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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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인가
                                                                                 이병곤 목사    영적 전쟁의 시대, 누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인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세대는 평화의 시기가 아닌 전쟁의 시기다. 1953년 7월의 정전 이후, 한반도에는 총성만 멎었을 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멈춘 적이 없다. 성경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셨다고 단언한다. 군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무능은 적이 누구인지, 지금이 전시인지 평시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을 통해 우리에게 명한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예수를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훈련소가 아닌 실전에 즉각 투입된다. 삶의 모든 현장이 영적 격전지이며, 특히 ‘기도’는 총성 없는 참혹한 전쟁의 정점이다. 이 전쟁에서 사탄의 전략은 교묘하다. 사탄은 우리를 예배의 주관자가 아닌 구경꾼으로, 참여자가 아닌 들러리로 전락시키려 군사로서의 성도들의 무장을 해재 시키려 애쓴다. 누가 얼마나 잘하는지 평가하고 비판하게 하며, 예배를 감정과 느낌이라는 형식의 틀에 가두려고 한다. 그러나 참된 예배는 내가 무언가를 ‘보러’ 가거나 ‘받으러’ 가는 자리가 아닌 나를 ‘드리는’ 자리여야 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통치가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급진적인 변화 속에 악과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 정치적 이념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은 좌우로 갈라졌고, 미움과 시기는 물리적·심리적 살인을 서슴지 않게 한다. 정치는 본질상 경제, 안보, 교육, 보건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이 장치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국가 전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교회는 중대한 질문 앞에 선다. 교회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미명 아래 진리를 선포하고 수호해야 할 참된 사명을 외면해오지 않았는가. 교회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영향을 미쳐야 하는 공동체다. 그리스도께로부터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직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의 특혜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와 사회에 의해 훼손되고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해야 할 ‘영적군사’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세상의 평가가 두려워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 한다면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자격이 없다. 교회가 세상의 눈치를 보며 자정능력을 잃을 때, 교회의 빛은 희미해지고 소금의 짠맛을 잃어 버리고 결국은 정부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이 타협이 계속된다면 결국엔 타협하는 지상 교회와 진리를 수호하려는 지하 교회로 나뉘게 될지도 모른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라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의 진리의 말씀과 예배를 수호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다른 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의 얼굴이다. 주의 도를 땅 위에 알리고,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 알리는(시 67편) 군사의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 빛이 비치면 어둠 속에 있던 백성들이 하나님을 높이게 될 것이다. 주님은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깨어날 때, 비로소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임하게 될 것이다. 이미 전쟁은 시작 되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인가? /마운틴로스터스 카페처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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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0
  • 여전히 성경은 우리 삶의 기준인가? (시119편105, 신28:2)
    예수품교회 이영무 담임목사  오늘날 현대인들은 성경을 어떤 책이라고 생각하는가? 성경은 오늘도 우리가 그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읽고 실천하고 순종할 책인가? 아니면 그저 책장에 꼽아놓고 필요할 때 참고서적으로 가끔 확인해야 할 책일까?     이 시대 믿음의 사람들은 성경을 내 생명을 걸만한 진리의 책으로 인정하고 그 말씀을 기준 삼아 살고자 하는지 우리는 자문해 보아야 한다.  시편119:105절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한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말씀을 등과 빛 삼아서 인생의 길을 가고 있는가?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은 하와이 열방대학 총재인 로렌커닝헴 박사가 쓴 책이다. 그 책에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 비케언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부터 2백 30년 전에 영국 군함 바운티에서 항해 도중 반란이 일어났다.   그래서 호송되던 9명의 죄수들이 선원들과 군인들을 죽이고 배를 탈취한다.  그들은 바다에서 만난 한 상선을 탈취하고 여인들을 포로로 잡았다. 아이들과 여인들을 데리고 작은 무인도로 들어갔는데 그곳이 바로 피케언 섬이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도록 배를 불살라 버렸다. 거기에 정착을 하고 생활을 한다. 집을 짓고 결혼을 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상한 약초를 발견하고 그것을 가지고 술을 만들어 먹는다. 그들은 취하고/ 도박을 하고 싸우고 서로 죽이고/ 지옥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몇 번의 살인이 자행되어 진다.   그때 존 에덤스와 열명의 여자들이 남게 되는데 존 에덤스는 어느 날 배에서 내린 상자를 정리하다가 한권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그 책이 바로 성경책이었다. 그는 난생 처음 성경을 읽으면서 그 책의 매력에 깊이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되겠다고 다짐한다.  정기적으로 그 책을 읽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성경말씀을 같이 나누면서부터 이 섬에 놀라운 평화가 도래한다. 질서가 세워지고 도둑이 없어진다. 속이는 일이나 술취해 싸우는 일이 없어진다. 얼마 후 그 섬은 천국과 같은 섬이 되었다.  #1991년 그 섬을 방문한 열방대학 총재인 로렌커닝헴 목사가 그 섬은 지상에 세워진 천국과 같았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변화를 준 성경책을 유리관에 넣어서 보관해 놓았다. “이 말씀이 우리의 인생과 우리 섬을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성경은 과연 우리 삶의 기준이 되고 있는가? 성경의 정경을 가리키는 말이 ‘캐논’인데, 그 뜻은 곧은 막대기, 자, 규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흐르고 역사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올바른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비케언 섬에서 성경말씀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너무나 극명하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남성과 여성을 만드셨다는 당연한 진리를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 기준이 허물어지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신명기 28:2절의 말씀은 복이 따라오는 인생을 말한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이 말씀을 새 번역으로 보니 의미가 더 분명해 진다. “....이 모든 복이 너를 찾아와서 너희를 따를 것이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복을 기원한다. ‘복 받으라’는 덕담을 나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을 잡으려고 연초부터 노력한다. 그런데 복은 내가 잡는 것이 아니라, 복이 나를 따라와야 한다. 유명한 앤드류 카네기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복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지쳐 쓰러지지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쫓아가는 사람은 복이 그 뒤를 따라온다’고 말했다.   그렇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그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복이 따라오는 인생이 될 수 있다. 여러분들이 이 복을 누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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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4
  •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새로운 운명' (마태복음 1장 23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 우리 구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기쁜 성탄의 날, 여러분의 가정과 삶 위에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오늘의 성탄절은 화려한 조명과 아름다운 장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2천 년 전, 첫 번째 성탄절의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화려한 호텔도, 따뜻한 방도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누우신 곳은 짐승의 밥통인 구유였습니다. 냄새나고, 춥고, 초라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인류를 구원할 가장 큰 빛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그토록 낮은 곳으로 오셨는지, 그 성탄의 참된 의미를 세 가지 관점에서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며 '내가 저곳에서 이곳으로 너희와 같이 되리라'고 선언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저곳에서 우리와 같은 유한한 몸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의 아픔과 눈물 속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책임져 주시고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시겠다는 하나님 사랑의 가장 강력한 표현입니다. 이제 외로운 우리는 새로운 동반자가 생겼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들어주시고 또 치료해주실 분이 생긴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동행을 통해 새로운 운명과 소명을 선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단순히 우리 개인에게 위로를 주는 것을 넘어,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 역사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동행은 우리에게 새로운 운명을 선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축복과 제자됨의 의무가 결합된 것입니다.    이러한 동행에서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뜻이 아닌 나 자신의 뜻대로 살수 있습니까? 이제 자신의 자유를 버리고 주님의 동행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신앙인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 된 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물결이 정한 대로 떠다니는 고독하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운명을 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운명은 무엇입니까? 이땅 가운데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펼쳐서 사랑으로 하나된 인류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사막 같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투입하시고 책임져 주시겠다는 프로젝트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셋째, 우리의 자유는 하나님의 운명 안에서 진정으로 피어납니다    혹자는 묻습니다.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야 한다면, 믿는 자에게 자유는 없습니까?" 성도 여러분, 믿는 자의 자유는 운명대로 살 때 진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는 법과 원칙이 없을 때 방탕한 방종이 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참된 자유가 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세상은 우리를 옭아매는 염려, 물질, 욕망을 쫓으라고 말합니다. 물질이 목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이 삶의 목적, 즉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생명이 약동하는 에덴의 거주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이 복된 운명 안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을 찾아야 합니다.    "그 일이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십자가는 낭만이나 여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롯이 자기 자신이 수고와 헌신으로 짊어져야 하는 무게입니다. 이 십자가를 외면할 때, 생명의 혈관이 막혀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운명의 시작입니다. 세상이 주는 운명, 사탄이 주는 운명, 내 욕망이 주는 운명에 빠지지 마십시오. 오로지 하나님이 예수 탄생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 이 거룩한 운명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소명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입니다. 이 운명을 최선으로 살아갈 때, 여러분은 복인 중에 복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어떻게 왜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햇다면 이제 예수님과 동행하는 운명을 맞이한 우리는 이 운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아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삶의 목적을 되찾고, 주어진 소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과 운명을 같이하는 은혜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진정한 축복이 되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사회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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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6
  • 도시가 다시 태어나게 하는 교회 - 사도행전 19장 21절에서 41절
     도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되는 공간입니다. 문화와 경제, 유행, 사람들의 희망과 불안이 뒤섞여 거대한 흐름을 이룹니다. 교회는 이런 도시 속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거대한 도시 속에 있는 작은 공동체일 뿐입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사람들이 반기독교적인 문화에 젖어 있는 시대 속에서 교회의 모습이란 그저 작은 몸짓처럼 보입니다.     여기에다 교회는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교회 안에 끝없는 갈등과 어려움을 안고 가고 있습니다. 힘을 모아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도 교회가 무기력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믿지만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아 보입니다. 도대체 교회가 도시에 어떤 힘과 능력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사도행전 19장은 도시 속에서 교회가 가진 힘과 능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는 도시를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생명을 가진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도대체 교회가 가진 생명력이 무엇이길래 교회가 도시 마저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그 비결이 바로 복음에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도시의 변화를 위해 교회에 복음을 주셨음에도 교회가 그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기에 변화의 주체로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된다는 말도 아니고, 장차 소금이 될 것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이미 빛이요 소금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성도 자신이 빛이요 소금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할 뿐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모여서 드리는 예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여서 드리는 공적예배는 분명히 우리에게 하늘의 은혜와 불을 내려 줍니다. 하지만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교회가 예배 드리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예배가 교회의 심장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중심이지만, 공적예배만으로는 지역사회에 어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아무리 착해도, 세상은 “교회가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의 은혜가 교회 안에서만 머물면 도시는 교회를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가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주일 이후 평일의 예배입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참된 예배는 삶에서 이어지는 예배입니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 드리는 삶의 예배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예배당 안에서 머무는 말씀이 아니라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라 하신 이웃을 실제로 섬기며 그 사랑을 도시 속에 흘려 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예배요, 도시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도시는 완벽한 교회를 통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예배 드리는 교회를 통해 다시 태어납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가 걸어가는 이 길이 대전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대전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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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2
  • [금주의 말씀] 뜻밖의 풍성한 감사(에베소서 3장 20~21절)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에베소서 3장 20~21절)    에베소서 3장 14~21절, 바울의 기도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19절까지는 성도가 영적으로 건강하고 충만하기를 위한 기도, 20절과 21절은 풍성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운동력 있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부활, 승천, 구원의 능력을 말한다. 구속사적 사건뿐 아니라 우리 기도를 통해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능력이다.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에게 큰 기쁨은 역사하시는 능력이 주를 믿고 의지하는 자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구하는 기도를 빠짐없이 들어주신다. 한나가 드린 눈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당대 최고의 영적 지도자, 사무엘을 주셨고(삼상 1:19~20, 27), 백성을 잘 돌보기 위해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에게 부와 명예까지 더하여 넘치도록 응답해 주셨다(왕상 4:22~30). 또한 우리가 지혜가 부족할 때 구하면 넘치도록 넉넉히 주신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알고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묘사한다.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    하나님은 아량이 넓고 포용이 크고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넘치는 사랑 그 자체이시다. 더구나 교회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더욱 그러하시다. 바울 기도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가 된 교회를 위한 것이다. 그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언제 빛나는가? 우리가 그분의 자랑이 될 때다. 하나님의 하신 일과 그분 자신을 높일 때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일을 성취할 때다. 그리고 그 일은 ‘모든 세대를 통해 영원히 영원히’ 이어가야 한다. 어떻게?    그런 자리에 공동체가 같이하고,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이 주신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면 된다. 그러면 거룩한 세대가 이어진다. 이어진 세대가 우리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여 높이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축복한다.    성경에는 불임으로 고통스러웠던 이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던 현장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아브라함, 이삭, 한나, 사가랴와 엘리사벳 등. 그러나 오히려 이런 어려움이 그가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만든 동기와 동력이 되었다. 고난이 축복으로 바뀐 거다. 그는 아이를 못 갖고 없어서 막힌 인생의 어둠을 뚫고 오히려 출산의 빛을 열어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만났다. 아침교회도 그러하다. 하나를 구했는데, 둘을 주시는 하나님. 제주도 여행이면 족한데 일본에 가게 하시는 하나님!! 이사할 집이 전셋집이어도 감사한데, 걱정 없이 살 자기 집을 주시는 하나님!! 말썽만 안 부려도 OK인데, 공부까지 열심히 하게 된 자녀들, 남의 편만 아니어도 되는데, 나의 편이 되어준 남편, 예배만 와도 땡큐인데 와서 제자가 되고 동역자가 되는 여러분 같은 성도!! 선교사들에게 헌금만 보내도 기쁜데, 현장까지 마을까지 들어가 영혼을 구원하고 일꾼을 세우고 그 나라 목회자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아침교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능력이고 여러분에게 능력대로 주신 믿음이 아닌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침교회는 2006년도 5월 28일에 세워졌다. 아주 작고 힘겹게 출발했다.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공간도 부족한 상태로 시작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어 하나님께서 일하기 좋은 상태였다. 그런 황량한 들판 같던 교회가 19년이 지나 성전이 성도들로 가득하다. 보통 성도가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필요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준비가 된 충직한 청지기들이다. 7개월 후면 아침교회는 어엿한 청년, 스무 살이 된다. 아침인 연령대로 보면 모든 연령대 중에 20대가 가장 늦게 모였다. 하지만 지금은 10여 명의 청년이 출석하고, 얼마 전 청소년부가 생겨나 모든 부서를 갖춘 규모 있는 교회가 되었다.    현실은 냉혹하다. 한국교회 절반 이상이 교회학교가 없다. 아이들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우린 역전을 거듭하고 있다. 나는 아침교회가 한국교회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왜냐하면 여전히 한국교회가 대한민국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응원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뜻밖의 여행이 열흘간 있었다. 한 번도 구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장소와 일정이었다. 여행계획을 세울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초대한 선교사님 부부는 그냥 편하게 오라고 하셨다. 빅아일랜드는 하와이의 시골과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풍성하고 충분한 영적, 정서적, 관계적, 육체적 리트릿이 될 수 있도록 이끄셨다.    이번 여행은 계획단계부터 특별한 선물이었다. 이사와 장남 혼인을 앞두고 엄두도 못 낼 시간에 하나님은 우리 부부를 특별하고 세미하게 이끌어주셨다. 마치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로 일한 것에 대한 존엄(dignity)을 지켜주고 돌려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선교사님 부부의 강한 권유가 계기였지만, 30년 전 청년 때 받았던 제자훈련학교(DTS)에 강사로 오셨던 분들이 말끝에 열방대학에 한 번 오라는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부부 목사 둘이 전부인 교회가 이런 계획을 하는 것은 모험이다. 교회가 세워지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숙소, 만남, 일정, 날씨, 식사, 재정, 특별한 경험 등 하나님의 세심한 인도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선망했던 열방대학 방문. 특별한 숙소를 배정받았다. 상상할 수 없는 비용으로 숙박했다. 이런 경우가 없었다고 선교사님은 누누이 말씀하셨다.    가는 비행기 좌석은 둘이 떨어져 앉는 자리였다. 결혼 30주년을 기념하는 여행도 되는 기회인데, 아쉬웠다. 하지만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내 옆 좌석이 둘이나 비어있는 것을 봤다. 큰 비행기에 딱 두 자리만 비어있었다. 승무원에게 아내 자리를 옮겨도 되는지 묻자 쾌히 허락해줬다. 호놀룰루 국제공항까지 아주 편하게 대화하며 올 수 있었다.    하나님의 깜짝 이벤트는 열방대학 숙소였다. 숙소 번호가 118호였다. “내가 너희 숙소를 특별히 준비했어.”라는 하나님 신호였다. 현재 사는 아파트 비밀번호였다. 반복되는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직접 개입이고 간섭이다. 그 사건이 주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우릴 사랑하고 인정하며 교회를 기억하신다는 신호였다.    뜻밖의 풍성한 감사 제목을 생각하며 우린 감동어린 감사를 드린다.   열방대학 예배모습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하도록 열방대학 기도실을 가까이에 두셨고, 주일 밤 출발했으나 시차로 주일 낮에 도착하여, 다음 날 월요일 아침부터 천여 명의 세계에서 온 수많은 예배자와 함께 찬양하고 마음껏 기도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것이 하와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곳은 한적하고 쾌적한 날씨로, 기온이 22~26도, 밤에는 산바람 아침엔 바닷 바람으로 생활하기에 적합했다. 무엇보다 경건하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선교사님들 덕분에 검소하고 부지런한 시간을 보냈다. 새벽마다 깨어 기도하고 조깅하여 함께한 시간이 참 복되었다.    20대 시절 소속된 단체에서 제자훈련을 받을 때 오셨던 열방대학 강사님들이 여러분도 꼭 와서 보라고 했던 영적으로 충만한 세계선교의 요람이자 뿌리가 되는 열방대학을 방문하여, 예배할 수 있었다. 아내 박목사님은 20대 때 부르신 하나님에 대한 풋풋한 기억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열방대학 여러 학생이 한국에 대해 묻고 Korean Prayer에 대해 물어봐 줘서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열방대학 청년들의 모습    나는 고교 시절부터 철야기도를 하며 세계 여러 나라들을 위해 오랜 기간 기도해왔는데, 평생을 헌신하여 선교하고 특히 젊은이들이 파도처럼 몰려올 것에 대한 환상을 보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림을 따라 믿음으로 삶을 살아낸 YWAM의 로렌 커닝햄 목사님 부부와 거룩한 부르심을 잇는 수 많은 크리스천을 만나고 얼굴을 마주 대하며 서로 격려하고 얘기 할 수 행복하고 감사했다.    파도가 높을수록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높은 파도가 이는 바다를 찾아 가장 높은 파고를 향해 헤엄치는 사람들이 있다. 서퍼들입니다. 파도를 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파도를 찾아온다. 높은 파도를 기다린다. 그런 파도에 매료되어 삶을 즐긴다. 고난이 고난 아닌 축복으로 바뀐다. 여러분은 어떤가? 우리는 어떤 고난도 넘을 수 있는 크리스천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고난은 고통이나 짐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렇다.      예수전도단(YWAM)을 설립한 로렌 커닝햄은 환상을 봤다. 높은 파고를 일으키며 온 세계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몰려오는 것을 봤다. 두려움이 아닌 환희를 가지고, 1960년 청년선교단(YWAM)의 시작되었다. 로렌 커닝햄 목사님의 말씀이다.    "저는 세계 지도에서 파도를 보았습니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갔습니다. 그리고 파도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의 파도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러 갔습니다.“    가는 곳마다 꼭 필요한 예배, 좋은 안내자, 상쾌하고 적절한 쉼, 창조주의 아름다움과 광대함을 편히 볼 수 있어 감사했다. 나라 걱정, 교회와 외부 사역도 잠시나마 잊고 내려놓을 수 있어 잘 쉬었다.    6일간 머물렀던 제주도나 시골 같은 열방대학(Univisity of the Nations) 빅아일랜드 카일루아-코나지역은 정말 특별한 상급이었다.   세계 최대 천문대 마르나케어      한 날은 세계 최대의 천문대라고 하는 마우나케어를 찾았다. 그런데 근처에 도착하자 하필 비가 왔다. 먹구름으로 제법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방문자센터까지 가서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나이 든 가이드는 올라가도 괜찮다고 말했다. 입장료도 없었고 사륜구동 차량인지, 내려올 때 기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만 안내해줬다. 아주 높은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와도 왜 올라가도 괜찮은지 알았다. 비구름대는 아래쪽에 있었고 위쪽은 넓고 맑은 구름대가 펼쳐졌다. 정상에 이르니 추웠지만 아주 좋은 날씨였다. 그렇구나! 대한민국의 영적 기상도 이와 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마우나케어에서 환상적인 노을을 목격했다. 경이로운 광경이 창조주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위대하심을 노래하기에 족했다. 뜻밖의 풍성한 감사도 곳곳에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침교회 목사·한국교회 다음세대지킴이 연합 상임총무    안석문목사는 중앙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중고등학교에서 종교 과목을 가르쳤고, 정릉교회와 예능교회 부목사를 거쳐 2006년 아침교회를 창립했다. 어린이, 교육과 관련된 일을 줄곧 해 오다가 현재는 YP클럽의 대장과 한국교회 다음세대지킴이 연합(한다연) 상임총무로 일하고 있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5-11-11
  •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홍석영목사   할렐루야! 오늘은 다음 주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어떻게 하는 것이 추수감사절을 잘 준비하는 것인지 성경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현대 교회의 추수감사절은 1621년 가을 청교도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영국 국교회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지 못해 갈등을 겪던 이들은 네델란드로 이주를 합니다. 그러나 네델란드에서의 삶 역시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돈을 모아 메이플라워호를 구입하여 신대륙으로 향하게 됩니다. 신대륙에 도착한 이들의 삶은 매우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1620년에 102명의 사람들이 도착했는데 첫 겨울을 지내면서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44명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듬해 현지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1621년 가을 첫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도움을 준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함께 칠면조 고기를 먹으며 식사를 했던 것이 현대 추수감사절의 시작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904년부터 미국과 동일하게 11월 셋째 주에 처음으로 지켜졌습니다. 이후 한국의 추수 시기에 맞추어 조정을 하게 되면서 현재는 많은 교회들이 10월 마지막 주 혹은 11월 셋째주를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추수감사절은 성경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세번의 시기는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이었습니다(신16:16). 이중에 초막절은 한 해 수확의 첫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지키라 명령하신 세 절기 중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되는 초막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고양시에 위치한 안디옥성결교회의 예배모습   첫째,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나와야 합니다. 분주한 삶 가운데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몸 가짐이 조심스러워 지는 곳을 선택하라면 가장 먼저 교회를 꼽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여 하나님을 만나도록 분주한 삶 가운데 구별된 곳입니다. 다른 곳 보다 주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각 사람이 빈 손으로 나오지 말고 감사 제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아오는 자는‘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신16:17)’ 제물을 준비하여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열매가 다를 것입니다. 각자, 그리고 우리 가정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내 삶의 열매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특별한 예물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받으시고 큰 복을 더 하실 것입니다.   셋째, 함께 기쁨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때 아무 것도 없어 초막에 거주할 수 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된 것을 기념하도록 하기 위해 한 주간 초막에 거하게 하셨습니다(레23:43). 그리고 이 기간에는 ‘너와 네 자녀, 노비, 레위인, 객, 고아,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부터 얻은 소득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 주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소득이 없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있다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득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주의 은혜 가운데로 초청하십시오.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빈 자리가 주의 은혜로 채워 질 것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 추수감사절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 주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추수감사절을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얻은 소득으로 힘껏 드리기 위해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주변의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며 섬기십시오. 특히 교회 믿음의 형제 자매, 목회자들과 식사라도 한 끼 나누며 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의 뜻을 실천하는 여러분의 삶의 범사에 복을 더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안디옥성결교회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5-11-05

실시간 금주의 말씀 기사

  • 창조언약(창 2장 1~3절, 15절, 18~25절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창조라는 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은 있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을 할 수가 있다. 이를 발명·발견이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과 닮게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창조에 동참할 수가 있다. 창조언약은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이 맺은 언약을 말한다. 창조언약은 일방적인 언약이라고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일방적이란 말이 좋은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분의 일방적인 언약은 사람에게 복된 일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창조언약은 안식의 언약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를 통해 출예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이란 명령을 주셨다. 그리고 그 언약을 주시면서 남종과 여종, 그리고 짐승에게까지 안식일에 쉬라고 말씀하셨다. 짐승에게까지 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어라고 일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살라고 일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죽도록 일만 하다가 생을 마친다. 그러기 때문에 안식일에 쉬어야한다. 그리고 예배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야한다. 더불어 쉬는 것도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쉴 수도 없다. 우리가 쉬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안식일 날 쉬라고 하셨지만, 하나님은 안식일 날 쉬시지 않는다. 안식일 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이 쉬고 싶으셔서 안식일을 만드신 게 아니다. 우리에게 안식일 날 쉬면서 복을 받으라는 의미에서 만든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쉬면서 복을 받으면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일하라고 만드셨기 때문에 충분히 쉰다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충분히 쉰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도 창조성이 발동되게 되어 있다.   두번째로 창조언약은 재능을 주신대로 일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같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잘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 만약에 내가 축구에서 골키퍼를 좋아해서 하고 싶다. 그런데 골을 막지 못한다면 하지 않는 것이 맞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골은 잘 못 막지만, 넣는 것은 잘한다면 공격수를 하면 된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마지막으로 창조언약은 결혼을 하는 것이다. 결혼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날 때부터 고자된 자와 복음을 위해서 스스로 고자된 자를 제외하면 누구나 결혼을 해야한다. 짐승도 짝을 찾도록 하나님이 만드셨다. 이는 창조언약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혼할 때 남자에게는 한 아내를, 여자에게는 한 남편을 주셨다. 이는 경건한 자손을 낳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배우자와 함께 삶을 계속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것이 자녀를 낳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에 동참하도록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드시고, 자녀를 주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해 주시고, 축복된 삶을 살도록 주신 것이 바로 가정이다. 이 땅에 떠나면서 남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자녀를 남기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신비롭게 만드신 계획인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데로 자녀를 낳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언약에 순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흥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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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5
  • 약자의 무기(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20절)
      오늘 성경본문은 산상수훈이라고 알려진다. 산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 핵심적인 것을 모아놓은 것이다. 말씀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산에서 가르치셨다고 하면서 엄숙하고 낭만적인 멋있는 배경을 세팅해 놓고 진지한 말씀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마태는 책을 쓰면서 그런 세팅을 하고 있다. 그중 우리에게 맞는 몇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17절을 보자 “내가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이 말씀은 교회에서 구약과 이스라엘의 신앙 역사·전통을 비판하다 보니 사람들의 의구심이 생겼다. 이스라엘은 할례를 했다. 구별을 지은 것이다. 또 안식일을 지켰다. 겉으로 드러나야 이스라엘이라고 형식적으로 구별을 지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보적 인물이 되려면 뭔가 구별을 지었다. 70년대에는 머리를 장발로 기르고, 80년대에는 길에서 데모도 했고, 괜히 청바지 잘라 입고, 피어싱 몇 개 하고, 뭐 그랬다.   너도나도 그러는 것에 대해 예수는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할례도 하지 말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다. 장발도 안 해도 된다. 청바지 잘라 입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이전의 형식적인 것을 무조건 폐하고자 하는 것 아니라 그런 형식이 중요한 것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이 중요한 것이라고 그래야 온전해진다고 예수는 말하는 것이다.   둘째 18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리라” 이 말씀은 직접적으로는 율법·구약의 모든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의 필연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서를 폐하지 않고 완전하게 해서 타락과 죄악에 대한 심판을 반드시 할 것이며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확실성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오늘 우리 현실에 대입해 보면 매우 엄숙한 말씀이다.예수님의 말씀과 약속은 매우 철저하다. 요즘 말로 세상 공짜 없다. 반드시 땀의 댓가 노동의 댓가가 있다는 말이다. 약속은 반드시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십자가에 자기 몸을 매다는 희생 없이 구원의 약속을 이룰 수 없다.    셋째 19절 누가 이 일을 이루는가 하는 문제다. 작은 일이라고 무시하고 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일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이를 행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크다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쓰레기 치우는 일, 청소하는 일, 밥하는 일 등 그런 일을 하는 자를 크다 인정하신다. 리더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자리 그것이 중요한 것이고 큰 것이다.   마지막으로 20절 “너희 의가 바리새인, 서기관들 보다 낫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바리새인은 금식, 기도, 성서읽기, 연구, 명상, 구제, 봉사 등을 하며 존경받았다. 서기관은 성서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개미처럼 성실했다. 요즘 얘기하면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가? 그런 사람들보다 힘없고 약한 자는 더 열심히 일해야 이긴다는 것이다. 한 발짝 이라도 더 악착 같이 뛰고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 손자병법에 포위전은 병력이 10배가 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약자를 에워싼 기득권자들 편은 100배가 넘다. 그러면 나머지는 무엇으로 매워야 하는가? 우리의 의로 메워야 한다. 우리의 정당성. 천지가 다 없어져도 올바르다는 굳센 신념. 믿음이 우리의 무기다. /평화의 교회 목사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소장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2-28
  •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시편 23편 1-6절, 요한복음서 10장 1-18절)
    오늘날 현대인들은 어떤 선택할 때 매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옳은지도 알기 쉽지 않고, 믿고 따를만한 사람, 참된 지도자, 선한 목자, 올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숱하게 많은 지식 정보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현대인들은 선택할 때 매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옳은지도 알기 쉽지 않고, 믿고 따를만한 사람을 찾기도 너무나 어렵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오랜 시절 예수와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고백하고 믿고 따랐다. 실로 우리의 주님, 하나님은 험한 세상 속에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오늘 시편 23편은 이 사실을 매우 아름다운 노래로 세상에 증언한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도 이 노래를 떠올리면서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여겼다. 우리는 목자와 양을 생각하면 푸른 들판에 매우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을 떠올린다. 마음씨 좋고 잘 생긴 멋진 목동이 어린 양에게 풀을 먹이는 매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의 유목민이 양을 치는 것은 우리가 그리는 이런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이스라엘에는 푸른 초장 같은 것은 없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중심으로 한 남쪽 유다는 황무지와 광야이다. 일 년에 푸른 풀이 돋아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11월부터 2월의 우기 이후에 3개월 정도이다.   6개월 동안의 건기에는 모든 것이 메말라 버립니다. 비가 오고 풀이 나기 시작해서 자라면 이제 목자들의 삶을 바빠집니다. 풀이 많이 자라는 곳을 계속 찾아다녀야 한다. 한낮에 물을 이용할 수 있는 곳 주위에서 하루일과를 계획해야 합니다. 무더운 여름이라면 시원한 언덕 경사지들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양들이 풀을 뜯고 쉬면서 안전하게 소화시킬 장소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자라는 직업은 이렇게 힘들고 고단하고 더럽고 거칠었기에 당시 사람들이 피하는 직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멸시를 받는 직업이었다. 랍비들과 율법학자들은 제대로 씻지 못해 냄새나고 더러운 이런 목자들을 부정하게 여겼다. 목자는 세리, 창녀, 어부들처럼 유대인들이 천하게 여겨 배척하던 직업 가운데 하나였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런 목자와 동일시 한 것 자체가 바로 은혜이다. 예수님은 자기 양들을 사랑하셔서 스스로 고된 길을 가신 것이다.   예언자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목자로서 실패한 일곱 가지를 지적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않았고, 병든 자를 고치지 않았고, 상한 자를 싸매주지 않았으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않았고, 길 잃은 자를 찾지 않았으며, 양들을 힘으로 통치하고 폭력으로 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셔서 고상하고 품위 있는 길이 아니라,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고 힘들고 피를 흘려야 하는 길을 가셨다.   올 한 해도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따르자. 주님은 뒤에서 회초리로 우리를 몰아치지 않으신다. 앞에서 차분히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주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며,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실 것이다. 어떤 위협이 닥치고 위기가 온다 하여도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지키실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방의 빛이 되어야 하고,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무지의 감옥에 갇힌 사람을 풀어주며, 욕망의 어둔 영창에 갇힌 이들을 끌어내어야 할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선한 목자를 따를 때에 누구도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며, 날마다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생명사랑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2-20
  • 야베스의 기도같이 살아가자(역대상 4장 9절에서 10절)
      2022년 임인년 한 해 동안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며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누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드린다. 야베스의 간절한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었으면 한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을 뜻하는 ‘야차브’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로 보건대 그의 인생은 어떤 인생이었음 짐작할 수있다. 아주 고통스러운 인생이었을 것이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 중에서도 유독 힘든 환경 가운데서 지내왔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를 통해서 극복한 사람이다. 이 야베스처럼 기도하며 살자.   첫째, 하나님께 매우 귀중한 자로 살아가자.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대상 4:9).    우리들은 하나님의 귀중한 자며, 그의 자녀들이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삶을 살자.   둘째, 삶의 모든 지역이 넓혀가는 삶을 살아가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대상 4:10a).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먼저는 신앙이 넓혀지고, 교회가, 일터가, 학문이, 모든 분야에서 넓혀가는 삶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하자.   셋째,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가자.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대상 4:10b).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2-13).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소년들의 용기를 훈련하는 독특한 방법을 썼다. 이들은 소년들에게 숲 속에서 야생동물들과 함께 밤을 지내게 만들면서 소년들의 담력을 키웠다. 시험을 받는 날 밤, 소년은 얼마나 무서움을 느꼈겠는가!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 소년은 그의 아버지가 가까운 나무 뒤에서 화살을 당긴 채 지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아들 몰래 아버지는 아들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게 하기 위해 밤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   넷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행복한 자로 살아가자.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10c).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7-29).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자로서 2022년을 야베스처럼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성도가 되자./강서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2-08
  • 레위 지파의 헌신(민수기 1장 47~54)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 이년 이월일일에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남자를 계수하게 한다(민 1:1~3). 이는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광야생활 곧 교회생활이 악한 영들과의 전쟁임을 보여주고 있다. 신앙은 영적 전쟁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라 고 말씀한다. 레위는 ‘연합된 (자)’를 의미하며 족장 야곱과 그의 아내 레아 사이의 셋째 아들(창 29:34)로, 이스라엘 중 그의 이름을 지니는 지파의 창시자이다. 레위는 형 시므온과 연합하여 누이동생의 치욕을 갚기 위해 세겜 성에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 제 삼일에 고통 할 때에 부지중에 성을 엄습하여 그 모든 남자와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칼로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왔다(창 34:24 이하). 그리고 그 누이를 더럽힌 연고로 양과 소와 나귀와 들에 있는 것들과 세겜 성의 그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했다(창 34:27 이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야곱은 죽기 전에 시므온과 레위에게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중에 흩어질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5~7).”   이렇게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저주 받은 레위 지파를 하나님은 계수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출 32:8~9).”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 모세가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 32:25~29)”   오늘 설교 제목은 레위지파의 헌신이다. 바로 이 헌신 때문에 계수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레위 자손들은 하나님 편에 서있었다. 이 헌신이 저주를 축복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들의 흩어짐은 온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사역하는 경우가 되었다. 레위의 자손들은 성전을 섬기는 자가 되었으며 제사장 직무를 맡았다(출 2:1 이하, 6:20; 신 33:8~11).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택하여 모든 가정의 장자를 대신하는 당신의 기업으로 삼으신 것이다(민 3:11~13).   하나님 편에 서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헌신이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헌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란다. /참좋은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1-26
  • 다시 믿음으로 (히브리서 11장 1~6절)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에게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1:1-2).    히브리서 말씀은 믿음의 개념에 대한 말씀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 현상에 대한 말씀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았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 에 대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서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절)   6절의 앞부분에는 믿음의 또 다른 현상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믿음의 개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믿음이란? 첫 번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확신이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믿음이 생길 리가 없다.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에 드는 이유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도,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믿음이란? 두 번째로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이다. 이것은 ‘하나님은 보상하시는 분이란 것에 대한 확신’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에게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저 믿음의 대상일 뿐, 아무런 능력이 없는 분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며,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며,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응답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믿음의 삶이란?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세상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삶이다. 이러한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의 삶에는 특징이 있다. 첫 번째로 찬양이 넘치는 삶이다. 나의 마음이 온통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기에 찬양이 그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다. 현재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자족할 수 있기에, 범사에 감사가 넘치게 된다. 세 번째로 기쁨이 넘치는 삶이다. 내 안에 기쁨이 충만하여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길가의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조차 예쁘게만 보인다. 이러한 삶이, 믿음의 삶을 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코로나로 말미암은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힘들고 어려운 시기다. 교회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으며, 성도들이 믿음을 잃어가며 넘어지고 있다. 이러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살아계시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 성도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감사와 기쁨, 찬양이 넘치는 성도의 삶이 되길 바란다.    / 농어촌목회자협 마을목회위원장, 덕곡교회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1-10
  • 또 달음질하라(고전 9장 23~27절)
       새로운 다짐으로 새해를 맞는 성도의 자세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은혜를 사모하며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과거의 일에만 얽매어 새로운 성도의 삶을 시도하지 못한다면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3~14)고 했다. 지난 성공이나 실패를 훌훌 털어 두로 던져 버리고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심기일전하고 일어나서 최후의 승리를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가자.    첫째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달음질하는 방향(목표)을 분명히 해야한다(26절).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달음질하는 자는 관중석이 아닌 골인 지점을 주시하며 모든 역량을 다하여 끝까지 달음질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향방 없이 목표지점 아닌 곳으로 달려가면 실격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은 최종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데, 그 목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우리의 신랑 되시며 재림 주이신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히12:2). 상급을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진력해야 한다.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바울 사도는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8~10)고 말씀했다.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흘러넘쳐 나지만 세상유혹보다 더 크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성도는 침몰되지 말고 믿음을 지켜나가야 한다.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영광과 승리의 면류관이란 목표가 분명하면 세상의 유혹이나 고난을 극복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둘째, 절제해야 한다(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는  ‘경쟁하다’,  ‘격렬히 몸부림치다’는 것으로 경주에 참가하는 모든 자를 가리킨다. ‘절제’는 고대 그리스의 운동 경기자들이 사용했던 전문 용어로 선수들은 통상 10개월가량의 고된 훈련을 받았으며 음식이나, 오락, 수면 시간 등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을 절제하여야 했다.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고린도 지역에서 개최되었던 ‘이스미안 경기’에서는 승자에게 월계수 잎을 엮어 만든 화환을 머리에 씌워 주었다. 이처럼 나뭇잎을 엮어 만든 경기자들에게 최고의 영예를 상징하는 것이었는데, 면류관은 금방 시드는 것이었고 그것을 쓴  우승자의 영예 역시 덧없는 것이다.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면류관은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운동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 못지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 절제는 하고 싶은 육체의 욕망들 그것들을 자제하는 것으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 하고 싶고 보고 싶은 욕망을 쳐 복종 시키며 절제생활을 해야한다.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자는 세상에는 화려한 것. 좋아 보이는 것, 행복하게 해줄듯 한 그럴싸한 선악과와 같은 것들, 이런 종류의 것들을 절제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밖에 없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모든 일에 절제하고 달리고 또 달려 크게 승리하는 한해가 되도록 하자. 그래서 우리의 주인 되시는 주 예수님의 칭찬과 상을 받는 성도들이 되자./유향교회 목사· 예장 합동개혁측 총회장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1-04
  • 인생은 돌아가는 존재(전도서 12장 7절)
      우리 인생은 어린 시절에는 과자에 끌려가고, 젊어서는 정에 끌려 살고, 장년에는 돈에 끌려 살고, 노년에는 병고에 끌려 시달이다 간다. 인생의 짧은 세월 속에서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는데 한해가 벌써 12월 마지막 날에 가듯이 인생이 모두 다 마지막을 향해서 가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국이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그 결국이 무엇인가? 결국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음이며 평안이라 생각한다.    첫째, 인생은 돌아가는 존재이다. 솔로몬이 전도서 본문에서 우리에게 특별히 교훈하고 있는 말씀은 돌아간다는 것이다. 인생은 종착점으로 가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5절에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본문에‘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고 한다   우리는 한해가 끝날 때 돌아간다는 사실에 특별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사람이다.   둘째, 돌아갈 날이 가까울 수록에 주목하라. 본문 3절에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맺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다리가 구부러지고 허리가 구부러진다. 치아로 맷돌질해서 먹고 살았는데 이가 빠져서 맷돌이 잘 안 돌아간다. 이 몸의 창문이었던 눈이 이제 잘 안 보여 어두워진다.    돌아간다는 말씀을 기억하면 송년 주일에 은혜가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기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라 하셨다.   셋째, 우리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 14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 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돌아가면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을 우리에게 예고해주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고하셨다. 필경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것은 인간에 대한 심판의 선언이었다.   넷째, 그러므로 창조주를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왜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제멋대로 살게 내버려 두었을까?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솔로몬아 네가 대표적으로 살아봐라. 네 아버지 덕에 왕위에 올라 네 맘대로 궁녀들을 데리고 살아봐라. 그리고 훗날 네가 회개하고 전도자의 길을 가라’ 하신 것 아닐까?   그래서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고 말씀한다.   전도서의 마지막 하는 말을 들어보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후대의 사람들은 그 길을 밟지 말고 젊어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라는 말씀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자신이 우리를 돌아다보면서 새로운 해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준비된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여기에 인생의 참된 행복과 목적이 있다. /진명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1-12-26
  • 성탄의 깊은 뜻(요한복음 1장 1~14절)
      오늘날 온 세계 사람들은 서력기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올해가 서기 2021년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2021년 전에 예수께서 탄생하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12월 25일이 되면 성탄 트리를 장식하고 카드를 보내고 캐럴을 부르기도 합니다. 성탄의 깊은 뜻은 성경 66권이 모두 예수님에 대하여 가르치고 증거하고 있으나 오늘은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그 깊은 뜻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 여기서 의미하는 태초란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태초와 같은 말씀이기는 하지만 그 뜻은 다릅니다. 창세기의 태초는 시간의 시작이며 역사의 시작을 의미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의 태초는 그보다 더 이전, 즉 시간과 역사 이전, 영원히 아득한 태초를 의미합니다. 이 태초에 말씀이 함께 계셨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은 사람의 생각을 표현할 때 쓰여지는 표현 방법입니다. 말하는 것을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볼 수 있으며,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말이란 자신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자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생각이 말씀으로 나타나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 곧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습니다(요 1:14). 이 뜻은 바로 하나님의 생각이 말씀으로 나타나셨으며 이 말씀이 자기 행동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이 바로 성탄,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거하시며 우리 가정 안에, 우리 마을에서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평범한 인간의 생활을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땅에 오시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이 바로 성탄의 깊은 뜻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민족 가운데 유대를 선별하시고, 이 민족을 못자리 민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유대를 근거로 하여 당신의 사자를 보내시고 당신의 뜻을 피력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아브라함을 통하여 다윗을 통하여 역사하셨던 바로 그곳 유대 한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였으나 태어나신 곳은 왕궁도 아니고, 따뜻한 방도 아니고, 외양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우연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으나 하나님의 역사, 섭리 속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외양간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모르고 지나갔던 지난 성탄은 접어 두고라도 올해의 성탄은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우리의 생활을 현실화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영접은 환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등지고 모르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그 인격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이 외양간 말구유로 초라하게 오셔도 우리는 주님을 주님인 줄 알아야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도 예수님인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주관이 앞서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예수님에게 못 미친다고 실망하고 원망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는 안 됩니다.   지나간 나의 생활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혹시 내 생각과 같지 않다고 예수님을 못 박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눈을 떠서 이번 성탄을 뜻깊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강교회 설립목사 · 한국기독교부흥협 증경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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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1-12-16
  • 부르심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대상 21장 1-8절, 고전 7장 17-24절)
    오늘 다윗의 인구조사 명령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숫자로 확인하고 싶은 다윗의 불신앙을 드러낸다. 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승전을 하고 남의 나라를 자신의 밑에 두자,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는 전쟁이 아니라, 군인이 될 만한 사람들의 숫자를 세면서 자신의 전쟁을 하고 싶은 욕망에 빠져 들었던 것이다.   만약에 이렇게 이해한다면, 다윗은 자신의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다가, 이제 왕위에 오르자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의 정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의 충신이었던 요압마저도 염려하고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치셨고, 결국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와 용서를 빌어야 했다.   한국교회는 덩치가 커지고, 돈이 쌓이고, 권력이 생기자마자 다윗과 같은 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되었는데, 세상의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된 것이다. 불의한 세상에 정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보다 더 세속적이고, 일반 시민사회보다 더 부도덕했기 때문에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시편의 저자처럼 우리가 다시 주님의 법도에 따라 옳게 선다면 주님께서는 분명 기회를 주실 것이다.   기회를 주실 때에 놓치지 않고 잡는 것이 지혜인데, 그런 지혜는 성공을 목표로 삼고 목회했던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충실하게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했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다. 저는 총회나 노회에서 제게 맡겨진 일들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며 하는 편인데, 어떤 것은 스스로 나서서 하는 것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총회 영성수련원의 활동이다. 오늘날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고, 여기에 함께 참여하시는 분들은 대체적으로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진실하게 주님의 길을 가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오늘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 처지 그대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름은 세상의 정치적 사회적 삶의 위치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하나님의 사역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루어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할례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배웠든 못 배웠든, 가졌든 못 가졌든, 권력이 있든 없든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부름은 세상의 논리와는 다른 특수인식의 활성화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느냐 삼지 않느냐인 것이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과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사회적 지위는 노예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자유인으로 살아간다. 자유인이지만 돈이나 과거에 갇혀 있고, 교만하거나 자기를 비하하면서 종의 모습으로 사는 사람과 다르다. 자유인이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어 섬기는 삶을 살아간다. 사랑으로 섬기면서 참된 자유를 누리고, 세상과 사람을 위해 섬기러 오신 예수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문제는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한 몫을 담당하자. 거대한 계획도 필요 없고,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여러분이 계신 그 자리에서 부르심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면 된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오늘 저도 여러분에게 권고한다. 여러분 모두는 주님께서 나누어 주신 분수 그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처지 그대로 살아가라. 다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라. /생명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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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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