저한 성경중심의 믿음, 현장의 복원과 교회회복 절실   21C목회연구소 소장 김두현목사는 최근 「코로나19 교회회복 7대책」을 주제로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코로나19 대처방안을 발표했다. 김목사는 이번 발표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대한민국에도 충격을 주었고 많은 인명 희생과 경제 대란, 사회 변혁, 삶의 방식의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며, “충격 중의 충격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증COVID-19과 유사한 새로운 유형의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과 급속하게 확산되는 바이러스를 이겨낼 백신 계발이나 특효 신약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과 최대의 문제는 지구의 자연환경 파괴와 인간의 메커니즘 타락과 붕괴이다”고 전했다.   또 “한국교회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모든 생태계가 총체적으로 바뀌었다. 교회관, 목회환경, 믿음의 질, 사회흐름, 대중 의식이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변했고 한국교회는 대응이나 대책을 세우기 전에 대형교회의 판단에 의존하여 초기에 안일하게 대처한 결과 지금은 교회 풀뿌리까지 충격을 받는 위기에 있다. 한국교회는 특단의 조치를 통해 깊은 자성과 회개, 철저한 성경중심의 믿음, 현장의 복원과 교회 회복에 모든 열정과 희생 감수를 해야 할 엄중한 시기이다”고 주장했다.   또 “아직도 대부분의 목사들은 아직도 전혀 위기의식이 없고 처절한 자기희생과 상징적 순교각오의 정신이 아닌 코로나 이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버려야 한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깨닫고 자신의 믿음은 물론 기반이 견고한 교회, 기본에 충실한 목회, 성숙하고 성화된 공동체가 되기 위해 자신과 과거를 탈피하고, 비전과 미래에 가치를 두고, 희망과 용기로 교회를 일으키는 처치 플랜팅church planting을 모든 교회들이 선제적 대비를 통해 모멘텀과 플렛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목사는 한국교회가 분명하게 인식해야할 것 3가지 통찰력에 대해 “첫째, 코로나에 대한 성경적 이해이다. 코로나사태 이후 한국교회는 코로나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텍스트로 제시하지 않았다. 성경의 깊이와 관찰, 말씀의 신학적 체계, 강력한 실천과 경험의 현장을 지키는데 안일, 방임, 냉담, 방치로 초기 대응 실패가 되었다. 둘째, 변화시기의 골든타임 설정이다. 2020년 한국교회는 135년 역사에서 가장 충격의 블랙홀이 될 것이다. 코로나 중력은 어떤 것도 빠져나올 수 없는 빨아들이는 입구의 힘이 되어 한국교회를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골든타임을 강력하게 드라이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셋째, 원칙중심의 메시지와 리더십 고취가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토양은 실리주의, 실용주의, 상대주의로 명확성, 일관성, 확신성이 미약한 것이 코로나 사태에서 교회가 셧다운 되었다. 이제는 개별적이며 산발적 메시지가 아닌 일치, 원칙 메시지로 통일하고 자기 자신을 위한 공로, 성공, 명분을 버리고 진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에 영적 리더가 없는 비극을 우리는 깊이 느끼고 각성해야 한다. 교회의 무지와 자기주장, 품격 저하와 신앙의 영역 축소, 사역의 질과 섬김의 과정 약화, 교회 경험과 영향력 결핍을 속도있게 변혁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김목사는 “지금 한국교회는 어떤 특별하고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한국교회의 현주소와 미래를 위하여 교회의 가치와 비전을 어디에 두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다함께 고군분투하여 반드시 교회세움을 이루는 전환기를 위한 각오와 결단이 필요하며 먼저 본을 보이는 목사와 장로가 되어야한다”며, “각 파트별 대처방안을 통한 교회의 적극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제부터라도 한국교회가 살려면 강력하게 영적 대항 능력, 저항력, 면역력을 통해 스스로 훈련하고 무장하는 교회 견고성, 믿음의 성숙성, 인내의 영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며, “현장 복원을 전략적 계획 가운데 D-day, Super sunday, 한국교회 예배회복의 날(5월31), 교회회복의 날(7월5일), 교회세움의 날(10월25일)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비상목회 체제로 전환하여 강력한 공적 예배와 교회, 기도와 현장 경험과 참여를 위하여 철저한 집중력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겔11:19, 빌2:2, 계7:15-17, 시34:17). 그리고 지속적 메시지를 선포하여 엄중하고 위기의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도록 새로운 도전과 출구를 선제적으로 주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존중을 받으려면 사이즈가 아닌 메시지, 퀄리티, 캐릭터를 통해 교회의 질적 향상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며, “포스트 코로나와 위드 코로나를 위하여 세상변화와 교회변화를 예측하고 대응 노력을 위한 성경중심으로 돌아와 복음과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학/선교/해외
    • 선교
    2020-07-09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3. 초지일관한 청교도적 회개 부흥 신앙 사상   고봉은 당시 캐나다에서 함흥으로 처음으로 파송된 영재형 선교사의 청교도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함경도 지역에 파송된 캐나다 선교사들은 자유주의적이었다. 영재형 선교사는 뒤늦게 파송된 진보적 선교사 윌리엄 스코트(William Scott, 1886-1979)와 심각한 신앙적 갈등을 겪었고, 이에 대해 선교부에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그런데 선교부는 영재형 선교사를 신앙의 불모지인 일본으로 좌천 파송하기에 이르렀다. 고봉은 일본으로 건너간 영재형 선교사를 따라서 온 가족이 일본으로 떠났다. 고봉은 일본 고베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이 때부터 영재형 선교사와 선교활동을 함께 시작하였다.(김동화, 『한국의 예레미아 김치선 박사를 추모하며- 나에게 있어 영원한 것』, 서울: 기독교 연합신문사, 1998, 45-46.) 그는 보수적 신앙을 가진 양아버지 선교사를 평생 섬기면서 그로부터 복음 사역자로서의 인격과 영성을 성실하게 닦았다.   고봉의 신앙의 열정은 10살 때 마을 서당 훈장 김응보 옹의 영향 아래 신앙으로 입문 후 흔들림없이 초지 일관하였다. 16세 때 영재영 선교사를 만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실천하는 정통개혁신앙의 훈련을 받으면서 20세에 3.1운동에 참여하여 1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출옥 후 영생중학교에서 학업을 끝낸 후 연희전문을 거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엄재형 선교사의 권유에 따라 일본 고배신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목사 안수 후에는 미국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와 달라스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다시 고베와 동경 신주구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였다. 그리고 해방전 귀국하여 남대문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대한 신학교를 설립운영하고 창동교회 개척, 한양교회 목회, 송파 중앙교회 개척과 300만 부흥전도단 창립으로 초지일관하였다. 고봉의 독특성은 최초의 미국 구약학 신학박사를 한 그의 학문적인 논리보다는 눈물로 청중의 영혼과 마음에 호소하고 감동을 주는 초지일관하는 청교도적인 신앙의 열정이었다.   고봉은 기도의 사람으로 3백만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민족 복음화운동에 앞장 섰다. 그는 6.25 한국전쟁 이후에 나타난 민족의 위기를 직접 체험하면서, 한국의 예레미아로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민족의 파수꾼이 되어 한(韓)민족과 한국교회가 범한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그의 부흥설교의 주제는 회개, 부흥, 성령이었다. 그는 눈물로 기도하고 전국을 돌면서 전도했다. 해방 후 혼란한 정국 속에서 이 민족이 살길은 오직 기도, 회개 그리고 기도뿐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는 단지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부흥운동이 아니라 민족을 살리기 위한 한국교회의 내면적 성장을 위하여 부흥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그의 교회 부흥운동도 말씀에 입각한 회개 운동이었기 때문에 개혁신앙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를 창립하고 명예회장으로 계시는 김명혁은 김치선의 설교와 열정에 대해 다음같이 피력한다. “김치선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마다 회개와 은혜 사모의 메시지와 함께 전도의 메시지를 전하시곤 했습니다. 2만8천 여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조건 왕십리로 달려갔습니다. 왕십리 들판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전도와 목회를 계속했습니다.... 모두가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은혜와 감동과 도전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김명혁, “추천사: 한국교회에서 다시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와 같은 영적 거목이 나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in: 최선,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12-13.) 당시 한국 기독교 인구가 30만 명 정도 되고 한국 인구가 3천만 명 정도 되었을 때 1/10이라도 전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3백만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민족 복음화운동에 앞장섰다.   4. 사회개혁적 애국적인 눈물의 신앙 사상   고봉은 일제하에서 투철한 애국심을 가지고 사회개혁에도 적극적이었다. 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한 죄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 정도 옥고를 치렀다. 그는 하나님 나라와 역사의식이 분명하였다.   그의 애국 사상은 1935년 그가 고베에서 고베중앙교회(神戶中央敎會)를 개척한 목회에서 나타났다. 특히 이 교회 교인들은 모두 주일마다 한복(韓服)을 입고 교회에 나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획기적이고 용기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 대부분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하여 될 수 있으면 한복을 입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봉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이처럼 당당하게 한복을 입고 교회에 출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담임목사가 그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신사참배 강요와 일본의 내선일체(內鮮一體) 강요로 나타났다. 평양신학교가 신사참배 반대로 자진 폐교했다. 일본 내에서도 한인교회에 대한 일체의 탄압이 심해졌다. 그가 1938년 청빙받아 간 동경에 있는 신주쿠중앙교회(新宿中央敎會)의 강단에서 일본어로 설교해야 한다는 내선일체 규정을 준행하지 않고 한국어로 설교했다는 이유로 일본인들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찍힐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40년 경찰에 사상범으로 구속 연행되어 체포되어 여러 달동안 감옥살이를 하게되었다. 신앙이 좋다는 조선인이 목사가 한국어로 설교했다고 경찰에 밀고했던 것이다. 그는 신주쿠중앙교회(新宿中央敎會)에서 개척한 메구로(目黑)교회에서 설교할 때에도 언제나 눈물로 기도하며, 눈물로 설교하였다고 한다. 그의 눈물은 단지 감정의 눈물이 아니라 민족의 독립과 미래를 염려하는 애국자와 선구자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귀중한 눈물이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살면서 선진국을 경험한 고봉은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를 위한 미래의 소망을 다른 곳 아닌 복음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하나님 말씀만이 민족의 아픔을 달래주고 민족의 미래를 열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 복음화만이 나라의 미래를 여는 것이었다. 그는 복음주의적 투철한 개혁주의 신학사상, 삶의 현장에 대한 열정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민족과 교회를 가슴에 품고 복음사역을 하였다.   고봉은 1944년 귀국하여 남대문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민족 복음화를 표어로 내걸었으며, 애국심이란 “우리가 한국 사람이니 그것이 골육지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골육지친인 것을 알아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마음”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일제 강제점령 막바지의 위험한 상황에서 서울의 모든 교회들이 새벽기도회를 쉬고 있는 상황에서 남대문교회에 부임하자마자 처음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고 매일 새벽 강단에서 엎드려 민족을 위하여 한 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매 새벽기도 때마다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조국이 광복과 더불어 고봉은 이제껏 그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민족의 복음화의 열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새벽기도 때마다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그리고 이 민족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였다고 한다. 바로 이 때부터 그가 전개한 운동이 3천만의 십일조 3백만을 하나님께 바치자는 운동이었다. 그는 매 설교 시마다 “한국에는 2만 8천의 자연부락이 있소. 동리마다 교회를 세웁시다. 우리 성도들이 집집마다 감나무 한 그루씩 심어서 그 수입을 몽땅 선교비에 투자한다면 민족복음화는 물론 세계를 복음으로 덮으리이다"하고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때부터 그를 조국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렀다.   고봉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민족의 살길은 로마서 9장 1-2절을 근거로 복음이라는 것을 설교하였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 그것이 골육지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골육지친인 것을 알아.” 그는 해방 후 혼란과 위기의 극복의 유일한 길이 복음을 통한 국가의 재건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국가의 재건과 민족의 구원 이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3백만 복음화 운동을 일으켰다. 3백만 복음화 운동은 복음화일꾼 양성하는 일(신학교)과 전국 2만 8천 동네에 우물파기 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구약의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아의 심정을 갖고, “눈물의 선지자”로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여 세상을 거룩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대한신학교 학생들에게 영농법과 침술법도 철저히 가르쳤다. 김명혁은 그가 김치선 목사의 설교에서 받은 은혜를 간증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예레미아’라고 불리던 김치선 목사님은 새벽기도회 시간은 물론 설교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며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고, 은혜 사모와 전도의 매시지를 선포하셨는데 그 메시지들이 저의 신앙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재료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김명혁, “추천사: 한국교회에서 다시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와 같은 영적 거목이 나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in: 최선,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12.)   2009년 10월 26일 경기도 안양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민족부흥 일념 고봉 김치선 목사 유업 잇자”는 세미나에서 미국에 거주 중인 고봉의 차녀 김동화씨가 ‘나의 아버지 김치선 박사’라는 제목으로 교회사에 숨겨진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연대별로 펼쳐내며 “항상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모습에서 아버지가 민족과 한국교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절실히 느꼈다”고 증언했다.   최선은 고봉이 민족 복음화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먼저 김치선 박사는 한국교회와 사회가 사는 길은 오직 십자가 복음 뿐이라 생각하고 초교파적으로 복음을 전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고봉은 1950년 전후에 손양원, 밥 얼스와 함께 한국 최초의 한민 연합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민족 복음화“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그 열매가 1970년대 민족복음화 운동으로 신현균 목사에 의하여 이어졌고, 1970년 ”한국기독교 부흥협의회“가 설립되었다. 신현균으로부터 김준곤, 조용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빌리그래함 전도대회가 1973년 ”5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표어로 진행되었다.   고봉은 해외유학파로 일제말에 귀국해 1944년 3월 당시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남대문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인 김구를 만나게 되어 민족적인 목회를 하게된다. 그가 본래 가졌던 복음주의적 부흥신앙과 김구의 민족주의가 결합하게 된다.(박명수, “추천사: 다시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가 나오길 기대하며,” in: 최선,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23.) 그래서 김치선은 복음으로 민족을 새롭게 하는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민족 복음화운동은 해방 후에 3백만 복음화 운동으로 나타났다. 고봉은 3천만 민족복음화를 위해서는 그중의 1/10인 3백만명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 그가 시무한 남대문교회는 민족 복음화의 구심점의 역할을 했는데 서울 역 앞에 위치해서 해방 이후에 월남한 많은 신자들이 서울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었다. 그러나 3백만 명 복음화운도은 6.25 한국 동란, 장로교단의 분열, 고봉의 독자노선, 1952년 남대문교회 사임으로 역사에 묻히고 말았다.(이종전, ‘김치선과 3백만 부흥운동의 의의,“ 개혁논총 39(2016), 171; 최선,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킹덤북스, 2018, 6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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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6
  • [선교사 통신] ‘코로나 19’로 4개월간 봉쇄 지속
      필리핀은 우기에 접어들어 비가 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습한 날씨가 시작되었고 비가 오면서 오전 영어수업 시간에 빨래를 걷으러 달려가는 선교사 훈련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3월 15일부터 시작한 봉쇄가 6월로 들어서면서 한 단계 완화되어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이로 인해 확진자 수는 더욱 늘고 있고 사망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태이다(6월 21일 기준 확진자 3만 52명, 사망자 1169명). 저희로서는 봉쇄가 풀리기 전이 오히려 더 안전했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이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어 안전상에 더욱 신경이 쓰이게 된다. 필리핀 정부는 4개월 동안 봉쇄를 지속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 필리핀을 위해, 가난하여 의료 혜택을 받을 수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이 상황이 속히 안정화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린다.   해외훈련은 이제 훈련의 반(17주)을 지나 후반기(17주)로 접어든지 1주일 되었다. 지금까지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켜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와 동역자님들의 기도에 감사를 드린다. 모두 건강하게 오늘까지 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새롭게 후반기를 시작하면서 한 가정씩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동안 성장하였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지,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남은 훈련기간 동안 성장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하지 못하고 4개월 간 훈련원에만 있어야 하는 답답함도 있지만 이 기간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는 것보다 더 소중한 훈련은 없다는 생각에 주님께 더욱 집중하자고 하고 있다.   기도를 부탁드린다. 한 가정은 아내가 임신을 하여 건강에 대한 염려로 인해 훈련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 싱글은 해외가 아닌 앞으로 국내에서 MK사역을 하고자 하여 파송이 아닌 수료만 하기로 했다. 주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길 그리고 나머지 선교사들의 마음을 더욱 굳건하게 붙들어 주시길 기도 부탁드린다. 이 와중에도 태권도 훈련은 계속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때론 세 번씩 태권도를 통해 땀을 흘리며 몸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큰 아들 예원이는 지난 5월 말에 졸업식이 없는 졸업식을 했다. 졸업생 마다 한 명씩 시간을 미리 정하고 그 시간 안에 학교에 가서 학사모를 쓰고 옷을 입고 졸업장을 받고 교장 선생님과 사진을 찍는 것으로 졸업을 마쳤다. 대학 진학을 위해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봉쇄로 인해 비자업무가 중단되었다가 6월에서야 다시 업무를 시작하였으나 이민국 직원 중 확진자가 나와 한 주간 문을 닫고 지난 주에 다시 문을 열어 일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    둘째 예준이는 그 동안 온라인으로 하던 수업을 갑자기 7월에는 1주일 대면 수업을 해야 하고 일주일 학교에 와서 기말 시험을 봐야 한다고 하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간 학생들도 있고 학부모들도 많은 걱정가운데 있다. 코로나로 인해 혼란스러운 이 때에 선하신 길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다./하성한·이은혜 필리핀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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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5
  • 국제미래학회 안종배회장
      시대의 변화를 리드할 수 있는 성경적 인재 양성이 절실 “한국교회가 변화를 수용하고 교회도 본질로 돌아가야” 안종배 국제미래학회 회장(한세대 교수)은 최근 송촌장로교회(담임=박경배목사) 초청 특강에서 「포스트코로나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의 과업과 언택트 목회선교 전략」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안회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교회는 어려운 환경에 처하고 있지만 동시에 교회와 기독교인의 본질로 돌아갈 기회이고 이것은 한국 교회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며, “이를 위해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은 4대 과업과 다섯가지 언택트 목회선교 전략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포스트코로나 미래사회 변화를 전망하며 핵심 특징으로 첫째, 창의적 인성과 가치 추구의 영성 중시 휴머니즘의 강화. 둘째, 초지능·초연결·초실감을 구현하는 4차산업혁명의 가속화를 꼽았다.   안회장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핵심 3가지 트렌드로 첫째, Untact Presence 강화. 둘째, Smart Platform 확산. 셋째, AI Personal 활용의 일반화를 예측하고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도 이러한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교회도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특히 “교회의 본질인 예배, 교제, 섬김, 전도가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며, “예배는 교인이 있는 모든 곳이 예배의 처소가 되고, 소그룹 기독교 공감 공동체가 교제의 핵심 주체가 되며, 사회봉사와 이웃에의 나눔을 통해 섬김을 실천하고 기독교적 삶의 모범과 언택트 스마트를 활용한 복음 전파를 통해 전도를 확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회장은 포스트코로나시대 교회와 기독교인은 창조질서의 복원을 위한 4가지 회복운동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며 첫째, 자연 회복운동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다스리라는 문화명령을 수행해야 한다. 그 실천운동으로 아껴쓰기 운동을 제안했다. 둘째, 가족 회복운동으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문화명령을 수행해야 한다고 이를 위해 결혼·출산 장려운동을 교회가 적극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셋째, 인성회복 운동으로 정직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인성은 성령의 열매이자 성경적 가치이다. 그 실천운동으로 정직운동과 인성 클린콘텐츠 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넷째, 영성회복 운동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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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5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고봉(高峯) 김치선(金致善, 1899-1968)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보수적 개혁주의 신학자로서의 신학적 업적보다는 대신교단과 대한신학교 창립자라는 영적 유산과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어졌던 그의 목회적 감화력과 민족 복음화운동의 창시자로서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는 미국 유학하여 구약학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 신학자로서 바로 현장목회에 투신하여 회개와 복음화를 강조한 목회를 하였고, 그의 목회는 항상 결실이 있었다. 민족복음화 운동에도 회개가 주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회개가 중심된 목회는 개혁신학의 전통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봉은 설교문과 신학의 글이나 강의안을 남겼으나 그의 전공인 구약학에 관해서는 박사학위 논문 「신명기의 모세저작」(Kim, Chi Syun. The Mosaic Authorship of the Pentateuch.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1935; 최선 역, 『김치선 박사의 오경과 모세』. 서울: 선교횃불, 2015)과 『구약사기(舊約史記)』 외에는 학술적 논문이나 저서를 남기지는 아니하였다. 그는 1948년 대한신학교를 세웠고 1951년부터 1960년에 총회신학교에서 구약학을 강의하였고 1955년에 391쪽이나 되는 상당한 분량의 신학적 저서 『구약사기(舊約史記)』를 출판했으나 한국구약학회에서 그의 학술적인 논문과 저작에 관하여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고봉은 구약사와 함께 에스겔, 소선지서와 함께 예레미야서를 강의하였다. 1950년대 선지서에 대한 논문이나 저서가 적었던 시기에 현재 세 권이 남아 있는 그의 구약과 관련된 강의안 소개와 평가는 없다. 구약학자로서의 그의 위상과 기여는 묻혀지고 있다. 이제 한국개혁신학회가 그의 학문적 위상과 기여를 밝혀야할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고봉이 신학적으로는 근본주의 신학자라는 평가도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고봉은 장로교가 합동과 통합으로 나누어졌을 때 제3의 교단인 대신 교단의 창립자요 교계의 영적 지도자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다. 고봉은 그의 인격 안에 보수신앙과 애국사상이 하나로 결합된 민족 지도자로서 기독교 1세대로서 근본적으로 역사적 개혁신학을 계승하고 이것을 목회와 신학교육에서 회개와 민족복음화로 실천하고자 했던 목회자요 신학자로서 민족 복음화운동라는 위대한 유산을 한국교회 후손들에게 남겨주었다. 필자는 고봉의 개혁신학사상을 그의 다음 11가지 특징으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1. 정통 복음주의 신학에 근거한 민족복음화운동 효시   고봉은 함경남도 함흥(읍 서호리 바닷가 어촌)에서 조부가 40척의 배를 소유한 선주(船主)인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10대 청소년기 부터 독실한 신앙으로 애국정신을 가진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여 함흥지역의 리더로 낙인찍혀 1년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刑)을 살고 나왔다. 함흥으로 돌아와 학업에 전념했고 선교사 함흥 파송 캐나다 선교사 영재형(Luther Lisger Young, 榮在馨, ?-1949)의 영생중학교(중고등 합제 5년제)를 1922년 졸업했다. 영재형(Luther Lisger Young, 榮在馨)은 캐나다 선교사로서 한국으로 귀화한 캐나다계 한국인이다. 그는 1906년부터 함흥지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었고 가끔 서호리에 오곤했다. 김응보 옹은 영재형 선교사에게 어린 고봉의 어려운 형편과 아울러 영특함과 착실함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신원을 책임지겠다고 추천하자 엄재형 선교사는 그런 유망한 학생이라면 자기가 키우고 공부시키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어린 고봉과 영재형 선교사 사이에 인연이 생겨난 것이다. 당시 에큐메니컬 운동의 일환으로 당시 캐나다 교회는 서로 연합하게 되는데, 영재형 선교사는 이 캐나다 연합교회에 합류하지 않은 잔류파 캐나다 장로교회에 소속된 철저한 개혁주의자 선교사였다고 한다. 예장 대신의 신학적 정체성이 이 선교사의 신학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영생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였다고 한다. 고봉은 장로교 미션학교인 영생중학교에서 특히 그의 양(養)아버지가 되어준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 영재형 목사로부터 민족을 사랑하고 하나님 주권 신앙을 배웠다. 연희전문학교 영문학과 입학하여 수학하였고 1927년에 졸업하였다. 그리고 평양신학교에서 한학기 수학하였다. 고봉은 장로교신학교인 평양신학교에서 개혁신학을 배웠다. 그리고 일본으로 전지 파송된 영재형 선교사의 권유로 평양신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개혁파 신학교인 고베(神戶) 중앙(中央)신학교(미국 남장로교에서 세운 1907년 세운 고베신학교와 1903년 북장로교에서 세운 전도동지관, 1920년 오사카(大阪) 신학원으로 개명, 다시 두 신학교가 1927년 합병하여 개명한 개혁파 신학교,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을 수용하는 역사적 개혁파 로선을 따름)에서 수학(修學)하고 1930년 졸업하였다. 고봉은 보수적인 개혁신학교인 고베신학교에서 정통개혁신학을 배웠다. 그리고 일본 선교사로 사역한 영재형 목사를 따라 다니면서 일본에 사는 한인 교포들에게 전도하면서 영재형 목사의 보수적이고 복음적인 개혁신앙을 배웠다.   고봉은 영재형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유학하여 1933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석사를 취득하였다. 고봉은 1929년 프린스턴신학교의 좌경화에 반대하여 필라델피아에서 세워진 웨스터민스터신학교에서 정통개혁신앙을 배웠다. 그리고 고봉은 1935년 미국 달라스신학교에서 「모세오경의 모세저작권」(The Mosaic Authorship of the Pentateuch)으로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조직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제는 구약에 관한 제목이었다. 그는 1930년대 김재준, 유형기 등이 평양신학교에 도입한 모세오경 문서설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성경신학입장을 가졌고, 박형룡과 박윤선이 가졌던 정통개혁신학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고봉은 학위를 받고 1935년 귀국한 후 1936~1937년 고향인 함흥 서호리에서 목회 활동하다가 신사참배를 피하기 위해 1937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중앙교회(神戶中央敎會), 동경 신주쿠중앙교회, 메구로(目黑) 한인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1944년 귀국하였다. 고봉은 1944년 장로교회인 남대문교회(1885.628 알렌 선교사댁에서 개척 설립) 제6대 담임목사로 취임한다. 당시 남대문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한국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교회가 서울역 앞에 있었기 때문에 북에서 다니러 오는 나그네들이나 남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 그리고 일본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이 늘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따라서 이 교회는 전국적으로 상당히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교회였다.   해방이 되자 3백만 구령운동을 일으켰다. 1946년 2월 8일, 이승만(李承晩)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金九)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통합하여 출범한 사회운동단체이자 정치단체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에 많은 목회자들이 가담하였다.   고봉은 정치활동이나 주류교단 활동에 참여하지도 않고 3백만 구령운동이란 제3의 길을 추구하였다. 그는 민족복음화 운동에 전념하여 3백만 구령운동을 일으키면서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1948년 야간인 대한신학교를 설립하고 신학생을 길러내었다. 그는 장로교 총회신학교에서 1951년에서 1960년까지 9년 동안 교수로서 구약학을 가르쳤다. 그는 그가 설립한 대한신학교에서 구약학, 신약학,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남대문교회 담임목사요 장로교신학교의 교수로서 활동하였고, 강의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학생들에게 회개와 함께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할 것을 당부하였고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었다.   2. 보수적, 성실하고 실천적 인격 신앙   고봉은 마을 서당의 훈장이자 개혁 개방의 향촌의 민족주의적 유교 지식인으로서 기독교가 서호리에 들어오자 누구보다도 먼저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고 교회 영수(領袖)가 되었던 김응보 옹(翁)의 영향을 받아 신앙인이 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되던 암울한 시기에 10대(代) 소년으로 6년이나 매일 새벽 내호교회 새벽기도회에 출석하였고, 그 시기에 그는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앙을 가졌고, “너는 내 것이다”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의 파송으로 함흥에 와 있던 영재형 선교사가 서호리를 방문한 것이다. 김응보 옹(翁)은 어린 고봉의 신앙과 영특함에 대해 칭찬하며 학업 지속하기에 가정 형편의 어려움에 관하여 영재형 선교사에게 말하면서 신원을 보장하겠다고 그를 추천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영재형 선교사는 '그렇게 유망한 학생이라면 자신이 키우면서 공부시키겠다'하고 고봉을 함흥 발룡산 기슭에 있는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가서 사환 일을 시키며 공부하게 했다. 그리하여 어린 고봉은 영재형 선교사 집으로 가게 되고 가족들은 장전을 향해 화전민으로 이사하였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10대 고봉은 선교사를 만난 후 그의 인생은 달라진다. 선교사 집에서 잡일을 도우면서 선교사와 부인의 비서 역할까지 했다. 10대 고봉은 선교사가 세운 영생중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선교사 집안일을 도우는 가정 총무 역할을 했다. 요셉처럼 힘든 일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착실하고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일을 처리하여 선교사 부부의 사랑을 듬뿍받았다.   고봉은 서당에서 배운 실력으로 영재형 선교사가 세운 장로교 선교학교인 영생중학교에 입학하였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당시 선교학교는 민족정신이 강하게 강조되는 곳으로 일제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당시 영생중 · 고등학교 내에서는, 학생들이 비밀리에 한국 애국자들의 지시를 받아 활동하고 있었는데 고봉 역시 그런 학생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함흥지역 학교 비밀학생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1919년 3월 1일에 있을 민족의 봉기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하였다. 고봉의 참여는 민족 정신이 투철한 영재형 선교사의 신앙 훈련에 영향을 받았은 것이다. 고봉은 이 3.1운동 참여 일로 인하여 일경에게 체포되어 심한 매질과 고문을 당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20살의 나이로 함흥에서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되어 1년간의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그 곳에서 그는 인생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1년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중 그는 출옥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하였다.   1년 후 김치선은 출옥하여 함흥으로 돌아와 영생중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고 1922년 3월 13일 23세의 나이로 영생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때 김치선은 학기 중에는 서울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였고, 방학이 되어야 함흥으로 돌아와서 영재형 목사의 일을 도왔다. 이 때 고봉은 학기 중에는 서울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였고, 방학이 되어야 함흥으로 돌아와서 영재형 목사의 일을 도왔다   1923년 어느 날 방학을 맞이하여 함흥의 집으로 돌아와 영생고등학교 옆에 세워진 신창리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있던 고봉은 밖에서 들려오는 “불이야! 불이야!”하는 다급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영생 중·고등학교 쪽에서 들여오는 소리였다. 김치선이 이 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 학교는 이미 커다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 불은 당시 서양 사람인 영재형 목사가 한국 학교인 영생 중 · 고등학교의 교장이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영재형 목사를 죽이기 위해 놓은 불이었다. 그들은 영재형 목사를 교장실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잠근 후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불을 질렀던 것이다. 고봉은 이불에 물을 부어 자신의 몸에 뒤집어 쓰고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선교사를 구출한다. 그는 자기를 키어주고 공부시켜준 은인(恩人)을 위기의 순간 살렸다는 보은의 자긍심을 가졌다. 이처럼 고봉의 생명을 건 구출작전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 영재형 선교사는 이 일 후에 고봉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고 더욱 특별히 사랑하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선교사 부인은 너무 놀라 화병을 얻어 별세하게 된다. 별세 전에 부인은 남편에게 “치선이를 끝까지 돌보아주고 공부시켜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겼다. 영 선교사는 그 유언을 실천하여 고봉을 일본으로 유학시키고 이어서 1930년대 미국 달라스신학교에 유학시켜 1935년 한국인 최초로 신학박사를 받게 지원을 해준 것이다. 1949년 영재형 선교사가 별세할 때 다음의 유언을 남겼다: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내가 한국에 와서 한 것이 있다면 단 한가지, 치선이를 얻은 것이다.”   1927년 3월 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평양에 있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평양신학교 생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1928년 일본에 있는 한인(韓人)들을 선교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영재형 선교사가 고봉을 일본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고봉은 일본 고베 현(縣)에 있는 고베중앙신학교(現, 개혁파신학교)에 편입하였고, 그곳에서 영재형 선교사를 도와 전국을 돌아다니며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일본에 건너 온지 2년만인 1930년 2월 23일, 고봉은 31세 나이로 고베중앙신학교를 졸업하고 영재형 선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재일 조선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31세였다.   고봉은 그 다음 해인 1931년 영재형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터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1929년 메이천 등 프린스턴 구학파 학자들이 세움) Th. M. 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하며 오직 학업에만 매진한 끝에 1933년 Th. M.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정통개혁신학을 배웠다. 고봉은 다시 텍사스주 달라스에 있는 달라스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의 박사과정에 입학하였으며, 여기서 구약학을 전공하여 1935년에 신학박사 학위(Th. D.)를 취득하였다. 이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정식 구약학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었다.   고봉은 달라스신학교 유학시에도 외부와 단절하여 오로지 학교 기숙사, 강의실, 도서관, 식당에만 오가면서 학업에 매진하였다. 자신의 신학공부를 민족 복음화를 위한 일환으로 생각하고 외로움을 참고 인내하면서 형설의 공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당시 모세오경 저작설을 부인하는 역사비평학이 지배하는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의 풍토에서 모세5경의 모세저작설을 학위논문을 쓸 만큼 보수적인 신앙과 신학을 유학생활에서 실천하였다. 그가 달라스에서 공부했을 때 달라스는 세대주의자와 복음주의자 학자들이 함께 가르쳤다. 그러나 고봉은 이미 고향교회에서부터 신앙생활에서부터 목사안수와 신학석사까지 장로교회와 장로교신학교(평양신학교, 고배신학교,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획득하였기 때문 그는 세대주의나 자유주의에 타협하지 않고 역사적 개혁신학의 입장을 견지하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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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18
    여섯째 날(1), 땅의 생물의 창조   모세는 창조의 여섯째 날 톨레도트에서 하나님이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וַיֹּאמֶר אֱלֹהִים תֹּוצֵא הָאָרֶץ נֶפֶשׁ חַיָּה לְמִינָהּ בְּהֵמָה וָרֶמֶשׂ וְחַיְתֹו־אֶרֶץ לְמִינָה)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고 서술했다(1:24). 하나님이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신 사실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그런 사실을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을 반박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종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민’(מִינָ)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히브리어 창조 톨레도트에서 ‘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을 ‘종류대로’ 분류하는 단위이다. 하나님은 그가 종류대로 창조하신 ‘네페쉬 하이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다(1:22). 그러나 과학적 무신론의 영향을 받은 현대 생물학은 ‘민’의 의미를 무시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LUCA라는 원핵생물이 지구 생물 최고의 조상이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그것의 진화 계통과 상호 유연관계를 따라서 8계급의 ‘생물 계통수’를 그려놓았다.   ‘생물 계통수’에서 3역에 속하는 원핵생물은 당시 모세의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것들은 현미경의 발달에 따라 발견되었다. 창조 톨레도트 셋째 날에 창조된 식물계와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 창조된 동물계는 ‘생물 계통수’의 6계에서 2계를 차지한다. 6계의 나머지 4계도 모세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모세에 의하면 셋째 날에 만들어진 식물계에는 풀과 씨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 등으로 나뉘어 있고, 그 아래에 ‘민’이 있다. 동물계에는 다섯째 날에 만들어진 바다의 큰 괴물과 떼지어 사는 어류, 그리고 날개 있는 조류,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땅의 육축과 기는 것과 짐승등이 있고, 그 아래에 ‘민’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특별하게 ‘민’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와 같이 모세의 분류체게는 전체적으로 3계급밖에 없다.   현대 생물학의 분류체계는 생물 세포의 리보솜에서 단백질을 생산하는 RNA의 진화 계통에 기준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가 맨눈으로 본 분류체계와는 다르다. 분류의 틀이 같지 않다면, 수평적으로 ‘민’과 강을 비교하는 것은 합리성이 없다. 그러나 과학적 무신론과의 논쟁을 위해서 기독교는 창조론에서 ‘민’의 위치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신 생물의 종류는 ‘민’의 단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세의 분류체계와 현대 분류체계를 비교해보면, 현대 분류체계에서 모세가 보지 못했던 3역을 제외한 7계급에서 상위 3계급은 계>문>강이다. 그렇다면 ‘민’은 강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의 분류체계에서 ‘민’의 개념은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의 ‘종’(species)을 설명하는 데서 발견된다. 현대 생물학에서 종은 ‘교배하여 생식 능력이 있는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개체의 집단’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종과 종 사이에 생식장벽(reproduction barrier)이 있다는 것은 생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이다. 그리고 종에는 3개의 하위 계급(아종, 변종, 품종)을 둠으로써 종내(種內)의 개체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특성을 분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생물학적 종의 기준을 살펴보면, 그것은 ‘민’의 기준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생물학적 생식장벽은 하나님이 생물을 ‘민’의 단위로 번성하도록 만들어놓으신 장치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 결국 ‘민’이 현대 생물학의 분류체계에서 어느 계급에 해당하는 것일지라도 굳이 간여할 필요는 없다. 현실적으로 생식장벽이 있고, 그 증거로 ‘민’과 ‘민’ 사이에서 중간‘민’ 또는 중간종(中間種)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의 놀라운 다양성   그렇다면 다윈의 진화론은 종의 하위 계급에서 발현되는 다양성의 차이- 말하자면 종의 하위 계급인 아종, 변종, 품종의 변이를 진화로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그러므로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현대 생물학에서 생식장벽 현상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현실에서 발견되지 않는 중간종을 화석에서 상상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화석으로 발견된 생물의 경우에는 형태와 구조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개체의 집단을 기준으로 종을 분류하는데, 그런 분류방법에는 연구자의 주관에 따라 종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결함이 있다. 그래서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형태가 약간씩 다른 화석들을 모아서 중간종을 상상한 그림을 그려놓고, 중간종 화석이라고 우길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물질에서 자연발생한 LUCA가 오늘날의 생물계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생물의 계통수’가 사실이라면, 물질에서 생명이 자연발생하는 화학적 메커니즘(chemical mechanism)과 종간(種間)의 진화 과정에서 생식장벽을 뛰어넘는 중간종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메커니즘과 살아있는 중간종은 발견된 적이 없다. 창조론을 믿는 기독교는 바로 이 두 가지가 과학적 무신론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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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17
        다섯째 날. 진화 아닌 종류별 창조가 성경의 진리   모세는 창조 다섯째 날 톨레도트에서 하나님이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하시니(1:20), 물에서 번성하는 어류들과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새들이 종류대로 창조되었다고 서술했다. 기독교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네페쉬 하이아’(생물)를 종류별로 창조하셨다는 서술을 의심 없이 믿는다. 창세기에 의하면 ‘네페쉬 하이아’에 속하는 것들로는 이 구절에서 말하는 어류와 조류, 그리고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땅의 생물(1:24)이 있다. 그것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에서 식물은 ‘네페쉬 하이아’로 취급되지 않는다.   조르쥬 퀴비에는 고대 지층에서 발견된 생물 화석들이 동물군에 따라 해부학적 구조가 다른 것을 발견하여 고생물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라마르크가 좬동물철학좭(1809)에서 발표한 용불용설에 의한 진화를 맹렬히 비난했던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창조 이후에 생물의 종(種)들이 변화를 겪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대가 다른 지층에서 격변의 흔적을 다수 발견하고, 제임스 어셔 주교의 기원전 4004년 창조설을 강력 비판했다. 퀴비에가 죽은(1832) 뒤,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 유물론과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했다. 그것들이 합세하여 과학적 무신론으로 발전하면서 그 위세는 더욱 강력해졌고, 기독교는 그 세력에 밀려 점점 쇠퇴했다.   현대 고생물학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에 지배되어 지구의 모든 생물이 최초의 생명체인 원핵생물에서 계통을 따라 진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이 그려놓은 ‘생물의 계통수’를 보면, 바다의 물에서 화학작용으로 생겨난 하나의 원핵생물이 번성했고, 그 가운데서 진화한 다세포의 원생생물이 수중 동물과 수중 식물로 계속 진화했다. 수중 생물이 육지로 올라와서 육상 생물로 진화했다. 조류는 쥐라기 시대에 깃털 공룡이 진화한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생물은 진화하면서 새로운 종으로 분기하게 되고, 분기한 종은 새로운 공통조상의 계통을 따라 계속 진화한다. 그들은 지구 생물 최고의 공통조상을 LUCA라고 이름 지었다.   근대 생물 분류학의 원조 칼 린네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었다. 그는 생물을 식물과 동물을 2계 5계급(계〉강〉목〉속〉종)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은 1977년 칼 우스가 제안한 각 생물의 리보솜 RNA 염기서열에 따라 3역(진정세균역, 고세균역, 진핵세균역)으로 나누고 그 밑에 6계(진정세균계, 고세균계, 그리고 진핵세균역에 4계-원생생물계, 동물계, 식물계, 균계)로 분류한다. LUCA는 그동안 계통별로 8계급(역〉계〉문〉강〉목〉과〉속〉종)으로 진화했다.   기독교의 창조론은 과학적 무신론에 맞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문제는 LUCA가 물질에서 화학작용으로 발생했으므로 창조주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둘째 문제는 생물의 종류별 창조를 부정하고 진화론을 수용하는 경향이다. 기독교는 1860년 옥스퍼드 논쟁에서 패배한 이후 그 문제들에 대해서 전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아직도 ‘고대 히부리인들의 우주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아직도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독교를 말살하고, 그들이 우리우주의 지배자가 되려고 한다. 기독교가 그런 위기에 몰린 것은 과학은 계속 발전했던 데 반해, 기독교의 창조론은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틈새 사이로 진화론을 수용하는 기독교인이 늘어난 것은 기독교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기독교가 미래에도 존속하려면, 과학적 무신론이 사실이 아닌 허구적 가설임을 입증하는 한편,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과학적 사실에 맞게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근본주의자들처럼 교회에서 유신진화론을 비판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유신진화론은 기독교 창조론이 과학적 무신론에 승리하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다. 대적인 과학적 무신론을 내버려 둔 채, 괜히 믿음의 형제를 공격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만약 그들 중에 하나라도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마18:6, 막9:42).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계통진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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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6
  • [선교사 통신] 대통령선거 앞두고 코로나 위기 축소
      우리가 느끼는 바이러스의 공포가 애굽의 정예군대의 추격을 받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공포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그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우리의 아버지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믿음을 아버지께 보여 아버지의 하시는 구원을 함께 보기를 원한다. 탄자니아의 코로나 상황은 지금 알 수가 없다. “4월 10일을 기준으로 확진 32명에 3명이 사망했다”란 소식이후로 한동안 소식이 뜸하더니 4월 말 확진자 489명이라는 뉴스가 방송에서 흘러 나왔다.   그러나 대통령(John Pombe Magufuli, 가톨릭교)이 코로나 검사 결과에 문제제기를 한 이후로 전혀 코로나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지난 5월 중순 돌연 탄지니아에는 코로나가 종식 됐다고 선포를 했다. 짐작컨대 오는 9월에 있는 대통령 선거에서 현 마구풀리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코로나 대응을 자신의 치적으로 만들기 위해 코로나 사태를 덮으려는 숨은 의도가 있어 보인다.    모로고로는 탄자니아의 동부 내륙에 있는 지역으로 관문 도시인 다르 에스 살람에서 서쪽 내륙으로 약150km 떨어져 있다. 탄자니아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정은 지난 3월말부터 이곳 모로고로에 있는 언어 학교에 머물고 있다. 4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스와힐리어를 공부할 예정이다. 탄자니아는 반투족 계열 언어인 스와힐리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15년 전의 생존 스와힐리어를 진정한 제2의 모국어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또한 이곳 언어 학교에 와서 취미 생활이 하나 생겼다. 바로 Tumbili(툼빌리, 작은 원숭이 종류)에게 간식을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Tumbili들이 집 앞에 오래 머물러서 희성이, 희윤이가 오래 야생동물과 지내도록 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원숭이들에게 애정이 많이 생긴 것 같다.   탄자니아의 대중교통 수단은 크게 비행기, 철도, 고속버스, 소형 승합차 크기의 시내버스 다라다라(Daradara), 택시, 필리핀의 트라이시클, 태국의 툭툭과 같은 개념의 바자지(Bajaji) 그리고 오토바이 택시 등이 있다. 큰 도시들은 비행기나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고속버스도 좋은 차는 비싸고 안좋은 차는 조금 더 저렴하다. 에어컨은 없다. 다라다라는 탄자니아 서민들이 바자지와 더불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다라다라는 우리나라 15인승 크기의 차량에 요금 100-500실링(한화 50-250원)으로 매우 저렴하지만,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앉은 현지인들을 보면 이용할 엄두가 안 납다. 그래서 우리가정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바자지인다. 모로고로 읍내에서 언어 학교까지 콜-바자지를 이용하면 10,000실링으로 다라다라 보다는 많이 비싸지만, 단골 바자지 드라이버는 이용하는 내내 우리와 함께 있어서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 /김윤형·김경은 탄자니아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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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5
  • 명지병원, 네팔에 의료용품 지원
      바누시와 카투만두 인근의 머너하라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 진단키트 1,000키트를 보건복지부를 통해 각 병원에 배포 명지병원이 한국이주민건강협회와 아시안포럼 등과 함께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격고 있는 네팔에 마스크와 PCR 진단키트 등 코로나19 관련 의료용품을 지원했다. 이번에 네팔에 전달된 의료용품은 모두 2,000만원 상당으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사랑나눔기금에서 마스크와 장갑을 비롯하여 개인 보호구(PPE)와 체온계, 그리고 코로나19 진단용 RT-PCR 진단키트 등을 마련했다.   아시안포럼을 통해 중국 등지에서 구매, 현지로 보내져 최근 네팔 현지에서 배포된 마스크는 그동안 명지병원이 지속적으로 의료봉사활동과 보건소 건립 등의 의료지원을 해온 대표적인 의료소외 지역인 바누시와 카투만두 인근의 머너하라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됐다. 또 네팔 바누시로 전달된 보건소 직원용 보호구와 체온계 등은 바누시 산하 13개 구청을 통해 각 보건소로 고루 배포됐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진단용 RT-PCR 진단키트 1,000키트를 네팔 지원용으로 확보, 네팔 보건복지부 통해 각 국립병원에 배포될 예정이다. 현재 운항이 중단된 네팔행 항공편의 운항이 재개 되는대로 현지로 보내지게 된다. 네팔에서 PCR검사가 가능한 곳은 17개 국립병원 뿐이다.   한편 명지병원은 지난 2010년부터 네팔 의료소외지역을 대상으로 의료캠프를 설치, 무료진료활동을 펼쳐왔으며, 바누사랑 진료소 등 3개의 마을에 보건지소 건립을 지원하는 등 네팔의 의료문제 개선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네팔 현지에서 의료지원 사업을 돕고 있는 아시안포럼의 쉬디 찬드라 버렐대표는 “네팔은 지난 3월부터 국가 전체가 락다운 상태이며, 5월 중순부터 확진자가 급증하여 6월 16일 확진자 6,591명에 달한다”며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실제 확진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의료시설과 코로나 대응인력·장비·물품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며, 기본적인 마스크조차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명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이지희 팀장은 “10여년을 함께해 온 네팔의 친구들이 마스크조차 쓰지 못하고, 검사도 받기 힘든 안타까운 상황을 접하고 기꺼이 지원을 결정하게 됐다”며 “명지병원 직원들의 사랑과 응원으로 네팔 국민들이 코로나19를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19 확진환자들을 치료하는 명지병원 직원들이 환자와 의료진, 그리고 전세계 모든 인류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노래에 담은 코로나19 응원 영상을 제작, 발표했다. 명지병원 코로나블루치유지원단 주관으로 제작된 이 응원 영상은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다양한 직종의 병원 직원들이 참여, ‘Heal The World’라는 노래를 합창으로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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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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