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1-1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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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주의윤리학회 박성철박사 논문발표
      관심 얻으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 부각 “거짓을 유포함으로 지지를 얻으려하는 정치운동을 거부해야”     기독교사회연구소 등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교회 교인 3명 중 2명은 전광훈목사가 주도하는 기독교정당과 정치운동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 박성철박사(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사진)가 한국교회의 극우 정치운동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박박사는 전광훈목사를 중심으로 한 일부의 활동을 ‘배타적인 기독교 정치운동’으로 규정했다. 박박사는 “이들은 한국의 극우적인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과거의 독재를 정당화하고 기독교 근본주의의 가치를 현실에서 실현하려 한다. 더구나 사회적 관심과 영향력을 얻기 위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그리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다문화사회에서 그리스도인 저마다의 ‘좋은 정치’에 대한 생각들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미래를 진정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사회적 다양성을 파괴하고 배타적인 이념이나 가치로 인간을 획일화하려는 억압적인 종교적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극우적인 기독교 정치 운동을 반대한다고 박박사는 제시했다.   첫째, 극우적인 기독교 정치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우상 숭배자들”이다. 박박사는 “이들은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의 구원에 들지 못한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한다”며, “하지만 이들은 구원을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으로 둔갑시켜 자신들이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고 선전을 하고 있다. 구원의 상품화는 물신숭배이며 이는 명백한 우상숭배이다”고 규정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자들이 주도하는 극우적인 기독교 정치운동을 마땅히 거부하고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극우적인 기독교 정치 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은 “가짜 뉴스를 통해 거짓을 유포함으로써” 사회적 지지를 얻으려 한다. 박박사는 “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졌거나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가짜 뉴스를 만들어 유포함으로써 지지를 얻으려 한다. 이는 이들의 정치적 견해가 타인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며, “그리스도인은 진리에 거하는 자로서 거짓과 가짜의 미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요일 1장7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가짜 뉴스라는 거짓을 만들고 유포함으로써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극우적 기독교 정치운동을 마땅히 거부하고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 극우적 기독교 정치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은 “이웃에 대한 미움과 혐오 그리고 무시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박박사는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도움으로써 이웃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 기독교적 이웃사랑의 기반은 바로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배려이다(로마서 9장15절)”며, “하지만 극우적인 기독교 정치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죄악시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미움과 혐오 그리고 무시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한다”고 분석했다.   넷째, 극우적인 기독교 정치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은 ‘네오 기독교파시즘’을 지향한다. 박박사는 “한국의 극우적인 기독교 정치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은 과거 군사독재를 찬양하고 공공연히 파시즘과 전체주의를 지지한다”며, “그리스도인은 다양성을 억압하고 획일성을 지향하는 운동을 반대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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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8
  • [오늘의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7)
      오시는 이는 부처, 무함마드, 공자가 아니다.   조국 부인 정경심이 결국 구속되었다. 자신은 마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발뺌한 남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옥중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던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보내었다.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오시는 이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대해야 합니까?” 요한의 측면에서 보면, 답답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이미 헤롯의 칼날이 그의 목을 겨누고 있고, 기다리던 메시아는 오시지 않고, 제자들은 요한의 임박한 죽음에 흔들리고 있으니 요한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궁금해 하는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핵심적인 내용은 예수께서 ‘오시는 이’인가이다. 많은 학자가 예수말씀에 메시아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으므로 예수를 단지 지상의 인물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이는 예수말씀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오해이다. 오시는 이는 예수말씀의 종말론적 차원에서 메시아를 대신하는 단어이다. 누가복음 7장 18절과 마찬가지로 13장 35절도 오시는 이를 메시아로 고백하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되시다”고 선언한다. 특히 이 말씀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메시아로 오시는 이를 강조한다.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벗겨 드리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라고 설교한다. 이 설교는 요한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에게 드린 초기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이다. 이 구절에서 오시는 이는 앞뒤에 연결된 서술어를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그 신앙고백에 아주 깊이가 있다. 곧 ‘오시는 이’ 앞에 ‘내 뒤에 있는 이’가 있고, 그 뒤에 ‘능력이 많으신 이’가 있다. 이는 요한이 원시적인 언어로 투박하게 예수에게 드린 최초의 신앙고백이다. 샌드위치가 두 개의 빵으로 잼을 감싸고 있듯이, 두 개의 신앙고백인 내 뒤에 있는 이와 능력이 많으신 이가 가운데에 있는 오시는 이를 앞뒤에서 호위하고 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의식하면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린 것과 같이 요한은 메시아의 임재를 오시는 이로 고대하며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능력이 많으신 이라고 고백한다.   정작에 나에게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로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누구인가? 많은 이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세례 요한과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예수께서 정녕 오시는 이인가?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 교주를 배출시켰다. 이들은 적그리스도로 모두 자신을 재림 주요 보혜사요 신으로 둔갑시켜서 사람들 앞에 군림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의 신을 감히 들고 그 신발 끈을 풀기도 스스로 감당치 못한다고 겸손해하면서 단지 신랑의 들러리로 누리는 기쁨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다.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고 그 지름길을 평탄하게 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철저하게 인식하였다.   예수말씀에 나오는 오시는 이와 관련된 세 구절은 모두 메시아의 위엄보다는 오시는 이를 고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의 모습에서 겸손과 평화의 메시아를 보여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오시는 이는 갈등과 싸움이 가득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시는 겸손한 이시다. 이미 이런 평화를 가져오시는 이를 알고 있던 요한은 옥중에서 겸손하게 평생 메시아를 위한 소리꾼으로 살았던 자신의 모습에 조금도 흩트림 없이 제자들을 보내서 그들에게 예수가 메시아로 오시는 이라고 분명히 확인하게 한다.   과연 나는 부처, 무함마드, 공자, 아니 그 누구도 아니고 오직 예수만 메시아로 오시는 이로 믿는가? 많은 이가  우상에 이 땅에서 예수 이외에 오시는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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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8
  • [선교사 통신] 산타클로스의 6개의 십자가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 제2의 도시이다. 그런데 산타크루즈 마을이 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신화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 마을 입구에는 십자가가 6개 세워져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실존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미국의 어느 선교단체가 있었다. 그들은 오지만 선교하는 단체로 유명하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깊은 정글 속에 착륙할 곳이 있으면 착륙하여 오지를 중심으로 선교하는 데, 그들은 대개 원시의 생활을 하며, 독화살과 정글 칼로 무장을 하고 다닌다. 여전히 부족간의 전쟁도 하는 데, 영화에서 보는 그런 원주민들의 동리이다.    그러다보니 선교사들은 독특한 선교방법을 가지고 접근하는데 그 중의 한 방법이 원주민들이 다니는 길목에 사탕이나 초콜릿을 두면 원주민 청년들이 가끔 오다가 선교사들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청년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여 변화시킨 다음 다시 그곳으로 보내어 마을 사람들을 전도하게 하는 것이다. 보통 10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는 선교를 하는 것이다.   경비행기는 이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유용한 선교도구인 것이다. 6명의 선교사들은 그 청년들과 함께 마을의 허락을 받아 들어가는데 당연히 무장을 하고 다닌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분쟁이 생긴다. 선교사들을 받아들이자고 하는 부락민과 그것을 반대하는 부락민간에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투표를 하였는데, 죽이자는 쪽으로 표가 더 많이 나온 것이다. 그럴 때 선교사들이 회의를 했다. 선교사들은 무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다. 차라리 죽임을 당하기로 결심한다. 살기 위한다면 무장한 총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그러면 원주민들을 다 죽여야 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후일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해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순교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원주민들이 선교사들을 다 죽인 다음, 함께 간 청년들이 울부짖으며 말한다.   “여러분들 보십시오. 이분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죽였습니다. 이들의 옷을 벗겨 보십시오, 이분들은 우리 마을 전체를 몰살시킬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을 사랑하기에 죽음을 택하고 순교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분들에게 영원한 빚을 졌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해 모든 부족은 주님께로 돌아왔고 산타클로즈에는 6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 순교한 6명의 선교사들의 이름을 새기게 된 것이다. 후일 산타클루즈의 지명이 되기도 한 이 마을은 산타클루주 시 안의 산타클루즈 마을로 기억되고 있다. /김이삭 볼리비아선교사(볼리비아학교 이사장, 진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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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5
  • 개혁주의학술원서 도르트 세미나
    개혁주의학술원(원장=이신열박사)은 지난달 30일 고신대 손양원홀에서 「개혁신학과 목회 : 베자와 도르트총회의 가르침」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개혁주의 신앙인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세미나를 통해 개혁주의 신앙의 집결체인 도르트 신조의 중요성과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고 현대 세속사회 속 교회 공동체가 갖춰야 할 목회적 소양에 관해 진단했다. 강사로는 양신혜박사(합신대)가 「고난 중에 핀 꽃: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 - 베자의 〈흑사병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을 중심으로」, 정요석목사(세움교회)가 「도르트 총회와 신경이 갖는 목회적 성격」이란 주제로 강의했다. 세미나 관계자는 “테오도르 베자는 프랑스 베즐레에서 태어나 스위스 제네바에서 생을 마감한 제네바 종교개혁자이며 칼뱅의 후계자로 제네바 아카데미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며, “흑사병에 맞닥뜨린 베자의 삶, 목회자의 삶, 그리스도의 행동에 관해 세미나 동안 집중적으로 다루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도르트총회는 튤립 교리로 알려진 교리인 도르트 신조를 낳은 총회이다”며, “1618년 11월에 시작하여 1619년 5월 29일까지 지속된 도르트 총회가 지닌 신학적·목회적·교회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과 교회의 현주소를 조명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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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31
  • [오늘의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6)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놀라운 치유 기적을 마무리하신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기시어, 따라왔던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복음서를 보면, 대개 예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이나 말씀, 혹은 교훈을 보고서 제자들이나 무리들이 놀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오늘의 예수말씀에서는 뜻밖에도 예상을 뒤엎고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신다. 참으로 신기한 모습이다. 예수께서 그 백부장의 믿음을 예상하지 못하셔서일까? 아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이방인인 백부장이 위세를 부릴만한데도 아주 겸손하게 직접 자신 앞에 와서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말하는 이야기의 시작 단계부터 놀라워하셨을 것이다.   더구나 그의 무조건 순종적인 발언도 놀라웠을 뿐만 아니라, 단 한 말씀이라도 주시면 하인의 병이 고침 받을 것이라는 그야말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예수의 능력을 고대하는 일련의 모습 전체가 경이로운 것이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히브리서 11장 1절) 바로 백부장이 예수께 보인 믿음이 이런 것이다. 믿음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의 지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문자 그대로 인식하고 모든 것을 맡기고 처분대로 따르는 것이 믿음이다. 흔히 성경무오설을 주장하지만, 이는 다분히 교조적이다. 심지어 횃불신학교는 신임교수 응모를 하면서 성경무오설에 관한 서약을 받게 하였다는 후문이 들린다. 그러나 성경무오설은 요리문답 제1조처럼 우리의 삶과 행위를 정확무오하게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모든 것에 순종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바로 백부장은 이런 믿음을 예수께 보인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 믿음을 놀라워하시며 칭찬하신다. 더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에서는 내가 이런 믿음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이것은 이방인 선교의 결과로서 Q 공동체가 이방인을 자신들의 공동체 안으로 적극적으로 영접해 들였다는 차원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유대인에게 경종을 울리고 그들에게 각성을 촉구하고자 하는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유대 율법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에 입각하여 아직 제자들에게는 유대인 선교를 치중하게 하시지만,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함으로써 유대인들의 불신을 경고하고 그들을 시기 나게 하여 믿음을 일깨우려는 종말론적 의도를 통해 이방인에게까지 선교를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직 제자들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가지 못하고 전적으로 유대인 선교만을 간신히 감당하는 상황일지라도, 이미 예수의 소문은 날개를 달고 이방인의 지역에까지 퍼져나갔다. 그래서 스불론과 납달리 그리고 데가볼리(헬라어 데카 폴리스는 10개의 도시라는 뜻이다)의 이방인 지역에까지 복음이 퍼져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백부장이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예수 앞에 나온 것이다. 유대인은 특수주의에 입각하여 원의 중심에 자신들만 놓고서, 원 밖의 이방인들을 개와 돼지처럼 부정하게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 앞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을 보이게 될 때, 예수께서는 유대인에게 자존심이 상할 정도의 심한 발언을 동원하여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백부장의 하인을 고친 이야기를 학자들이 복원하면서 “그리고 <…>”라고 미완성으로 남겨놓고 있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도전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는 유대인의 믿음인가 백부장의 믿음인가? 어떤 믿음을 예수 앞에 보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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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4
  • 스리랑카 출신 수기타라자 교수 발표
      ‘영토적 제국’은 사라졌지만 구글 등 ‘디지털 제국’ 등장 “선민사상의 강조는 제국주의 요소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는 지난 15일 오후 7시 감신대 웨슬리 1관에서 기획강연으로「식민주의와 에큐메니즘-한·일 갈등의 시대에 탈식민주의 신학을 생각 한다」를 열었다. 이 날 강연자로 영국 버밍엄대학교 수기타라자교수(사진)가 「탈식민주의와 교회」란 제목으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스리랑카 출신의 수기타라자교수는 “최근 윤동주 시에 드러난 성서적 사상을 통해,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며, “서양이나 동양이나 제국주의적 폐해는 똑같다. 제국은 수탈 민족에게 역사 전체를 잊으라고 강요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또 “역사만이 아닌 수탈 민족의 언어를 탈색하고, 제국의 언어로 통일화 시키려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했던 것처럼 일본 제국주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국주의의 핵심은 피부색 등을 기준으로 우월과 열등을 가르는데 있다”며, “일본제국주의 또한 위생을 도구로 한국에 대한 우월성을 강조했다. 가령 ‘비위생적인 조선 민족을 건강하게 해 주겠다’는 명목이 대표적이다”고 설명했다.    또 “제국의 사유방식 중 해악은 바로 이분법적 사고이다. 다시 말해 피부, 위생 등의 요소로 민족의 우월성과 열등함을 가르는 생각이고, 이는 분리주의에 기인해서 나오는 생각이다” 지적했다.   수기타라자교수는 “제국주의는 민족의 우월성을 구축하기 위해 ‘단일민족론’을 주창한다”며, “그러나 이러한 단일민족은 신화이다. 역사가 서로 섞여온 것처럼, 민족은 상호 관계성속에 서로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에드워즈 사이드 교수의 〈제국주의와 역사〉를 언급하며 “모든 역사는 연결돼 있고, 서구와 동양, 일본과 한국 사이의 역사와 이야기도 모두 뒤섞여 있다”며, “1857년 인도는 영국에 패배했지만, 당시 인도와 영국 군대는 서로의 민족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순수한 민족전쟁’은 아니 셈이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그는 “과거 ‘영토적 제국’은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제국의 개념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디지털 제국이다”고 제시했다. 즉 “지금 경계 없는 제국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제국’으로 소위 실리콘 밸리 등이라고 불리는데, 대표적인 제국의 장치로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아마존, 애플 등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새로운 제국의 통치는 자유시장, 인권, 민주주의 등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여기서 기독교의 제국주의적 요소로 ‘선교’를 제시했다. 즉 “선교는 토착민에 대한 간섭을 포함하고 있다. 개종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한, 이는 또 다른 의미의 제국주의이다”고 주장했다.    C. S 루이스를 언급하며 “제일 나쁜 학정은 희생자들을 위해,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했다는 것이다”며, “선교라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온 사람은 자기 신념으로 토착민에게 개종을 강요 한다. 이는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선교사가 이를 좋은 의도라고 생각하는 한 더욱 험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성경 66권이 만들어진 과정은 교황이 통일된 통치를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며, “아타나시우스는 동·서 교회를 만족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경을 골랐다”는 주장도 펼쳤다. 아울러 “대부분 기독교신학은 유럽 제국주의가 태동한 19세기와 맞물려 있다”며, “역사적 예수 연구도 제국주의적 침략이 활발한 19세기 등장했다”고 밝혔다. 특히 “누군가를 복속시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선민사상에 기인 한다”며, “이러한 기초는 성서가 제공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이 성서의 개념 중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선민사상을 강조 한다면 기독교는 제국주의적 요소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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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4
  • [오늘의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25)
      예수께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이야기는 계속해서 백부장의 겸손한 태도로 전개된다. “그 백부장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여, 나는 당신이 나의 지붕 아래에 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얼마나 겸손한 모습인가? 당시 로마 식민지하에 있던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위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100명의 군대를 호령하는 백부장은 주둔군의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는 권세 밑에 있는 사람이요, 내 밑에 군사들이 있는데, 내가 이 사람에게 가라고 말하면 그는 가고, 다른 사람에게 오라고 하면 그는 오고, 나의 종에게 이것을 하라고 하면 그는 합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사람은 자리가 만든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권력의 맛을 보면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을 망각하고, 그 권력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아예 영원히 군림하려는 인간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백부장을 다르다. 그가 비록 100명을 지휘하는 중대장이지만, 그 위에 자신을 호령하는 권세자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현명한 사람이다. 서점에 가면 자기개발서가 종종 눈길을 끄는데, 몇 년 전에 나온 책으로 〈CEO 예수〉라는 책이 있다. 아무리 최고경영자라도 그 위에 예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아주 신앙적인 책이다. 그렇다. 이것이 겸양의 덕을 간직한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백부장이 이어서 예수께 드리는 간청은 더욱 본받을만하다. “그러니 말씀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나의 하인이 낫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백부장이 “말씀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한 내용을 마태복음 7장 8절은 더욱 극적으로 “한 말씀만 하여 주십시오”라고 표현한다. ‘한 말씀’은 헬라어로 ‘모노 로고스’인데, 지휘관의 호령보다 백부장은 예수의 입에서 떨어지는 단 한마디 어쩌면 외마디도 놓치지 않겠다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백부장을 순종하게 하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단 한 말씀이라도 그의 귀에 들릴 때 그는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다.    왜 우리는 많은 말을 할까? 설득된 후에야 순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교회에 영성이란 말이 화두가 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세상적인 이념이나 가치관에 이끌리는 영성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신앙적 영성보다는 심리적 영성이나, 혹은 심령술사적 영성에 중독되어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퀴어 신학도 마찬가지이다. 동성애를 인권 옹호와 혐오반대의 논리로 무장하여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괴상한 해석을 만들어 내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면, 이미 과학적으로 유전자가 없으며 선천적이지도 않다고 결론이 내린 동성애에 대해서, 눈과 귀를 가리게 해서 속세우민 하는 지도자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무엇이라고 가르치나? 가증한 것이다.   가증한 것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단 한 마디인 토에바,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이라고 표현된다. 에스겔 16장 50절, 레위기 18장 22절과 20장 13절을 읽어보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라, 가증한 것이다.    동성애는 레위기 19장 13절에 언급된 바와 같이 ‘반드시 죽일지라’고 언급될 정도로 가증한 것이다. 동성애에 빠진 소돔 성에 “여호와로부터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려”(창 19장 24절, 29절) 그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하나님께서 다 엎어 멸하셨다.    왜 하나님께서 동성애 죄인을 사랑하시지만, 동성애의 죄 자체에 대해서 강경하게 심판하신 것일까? 창세기 18장 20~21절에 소돔에 대한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가정을 창조하신 계획을 다시 분명하게 세우려 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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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5
  • 곽혜원박사, ‘젠데 이데올로기’ 비판 연구
      선천적 생물학적 ‘성’ 대신에 문화·심리적 ‘젠더’ 주장 “가정중심의 성윤리로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항해야 한다”     최근 여러 지자체가 추진 중인 인권조례안이 지역 기독교연합회의 반발로 무산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교회는 인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조례안이 포함하고 있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곽혜원박사(사진)의 「젠더 이데올로기가 야기하는 가정해체와 건강한 가정공동체 구축의 당위성」이란 제목의 발표가 큰 주목을 받았다.   곽박사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해체를 부르짖는 최선봉에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그 중심점에 서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젠더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출생 시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문화·심리적 성으로 간주되는 젠더(gender)를 통해 후천적으로 임의대로 성별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대사조이다.   젠더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에 대해 곽박사는 독일 튀빙엔 대학의 복음주의 선교학자 페터 바이어하우스(P. Beyerhaus)의 발언이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말한다. 즉 “바이어하우스는 1789년 프랑스혁명(정치적 신분제를 전복시킨 혁명), 1917년 볼셰비키혁명(경제적 계급제를 전복시킨 혁명)과 함께 젠더 주류화를 ‘제3의 세계사적 혁명’(생물학적 질서를 전복시킨 문화 인류학적 성혁명)이라고 말하면서 남녀의 성별 질서, 결혼과 가정의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인류 문명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혁명”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것은 남녀의 생물학적 성별을 창조질서로서 주신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신론적·무신론적 이데올로기”이다.   곽박사는 오늘날 젠더 이데올로기가 휩쓸고 지나간 서구 세계에서 ‘결혼’과 ‘가족’이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공적으로 인정되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신실하고 지속적인 결합과 그들의 자녀라는 보편적 의미를 강탈당한 채 결혼을 단지 육체적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계약관계(때로는 서로의 혼외정사도 허용할 것을 요구하는)로 간주하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되면 결혼의 안정성이 극도로 약화되고, 이혼율도 급증하게 된다.   특별히 곽박사는 “존엄한 삶·존엄한 죽음·존엄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과제에 몰두하면서 건강한 가정공동체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가정적 유대관계는 삶의 질은 물론 죽음의 질도 좌우하는 중요 조건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라는 것이다. 곽박사는 “현대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현안 중에서 긴급히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사회문제인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예방 기제도 건강한 가족이다”며, “가정공동체가 무너져서 가족의 따뜻한 지원을 받지 못해 발생하는 고독사 및 무연사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가족의 중요성을 확연히 인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곽박사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고립과 자살의 문제에 주목했다. 즉 “주로 40세 이전에 무수히 많은 섹스파트너들과 복수연애하면서 성적으로 방종하는 삶을 살다가, 40·50대 이후가 되면 그로 말미암은 각종 신체적 질병으로 인해 파트너들에게서 버림받고 실직하고 파탄난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므로 필자는 향후 많은 남성 동성애자들이 병든 몸으로 외롭게 살아가다가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의 직격탄을 맞게 될 거라고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곽박사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인류가 반드시 사수해야 할 보편타당한 윤리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독교만이 감당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이다”며, “특별히 젠더 이데올로기가 성도덕과 가정을 총공격하는 상황 속에서 가정 중심의 성결한 성윤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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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5
  • 감신대 종교철학회 국제컨퍼런스
    ▲감신대학교 종교철학전공 학생회가 국제 컨퍼런스를 열었다.    감신대학교(총장직무대행=오성주박사) 종교철학전공 학생회는 지난 10일 동 대학 웨슬리 제1세미나실에서 「정의 신학의 인문치유적 가능성 모색」이란 주제로 ‘기호자본주의와 정신건강 국제컨퍼런스를 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사람이기보다는 감정이 없는 부품으로 소비되는 인격 상실의 시대에 신학이 개인의 감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에 주도해야만 함을 토의했다.    이날 미국 게렛신학대학의 조 안교수가 「Affect and Political Theology of Jeong」란 주제로 발표했고, 전철교수(한신대)가 「호모 센티엔스의 정치신학적 가능성」이란 제목의 논찬을 했다. 이어 박일준교수(감신대)가 「기호자본주의와 정의 신학」이란 주제로 발표했고, 이민형교수 (성결대)가 「기호자본주의와 정의 신학에 대한 논찬」이란 주제로 논찬했다.    안교수는 논문 발표를 통해 “인간의 감정은 정치학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서구권에서 동양인은 그저 감정이 없는 일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은 감정이 있는 한 인격체임을 늘 상기해야만 한다. 한국의 ‘정’문화는 우리 인간이 서로 격리되어 각자의 일에만 집중하는 기계가 아닌 이미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정’문화는 서양에서 말하는 사랑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말 그대로 정은 끈적하게 사람들 간에 유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표현한다”며, “이렇게 서로가 단절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학은 ‘정’이라는 개념을 깊이 연구하여 대안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은 이미 서양 사회가 갖지 못한 훌륭한 정서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고 전했다.   서로가 단절된 자본주의사회 한국의 ‘정’ 연구가치 충분 “우리의 고유한 신학연구를 통해 교회·사회에 기여하자”    박일준교수는 “우리 사회는 과부하가 걸린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신학과 교회는 사람을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것이 옳은 것일까”며, “신학과 교회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자본주의가 양산하는 무한경쟁의 피로로부터 안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교인들의 감정을 말살하고 마치 기계처럼 교회의 이익을 위해 부리는 도구나 종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에 애석하게도 고유한 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흔치 않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유동식교수의 ‘풍류’신학이 있다”며, “우리나라 고유의 풍류와 ‘흥’을 신학은 더욱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만의 고유한 신학을 개발하고 우리에 맞는 감정을 고취시킨다면 신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사회에 많은 이로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늘 정형화된 감정선만을 자극할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감정신학을 이론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성주총장직무대행은 이날 국제세미나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조 안교수를 모시고 이런 국제 행사를 학생회 주최로 열 수 있었던 점이 아주 뜻깊다”며, 우리 대학이 대한민국의 신학만이 아니라 세계의 신학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훌륭한 전통과 교수진, 학생들이 있다. 우리 대학이 그동안 자랑스럽게 연구해 온 토착화신학도 감정신학과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번에 학술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신학의 풍토를 세워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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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5
  • KWMA서 선교사 입문훈련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산하 연합훈련 실행위원회가 대학 교수들의 선교사 입문훈련의 첫 오프라인 과정을 시행하고 3개월 동안 온라인 과정을 진행중이다.   2박 3일간 서울 양천구 제자교회에서 진행된 1기 훈련에는 16명의 대학 교수가 참여했으며, 이번에 훈련을 받은 이선복 동서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는 “교수는 한국 학생은 물론 한국으로 유학 온 외국 학생들까지 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며, “지난 34회 전국대학교수선교대회에 참석한 교수들은 학생 전도뿐 아니라 퇴직 후에도 선교사역을 하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KWMA는 지난 6월 충남대에서 개최된 34회 전국대학교수선교대회에서 300여 명의 교수가 선교 훈련을 받은 뒤 선교사로 파송되어 선교 과업을 감당하겠다고 선언한 후 교수들을 대상으로 선교 교육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이번 프로그램을 처음 마련했다. KWMA는 “300명의 교수 선교사 파송을 목표로 매년 두 차례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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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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