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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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공공신학이란 무엇인가 1
      최경환 공동대표   참된 신앙은 교회에서만이 아닌 사회 속에서 구현되어야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교회의 공공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든가 제자도의 신학을 넘어 이제는 공적인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단순히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이 직장에서 성실하고 착하게 사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신학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공공신학이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고, 국내에도 이제 조금씩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먼저 공공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공공성은 어떤 의미이며, 기존에 신학의 한 분과로 다루던 기독교윤리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 보려 한다. 일반적으로 공공성은 사적 영역과 반대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대부분은 사적인 신앙으로 환원되는 경우가 많다. 신앙생활을 개인의 신앙체험이나 내면의 영성으로만 설명한다든가, 조금 더 확장하면 교회중심주의로 이해하려는 경우가 많다. 분명 신앙의 어떤 부분은 사적이다. 하지만 공공신학은 신앙의 공적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한 명의 시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신앙은 단순히 골방이나 교회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일반 사회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공적이다.   공공신학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이후 시민사회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신학의 제반 문제들을 다룬다. 여기서 공공신학은 현대사회 속에서 민주적인 삶을 떠받치고 있는 활동 영역, 즉 ‘공론장’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이 창조 세계를 통해 드러난다고 믿는 자들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성품을 통해 그 사랑을 알 수 있고,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을 믿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공적 영역으로 나가야 하며, 이 세상의 영혼과 문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공적인 영역에서 선포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공적인 영역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복음, 교회, 신학은 항상 세상과 관련이 있고, 구체적으로 공적인 삶과 관련이 있다. 즉 복음은 창조, 역사, 문화, 사회에서의 삶, 그리고 인류애 전체를 포괄한다.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위치와 부르심에 대한 이러한 보편적인 인식은 전통적으로 신학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했다. 공공신학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적인 삶 속에서 교회의 위치와 교회의 사회적 형식, 그리고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을 주로 다룬다.  교회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항상 세상 안에 존재하며 세상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 또한 자신이 알든 모르든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공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회는 세상, 정치, 시민사회와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신학적으로 고민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공신학의 과제라 할 수 있다.   / 신학박사,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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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9
  • 선거와 한국기독교 - ④
    배덕만교수 선거와 한국기독교 - ④   근본주의·반지성주의의 실수와 기독인의 올바른 선거  한국 개신교가 근본주의적 성향을 갖는 것이 문제되는 이유는 특정한 정치집단이나 정치적 성향과 배타적으로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해방과 한국전쟁 후 강력한 반공사회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남한의 우익정권에 적응하는 성향이 강했다. 그런데 이것이 원래 기독교의 본질과 같은 흐름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한국 개신교는 보편적인 형태, 즉 성경적으로 정통성에 선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누구만의, 누구만을 위한, 특정 정치성향을 지지하는 기독교가 되어서는 안된다. 정치와 이념의 갈등 속에서 특정한 진영에 서 있는 기독교가 아니라 모두를 아우르고 제3의 지대에서 중재하고 통합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역사를 견인해 나가는 자리에 서야 한다. 시대와 역사를 초월해서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본래의 기독교로 돌아가야 한다.   보통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과 성서비평학, 그리고 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고민으로 등장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신학적 근본주의는 세월이 지나가면서 윤리 문제가 파생되고, 정치경제적 문제와 연동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근본주의는 신학적 문제(성서무오설, 세대주의종말론)만 관심을 갖는데, 윤리적으로 가니까 복제문제, 낙태문제, 동성애문제가 이슈가 됐고,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여기에 반공, 친미가 한국 근본주의에서 중요한 아젠다라고 다뤘다.   오강남교수(리자이나대 비교종교학)는 모든 종교는 심층과 표층이 있다고 말한다. 보다 진리를 추구하는 차원이 있기도 하지만, 종교의 힘을 빌려 현실 문제 해결하려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근본주의의 상당수가 후자, 표층적 종교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신학적으로 출발했는데, 성서비평학이나 진화론, 과학의 발견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학문의 장에서 진지하게 대결하지 않고, 오히려 현대신학이 무신론적이고 세속적 인본주의라고 봤다. 세상의 학문적 발전을 악마의 궤계로 폄하했다. 그래서 일반대학 내의 신학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순수하게 성경과 교리만 가르치겠다는 ‘성경학교’ 혹은 ‘성경대학’에 진학하고 목회자로 사역했다.    기독교 본질에 대한 공부필요, 신학자와 목회자의 몫. 이런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세상 학문을 비난하고 과학적 성취를 반기독교적이라고 가르쳤다. 미국의 경우 보수적인 정권의 지지자 중에는 이런 분위기에서 교육받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것들이 먹혀들어가는 것이 반지성주의의 폐해다.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근본주의적 신앙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총체적이고 상식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한국교회를 약화시키는 근본주의와 반지성주의를 극복하고 올바른 신앙적 기준에서 행동할 수 있을까. 결국은 공부다. 한국 현대사와 한국 기독교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공부,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마치 진리인 듯 뿌려지는 기도제목 이라는 명목의 가짜 뉴스 등에 반대되는, 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노력들이 교회와 단체마다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계몽시킬 책임은 목회자와 학자들에게 있다.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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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2
  • [신학] 선거와 한국기독교 3
    배덕만 교수                                       그리스도인은 현실에 대한 날카롭고 예언자적인 태도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이 글을 마치며 이상에서 선거의 역사를 간략히 살피면서, 각 선거에서 개신교가 참여ㆍ대응했던 방식도 함께 검토했다. 이제. 이런 역사와 제언을 토대로 곧 총선을 앞둔 개신교인들을 향해 몆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이번 선거을 통해, 개신교는 특정 이념 및 정당과 자신을 배타적으로 동일시 해왔던 오랜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 분단과 냉전을 배경으로 남한에서 재구성된 개신교는 ‘반공, 친미, 친자본’의 전위대로 맹활약을 해왔다. 덕택에, 특정 권력층이 부여한 특혜와 특권을 누리면서 오랫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특권적 지위를 획득ㆍ유지하기 위해, 개신교는 복음을 타협하고 예언자적 책임도 회피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황금기는 막을 내렸다. 따라서 특혜와 특권을 부여했던 특정 정권 및 이념과의 밀월관계도 청산하고 철저하게 “백의종군”해야 한다. 그래야 "빛과 소금"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착오적 극우세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둘째, 당분간 광장에서 함성을 멈추고, 골방에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분명히, 개신교가 한국의 문화를 선도하고, 정치와 경제를 이끌었던 때가 있었다. 수와 양은 여전히 소박했지만, 사회적ㆍ문화적 영향력은 비범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해방 이후 개신교는 몸집이 급속도로 거대해지고 힘도 막강해졌다. 장로 대통령을 만들어 내고 법안을 폐기시킬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전성기가 막을 내리자, 광장에 모여 폭언과 망언의 말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장에 빈번히 다수가 모여 막말을 쏟아낼수록, 사회의 반응은 싸늘해지고 혐오감은 급상승했다. 동시에, 개신교 내부의 모순과 오류가 만인의 상식이 되면서 어느 새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분명히, 개신교가 담대히 광장으로 나가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광야와 골방으로 물러날 때가 아닐까? 분명히 세상이 듣도록 함성을 외쳐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침묵하며 자신을 성찰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셋째, 이익집단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ㆍ공적 종교로 성숙해야 한다. 그동안 선거에서 개신교가 보여준 모습은 과거에 향유하던 특권을 유지 혹은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정치 집단과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선거의 존재 이유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그 순간 개신교는 자신이 또 하나의 이익집단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기적 욕망으로 끊임없이 분열하고 갈등하는 세상에서 보편적 가치와 공적 진리를 전파하여 상생과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고등종교의 본질이고 사명이다.    그런 숭고한 책임과 역할을 포기하는 종교는 단지 미신과 사이비일 뿐이다. 따라서 개신교가 이기적 욕망에 집착하여, 보편적ㆍ공적 가치를 외면할수록 한국사회에서의 입지는 빠르게 축소될 것이다. 반면, 타자를 존중하고 공동체적 이상에 충실할수록,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용기 있게 내려놓을수록, 한국사회는 개신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이번 선거가 개신교에게 성숙과 변화의 기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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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2
  • [신학] 위기의 한국교회와 하나님나라의 문화공동체
      김선일 교수                                                   오직 교회만이 자신들 밖의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복음의 문화와 구원의 문화가 교회 내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인의 세계관과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면, 두 문화의 확립을 토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핵심 실천인 선교와 전도의 문화가 조성된다고 볼 수 있다.  ‘선교’의 원래 뜻은 세상으로 보냄 받음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도는 개인의 회심을 목표로 한다. 선교는 세상에서 복음을 구현하는 삶이라면, 전도는 그 복음에 기초한 개인을 위한 구원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선교학자 데이나 로버트(보스턴대)가 비유한 것처럼, 선교와 전도는 몸과 심장의 관계와 같다. 선교가 총체적 사역이라는 측면에서 몸에 비유할 수 있다면, 전도는 생명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심장과 같다는 의미다.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선교 사역에는 교육, 의료, 환경운동, 정의구현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선교적 실천들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것은 바로 복음전도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의지하는 인간으로 거듭남이 없이 선교는 지속적인 추동력을 지닐 수 없다. 이는 전도와 선교의 유기체적 이해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니는 추동력을 강력하게 견지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선교적 방향성을 겸비하게 해준다.   선교학자 데이비드 보쉬나 레슬리 뉴비긴 등에 의해서 선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내심에서 유래하며, 하나님이 세상과 이웃에서 역사하시는 일에 대한 민감한 관심과 참여라는 인식을 기초로 최근 선교적 교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선교적 교회론이 ‘하나님의 선교’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에큐메니컬 선교운동에서 기본 착상을 빌려온 것은 맞지만, 복음주의 권의 선교적 교회론은 하나님-세상-교회라는 구도에서 의존하지 않고, 전통적인 하나님-교회-세상이라는 구도를 확대 갱신하였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어떠한 일은 하시는가?’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언하는 공동체로서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욱 근본적으로 던진다. 선교적 교회론이 공동체를 중요하게 다루며, 하나님의 선교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선교적 교회론은 선교적 문화, 즉 선교적인 공동의 생활 양식을 촉진해야 할 것이다. 이는 또한 개인에게는 선교적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게 할 것이다.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은 “교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다”라는 심오한 선언을 남겼다. 나치에 항거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또한 “교회는 오직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 교회가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선교는 교회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리듬이 지역과 이웃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선교적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단순히 세상을 위한 몇 가지 선한 실천들을 간헐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타인을 향한 관심과 환대의 리듬이 형성되게 하는 것이다. 교회 건물과 집회 지향의 삶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이웃을 돌아보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실천이 아닌, 소그룹과 공동체가 함께 헌신하고 상상하며 참여하는 생활의 양식이어야 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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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2
  • 웨슬리신학연구소서 3월 설교연구모임
      ◇서울신학대 웨슬리신학연구소는 「하나님의 편재하심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설교연구모임을 진행했다    서울신학대학교 웨슬리신학연구소(소장=김성원교수)는 지난 6일 이 대학과 온라인에서 「하나님의 편재하심에 대하여」란 주제로 설교연구모임을 진행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주제와 동일한 제목의 존 웨슬리의 설교를 함께 읽고 그 의미를 모색했다. 특히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임을 살펴보았다.    이 연구소 소장인 김성원교수는 “성경을 보면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증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시편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고백하고 선포하고 있다. 존 웨슬리 목사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주제로 설교한 것은 성경말씀에 충실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면서, “웨슬리목사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에서 발견한 윤리적 교훈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즐거워하라고 하는 마지막 권면은 우리에게 특별히 귀중한 영감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또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로 파악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라는 교훈도 분명히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성경의 더욱 깊은 가르침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이며 동행이며 교제를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면서,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은 우리를 어디에서나 감찰하시지만, 그 눈은 우리를 가시덤불 속에서 발견하고 구원하시려는 선한 목자의 눈길임을 우리는 새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무소부재, 하나님의 편재는 궁극적으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의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면서, “연약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마누엘 함께 하심은 우리의 영원한 축복이며 영원한 감사의 제목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토의시간에서 강춘이전도사는 “하나님의 편재하심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웨슬리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동의하며 성령님의 깨달음을 구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최병은목사는 “당장 강당에 올라가서 그대로 읽고 전해도 웨슬리의 설교는 현재성을 갖고 있고, 설교를 읽을 때 감동이 있으며 역동성이 있다. 코람데오의 신앙은 요셉이야기를 많이 인용하는데, 믿음의 사람은 코람데오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죄의 유혹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신앙은 주님과의 독대시간을 통해, 성령의 조명을 받는시간을 통해 이루어 갈 수 있다”고 밝혔다.    류재성목사는 “오늘날 웨슬리에 대한 새로운 적용과 질문들이 필요하다”면서, “웨슬리가 편재성에 대한 설교를 당시 18세기 영국사회에 대한 것으로 적용했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이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한 신학으로부터 새로운 적용이 필요해 보이는데, 예를들면 소외, 불안, 분열, 갈등 등을 겪는 자들에게 그들 가운데도 편재해 계시는 하나님의 회복을 우리는 전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류박사는 “편재하심은 부활신앙에도 중요한데, 이 부활신앙은 도마와 막달라마리아와 같이 경험될 수 있다”. “예수의 몸에 손가락을 넣어 본 도마가 있는가 하면, ‘나의 몸을 만지지 말라’라는 명령을 들은 막달라 마리아도 부활의 경험을 강하게 체험한 것이다. 이처럼 편재하심이라는 것도 손에 쥐는 것(도마)만을 의미하지 않고, 내어줌, 비어주는 것(막달라마리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교계종합
    • 일반
    2024-03-10
  • 사단법인 느헤이먀 사역을 소개한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신학 연구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 땅에 하나님나라 구현과 한국교회 발전과 개혁에 헌신   사단법인 느헤미야(이사장=이문식목사)는 ‘하나님나라의 구현과 한국 기독교의 재구성’이란 비전으로 2010년 시작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성장해, 2019년에 공신력을 가진 단체로 법인화된 이름이다. 이 단체는 처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라는 이름으로, 한국교회의 퇴보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잃어가는 것을 목도하던 소수의 신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 하며, 이 땅의 교회를 다시 일으키고자 한 개의 벽돌을 쌓는 마음으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작은 무리의 사람들로 시작한 움직임이 이제는 수많은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다양한 과정에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인격적으로 배우고자 몸부림치는 동역자들로 확장되고 있다.   창립 당시 기독연구원은 한국교회가 연약해진 이유가 신학의 부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평신도를 위한 신학교육을 통해 한국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후에 평신도뿐 아니라 목회자들을 위한 재교육 역시 필요하다는 상황을 인식하고, 이제는 목회자와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는 신학교육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신학교의 입문 과정부터 신학대학원의 석사 수준의 다양한 과정이, 학식과 인격에 깊이 있는 교수진들과 함께 구성되어 있다. 기독연구원은 매 학기제로 수업이 진행 중이며, 진지하고 심도있는 신학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구현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느헤미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 사명은 ‘교회협의회 느헤미야 ’를 구성하게 된 과정이다. 교회협의회는 기독연구원의 신학적 성과들을 공유하면서 각 교회 현장에 적용할 기회를 만들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다. 기독연구원에서 교육을 받고 현장으로 나가게 될 목회자 후보생들을 구체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하여, 바른 목회자로 세우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동단체는 평신도를 하나님나라 신학으로 무장하여 교회개혁의 주체로 세우는 일과 더불어,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은 일꾼들을 안수하고 잘 훈련시켜, 각자의 소명에 맡는 사역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단체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약해져 가는 한국교회를 되살리고자 하는 사명에 지속적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와 ‘교회협의회 느헤미야’라는 두 날개로, 하나님나라와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 단체는 △교회 및 단체, 교육기관의 연합사업 △전도, 국내선교외 사회선교 △교회개척 사업 △신학교육 및 목회자 재교육 △남북통일사업과 남북교회의 협력사업 △소속기관의 권익보호와 법률적 보호 △성서연구와 교육 및 보급 △청소년 및 청년 선교사업을 주요사업으로 헌신하고 있다.   이들은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구하고 한국교회가 새롭게 일어나는 일에 헌신하고자 하는 동역자들에게 함께 하자고 손짓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이 작은 사역의 한 걸음이 한국교회의 남은 그루터기에서 새싹을 틔우는 귀한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이 사역에 동참할 교회와 성도를 초청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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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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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학술원, 유신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대응
    기독교학술원의 월례포럼에서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에 대한 문제를 신학적으로 토론했다.  먼저 김영한박사는 “이 이론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세계창조 이해에 관한 타협이론이다”며, “이는 창조과정을 진화과정으로 여기고 피조물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진화과정 속으로 제한시키며 자연과정을 우선시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유신진화론은 “인간이 진화 역사를 겪었다면 이미 여러 동물에서 진화된 다수의 사람이 존재해야하므로 아담이 유일한 첫 사람이라는 성경기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박사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우주는 오랜 시간 동안 자연선택과 같은 진화과정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본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연과정을 초월한 주권적 행위를 통해서 창조하셨음을 부정한다. 또 “진화와 지질시대표와 빅뱅우주론은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신념 때문에 오히려 성경을 과학적으 해석하고 증명하려고하는 모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김박사는 “진화론의 기본가정은 ‘우연’과 ‘생명의 자연발생’이다. 우연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진화론은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우연의 결과로 설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또 “과학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떤 과학자도 우연을 전제로 연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며, “우연을 전제로 하게 되면 어떤 현상의 정확한 원인을 찾기 보다는 우연의 결과로 설명하게 됨으로써 많은 과학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탠리 재키(Stanly L. Jaki)가 <과학과 진실>에서 “오늘날 우연은 하나의 법칙, 모든 법칙 중 가장 일반적인 법칙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오직 무지와 무관심으로 벨 수 있는 가장 교묘한 베개이다”는 언급을 인용했다. 이어서 한윤봉교수(창조과학회장, 전북대)가 「타협이론에 대한 과학적 비평」이란 글을 발표했다. 한교수는 빅뱅우주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폭발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은 폭발물질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폭발은 종류와 크기에 상관없이 그 결과는 항상 무질서이며, 폭발로 생긴 무질서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스스로 질서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대폭발에 의해서 우주가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고의 아름다움과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가진 우주로 진화했다는 주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주의 무질서는 증가 한다’는 열역학 제2 법칙에도 위배되는 주장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와 물질을 아주 작은 특이점에 가둬둘 수 있는가? 그 에너지와 물질은 어디서 왔으며, 특이점은 무슨 이유로 폭발했는가?”라는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논평자로 나선 허정윤연구원은 “이른바 ‘과학적 창조론’의 문제점은 신학적 논쟁점과 과학적 논쟁점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판의 대상인 진화론을 직접 겨냥하지 않고, 엉뚱하게 지질학을 공격하는데 헛심을 쏟아 붓는다”며, “더욱이 <창세기 대홍수>의 울타리에 갇혀 젊은 우주론이나 홍수지질학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이다”고 지적했다. 결국 “아직까지 사실성을 입증하지 못한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현대 일반인들에게는 물론 기독교인들에게도 설득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 창조과학회장 한윤봉교수는 ‘빅뱅 우주론’은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 기독교학술원 월례포럼에서 유신진화론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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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0
  • [오늘의 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10)
    ▲ 소기천교수   예수의 첫 설교는 누가복음 6:20에 나온다.  예수의 첫 설교를 풀어내는 서언이 ‘그가 눈을 뜨고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내용을 보면, 우리는 예수께서 공생애의 첫 설교를 기도와 묵상 중에 준비하신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사실은 기도를 강조하는 누가복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간을 많이 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정독하면서 ‘기도’라는 단어가 나올 때 동그라미를 쳐가면서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노트해보라.  누가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무슨 일에 앞서서 기도하는 장면을 먼저 설정하고, 그 후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기도의 응답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어서 예수의 설교는 4개의 축복 선언과 4개의 화(저주) 선언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예수의 첫 설교가 지닌 도식은 마태복음에 팔복 선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누가복음은 예수말씀의 도식을 그대로 유지한다. 예수의 첫 설교에 나오는 첫 번째 축복 선언은 다음과 같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과 대조되는 그룹으로서, 예수 당시 사회계층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부자는 당시에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던 자들이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첫 마디를 가난한 사람들의 축복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예수말씀 공동체에게 커다란 격려와 위로가 된 것이 분명하다.  바로 예수의 제자 공동체로서 갈릴리의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담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말씀의 가장 커다란 주제이다. 누가복음의 여러 곳에서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이며 동시에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현실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한편 예수말씀에 나타난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묵시문학적 역사 결정론을 청산하면서 먼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의 개입을 앞당겨서 바로 여기에 이미(already) 시작되고 있는 것을 선포한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현재하는 활동성을 강조하며, 단지 하나님의 나라가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시간을 내포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말씀에 나타난 미래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의 한복판에 실현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 아직 아닌(not yet) 상태로 남아 있으므로, 미래에 성취될 구원의 내용을 선포한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하나님의 주권이 완전하게 성취될 공간을 내포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이면서 동시에 미래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양가적 의미는 우리에게 종말론적 실재를 일깨워준다.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현실이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실현된 것이라는 선취적 의미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이미 실현된 현재의 하나님 나라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여전히 미래에서 종말론적으로 이루어질 이관된 후취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예수의 첫 설교는 우리가 천국 시민으로서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야 할지를 보여준다. 곧 우리는 가난하지만 부유한 자처럼 살아야 하고, 현재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계속해서 동경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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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17
  • “임시정부는 기독교가 주도한 정부”
    ▲ 서울신대 박명수교수는 임시정부의 성격에 대해 신학적으로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임시정부는 기독교가 주도한 정부로서 주요인사는 기독교인 “대한민국은 하나님과 인간의 뜻이 하나가 돼 만들어졌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임시정부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높아진 가운데 박명수교수(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가 상해임시정부의 성격과 대한민국 사이의 연속성을 신학적으로 연구한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박교수는 “임시정부는 기독교가 주도하는 정부였다”고 주장했다. 1919년 4월 11일 만들어진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당시에는 최고 지도자)는 이승만이었다. 내무총장은 안창호, 외무총장은 김규식이었다. 박교수는 “안창호는 나중에 미국교포들의 헌금을 가지고 임시정부 건물을 얻고, 월급을 주었으며, 김규식은 파리에 가서 우리의 대표로 활동했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인들이었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상해에서 만들어진 임시정부의 헌장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박교수는 전문, 10조, 선포문으로 구성된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을 신학적으로 분석했다. 박교수는 “첫째, 전문에 대한민국은 하나님과 인간의 뜻이 하나가 되어서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전문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문장이 ‘神人一致’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나라라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또 “헌장 7조에 ‘大韓民國은 神의 意思에 依하야 建國한 精神을 世界에 發揮하며 進하야 人類의 文化及 平和에 貢獻하기 爲하야 國際聯盟에 加入함.’이라고 하는데, 이 뜻은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뜻으로 인류의 문화와 평화에 공헌하기 위해서 세워진 나라라는 것이다”고 해석했다. 간단히 말해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택하신 나라라는 주장이다.  계속해서 박교수는 “선포문에 우리민족이 바로 ‘神의 國의 建設의 貴한 基礎이니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대한민국은 앞으로 하나님이 건설하실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며, “이것은 대한민국은 단지 지상의 한 국가가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이 세우실 우주의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나라는 군주제가 아닌 ‘공화국’으로 가야한다고 당시 임시정부는 생각했다. 박교수에 의하면 당시에는 두 종류의 공화국이 있었다. 하나는 민주공화국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공화국이다. 박교수는 “민주공화국은 이미 오래 동안 서양에서 실시되던 정치제도로서 독립협회 때부터 들어왔다. 인민공화국은 1917년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에서 시작되었다”며, “하지만 우리 민족이 택한 것은 인민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임시정부 헌장 제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선언하고 있다. 박교수는 “사실 이것은 2.8독립선언에서도 나오는 것이다”며, “이 선언서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는 우리나라가 독립된 다음에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선진국의 범(範)을 수(隨)하여 신국가를 건설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새로운 나라는 서구민주주의 국가를 따라 만들어 진다고 하는 것이다”고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박교수는 3.1운동을 통해 설립된 임시정부와 현재 한반도 상황을 분석했다. 박교수는 “현재 한반도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다. 하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이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일성의 빨치산 운동에 기초한 나라로서 인민의 공화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에 기초한 나라로서 민주공화국이다. 우리 기독교는 이런 민주공화국을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또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3.1운동으로 만들어진 임시정부에 기초해서 세워진 국가이며, 그 밑바닥에는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1948년 5월 제헌국회에서 이윤영목사가 대표기도를 했고, 1948년 7월 초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승만은 “하나님과 국민 앞에서 올바로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고 취임 선서를 했다. 결론적으로 박교수는 “이런 모습은 1919년 임시정부의 선포문과 비슷하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라이며, 그 사명은 인류의 문화와 평화를 증진시키는데 있고,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될 나라라는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교수의 주장이 소위 ‘건국절’논란 속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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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17
  • 한복협 포럼서 이상원교수 분석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에게 없는 능력 맹신하다 실패 “이성애적 규범이 철폐된 사회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달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정기포럼에서 이상원교수(총신대·사진)는 우리사회에서 계속되고 있는 동성애 합법화 시도에 대한 비판적 글을 발표했다.  이교수는 이처럼 동성애 합법화 시도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그 배후에 이 강력한 이데올로기적인 시대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시대사조로서 이교수는 세 가지를 지적했다. 하나는 철학적 배경인 신마르크스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윤리적 배경인 후현대주의적 상황윤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학적 배경인 퀴어 신학이다. 이 셋 중 현대 동성애 운동의 주요한 배경인 신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교수의 비판은 매우 뛰어나다.  이교수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가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는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였다. 그러나 이 사회는 처음부터 실패로 끝날 운명을 안고 탄생한 유토피아였다. 이교수는 “능력을 다하여 일하고 나서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기 위해서는 이타적이라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 정도로 이타적일 수가 없다”며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이 가지지 않은 능력 위에 사회를 세우려고 했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창의성은 죽었고 생산성은 하락하여 경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새로운 사회변혁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프로이드의 성 심리학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교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부르주아 계급에 이성애자들을 대입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동성애자들을 대입한 후에 현존하는 사회의 문제는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을 억압하는 것으로 보았다”며, “이들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사회는 이성애적 규범으로부터 해방되어 동성애자들이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지는 사회였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신마르크스주의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사실상 동성애는 도덕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의료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유토피아이다”고 이교수는 비판했다. 또 “적어도 서구사회 안에서 신마르크스주의적인 성해방운동이 하나의 시대사조로서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실현 불가능한 성해방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강박증이 납득이 안 될 정도로 집요한 동성애 합법화운동의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에 대한 이성애적 규범이 철폐된 유토피아적인 사회를 꿈꾸는 것은 진정한 이상사회를 향한 인류의 잠재된 욕망의 병적인 표현이다.   이교수는 교회의 대응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교수는 “교회는 이성애적 규범이 철폐된 사회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분석하여 비판하면서 참된 이상사회는 성경이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임을 설득력 있게 선포할 필요가 있다”며, “이것이 가장 강력하고 근원적인 대응책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마르크스가 등장하여 활동을 시작한 본거지가 영국이었고, 당시 영국은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사회로서 사실상 마르크스 혁명이 터질 곳이었다”고 이교수는 지적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존 웨슬리가 등장하여 성령의 힘과 강력한 복음을 들고 탄광과 노동자들 속으로 뚫고 들어가 복음의 소망으로 이들을 위로하고 끌어 들이는 일에 성공했기 때문에 영국이 폭력혁명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이교수는 덧붙였다. 결국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성경적 입장이 확고해야 한다. 보통 동성애 찬성하는 측은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는 레위기 18장 22절이 신약시대에는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의식법에 속한 규정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상원교수는 “이 본문은 의식법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적용되는 도덕법으로 보아야 한다”며, “구약시대에 의식법을 범한 경우에는 며칠 동안 격리하는 정도의 처벌을 받았으나 도덕법을 범한 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받았고, 동성애를 범한 죄는 사형의 벌을 받아야 했다”고 강조했다. 성경의 확고한 진술을 약화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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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03
  • 기독교학술원, 월례포럼서 우생학 토론
    ▲ 기독교학술원 월례포럼에서 김광연박사가 우생학과 신 놀이에 대해 발표를 했다.  우생학 앞세운 나치정권은 장애인 학살자행인공지능의 능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생산품’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박사)의 월례포럼이 좥우생학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성찰좦이란 주제로 14일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열렸다. 개회사에서 김영한박사는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이란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상이으로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우생학의 기본 전제는 각종 차별을 합리화하는 근거가 되었다”며, “독일 우생학을 앞세운 나치 정권의 경우 가장 먼저 환자들과 신체장애인 및 정신장애인을 탄압했으며 이후 장애인과 성소수자, 유태인 등을 학살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간은 유전공학을 창조주께서 뜻하신 생명 존엄과 생명 질서에 순종하면서 사용해야 하고, 생명공학 기술은 인간 개인의 존엄성 회복과 생태계의 보존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도록 조화와 균형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광연박사(숭실대)가 좥신체개량 기술에 관한 신학적 성찰. 개량주의 우생학과 신놀이를 중심으로좦란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김박사는 “생명공학 시대에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변형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며, “성서적인 관점에서 유전공학 기술은 인간이 하나님의 지위에 있는 바벨탑의 꼭대기에 오르려고 한다. 인간은 생명의 시작이나 끝에 대해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고, 신적인 전능성의 역할인 행위의 결과나 과정을 통제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실존은 생명공학시대에 더 이상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다. 김박사는 “복제기술, 줄기세포 치료, 유전자 편집, 면역력 강화제, 인지기능 향상 기술, 노화 억제제, 수명연장과 관련한 인체냉동 보존술, 로봇기술로 인한 인체장기 등 많은 기술이 속속히 선보이고 있다”며, “생명공학 기술로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박사는 “생명공학 시대에 과학기술을 통해 인류의 생명이 연장되고 죽음을 초월하는 영원히 살 수 있는 호모 데우스가 되어간다면 우리는 신의 존재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어 이상원교수(총신대)가 논평을 했다. 이교수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가진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놀라운 연산과 추론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생명체는 아니다”며, “인간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생명으로서 영혼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든 작품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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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24
  • 케냐 김동희선교사 현지선교 보고
          70% 기독교 인구에도 타종교 제외하면 개신교 10% 내외에이즈와 조혼, 일부다처제 등 풍습으로 학생 2/3가 고아 동부아프리카 케냐 김동희선교사(사진)는 지난 15일 세계선교연대총회 본부에서 현지 선교현황 보고를 진행했다. 2000년부터 사역을 시작한 김선교사는 14만 평의 대지에서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김선교사는 “케냐는 아프리카에서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국가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빈곤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상당한 해외 원조에 의존하고 있어 선교의 한 방편으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케냐는 기독교 국가로 알려져 있다. 전 국민의 70%를 넘어서는 단계에서 더 이상 케냐는 선교사의 독립적인 교회 개척이나 교단을 세우고 확장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개신교의 경우 체감으로 10%내외로 열악한 상황이다”고 전했다. 특히 “긴급식량 구호, 의료선교, 주택 개선 사업, 우물 사업 등이 선교의 접촉점이 되어 교회개척에까지 연결되는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다”며, “케냐는 에이즈의 만연으로 인해 고아들이 많다. 에이즈가 아프리카의 인구분포마저 기형적으로 만들어버렸다. 평균수명은 다시 50년대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있고, 평균수명이 50세에 불과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2009년도에 인천 만수감리교회 파송선교사로 출발하여 현재 300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선교사는 학생들의 2/3가 고아임을 밝히고, 조혼과 일부다처제 에이즈 등으로 8백만명의 고아들이 생기는 등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밝혔다. 김선교사는 “아프리카에서는 만성적인 물 부족으로 인해 비를 불러오는 사람을 신격화하는 문화가 있다”며 “처음 선교를 시작하며 산 정상에서 이들을 위한 기도할 때마다 비가 내려 주민들이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며, “우물하나에 의지하여 30km를 물을 뜨러 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식수문제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케냐는 국제 기준과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치인 1인당 약 627㎥의 수자원을 보유한 물 부족 국가로, 물 사용량은 1년에 약 30억㎥이지만, 4천500만 명 중 약 1천750만 명의 사람들이 안전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김선교사는 “처음 자비량으로 선교를 시작했으나 현재는 학생들도 늘어나 매월 12천불의 비용이 필요하다”며, “소6마리만 주면 9살 여자아이와 결혼시키는 문화에서 여성선교사로서 극복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또 “케냐 정부의 허가를 받고 교회와 유치부, 초중고등학교까지 인가된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신앙을 배우고 있다. 기독교 교육을 매일 시키면 안되는데 하루에 한시간씩 집중적으로 신앙을 가르치고 있다”며, “새멱기도와 저녁예배를 함께하고 성경읽는 시간을 통해 영성도 함양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한국교회의 기도와 성도들의 기도 덕분이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현재 김선교사는 지난 2003년 7월 6일 1년여 공사 끝에 에마오이덕천교회 입당예배를 드리고 확보한 대지에서 다양한 사역을 준비중이다. 케냐 현지에서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이 더욱 확대되기 위한 한국교회의 기도와 관심이 촉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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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24
  • [오늘의 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7)
      두 번째 시험(누가복음 4:9-12)에서 “마귀가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말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너 스스로 뛰어내려 보아라.”고 말한다. 예루살렘은 예수말씀에 있어서 율법과 제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종교적 중심지이다. 최초의 복음서인 예수말씀을 복원하면서 학자들은 누가복음 4:9에 “성전”이란 단어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란 단어를 복원할 수 있었다. 갈릴리를 거점으로 활동하였던 갈릴리 공동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추방된 공동체이었지만, 바리새인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유대 율법에 대해서 지극히 보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보수적인 경향성이 갈릴리 공동체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강한 향수를 갖게 하였다. 원래 예수의 시험이야기는 마태복음의 순서대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누가는 예루살렘의 중요성 때문에 둘째와 셋째를 뒤바꾸어 예루살렘 중심성의 신학을 확립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는 복음 선교의 확장을 강조하게 된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마지막(24:47-49)과 사도행전의 시작(1:8)이 서로 상응하면서 초기교회에서 예루살렘이 지닌 지리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누가는 예수의 공생애를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여정이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마지막 한 주간 동안에 고난당하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으로 누가복음의 내러티브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마가복음이 예수의 승천이야기를 2세기에 추가된 또 하나의 결론부(마가복음 16;9 이하)에서 전해주고 있지만, 사실상 예수의 승천이야기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기록되어 있던 이야기이다. 예수의 승천에 관한 가장 최초의 기록에 관해서 누가복음 24장과 사도행전 1장을 읽어보라. 예수 승천의 장소도 예루살렘의 황금 문 건너편에 있는 감람산 인근이다. 이곳에 유대인의 무덤이 상당수가 놓여 있다. 그것은 메시아가 예루살렘 동쪽에서 오신다는 신앙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성지를 가면 황금사원을 중앙에 놓고 흔히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현재 황금사원은 이슬람 모스크이다. 기독교인의 성지는 황금사원 오른쪽 뒤에 있는 검은색 지붕인 성묘교회이다. 골고다에서 예수께서 죽으신 갈보리 언덕이다. 감람산의 눈물교회 예배당 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우신 것을 기념하는 바로 그 위치에 검은 십자가가 있는데 유리창 너머로 그 눈물교회의 십자가가 가리키는 정중앙에 성묘교회가 위치하도록 사진을 찍으면 은혜가 된다. 마귀의 시험은 계속된다. “기록된바, 그가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 받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라 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기록된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다.” 이슬람교는 엉뚱하게 이 구절을 가지고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꿈에 천사 지브랄(가브리엘)과 함께 말을 타고 예루살렘에 갔다고 하면서 희한한 전승을 꾸며내고, 급기야는 예루살렘의 황금 문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신다고 하니까 두려워서 돌로 막았다. 이 얼마나 우습고도 거짓된 신앙인가? 마귀에게도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신 것처럼 마호메트에게도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19-02-17
  • 이덕주교수 한국교회 갱신방안 발표
    ▲ 이덕주교수는 ‘쳐다보는 십자가’가 아닌 ‘지는 십자가’의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사진은 보름스의회에서 황제 앞에서 당당히 개혁신앙을 밝히는 개혁자 루터의 그림이다).   한국교회 120년 역사 동안 참된 의미의 종교개혁 경험이 부재 ‘무너지는 교회’와 함께 ‘세워지는 교회’도 볼 필요성 제기 한국교회는 ‘선교 기적’이라 불릴 정도의 폭발적인 부흥과 성장을 이룩했고, 오늘날 인구대비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내는 선교국가가 됐다. 그 외에 종교재판과 교회 분열, 정통과 이단의 역사,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 건축, 수도원과 사회구제, 십자군 같은 공세적 전도활동과 해외선교, 교회와 세속 권력 사이의 갈등과 타협 등등 서구 기독교 2천년 역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건들을 한국교회는 120년에 체험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아직 체험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이덕주교수는 이렇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답은 바로 “종교개혁”(reformation)이다. 이교수는 “한국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뿌리 채 뒤집혀’ 체질적으로 새롭게 된다는 의미에서 종교개혁을 아직 체험하지 못했다. 물론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 종교개혁에 대한 설교나 강연, 책이나 논문이 없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았다. 문제는 말과 주장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점이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는 마치 독일에서 시작됐던 종교개혁 전야와 같은 상황이다. 여기서 이교수는 ‘십자가 신학’을 주목했다. “교회가 타락하고 몰락할 때마다 ‘십자가’가 재등장하였다. 교회의 근거이자 존재 이유인 ‘십자가’를 재발견한 개혁자들의 메시지와 실천을 통해 교회는 다시 세워지는 역사를 반복하였다”고 이교수는 설명했다. 그래서 ‘부자와 권력자’를 위해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빌어주는 ‘번영의 신학’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신학이라면, 자발적 청빈과 순결, 고난과 희생을 실천하는 ‘십자가 신학’은 교회를 세우는 신학이다. 한 세기 전, 처음 기독교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왔을 때 “교회는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는, 말 그대로 ‘복음’(glad tiding)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가 바뀌었다. 강단의 메시지도 바뀌었다. 십자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축복이 차지했다”고 이교수는 분석했다. 그렇다면 무너지는 교회의 혼돈 상황을 바라보며 분노하고 실망만 할 것인가? 이교수는 “그럴 수는 없다. 역사의 주인,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혼돈과 공허, 흑암과 절망의 현실 너머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창 1:2)을 보고 거기에 희망을 건다”고 대답했다. 무너지는 교회와 함께 세워지는 교회도 보아야 한다. 무너지는 교회에 대하여 분노하고 질책하면서 동시에 세워질 교회에 대한 희망을 선포해야 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러했고 신약의 사도와 제자들이 그러했으며 기독교와 인류 역사에서 교회가 타락하고 몰락할 때마나 나타난 종교개혁자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개혁자들의 신학사상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바로 ‘십자가 은총’이다. 이교수는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로마가톨릭교회를 세우면서 내걸었던 ‘하나님의 도성’ 신학이 어거스틴의 ‘십자가 은총’에서 출발하였음은 물론이고 중세 클루니수도원 개혁운동의 신학적 배경이 되었던 버나드와 안셀무스, 프란체스코의 신학과 수도생활도 십자가의 은총과 겸비, 그 실천이었다. 그리고 중세를 끝장 낸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의 신학도 십자가 구속의 은총을 재발견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오늘 붕괴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다시 세워진다면 그것은 십자가 신앙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은 쳐다보는 십자가, 걸고 다니는 십자가가 아닌 ‘지는 십자가’를 체험하는 신앙이다. 이교수는 “이러한 십자가 은총에 근거하여 무너지는 교회에 대해 경고하고 세워지는 교회를 기대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시작해야 한다. 기독교 역사 속의 개혁자들은 자기시대에 교회를 향하여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였다(마5:37). 무너지는 교회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오’ 하였고, 세워지는 교회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예” 하였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가 종교개혁자 루터였다.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에 소환당하여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교황이 파견한 추기경 앞에서 그는 혼자였지만 당당했다. 사형을 위협하면서 마지막 회유를 하는 황제 앞에서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Hier stehe Ich. Ich kann nichts anderes. Gott, helfe mir”(나, 여기 섰습니다. 나 달리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한국교회는 이러한 십자가 신학을 회복해야 한다고 이교수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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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27
  • [오늘의 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6)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사건은 우리를 다소 의심하게 만든다. 어찌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다는 말인가?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장면을 예수말씀은 서언이라는 형식으로 이렇게 전한다. “예수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는 사십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으셨다 …… 그는 주리셨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시험이야기를 가장 짧게 보도한다. 그러나 마가의 가장 간결한 보도는 마태와 누가의 보도와 비교해 볼 때 결코 단순하지 않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40일 금식하신 후에 3가지 시험을 받은 것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마가복음은 비록 간결하게 보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진행형인 미완료 용법을 사용하여 예수께서 ‘40일 내내 주리시고, 40일 내내 시험을 받으신 것’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마가는 예수의 시험 강도가 40일 금식 이후에 단 3번의 시험을 받으신 마태와 누가의 보도를 넘어서 40일 금식 기간 내내 시험을 받으신 사건을 강조하여 그 시험의 강도가 연약한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극대화한다. 예수의 광야 시험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예수말씀에서 성령은 예수의 공생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수의 공생애 동안의 사역이 가르치고(누가복음 7:22; 14:5), 설교하고(누가복음 6:20~49), 병을 고치고(누가복음 7:1~9), 능력을 행하고(누가복음 10:13), 귀신들을 쫓아내고(누가복음 11:14, 18~20), 영들을 분별하는(누가복음 11:24~26) 등의 사역으로 계속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초기교회에서 이해된 성령의 사역과 어느 정도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예수께서 행하신 성령의 사역을 바울과 같은 은사의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성령을 ‘은사와 열매’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예수와 같이 성령의 사역으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험(누가복음 4:3~4)을 하는 마귀가 예수에게 말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이 돌 더러 떡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이 시험에 의하면, 마귀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한다. 우리말에 가정법으로 번역한 본문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 말을 언뜻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서 마귀는 분명히 가정법이 아니라, 직설법을 통하여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가장 먼저 시인한 것이다. 마귀의 시인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신다(누가복음 10:22)는 사실은 기독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시험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공생애를 전기적 캐스트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공생애의 어려움을 겪었고(누가복음 4:2~4), 예루살렘에서 수난을 당했고(누가복음 4:9~12), 마지막으로 부활과 승천 이후에 영광을 얻었다(누가복음 4:5~8).  마귀의 시험에 대하여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기록된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다” ‘기록된바’라는 표현은 완료수동태의 형태인데, 이는 70인역(LXX) 구약 인용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에 대해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면서 대답하셨는데, 이는 예수말씀의 구약적 배경과 신명기적 사관의 영향을 대변해 준다. 예수께서 철저히 구약성경에 의존하여 준비된 대답을 하신 것이다. 우리도 철저한 말씀으로 항상 준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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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27
  • 정성진목사, 한국교회의 방향 제시
    ▲ 섬김의 영성을 한국교회의 방향으로 제시한 정성진목사는 원래 임기보다 1년을 앞당겨 은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의 보수교회는 기득권 편에 서 이익추구하다 신뢰 상실 철저한 자기부인과 섬김의 영성 회복할 때 양적으로 성장 가능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 언제나 한국교회의 방향설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러한 가운데서 신학적 경륜과 목회의 경험을 두루 갖춘 정정신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원로)의 논문이 관심을 끌고 있다. 정목사는 한국교회에 일반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보수주의에 대한 성찰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목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보수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에서 시작한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버크는 역사와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해 “자신들의 조상을 되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후대를 전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통은 수대에 걸친 지혜의 응결체이고 조상지혜의 결정(結晶)이기 때문에 개인이성보다 훨씬 훌륭하고 고명하다는 것이다. 버크식의 ‘고전적 보수주의’ 비하여 현대 구미의 ‘신보수주의’는 “아담 스미스식 고전적 자유방임주의의 충실한 계승자이다”고 정목사는 판단한다. 신보수주의는 사회주의적 복지제도의 과잉을 비판하고 경제를 정부권력의 간섭과 규제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시장원리에의 복귀와 탈규제를 강조한다. 정목사는 한국 ‘보수’의 기원을 추적한다. 일단 유교를 보수 세력의 근본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보수파 세력은 전통적인 성리학 지지자들로서, 주자학적 통치이념에 입각한 도학적 수정론을 방법론으로 제시했다. 한편 개화사상을 한국보수주의의 뿌리로 보는 입장에서는 조선후기 실학파와 개화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보수주의의 특징은 무엇인가? 정목사는 “그것은 반공과 발전주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고 답한다. 먼저 반공은 한국 보수주의의 사상적 기반으로 한국 보수주의는 오랫동안 그 이념적 근거를 ‘반공’이라는 대항이데올로기에서 찾았다. 정목사는 두 번째 특징으로 발전주의를 들었다. 예를 들면 이승만은 사회주의적 개혁의 요소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는 농지개혁을 시행했다. “이는 보수주의의 원조인 한국 민주당 등 토지에 기반한 구 지배세력과 북의 토지개혁을 모두 견제하기 위한 이승만의 승부수였으며, 21세기 이명박 대통령의 ‘반여의도정치’에 역시 간접 연결된다”고 정목사는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목사는 한국 보수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그것은 “진정으로 보호하고 계승해야 할 정치적 문화적 가치를 찾아 계승 발전시킴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의 존재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강자의 입장에서 기득권을 보호하려고만 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국민들은 보수주의를 기득권층의 옹호논리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의 보수주의는 설득력을 잃었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주의와 맥을 같이 하는 한국교회도 설득력을 잃고 만 것이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반공’이 보수의 척도가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공산주의를 반대한다고 자동적으로 보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도 공산주의는 반대할 수 있다. 또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보수를 규정하는 기준이 특정한 가치와 윤리에 있지 않고 이데올로기에 있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정목사는 “보수가 추구하는 것이 권력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전통적인 가치라는 점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실천을 통해서 분명하게 보여 주여야 한다”며, “보수주의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권보다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코페르니쿠스적인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부인과 섬김”이다.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리나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으셨다. 결론적으로 정목사는 “한국에서 우리가 계승해야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자기부인과 섬김의 영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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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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