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8(수)

교회/목회
Home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실시간뉴스
  • 달콤한 소통(사도행전 5장 38절에서 42절)
       오늘 사도행전 이야기는 오순절 성령강림 후 사도들의 변화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 전에는 두려워하고 절망하면서 다락방에 스스로 유폐되어 있던 제자들이 성령강림 후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요 우리의 구세주라고 목소리 높여 선포하기 시작했고, 앉은뱅이나 눈이 먼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소리를 높여서 사회의 권력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분개해서 제자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중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원로답게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여러 번 보아왔듯이 제자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하나님께서 곧 없어지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 좀 두고 보자. 이렇게 제자들을 해치고자 하는 사람들을 말렸습니다. 그 대신 제자들을 채찍질한 다음에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투옥되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채찍 맞고 걸어 나오는 제자들이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고통 속에서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기독교인들만의 특별한 모습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편해졌을 때 망합니다. 신앙은 마침내 부활이요 승리지만 그전에 반드시 고난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십자가를 생략한 부활·행복·생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에서 고난을 생략하면 기독교는 망했습니다.  옛날에는 교회 가는 것이 전쟁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주일만 되면 일을 시키거나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해서 그것을 뚫고 교회 나오는 것은 매주 전쟁이었습니다. 때로는 빗자루로 얻어맞고 여성들은 머리도 막 잘리면서도 교회에 갔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신앙이 진짜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교회 가는 것 때문에 아무런 고난이 없습니다. 다 편합니다. 교회에 와도 목회자가 쓴소리하기 어렵습니다, 교회 안 나올까 봐. 결국, 희생이나 헌신 없이 달콤한 열매만 추구하게 되면 그 신앙도 죽고 교회도 죽습니다. 우리 교회가 움직여지고 선교 공동체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많은 성도의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정상적입니다. 너무 합리적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은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복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시간과 건강과 노동과 물질을 드리면 나는 당장 힘들고 어렵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몸이 아프고 다른 일도 하지 못하고 돈 쓸 곳이 여러 군데인데 못 쓰니 고통입니다. 근데 그 고통을 기뻐하게 된다는 것은 거룩한 중독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을 어떤 고통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 전통입니다. 이걸 다시 찾아야 합니다. 달콤한 고통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주민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2-05
  • [금주의말씀] 교회에서 찾을 영광
       신학교 재학 시절, 캠퍼스 안에 기숙하고 있던 학생들과 ‘뉴욕 곰탕집’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신학교로 돌아오면서, 차 안의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모두들 맛있게 드셨어요?” 모두들 잘 먹었다고 하는데 한 학생만 “아니요!”라고 답을 합니다. “왜?” 되물었더니, “짜장면이 맛이 없어요” “아니, 곰탕집에 갔으면, 곰탕을 먹어야지, 짜장면을 먹고 맛이 없다고?”하며 모두 웃었던 일이 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를 썼던 C.S 루이스는 크리스천으로 회심을 한 후에도 오랫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교회에 대한 역할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동물원에 가는 것만큼이나 교회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집단의식에서 시작 된 것으로 신경이 무척 쓰이는 ‘같이하기’ 행사였다”고 하며, 교회를 좋게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크리스천의 생활은 개인적인 탐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교회에 임재하신다. 그리고 교회는 크리스천의 삶이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인간으로서,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여, 어디에 속할 필요가 있다.”   파스칼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신을 찾는 자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교회 안에 분명한 표징을 두었다.” 그러면, 교회에만 있는 그 무엇, 교회에서 찾아야 할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를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2c-3절 말씀처럼,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저희 앞에서 변형 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변형’(transfigured)의 뜻은 ‘안으로부터 나오는 모습’입니다. 즉, 예수님의 본래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문화와 사회의 상황과 각자의 생활 속에 바쁘게 살면서, 예수님도 그 모든 영향 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마음과 시간과 공간을 구별하여 모인 교회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4-6절 말씀처럼, 성경 속의 인물·사건·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체험합니다. 7절에서 그동안 배웠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습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은 그동안 배웠던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영광된 체험을 할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어디입니까? 변화 산 자체가 특별하고, 유명한 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서 변화 산입니다. 어느 교회이든지,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의 영광 된 교회입니다.   또한 2절에 ‘따로’, ‘높은’, ‘올라가셨더니’의 단어처럼, 우리는 예배의 시간과 장소를 특별히 구별해야 합니다. 일상적인 생활 중에, 나를 따로 구별하는 예배가 필요합니다. 또 8절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에 현실에 충실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영광된 변화 산과 교회에서, 생활 현실로 돌아와 충실 하십시오. 내 생활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소명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맛을 보았으면, 그 힘으로 내 삶이 영광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세상에서, 일상생활에서 그 영광의 능력을 발휘하시길 축원합니다./목사·새빛다문화센터장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1-30
  • [설교] 기도
    김국현목사    우리는 보통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제일 쉬운 일은 숨 쉬는 것입니다. 숨 쉬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쉬운 것이 누워서 숨쉬기입니다. 교회가 생명력이 있다면 살아있는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들이 소유한 능력의 원천이며, 동시에 건강의 척도입니다. 성도는 어마어마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한 손에 거머쥐신 분의 능력을 청구해 쓰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주시는데, 그 연결선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아무리 잠재적인 능력이 많다 하더라도 참 무력해 보입니다.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없으면 참 무력해 보입니다. 반면 몇 명 모이지 않는 교회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기도가 있으면 역사를 움직이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의 능력을 가르쳐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2~14).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들은 나의 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더 큰 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장막 안에 금향단이 있습니다. 이 금향단에 성도의 기도가 담겨져 하나님 앞에 올라갑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주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위해 기도하고 이 기도의 응답으로 이 땅 위에 종말의 증거을 보이십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도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행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땅 위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행해집니다.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알리는 사인입니다.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주님도 다시 오십니다. 기도에 이렇게 엄청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악한 마귀는 잘 압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기도를 못하게 만듭니다. 바쁘게 만들고, 이유를 만들고, 어떨 때는 핍박을 통하여 하여튼 기도만은 못하게 하려고 획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나아가서 기도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그분이 주시는 사랑을 받는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기도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기도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커다란 착각이며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기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우리의 영혼이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주리고 목마르십니까? 우리의 삶이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렘 2:13)와 같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럴 때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말씀하신 주님의 초대를 기억하십시오. 그리하여 주께로 나아가십시오. 갈급한 심령으로 주 앞에 나아와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 홍천 풍성한교회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1-25
  • 너희 광야가 숲이 되리라 (이사야 32장 15절)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곳에는 반드시 부활과 회복과 성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손길이 닿게 될 때, 어떤 쓸모 없는 땅도 기름진 땅으로 변하게 되며, 그 기름진 땅에 생명의 씨앗이 자라나서 그 주변 전체가 숲을 이루어 가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금년 우리 교회의 주제 "너희 광야가 숲이 되리라!" (From Deserts To Forests!)는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와 복음의 능력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장차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변화를 일으키실 것인지 예언하시고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만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생명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광야와 같이 죽었던 세포가 살아나게 되었고, 죽었고 메말랐던 심령에 생명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이 심기기 시작했고, 그 마음 밭이 생명의 밭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베드로와 바울입니다. 어부였던 베드로 안에 생명이 임하니까 베드로를 통해 평생 일어서지 못하던 자가 일어서게 되었고,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거부했던 사도바울이라 할지라도 그 심령에 생명이 임하니까, 그가 가는 지역마다 영혼들이 돌아오고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결과 광야 같은 우리의 심령이 변하여 하나님을 모신 아름다운 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생명의 숲이 되어 우리 주변을 하나님의 숲으로 만드는 생명의 사역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2024년 금년 한 해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심령과 가정마다 광야에서 아름다운 밭으로, 아름다운 밭에서 울창한 숲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성령을 사모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이 역사하여 숲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년 주제 성구인 이사야 32장 15절은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광야가 변하여 아름다운 밭이요 숲이 되는 역사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심령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광야 같은 심령에서 아름다운 받이 되도록, 그리고 시대를 섬기는 숲이 되도록 계속해서 기도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금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는 금년 한 해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과 사업장마다 광야가 변하여 밭이 되고, 밭이 변하여 숲이 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떠나갔던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의 기업이요 기름진 땅으로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교회에 맡겨 주신 모든 사역과 사업의 영역에서 광야가 변하여 숲이 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하며, 모든 부서의 환경마다 광야에서 아름다운 밭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에 남겨 주신 교회 캠퍼스와 주차장과 드림키즈 땅과 연수원과 교회묘지가 광야에서 아름다운 밭으로, 아름다운 밭에서 시대를 섬기는 숲으로 개간하고 변화시키는 역사가 시작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 주변의 모든 지역 사회와 지역을 살아가는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변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대전중앙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1-16
  • 깨뜨리자(마태복음 26장 6절~10절)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 26:6~13)   2024년을 바라보며 우리는 새 행정을 맞아 구역이 바뀌고 구역장과 구역원이 바뀌어 좀 생소하기도 하고 맘에 안드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목표로 삼고 달려갈 곳은 천국이기에 천국을 소유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받기를 갈망하고 삽니다.     우리의 진정한 복은 천국을 소유한 자가 최고의 축복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배다니 시몬의 집에서 천국복음을 전하실 때 순수한 믿음의 여인은 예수님을 통해 천국을 보았기에 노동자 1년 치 임금인 향유를 단 한 방울의 낙오도 허용치 않고 탈탈 털어 예수님께 전부 쏟아 부었습니다. 제자들은 분개하며 여인을 핍박하였으나 예수님은 “내 장례를 위하여 특별히 행한 것이니라”하시고 여인을 향해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기억하리라” 여인이 제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향기를 가득 채움같이 나를 깨뜨려서 사랑과 감사와 희생의 향기를 가득채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깨뜨려야 할까요?    첫째 약한 믿음입니다. 자라지 않는 신앙은 성장하지 않는 믿음이며 바로 ‘의심’입니다. 교회, 목사, 성도에 대한 불평과 의심이 있으면 절대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왜 나는 믿음이 안 자라고 늘 퇴보하는가 하는 마음이 들 때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입술에는 감사가 있는가? 혹여 불평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모습이 있다면 반드시 깨뜨려야 합니다    둘째 물욕입니다. 물질은 우리에게 아주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에 너무 과하게 욕심을 내다보면 예수보다 물질을 쫓아가게 되고 예배생활을 뒤로하고 돈을 벌려 나가게 되고 끝내는 침륜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은 물질만 사랑하다가 네 영혼을 데려가면 이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눅12:20)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관리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 가족, 성도,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물질관으로 사용하는 관리자로 깨어지길 소망합니다.    셋째 교만입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하며, 내가 아니면 안됩니다.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장이라 했습니다. 이렇듯 말씀처럼 교만은 망함의 선봉이기에 깨져야 하며 교만에서 내려와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성들을 깨뜨리고 신실한 믿음의 청지기들이 됩시다    나의 약한 믿음과 물욕과 교만이 예수님 이름으로 깨짐으로 새롭게 거듭나서 아름다운 향기를 주님께 드리며 빛된 삶을 사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대한교회 목사·예장 백석측 부흥사회 회장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1-09
  • 믿음의 걸음을 내딛자 (창12:1~5)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한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라는 말씀은 한 해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으면 새롭게 맞이해야 하는 때도 있기에 새로운 한 해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마음을 새롭게 하고 이전에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 붙잡고 다시 출발하라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서 주신 새로운 한 해가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소망하고 기도하는 것들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인지에 대해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본문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믿음의 걸음을 내딛으며 살기 시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 각자가 믿음의 걸음을 내딛기로 결단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한다.   첫째:감동을 따라가라(1)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자가 되려면 첫째 현실이 아닌 내일의 소망을 위한 감동을 따라가야 한다.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세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절)고 명령하신다.   세상은 어떻게 하면 안락하고, 편안하고, 익숙한 것에 거하며 살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믿음의 걸음은 늘 새로우며, 매번 낯설기도 하고, 한치 앞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하며 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주저하지 않고 반응하며 따라갔던 이들이다. 이 감동을 따라 사는 것을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리라”(눅9:62)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눈에 보이는 익숙하고, 안전한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따라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축원한다.  둘째:약속을 따라가라(2~3)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자가 되려면 둘째 확신이나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야 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찾아오기 전까지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주목하지 않는다. 아브람이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였을 때가 75세(4절)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아브람이 자신이 살았던 삶의 방식을, 경험을 통해서 깨달아 진리라고 여기는 것들을 한 순간에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임하였고, 자신의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말씀만 붙들고 사는 것도 버거운데 이 세상 것들도 붙들고 살려고 하니 얼마나 고단한 인생인가?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네게 유익하던 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빌3:7~8)이라 고백한다. 내 욕심, 경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자.  셋째:확신으로 따라가라(4~5)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자가 되려면 셋째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분명한 확신으로 따라가야 한다.   성경은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4a)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이나 앞으로 되어 질 일들에 대해서 계산을 다 마치고 나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5절)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는 말씀이 떠오른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신데, 내가 만약 나의 걸음을 온전히 맡길 수 있다면 나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시는 확신 안에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길 축원한다.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진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는 요단강이 우기라는 자연의 강한 힘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그 강을 건너는 방법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앞서 건너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언덕까지 범람하던 물이 멈추고 백성들은 그 강을 건너가게 된다(수3:14~16).   믿음의 한 걸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을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걸음을 내딛어 복의 근원이 되었던 아브라함처럼, 올 한해 각자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의 걸음을 내 딛음으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경험하는 은혜의 시간들이 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1-08

실시간 금주의 말씀 기사

  • 부족함이 없는 이유 (시23:1~6)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정확하게 선포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지고 정말 아쉬운 것이 없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부르실 때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1:5)고 말씀하셨다. 나보다 나를 더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말씀을 통해서 내게 부족한 것들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시선이 이제는 내게 차고 넘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면서 감사의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내길 축원한다.  첫째:인도하심(1~3)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는 이유 첫 번째는 바로 그 분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살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부족함 없이 인도하시는 이유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3절)이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며 그 이름의 영광과 찬송을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며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는 자의 마지막은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고 있다면 사망의 길을 벗어나 생명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인도하심 가운데 머물며 사는 것이 매일의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인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보호하심(4)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는 이유 두 번째는 바로 그 분의 보호하심을 느끼며 살기 때문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생각하면 삶에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다가오는 순간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하시는’(4절)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 분의 뜻대로 살다가 당하는 고난을 맞이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똑같은 사망의 골짜기라 할지라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를 받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로 분명하게 나뉘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이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49:15~16)고 말씀하셨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절망과 슬픔의 장소가 아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깨닫는 곳이 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믿음 안에 사는 자의 가장 큰 축복임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셋째:동행하심(5~6)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는 이유 세 번째는 바로 그 분의 동행하심을 확신하며 살기 때문이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야 했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1:5)라고 약속하셨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곁에서 입의 혀처럼 굴더니 드디어 권력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을 택하여 자신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시는 분이시다.   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의 축복에 대해 다윗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이어지게 될 것을 고백(6절)하고 있다.   영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그 분과 동행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정말 부족함이 없는가? 세상의 많은 부족함에 대한 갈증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닌가?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라 찬양할 수 있을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라는 고백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의지적인 고백이 아니라, 진정한 감사와 찬양에서 나오는 고백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려져야 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12-05
  • 하나님을 자랑하라 (시20:1~9)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본문은 하나님 안에 머무는 것이 세상의 무엇보다 자랑할 수 있는 이유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렘9:23~24)고 말씀하신다.   또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미련한 것”, “약한 것”, “천한 것”, “멸시 받는 것”, “없는 것”을 택하셔서 사용하시는 이유는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내게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만큼 자랑할 것이 없음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첫째:예배 받으심(1~3)  하나님이 나의 자랑이 되시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나의 예배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소에서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붙들어 주시고(2절) 소제를 기억하고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는 것(3절)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온전한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 드린 예물과 제사를 받지 않으심에 격분하여 동생 아벨을 죽이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만다(창4:3~8).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10)고 말씀하셨다.   예배는 나의 삶에 가장 큰 자랑거리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이다. 오늘 나는 얼마나 참된 예배자로 서 있는지 점검해 보길 바란다.  둘째:기도 들으심(4~6)  하나님이 나의 자랑이 되시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본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6절)라는 것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속에 거하는 이를 의미한다. 기도라고 해서 무조건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 기반이 된 기도가 응답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약속하여 주셨다.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할 수 있는 자들만이 가지는 축복이다.   이 은총을 잃어버리지 않길 위해 날마다 어느 곳이 되었든 기도의 자리를 세우고 지켜가길 축원한다.  셋째:힘이 되어 주심(7~9)  하나님이 나의 자랑이 되시는 세 번째 이유는 바로 환란 날에 그 어떤 것보다 나의 힘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본문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7절)고 고백하고 있다.   성경은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18:10)고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그 이름 자체가 바로 능력이고, 그 이름을 신뢰하는 자만이 그 이름이 주시는 힘을 경험하며 살 수 있게 된다.   시편을 읽고 묵상하고 있지만 시편의 수많은 고백과 찬양은 환난 날에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시고, 위로가 되어 주심에 대한 것들이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   자기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썩어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고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가장 귀한 열매로 인정받게 될 것을 기억하며 살자.  자랑거리가 온 천한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라면 그 이름을 전하고 증거 하는 것이 절대 부끄러운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목숨을 걸고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그가 받은 응답은 무엇이었는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오늘 나의 자랑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자랑할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기억하며 하나님만을 자랑하며 선포하는 한 주간이 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11-28
  • 하나님께로 피하라 (시16:1~11)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선성이시로다”(시18:2)라고 고백한다.   홍수나 화재의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고 그 위기를 피하는 방법과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평소에 알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위기의 순간에 내가 피할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구원받은 자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자세이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위기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기억하고 그에 따른 현상과 결과에 대해 말씀을 통해 배우고 준비하며 깨어있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방법(1~4)  하나님께 피하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피하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한 마디로 성도의 삶을 사는 것이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2절)고 말씀하신다.   반대로 하나님께 피하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는 자들은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4절)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6~7)고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는 바로 고난 앞에 서 있을 때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며 나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피하는 방법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둘째:현상(5~8)  하나님께 피하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피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 피하는 자는 마음의 안식과 평안은 물론이고 모든 문제들의 실질적인 해결함을 얻게 된다.   본문을 보면 나의 재물을 지켜 주시며(5절), 삶의 울타리를 평안하게 하시며(6절), 양심의 교훈을 밤마다 얻게 되고(7절), 궁극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된다(8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 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 살피시는도다”(시33:12~14)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는 그 삶의 문제가 풀어지는 역사는 경험하게 된다.   이를 위해 이 세상이 주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예수님의 약속처럼 평안함과 함께 찾아오게 된다(요14:27).  셋째:결과(9~11)  하나님께 피하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누리는 결과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마음이 기쁘고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게 된다”(9절).   더 나아가 11절을 보면 “생명의 길”, “충만한 기쁨”, “영원한 즐거움”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그저 그 날개 아래에 숨어서 소나기를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의 길을 힘 있게 걸어가면서 그 길에서 충만한 기쁨을 경험할 뿐 아니라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영원한 즐거움을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당장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영생의 문제까지 해결함을 얻게 된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존귀한 자들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약속받았지만 생명의 길로 가지 않으며 충만한 기쁨 보다는 근심과 걱정이 앞서고 영원한 즐거움보다는 두려움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만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하게 된다. 아직도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어쩌면 내가 기대고 의지할만한 것이 내게 남아 있어서는 아닌지 돌아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이 되길 바란다.   성경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시125:1~2)고 약속해 주신다.   이번 한 주간도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피하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11-21
  • 나의 눈을 밝히소서 (시13:1~6)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는 고백처럼 아무리 치밀하고 빈틈없는 준비를 했어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며, 이와 반대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처럼 극도의 절망과 고통 속에서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무엇보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가 중요하다.   절망 속에 있는 다윗의 고백을 통해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고 지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있다면 하나님 안에서 명쾌한 해답을 찾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탄식(1~2)  고난과 절망의 순간 나의 눈이 밝아지기 위해서는 탄식의 방향이 정확해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삶의 절망과 고통의 문제를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찾으려고 애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 원수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얼마나 바로 서 있는가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것 때문에 탄식하는 자가 해야 할 일이다.   이 올바른 방향을 바로 잡고 서 있을 때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를 이겨낼 수 있는 첫 단추를 바로 끼우는 것이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사42:3)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찾으며 탄식하는 자의 소리를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하셔서 그 눈을 밝혀 주를 보게 하실 것이다.  둘째:기도(3~4)  고난과 절망의 순간 나의 눈이 밝아지기 위해서는 기도의 내용이 확실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이 절망의 고통에서 건져 내어 주셔야 하는 이유가 원수들이 기뻐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기도한다(4절). 자신이 당하는 고통과 절망이 자신의 죄로부터 시작될 수 도 있다는 겸허한 자세를 가진 자만이 바로 다윗처럼 기도할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 가운데 범하는 오류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너무 의롭고 아무 죄가 없기 때문에 내가 당하는 모든 환란의 문제는 온전히 악한 상대방에게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지 못한다.   겸손한 기도, 먼저 내 눈이 밝아져서 나의 모습을 보고, 상대를 보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온전한 기도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찬양(5~6)  고난과 절망의 순간 나의 눈이 밝아지기 위해서는 찬양의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으로 변하는 축복을 경험한다.   복음을 전하다 매를 맞고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고통과 절망의 순간, 탄식과 원망이 아니라 기도와 찬송이 울려 퍼진 그 공간은  터가 움직이고, 굳게 닫힌 문들이 열려지며, 모두를 옮아 매고 있던 족쇄들을 풀어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곳으로 변화된다(행16:25~26).   찬양은 그저 내 마음에 위로나 받고, 감정 상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태산 같은 문제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현실의 상황과 문제를 넘어 행하실 놀라운 일들에 대해 찬양할 수 있는 자만이 그 눈이 밝아져 하나님이 행하실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되는데 이를 위해 온 마음으로 찬양하는 자세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고난과 절망의 순간에 눈이 밝아질 수 있는 것은 그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그 모든 순간에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다.   욥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고난을 다 겪고 나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42:5~6)고 고백한다.   세상의 것들을 쫓아 붉게 충혈된 눈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밝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그 어떤 것보다 내 눈을 들어 주의 영광을 보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11-14
  • 날마다 깨어 있어야 할 이유 (시7:1~17)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시편 7편은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도망하던 시기에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심정을 쏟아 놓은 시로 특별히 사울왕의 옷깃만 베고도 찔림(삼상24장)을 받았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다윗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깨어 있는 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고난의 문제는 위로의 말이나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그 무게가 가벼워 질 수는 있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절망의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어떤 상황이라도 하나님 앞에 머물기 위해서 명심해야 할 것은 잠들지 않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첫째:연약한 존재(1~5)  다윗은 고난 가운데 있지만 그 상황이나 사람을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자세를 가진다.   자신의 손에 죄악이 있거나(3절),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아 주거나 이유 없이 빼앗은 것(4절)이 있으면 자신이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5절)으로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다.   자신을 겸손한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자가 받게 되는 은혜는 바로 영혼이 새롭게 소생되는 축복으로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57:15)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겸손 안에 있는 연약함이 하나님이 나의 삶에 깊이 개입하셔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됨을 기억하며 날마다 깨어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에게 피하는 신실한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둘째: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6~11)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앞에서 살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11절)이시기 때문이다.   그의 재판은 다른 외적인 환경이나 조건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8절) 하실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9절) 하시며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깨어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의 지적처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서게 될 것인지 아니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방패삼아(10절) 참된 평안을 누리며 서게 될 것인가를 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셋째:분명한 죄의 결과(12~17)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16절)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악인들에게도 없는 것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해피앤딩이다.   예수님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눅16:19~31)를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떻게 사는지가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악인의 삶을 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악인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권면한다. 악에게 악으로 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1~22)는 명령대로 살 때에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는 말씀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5:8~9)고 말씀하고 있지만 사실 날마다 깨어 있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며 그 능력 안에서 깨어 있고자 사모하는 자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신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127:1)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깨어 있는 그 자체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함을 잊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깨어 있는 자로 살아가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10-31
  • 감사위에 감사를 (시4:1~8)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추수 감사절 예배를 드리면서 나의 삶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부족한 것이 감사임을 깨닫는다.   나병환자 열 명의 외침을 듣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셔서 고쳐 주시지만 사마인아 사람 한 명만 돌아와 감사한다.   그 때 예수님이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17:17)고 물으신다.   문제가 해결되고, 삶의 한 고비를 잘 넘어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감사할 줄 아는 자가 바로 주님이 찾으시는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통해서 그 무엇보다 감사위에 감사를 쌓아가는 한 사람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은혜 베푸심(1~2)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자는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심”(1절)을 경험하며 사는 자이다. 너그러움 이야 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야 하는 삶의 자세이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고자 모든 힘과 능력을 쏟아 붓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번번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삼상24:6, 26:11)이라 고백한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왕에게 이해할 수 없는 너그러움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런 선택을 내리며 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나 환경이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합리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너그러움을 누리는 축복 주심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택하여 주심(3~4)  하나님이 경건한 자를 택하시는 이유는 바로 “자기를 위하여”(3절)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하고 있다.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시는 것은 자녀들의 간구를 듣고 채워 주시는 것에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베드로 사도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둔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런 자들은 두려운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에게 하나님의 택하심을 기억하며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사는 자들이 된다(4절).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그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얼굴을 대하심(5~8)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배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예배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은 다른 어떤 것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그 얼굴을 향하시고 비추어 주심(6절)이라 고백하고 있다.   그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며 살 때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기쁨보다 더 큰 기쁨(7절)을 누리고 평안히 잠들 수 있는(8절) 축복 가운데 거하게 하신다.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1~2)라 고백한다.   이 세상의 어떤 축복보다 하나님이 내게로 얼굴을 향하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보다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이 있어야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이 얼마나 더 채워 주셔야지 우리가 만족하는 인생이 될 수 있을까?   희망이 안 보이는 절망의 순간 속에서도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3:22~23)라고 고백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백이 오늘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감사할 것이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평안히 잠들고 아침에 눈을 떠서 새로운 마음과 결단으로 하나님에게 하루를 의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하며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10-24
  • 믿음 안에 사는 인생 (시3:1~8)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시편 3편은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뼈아픈 순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들의 반란으로 왕궁을 떠나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감람산을 오르는 다윗의 심정(삼하15:30절)이 어떠했을까?   야고보 사도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3~4)며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것은 모든 문제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고난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첫째:듣기(1~2)  압살롬을 피해 도망치는 다윗을 향해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2절)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데 절망과 위기의 순간일수록 사람은 들려지는 말에 영향을 받게 된다. 평안한 순간이라도 사람들의 달콤한 말에 취하여 살면 안 되는 것은 물론이며, 절망과 고난의 순간에는 더더욱 부정적인 말들을 담아두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3:8,10)고 말씀하고 있다.   내게 들려오는 말을 내가 선택해서 들을 수 없기에 들려오는 말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하다. 부정적인 말들과 나를 결려 넘어지게 하는 말들에 묶어 사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날마다 함께 하시며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기를 바란다.  둘째:말하기(3~4)  사람들이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하는 순간에도 다윗은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3절)고 고백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앞날이 달라진다.   다윗은 지금 당장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해 믿음의 고백과 찬양을 자신의 목소리로 올려 드리면 하나님의 그의 성산에서 듣고 계신다고 확신했다(4절).   우리 주 하나님은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에서 보듯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자녀의 목소리를 듣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문제가 크고 고난이 깊을수록 하나님에게 목소리를 들려 드리는 것이 바로 믿음 안에 사는 인생의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바라보기(5~8)  믿음 안에 사는 인생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천만인(6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5절)을 바라보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믿음의 기록들이 참으로 많다. 엘리사를 제거하기 위해서 아람왕이 도단에 수많은 군사들을 보내 포위하였지만 엘리사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너무나도 담담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6~17)가 그 해답이다.   다윗처럼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8절)라는 고백은 내가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때 완전한 해결책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의 고백이다.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듣고, 말하고,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수 없이 반복되기에 중요하지 않게 여기며 지나칠 수 있지만 참된 믿음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참된 믿음의 고백이 쌓여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작은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매일의 삶에서 믿음 안에 사는 인생이 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10-17
  • 억지로에서 기꺼이로 (막15:21)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간 그 길을 오늘날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이라 한다. 예수님이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간 길이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십자가(수난)의 길’, ‘고통의 길’, ‘슬픔의 길’이란 뜻으로 길을 의미하는 ‘비아(via)’와 슬픔, 고통(고난)을 의미하는 ‘돌로로사(dolorosa)’가 합쳐진 라틴어이다. 이 길을 순례하는 순례객들은 비아 돌로로사 거리에 특별히 의미 있는 열네 지점을 표시하고 각 지점마다 걸음을 멈추어 처형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하며 기도를 드린다. 열 네 묵상 중에서 다섯 번째는 「구레네 사람 시몬, 예수께서 십자가 옮기심을 돕다」이다.   로마 군인들의 채찍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는 길에서 쓰러지자, 로마 군인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장까지 끌고 가야겠기에 마침 옆을 지나가던 한 사람을 징발한다. 그가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다. 그는 어떻게 보면, 아주 재수 없는 사람이었다. 빌라도 법정에 모여 있던 그 많은 군중을 놔두고, 또 골고다 언덕길 좌우에서 구경하고 있던 수많은 구경꾼들을 놔두고, 하필 시골에서 올라와 바삐 자기 길을 가던 그가 붙잡혔던 것이다.   시몬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구경하던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 것도 모른 채 붙잡혀 예수님과 함께 억지로 골고다 길을 오르게 됐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쳐 쓰러졌을 때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마지막 언덕길을 올랐다. 그리고는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성서 어디에도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간 후 투덜대며 바삐 자기 길을 갔는지, 십자가 처형을 집행하는 것까지 보고 갔는지,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십자가에서 죽는 것까지 보고 갔는지 알 길이 없다. 후대의 전설에 의하면 시몬은 계란 장수였는데,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그가 집에 돌아가 보니 계란이 모두 무지갯빛으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유래가 생겨났다고도 한다.   그러나 구레네 사람 시몬, 그는 결코 재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가던 길에서 붙잡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지기는 했지만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로마서 16장 13절에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사람으로 알렉산더와 루포를 꼽는다. 그 둘은 바로 시몬의 아들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증인으로, 처음 교회의 좋은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본문에서 시몬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 소개하는 것은 그들이 마가 공동체에도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억지로 붙잡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던 시몬에게서 우리는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는 누구나 하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할 많은 일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인간들의 능력이고 가능성이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   시몬이 처음에는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갔더라도 그 길에서 예수님을 깨닫고 나중에는 기꺼이 예수 운동에 동참했다. 마가공동체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과 로마에 있는 교회에까지 그의 이름과 아들들이 알려져 있던 것이 그 증거이다. 억지로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단 그 일이 옳은 일이라면 기꺼이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의 몫이다. ‘억지로’를 ‘기꺼이’로 바꾸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충만하게 할 것이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10-15
  • 성령으로 치유와 회복을 체험하라(행 9장 32절~43절)
        ‘사도행전’은 12사도들의 행적을 기술한 내용이다. 사도 베드로의 사역을 다룬 본문 말씀을 세 가지 키워드를 중점으로 보고자 한다. 하나는 중풍병과 죽음, 그리고 영적인 죽음, 마지막으로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방법이다.   본문말씀은 중풍으로 8년째 누워지내는 병자 애니아란 인물을 예수님께서 치유하는 일과, 죽은 여제자 다비다라는 여제자를 살리시는 일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엔 중풍병으로 번역했지만, 요즘은 뇌졸중으로 표현되어 모든 신체가 다 마비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신체적인 증상뿐 아니라 영적인 중풍의 요소는 다음과 같다. △운명주의, 허무주의, 패배주의 △열등감, 패배감, 무력감 △경쟁심, 시기심, 질투심 △두려움, 불안, 공포심 △원망, 불평, 수군거림 등이다. 이것들의 원인은 모두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온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해 영적, 신체적 질병에서 해방될 것을 굳게 믿고 나아가야 한다.   오늘 사건 중에 특별히 다른 성경내용과 차이점이 있는 것 중 하나가 중풍병자의 이름이나 또는 죽었다가 살아난 애니아나 다비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들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건이 확실하고 분명하게 특정 누군가에게 일어난 사건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영적인 죽음 가운데 있던 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장면은 이들의 영적인 죽음도 함께 해결되는 모습이다. 또한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를 재현하는 베드로의 영권과 영력이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인생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여 살리는 역사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2).우리는 아담 안에서 다 죽은 사람들이다.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영혼이었고, ‘죽어가고 있는’ 영혼이다. 본문에서 현재형과 현재진행형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살림을 받았고, 이를 믿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죽은 자이며, 죽어가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또 기업 무를 자로 삼으셨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다’(롬8:17). 하나님께서 은혜 주심으로 죽어가는 영혼들과 마귀의 자녀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   영적인 죽음 상태는 무엇이며, 잠든 영혼을 깨우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는 영적인 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5:14). 그리하여 영적인 위기를 각성하고 깨어나도록 해야 한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단12:2). 일어나 빛을 발할 것(사60:1)을 명령하셨다. 그리고 삶 속의 여러 영적위기를 돌파하라(역상11:18).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역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는 일이다. 이런 권능은 전적인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기로 작정한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다. 간청하는 자, 선택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를 기도로 간절히 구하라.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인격과 상관없이, 지식과 상관없이 주신다. /영동침례교회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10-11
  • 일꾼으로 세워지려면 (눅24:44~49)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집중하셨던 것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셨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분명한 목적을 감당했던 사람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은 그 소명을 감당하는 일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믿음으로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씀 안에서 나는 과연 내게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지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깨달음(44~45)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이미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서 이미 자신을 위해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 설명해 주신다(44절).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나, 기적 때문에 변하는 것이 아님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보여준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45절)될 때 진정한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라며 그 말씀 앞에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난다고 가르치고 있다.   신앙적인 연륜, 직분, 혹은 섬김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와 참된 깨달음으로 충만해야 함을 기억하며 말씀에 집중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둘째:부르심(46~48)  예수님은 자신과 함께 하는 자들을 향해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8절)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승천하시기전에 그곳에 모인 이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명령하셨다.   이에 베드로는 오순절에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서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라”(행2:32)고 담대하게 선포할 뿐 아니라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이의 손을 잡아 일으킨다. 그 일로 사람들이 자신들을 주목하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서 “이 일의 우리가 증인이라”(행3:15)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참된 제자는 예수 믿고, 구원받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만족하는 자가 아니라 증인의 삶을 살아내는 자이다. 지금 얼마나 증인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각자의 모습을 돌아보자. 셋째:기다림(49)  은혜를 받고, 열정이 넘치다 보면 자기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주시는 것이 성령이다. 이 성령이 나를 온전히 이끌어 가실 수 있는 순간까지 해야 할 일은 온전히 기다리는 것이다.   다윗은 사무엘을 통해서 10대의 소년 시절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지만 왕이 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삼하5:4)을 기다려야 했으며,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지만 아라비아 광야(갈1:17)의 연단을 거처 3년이 지나서 사도들을 만나게 된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500여 형제에게 보이셨으나(고전15:6절) 성령이 임하는 마가의 다락방에는 약 120명의 사람(행1:15)만이 모여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은 더딘 것 같지만 가장 빠른 지름길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가장 미련해 보이는 일을 묵묵히 감당할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의 일꾼은 특별한 능력을 행하거나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은사를 행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귀한 일꾼은 복음을 전하는 자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는 바울의 고백이 이 시대의 일꾼이 되길 소망하는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10-1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