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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3. 초지일관한 청교도적 회개 부흥 신앙 사상   고봉은 당시 캐나다에서 함흥으로 처음으로 파송된 영재형 선교사의 청교도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함경도 지역에 파송된 캐나다 선교사들은 자유주의적이었다. 영재형 선교사는 뒤늦게 파송된 진보적 선교사 윌리엄 스코트(William Scott, 1886-1979)와 심각한 신앙적 갈등을 겪었고, 이에 대해 선교부에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그런데 선교부는 영재형 선교사를 신앙의 불모지인 일본으로 좌천 파송하기에 이르렀다. 고봉은 일본으로 건너간 영재형 선교사를 따라서 온 가족이 일본으로 떠났다. 고봉은 일본 고베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이 때부터 영재형 선교사와 선교활동을 함께 시작하였다.(김동화, 『한국의 예레미아 김치선 박사를 추모하며- 나에게 있어 영원한 것』, 서울: 기독교 연합신문사, 1998, 45-46.) 그는 보수적 신앙을 가진 양아버지 선교사를 평생 섬기면서 그로부터 복음 사역자로서의 인격과 영성을 성실하게 닦았다.   고봉의 신앙의 열정은 10살 때 마을 서당 훈장 김응보 옹의 영향 아래 신앙으로 입문 후 흔들림없이 초지 일관하였다. 16세 때 영재영 선교사를 만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실천하는 정통개혁신앙의 훈련을 받으면서 20세에 3.1운동에 참여하여 1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출옥 후 영생중학교에서 학업을 끝낸 후 연희전문을 거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엄재형 선교사의 권유에 따라 일본 고배신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목사 안수 후에는 미국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와 달라스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다시 고베와 동경 신주구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였다. 그리고 해방전 귀국하여 남대문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대한 신학교를 설립운영하고 창동교회 개척, 한양교회 목회, 송파 중앙교회 개척과 300만 부흥전도단 창립으로 초지일관하였다. 고봉의 독특성은 최초의 미국 구약학 신학박사를 한 그의 학문적인 논리보다는 눈물로 청중의 영혼과 마음에 호소하고 감동을 주는 초지일관하는 청교도적인 신앙의 열정이었다.   고봉은 기도의 사람으로 3백만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민족 복음화운동에 앞장 섰다. 그는 6.25 한국전쟁 이후에 나타난 민족의 위기를 직접 체험하면서, 한국의 예레미아로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민족의 파수꾼이 되어 한(韓)민족과 한국교회가 범한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그의 부흥설교의 주제는 회개, 부흥, 성령이었다. 그는 눈물로 기도하고 전국을 돌면서 전도했다. 해방 후 혼란한 정국 속에서 이 민족이 살길은 오직 기도, 회개 그리고 기도뿐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는 단지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부흥운동이 아니라 민족을 살리기 위한 한국교회의 내면적 성장을 위하여 부흥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그의 교회 부흥운동도 말씀에 입각한 회개 운동이었기 때문에 개혁신앙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를 창립하고 명예회장으로 계시는 김명혁은 김치선의 설교와 열정에 대해 다음같이 피력한다. “김치선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마다 회개와 은혜 사모의 메시지와 함께 전도의 메시지를 전하시곤 했습니다. 2만8천 여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조건 왕십리로 달려갔습니다. 왕십리 들판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전도와 목회를 계속했습니다.... 모두가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은혜와 감동과 도전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김명혁, “추천사: 한국교회에서 다시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와 같은 영적 거목이 나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in: 최선,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12-13.) 당시 한국 기독교 인구가 30만 명 정도 되고 한국 인구가 3천만 명 정도 되었을 때 1/10이라도 전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3백만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민족 복음화운동에 앞장섰다.   4. 사회개혁적 애국적인 눈물의 신앙 사상   고봉은 일제하에서 투철한 애국심을 가지고 사회개혁에도 적극적이었다. 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한 죄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 정도 옥고를 치렀다. 그는 하나님 나라와 역사의식이 분명하였다.   그의 애국 사상은 1935년 그가 고베에서 고베중앙교회(神戶中央敎會)를 개척한 목회에서 나타났다. 특히 이 교회 교인들은 모두 주일마다 한복(韓服)을 입고 교회에 나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획기적이고 용기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 대부분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하여 될 수 있으면 한복을 입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봉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이처럼 당당하게 한복을 입고 교회에 출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담임목사가 그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신사참배 강요와 일본의 내선일체(內鮮一體) 강요로 나타났다. 평양신학교가 신사참배 반대로 자진 폐교했다. 일본 내에서도 한인교회에 대한 일체의 탄압이 심해졌다. 그가 1938년 청빙받아 간 동경에 있는 신주쿠중앙교회(新宿中央敎會)의 강단에서 일본어로 설교해야 한다는 내선일체 규정을 준행하지 않고 한국어로 설교했다는 이유로 일본인들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찍힐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40년 경찰에 사상범으로 구속 연행되어 체포되어 여러 달동안 감옥살이를 하게되었다. 신앙이 좋다는 조선인이 목사가 한국어로 설교했다고 경찰에 밀고했던 것이다. 그는 신주쿠중앙교회(新宿中央敎會)에서 개척한 메구로(目黑)교회에서 설교할 때에도 언제나 눈물로 기도하며, 눈물로 설교하였다고 한다. 그의 눈물은 단지 감정의 눈물이 아니라 민족의 독립과 미래를 염려하는 애국자와 선구자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귀중한 눈물이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살면서 선진국을 경험한 고봉은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를 위한 미래의 소망을 다른 곳 아닌 복음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하나님 말씀만이 민족의 아픔을 달래주고 민족의 미래를 열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 복음화만이 나라의 미래를 여는 것이었다. 그는 복음주의적 투철한 개혁주의 신학사상, 삶의 현장에 대한 열정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민족과 교회를 가슴에 품고 복음사역을 하였다.   고봉은 1944년 귀국하여 남대문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민족 복음화를 표어로 내걸었으며, 애국심이란 “우리가 한국 사람이니 그것이 골육지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골육지친인 것을 알아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마음”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일제 강제점령 막바지의 위험한 상황에서 서울의 모든 교회들이 새벽기도회를 쉬고 있는 상황에서 남대문교회에 부임하자마자 처음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고 매일 새벽 강단에서 엎드려 민족을 위하여 한 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매 새벽기도 때마다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조국이 광복과 더불어 고봉은 이제껏 그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민족의 복음화의 열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새벽기도 때마다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그리고 이 민족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였다고 한다. 바로 이 때부터 그가 전개한 운동이 3천만의 십일조 3백만을 하나님께 바치자는 운동이었다. 그는 매 설교 시마다 “한국에는 2만 8천의 자연부락이 있소. 동리마다 교회를 세웁시다. 우리 성도들이 집집마다 감나무 한 그루씩 심어서 그 수입을 몽땅 선교비에 투자한다면 민족복음화는 물론 세계를 복음으로 덮으리이다"하고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때부터 그를 조국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렀다.   고봉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민족의 살길은 로마서 9장 1-2절을 근거로 복음이라는 것을 설교하였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 그것이 골육지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골육지친인 것을 알아.” 그는 해방 후 혼란과 위기의 극복의 유일한 길이 복음을 통한 국가의 재건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국가의 재건과 민족의 구원 이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3백만 복음화 운동을 일으켰다. 3백만 복음화 운동은 복음화일꾼 양성하는 일(신학교)과 전국 2만 8천 동네에 우물파기 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구약의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아의 심정을 갖고, “눈물의 선지자”로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여 세상을 거룩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대한신학교 학생들에게 영농법과 침술법도 철저히 가르쳤다. 김명혁은 그가 김치선 목사의 설교에서 받은 은혜를 간증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예레미아’라고 불리던 김치선 목사님은 새벽기도회 시간은 물론 설교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며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고, 은혜 사모와 전도의 매시지를 선포하셨는데 그 메시지들이 저의 신앙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재료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김명혁, “추천사: 한국교회에서 다시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와 같은 영적 거목이 나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in: 최선,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12.)   2009년 10월 26일 경기도 안양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민족부흥 일념 고봉 김치선 목사 유업 잇자”는 세미나에서 미국에 거주 중인 고봉의 차녀 김동화씨가 ‘나의 아버지 김치선 박사’라는 제목으로 교회사에 숨겨진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연대별로 펼쳐내며 “항상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모습에서 아버지가 민족과 한국교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절실히 느꼈다”고 증언했다.   최선은 고봉이 민족 복음화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먼저 김치선 박사는 한국교회와 사회가 사는 길은 오직 십자가 복음 뿐이라 생각하고 초교파적으로 복음을 전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고봉은 1950년 전후에 손양원, 밥 얼스와 함께 한국 최초의 한민 연합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민족 복음화“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그 열매가 1970년대 민족복음화 운동으로 신현균 목사에 의하여 이어졌고, 1970년 ”한국기독교 부흥협의회“가 설립되었다. 신현균으로부터 김준곤, 조용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빌리그래함 전도대회가 1973년 ”5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표어로 진행되었다.   고봉은 해외유학파로 일제말에 귀국해 1944년 3월 당시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남대문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인 김구를 만나게 되어 민족적인 목회를 하게된다. 그가 본래 가졌던 복음주의적 부흥신앙과 김구의 민족주의가 결합하게 된다.(박명수, “추천사: 다시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가 나오길 기대하며,” in: 최선,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23.) 그래서 김치선은 복음으로 민족을 새롭게 하는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민족 복음화운동은 해방 후에 3백만 복음화 운동으로 나타났다. 고봉은 3천만 민족복음화를 위해서는 그중의 1/10인 3백만명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 그가 시무한 남대문교회는 민족 복음화의 구심점의 역할을 했는데 서울 역 앞에 위치해서 해방 이후에 월남한 많은 신자들이 서울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었다. 그러나 3백만 명 복음화운도은 6.25 한국 동란, 장로교단의 분열, 고봉의 독자노선, 1952년 남대문교회 사임으로 역사에 묻히고 말았다.(이종전, ‘김치선과 3백만 부흥운동의 의의,“ 개혁논총 39(2016), 171; 최선,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킹덤북스, 2018, 6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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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6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고봉(高峯) 김치선(金致善, 1899-1968)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보수적 개혁주의 신학자로서의 신학적 업적보다는 대신교단과 대한신학교 창립자라는 영적 유산과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어졌던 그의 목회적 감화력과 민족 복음화운동의 창시자로서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는 미국 유학하여 구약학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 신학자로서 바로 현장목회에 투신하여 회개와 복음화를 강조한 목회를 하였고, 그의 목회는 항상 결실이 있었다. 민족복음화 운동에도 회개가 주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회개가 중심된 목회는 개혁신학의 전통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봉은 설교문과 신학의 글이나 강의안을 남겼으나 그의 전공인 구약학에 관해서는 박사학위 논문 「신명기의 모세저작」(Kim, Chi Syun. The Mosaic Authorship of the Pentateuch.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1935; 최선 역, 『김치선 박사의 오경과 모세』. 서울: 선교횃불, 2015)과 『구약사기(舊約史記)』 외에는 학술적 논문이나 저서를 남기지는 아니하였다. 그는 1948년 대한신학교를 세웠고 1951년부터 1960년에 총회신학교에서 구약학을 강의하였고 1955년에 391쪽이나 되는 상당한 분량의 신학적 저서 『구약사기(舊約史記)』를 출판했으나 한국구약학회에서 그의 학술적인 논문과 저작에 관하여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고봉은 구약사와 함께 에스겔, 소선지서와 함께 예레미야서를 강의하였다. 1950년대 선지서에 대한 논문이나 저서가 적었던 시기에 현재 세 권이 남아 있는 그의 구약과 관련된 강의안 소개와 평가는 없다. 구약학자로서의 그의 위상과 기여는 묻혀지고 있다. 이제 한국개혁신학회가 그의 학문적 위상과 기여를 밝혀야할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고봉이 신학적으로는 근본주의 신학자라는 평가도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고봉은 장로교가 합동과 통합으로 나누어졌을 때 제3의 교단인 대신 교단의 창립자요 교계의 영적 지도자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다. 고봉은 그의 인격 안에 보수신앙과 애국사상이 하나로 결합된 민족 지도자로서 기독교 1세대로서 근본적으로 역사적 개혁신학을 계승하고 이것을 목회와 신학교육에서 회개와 민족복음화로 실천하고자 했던 목회자요 신학자로서 민족 복음화운동라는 위대한 유산을 한국교회 후손들에게 남겨주었다. 필자는 고봉의 개혁신학사상을 그의 다음 11가지 특징으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1. 정통 복음주의 신학에 근거한 민족복음화운동 효시   고봉은 함경남도 함흥(읍 서호리 바닷가 어촌)에서 조부가 40척의 배를 소유한 선주(船主)인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10대 청소년기 부터 독실한 신앙으로 애국정신을 가진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여 함흥지역의 리더로 낙인찍혀 1년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刑)을 살고 나왔다. 함흥으로 돌아와 학업에 전념했고 선교사 함흥 파송 캐나다 선교사 영재형(Luther Lisger Young, 榮在馨, ?-1949)의 영생중학교(중고등 합제 5년제)를 1922년 졸업했다. 영재형(Luther Lisger Young, 榮在馨)은 캐나다 선교사로서 한국으로 귀화한 캐나다계 한국인이다. 그는 1906년부터 함흥지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었고 가끔 서호리에 오곤했다. 김응보 옹은 영재형 선교사에게 어린 고봉의 어려운 형편과 아울러 영특함과 착실함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신원을 책임지겠다고 추천하자 엄재형 선교사는 그런 유망한 학생이라면 자기가 키우고 공부시키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어린 고봉과 영재형 선교사 사이에 인연이 생겨난 것이다. 당시 에큐메니컬 운동의 일환으로 당시 캐나다 교회는 서로 연합하게 되는데, 영재형 선교사는 이 캐나다 연합교회에 합류하지 않은 잔류파 캐나다 장로교회에 소속된 철저한 개혁주의자 선교사였다고 한다. 예장 대신의 신학적 정체성이 이 선교사의 신학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영생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였다고 한다. 고봉은 장로교 미션학교인 영생중학교에서 특히 그의 양(養)아버지가 되어준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 영재형 목사로부터 민족을 사랑하고 하나님 주권 신앙을 배웠다. 연희전문학교 영문학과 입학하여 수학하였고 1927년에 졸업하였다. 그리고 평양신학교에서 한학기 수학하였다. 고봉은 장로교신학교인 평양신학교에서 개혁신학을 배웠다. 그리고 일본으로 전지 파송된 영재형 선교사의 권유로 평양신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개혁파 신학교인 고베(神戶) 중앙(中央)신학교(미국 남장로교에서 세운 1907년 세운 고베신학교와 1903년 북장로교에서 세운 전도동지관, 1920년 오사카(大阪) 신학원으로 개명, 다시 두 신학교가 1927년 합병하여 개명한 개혁파 신학교,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을 수용하는 역사적 개혁파 로선을 따름)에서 수학(修學)하고 1930년 졸업하였다. 고봉은 보수적인 개혁신학교인 고베신학교에서 정통개혁신학을 배웠다. 그리고 일본 선교사로 사역한 영재형 목사를 따라 다니면서 일본에 사는 한인 교포들에게 전도하면서 영재형 목사의 보수적이고 복음적인 개혁신앙을 배웠다.   고봉은 영재형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유학하여 1933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석사를 취득하였다. 고봉은 1929년 프린스턴신학교의 좌경화에 반대하여 필라델피아에서 세워진 웨스터민스터신학교에서 정통개혁신앙을 배웠다. 그리고 고봉은 1935년 미국 달라스신학교에서 「모세오경의 모세저작권」(The Mosaic Authorship of the Pentateuch)으로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조직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제는 구약에 관한 제목이었다. 그는 1930년대 김재준, 유형기 등이 평양신학교에 도입한 모세오경 문서설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성경신학입장을 가졌고, 박형룡과 박윤선이 가졌던 정통개혁신학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고봉은 학위를 받고 1935년 귀국한 후 1936~1937년 고향인 함흥 서호리에서 목회 활동하다가 신사참배를 피하기 위해 1937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중앙교회(神戶中央敎會), 동경 신주쿠중앙교회, 메구로(目黑) 한인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1944년 귀국하였다. 고봉은 1944년 장로교회인 남대문교회(1885.628 알렌 선교사댁에서 개척 설립) 제6대 담임목사로 취임한다. 당시 남대문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한국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교회가 서울역 앞에 있었기 때문에 북에서 다니러 오는 나그네들이나 남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 그리고 일본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이 늘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따라서 이 교회는 전국적으로 상당히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교회였다.   해방이 되자 3백만 구령운동을 일으켰다. 1946년 2월 8일, 이승만(李承晩)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金九)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통합하여 출범한 사회운동단체이자 정치단체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에 많은 목회자들이 가담하였다.   고봉은 정치활동이나 주류교단 활동에 참여하지도 않고 3백만 구령운동이란 제3의 길을 추구하였다. 그는 민족복음화 운동에 전념하여 3백만 구령운동을 일으키면서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1948년 야간인 대한신학교를 설립하고 신학생을 길러내었다. 그는 장로교 총회신학교에서 1951년에서 1960년까지 9년 동안 교수로서 구약학을 가르쳤다. 그는 그가 설립한 대한신학교에서 구약학, 신약학,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남대문교회 담임목사요 장로교신학교의 교수로서 활동하였고, 강의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학생들에게 회개와 함께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할 것을 당부하였고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었다.   2. 보수적, 성실하고 실천적 인격 신앙   고봉은 마을 서당의 훈장이자 개혁 개방의 향촌의 민족주의적 유교 지식인으로서 기독교가 서호리에 들어오자 누구보다도 먼저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고 교회 영수(領袖)가 되었던 김응보 옹(翁)의 영향을 받아 신앙인이 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되던 암울한 시기에 10대(代) 소년으로 6년이나 매일 새벽 내호교회 새벽기도회에 출석하였고, 그 시기에 그는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앙을 가졌고, “너는 내 것이다”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의 파송으로 함흥에 와 있던 영재형 선교사가 서호리를 방문한 것이다. 김응보 옹(翁)은 어린 고봉의 신앙과 영특함에 대해 칭찬하며 학업 지속하기에 가정 형편의 어려움에 관하여 영재형 선교사에게 말하면서 신원을 보장하겠다고 그를 추천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영재형 선교사는 '그렇게 유망한 학생이라면 자신이 키우면서 공부시키겠다'하고 고봉을 함흥 발룡산 기슭에 있는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가서 사환 일을 시키며 공부하게 했다. 그리하여 어린 고봉은 영재형 선교사 집으로 가게 되고 가족들은 장전을 향해 화전민으로 이사하였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10대 고봉은 선교사를 만난 후 그의 인생은 달라진다. 선교사 집에서 잡일을 도우면서 선교사와 부인의 비서 역할까지 했다. 10대 고봉은 선교사가 세운 영생중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선교사 집안일을 도우는 가정 총무 역할을 했다. 요셉처럼 힘든 일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착실하고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일을 처리하여 선교사 부부의 사랑을 듬뿍받았다.   고봉은 서당에서 배운 실력으로 영재형 선교사가 세운 장로교 선교학교인 영생중학교에 입학하였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당시 선교학교는 민족정신이 강하게 강조되는 곳으로 일제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당시 영생중 · 고등학교 내에서는, 학생들이 비밀리에 한국 애국자들의 지시를 받아 활동하고 있었는데 고봉 역시 그런 학생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함흥지역 학교 비밀학생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1919년 3월 1일에 있을 민족의 봉기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하였다. 고봉의 참여는 민족 정신이 투철한 영재형 선교사의 신앙 훈련에 영향을 받았은 것이다. 고봉은 이 3.1운동 참여 일로 인하여 일경에게 체포되어 심한 매질과 고문을 당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20살의 나이로 함흥에서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되어 1년간의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그 곳에서 그는 인생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1년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중 그는 출옥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하였다.   1년 후 김치선은 출옥하여 함흥으로 돌아와 영생중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고 1922년 3월 13일 23세의 나이로 영생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때 김치선은 학기 중에는 서울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였고, 방학이 되어야 함흥으로 돌아와서 영재형 목사의 일을 도왔다. 이 때 고봉은 학기 중에는 서울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였고, 방학이 되어야 함흥으로 돌아와서 영재형 목사의 일을 도왔다   1923년 어느 날 방학을 맞이하여 함흥의 집으로 돌아와 영생고등학교 옆에 세워진 신창리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있던 고봉은 밖에서 들려오는 “불이야! 불이야!”하는 다급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영생 중·고등학교 쪽에서 들여오는 소리였다. 김치선이 이 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 학교는 이미 커다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 불은 당시 서양 사람인 영재형 목사가 한국 학교인 영생 중 · 고등학교의 교장이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영재형 목사를 죽이기 위해 놓은 불이었다. 그들은 영재형 목사를 교장실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잠근 후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불을 질렀던 것이다. 고봉은 이불에 물을 부어 자신의 몸에 뒤집어 쓰고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선교사를 구출한다. 그는 자기를 키어주고 공부시켜준 은인(恩人)을 위기의 순간 살렸다는 보은의 자긍심을 가졌다. 이처럼 고봉의 생명을 건 구출작전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 영재형 선교사는 이 일 후에 고봉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고 더욱 특별히 사랑하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선교사 부인은 너무 놀라 화병을 얻어 별세하게 된다. 별세 전에 부인은 남편에게 “치선이를 끝까지 돌보아주고 공부시켜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겼다. 영 선교사는 그 유언을 실천하여 고봉을 일본으로 유학시키고 이어서 1930년대 미국 달라스신학교에 유학시켜 1935년 한국인 최초로 신학박사를 받게 지원을 해준 것이다. 1949년 영재형 선교사가 별세할 때 다음의 유언을 남겼다: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내가 한국에 와서 한 것이 있다면 단 한가지, 치선이를 얻은 것이다.”   1927년 3월 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평양에 있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평양신학교 생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1928년 일본에 있는 한인(韓人)들을 선교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영재형 선교사가 고봉을 일본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고봉은 일본 고베 현(縣)에 있는 고베중앙신학교(現, 개혁파신학교)에 편입하였고, 그곳에서 영재형 선교사를 도와 전국을 돌아다니며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일본에 건너 온지 2년만인 1930년 2월 23일, 고봉은 31세 나이로 고베중앙신학교를 졸업하고 영재형 선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재일 조선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31세였다.   고봉은 그 다음 해인 1931년 영재형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터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1929년 메이천 등 프린스턴 구학파 학자들이 세움) Th. M. 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하며 오직 학업에만 매진한 끝에 1933년 Th. M.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정통개혁신학을 배웠다. 고봉은 다시 텍사스주 달라스에 있는 달라스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의 박사과정에 입학하였으며, 여기서 구약학을 전공하여 1935년에 신학박사 학위(Th. D.)를 취득하였다. 이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정식 구약학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었다.   고봉은 달라스신학교 유학시에도 외부와 단절하여 오로지 학교 기숙사, 강의실, 도서관, 식당에만 오가면서 학업에 매진하였다. 자신의 신학공부를 민족 복음화를 위한 일환으로 생각하고 외로움을 참고 인내하면서 형설의 공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당시 모세오경 저작설을 부인하는 역사비평학이 지배하는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의 풍토에서 모세5경의 모세저작설을 학위논문을 쓸 만큼 보수적인 신앙과 신학을 유학생활에서 실천하였다. 그가 달라스에서 공부했을 때 달라스는 세대주의자와 복음주의자 학자들이 함께 가르쳤다. 그러나 고봉은 이미 고향교회에서부터 신앙생활에서부터 목사안수와 신학석사까지 장로교회와 장로교신학교(평양신학교, 고배신학교,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획득하였기 때문 그는 세대주의나 자유주의에 타협하지 않고 역사적 개혁신학의 입장을 견지하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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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18
    여섯째 날(1), 땅의 생물의 창조   모세는 창조의 여섯째 날 톨레도트에서 하나님이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וַיֹּאמֶר אֱלֹהִים תֹּוצֵא הָאָרֶץ נֶפֶשׁ חַיָּה לְמִינָהּ בְּהֵמָה וָרֶמֶשׂ וְחַיְתֹו־אֶרֶץ לְמִינָה)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고 서술했다(1:24). 하나님이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신 사실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그런 사실을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을 반박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종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민’(מִינָ)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히브리어 창조 톨레도트에서 ‘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을 ‘종류대로’ 분류하는 단위이다. 하나님은 그가 종류대로 창조하신 ‘네페쉬 하이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다(1:22). 그러나 과학적 무신론의 영향을 받은 현대 생물학은 ‘민’의 의미를 무시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LUCA라는 원핵생물이 지구 생물 최고의 조상이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그것의 진화 계통과 상호 유연관계를 따라서 8계급의 ‘생물 계통수’를 그려놓았다.   ‘생물 계통수’에서 3역에 속하는 원핵생물은 당시 모세의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것들은 현미경의 발달에 따라 발견되었다. 창조 톨레도트 셋째 날에 창조된 식물계와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 창조된 동물계는 ‘생물 계통수’의 6계에서 2계를 차지한다. 6계의 나머지 4계도 모세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모세에 의하면 셋째 날에 만들어진 식물계에는 풀과 씨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 등으로 나뉘어 있고, 그 아래에 ‘민’이 있다. 동물계에는 다섯째 날에 만들어진 바다의 큰 괴물과 떼지어 사는 어류, 그리고 날개 있는 조류,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땅의 육축과 기는 것과 짐승등이 있고, 그 아래에 ‘민’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특별하게 ‘민’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와 같이 모세의 분류체게는 전체적으로 3계급밖에 없다.   현대 생물학의 분류체계는 생물 세포의 리보솜에서 단백질을 생산하는 RNA의 진화 계통에 기준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가 맨눈으로 본 분류체계와는 다르다. 분류의 틀이 같지 않다면, 수평적으로 ‘민’과 강을 비교하는 것은 합리성이 없다. 그러나 과학적 무신론과의 논쟁을 위해서 기독교는 창조론에서 ‘민’의 위치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신 생물의 종류는 ‘민’의 단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세의 분류체계와 현대 분류체계를 비교해보면, 현대 분류체계에서 모세가 보지 못했던 3역을 제외한 7계급에서 상위 3계급은 계>문>강이다. 그렇다면 ‘민’은 강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의 분류체계에서 ‘민’의 개념은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의 ‘종’(species)을 설명하는 데서 발견된다. 현대 생물학에서 종은 ‘교배하여 생식 능력이 있는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개체의 집단’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종과 종 사이에 생식장벽(reproduction barrier)이 있다는 것은 생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이다. 그리고 종에는 3개의 하위 계급(아종, 변종, 품종)을 둠으로써 종내(種內)의 개체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특성을 분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생물학적 종의 기준을 살펴보면, 그것은 ‘민’의 기준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생물학적 생식장벽은 하나님이 생물을 ‘민’의 단위로 번성하도록 만들어놓으신 장치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 결국 ‘민’이 현대 생물학의 분류체계에서 어느 계급에 해당하는 것일지라도 굳이 간여할 필요는 없다. 현실적으로 생식장벽이 있고, 그 증거로 ‘민’과 ‘민’ 사이에서 중간‘민’ 또는 중간종(中間種)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의 놀라운 다양성   그렇다면 다윈의 진화론은 종의 하위 계급에서 발현되는 다양성의 차이- 말하자면 종의 하위 계급인 아종, 변종, 품종의 변이를 진화로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그러므로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현대 생물학에서 생식장벽 현상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현실에서 발견되지 않는 중간종을 화석에서 상상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화석으로 발견된 생물의 경우에는 형태와 구조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개체의 집단을 기준으로 종을 분류하는데, 그런 분류방법에는 연구자의 주관에 따라 종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결함이 있다. 그래서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형태가 약간씩 다른 화석들을 모아서 중간종을 상상한 그림을 그려놓고, 중간종 화석이라고 우길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물질에서 자연발생한 LUCA가 오늘날의 생물계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생물의 계통수’가 사실이라면, 물질에서 생명이 자연발생하는 화학적 메커니즘(chemical mechanism)과 종간(種間)의 진화 과정에서 생식장벽을 뛰어넘는 중간종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메커니즘과 살아있는 중간종은 발견된 적이 없다. 창조론을 믿는 기독교는 바로 이 두 가지가 과학적 무신론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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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17
        다섯째 날. 진화 아닌 종류별 창조가 성경의 진리   모세는 창조 다섯째 날 톨레도트에서 하나님이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하시니(1:20), 물에서 번성하는 어류들과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새들이 종류대로 창조되었다고 서술했다. 기독교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네페쉬 하이아’(생물)를 종류별로 창조하셨다는 서술을 의심 없이 믿는다. 창세기에 의하면 ‘네페쉬 하이아’에 속하는 것들로는 이 구절에서 말하는 어류와 조류, 그리고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땅의 생물(1:24)이 있다. 그것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에서 식물은 ‘네페쉬 하이아’로 취급되지 않는다.   조르쥬 퀴비에는 고대 지층에서 발견된 생물 화석들이 동물군에 따라 해부학적 구조가 다른 것을 발견하여 고생물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라마르크가 좬동물철학좭(1809)에서 발표한 용불용설에 의한 진화를 맹렬히 비난했던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창조 이후에 생물의 종(種)들이 변화를 겪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대가 다른 지층에서 격변의 흔적을 다수 발견하고, 제임스 어셔 주교의 기원전 4004년 창조설을 강력 비판했다. 퀴비에가 죽은(1832) 뒤,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 유물론과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했다. 그것들이 합세하여 과학적 무신론으로 발전하면서 그 위세는 더욱 강력해졌고, 기독교는 그 세력에 밀려 점점 쇠퇴했다.   현대 고생물학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에 지배되어 지구의 모든 생물이 최초의 생명체인 원핵생물에서 계통을 따라 진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이 그려놓은 ‘생물의 계통수’를 보면, 바다의 물에서 화학작용으로 생겨난 하나의 원핵생물이 번성했고, 그 가운데서 진화한 다세포의 원생생물이 수중 동물과 수중 식물로 계속 진화했다. 수중 생물이 육지로 올라와서 육상 생물로 진화했다. 조류는 쥐라기 시대에 깃털 공룡이 진화한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생물은 진화하면서 새로운 종으로 분기하게 되고, 분기한 종은 새로운 공통조상의 계통을 따라 계속 진화한다. 그들은 지구 생물 최고의 공통조상을 LUCA라고 이름 지었다.   근대 생물 분류학의 원조 칼 린네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었다. 그는 생물을 식물과 동물을 2계 5계급(계〉강〉목〉속〉종)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은 1977년 칼 우스가 제안한 각 생물의 리보솜 RNA 염기서열에 따라 3역(진정세균역, 고세균역, 진핵세균역)으로 나누고 그 밑에 6계(진정세균계, 고세균계, 그리고 진핵세균역에 4계-원생생물계, 동물계, 식물계, 균계)로 분류한다. LUCA는 그동안 계통별로 8계급(역〉계〉문〉강〉목〉과〉속〉종)으로 진화했다.   기독교의 창조론은 과학적 무신론에 맞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문제는 LUCA가 물질에서 화학작용으로 발생했으므로 창조주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둘째 문제는 생물의 종류별 창조를 부정하고 진화론을 수용하는 경향이다. 기독교는 1860년 옥스퍼드 논쟁에서 패배한 이후 그 문제들에 대해서 전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아직도 ‘고대 히부리인들의 우주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아직도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독교를 말살하고, 그들이 우리우주의 지배자가 되려고 한다. 기독교가 그런 위기에 몰린 것은 과학은 계속 발전했던 데 반해, 기독교의 창조론은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틈새 사이로 진화론을 수용하는 기독교인이 늘어난 것은 기독교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기독교가 미래에도 존속하려면, 과학적 무신론이 사실이 아닌 허구적 가설임을 입증하는 한편,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과학적 사실에 맞게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근본주의자들처럼 교회에서 유신진화론을 비판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유신진화론은 기독교 창조론이 과학적 무신론에 승리하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다. 대적인 과학적 무신론을 내버려 둔 채, 괜히 믿음의 형제를 공격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만약 그들 중에 하나라도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마18:6, 막9:42).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계통진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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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20-06-26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개혁신학적 전인적 인격 형성으로서 기독교 신앙교육 이념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IV. 개혁신학적 문화 명령 수행으로서 전인적 인격교육   1. 기독교 가치관 교육: 이분법적 가치관 극복   차세대들에게 가르쳐지는 가치관이 교회와 학교가 다른 이분법이 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적 가치관은 보편적이다. 십계명 첫째- 넷째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관계요, 다섯째 계명-열째 계명은 인간 사이의 관계다. 십계명의 첫째에서 넷째 계명은 하나님과 관계로서 종교적 계명인데 이 계명의 권위는 다섯째 계명에서 열째 계명의 윤리적 보편성에서 그 신뢰성을 가져온다. 부모공경, 살인 금기, 간음 금기, 도적질 금기, 거짓말 금기, 탐욕 금기 등은 사회적 윤리성과 질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십계명의 윤리는 단지 기독교 윤리가 아니라 보편 인간 관계의 윤리다. 그러므로 오늘날 미국의 남부주정부는 십계명을 시민윤리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인에게만 국한되는 윤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인간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지고 실천해야할 윤리다.   교회는 이분법 윤리를 가르쳐는 안된다. 십계명의 윤리는 공교육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산상 설교의 윤리는 사랑의 윤리로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적용되는 보편윤리다. 주일학교는 교회에서 배우는 신앙과 윤리가 그대로 학교애서도 적용되어야함을 가르치고 그 예를 고대 제국인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된 유대청년 요셉 이야기, 바벨론 제국의 총리 유대청년 다니엘 이야기, 페르시아의 왕비로서 하만의 궤계에서 유대 민족을 구한 유대 여인 에스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성 감옥에서 기독교인인 된 애국지사 이승만, 기독교인으로 상해임시정부를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지킨 김구, 청년시절 기독교인으로 민족지도자가 된 도산 안창호, 애국운동과 신앙운동을 일치시킨 이승훈, 물산 장려운동을 일으킨 조만식, 청십가 운동을 일으킨 장기려, 나병 환자를 위하여 일생을 바치고 아들 둘을 죽인 공산청년을 아들로 입양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등이 보편 윤리를 실천한 기독교 지도자라는 것을 각인해주어야 한다.   2. 전공과 신앙의 융합 교육   기독교학교의 건학이념을 복음적 영향력으로 이해한다면 기독교 학교에서의 기독교교육은 예배나 종교수업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모든 교과목의 가르침에 기독교적 영향력이 끼쳐질수 있어야 한다. 만약 예배와 종교과목이 충실히 이루어지더라도 각 교과목의 가르침에 있어서 무신론이나 반기독교적 가치관에 의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복음적 영향력은 심각히 감퇴될 수밖에 없다. 교과목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이 가능할 때 기독교 학교의 건학이념이 보다 강하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 학교 교사가 신앙과 교과목을 통합할 수 있는 전문성을 지녀야 하며, 교사의 영성과 인격이 학생들에게 복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학교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교사가 기독교 학교인 셈이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교사를 통해서 기독교 학교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학교의 경영이나 행정이 학생들에게 복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경영과 행정이 권위주의적이 아니라 민주적이어야 하며, 이사진과 교육행정가들이 정의롭고 투명한 학교운영과 섬기는 리더십을 통해 본을 보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학교 전체 공동체가 기독교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며, 복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 교육은 일반 교양교육을 성경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희랍적 교양 가운데 기독교 인격으로 수용할 점이 많다. 예컨대 플라톤은 이상적 국가 실현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개념으로 아레테(ἀρετη, Arete, moral virtue) 개념을 제시했다. 플라톤은 사람 안에 주어진 아레테의 실현이야 말로 인간됨의 실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교육이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을 이끌어내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인간 안에 “다중 지능”(multiple intelligence)이 있으며 이것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중 지능에는 언어, 음악, 논리수학, 공간, 신체운동, 인간 친화, 자기성찰, 자연친화 등 8개의 독립 지능과 음악, 종교적 지능 등이 있다고 본다. 각 지능들은 자기 성찰 지능과 결부되어 발전해야 하며 종교적 지능과 결부되어야 원만해 질 수 있다. 부모는 자녀들의 다중 지능을 계발되도록 도와야 한다.   3. 기독교 세계관, 가치관 교육   부모나 교역자, 주일학교 교사는 신앙가진 학생들이 다들 기독교학교나 기독교대안 학교에 다니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신앙과 연결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들이 기독교 세계관으로 교과목을 이해하고 신앙의 일관성 속에서 학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세속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교회학교 학생들이 주일 아침에 교회에 못 나오는 원인이 “학원 가기 때문”이라는 설문 조사가 나왔다. 사교육이 팽배하면 가장 위축되는 것이 교회 교육이며 시험기간에는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것이 오늘날 교회학교 현실이다.   십계명이 오늘날에도 타당한 것은 지구촌의 인류의 올바른 생존을 위하여 2째 계명의 우상 금기, 4째 계명의 안식의 중요성, 5째 계명의 부모와 권위의 중요성, 6째 계명의 생명존중, 7째 계명의 성의 중요성, 8째 계명의 타인의 명예와 재산 존중, 9째 계명의 자기와 타자와 올바른 관계(정직), 10째 계명의 타인의 소유 존중이다. 10째 계명은 오늘날 현대인, 특히 젊은 세대에게 탐욕 규제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는 너무나 적절한 내용이다. 탐욕이란 인간이 생존 이상으로 육체 욕구 충족과 권력이나 명예추구하려는 대부분 사람들의 행동의 동기로서 욕심으로 인간 내면에 숨겨져 있다. 탐욕은 우상숭배로서 성취를 위해서 정의를 외면하고 불의의 길로 나가기 때문에 철저한 자기 규제가 필요하다. 2013년 흥사단 투명사회 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의 청소냔 1만172명 상대로 한 조사에 의하면 고교생 47%, 중학생 33%, 초등학생 16%가 “10억 원이 생기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샬롬나비 운동은 시민운동 윤리강령으로 겸손, 정직, 검소 등을 요청하고 있다. 후기 정보사회의 이념인 자유, 포스트모던 사회의 이념인 평등은 서로 상충된다. 자유는 불평등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평등을 자유를 유보한다. 자유와 평등 사이를 중재하는 이념은 평화다. 차이를 인정하는 자유와 차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평등은 평화의 입맞춤으로 서로 타협해야 한다. 여기에 샬롬나비는 시민운동 행동강령으로 감사, 나눔, 섬김의 정신을 필요로 한다. 평화의 정신은 청소년들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   4. 문화변혁주의로서의 기독교 교육: 문화명령과 대위임명령 연계로서의 신앙 인격 형성   기독교 신앙은 교회와 학교를 분리시키는 분리주의 이념이나 학교를 교회 안에 축소시키는 축소주의 이념이 아니라 문화변혁주의 이념으로 나아가야 한다.   분리주의적 이념은 터툴리안의 반문화 기독교 사상으로서 교회와 학교를 대립시키고 분리시킨다. 이 입장은 가치중립적인 입장에서 신앙과 학문을 분리시킨다. 교회가 신앙교육을 독점하며 학교는 전공 교육을 독점한다. 일반학교와 교회생활을 서로 대립하거나 별개의 기관으로 보고 양자를 분리시켜 신앙과 학문의 이원론에 빠지게 된다. 이에 반해서 교회주의적 이념은 학교교육을 교회 안으로 끌어 들인다. 중세의 교회부속학교나 교구학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세에서는 문답학교, 고급문답학교, 사원학교, 수도원학교 등은 교회에 종속되거나 감독 아래 있었다. 이 입장은 교회교육을 교육의 토대로 삼고 교회교육의 소극적 확장으로서 학교 교육을 실시한다. 구체적인 예가 한국에서는 포천의 사랑방공동체 학교나 춘천의 예수촌 교회의 v-school이다.   문화변혁적 입장은 분리주의적 이념과 교회주의적 이념을 넘어서서 보다 적극적으로 세속문화에 대결하면서 이를 기독교적으로 변혁시키고자 한다. 문화변혁적 입장은 화란의 문화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인간의 삶에서 만유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영역은 한 치도 없다”는 영역주권(sphere sovereignity) 사상을 수용한다. 모든 삶의 영역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며, 각 영역은 하나님이 주신 법과 질서를 따라 고유한 권한을 지니고 있다. 가정, 교회, 학교, 국가는 서로 상이한 기관으로서, 각기 고유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고유한 독립적 기능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 영역들은 상호협력은 가능하지만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루터나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은 자녀 교육의 책임을 교회나 학교에 두기 보다는 언약 사상에 기초하여 일차적으로 가정의 부모에게 있는 것으로 보았다. 교회교육이나 학교 교육은 가정 교육의 연장 선상에 있다. 학교 교육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점에서 교회교육의 연장에 있다. 문화 명령을 수행하는 일과 그리스도 제자를 만드는 일은 동일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다. 문화명령의 수행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순종하는 것이며, 제자를 만드는 일은 하나님의 특별은총에 순종하는 것이다.   문화변혁적 입장에 의하면 학문과 신앙이 통합되어야 한다. 영역주권은 학교의 자율을 인정한다. 교회와 학교는 영역주권에 따라 종속관계가 아니라 협력관계다. 학교가 추구하는 지적 유산(遺産)과 보고(寶庫)는 비록 왜곡되고 타락하였으나 일반 은총 아래서 여전히 인간 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가정 교육의 토대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학교 교육은 교회교육의 적극적 확장이다. 문화명령에 의하면 교회 교육과 학교 교육의 조화가 시행되어야 한다. 교회교육은 학교 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적 유산과 보고는 일반 은총의 내용으로서 계시의 빛 아래서 복음으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화변혁의 착상에 의하면 일반교육은 문화명령의 적극적 수행이며 신앙교육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개혁신학적 문화변혁주의는 교회와 학교는 하나님 주권 안에 있는 두 가지 다른 기관으로 본다. 교회 교육과 학교 교육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두 영역 교육으로서 특수 은총과 일반 은총 영역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궁극적 원천이며 유일한 원천이기 때문에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여기서 차세대 신앙 교육을 위하여 가정, 교회, 학교, 사회는 독립적이고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연관성에서 협력해야 한다.   맺음말: 인공지능 시대에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글로벌 안목을 지닌 인격 형성   한국교회 차세대 신앙교육을 위해서는 교회주일학교의 교육 패러다임이 총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담임 목회자가 성인 목회와 아울러 차세대 목회를 주도해야 한다. 주일학교를 부교역자에게 맡기는 부차적 교육이 아니라 성인 목회를 차세대에 집중하여 차세대가 교회의 주역으로 성장하도록 교육 생태계를 친(親)차세대적으로 조성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 교역자, 학교, 사회가 이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부모가 청소년 신앙교육에 교사가 되어야 하고, 주일학교 교사는 학생들과 인격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학교 공교육에서도 정의와 사랑과 평등, 성과 가치관 교육이 신앙적 관점에서 가르쳐져야 한다. 교회, 가정, 학교, 사회가 연계되는 기독교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물을 다스리라는 창조 명령인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 창 1:26-8)은 모든 족속을 제자로 만드는 선교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 마 28:19-20)과 연계해서 성찰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한국교회 차세대는 다가온 인공지능시대에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티지털 마인드로 대응하고 디지털로 지구촌화된 시대를 선도하는 글로벌한 인격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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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6
  • 한윤봉박사, ‘진화적 창조론’ 비판
    ◇창조과학회의 한윤봉박사는 창조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창조와 진화는 상반된 내용이기에 결코 조화될 수 없음을 지적 “저자가 반박하기 위하여 인용하고 있는 성경해석이 오히려 오류”   기독교학술원에서 주최한 월례포럼에서 한윤봉박사(전북대학교 화학공학부, 한국창조과학회·사진)가 「진화적 창조론의 과학적 문제점」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박사는 7개의 테마로 주장을 전개했다.   첫째, ‘진화적 창조론’은 잘못된 용어라고 말했다. 한박사는 “창조론과 진화론은 실험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론이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진화론은 ‘우연과 자연발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계획도 목적도 방향성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주와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하는 목적’이 분명하게 있으며, 그 ‘존재의 목적’에 따라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와 생명체는 최고 수준의 아름다움과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창조와 진화는 전혀 상반된 내용이기 때문에 두 개념이 결코 융합되거나 조화될 수 없다. ‘진화적 창조론’은 창조론과 진화론을 동시에 믿어야 함을 강요하는 용어이며, 과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모순이 되는 용어”라고 말했다.   둘째, 창세기를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박사는 “창세기의 역사성이 무시되면, 인류의 조상 아담의 역사성과 죄의 기원을 부장하게 된다. 또한 창세기를 기초로 하고 있는 정통 복음주의 기독교 교리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게 되는 신학적인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셋째, 진화는 자연계시가 아니다. 한박사는 “자연은 과학법칙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과학법칙들에 따라 일어난다. 따라서 진화를 자연계시라고 말 할 수 없다”고 제시했다.   넷째, 자연현상으로 창조를 설명할 수 없다. 한박사는 “자연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퇴락하기 때문이다. 즉, 자연은 진화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다섯째, ‘계속적 창조’는 과학적으로 틀린 주장이다. 한박사는 “진화적 창조론자들은 창조의 개념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창조의 사전적 의미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 신이 우주만물을 처음으로 만듦, 새로운 성과나 업적, 가치 따위를 이룩함’이다”며, “과학적인 면에서는 발명이 창조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여섯째, ‘틈새의 하나님’은 과학적으로 틀린 주장이다. 한박사는 “자연현상의 인과 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한계를 ‘틈새 또는 빈틈’으로 표현하면서, 틈새에 대한 설명을 자연적인 인과관계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를 비판하는 말이다”며, “창조과학자들은 ‘틈새의 하나님’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창조의 결과에 '틈새'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빈틈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빈틈의 진화론'이 더 타당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진화적 창조론자들은 새롭게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앞으로 과학이 발전하면 진화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논문에 관해 허정윤박사가 논평을 했다. 허박사는 특히 궁창(라키아)에 대한 해석은 틀리지 않는 것이지만 문제는 저자가 이를 반박하기 위하여 인용하고 있는 성경해석이 오히려 오류라고 지적했다. 허박사는 “히브리 맛소라본을 번역한 「쉬운 성경」(아가페, 2002)에서 궁창을 ‘둥근 공간’으로 번역됐다는 주장은 사실을 오인한 것이다”며, “실제 모든 히브리어 성경에는 ‘라키아’라는 말로만 서술되어 있다. ‘두들겨 넓게 편’ 것을 ‘광활한 공간’으로 번역하는 것은 번역자의 오역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또 “진화적 창조론을 비평한 이 논문은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인가?’에서 진화론의 기본 가정과 메커니즘 각 두 가지를 일반적 수준에서 제시한 이후 진화론과는 별 관련성이 없는 지질학을 끌어들였다”며, “더욱이 ‘과학적 비평’에는 과학적 내용이 별로 없고, ‘성경적 비평’에는 오역 또는 왜곡된 「쉬운 성경」을 논거로 인용했다는 점에서 학술 논문으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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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6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16
      넷째 날(2):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옛 하늘과 옛 땅’   넷째 날 창조 톨레도트에서 1:16-18은 모세가 그의 설명을 덧붙여놓은 것이다.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18)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구절들에서 모세는 낮을 주관하는 큰 광명과 밤을 주관하는 작은 광명은 각각 해와 달이고, 그밖에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기 위해 별도 있었다고 서술했다. 하나님은 시간을 하늘에 있는 광명들이 주관하게 하셨다. 병들은 작은 광명이 주관하는 밤에만 보이게 하셨다. 여기에서 ‘주관하다’는 뜻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멤쉐레트’(לְמֶמְשֶׁלֶת)는 왕의 통치권 또는 소유권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땅의 하루가 24시간으로 조정된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넷째 날 지구에 임재하신 하나님이 생태계를 조성하시기 위해 우주와 태양계의 운행을 미세 조정하셨다는 성경적 사실에 의하여 창조연대 ‘6천년설’과 창조 6일의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근본주의적 주장들은 이제 기독교에서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이 ‘라키아’를 하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생겨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도 폐기되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땅에서 관측하면, 모든 광명체는 대기권인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주선이 ‘라키아’의 위를 탐사해서 얻은 관측자료가 하늘의 실체를 확인했다. 그런 관측자료를 본 현대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라키아’가 대기권 하늘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기독교와 과학 사이에 있었던 우주론 논쟁은 종식되었다고 보아도 좋겠다.   기독교에 남아 있는 과제는 이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버리는 것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여 만들어낸 하늘의 ’라키아‘가 있고, 하나님이 아담을 심판하시면서 저주했던 땅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세가 잘못 이해한 옛 하늘이고 옛 땅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그것들을 기억하거나 마음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는 계시를 증언했다(사 65:17). 이사야에 의하면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니, “이전 것”(הָרִאשֹׁנֹות)이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해야 하리라고 선포하셨다. 그 ‘이전 것’(하리쇼노트)이 바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 있는 태초의 하늘과 땅(1:1)이다. 그런 사실은 ‘하리쇼노트’에서 정관사 ‘하’(הָ)를 뺀 ‘리쇼노트’라는 말이 창세기 첫 마디에 나오는 ‘베레쉬트’에서 전치사 ‘베’(בְּ)를 뺀 ‘레쉬트’와 같은 어원에서 파생한 것이며, 따라서 ‘태초의 것’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토라의 문자에 갇혀있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그런 뜻으로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은 ‘옛 하늘과 옛 땅’을 잊어버리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따르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지구에 임재하여 창조 사역을 하셨고, 다시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요한은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한탄했다(요1:5). 그래서일까?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주신 ‘새 하늘과 새 땅’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베드로와 요한에게 다시 주어졌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라는 계시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약속을 주셨다고 썼다(벧후3:12-13).  요한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고,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고 썼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으로 만들어진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기억하거나 마음에 생각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 신학/선교
    • 신학
    2020-06-12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15
      넷째 날(1): 광명과 궁창의 해석   넷째 날의 창조 톨레도트에 의하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מְאֹ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בְדִּיל בֵּין הַיֹּום וּבֵין הַלָּיְלָה וְהָיוּ לְאֹתֹת וּלְמֹועֲדִים וּלְיָמִים וְשָׁנִים׃)고 명령하셨다(1:14).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땅에서 눈을 들어 ‘하늘의 궁창’에서 광명을 보았다. 여기서 광명을 뜻하는 ‘메오르트’(מְאֹרֹת)는 복수이다. 그러므로 그때 모세는 먼저 큰 광명인 해가 떴다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저녁이 되었고, 작은 광명인 초승달이 떴다가 지면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나타나는 것까지 환상으로 보았을 것이다. 모세가 보았던 환상을 생각하면서 이 구절을 읽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그동안 창세기를 ‘문자대로’ 해석하고 ‘문자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문제 두 가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창조 톨레도트의 ‘욤’(하루)의 길이 문제이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첫째 날부터 태양의 빛에 의한 낮과 24시간 하루가 시작되었으므로 그때부터 우주와 지구의 나이를 계산해야 한다. 그런 주장은 성경 어디에도 명확하게 근거가 없는 해석의 오류이다. 그 해석의 오류는 첫째 날의 ‘오르’(빛)가 넷째 날에 ‘메오르트’(광명, 발광체)가 땅에 비춰준 빛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해결된다. 그 오류는 첫째 날과 셋째 날까지 낮의 빛은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해석한 대로 주 하나님의 빛이 땅에 임재하신 것이라고 바꾸면 된다. 그렇다면 그 낮들은 주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의 창조를 환상으로 보여주신 시간이고, 그 밤(호셰크)들은 모세가 환상을 보지 못한 시간이다.   둘째는 근본주의자들이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약 6,000년이라고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이다. 젊은 우주론은 하루 24시간 6일 창조의 여섯째 날에 아담이 만들어졌다는 영국교회 주교 제임스 어셔의 해석을 근거로 하나님의 창조 사건이 기원전 4004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젊은 우주론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우주는 약 138억 년 전 빅뱅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 년이라는 오랜 우주론을 과학적 상식으로 알기 때문이다. 젊은 우주론과 오랜 우주론은 천동설과 지동설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선교를 위해 두 우주관의 차이를 극복하는 문제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   창조 톨레도트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모세가 서술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문제의 해답은 저절로 나타난다. 넷째 날 창조 톨레도트를 히브리어로 읽어 보면 하나님은 1:14에서 3인칭 미완료 동사 ‘예히’(יְהִי)로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으라’고 명령하신 다음에 광명의 목적을 ‘베하우’(וְהָיוּ) 완료동사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모세는 “וְהָיוּ לִמְאֹו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אִיר עַל־הָאָרֶץ וַיְהִי־כֵן׃”(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고 서술했다(1:15). 여기에서 모세는 3인칭 완료동사 ‘베하우’를 사용하여 그 광명이 땅에 빛을 비추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한 뒤에 미완료 동사 ‘예히’를 써서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를 서술했다. 그렇다면 넷째 날 하나님은 땅에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태양계와 행성의 궤도, 빛의 크기와 운행 주기 등을 미세 조정하시고, 그것이 제대로 운행되는 상태를 모세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셨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넷째 날 이전의 날자 길이와 우주의 나이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하나님의 시간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모세가 본 환상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실제 광경과 다름없었으나, 모세는 그가 본 환상을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으로 이해하고 기록했다. 근본주의자는 왜 성경에 분명히 기록된 그런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과학과 싸우면서 창조 6일 하루 24시간설과 우주연대 6,000년설을 주장하여 기독교를 과학도 모르는 무지의 종교로 비난받게 만드는가?    
    • 신학/선교
    • 신학
    2020-06-05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설립원장)   -개혁신학적 전인적 인격 형성으로서 기독교 신앙교육 이념-   III. 전인적 인간 교육으로서 신앙 교육 1. 종교인 교육 아닌 인간 교육: 학교나 사회에서 정직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사람 교육   오늘날 필요로 하는 기독교 교육이란 종교다원화시대에 기독교인을 만드는 특정한 종교 교육이 아니다. 신앙교육이란 종교인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인간”(homo coram deo)이 되는 인격 교육이다. 기독교적 매너와 언어와 종교적 관습(교회 다님과 예배 참석, 봉사)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인 하나님 경외를 배우는 것이다. 이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교육이다.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교적 예물이나 제사드리는 것이 아니라 인자와 정의를 행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진정한 야웨 신앙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6절)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7절)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6-8).   기독교 신앙은 불교나 유교, 도교나 힌두교처럼 시대에서 동떨어지는 과거 지향 종교가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는 미래지향적인 종교이다. 한국의 전통종교인 불교와 유교, 도교가 조선말 일제의 식민정치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지 못해서 독립운동의 주도 역할을 한 기독교에 민족 종교의 역할을 물려 주었다. 오늘날 기독교는 다가온 4차산업혁명시대의 인공 지능사회에 다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2. 미션학교(Mission School)와 참 기독교 학교(Mere Christian school)로서의 기독교 학교   기독교학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미션스쿨과 참 기독교 학교로 구분되어야 한다. 미션스쿨(Mission School)은 용어 그대로 선교를 위한 학교이다. 채플과 기독교 교양과목 등이 교과에서 제공되는 학교이다. 주로 한국의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들(이화학교, 배재학교, 숭실학교, 연희학교, 이화학교 등)이 이러한 학교들이다. 참 기독교 학교(Mere Christian school)는 미션학교와는 달리 기독교인 가정의 자녀들을 교육의 주 대상으로 삼고 있는 학교이다. 기독교대안학교에 관심을 둔 교회가 개별적으로 세운 학교들이다. 미션학교가 복음화(Evangelism)에 초점이 있다면 참 기독교 학교는 제자화(Discipleship)에 초점이 있다.   1) 미션 학교   기독교 학교의 건학이념의 보다 근본적인 의미는 ‘복음적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적 ‘영향력’(influence)은 학교나 교사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한다. 학생들에게 복음적 영향력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접촉점(point of contact)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음과 학생의 삶의 자리를 연결시키는 것이 기독교교육이라고 할 수 있고, 기독교 학교는 그런 기독교교육적 노력을 통해 학생들에게 복음적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고, 이것이 기독교 학교의 건학이념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기독교 학교가 평준화정책 이후에도 평준화정책 시행 이전 방식의 예배나 종교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면 복음적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교교육에 동의하지 않거나 신앙이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배나 종교수업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미션스쿨(Mission School)은 용어 그대로 선교를 위한 학교이다. 선교를 위한 학교의 교육은 주 대상이 ‘안 믿는’ 학생들이다. 만약 선교를 위한 학교에 이미 ‘믿는’ 기독학생들만 있다면 그 학교는 선교학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 부적절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션스쿨은 가능한 한 안 믿는 학생들을 많이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고교 평준화정책이 일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기독교 학교는 미션학교와 참기독교학교 두 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미션스쿨을 정체성으로 선택한다면 전통적으로 해 오던 형태의 예배나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형태가 아닌 새로운 예배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며, 종교수업도 관행적으로 해 오던 형태나 교회학교에서의 성경공부 방식이 아닌 이들과의 접촉점을 가능케 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안 믿는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선교적 접근이나 체육이나 예술을 통한 접근,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 등이 접목될 수 있을 것이다. 과감하게 눈높이를 낮추어 불신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 사립학교의 구조 안에서 참 기독교 학교(Mere Christian school)   기독교인 가정의 자녀는 기독교교육을 받아야 하고,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양육되어야 한다. 기독교인 부모는 자신의 신앙에 따라 자녀를 기독교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참기독교학교(Mere Christian school)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러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물론 참 기독교 학교(Mere Christian school)에서도 학생들은 국민이 공통적으로 배워야할 내용을 배우지만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육을 통해 기독교인 시민으로 육성된다. 이 경우에는 선교에 대한 강조보다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영성, 성품 훈련과 기독교적 관점에 근거한 교과교육이 보다 강조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참 기독교 학교(Mere Christian school)를 정체성으로 선택한다면 기독교인 자녀들 그리고 참 기독교 교육을 받겠다고 서약하는 비기독교인 자녀들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교육 체계 내에서는 이러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대안학교의 형태로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립학교라면 응당 참 기독교 교육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미인가 학교나 대안학교의 형태가 아닌 사립학교의 구조 속에서도 이를 실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독교학교가 참 기독교 학교(mere Christian school)의 정체성을 갖기를 원한다면 이는 과감히 평준화제도 밖으로 나올 필요가 있고,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확보하여 기독교인 가정의 자녀를 선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외국의 경우는 얼마든지 이러한 참 기독교 학교(Mere Christian school)들이 사립학교로 설립되어 기독교교육의 자유를 누리고 있고, 우리나라도 민주국가라면 이러한 학교들이 사립학교로서의 자율성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불교나 유교 등 다른 종교적 전통에 서있는 학교들의 설립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할 것이다.   3. 교회교육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   오늘날 교회학교 위기는 단지 학령인구 감소로 말미암은 것만이 아니다. 차세대와 관련된 자들인 부모, 담임목사, 교육담당 교역자 그리고 교사가 이들에게 복음의 생명력을 전달해 주지 못한 데 있다. 차세대 신앙 교육은 주일교회학교만의 몫이 아니다. 이는 전 교회의 몫이다. 특히 부모, 교회, 가정, 학교가 연계하여 차세대들을 기독교 가치관으로 양육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교회학교 예배시간과 분반공부 시간에 배운 교육이 가정으로 연계되고, 그리고 학교에도 연계되어 차세대들이 일관성있는 신앙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독교 교육생태계의 복원이 중요하다. 기독교교육 생태계란 가정, 교회, 학교, 기독교 잡지, 지역사회 등을 말한다. 교회교육의 위기란 이러한 교육 생태계의 붕괴를 말한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이러한 기독교 생태계(가정, 교회, 학교, 기독교 잡지, 지역사회)가 1930년대까지는 유지되었는데, 이것이 구미(歐美)사회에서 1960년대 68문화혁명 이후로 붕괴되었음을 말해준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21세기 들어와 이러한 서구의 문화혁명의 여파로 인해 기독교교육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1) 부모가 신앙 교사 되어야   오늘날 교회학교 위기 원인에 대한 10년 간에 대한 설문 조사(2004-2013)에서 일차적인 위기 제공자가 부모라는 것이 드러났다. 교회학교 위기는 교회학교 내부의 문제라기 보다는 가정서소 부모의 신앙교육 부재에서 비롯된다. “가정의 신앙교육 부재,” “부모들의 세속적인 자녀교육,” “부모의 신앙 저하,” 등이 교회학교 위기의 일차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부모가 변해야 자녀가 변하고, 가정이 변해야 교회학교가 변한다. 교회학교 위기 극복의 첫 관제는 부모가 신앙의 교사로 세워져야 한다. 신명기 6장 6-9절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여호와 경외함을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4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5절)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6절)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7절)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8절)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조지 A. 코오(George A. Coe)는 부모의 모범을 하나님의 내적 임재의 현실로 보며, 자녀 양육의 원리로 제시하였다. 루이스 J. 쉐릴(Lewis J. Sherrill)은 자녀의 하나님 개념 형성에 미치는 부모의 행위에 주목하였다.   한국교회의 실정을 보면 교사 교육은 많고 교사 헌신 예배, 남선교회나 여선교회는 많으나 학부모 헌신 예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모가 단지 교회 다니는 신자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참 기독자 부모가 되어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자연들에게 신앙교육을 하는 교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십계명의 다섯째 계명이 말하는 바 같이 자녀 교육은 부모가 해야 하며 가정에서 시작한다. 자녀 교육은 부모 공경에서 나와야 한다. 가치관은 가정에서 형성 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모범이 된다: “부모의 의지와 성격은 자녀의 의지와 성격의 틀이 된다.”   2) 담임 목사가 차세대를 책임   여태까지 담임목사는 성인 목회를 담당하고 교회학교 교육은 교육전도사나 부목사에게 맡겨왔다. 교회 교육의 위기 상황 속에서 담임목사는 다음세대 목회의 본부장이 되어야 한다. 다음 세대가 없으면 성인 목회도 없기 때문이다. 차세대 신앙 계승은 단지 교회학교의 몫이 아니라 가정이 변하고 부모가 새로워져야 하기 때문에 담임 목사는 전 교회적인 목회로서 차세대 목회를 구상해야 한다.   3)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좋은 교사 운동: 학생과 인격적인 관계 맺고 양육   우리나라는 공교육제도, 특히 평준화제도 속에서 기독교 학교의 교육이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다. 기독교 학교가 건학이념을 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율성이 제한되어 있고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기독교교육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기독교사운동으로서 좋은 교사운동이다. 기독교인 교사가 학생들에게 좋은 신앙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교사와의 신앙 안에서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삶의 전환점이 이루는 사건을 경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이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일 아침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만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지식 전달의 성경 공부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이 학생의 마음에 파고들도록 해야 한다. 공교육 속에 있는 국, 공립학교나 비기독교 사립학교 안에서라도 독실한 기독교사는 삶과 수업, 생활지도, 학교혁신 등을 통해 기독교교육을 실천한다.   4) 가정, 학교에서 신앙 가치관 실천   교회에서 배우는 성경적 가치관이 가정에서의 신앙가치관과 연결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과 생활에 적용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신앙적 부모에 의하여는 교회의 가치관이 적용되나 일반 학교에서는 탈신앙화와 탈종교화의 현상에 직면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한다. 교회교육의 위기 요인 중에서 부모 다음으로 부각되는 것이 학교 요인이다. 학업과 신앙이 연계되지 않음, 주일에 학원에 가는 문제, 입시 위주 교육, 학교에서 반기독교적 영향 등에 직면하게 된다.   5) 교회는 학교교육 및 기독교대안학교, 기독교 홈스쿨링에 관심가지고 지원   한국교회는 주일 아침에 이루어지는 교회학교 교육만이 아니라 학교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고 기독교 학교, 기독교 대안학교, 기독교 홈스쿨링에 대해 관심가지고 지원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공립학교 다니는 학생들의 교과목에 관심을 갖고 이들이 교과목을 신앙과 연계하여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기독교 세계관 교육, 진로교육, 방과후 교실 주말학교 등이 실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교회학교는 가정을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 인식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자녀들은 교사인 부모들과 생활하여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의 지도를 받기 때문이다. 청소년 세대의 신앙 교육을 위해서는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가정, 학교, 사회의 유기적인 연계가 요청된다.   6) 한국교회 신뢰성 회복   주일학교 학생들이 감소하고 차세대 신앙의 대 잇기 위기는 근본적으로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각종 스캔들과 교회 분규가 차세대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이들이 “교회가는 것이 창피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추락은 차세대가 기독교에 대해 갖게되는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된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성직자의 품위와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응답의 비율이 1984년의 64%에서 2014년에는 85%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차세대들이 교회를 등지고 신앙을 떠나는 요인들이 되고 교회학교 학생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앞으로 한국교회의 존립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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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20-05-27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설립원장)   머리말 10년마다 한 번씩 통계청이 실시하는 종교 분포 조사에서 2015년 신자 수가 가장 많은 종교는 개신교로 나타났다.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개신교를 믿는다는 사람이 19.7%(967만명)였고,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은 15.5%(761만명)로 나타났다. 천주교는 7.9%(389만명)였다. 개신교가 1위로 종교가 되고 불교는 2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신뢰성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가 차세대 기독교 교육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한국교회 차세대 기독교 교육의 실패는 차세대의 신앙교육의 실패에 기인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육 위기는 단편적이 아니라 총체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 위기의 원인은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교육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사조, 사회, 문화 현상, 학교, 교회, 가정 등 교육 생태계가 복합적으로 시류(時流)에 휩쓸려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이를 교육생태계의 파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기독교 교육은 기독교 세계관이 내면화되지 않고 외면적으로 주입, 가정과 학교와 사회와 분리, 시류에 편성하여 인기 프로그램 도입 등으로 생명력 상실, 문화명령 및 대위임령과의 유기적 관련성 상실, 연속성 상실 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지구촌 시대와 AI 시대가 도래한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교육의 실태를 살펴보고 차세대 신앙교육을 향한 개혁신학적 이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I. 한국교회의 미래 1. AI 시대 도래 20세기가 전자 미디어에 의하여 축소된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고, 다가온 21세기 특징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의하여 패러다임의 대전환, 초스피드시대, 초융합시대, 초지능시대, 빅데이터 중시 시대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한 '산업 융합'을 말한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였다. 4차 산업혁명이 단지 가까운 장래에 닥쳐올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며, 그것이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깔린 주제였다. 4차 산업혁명은 물리학과 디지털 그리고 생물학 사이에 놓인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융합이 특징이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이전의 산업혁명들과 달리 4차 산업혁명은 산술급수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차량, 3D 프린팅, 나노 기술, 생명공학, 재료공학, 에너지 저장, 양자컴퓨팅 등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이 모든 나라에서, 거의 모든 산업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물인터넷은 공간 내 사물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돼 거주자의 패턴에 따라 별도의 지시 없이 작동한다. 3D 프린트가 광범위하게 활동되면서 건물까지 복사되듯 지어지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이용자의 소비습관을 분석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빅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2. 세계의 지구촌 시대 코로나 팬데믹은 오늘날 세계가 전자로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생명 유기체적으로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적으로 보여주었다. 전자로 인하여 축소된 세계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가 되었고, 전염병의 급속한 감염에 의하여 하나의 생명 유기체적 동네가 되었다. 이는 교통, 통신, 물류인동, 인적 이동 등으로 인하여 지난해 12월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신종코로나 전염병이 한국 대구 경북에서 대량 감염으로 폭발하고 이웃 일본으로, 그리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옮겨가더니 미국으로 옮겨가 5개월만에 2020년 5월 17일 현재 미국에서는 1백4십 여 만 명이 확진되고 8만 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세계적으로 186개국에 4백 5십 만 여명이 확진자가 되고 3십 만 여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방역으로 인해 국제 항공이 끊어지고 인적 및 물자 이동이 중단됨에 따라 국제 교역이 중단됨에 따라 세계의 경제가 급속한 식어지고 추락함에 따라 기업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으며 세계 경기의 급속한 위축이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30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주요국들이 자국에서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왔는지 추적하고 있다. 방역 대응을 위한 기초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다. 감염자에게서 바이러스를 검출해 유전체 분석을 하면 바이러스의 전염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 바이러스가 거쳐온 지역과 인종적 특성이 반영된 염기서열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아시아계, 유럽계, 미국계 바이러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아시아계는 중국발로 보고 있다. 유럽계와 미국계는 중국발이든 아니든 해당 지역에서 사회 감염이 벌어진 뒤 전파된 것이다.   세계의 지구촌 시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한국적 대응 방식인 ‘K방역 모델’이 곧 한국정부의 주도로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여는웹세미나가 그 구체적인 실례다. K방역 모델은 ‘검사·확진(test)→역학·추적(trace)→격리·치료(contain)’로 이어지는 감염병 대응 전 과정에 걸친 절차와 기법이다. 정부는 5월 초부터 3개월간 8차례에 걸쳐 웹 세미나를 열고 우리가 100여 일 간 코로나19에 대응해 온 노하우를 다른 국가와 공유한다.   3. 가치관의 혼란 오늘날 하나의 지구촌이 된 세계에서 우리 한국사회에도 국제사회에서 주요 시대적 흐름으로 지배하는 각종 세속주의 이념인 현실적 무신론, 종교적 배타주의, 종교다원주의, 물질적 성공주의와 쾌락과 향락주의 가치관이 동성애와 자유로운 성 풍조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 밀려들어오고 있다. 동성애가 성소수자의 성행위로서 차별과 증오를 받는다는 동성애 인권 논리로 포장되어 퀴어축제에서 동성애 해방이 선언되고 각종 성의 자유로운 남용이 선전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젊은 이들은 이러한 동성애와 자유로운 성 해방의 물결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표출하고 있다: “세상적 성교육이 범람하고 있다. 성경적 성교육이 무엇인지 몰랐다.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어렵고 모호하기만 했다. 심지어 성경적 성교육 강사라는 사람들 중에도 이미 세상적 가치를 섞어서 비성경적인 결론을 강의하는 경우를 보고 실망한 적도 있었다.”   4. 사회적 신뢰 상실 한국기독교는 제도적으로 제1종교로 자리 잡았으나 개신교 지도자들의 도덕적 윤리적 스캔들로 여태까지 확보한 사회적 신뢰성을 실추시키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지난 2020년 2월 7일 서울 종로구 여전도회관에서 ‘2020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 세미나’를 열었다. 기윤실이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만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교회를 종합적으로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신뢰한다’는 긍정적 답변은 31.8%에 그쳤다. ‘매우 신뢰한다’가 6.7%, ‘약간 신뢰한다’가 25.1%였다. 반대로 63.9%는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와 ‘약간 신뢰하지 않는다’가 각각 32.4%, 31.5%였다. 기독교인과 무종교인의 시각차도 컸다. 기독교인은 ‘신뢰한다’가 75.5%였지만 무종교인은 ‘신뢰하지 않는다’가 78.2%였다. 목회자의 신뢰 여부를 묻는 항목에선 ‘신뢰하지 않는다’가 68.0%로 ‘신뢰한다’(30.0%)를 크게 웃돌았다. ‘가장 신뢰하는 종교’를 묻는 항목에선 가톨릭(30.0%) 불교(26.2%), 기독교(18.9%) 순으로 답했다.   기독교가 사회적 신뢰를 받지 못하면 차세대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주게되고 차세대들이 기독교 신앙과 가치관을 갖는데 부정적 영향을 주게된다. 이들로 하여금 교회 예배나 주일학교 공부에 참석하는 것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지 않게 된다. 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도덕 윤리적 평가는 기독교교육의 생태계로서 차세대 신앙교육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5. 주일학교의 감소와 교회교육의 위기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 급격하게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2018년 65세 이상 인구가 14%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19년에는 총 인구가 감소하게 되는 심각한 인구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학령 인구의 감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교회학교 학생수가 감소하고 있다. 차세대 신앙의 위기는 단지 교회학교 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생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주일학교 위기는 학생수 감소라는 양적인 위기만이 아니라 부모, 가정, 교회, 담임 목사, 부교역자, 교사, 기독교 잡지, 기독교 학교 등 주일학교의 생태계가 무너지는 질적인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교회교육은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과 분리되어 가정교육은 실종되고, 신앙교육은 교회학교에, 세속교육은 일반학교에 맡겨져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회 차세대 위기는 기독교교육 생태계의 위기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 위기는 교회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문제요, 목회의 문제요, 학교의 문제요, 사회에 편재한 반기독교적 가치관의 문제이다.   II. 차세대 기독교 교육 한국교회는 차세대들의 신앙교육을 위하여 여태까지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고 미션학교 외에 기독교 대안학교 설립도 개교회 단위로 추진하고 있다. 기독교대안학교 설립운동도 명실상부한 기독교 학교를 구현하는 새로운 운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독교 학교교육연구소가 2012년도에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현재 134개교의 기독교대안학교가 설립되어 있다. 불과 10년 사이에 폭발적인 설립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부분 미인가 대안학교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 흐름을 국가가 인정하게 된다면 기존의 공교육 안에서 기독교 학교가 펼치지 못했던 기독교교육을 구현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것이다.   1. AI 시대 준비 독일 경제학 교수요 세계경제포럼 회장 크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4차 산업혁명을 다음같이 피력한다: “1차 산업혁명은 물과 증기의 힘을 이용해서 생산을 기계화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의 힘을 이용해서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다. 3차 산업혁명은 전기 및 정보 기술을 통해 생산을 자동화했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티지털 혁명(3차 산업혁명)을 토대로 일어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물리학, 디지털 그리고 생물학 사이에 놓인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융합이 특징이다.” 핵융합으로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수소폭탄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모든 기술과 산업이 융합하면서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한마디로 100개의 레고 조각으로 놀던 아이가 1억개의 레고 조각으로 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 전체를 인공지능(AI)이 조감하고 그 하나하나에 자율주행 역량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정도의 변화를 우리는 '기하급수적 변화'라 부른다. 왜 1차, 2차, 3차 산업혁명과 달리 이것만 기하급수적 변화일까. 그 이유는 이것이 '융합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모든 기술이 한꺼번에 융합되는 혁명이다. 4가지 융합이 일어난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신기술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인공 지능은 4차산업혁명시대를 로봇에 의하여 주도되는 사회로 이끌고 나갈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차세대는 여태까지 기성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한 이러한 인공지능에 의한 최첨단 기술문명사회 속에서 살게되면서 그 가운데서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발견해야 하는 과제에 주어져 있다.   2. 글로벌 시대의 지도자 1) 글로벌 마인드 인격 글로벌 사고(global mindset)와 글로벌 역량(global competency)은 현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집단에게 분야를 막론하고 필수요소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등한시 할 때 지구촌화(globalizaton)의 시류 속에서 다른 문화와의 원활한 교류와 소통은 불가능하다.   기독교 선교된지 이제 130여년 되고 특히 3.1운동에 참여하여 민족 종교와 교회가 된 한국 기독교는 오늘날 차세대인 청소년들을 다가오는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의 영도자로 길러내어야 한다. 오늘날 정치인들 가운데 대통령감이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물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의 지도자는 한반도의 통일을 이끌고 세계의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을 중재하는 소강국의 원만한 글로벌 인격이 되어야 한다. 구약성경의 요셉, 다니엘, 에스더는 에스라나 느헤미야 같은 민족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글로벌 지도자의 안목과 인격을 가졌다. 기독교는 이미 윤리적으로 지구촌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인격을 들러내어야 한다. 구속사적 시조인 아브람은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를 넘어서서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2) 글로벌 공동체 지도자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 한 이후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현재의 발전과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축적되고 정선된 지식과 진리를 후세에 전달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혜(知慧)를 길러준 교육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전 인류가 처해있는 현재의 위기와 다가올 미래의 위협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위해 이상적인 글로벌 공동체 완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계인 ‘글로벌 교육(global education)’이 현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 차세대들은 분단된 한반도를 넘어서 동북아 지역에 대한 미래적 안목을 가지는 글로벌 공동체 지도자의 인격으로 교육받고 길러내어야 한다.   3) 글로벌 교육 지도자 21세기에 들어오는 과도기였던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의 수많은 사람들이 영어유학이라는 이름으로 국내를 빠져나갔고, 이는 조기유학을 조장하여 가족과 이별하는 기러기 아빠들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세계 어디에도 유래가 없는 가족이 분리되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을 양산시켰다. 뿐만 아니라 정권이 뀔 때마다 급변하며 일관성 없이 추진된 영어교육정책과 이를 위해 들어간 정부의 막대한 예산도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 글로벌 교육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영어교육에 대한 지나친 몰입현상으로 발생된 일임을 우리 스스로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영어교육의 문제와 별개로 그 동안 진행되어 왔던 다문화 교육은 문화 간 동질성을 강조하고 이를 기초로 문화 별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진행되기 보다는 우리와 다른 타(他)문화 사람들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교육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국내에 ‘다문화 가정’이나 ‘다문화 아동’이라는 말들이 소개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한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들은 ‘이방인’이나 ‘취약계층’으로 분리되어 인식되는 다소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주 노동자나 타문화 이주민들에 열린 마음으로 이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수용하는 글로벌 인격이 함양되어야 한다.   3. 가치관의 정립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지구촌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원만한 인격을 가지도록 건강한 가치관을 갖도록 다음세대에게 기독교적 가치관 교육을 하는 것이 요청된다. 차세대들에게 기독교적 관저에서 인공지능을 다루는 윤리, 디지털시대를 사는 윤리, 생명공학을 다루는 윤리 등 첨단 신기술을 다루는 윤리와 가치관이 필요하다. 더욱이 이러한 시대에 동성애와 프리섹스의 해체적 성 관념이 밀려오는 시대에 기독교적인 성이해가 요청된다. 이에 특별히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한가협이다. 한가협은 "낙태, 성매매 특별법, 간통죄 폐지 등 성 관련 정책의 영적인 의미와 실태를 교육하고 그리스도인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교육을 차세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한가협(한국가족보건협회) 성경적 성교육 강사 양성 과정의 전문 강사진은 전국적으로 성경적 성교육, 동성애의 문제점, 인간의 조기 성애화에 대한 대책,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연 등을 교회, 대학교, 교육청, 청소년 수련회 등에서 해온 김지연 대표를 필두로 총 6명의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교육 커리큘럼은 낙태와 안락사 성매매, 군형법, 동성애, 동거법등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여과하고, 해석해야하는 생명윤리 분야까지 아우르고 있다.   한가협 관계자는 "전문 강사진과 협회 스텝들이 교회와 가정,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왜곡된 성가치관을 주입하는 잘못된 성교육 풍토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성경적 성가치관을 전 세대에 걸쳐 공유하고자, 지방에서도 요청이 있으면 강사진을 파견해, 지역별 전문가 양성에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4. 사회적 신뢰 회복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에만 힘쓰기 보다는 사회적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기 하기위해 교회 목회자와 신자들이 일상적인 삶에 있어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다르다”는 사회적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신뢰를 받기 위해 개선해야 할 과제로 첫 손에 꼽힌 것은 불투명한 재정 사용(25.9%)이었다. 교회 지도자들의 삶(22.8%), 타종교에 대한 태도(19.9%), 교회 성장제일주의(8.5%)가 뒤를 이었다. '한국교회가 더욱 신뢰받기 위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서는 '윤리와 도덕실천운동'이 49.8%로 응답자의 절반을 차지했다. “한국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윤리성과 도덕성 회복”이라며 “사회통합을 위해 노력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언되었다.   5. 차세대 신앙교육: 교회 학교 교육 생태계 복원 차세대 신앙을 위하여는 차세대를 신앙으로 교육하는 기독교 교육 생태계가 필요하다. 차세대를 양육하는 가정, 교회, 학교, 지역사회, 미디어, 문화 등 이들 젊은 세대들에게 기독교적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 차세대 신앙교육을 위해서는 교역자나 교회학교 교사만이 아니라 부모가 신앙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미래세대를 위하여 겨냥한 교육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요청된다. 생태계 조성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것은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하여 각종 교육봉사를 하는 것이다. 장학사업(서울 노원구 경성교회는 출석교인 150명의 작은 교회나 전체 예산의 10% 장학사업에 사용)과 학사 운영(서울 시민교회는 지방 출신 학생들을 위해 9곳 학사 운영). 지역 도서관 운영(은평 사랑교회는 은평 사랑어린이 도서관 운영, 인천 제2교회는 꿈나래도서관 운영, 성암교회는 지역사회어린이 위한 작은콩도서관 운영, 성남 고기교회는 어린이 위한 밤토실도서관 운영), 공부방과 방과후 교실 운영(성암교회는 6명의 교사가 48명의 저학년 어린이 돌봄 사역 운영, 강남구 수서동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는 다림교육 운영), 카페 운영(성암교회는 바오밥나무카페및 인문학프로그램 운영), 장애아 교육센터 운영(인천제2교회는 2001년 삼일특수교육센터 설립운영, 서울시민교회는 희망의학교 운영), 마을 공동체 만들기 운동 참여(부천시 약대동 100명 남짓 새롬교회는 가정지원 센터 설립 등 부천시 제1호 지역아동 센터 설립, 신나는가족도서관 운영 등 건강한 마을 만들기에 참여) 등은 교회의 사회적 신뢰성 회복과 함께 건강한 교육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의 구체적인 사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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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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