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8(수)

교회/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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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콤한 소통(사도행전 5장 38절에서 42절)
       오늘 사도행전 이야기는 오순절 성령강림 후 사도들의 변화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 전에는 두려워하고 절망하면서 다락방에 스스로 유폐되어 있던 제자들이 성령강림 후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요 우리의 구세주라고 목소리 높여 선포하기 시작했고, 앉은뱅이나 눈이 먼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소리를 높여서 사회의 권력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분개해서 제자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중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원로답게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여러 번 보아왔듯이 제자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하나님께서 곧 없어지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 좀 두고 보자. 이렇게 제자들을 해치고자 하는 사람들을 말렸습니다. 그 대신 제자들을 채찍질한 다음에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투옥되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채찍 맞고 걸어 나오는 제자들이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고통 속에서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기독교인들만의 특별한 모습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편해졌을 때 망합니다. 신앙은 마침내 부활이요 승리지만 그전에 반드시 고난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십자가를 생략한 부활·행복·생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에서 고난을 생략하면 기독교는 망했습니다.  옛날에는 교회 가는 것이 전쟁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주일만 되면 일을 시키거나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해서 그것을 뚫고 교회 나오는 것은 매주 전쟁이었습니다. 때로는 빗자루로 얻어맞고 여성들은 머리도 막 잘리면서도 교회에 갔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신앙이 진짜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교회 가는 것 때문에 아무런 고난이 없습니다. 다 편합니다. 교회에 와도 목회자가 쓴소리하기 어렵습니다, 교회 안 나올까 봐. 결국, 희생이나 헌신 없이 달콤한 열매만 추구하게 되면 그 신앙도 죽고 교회도 죽습니다. 우리 교회가 움직여지고 선교 공동체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많은 성도의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정상적입니다. 너무 합리적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은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복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시간과 건강과 노동과 물질을 드리면 나는 당장 힘들고 어렵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몸이 아프고 다른 일도 하지 못하고 돈 쓸 곳이 여러 군데인데 못 쓰니 고통입니다. 근데 그 고통을 기뻐하게 된다는 것은 거룩한 중독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을 어떤 고통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 전통입니다. 이걸 다시 찾아야 합니다. 달콤한 고통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주민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2-05
  • [금주의말씀] 교회에서 찾을 영광
       신학교 재학 시절, 캠퍼스 안에 기숙하고 있던 학생들과 ‘뉴욕 곰탕집’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신학교로 돌아오면서, 차 안의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모두들 맛있게 드셨어요?” 모두들 잘 먹었다고 하는데 한 학생만 “아니요!”라고 답을 합니다. “왜?” 되물었더니, “짜장면이 맛이 없어요” “아니, 곰탕집에 갔으면, 곰탕을 먹어야지, 짜장면을 먹고 맛이 없다고?”하며 모두 웃었던 일이 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를 썼던 C.S 루이스는 크리스천으로 회심을 한 후에도 오랫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교회에 대한 역할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동물원에 가는 것만큼이나 교회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집단의식에서 시작 된 것으로 신경이 무척 쓰이는 ‘같이하기’ 행사였다”고 하며, 교회를 좋게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크리스천의 생활은 개인적인 탐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교회에 임재하신다. 그리고 교회는 크리스천의 삶이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인간으로서,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여, 어디에 속할 필요가 있다.”   파스칼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신을 찾는 자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교회 안에 분명한 표징을 두었다.” 그러면, 교회에만 있는 그 무엇, 교회에서 찾아야 할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를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2c-3절 말씀처럼,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저희 앞에서 변형 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변형’(transfigured)의 뜻은 ‘안으로부터 나오는 모습’입니다. 즉, 예수님의 본래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문화와 사회의 상황과 각자의 생활 속에 바쁘게 살면서, 예수님도 그 모든 영향 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마음과 시간과 공간을 구별하여 모인 교회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4-6절 말씀처럼, 성경 속의 인물·사건·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체험합니다. 7절에서 그동안 배웠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습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은 그동안 배웠던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영광된 체험을 할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어디입니까? 변화 산 자체가 특별하고, 유명한 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서 변화 산입니다. 어느 교회이든지,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의 영광 된 교회입니다.   또한 2절에 ‘따로’, ‘높은’, ‘올라가셨더니’의 단어처럼, 우리는 예배의 시간과 장소를 특별히 구별해야 합니다. 일상적인 생활 중에, 나를 따로 구별하는 예배가 필요합니다. 또 8절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에 현실에 충실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영광된 변화 산과 교회에서, 생활 현실로 돌아와 충실 하십시오. 내 생활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소명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맛을 보았으면, 그 힘으로 내 삶이 영광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세상에서, 일상생활에서 그 영광의 능력을 발휘하시길 축원합니다./목사·새빛다문화센터장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1-30
  • [설교] 기도
    김국현목사    우리는 보통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제일 쉬운 일은 숨 쉬는 것입니다. 숨 쉬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쉬운 것이 누워서 숨쉬기입니다. 교회가 생명력이 있다면 살아있는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들이 소유한 능력의 원천이며, 동시에 건강의 척도입니다. 성도는 어마어마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한 손에 거머쥐신 분의 능력을 청구해 쓰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주시는데, 그 연결선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아무리 잠재적인 능력이 많다 하더라도 참 무력해 보입니다.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없으면 참 무력해 보입니다. 반면 몇 명 모이지 않는 교회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기도가 있으면 역사를 움직이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의 능력을 가르쳐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2~14).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들은 나의 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더 큰 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장막 안에 금향단이 있습니다. 이 금향단에 성도의 기도가 담겨져 하나님 앞에 올라갑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주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위해 기도하고 이 기도의 응답으로 이 땅 위에 종말의 증거을 보이십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도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행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땅 위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행해집니다.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알리는 사인입니다.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주님도 다시 오십니다. 기도에 이렇게 엄청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악한 마귀는 잘 압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기도를 못하게 만듭니다. 바쁘게 만들고, 이유를 만들고, 어떨 때는 핍박을 통하여 하여튼 기도만은 못하게 하려고 획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나아가서 기도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그분이 주시는 사랑을 받는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기도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기도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커다란 착각이며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기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우리의 영혼이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주리고 목마르십니까? 우리의 삶이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렘 2:13)와 같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럴 때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말씀하신 주님의 초대를 기억하십시오. 그리하여 주께로 나아가십시오. 갈급한 심령으로 주 앞에 나아와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 홍천 풍성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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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4-01-25
  • 너희 광야가 숲이 되리라 (이사야 32장 15절)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곳에는 반드시 부활과 회복과 성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손길이 닿게 될 때, 어떤 쓸모 없는 땅도 기름진 땅으로 변하게 되며, 그 기름진 땅에 생명의 씨앗이 자라나서 그 주변 전체가 숲을 이루어 가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금년 우리 교회의 주제 "너희 광야가 숲이 되리라!" (From Deserts To Forests!)는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와 복음의 능력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장차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변화를 일으키실 것인지 예언하시고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만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생명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광야와 같이 죽었던 세포가 살아나게 되었고, 죽었고 메말랐던 심령에 생명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이 심기기 시작했고, 그 마음 밭이 생명의 밭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베드로와 바울입니다. 어부였던 베드로 안에 생명이 임하니까 베드로를 통해 평생 일어서지 못하던 자가 일어서게 되었고,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거부했던 사도바울이라 할지라도 그 심령에 생명이 임하니까, 그가 가는 지역마다 영혼들이 돌아오고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결과 광야 같은 우리의 심령이 변하여 하나님을 모신 아름다운 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생명의 숲이 되어 우리 주변을 하나님의 숲으로 만드는 생명의 사역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2024년 금년 한 해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심령과 가정마다 광야에서 아름다운 밭으로, 아름다운 밭에서 울창한 숲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성령을 사모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이 역사하여 숲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년 주제 성구인 이사야 32장 15절은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광야가 변하여 아름다운 밭이요 숲이 되는 역사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심령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광야 같은 심령에서 아름다운 받이 되도록, 그리고 시대를 섬기는 숲이 되도록 계속해서 기도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금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는 금년 한 해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과 사업장마다 광야가 변하여 밭이 되고, 밭이 변하여 숲이 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떠나갔던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의 기업이요 기름진 땅으로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교회에 맡겨 주신 모든 사역과 사업의 영역에서 광야가 변하여 숲이 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하며, 모든 부서의 환경마다 광야에서 아름다운 밭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에 남겨 주신 교회 캠퍼스와 주차장과 드림키즈 땅과 연수원과 교회묘지가 광야에서 아름다운 밭으로, 아름다운 밭에서 시대를 섬기는 숲으로 개간하고 변화시키는 역사가 시작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 주변의 모든 지역 사회와 지역을 살아가는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변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대전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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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4-01-16
  • 깨뜨리자(마태복음 26장 6절~10절)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 26:6~13)   2024년을 바라보며 우리는 새 행정을 맞아 구역이 바뀌고 구역장과 구역원이 바뀌어 좀 생소하기도 하고 맘에 안드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목표로 삼고 달려갈 곳은 천국이기에 천국을 소유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받기를 갈망하고 삽니다.     우리의 진정한 복은 천국을 소유한 자가 최고의 축복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배다니 시몬의 집에서 천국복음을 전하실 때 순수한 믿음의 여인은 예수님을 통해 천국을 보았기에 노동자 1년 치 임금인 향유를 단 한 방울의 낙오도 허용치 않고 탈탈 털어 예수님께 전부 쏟아 부었습니다. 제자들은 분개하며 여인을 핍박하였으나 예수님은 “내 장례를 위하여 특별히 행한 것이니라”하시고 여인을 향해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기억하리라” 여인이 제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향기를 가득 채움같이 나를 깨뜨려서 사랑과 감사와 희생의 향기를 가득채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깨뜨려야 할까요?    첫째 약한 믿음입니다. 자라지 않는 신앙은 성장하지 않는 믿음이며 바로 ‘의심’입니다. 교회, 목사, 성도에 대한 불평과 의심이 있으면 절대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왜 나는 믿음이 안 자라고 늘 퇴보하는가 하는 마음이 들 때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입술에는 감사가 있는가? 혹여 불평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모습이 있다면 반드시 깨뜨려야 합니다    둘째 물욕입니다. 물질은 우리에게 아주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에 너무 과하게 욕심을 내다보면 예수보다 물질을 쫓아가게 되고 예배생활을 뒤로하고 돈을 벌려 나가게 되고 끝내는 침륜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은 물질만 사랑하다가 네 영혼을 데려가면 이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눅12:20)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관리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 가족, 성도,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물질관으로 사용하는 관리자로 깨어지길 소망합니다.    셋째 교만입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하며, 내가 아니면 안됩니다.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장이라 했습니다. 이렇듯 말씀처럼 교만은 망함의 선봉이기에 깨져야 하며 교만에서 내려와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성들을 깨뜨리고 신실한 믿음의 청지기들이 됩시다    나의 약한 믿음과 물욕과 교만이 예수님 이름으로 깨짐으로 새롭게 거듭나서 아름다운 향기를 주님께 드리며 빛된 삶을 사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대한교회 목사·예장 백석측 부흥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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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4-01-09
  • 믿음의 걸음을 내딛자 (창12:1~5)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한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라는 말씀은 한 해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으면 새롭게 맞이해야 하는 때도 있기에 새로운 한 해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마음을 새롭게 하고 이전에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 붙잡고 다시 출발하라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서 주신 새로운 한 해가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소망하고 기도하는 것들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인지에 대해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본문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믿음의 걸음을 내딛으며 살기 시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 각자가 믿음의 걸음을 내딛기로 결단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한다.   첫째:감동을 따라가라(1)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자가 되려면 첫째 현실이 아닌 내일의 소망을 위한 감동을 따라가야 한다.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세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절)고 명령하신다.   세상은 어떻게 하면 안락하고, 편안하고, 익숙한 것에 거하며 살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믿음의 걸음은 늘 새로우며, 매번 낯설기도 하고, 한치 앞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하며 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주저하지 않고 반응하며 따라갔던 이들이다. 이 감동을 따라 사는 것을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리라”(눅9:62)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눈에 보이는 익숙하고, 안전한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따라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축원한다.  둘째:약속을 따라가라(2~3)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자가 되려면 둘째 확신이나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야 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찾아오기 전까지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주목하지 않는다. 아브람이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였을 때가 75세(4절)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아브람이 자신이 살았던 삶의 방식을, 경험을 통해서 깨달아 진리라고 여기는 것들을 한 순간에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임하였고, 자신의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말씀만 붙들고 사는 것도 버거운데 이 세상 것들도 붙들고 살려고 하니 얼마나 고단한 인생인가?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네게 유익하던 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빌3:7~8)이라 고백한다. 내 욕심, 경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자.  셋째:확신으로 따라가라(4~5)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자가 되려면 셋째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분명한 확신으로 따라가야 한다.   성경은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4a)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이나 앞으로 되어 질 일들에 대해서 계산을 다 마치고 나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5절)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는 말씀이 떠오른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신데, 내가 만약 나의 걸음을 온전히 맡길 수 있다면 나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시는 확신 안에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길 축원한다.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진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는 요단강이 우기라는 자연의 강한 힘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그 강을 건너는 방법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앞서 건너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언덕까지 범람하던 물이 멈추고 백성들은 그 강을 건너가게 된다(수3:14~16).   믿음의 한 걸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을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걸음을 내딛어 복의 근원이 되었던 아브라함처럼, 올 한해 각자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의 걸음을 내 딛음으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경험하는 은혜의 시간들이 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1-08

실시간 금주의 말씀 기사

  • 금식에 대하여 (마6:16~18)
    길목교회 주재훈목사  금식 말고도 많은 신앙적인 행위들이 있을 텐데 금식이 왜 유대인의 3대 의무에 들어갈까? 그것은 금식이 주는 축복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욕구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 바로 식욕이다. 배가 부르지 않으면 다른 모든 욕구들은 사실상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금식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자신의 의지를 억제하는 행위이다.     이것을 외부에 의한 강압이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영성을 위하여 스스로 절제하고 통제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에 훈련이 되어 질 수 있다면 나머지 모든 삶의 영역에서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이 시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올바른 금식의 자세를 통해서 우리가 좀 더 영적으로 깊어지고, 넓어지는 사람들이 되길 소망한다. 쉬운 일이 아니기에 우리가 더욱 많은 노력과 열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첫째:금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16)  우선 금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 예수님이 책망하신다.   예수님 당시 금식을 하던 유대인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말씀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슬픈 기색”을 띄고 있었고 “얼굴이 흉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외식적인 금식은 다른 사람이 보고 단 번에 알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구제와 기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연기력과 부단한 노력이 요구됨으로 더 많은 가식과 위선이 금식을 통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금식은 구원이 조건이 아님에도 신앙인들에게 금식이 중요하게 요구되는 이유는 하나님께 금식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예”라고 순종하며 그 자리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더 많이 알 수 있는 접촉의 통로를 열어 주시기 때문이다.   금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축복들이 분명히 있기에, 더 갈급함으로 그 임재 가운데 나아갈 때에 보상해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에, 우리는 금식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 나의 금식을 한번 생각해 보자. 정말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위한 금식이 나의 삶에 있었는지 돌아보자. 둘째:금식의 올바른 모습(17)  예수님은 올바른 금식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17절)는 것은 금식한다고 해서 우리의 겉모습이나 행동이 달라져서는 안 되고,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더 깊이 들어가면 금식이라는 신앙적인 행위도 우리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특별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녹아들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금식은 특별한 경우에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헌금, 봉사, 기도처럼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금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극하여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온전히 그 분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우리 마음이 깊이 들어가면 되면 우리는 일부로 ‘슬픈 기색’을 하거나 ‘흉한 얼굴’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금식 가운데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행복하고 기쁜 얼굴과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셋째:하나님이 갚으시는 축복(18)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온전한 금식의 자리에 머무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무엇인가? 바로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18절)는 축복이다.   예수님은 금식을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추구하고 바라보아야 할 보상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내적인 축복임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당장 손에 잡히고,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만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경험하고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가운데 주어지는 복, 즉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축복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우리의 시선이 내면적인 만남과 축복에 집중하게 될 때 우리는 세상의 풍파와 눈에 보이는 문제에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풍랑 속에서도 잠잠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내적인 충만함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에도 이 내적 능력과 축복이 가득차고 넘쳐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기쁨으로 험한 파도를 이겨내길 축원한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6)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그런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58:9a)고 분명하게 약속해 주신다.   금식에 대한 부담감,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주저하게 되지만 금식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가야하는 좁은 길, 좁은 문을 향하는 길이다. 그 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동행의 축복과 위로가 차고 넘치리라 믿는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3-12-05
  • 기도에 대하여 (마6:5~15)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유대인의 3대 의무 가운데 두 번째인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기도는 유대인들에만 중요한 의무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들에게도 믿음의 핵심적인 의무이다. 흔히 기도를 영적 호흡이라고 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함을 강조한다. 신앙생활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기도라면 온전한 기도의 자세를 가진다는 것은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한다는 분명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각자의 기도 생활을 돌아보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 무엇을 붙들고 기도하는지 돌아보며, 참다운 기도의 사람으로 새롭게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마음가짐(5~6)  우선 참다운 기도의 자세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기도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   예수님은 “회당과 큰 거리”(5절)와 “골방”(6절)을 비교해서 말씀하신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도의 장소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말씀을 깊게 묵상하면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회당이나 거리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은 다니엘이 그랬던 것(단6:10, 13)처럼 하루에 세 번씩 시간에 맞추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 하느니라”(5절)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마음에는 기도가 목적이 아니라 보여 지는 것을 좋아 하는 마음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도의 자리는 무엇인가 보여 주어야 하는 자리가 아니다. 보여 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우리의 기도는 오늘 예수님의 지적처럼 회당과 큰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들은 정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의 자리, 하나님께만 보여 지고, 그것이 세상의 그 어떤 곳보다 좋아질 수 있는 참다운 기도의 사람으로 살길 간절히 축원한다.  둘째:방법(7~8)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것을 좋아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중언부언 하지 말라’(7절)고 하신다. ‘중언부언하다’는 ‘바톨로게오’로 원어의 뜻을 보면 ‘말더듬이’이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로 마치 말을 더듬듯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행위를 가리키고 있다.   좋은 예가 구약에 있는데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불을 내리는 대결을 벌이는 바알의 제사장들은 아침부터 한낮에 이르기까지 “바알이여! 응답하소서!”만 주구장창 외친 것과 같은 것이다(왕상18:25~29).   예수님은 여기서 한 걸은 더 나아가서 중언부언의 개념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말을 많이 해야 제대로 기도 한다는 생각(7b)까지 포함시키신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8절) 앞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어떤 방법을 가지고 기도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함을 가지고 기도하느냐에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형식과 장소에 따라서 우리는 지혜롭게 기도를 해야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내용(14~15)  기도는 하나님의 지체인 우리가 서로의 허물과 잘못을 덮고 가리는 것을 위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도구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진정으로 덮어주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도가 있을 때 온전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가운데 온전해진 마음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다른 사람과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기도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 근거하여 잘못을 가려주고, 허물을 용서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들은 나와 관계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어떤 내용을 가지고 기도하는가?   특별히 본문처럼 나와 좋지 않은 관계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는가?   그러므로 기도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기도는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라 인정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내 중심에서 다른 이를 바라볼 수 있는 내용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기도는 장소의 문제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우리는 보여 지는 것에 목숨을 걸고 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하는가? 또한 기도는 방법의 문제도 아니다.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가 기도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응답받는 기도는 그 내용 또한 중요하다. 화해와 용서, 하나 됨과 일치가 기도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저 내 개인적인 문제만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회개와 용서가 이루어질 때 하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진다. 각자 자신의 기도를 점검해 보자.   우선 기도를 한다는 전제아래(기도 안하면 말해 무엇하겠느냐) 나는 정말 온전한 기도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이 한 주간, 말씀 가운데 참다운 기도의 자리에 머물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3-11-27
  • 구제에 대하여 (마6:1~4)
    길목교회 주재훈목사  구제와 기도, 금식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지켜야 할 거룩한 3대 의무였다.  유대인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다른 것을 몰라도 이 세 가지에 대해서는 거룩하게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적하실 뿐만 아니라 분명한 원칙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에 합당한 경건의 모습이 삶에 배여 있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 네가 돌아서라”(딤후3:5)고 분명하게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사는 자를 말한다. 교회에 그저 출석만 하고, 의무감으로, 형식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변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참된 변화의 출발점에 서길 간절히 축원한다.  첫째:원칙을 분명히 정하라(1)  온전한 구제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 매일의 삶 속에서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사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중요하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간단명료한데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것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신다. 선한 행위들은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적이어야 하며, 착한 행실로 자기 자신을 선하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본문은 분명하게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이 목적을 두고 하는 선한 일을 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 경고하신다(1절). 착한 행실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그 행실의 동기에 주목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상을 받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착한 일을 행할 때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상을 받고, 누리게 되는 것이다.  둘째:목적을 분명히 하라(2)  온전한 구제가 되기 위해서 둘째로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예수님은 구제의 자세를 말씀하실 때, “만일” 또는 “혹시라도”라는 하시지 않는다. 즉 구제는 내가 여유가 되고, 능력이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를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부는 행위로 말씀하신다(2절). 어찌보면 합리적이고, 평등한 조치라고 여겨진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런 저런 눈치 볼 필요 없이 그저 나팔 소리 나는 곳에 가서 아쉬운 소리하지 않고 자존심을 세우면서 구제금을 받으면 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행위는 선할지 모르나 나팔을 불어대는 그들의 동기는 절대 칭찬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지극히 세상적이고, 자기 만족을 위한 선행도 그 상은 있으며 예수님은 그 불순한 의도 때문에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상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받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사람들에게도 영광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다. 나머지 상급은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은밀함으로 하라(3~4)  온전한 구제가 되기 위해서 셋째로 은밀함이 필요하다. 동기가 순수하다면 그 방법도 순수해야 하는데 순수함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은밀함이다.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3절)고 할 정도로 은밀함에 대해 강조하신다. 은밀함은 죄를 지을 때만 선택하는 행동이 아니라 선한 일을 행할 때에 취하여할 믿음의 자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구제의 은밀함이 우리의 삶에 깊게 자리 잡기 위해서 우리들은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까?   우선은 동기가 순수한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습관이 될 때까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선한 행실이 이 땅의 상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은밀하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끊임없이 의식하며 사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드러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자만이 하늘의 상을 받는 은밀한 자리에 머물게 된다.   구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 분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한 의무가 구제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인자가 올 때 그 우편에 있는 이들을 향해 자신이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도움의 손길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고 칭찬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구제에는 반드시 상이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상을 받을 것인지, 하늘에서 상을 받을 것인지 분명하게 선택하고 구제하는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 한 주간 각자의 삶에서 은밀하게 하늘의 상을 쌓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3-11-20
  • [금주의 말씀]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전1:2~8)
      나무가 크게 자라려면 뿌리가 땅속 깊이 튼튼하게 박혀 있어야 하고, 샘의 물이 항상 넘치게 흐르려면 물의 근원을 바로 찾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활 속에 감사의 생활을 잘하려면 그 근원을 잘 찾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름다운 교제 속에 생활하여 바울은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감사 생활은 그 기초를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과 초점은 하나님께 두고 그로 인하여 드리는 감사야말로 참 감사이며 마르지 않고 샘물처럼 항상 솟아나는 감사의 생활이 될 것입니다.   역사(役事)라는 말은 활동한다. 일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활동하고 일하는 동기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보수 때문에, 어떤 이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믿음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믿음의 감격 속에 내 몸을 드려 일하고 활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의 감격 속에 일할 때 그 일은 기쁨과 감사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생활 중에 겪는 육체적 아픔 중에 가장 큰 고통은 해산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여인은 이 고통을 지나 어머니가 됩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 고통을 기억하는 어머니는 없습니다. 내게 이러한 고통을 주었다고 그 자녀를 미워하는 어머니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녀를 기르노라면 힘들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지만 그것이 절대로 누적이 되지 않는 것도 바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어도 그곳에 사랑의 수고가 있어 능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감사의 기도를 끊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감사와 기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환란 가운데도 감사와 기쁨의 생활로 이길 수 있는, 감사 생활의 비결은 성령의 기쁨입니다.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을 받으라(엡5:8).술과 성령이 대조적으로 비유된 것은 매우 재미있습니다. 술은 일시적입니다. 순간적입니다. 초대 교회에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보고 술 취한 사람 같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그 마음이 기쁨에 넘치게 됩니다. 이는 일시적이 아니요 영원한 것이며, 영생으로 이끄는 근본적인 기쁨의 원천입니다. 기쁨이 우리 마음에서 샘솟게 하는 성령은 어떻게 받습니까?   "또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예수를 믿는 그 시간부터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고 그 성령이 없으면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성령 안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입니다. 의는 죄사함 받은 기쁨이고, 평강이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우리에게 오는 기쁨이며, 희락은 사랑의 기쁨입니다.   믿음의 소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뿐 아니라 각처에 퍼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문의 내용은 간증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과 믿게 된 경위, 믿은 후 변화 받은 생활에 대한 간증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는 전도가 바로 믿음의 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감사의 생활은 오늘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 항상 내일로 향하는 생활 속에 이루어져야 하며 이 근원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차원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한강교회 원로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3-11-14
  • [금주의 말씀] 믿음으로 산다는 것 (단6:1~9)
    길목교회 주재훈목사  다니엘은 주어진 삶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믿음으로 사는 것에 정의를 내려 보라고 한다면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고 분명하고 말씀하고 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아무것도 없지만 이미 받은 것으로 사는 삶으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미 그들의 삶을 통해 증명했다. 다니엘도 이처럼 믿음의 삶을 살아낸 증거로 오늘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인물이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나는 과연 내게 주어진 일상의 순간들을 믿음으로 살아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인정받음(1~3)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는 첫째로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사는 자다. 다니엘은 왕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믿고 쓸 수 있는 신뢰받는 이였다. 심지어 오늘 본문에 보면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3절)할 정도로 다니엘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음을 보게 된다.   다니엘이 이처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다니엘이 정치적인 능력이나 탁월한 처세술, 뛰어난 행정력 때문이라면 그를 대치할 만한 사람은 그 큰 나라에 너무나도 많았을 것이다. 다니엘의 가장 큰 장점은 다니엘 자신이 아니라 다니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8~29)고 말씀하고 있다. 내가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치며 살면 세상에서 버림을 받지만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인정받기를 원하는 삶을 살면 나도 그 하나님 안에서 인정받으며 귀하게 쓰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허물없음(4~5)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는 둘째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서 허물을 찾을 수 없는 자다. 대적자들은 전국에 120명의 고관들을 세워 통치하게 하고(1절), 그들을 관리하는 세 명의 총리 가운데 다니엘이 포함되는 것(2절)까지는 받아들이고 용납할 수 있었지만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가장 높은 자리에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는 것(3절)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을 끌어내릴 명분을 찾고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하는데 성경은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4절)고 말씀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함은 다니엘처럼 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에 맞추어 적당히 타협하고, 눈을 감고 넘어가는 삶을 살기에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믿음이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다니엘의 모습은 작은 실수 하나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 살기에 더욱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되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신뢰받음(6~9)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는 셋째로 대적하는 이들조차 신뢰할 수밖에 없는 자다. 대적자들은 왕의 법령을 통해 술책을 쓰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법령은  30일만 그 효력이 유효하다는 것이다(7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0일이면 충분히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왕이 내린 조서와 관계없이 다니엘은 분명히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니엘의 삶은 대적하는 자들에게도 신뢰감을 주고 있었다는 감동을 받게 된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처럼 불신앙의 사람들에게조차 예상 가능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절).   다니엘은 대적자들의 신뢰에 변함없이 믿음의 모습으로 화답했다. 내 믿음은 얼마나 예상 가능한 드러내며 살고 있는가? 너무나도 예측이 불가능한 신앙이라고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신뢰받는 자의 모습으로 살기 바란다.  믿음은 마음속에서서 생기기 시작하며 그곳에 자리 잡고, 성장하고 자라지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 속에 있는 것이 다니엘처럼 일상의 모든 순간에 보여 지며 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야고보 사도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내게 보이리라”(약2:17~18)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믿음은 그저 땅 속에 꽁꽁 숨겨 두어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밝히 드러나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자의 온전한 모습이다.   이번 한 주간 어느 곳에 있든지, 때론 사자 굴에 던져지는 다니엘처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앞에 서게 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승리하는 인생이 되길 간절히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3-11-14
  • [금주의 말씀] 돌이켜서 찬찬히 보라(출애굽기 3장 1절에서 5절)
      구약성경의 수많은 인물 중 한 명만 꼽으라면 모세다. 한 가지 사건을 찾으라면 출애굽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염원인 구원의 실행자요, 삶의 기준인 율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인물이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본다. 모세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나이 사십의 이집트 왕자로서 용기를 내어 고난받는 이스라엘 동족 편을 들었지만 돌아온 건 살인자의 오명이었고, 그것으로 모세 인생의 화려함은 종지부를 찍었다.   모세 자신도 이제 젊은 날의 꿈을 접은 채 별 희망도 없이 그저 소시민으로 삶을 마감하려는 그때 모세의 인생이 뒤집혔다. 지팡이 하나 들고 이집트 제국 파라오에게 당당하게 맞서 이스라엘의 노예 생활을 끝장내고 자유와 해방을 쟁취했다.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먼 모세의 두 가지 인생은 호렙산에서 결정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이 중요한 장면에서 많은 화가가 불타는 떨기나무와 신발 벗는 모세를 중요한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출 3:2~3)   건조한 광야에서는 가끔 자연 발화가 일어나기에 불붙은 나무가 아주 낯선 광경은 아니다. 그래서 저만치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처음에 모세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나무가 계속 불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가던 길을 돌아와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 것이 전환점이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표시(계시)는 명백할 수도 있지만, 얼핏 보면 잘 모르는 때가 더 많다. 신앙은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을 하나님의 계시를 포착하는 힘이다. 지금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나의 일상 속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면 인생이 바뀐다. 역사가 뒤집힌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초점을 모아 내 안과 밖을 성찰해야 할 이유다.   지금 우리가 정말로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다. 신앙인에게 관찰의 힘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누구나 다 아는 모습으로 오시지 않기 때문이다. 호렙산 떨기나무에 붙은 불이 누가 봐도 신비한 것이었다면 모세가 처음에 그냥 지나치려고 할 리가 없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불인가보다 했다가 나무가 타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서 다가갔다가 하나님을 만났고 그 만남이 모세 인생과 이스라엘 역사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님의 모습으로 오셨다. 하나님은 아주 일반적이고 흔한 모습으로 오신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데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주님을 찾으려고 관찰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그냥 지나치고 만다. 그러면 구원은 없다. 그래서 관찰은 곧 구원이다.   지금은 하나님을 미친 듯이 찾아야 할 때다. 분명 하나님이 내 곁에 계셨는데 내가 무심해서 그냥 지나친다면 아무런 변화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지나쳤다 가도 다시 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모세는 처음에 떨기나무를 무심코 보았다가 다시 관찰하고 확인하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인생과 역사를 새로 썼다.   오늘 우리 몸과 영혼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자.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지나쳐버리지 않도록, 혹시 지나갔다가도 되돌아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모든 감각을 살려내자. 내 삶에 분명히 계시지만 우리의 죄악으로 잘 볼 수 없는 주님을 발견하기 위해 지금은 우리가 일부러 고독해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영성이다./주민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3-11-07
  • [금주의 말씀]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하라(히브리서 12장 28절)
      오늘 우리는 온 세대가 모여 ‘감사’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이 감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8절은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짧지만 강력하게 알려줍니다. 세 가지 동사로 정리해 봤습니다. “알자, 받자, 섬기자” 과연 무엇을 알고 받고 섬기라는 것일까요?   첫째, ‘알자’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어떤 것일까요?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을 봤습니다. 환상 가운데 예수님을 상징하는 ‘인자 같은 분’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해 한 나라를 주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나라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은 성도들이 그 받은 선물에 즐거워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주님이 주신 선물을 사람들이 모른다면 어떻게 할까요? 이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 줄 생각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감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삶을 회복하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흔들리지 않는 나라’ 천국, 그리고 그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받자’ 입니다.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은혜로 받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미 천국을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우리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내 수고의 결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또 우리에게 주신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선물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너무나도 놀라운 것입니다. ‘천국’은 인간이 생각하는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곳이며, 그 어떤 것을 상상하건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엄청난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감사와 찬양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일에 감사하고 감탄하고 감격해서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마땅히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감사가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셋째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사랑을 알고, 은혜로 받은 이들에게서 당연하게 나와야 하는 반응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섬기자’ 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마땅하게 보여야 하는 반응은 무엇입니까?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12:28)     여러분, ‘이로 말미암아’입니다. 천국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은혜임을 받아들인 자라면 그로 인해 당연하게 이렇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게 됩니까?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너무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그 아들 독생자를 내어주셨습니다. 그 엄청난 희생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하나님은 완전히 증명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내가 알고 내가 받았습니다. 은혜를 베푼 이가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우리의 감사가 표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행함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순종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값없이 선물로 받은 것임을 묵상하기 바랍니다./나눔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3-11-07
  • 다시 살아나리라 (겔37:1~14)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서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를 보여 주시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환상을 전해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른 뼈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아무런 소망 없이 그저 하루하루 버티며 처절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들이야말로 누가 뭐라 해도 마른 뼈와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각자 앞에 놓여 진 마른 뼈들 때문에 절망하며, 스스로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안에서 새롭게 살아나는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절망적인 현실(1~6)  다시 살아나기 위한 첫 번째는 내가 마주하는 절망적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선지자 에스겔을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이끌어 가셨다. 그곳에 하나님은 에스겔을 세우시고 그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다. 빙빙 돌려 묻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질문에 에스겔의 대답은 무엇인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3절)이다.   우리도 내 삶의 절망적인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면 에스겔처럼 반응한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기에 하나님의 질문에도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한 해결책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 서 있는가?   말라비틀어진 마른 뼈와도 같은 현실을 바라보면서 한숨만 쉬고 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함께 바라보시며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둘째:믿음의 선포(7~10)  다시 살아나기 위한 두 번째는 나의 삶에 믿음을 선포해야 한다.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5절)라고 대언하라고 명령하신다.   골짜기의 그 수많은 뼈들이 에스겔을 통한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소리가 나고 움직이기 시작하며, 뼈가 맞아 서로 연결되기 시작하고,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여 생명을 가진 형태로 세워지게 된다.   절망에서 새로운 소망으로 변하는 것은 나의 의지와 노력, 그것을 극복하려는 피나는 열심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과감하게 선포할 때 이루어진다.   인생의 절망적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실 수 있는 기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에스겔이 마른 뼈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선포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나의 절망의 상황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을 통해 선포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셋째:분명한 약속(11~14)  다시 살아나기 위한 세 번째는 내가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   자신들을 심판하셔서 마른 뼈처럼 만드셨던 분이 다시 희망을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 때문에 병 주고 약 주느냐고 투정을 부릴 수 있지만, 자신의 백성들을 아예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대해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13절),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14절)라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남유다의 멸망을 선포했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마른 뼈와 같은 그들을 향해 분명하게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다. 입을 열어 선포하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며,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는 축복의 인생이 되길 축원한다.   매일 만나는 상황이나 조건들은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마음이나 생각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마른 뼈들만 바라보게 하는 시선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다시 일어나 사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선포되고, 중심에 자리 잡아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성경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 말씀하신다. 나를 살리고,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시며, 그 빛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것은 세상적인 부귀영화와 성공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이번 한 주간도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각자의 입술을 통해,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는 마른 뼈와도 같은 상황 속에 선포됨으로 다시 살아나는 역사를 체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3-11-06
  • 성전을 허락하신 이유 (대하7:11~18)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솔로몬은 하나님을 위한 성전의 공사를 다 마치고 나서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성전이오리이까”(대하6:18)라며 기도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이처럼 성전이라는 눈에 보이는 형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본문은 성전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성전의 본질이라면, 그 자리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자리에 머물기를 결단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 회개의 자리(11~14)  하나님이 성전을 허락하신 이유의 첫 번째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들으시는 회개의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위한 건축을 마음에 들도록 다 마치고 나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성전을 완공한 후에 솔로몬은 여호와의 제단에 서서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대하6:40)라고 간구하며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다.   본문은 이 솔로몬의 기도에 하나님이 분명하게 응답하시겠다는 약속해 주시고 있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이 들으시는 응답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전심으로 회개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14절)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자. 정작 중요한 회개하는 일에는 관심도 없이 그저 내가 원하는 기도의 제목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둘째: 임재의 자리(15~16)  하나님이 성전을 허락하신 이유의 두 번째는 그곳이 바로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가 경험되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야곱이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들었다가 환상을 보고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는 것처럼(창28:19), 전혀 인식하지 못한 장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감사하며 감격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먼저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 말씀하시는 곳은 성전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이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15절)라고 약속하신 성전을 사모하며 그곳에 나아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15)고 권면하고 있다. 약속을 믿고, 그곳에 함께 모이는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자리가 되며, 그곳이 성전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시지만, 분명한 것은 성전에는 항상 계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약속의 자리(17~18)  하나님이 성전을 허락하신 이유의 세 번째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새롭게 갱신되고, 맹세로 이어지는 약속의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다윗이 하나님에게 내 마음에 맞는 사람(행13:22)이라고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보다 죄가 없고,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솔로몬을 향해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한 것과 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법규를 지키면”(17절)에서 볼 수 있듯이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에 머물러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내게 주신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데 그 가운데 가장 탁월한 방법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한 번의 제대로 된 예배를 통해서 인생이 송두리째 변화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예배가 그래야 하며,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이 새롭게 갱신되고, 다시금 새겨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사모하는 자세로 그 임재 가운데 나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하나님에게 받은 계시대로 순종하며 최선으로 성전을 짓는 일에 헌신하였다. 그가 허투루 그 일에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을 이십 년 동안에 건축하기를 마치고”(대하8:1)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성전의 예전적인 기능은 다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의미만큼은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과 신앙의 방향을 짚어 보게 한다.   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내가 머물러야 하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깨닫고 살아가기를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3-10-30
  • 금주의 말씀
    본문 요한복음 5장 2절에서 9절  이성범 목사   예루살렘 양 문 곁 베데스다 연못 주변에 있는 다섯 행각에 많은 병자가 모여 치유를 기다리고 있다. 천사가 그 연못 물을 움직이는데, 그때 제일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이 든 낫는다는 속설을 믿기 때문이다. 그 안에 많은 병자, 시각장애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다. (3절) 많은 병자 중 유독 세 종류의 환자가 소개된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움이 없이는 그 연못에 먼저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다. 이 남자는 38년 동안이나 병을 앓고 있다. 서른여덟 번의 진저리 나는 여름과 겨울을 고통과 질병 가운데 견뎌야만 했다. 친구도 없고 자신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희망없이 누워 기적을 기다려야 했다. 해가 가고 달이 가도 더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무덤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적이 일어나는 연못가에 누워 있었지만, 그 연못에서 아무런 혜택도 입지 못하고 긴 세월을 허비하였다. 어쩌면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익숙한 삶의 모습인지 모른다.   본문은 이 병자를 통해 38년이라는 시간을 특별히 언급한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넌지시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38’이라는 숫자를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랑했던 숫자와 연결한다. (신2:14) 38년 된 병자를 영적으로 혈기 마른 자와 같이 고갈되어 버린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고 보고 하나님을 떠나 고향 없이 방황하던 시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시기는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냥 시간을 헛되이 낭비한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소모한 것이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신다. 병자는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내려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대답한다. (6~7절) 38년 된 병자의 간절한 희망은 연못에 먼저 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던지 낫게…” 된다는 속설을 굳게 믿고 있다. (4절)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 간다는 그의 대답은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연못을 찾아오신 예수님께 그가 지금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옆에 계시다가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도록 도와 달라는 것’ 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그 기적의 연못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눈길 한번 주지 않으셨다. 다만 이 병자만을 주목하여 말씀하셨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 성경은 이후에 그의 삶이 뚜렷이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9절) 말씀 앞에 38년 동안 가졌던 미신적 생각을 털어 버리고 일어섰다. 자신의 타락한 가치관, 과거의 생각을 다 부인하고 오직 말씀에 응답하여 새롭게 출발했다. 그리고 자기를 고친 이가 ‘예수’임을 증언한다. (15절) 그의 인생 해답은 처음부터 연못의 물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오늘도 말씀은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다.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베데스다 행각에서 병든 모습으로 물가의 움직임만을 기다리는 방황은 계속될 것이다. /평택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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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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