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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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룩의 체험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 3:5)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나서 가장 먼저 모세에게 하신 명령의 말씀이었다. 여기에서 보여지는 장면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모세가 신고 있는 신발의 대조적 모습이다. 본래 거룩에 대한 히브리어는 ‘카도쉬’라는 말로 구별이나 분리를 뜻하는데, 하늘과 땅이 구별되고 선과 악이 구별되고 성(聖)과 속(俗)이 구별 되듯 하나님과 사람이 구별되는 그러한 구별이다. 그런데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 들어나는 하나님의 임재는 특정한 장소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두 발을 딛고 있는 땅으로 이어짐을 의미한다. 모세가 서 있는 그 땅,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그런 광야도 아울러 거룩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그곳으로 들어갈 때는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요구이다.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모세는 그동안 신고 다니던 신발을 벗어야 했다. 여기에서 신발은 여러 가지를 상징한다. 신발은 발이며 발걸음이며 걸음 거리이며 내가 현재 가고 있으며 또 앞으로 가려는 방향이기도 하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이제 그 일을 멈추겠다는 의미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길을 멈추고 방향에 대한 모색을 멈추겠다는 의지며 표명이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면서 그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창세 2:3) 레위기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11:45)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거룩함에 참여하기 위해서 가든 길을 멈추고 하려던 일을 놓고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할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진정한 ‘쉼’의 세계를 누려야 한다. 곧 쉼을 통한 거룩의 체험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거룩에 대한 특수성과 보편성의 양면적 특성을 생각할 수 있다. 특수성이란 구별과 분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보여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 현상이며, 하늘이 아닌 땅 특별한 땅이 아닌 누구라도 신발을 벗으면 들어올 수 있는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라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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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성
    2024-10-04
  • 세기총, 한반도 자유·평화·통일을 위한 기도회
      3만 한인선교사와 710만 재외동포 위해 기도 선교사를 위한 다양한 협력사업도 진행키로  사단법인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전기현장로)는 지난달 23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 위치한 비쉬켁 하나님의사랑교회에서 「제48차 한반도 자유·평화통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기도회」를 드렸다. 한반도 자유·평화통일과 북한 동포를 위해, 키르기스스탄의 복음화와 한인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사무총장 신광수목사의 사회로 드린 이날 기도회는 그동안의 한반도 자유·평화통일 기도회의 역사와 취지를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었으며, 준비위원장인 장금주총장(유라시아대학교)이 환영사를 전했다.  장총장은 “34년 전 척박한 중앙아시아 이곳 키르기스스탄에 들어와 이 백성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주님이 허락하신 다양한 사역을 진행해오고 있다”면서 “한국교회 특히 세기총이 이 곳에서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함께 드리게 됨에 감사드리며 이 곳이 통일을 여는 귀한 장소가 되길바란다”고 전했다.    대표회장 황의춘목사는 대회사에서 “세기총은 전 세계를돌며 통일을 위한 염원을 담아 함께 기도하는 모임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고, “공산국가였다가 다시 이슬람 국가가 되어있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오늘 우리의 기도가 통일과 함께 복음의 씨앗이 전달되는 귀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박예브게니 목사(하나님의사랑교회)의 대표기도가 있었으며, 비쉬켁 하나님의사랑교회 찬양대의 특별찬양 후 황의춘목사가 「통일이 되겠습니까?」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황목사는 “국내외적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통일은 어떻게 되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통일에 대한 회의론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면서, “그러나 한반도의 통일은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성경의 원리를 따라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황목사는 “통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 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통일이 될 것이다”며, “우리가 바로 그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사무총장 신광수목사의 인도로 △한반도 자유·평화통일과 북한 동포를 위해 △키르기스스탄의 복음화와 한인교회를 위해 △러·우 이·팔 전쟁 종식과 세계 평화를 위해 △3만 한인 선교사와 710만 재외 동포들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조일래목사(세기총 8대 대표회장)와 이창우회장(키르기스스탄 한인회)이 격려사를 전했으며, 오상택회장(세계한인무역협회)이 축사를 전했다. 황의춘목사가 장금주총장에게 감사장을 전달한 뒤 통일의 노래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를 제창하고, 조일래목사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한편 신광수목사는 “키르기스스탄은 다민족 국가로 고려인 1만 8천여 명을 포함해 2만여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기독교 신자 수가 1%에 불과한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이다.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곳이 존재하고 있으나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선교가 어려운 지역이며 이를 위해 한국교회의 기도의 도움이 절실한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은 날마다 커지고 있고 그렇기에 키르기스스탄이 선교적 요충지이다”면서, “세기총은 한반도 자유와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와 함께 어려운 선교지를 위한 기도와 다양한 협력사역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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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성
    2024-10-04
  • [신학] 오늘날의 신학동향 – 기독교 리더쉽
     리더는 선한 사업에 부를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미국은 아메리칸드림의 나라이다.카네기, 록펠러, 에디슨은 모두 가난한 흙수저 집안에서 자라나 꿈과 비전을 실현시켜 각각 철강왕, 석유왕, 발명왕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카네기는 일모작 인생에서 부를 일군 후, 이모작 인생에서 자신이 축적한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그 규모는 전 재산의 90%에 이른다. 그는 “부자인 채로 죽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성경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라고(딤전 6:17-18)”권고한다. 부는 쌓아두고 즐기거나 소망을 두는 대상이 아니라 선한 사업을 하고 풍성히 나눠주는 선행의 도구로 사용해야 할 하나님의 선물이다.   록펠러의 재산은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300조 원에 이르고 자선단체에 기부한 돈은 절반인 145조원에 이른다. 그의 재산은 2024년도 세계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의 263조원 보다 더 많다. 이재용삼성그룹 회장의 재산이 약15조원에 불과하다면 1937년에 사망한 록펠러의 재산은 아무도 넘볼 수 없다. 그 비결은 철저한 십일조 생활에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용돈 20불을 받으면 2불은 교회 십일조로 바쳤다. 닭이 계란을 낳으면 10개당 1개는 하나님 몫으로 떼어 놓았다. 자립심을 심어주기 위해 이웃집 농장에서 감자캐는 일을 거들게 하고 일당으로 1달러 50센트를 받으면 15센트는 십일조로 구분했다. 록펠러는 십일조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세상 복리법이 아니라 하늘나라 복리법으로 되갚아주신다는 진리를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깨달았다. 석유사업으로 손대는 곳마다 성공하게 되자 아예 십일조만 담당하는 직원을 고용하고 수입의 10분의 1은 무조건 교회에 바쳤다.   리더는 카리스마가 아닌 온화하고 신뢰감을 주는 태도  아이젠하워에 의하면 리더십이란 잘못된 것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고, 성공한 것에 대한 공로는 부하에게 돌릴 줄 아는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최고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전투과정에서 부하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반면 히틀러는 아무도 믿지 못했고, 모든 결정권을 혼자 행사했다. 그 결과 아이젠하워는 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미국 3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이젠하워는 공직에서 퇴임 후 전 재산을 기부하고 낡은 포드자동차 한대와 하루 세끼 식사가 가능한 정도의 재산만 남기고 여생을 보냈다. 피터 드러커는 “리더는 히틀러와 같이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리더는 아이젠하워같이 온화하고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여행에 동행했던 마가가 도중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마가는 선교에 따르는 어려움을 감내할 용기가 없었다. 이러한 마가의 나약함은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바나바는 바울이 반대했음에도 실패한 마가를 믿고 권한을 주었다. 그후 마가는 오랜 연단기간을 거쳐 다시금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공헌을 세우고 위신을 회복하였다. 사역이 마쳐질 때 바울은 다시 마가를 믿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딤후 4:11). 이와 같이 권한을 위임해 주는 리더는 사람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다.                                                                                                                      / 미드웨스트대학원 신학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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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30
  • [에레모스영성]모세의 불꽃 체험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여 양떼를 돌보는 일은 그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 인생을 걸고 어떤 의미 있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있던 시절, 불의의 사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궁여지책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광야는 도망이요 피신이며 낙담이고 절망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과연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가 장인의 소유인 양떼를 몰고 서쪽 광야를 지나 ‘호렙’이라고도 하는 시내산 기슭에 이르렀을 때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야훼 하나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난 것이다. 곧 불꽃 체험이다.  떨기나무는 3-5m 정도로 자라는 관목으로 아카시아과에 속하는 일종의 가시덤불이다. 이 나무는 주로 사막이나 광야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때로는 사막의 열기 때문에 쉽게 시들기도 하고 순식간에 타들어가기도 하다가도 비를 맞으면 겨우 기운을 얻어 되살아나기도 하는 그런 나무이다. 엘리야에게 쉼과 힘을 주었던 로뎀나무도 같은 종류라고 한다.   그런데 모세가 본 것은 한낱 떨기나무가 아니었다. 그 나무 한 가운데서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그 불꽃은 나무 가지를 태우지 않으면서도 그 불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신비스러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출애굽기 3:5) 모세의 불꽃 체험은 위(上)의 시각에서는 하나님의 일방적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며 아래(下)의 시각으로는 모세 자신이 경험한 영적 체험이다. 영적 체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또한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 자신의 어떤 상태와 맞닿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경우 체험자는 일정한 대상에 자신을 일치 시키게 되며 바로 그 상태에서 어떤 정념(情念/pathos)에 사로잡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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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성
    2024-09-30
  • [에레모스영성] 떨기나무와 모세
     양떼를 돌보던 모세가 처음 바라본 것은 떨기나무였다. 떨기나무는 광야 주위에서 쉽게 대할 수 있는 나무였으며 누구라도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일상의 흔한 나무였다. 잎사귀는 양들의 먹이가 되며 마른 가지는 밤에 불로 피워 추위를 막기도 하고 사나운 짐승을 쫓아내는 역할을 하는 해주기도 하였으나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사실 모세의 시선을 집중하게 한 것은 나무라기보다 불꽃이었다. 불꽃이 이는데도 떨기나무 가지가 전혀 타들어가지 않는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특이한 광경으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꽃이 일고 그럼에도 타들어가지 않고 가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즉 나무와 불꽃 사이에서 발생하는 장면을 통해 모세는 이를 내면화하며 자신과 하나님의 만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곧 하나님과의 일치를 체험하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정리하면 모세가 처음 본 것은 나무였고 둘째로 본 것은 불꽃이었으며 셋째로 본 것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도록 하는 과정이었다. 어린 시절 이집트 왕궁에서 파라오의 아들로 자랐고 한때는 동족애를 앞세워 무언가 민족을 위해 큰 꿈을 품기도 하였을 그였으나 그날의 모세는 전혀 달랐다. 한낱 목동이며 한낱 떨기나무에 불과한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 나무에 불이 붙고 불꽃으로 타오르는데 막상 탈만한 것들 없이도 계속 타오르는 불꽃이라면, 태워져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모세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런 깨달음 끝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는 그 음성을 바로 알아듣고는 대답한다. “예 말씀하옵소서, 제가 여기 있나이다.” 이어서 들려진 하나님의 목소리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거룩한 존재인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먼저 자신의 때 묻은 신발을 벗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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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성
    2024-09-30
  • [영성] 하나무브먼트서 「시카고의 아이들」 공연
    ◇ 하나무브먼트는 10월 9일과 12-13일 '시카고의 아이들'을 CTS홀에서 공연한다.    하나무브먼트(대표이사=이석만목사)는 하나님나라를 전하기 위해 2017년에 설립된 극단이다. 문화영역 가운데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긴 창작극을 만들고 있다. 대표이사 이석만목사는 “우리는 연극으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극단이다”고 소개했다. 또한 "크리스천이면서 극단에서 배우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며, "이 친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연극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공연을 통해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 선포에 중점 하나무브먼트는 2017년 7월 「결혼」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8로우 미」, 「춘향전」, <비밀번호>등의 연극과 「토브아일랜드」, 「아브라함」 등의 뮤지컬을 포함해, 지금까지 30여 편에 가까운 공연을 선보였다. 「아브라함」처럼 성경 이야기를 담은 공연도 있지만 또 일반인도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지향한다. 이들의 공연 작품들은 성경 말씀이나 사건들을 직접 다루지 않으면서,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자 노력한다. 하나무브먼트는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연극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도록 연출부터 배우까지 모든 단원이 예배하는 마음으로 작품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하나무브먼트는 연극·연출을 전공했거나 연기, 노래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 꿈과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 극단에는 서른여 명의 단원이 있다. 극작과 연기를 겸하고 있는 단원 이지웅씨는 "하나님께선 오래 혼자만 간직했던 뮤지컬 배우란 꿈을 사용하셔서 문화사역에 동참시켜 주셨다"며, "무대의 진짜 주인공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저를 포함한 모든 단원들이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또 연극으로 지역사회를 섬기고 전도의 기회를 마련하기도 한다. 하나무브먼트는 지역 주민센터와 연계해 공연을 하고, 일반인을 초청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한다. 공연을 본 어린이들이 노래와 춤을 따라 하고, 교회를 떠났던 사람이 신앙을 회복하는 일도 있다.   하나무브먼트의 뮤지컬 - 유니언    작품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 영광을 추구 극단 연출을 맡고 있는 최정니대표는 "아이들이 뮤지컬 OST를 부르고 춤추며 즐거워하고, 마음이 냉랭했던 한 어르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고백하는 걸 보며, 우리가 만드는 연극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나무브먼트는 다음 달 9일과 12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CTS 아트홀에서 창작 뮤지컬 「시카고의 아이들」을 공연한다. 지난 5월 전석 매진 사례를 만들며 관객들에게 감동과 눈물을 선사했던 작품이다.이 작품의 내용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로 불리는 무디의 삶과 활동을 다룬 스토리이다. 지난 8월, 김천소년교도소에 초청을 받아 소년수들에게 깊은 감동의 울림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140여 명의 소년수와 여성 재소자들은 뮤지컬의 내용에서 받은 큰 감동으로 인해 곳곳에서 훌쩍이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최대표는 “시대를 바꾼 위대한 부흥도 결국,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미칠 듯 간절한 사랑에서 시작됐다”며, “아이와 어른,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든 관객에게 그 하나님의 사랑이 말을 거시는 시간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 신학/선교/해외
    • 영성
    2024-09-27

실시간 신학/선교/해외 기사

  • 퀴어신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트랜스 페미니즘 (1)
    ▲ 김영한원장   미국 드류대 여성신학자 캐서린 켈러는 “트랜스 페미니즘”이라는 신학적 구상 속에서 성(sex)이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교차적이고 상호적으로 엮어져 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트랜스페미니즘은 필연적으로 교차성의 작업이다. 이 교차성 속에서 모든 것이 상호적으로 엮어져 있다(interwoven). 그 엮임이 선하든 악한 든 간에 말이다. 억압은 우리 영혼 깊이 파 들어오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자아상으로서 백인 이성애자 남성의 규범적 이미지들이나 식민지적 우월성 혹은 신식민지적 우월성의 규범들을 내면화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이 거짓된 규범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켈러가 과정철학의 과정(process) 개념을 성(sex)에 적용시켜 성이란 교차적이며 상호 엮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창조 질서인 남성과 여성으로서의 짝으로서 상호보완적인 생물학적 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은 여성이 아니고 여성은 남성이 아니다. 해부학적으로 남성이 여성이 되는 것도 아니고 여성이 남성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창조주에 의하여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교류는 서로 생물학적 해부학적 다름 속에서 교류할 수 있으며, 양성이 서로 자기의 성적 정체성을 지킬 때 비로소 교차성이 가능한 것이다. 창조 질서는 남성과 여성의 다름 속에서의 교류이지 남성이 여성이 되고 여성이 남성이 되는 교차성과 엮음이 아니다. 이는 창조 질서의 혼동이요 젠더의 혼란이다.   켈러의 트랜스 페미니즘은 인간의 성을 ‘그/그녀/그것’”(‘he/she/it’)으로 규정한다. “그것”이란 트랜스 젠더를 가르킨다. 성경적 질서로서의 성(sex)이란 남성과 여성으로 생물학적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남성이 여성이 되거나 여성이 남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여성이 혼합(混合)성(性)되는 것이 아니다. 성격(character)적으로는 남성 안에 여성의 모습이 있고, 여성 안에 남성의 모습이 있으나, 생물학적 본성으로는 인간은 창조의 질서대로 남성과 여성으로 지어지고 그렇게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 생물학적 본성에서 남성과 여성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남성과 여성이 서로 교차적으로 있도록 하신 것은 서로의 생물학적 다름 속에서 서로의 상호적 보완성을 허용하신 것이다.   켈러는 남성적 지배자적 자아로 파악되지 않는 현상태를 돌파하는 의미에서 “신적 트랜스 페미니즘”을 다음같이 주장한다: “신(神)은 고전적인 견해처럼 이 세계와 분리된, 초월적인 위에 계신 주님이 아니다. 이 신(神)은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선다는 역동적인 의미에서 초월적이다. 신적 트랜스 페미니즘이다. 그러나 신(神)의 초월하는 신비 속에서 우리 역시 초월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 즉 현 상태 (status quo)를 돌파하여 넘어서도록 부름 받은 존재이다. 이것은 내재하는 초월이다—초월하는 만큼 내재한다. 따라서 신(神)은 서구의 남성적 자아(ego)의 이미지—즉 분리되고 멀리 동떨어져 있고, 위에 있고, 지배적인 어떤 존재로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켈러의 트랜스 페미니즘은 과정철학의 사상을 인간에 적용하는 것으로서 과정 자체를 신적 과정으로 파악하여 범재신론적 개념에 얽매어 있다. 이는 성경과 정통적 역사적 기독교가 신앙하는 만물의 과정 안에 계시나 과정을 초월하여 이 만물의 과정을 주권적으로 이끄시는 인격적 초월적 하나님과는 다르다.   이러한 켈러의 신(神)은 남성과 여성을 초월하여 신적인 인격 존재로서 우리들에게 부성적으로 모성적으로 구속자로 다가오시는 인격적 초월적 하나님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을까?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증여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지 남성적인 지배자인 가부장적 신(神)이나 남성 지배자를 대적하는 모성적인 신(神)도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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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18-06-21
  • 조나단 에드워즈 부흥의 근원은 ‘경건’
    ▲ 조나단 에드워즈를 주제로 한 2018 교리와 부흥 콘퍼런스가 지난 18일부터 19일까지 예수비전교회에서 열렸다.   에드워즈의 특징은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추구한 부흥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에드워즈가 본 부흥의 본질   ‘2018 교리와 부흥 콘퍼런스’가 지난 18일부터 19일까지 양일간 예수비전교회(담임=도지원목사)에서 열렸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와 목양」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콘퍼런스는 성경의 교리에 충실한 교회의 부흥을 위해 예수비전교회가 개최한 것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청교도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과 목회를 주제로 진행됐다.   첫 번째 강의는 도지원목사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와 목양」을 주제로 진행했다. 도목사는 “에드워즈가 전통적인 청교도의 설교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성경본문을 간략히 해설하고 교리를 취하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했다”며, “그리고 본문에서 추출된 교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증하고 발전시켰으며, 확증된 교리를 삶에 적용함으로 설교를 마쳤다. 이러한 설교형식을 따르면서 에드워즈가 보여준 탁월함은 체계적이고 치밀한 논증에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에드워즈는 그의 결심문이 잘 보여주듯이 경건훈련에 힘썼다. 비록 초기에 결심문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너무 많이 의존하긴 했지만, 그가 무엇보다 경건을 엄격하게 추구한 점은 중요하다”며, “에드워즈의 목양에서 두드린점은 그가 노샘프턴 사람들에게 경건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목회초기 그는 그들의 도덕적 타락, 특히 젊은이들의 방종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일을 했다. 그는 ‘관용의 원칙’에 따라’ 주의 깊고 온화한 태도’로 그 일을 했는데, 그것은 나중에 훌륭한 결과로 나타났다. 에드워즈의 노력은 마침내 부흥을 가져오게 될 변화의 바람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도목사는 “에드워즈의 설교와 목양에서 두드러진 사실은 그가 남다른 근면과 열심으로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추구한 점이다. 그에게 경건과 진리의 지식은 결코 나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며,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에서 드러난 경건의 권위로서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힘있게 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의 목회에는 두 번에 걸친 괄목할 만한 부흥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록 그에게도 성경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서 나타난 한계가 있었고, 도덕적 결점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삶과 목회사역에서 일관된 자세로 진리와 경건을 추구했다”며, “이 점에서 그는 오늘날 목회자를 위한 중요한 본보기로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웅교수(총신대학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관」이란 주제로 강의했다. 이교수는 에드워즈의 부흥관을 개략적으로 살펴본 후, 에드워즈가 생각한 부흥의 본질에 대해 설명했다. 이교수는 “에드워즈는 부흥의 본질이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하게 드러나는 것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전진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고, 개인들은 진정한 회심의 역사를 경험하고 성령이 나눠주시는 거룩함에 동참하게 되면, 공동체적으로는 영적인 생동감을 풍성하게 누리고 다방면에서 가시적인 개혁이 이르게 되는 것으로 보았다”며, “에드워즈는 부흥을 더욱 더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부흥을 반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방편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콘퍼런스에서 조현진교수(한국성서대학교)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경해석」이란 주제로, 양낙흥교수(고려신학대학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경건생활」을 주제로, 박완철목사(남서울은혜교회)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를 주제로, 서문강목사(중심교회)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를 주제로 각각 강의했으며, 도지원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기초한 교회론과 목회철학 △성경의 교리에 충실한 교회의 부흥 △설교 실제를 주제로 세 차례의 특강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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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20
  • 내달 26일부터 ‘예수비전캠프’ 개최
    찬양과 말씀으로 무장한 예배 중심의 복음의 일꾼 세우는 캠프 새로 개편한 ‘예림픽’, 재미와 함께 팀웍과 공동체성 고양 의도   한국교회와 한국선교교육협회가 함께하는 ‘2018 여름 예수비전캠프’가 「메신져스(Messengers)」란 주제로 7월 26일~28일, 8월 2일~4일 두 차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실촌수양관에서 진행된다.   예수비전캠프는 재미있는 찬양과 말씀으로 무장한 예배로, 2박 3일간 총 5번의 예배를 드리며 다른 프로그램들은 그 예배를 위한 시간으로 기획된다. 둘째날 오후에 진행되는 ‘예림픽’은 2018년 여름 새롭게 개편한 프로그램으로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자발적 시스템의 레크레이션 시간이다. 그냥 의미없이 노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가 한 팀이 되어 진행하면서 재미와 동시에 교회의 팀웍, 공동체성의 고양을 의도한다.   이렇게 마음을 열고 드려지는 예배는 그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깊은 예배로, 보통 4시간 이상 드려진다. 이 시간 동안 방에 돌아가거나 지루해하는 청소년들은 지금까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참여했던 수많은 선생님들도 하나같이 “우리 교회아이들이 이럴 줄 몰랐다”고 증언하는, 재미와 은혜를 함께 누릴 수 있다.   대한민국 캠프의 1세대격인 예수비전캠프는 1998년 마석이 위치한 기도원에서 1,500여명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10만여명이 다녀간 캠프로 20여년간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다. 예수비전캠프는 청소년 전문캠프로 교회를 위한 캠프, 본질을 회복하는 캠프, 감동으로 끝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지역과 민족을 복음화할 일꾼을 키우는 캠프다.   예수비전캠프를 주관하는 한국선교교육협회의 대표 주금용목사(사진)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청소년들 역시 각자가 속한 지역, 학교, 교회의 자리에서 구별된 삶으로 우리 가운데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복음의 메신저로 거듭나게 하고, 개인만이 아니라 참여한 교회 모두가 그 훈련과 하나님 나라의 현장이 되어야 하기에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캠프는 주금용목사(새명성교회)와 이성은목사(꿈꾸는교회), 백성훈목사(이름없는교회), 김성준목사(서소문교회), 윤광원 트레이너(ICN Korea 이사), 주영광전도사(셀베이션 미니스트리 대표)가 말씀강사로 나서며, 찬양강사와 게스트로 민호기목사(찬미워십)와 바수니스트 김새미, 주영광전도사와 셀베이션워십, 아나운서 주세화가 함께 할 예정이다. ▲ '2018 여름 예수비전캠프'가 오는 7월 26일부터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실촌수양관에서 열린다.     캠프의 등록은 홈페이지(www. kcme.or.kr)에서 할 수 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전화(02-534-3360)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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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20
  • GMS, 25일부터 세계선교대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세계선교회(GMS, 이사장=김찬곤목사)는 지난 7일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GMS선교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는 25일 대전 새로남교회(담임=오정호목사)에서 개최될 세계선교대회의 의미와 비전을 공개했다. 이번 GMS 세계선교대회는 2003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대회로, 7년만에 열리는 세계선교대회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선교를 위한 동력을 구축하고 이를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될 예정이다.   「G-브리지」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대회는 25일부터 27일까지 3박 4일간 진행되며, 7년 이상 사역중인 선교사 700여명을 포함하여 1,8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대회는 새벽예배와 저녁집회, 주제강의, 청년·대학생·MK·다음세대 선교대회 등으로 진행되며, 주제강의는 세계선교계의 거장인 조나단 봉크 박사가 「선교와 돈」을 주제로 강의할 예정이다.   GMS 이사장 김찬곤목사는 “선교계의 변화없이는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준비했다. 다양한 전략과 지혜가 선교를 감당할 사역지에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협력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이번 선교대회는 단순히 선교사들의 영적 부흥과 사역현황을 보고하는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교지에 부어주신 은혜와 영성이 파송교회는 물론 이 땅의 모든 선교동역자들에게도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고 밝혔다.   GMS 본부 총무인 조기산목사도 “그동안 개교회가 중심이 되어 선교사역이 이루어지면서 사역지에 중복투자가 이루어지거나, 장기적인 투자가 축소되는 문제가 있었다. 대회 둘째 날 같은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들이 14개 지역별로 모여 사역을 공유하고, 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선교전략을 투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선교대회를 통해 13개 영역으로 사역을 분류하여 선교네트워크를 만들고 축적된 노하우를 집대성 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GMS 선교총무인 조용성목사는 “각 지역과 사역분야마다 환경과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메뉴얼도 각기 달라야한다. 기존에는 본부차원에서 전략서가 나왔지만 이번엔 각 지역 선교부에서 해당지역의 사역특성이 반영된 전략서를 도출할 것이다”며, “대회 개최 전 정보전달용으로 발간해 대회가 끝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전략서가 아닌, 미래를 제대로 대비할 수 있는 전략서를 만들어 선교사들이 가이드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한다. 대회 후엔 타 교단 선교부 및 선교기관과 전략을 공유해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들어 심해지고 있는 선교사 추방에 대한 출구전략에 대한 고민도 밝혔다. 김찬곤목사는 “선교사 추방문제와 선교사 과포화상태로 인한 어려움 등 지역마다 당면한 상황들이 달라 이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2~3년 사이 중국에서만 GMS 파송선교사 50여 가정이 추방당했다. 이 과정을 모니터링한 자료를 토대로 선교지 재배치 등 향후 전략을 세워나갈 예정이다”며, “또 외국인 거주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대한민국 또한 선교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선교사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선교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국내선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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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12
  • 탄자니아 사역비자 갱신 난항
    ▲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안디옥성경대학학생들이 4월 7일에 졸업식을 마쳤다.   잔지바르 국회가 열리고 법원장이 국회에 출석하여 보류  지난달 17일부터 1개월간 무슬림의 라마단 금식기도 시작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사역중인 송규영·오효숙선교사는 지난달 17일부터 시작된 라마단 금식기간에 에버그린학교 소식과 교회개척 상황을 전했다.    송선교사는 “주민의 98% 이상이 이슬람인 잔지바르는 지난 5월 17일에 라마단 금식기도가 시작되어 1개월간 진행이 되고 있다”며, “무슬림들은 이 금식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저들은 낮 시간 동안 금식하고 저녁 해가 지면 음식을 먹기 위해 황급히 집으로 귀가하여 굶주린 배를 채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생활 때보다 훨씬 많은 음식물이 시장에 넘쳐나고 대단한 축제의 분위기를 느끼며, 밤에 식사를 한 후에는 밤 늦은 시간에 코란 경전을 읽는 소리를 회당의 스피커를 통해서 크게 울려 내보내고 있어서 잠을 이루기가 어려운 밤을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 나라에서 선교하기 위해서 거주비자는 2년마다, 사역비자는 1년마다 비자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 곳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 올해 2월에 사역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비자갱신 신청을 넣었는데 학교에서 코란은 가르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트집잡아 비자발급을 지연시키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비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 법원에서 이 문제가 계류 중에 있는데 문제를 크게 이슈화해서 한국선교사들 전체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겠다고 하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현재 잔지바르 국회가 열리고 있고 법원장이 국회에 출석하고 있어 보류 중에 있는데 국회가 끝나는 6월 초순에 결정이 될 예정에 있다”고 알렸다.   특히 에버그린 학교 사역에 대해 “학교 운영을 위해 매년마다 허가장을 갱신해서 받아야만 다시 운영할 수가 있는데 많은 금액의 세금을 납부해야만 허가를 다시 받게 된다. 우리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들은 코란을 가르치지 않고 복음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정부와 교육부에 찍혀서 미움을 많이 받고 있다”면서, “올해도 갱신 허가 신청을 내고 정해진 금액을 은행에 납부하고 영수증을 다 첨부해서 수속을 마치고 나중에 갱신 허가증을 받으러 교육부에 갔다. 그런데 돈을 부족하게 냈다고 추가 금액을 더 내라고 하는 말을 듣고 황당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화가 났지만 마음을 다스리고 추가금액을 은행에 납부하고 교육부에 왔는데 자기가 말한 금액보다 덜 냈다고 또 다시 나머지 금액을 더 내고 오라는 것이었다. 더운 날씨에 여러 차례 오가다 보니 땀은 비 오듯 하여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그래도 참고 다시 납부했다”며, “다음에 갱신허가증을 찾으러 다시 갔는데 역시 아예 허가증을 만들어 놓지도 않았고 그 뒤에도 다시 오라는 날짜에 가기를 2번 더 한 후에 겨우 허가증을 받았다”전했다.   활발히 운영중인 잔지바르 안디옥 성경대학(ZABC)의 소식도 알려왔다. 송선교사는 “지금 우리 학생들은 모두 1년 5개월간의 모든 공부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 시험을 좋은 성적으로 통과하여 4월 7일에 졸업식을 마쳤다”며, “우기철이 시작되어 졸업식 날 아침에 장대비가 내렸다. 졸업식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 되어 주님께 기도했는데 그 후 1시간 이내에 비가 그치고 계속 날씨가 좋아져서 부족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약 30키로 떨어진 졸업식이 있는 음파파 교회로 가서 졸업식 플랜카드와 풍선을 장식하고 졸업생들에게 가운을 입히고 졸업식을 진행하였다. 9명의 졸업생 모두가 DIPLOMA 졸업장을 받고 감격하며 기쁨의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오효숙선교사는 “지난번 사기 맞았던 교회 건축부지 금액을 기적적으로 돌려 받았다”며, “ 돌려받은 금액에 추가 금액을 더하여 원래 건축부지 주인을 찾아 부지 구입을 마쳤다. 건축부지 구입과정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았으면 공사가 이미 끝났을텐데,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가 대우기철이 시작되면서 공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또 “연일 장대비가 내려 거리 곳곳이 물바다가 되지만 간간이 날씨가 좋은 날 동안에 공사를 진행하여 기초공사를 마쳤다. 현재는 우기철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서 벽돌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건축이 방해 받지 않도록 계속 기도 부탁 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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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07
  • [오늘의 신학동향 - 교회사] 칼빈의 성경의 권위로서의 자증성에 대한 이해 (끝)
    ▲ 양신혜교수    칼빈은 자증성을 성경의 내용인 독트리나, 진리 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시켜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그 자체로 진리이며, 신적 위엄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객관적인 신적 권위의 토대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를 칼빈은 그의 히브리서 4장 12절 주석에서 “결국 말씀이 인간들에게 항상 그 힘을 분명하게 드높이지 않았을 때조차 항상 어떤 형태로든 그 자체 안에 내재되어 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부사 “어떤 의미에서 또는 어떤 형태에서”로, 칼빈은 성경이 지닌 객관적인 신적 권위를 ‘비유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이 문장에서 칼빈은 성경의 객관적 힘이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으므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로써 성경의 권위를 수용함에 있어서 자유공간을 허락한다. 그렇지만 이 자유공간에서도 성서의 권위는 의문시되지 않으며, 성서가 지닌 자증성의 힘은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그들의 의지, 믿음과 삶을 판단하고 점검하는 방법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은 “그(하나님)는 혼의 모든 부분들을 관통하기 위해서 생각들을 점검하고 욕망을 간파하기 위해서 짧게 말해서 심판자로 증거하기 위해서 그의 말씀 안에 이러한 힘을 불어 넣는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칼빈은 성경에 내재된 신적 본질을 ‘힘’으로 이해하여, “진리의 힘”, “주제의 위엄” 또는 “말씀의 빛”으로 표현하여 성경이 지니는 객관적 진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 내재된 진리의 힘은 독자를 텍스트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서 텍스트의 진리의 힘이 주체로서 독자를 부르는 역할을 수행하며, 독자는 그 부름에 응답을 할 뿐이다. 이로 인해 텍스트와 독자와의 인격적 관계가 형성된다. 성경에 내재한 진리의 힘은 성령의 개입으로 독자를 텍스트의 세계로 인도한다.    다시 말해서 읽기의 객관적 대상인 성경 안에 내재된 힘이 성령의 개입으로 독자 앞에서 그 텍스트의 세계를 펼침으로써 그 힘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는 칼빈이 하나님의 위엄이라고 표현한 것과 동일하다. 이로써 성경은 읽기의 대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을 경험으로 승화되어 텍스트의 세계가 우리에게 펼쳐지게 된다. 이 세계가 바로 이 성경의 자증성을 “우리에게” 펼쳐지는 진리의 세계로 이해한다.   칼빈은 베드로후서 1장 19절에서 성경을 어두운 곳을 밝히는 빛, 즉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비추는 빛으로 표현하여 성경에 내재된 힘의 보편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빛은 단지 믿는 자들에게만 효력이 발생하는데,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단지 밀폐되어 어둠에 갇혀 있는 책일 뿐이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께 “순종 가운데 모든 인간에게 믿음의 눈이 열리며 각자의 경험을 통해서 성경이 ‘빛’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를 깨닫게 된다. 이 “빛”은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높은 근원, 곧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우리가 확신하게 되는 그 무엇이다.    이는 성령의 작용으로 깨끗하게 정화된 지식으로, 어떤 이론도 필요치 않은 지식이자 확증이다. 칼빈은 성경의 자증성을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이 성경 안에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실존적 경험에 근거한 그 지식을 다양한 논증들 가운데 최고의 증거이자 논증으로 다른 어떤 다른 어떤 논증보다 더 안심하게 머물 수 있는 그 무엇으로 간주하였다.      요약하면, 칼빈은 성경의 자증성은 성경해석의 출발점으로 여겼다. 이는 “신앙의 유비” 와 동일한 의미에서 이해된다. 이 원칙은 성경의 세계를 우 리에게 열어주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인식하도록,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을 확증하도록 이끈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칼빈은 인간의 이성이 신앙의 세계 뒤편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성령을 통한 인간의 순수한 이성에 의한 성경해석의 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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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07
  • [오늘의 신학동향 - 교회사] 칼빈의 성경의 권위로서의 자증성에 대한 이해 (3)
    ▲ 양신혜교수   칼빈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논쟁에서 성경의 신적 권위는 바로 하나님의 진리와 연결시켜 교회의 권위보다 성경의 권위가 우위에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난 후에 어떻게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는지의 문제로 넘어가는데, 칼빈은 이를 자명한 원리로서 어떤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서술하였다. 이러한 확실한 원리의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 그리고 억측에서가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높은 근원, 곧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한 확신에 근거한다. 이 성령의 내적 확증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인식의 내용은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인간의 사역을 통해서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이를 칼빈은 성경의 읽는 독자가 “하나님의 위엄”을 응시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칼빈은 성경의 권위를 두 가지 관점에서 서술한다. 첫째, 하나님이 성경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인간의 실존적 관계를 암시한다. 둘째, 성경의 가르침이 하늘에서 왔다는 것은 성경이 지니고 있는 객관적인 신적 권위를 내포한다. 이것을 칼빈은 하나님의 위엄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칼빈은 무엇을 확실하게 붙들어야 하는 지를 설명하는데, 그 내용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어 ‘자증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확실하게 붙들어야 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내적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확고하게 성서를 신뢰한다”는 사실과 “성경은 자증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성경에 대한 신뢰성과 성령의 내적 가르침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문장에서 성령의 역할을 가르치는 자로 비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뒤따라 ‘자증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가 나오는데, 이 부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접속사(et)와 연결된 부사(quidem)이다. 성령의 가르침을 받은 자는 “확실하게 성경에 안주”하게 되는데, 이를 부연해서 설명하면, 바로 “성경은 자증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성령의 내적 확증의 결과로 성경에 안주하다는 것과 자증성을 동일한 의미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달아 접속사(neque)로 설명하는데, 이는 자증성을 포함한 부분장과 그 뒤에 오는 문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문장을 부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성적 근거들에 의한 논증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자증성의 특징을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난 후, 마지막에 나오는 부사(tamen)는 ‘마침내 또는 결국에’라는 의미로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확실성은 성령의 증거가 뒤따라야 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성경의 자증성은 동사 ‘안주하다’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 자증성은 이성적 근거에 의한 논증을 넘어서는 사건이다. 셋째, 내적으로 일어나는 성령의 사역으로 인간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이로써 성경이 자증한다는 것은 성령의 내적 가르침을 통해서 얻게 되는 그의 선물로써, 강요 I.7.4에서 언급한 내용, 즉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경 안에서 말씀한다는 것과 연결하여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그 자체로서 독자에게 말을 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말을 건넴’의 목적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도록 이끄는 데 있으며 이는 성령의 간섭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의 자증성은 성서의 어떤 객관적인 신적 본질을 형성하는 근거가 아니라 성령의 간섭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 “신적 호흡”으로 이것이 바로 다른 일반 서적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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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18-05-23
  • [오늘의 신학동향 - 교회사] 칼빈의 성경의 권위로서의 자증성에 대한 이해 (1)
    ▲ 양신혜 박사 성경의 신적 본질을 담보하는 객관적 증거로서의 자증성(autopistos)은 개혁교회의 교리로서 그 자리매김을 하여왔다. 하지만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에는 성경의 자증성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단지 성경의 권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교회의 증언에서 감동과 권유를 받아 성경을 높이 평가하며 존경하게 될 수 있으며, 그 내용이 천상적이며, 그 가르침에 효력이 있으며, 그 문체가 숭엄하며, 그 모든 부분이 서로 일치하며 그 전체가 광대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사람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을 완전히 밝혀 주며, 그 밖에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점들이 많으며, 전체가 비할 나위 없이 완전해서 이 모든 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풍성하게 증명하는 논거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틀림없는 진리와 하나님에게서 온 그 권위가 우리가 완전히 깨달으며 확신하는 것은, 성령이 내면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말씀으로 또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첫째, 교회의 증언이 성경의 권위를 깨닫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는 성경의 권위를 깨닫도록 인도하는 교회의 역할을 명시한 것이다. 둘째, 성경의 권위를 증거하는 성경 자체의 객관적 논거들을 제시한다. 이것들은 이미 칼빈이 그의 강요 I.8에서 언급한 것으로, 이 증거들을 개혁교회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성경의 객관적 권위를 나타내는 증거들이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 확증된다는 점이다. 이는 성령의 내적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그리고 말씀과 더불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성경의 신적 근거로서의 자증성이 ‘어떻게’ 성령을 통해서 내적으로 확증에 도달하게 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외에 다음의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루터는 성경해석학의 원리로 ‘성경은 스스로 해석한다’는 원리를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칼빈은 루터의 해석학적 원리를 그의 문헌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그렇게 한 것일까? 그렇다면, 칼빈은 무엇을 성경해석의 원칙으로 삼은 것일까?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칼빈이 성경의 신적 권위를 증명하기 위해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그리스어 자증성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단어는 루터의 문헌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쯔빙글리나 부처의 글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용어가 칼빈의 성경해석의 독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리라 사료된다. 왜 칼빈은 루터의 ‘성경은 스스로 해석한다’는 해석학적 원리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증성’이라는 그리스 단어를 사용하여 성경해석의 문제에 접근한 것일까? 이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선, 칼빈의 자증성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문헌을 분석하여 자증성이라는 의미를 칼빈이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분석을 토대로 칼빈이 자증성을 성경과 연결하여 자증성이란 단어를 강요 최종판에서 성경과 연결하여 사용하는데, 그 경우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칼빈의 자증성의 의미가 해석학의 출발점으로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설명하고 해석학적 원칙으로의 그 활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토대로 칼빈의 자증성이 지닌 해석학적 의미가 지금 이 자리에서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으며, 어떻게 성경해석에 적용될 수 있을지를 서술하면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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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1
  • [오늘의 신학동향] 르네 지라르의 영성 (끝)
    ▲ 정일권 박사  지라르가 미메시스 그리고, 폭력과 성스러움에 깊이 천착하게 된 이유는 그가 2차 세계대전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지라르는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대해서 말하면서, 지라르는 당시의 경험이 얼마나 자신의 이론과 사상에 그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당시 그는 한 젊은 불가지론자였는데, 한편으로는 파시즘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전염적인 매혹에 사로잡히는데 가장 강하게 저항하는 젊은 기독교인 노동자 그룹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는 이후 자신의 종교적 헌신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라르는 이후 먼저 자신의 연구의 결과로 지적인 회심을 하고, 이후에 좀 더 종교적인 회심을 하게 되는데, 1959년 부활절에 그는 기독교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10세부터 36세 때까지 교회와는 관련이 없었고 정치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좌파 사상가였던 지라르는 회심했다. 지라르는 서구정신사와 인문학 지평에서 기독교 복음을 변증하는 기독교 문화철학자이자 사상가다. 신화는 집단적 폭력과 그 희생양을 은폐하는 ‘거짓말’이며, 기독교 복음은 그 은폐된 희생양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희생당한 자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제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제 연구결과가 나를 이렇게 인도했기 때문”이라는 실존적 신앙고백을 하면서, 신비로운 회심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저의 연구가 저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것이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뒤섞여 있다”고 그는 말한다. “위대한 문학작품이 실제로 저로 하여금 기독교로 회심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지라르는 “기독교가 여전히 가장 생산성 높은 인문학”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지라르는 “어떤 인간도 희생양 메커니즘을 계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복음서는 “신화의 파괴”라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지적인 여정을 통해서 결국 유대-기독교적 문서들로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현대주의자들의 정통주의가 원했던 것처럼, 유대-기독교적 텍스트에 적대적이었다. 그는 현대에 와서 유대-기독교적 텍스트들이 점차적으로 현대철학과 모든 “인간 과학들”에게 낯설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신화들 보다 더 낯설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폭력적으로 추방되고 배제된 유대-기독교적 텍스트들을 정당하게 복권시켜 평가하고자 한다. 르네 지라르는 오랫동안 미국 스탠포드 대학 기념교회에서 교회봉사자로 섬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탠포드 대학 기념교회는 이 대학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축학적으로도 아름다운 교회로, 미국 서부에서 가장 초기의 그리고 가장 유명한 초교파적 교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2016년 1월 이 스탠포드 대학 기념교회에서 많은 학문적 친구들과 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르네 지라르의 추모예배가 이루어졌다.  스탠포드 대학의 부고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평가로 지라르를 추모했다:  “르네 지라르는 우리 시대의 주도적인 사상가들 중 한 명으로서 유행하는 정통주의들과 ‘주의들’을 무시한 도발적인 현자이며 인류 본성, 인류 역사 그리고 인류 운명에 대한 담대하고 광범위한 안목을 제공했다....지라르는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쿠체와 노벨 수상자 후보로 거명되었던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구조주의자들, 후기구조주의자들, 해체주의자들 그리고 다른 진영들의 동료들에 의해서 향유된 유행적이고 (그리고 자주 찰나적인) 특징을 소유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들은 최신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었고, 언제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르네 지라르의 사유는 기독교적이면서도 영성적이다. 모방적 욕망과 경쟁으로 인한 불타는 질투, 증오, 르상티망에 대한 그의 미메시스 이론은 갈등과 폭력의 원인을 가장 현실적으로 쉽게 설명하는 갈등이론으로서 국제적으로 그리고 학제적으로 평화이론과 평화운동에 폭넓게 적용될 뿐 아니라, 기독교 신학내의 영성이론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르네 지라르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초대 교회의 사막의 기둥성자들의 기둥들이 모방적 경쟁으로 인해 점차 높아져갔다는 흥미로운 비유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만큼 기독교 성자라 할찌라도 모방적 욕망과 경쟁적 욕망의 장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지라르는 프랑스 여류 사상가 시몬 베유의 사상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적고 있는데, 시몬 베유는 사회적 중력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 지라르의 사유가 한국 목회와 신학 분야에도 많이 소개되기를 기대한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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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1
  • [오늘의 신학동향] 르네 지라르의 영성 (3)
    ▲ 정일권 박사 지라르에 의하면 복음서는 또 하나의 신화가 아니라, 신화를 죽이는 텍스트다. 지라르는 마침내 신화의 수수께끼를 ‘해독’했다.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도 자신의 구조주의 인류학의 관점에서 신화를 해독하려고 했지만, 지나치게 신화를 언어구조주의적으로 파악하다보니 신화가 은폐하고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알아채지 못했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신화는 곧 언어다. 그는 신화를 언어학의 관점에서 해독하려고 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의 강한 영향으로 언어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오이디푸스신화를 해독하려고 했지만, 오이디푸스를 지라르처럼 은폐된 희생양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라르의 저서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변증>의 2부의 제목은 「신화의 수수께끼」이며 3부의 제목은 「십자가의 승리」이다. 지라르에 의하면 기독교는 ‘신화의 계몽’이며, 신화가 은폐하고 있는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한 ‘계몽’이기도 하다. 신화가 집단폭력의 ‘수동적인 반영’이라면, 유대-기독교는 희생양과 모방적이고 폭력적인 군중을 만들어내는 집단 장치에 대한 ‘적극적인 폭로’다.  지라르는 신화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한다. 「복음서는 신화적인가?」라는 논문에서 지라르는 “세계의 신화들이 복음서를 해석하는 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복음서가 신화들을 해석하는 방법을 계시한다”고 말한다. 옛날부터 이교도 옹호자들은 복음서의 장면과 신화의 장면들의 ‘유사성’을 내세워 ‘기독교의 특이성’을 부정해 왔다. 디오니소스, 오시리스, 아도니스와 같은 반신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상케 하는 집단 형벌을 받았다. 이런 폭력은 사회의 무질서가 절정에 달하거나 질서 자체가 아예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데, 그 뒤에는 일종의 ‘부활’인 그 희생양의 당당한 재등장이 이어진다. 이 희생양은 다시 질서를 세우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신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신격체로 격상된다.  창세로부터 은폐되어온 희생양 메커니즘에 관해 “이런 인류학적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십자가가 꼭 필요했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이다. 십자가만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내림으로써 희생양의 무고함을 드러낼 수 있다”고 사회학적 초월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참된 초월을 성령론적 차원에서 찾는다. ‘십자가의 해석학’이 ‘신성한 폭력’을 폭로하고 전복시키고 치유한다. 지라르에 의하면 박해의 문서로서 신화는 희생양에 대한 폭력을 은폐하고 있다. 복음서는 이러한 박해의 문서인 신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복음서는 또 하나의 신화로서 읽혀지기도 한다. 박해의 문서인 신화와 계몽의 문서인 복음서가 구분 없이 이해되어왔다. 지라르에게 있어서 복음서는 신화의 문자적인 정반대다. 십자가에 달리신 자의 수난에서는 신화와 정반대의 것이 발생했다. 예수의 ‘처형의 신성화’는 발생하지 못했다.  지라르는 “나의 작업은 십자가의 인류학을 위한 하나의 노력이며, 이는 정통 신학을 복원시키는 것이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모든 연구들은 십자가의 인류학을 제시함으로 신학자들을 돕는 것에 헌신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 “종교적 상대주의는 다른 상대주의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형이상학적 확신이다”고 그 동안 풍미했던 종교다원주의와 문화상대주의적인 담론들을 비판한다. 어거스틴의 사상과 지라르의 분석 사이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는 자신이 말해야 하는 것의 3/4이 이미 어거스틴의 사상에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 지라르는 자신의 이론의 가장 잘 알려진 핵심들은 이미 성경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자신은 ‘일종의 주석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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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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