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8(수)

교회/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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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콤한 소통(사도행전 5장 38절에서 42절)
       오늘 사도행전 이야기는 오순절 성령강림 후 사도들의 변화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 전에는 두려워하고 절망하면서 다락방에 스스로 유폐되어 있던 제자들이 성령강림 후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요 우리의 구세주라고 목소리 높여 선포하기 시작했고, 앉은뱅이나 눈이 먼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소리를 높여서 사회의 권력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분개해서 제자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중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원로답게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여러 번 보아왔듯이 제자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하나님께서 곧 없어지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 좀 두고 보자. 이렇게 제자들을 해치고자 하는 사람들을 말렸습니다. 그 대신 제자들을 채찍질한 다음에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투옥되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채찍 맞고 걸어 나오는 제자들이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고통 속에서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기독교인들만의 특별한 모습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편해졌을 때 망합니다. 신앙은 마침내 부활이요 승리지만 그전에 반드시 고난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십자가를 생략한 부활·행복·생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에서 고난을 생략하면 기독교는 망했습니다.  옛날에는 교회 가는 것이 전쟁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주일만 되면 일을 시키거나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해서 그것을 뚫고 교회 나오는 것은 매주 전쟁이었습니다. 때로는 빗자루로 얻어맞고 여성들은 머리도 막 잘리면서도 교회에 갔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신앙이 진짜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교회 가는 것 때문에 아무런 고난이 없습니다. 다 편합니다. 교회에 와도 목회자가 쓴소리하기 어렵습니다, 교회 안 나올까 봐. 결국, 희생이나 헌신 없이 달콤한 열매만 추구하게 되면 그 신앙도 죽고 교회도 죽습니다. 우리 교회가 움직여지고 선교 공동체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많은 성도의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정상적입니다. 너무 합리적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은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복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시간과 건강과 노동과 물질을 드리면 나는 당장 힘들고 어렵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몸이 아프고 다른 일도 하지 못하고 돈 쓸 곳이 여러 군데인데 못 쓰니 고통입니다. 근데 그 고통을 기뻐하게 된다는 것은 거룩한 중독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을 어떤 고통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 전통입니다. 이걸 다시 찾아야 합니다. 달콤한 고통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주민교회 목사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2-05
  • [금주의말씀] 교회에서 찾을 영광
       신학교 재학 시절, 캠퍼스 안에 기숙하고 있던 학생들과 ‘뉴욕 곰탕집’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신학교로 돌아오면서, 차 안의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모두들 맛있게 드셨어요?” 모두들 잘 먹었다고 하는데 한 학생만 “아니요!”라고 답을 합니다. “왜?” 되물었더니, “짜장면이 맛이 없어요” “아니, 곰탕집에 갔으면, 곰탕을 먹어야지, 짜장면을 먹고 맛이 없다고?”하며 모두 웃었던 일이 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를 썼던 C.S 루이스는 크리스천으로 회심을 한 후에도 오랫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교회에 대한 역할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동물원에 가는 것만큼이나 교회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집단의식에서 시작 된 것으로 신경이 무척 쓰이는 ‘같이하기’ 행사였다”고 하며, 교회를 좋게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크리스천의 생활은 개인적인 탐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교회에 임재하신다. 그리고 교회는 크리스천의 삶이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인간으로서,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여, 어디에 속할 필요가 있다.”   파스칼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신을 찾는 자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교회 안에 분명한 표징을 두었다.” 그러면, 교회에만 있는 그 무엇, 교회에서 찾아야 할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를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2c-3절 말씀처럼,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저희 앞에서 변형 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변형’(transfigured)의 뜻은 ‘안으로부터 나오는 모습’입니다. 즉, 예수님의 본래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문화와 사회의 상황과 각자의 생활 속에 바쁘게 살면서, 예수님도 그 모든 영향 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마음과 시간과 공간을 구별하여 모인 교회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4-6절 말씀처럼, 성경 속의 인물·사건·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체험합니다. 7절에서 그동안 배웠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습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은 그동안 배웠던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영광된 체험을 할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어디입니까? 변화 산 자체가 특별하고, 유명한 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서 변화 산입니다. 어느 교회이든지,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의 영광 된 교회입니다.   또한 2절에 ‘따로’, ‘높은’, ‘올라가셨더니’의 단어처럼, 우리는 예배의 시간과 장소를 특별히 구별해야 합니다. 일상적인 생활 중에, 나를 따로 구별하는 예배가 필요합니다. 또 8절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에 현실에 충실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영광된 변화 산과 교회에서, 생활 현실로 돌아와 충실 하십시오. 내 생활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소명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맛을 보았으면, 그 힘으로 내 삶이 영광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세상에서, 일상생활에서 그 영광의 능력을 발휘하시길 축원합니다./목사·새빛다문화센터장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1-30
  • [설교] 기도
    김국현목사    우리는 보통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제일 쉬운 일은 숨 쉬는 것입니다. 숨 쉬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쉬운 것이 누워서 숨쉬기입니다. 교회가 생명력이 있다면 살아있는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들이 소유한 능력의 원천이며, 동시에 건강의 척도입니다. 성도는 어마어마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한 손에 거머쥐신 분의 능력을 청구해 쓰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주시는데, 그 연결선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아무리 잠재적인 능력이 많다 하더라도 참 무력해 보입니다.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없으면 참 무력해 보입니다. 반면 몇 명 모이지 않는 교회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기도가 있으면 역사를 움직이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의 능력을 가르쳐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2~14).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들은 나의 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더 큰 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장막 안에 금향단이 있습니다. 이 금향단에 성도의 기도가 담겨져 하나님 앞에 올라갑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주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위해 기도하고 이 기도의 응답으로 이 땅 위에 종말의 증거을 보이십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도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행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땅 위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행해집니다.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알리는 사인입니다.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주님도 다시 오십니다. 기도에 이렇게 엄청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악한 마귀는 잘 압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기도를 못하게 만듭니다. 바쁘게 만들고, 이유를 만들고, 어떨 때는 핍박을 통하여 하여튼 기도만은 못하게 하려고 획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나아가서 기도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그분이 주시는 사랑을 받는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기도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기도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커다란 착각이며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기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우리의 영혼이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주리고 목마르십니까? 우리의 삶이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렘 2:13)와 같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럴 때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말씀하신 주님의 초대를 기억하십시오. 그리하여 주께로 나아가십시오. 갈급한 심령으로 주 앞에 나아와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 홍천 풍성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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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4-01-25
  • 너희 광야가 숲이 되리라 (이사야 32장 15절)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곳에는 반드시 부활과 회복과 성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손길이 닿게 될 때, 어떤 쓸모 없는 땅도 기름진 땅으로 변하게 되며, 그 기름진 땅에 생명의 씨앗이 자라나서 그 주변 전체가 숲을 이루어 가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금년 우리 교회의 주제 "너희 광야가 숲이 되리라!" (From Deserts To Forests!)는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와 복음의 능력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장차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변화를 일으키실 것인지 예언하시고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만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생명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광야와 같이 죽었던 세포가 살아나게 되었고, 죽었고 메말랐던 심령에 생명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이 심기기 시작했고, 그 마음 밭이 생명의 밭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베드로와 바울입니다. 어부였던 베드로 안에 생명이 임하니까 베드로를 통해 평생 일어서지 못하던 자가 일어서게 되었고,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거부했던 사도바울이라 할지라도 그 심령에 생명이 임하니까, 그가 가는 지역마다 영혼들이 돌아오고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결과 광야 같은 우리의 심령이 변하여 하나님을 모신 아름다운 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생명의 숲이 되어 우리 주변을 하나님의 숲으로 만드는 생명의 사역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2024년 금년 한 해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심령과 가정마다 광야에서 아름다운 밭으로, 아름다운 밭에서 울창한 숲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성령을 사모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이 역사하여 숲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년 주제 성구인 이사야 32장 15절은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광야가 변하여 아름다운 밭이요 숲이 되는 역사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심령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광야 같은 심령에서 아름다운 받이 되도록, 그리고 시대를 섬기는 숲이 되도록 계속해서 기도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금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는 금년 한 해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과 사업장마다 광야가 변하여 밭이 되고, 밭이 변하여 숲이 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떠나갔던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의 기업이요 기름진 땅으로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교회에 맡겨 주신 모든 사역과 사업의 영역에서 광야가 변하여 숲이 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하며, 모든 부서의 환경마다 광야에서 아름다운 밭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에 남겨 주신 교회 캠퍼스와 주차장과 드림키즈 땅과 연수원과 교회묘지가 광야에서 아름다운 밭으로, 아름다운 밭에서 시대를 섬기는 숲으로 개간하고 변화시키는 역사가 시작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 주변의 모든 지역 사회와 지역을 살아가는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변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대전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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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4-01-16
  • 깨뜨리자(마태복음 26장 6절~10절)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 26:6~13)   2024년을 바라보며 우리는 새 행정을 맞아 구역이 바뀌고 구역장과 구역원이 바뀌어 좀 생소하기도 하고 맘에 안드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목표로 삼고 달려갈 곳은 천국이기에 천국을 소유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받기를 갈망하고 삽니다.     우리의 진정한 복은 천국을 소유한 자가 최고의 축복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배다니 시몬의 집에서 천국복음을 전하실 때 순수한 믿음의 여인은 예수님을 통해 천국을 보았기에 노동자 1년 치 임금인 향유를 단 한 방울의 낙오도 허용치 않고 탈탈 털어 예수님께 전부 쏟아 부었습니다. 제자들은 분개하며 여인을 핍박하였으나 예수님은 “내 장례를 위하여 특별히 행한 것이니라”하시고 여인을 향해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기억하리라” 여인이 제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향기를 가득 채움같이 나를 깨뜨려서 사랑과 감사와 희생의 향기를 가득채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깨뜨려야 할까요?    첫째 약한 믿음입니다. 자라지 않는 신앙은 성장하지 않는 믿음이며 바로 ‘의심’입니다. 교회, 목사, 성도에 대한 불평과 의심이 있으면 절대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왜 나는 믿음이 안 자라고 늘 퇴보하는가 하는 마음이 들 때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입술에는 감사가 있는가? 혹여 불평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모습이 있다면 반드시 깨뜨려야 합니다    둘째 물욕입니다. 물질은 우리에게 아주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에 너무 과하게 욕심을 내다보면 예수보다 물질을 쫓아가게 되고 예배생활을 뒤로하고 돈을 벌려 나가게 되고 끝내는 침륜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은 물질만 사랑하다가 네 영혼을 데려가면 이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눅12:20)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관리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 가족, 성도,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물질관으로 사용하는 관리자로 깨어지길 소망합니다.    셋째 교만입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하며, 내가 아니면 안됩니다.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장이라 했습니다. 이렇듯 말씀처럼 교만은 망함의 선봉이기에 깨져야 하며 교만에서 내려와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성들을 깨뜨리고 신실한 믿음의 청지기들이 됩시다    나의 약한 믿음과 물욕과 교만이 예수님 이름으로 깨짐으로 새롭게 거듭나서 아름다운 향기를 주님께 드리며 빛된 삶을 사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대한교회 목사·예장 백석측 부흥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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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4-01-09
  • 믿음의 걸음을 내딛자 (창12:1~5)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한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라는 말씀은 한 해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으면 새롭게 맞이해야 하는 때도 있기에 새로운 한 해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마음을 새롭게 하고 이전에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 붙잡고 다시 출발하라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서 주신 새로운 한 해가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소망하고 기도하는 것들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인지에 대해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본문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믿음의 걸음을 내딛으며 살기 시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 각자가 믿음의 걸음을 내딛기로 결단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한다.   첫째:감동을 따라가라(1)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자가 되려면 첫째 현실이 아닌 내일의 소망을 위한 감동을 따라가야 한다.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세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절)고 명령하신다.   세상은 어떻게 하면 안락하고, 편안하고, 익숙한 것에 거하며 살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믿음의 걸음은 늘 새로우며, 매번 낯설기도 하고, 한치 앞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하며 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주저하지 않고 반응하며 따라갔던 이들이다. 이 감동을 따라 사는 것을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리라”(눅9:62)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눈에 보이는 익숙하고, 안전한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따라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축원한다.  둘째:약속을 따라가라(2~3)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자가 되려면 둘째 확신이나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야 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찾아오기 전까지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주목하지 않는다. 아브람이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였을 때가 75세(4절)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아브람이 자신이 살았던 삶의 방식을, 경험을 통해서 깨달아 진리라고 여기는 것들을 한 순간에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임하였고, 자신의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말씀만 붙들고 사는 것도 버거운데 이 세상 것들도 붙들고 살려고 하니 얼마나 고단한 인생인가?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네게 유익하던 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빌3:7~8)이라 고백한다. 내 욕심, 경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자.  셋째:확신으로 따라가라(4~5)  믿음의 걸음을 내딛는 자가 되려면 셋째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분명한 확신으로 따라가야 한다.   성경은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4a)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이나 앞으로 되어 질 일들에 대해서 계산을 다 마치고 나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5절)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는 말씀이 떠오른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신데, 내가 만약 나의 걸음을 온전히 맡길 수 있다면 나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시는 확신 안에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길 축원한다.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진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는 요단강이 우기라는 자연의 강한 힘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그 강을 건너는 방법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앞서 건너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언덕까지 범람하던 물이 멈추고 백성들은 그 강을 건너가게 된다(수3:14~16).   믿음의 한 걸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을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걸음을 내딛어 복의 근원이 되었던 아브라함처럼, 올 한해 각자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의 걸음을 내 딛음으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경험하는 은혜의 시간들이 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4-01-08

실시간 금주의 말씀 기사

  • 명품을 좋아하시죠?(딤후1:1~5)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품을 좋아한다. '명품'이란 말은 해외에서 '럭셔리'로 불리는데, '럭셔리'란 사치품, 호화품의 뜻이 있다. 우리나라에 럭셔리 브랜드들이 들어올 때 어감이 좋지 않아 거부감을 들게 할 것을 우려해 <명품>이란 단어로 바꾸었다고 한다. 기업의 마케팅전략인 셈이다. 원래 명품은 장인들이 수제로 만든 값어치 있고 희귀한 제품을 의미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명품을 몸에 지녔다고 해서 사람이 존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부부가 되게 하시고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도록 하셨고, 만물을 다스리라 명하셨다. 이 다스림은 곧 가정에도 적용된다.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와 자녀를 잘 다스려야 하는데 이 다스림이 정치(政治)이다. 아내에게도 다스림의 역할과 책임이 크고 중요하다. 아내는 윗어른, 시댁의 모든 식구, 남편과 자녀의 관계에서 정치를 잘 하여야 한다. 따라서 정치가 중요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믿음의 가정, 온 식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부부가 함께 이루어가야 할 가정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이전의 시대에는 가장(족장)이 제사장 역할을 수행하였다.) 행복한 가정은 경건한 신앙의 명문가, 신앙의 명품가정을 이루어가는 데 있다.   자자손손 부모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계승(계대)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된 부모로서 하나님의 앞에 인정받는 믿음의 자녀로 키워야겠다는 마음을 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1)자녀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 2)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 이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의 성공보다 신앙의 승리자, 하나님 앞에 서 게 될 그 날에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 신앙의 성공자로 서게 되는 것이 소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딤후 1:3절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딤후 1:5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말씀한다. 이처럼 위대한 인물의 배경에는 어머니의 영향을 입었다. “아이의 요람을 흔드는 어머니의 손을 세계를 흔드는 어머니의 손과 같다.”   하우스는 잠만 자는 곳으로 가정이 될 수 없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길은 하나님 말씀의 터 위에 세우는데 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의 터 위에 신앙의 명문가, 신앙의 명품가정을 세워가는 일에 힘을 다하여 가족해체의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127:1).   목회자란 것, 그 자체가 귀한 명예가 아닌가!(?) 작든 크든 장이란 직이 귀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무엇을 빛내는 일에 온 힘과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인지 답은 명확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두 가지 모두를 가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이 같은 마음으로 총회를 섬겨왔고, 목회 정신으로 삼고 오늘에 이르러 목회 일선에서 퇴역을 앞두고 있다. 목회에서 퇴역하는 마당에 나의 퇴역사는 사무엘의 퇴역사로 대신한다. /천호동원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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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4
  • 복음과 하나님의 진노(로마서1:1~32)
                 성경은 분명히 인간의 상태를 진단합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그 불의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복음을 깨달을 수 없고,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는 ‘본질적인 완전함’입니다. 대상에 따라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동일합니다. 그것을 ‘본질적으로 완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본질적인 완전함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상에 따라 달라집니다. 죄와 악이 없으면 나타나지 않고, 죄와 악이 있으면 분명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예측 가능합니다. 철저히 이성적입니다. 오로지 죄와 악에 대해서만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죄와 악에 대해서만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죄와 악에 대해서 분노하실까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무신론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사람과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만 존재합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분입니다.     광대하시며, 영원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분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고, 모두 이해할 수 없고, 초월해 있고, 모두 알 수 없는 영역에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나면 우상이 반드시 출연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결코 중립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어떤 것을 섬기고 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으면 우리의 생각이 허망해지고, 어두워지며, 결국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진노가 세 가지 채널로 나타났습니다. 마지막 날 궁극적으로 폭발하듯 나타나는 진노가 있습니다. 매 순간 우리 삶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 나타나는 진노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내버려두심의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의 정욕대로 살도록 더러움에 내버려 두시니 그들은 서로의 몸을 욕되게 했습니다”(24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대로 내버려 두셨다, 정상적인 관계를 비정상적인 관계로 바꿨다, 순리를 역리로 바꾸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며 위반하였다”(26~27절). “더구나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하찮게 여기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타락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셔서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28절).  ‘내버려 두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악을 행하게 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 진노의 한 모습입니다. 그 자체가 징벌입니다.    우리가 두려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진노’라는 단어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의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한 마음으로 인하여 온갖 죄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불의, 악행, 탐욕, 악의, 질투, 살인, 다툼, 악독, 분쟁, 비방, 능욕, 교만, 자랑, 부모를 거역, 우매함, 배역함, 무정함, 무자비 등입니다.     악은 새로운 죄를 계속 만들어내고, 악을 행하는 법을 계속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구원의 감격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던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앞에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불의로 진리를 막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 받아들이기를 축원합니다.  /온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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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0
  • 반드시 결산할 때가 온다 (눅16:1~13)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본문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언젠가는 끝이 있음을 되새겨 준다.   남송 시인 양만리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시를 읊었으며, 성경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맡겨 주신 사명을 얼마만큼 잘 감당했는지에 대한 결산을 준비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으므로 말씀을 통해서 각자의 삶을 돌아보길 바란다.   첫째:하지 말아야 할 일(1~3) 청지기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것을 맡아 대신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좋은 예는 요셉으로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창39:4~5)이다. 본문의 청지기는 자신의 불의함을 주인이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6~17)말씀처럼 주인은 청지기에 대해 세세히 알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다. 시간, 물질, 붙여주신 사람, 믿음의 공동체 등등 작은 일이라 여겨질지라도 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해야 할 일(4~9)  앞으로 먹고 살 일이 걱정이 된 청지기는 변하지 않고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일을 한다. 이 청지기는 주인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의 잔꾀를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칭찬하고 있다(8절).   이러한 주인의 태도는 돈에 관점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 재정적으로 얼마를 손해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9절)는 주인의 말이 그 해답이다. 돈을 얻기 위해서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고 끝내는 배신하는 것조차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시대에 하나님의 청지기로 정말 해야 할 일은 사람을 얻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결산의 기준(10~13)  주인의 결산 기준은 자신의 재산에 얼마만큼의 이익을 더 발생시켰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충성했느냐이다.   칭찬을 받은 다섯이나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들과 달리 책망을 받고 쫓겨난 한 달란트 받았던 자의 비유(마25:14~30)에서 보듯이 주인의 칭찬을 받는 것은 맡은 것에 대한 소중함과 충성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느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선택을 요구하신다(13절).   바울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무엇을 남길 것인지 보다는 얼마나 순종하며 충성하는 삶을 살 것인지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 결산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게 되며 그 결산이 특별한 것은 후회하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결산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한 주간 나의 삶이 마지막 결산의 때에 칭찬의 모습이 될지 혹은 책망의 이유가 될지 돌아보며 깨어 칭찬 받을 만한 믿음의 삶을 살아내길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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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0
  • 잃어버리고 사는 것 (눅15:1~7)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눅15장에서 예수님은 한 마리의 양, 한 드라크마,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의 비유를 통하여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은 정말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4~5).   말씀을 통해서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따라서 순위를 매기고, 그 중요성에 따라 사는 어리석은 삶을 회개하며 정말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축원한다.  첫째:긍휼히 여기는 마음(1~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라는 말씀대로 살지만,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9:36)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셨다.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모습이 지식은 있고, 말씀도 있지만 그 중심에 긍휼함이 없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손가락질 받고, 미움 받는 일 때문에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을 품기로 결정하셨다. 긍휼함을 잃어버리고 살기 시작하면 마음은 점점 강퍅하여질 수밖에 없다. 긍휼함을 품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자만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게 됨을 명심하자. 둘째:소중히 여기는 마음(3~6)  비유를 통해 집중 할 것은 목자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목자와 양의 관계를 비유로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10:3~4)라고 말씀하셨다.   목자는 백 마리가 되어도 양의 이름을 알고, 양은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자의 음성을 안다. 그렇기에 한 마리의 양이라 할지라도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 목자의 마음이다. 소중한 존재들이 되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의미가 담겨 있는 함께 해온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어진 관계들임 깨닫고 때론 내게 유익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지라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  셋째:하나님 아버지의 마음(7)  의인의 선함은 감동을 주지만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던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진멸당할 위기에 처한 백성들을 위해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2)라고 간청하고 있다.   바울도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자만이 하나님에게 감동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오늘 우리들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며 살지만 마음은 나의 노력과 결단에 의해 지켜낼 수 있음을 명심하자.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말씀하신다.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로 이미 해답을 주셨다. 모든 것을 잃었던 욥이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정말 소중한 것을 날마다 힘써 지키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내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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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2-06-13
  • 제자가 갖추어야 할 것 (눅14:25~35)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예수님의 기준으로 무리의 반대말은 개인이 아니라 제자이다.   유대인들이 선민의식 때문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처럼, 무리의 일원이기에 하나님이 기뻐 받아 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무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자격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애쓰고 노력해야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하며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적극성(25~27)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이 부모를 공경하라(신5:16)는 명령도 부정할 뿐 아니라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마22:39)는 말씀조차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워해야 할 정도의 적극성이 있어야 온전한 제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시기 위함이다.   하만의 계략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 에스더 왕비에게 모르드개는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4:14)며 용기를 가지라는 권면에 결단을 내리는 에스더처럼 제자로서 살기 위해서는 세상과 맞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 깨달아 알기에 힘들고 어렵지만 그 길을 선택하는 적극성을 지닌 자에게 놀라운 하늘의 축복이 주어지게 된다.  둘째:준비성(28~33)  망대를 짓는 자가 예산을 따져 보고, 전쟁을 앞둔 왕이 군사력을 점검해 보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처럼 제자로 살기를 바란다면 따져 보고, 점검해서 선택해야 하는데 그것은 자기의 소유를 버리는 것이다(33절).   40년 광야를 지나고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는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한다(수5:2~9).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가장 강해져야 할 순간에 자신들이 가장 약해지는 선택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고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약속의 땅을 소유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준비 과정이 된다.   제자로서 살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포기라면 아직 출발도 하지 못한 어리석은 인생이 아닌지 돌아보길 바란다.  셋째:유용성(34~35)  예수님의 기준의 유용성은 얼마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받은 은사를 잃어버리지 않고 잘 사용하느냐의 문제이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고 권면한다.   참된 제자는 덕이 될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유익이 되어야 한다. 시대가 악하고,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탄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처럼 악한 시대에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될지 아니면 쓸모가 없어 길에 버려져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될지에 대해 분명하게 선택해야 할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35절)로 말씀을 마무리 하셨다. 예수님도 아무리 귀한 교훈이 되고 능력이 있는 말씀이라도 듣고, 깨우치고, 변화되는 자는 많지 않음을 아셨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다”(사26:3)고 약속해 주셨다. 제자는 마음을 정하고 신뢰감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자로 평강하도록 지켜주심을 경험하며 사는 자이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이 평안이 말씀을 통해 제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한 성도들의 삶에 충만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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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07
  • 소수(少數)의 길을 가라 (눅13:22~30)
    길목교회 주재훈 목사  다수의 주장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다. 열두 명 가운데 단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믿음의 고백을 하고, 엘리야의 시대는 7천의 사람만이 믿음을 지켰으며, 400여명의 다윗의 군사들은 소수였지만 옳은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고 하신다.   말씀을 통해 믿음 안에서 소수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깨닫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힘쓰라(22~24)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의 약속으로 구원의 첫 번째 문은 넓고 크지만 점점 작아지는 수많은 문들을 만나게 되고, 궁극적으로 마지막 문 앞에 서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문이다.   마지막 이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썩어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남겨질 것에 대해 힘써야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6).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힘쓰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자.  둘째:떠나라(25~27)  예수님의 주변에 머물며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행위를 행악(27절)이라며 떠나라고 하신다. 마치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18:21)에서 보듯이 행악은 저울질하며 사는 것이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7)는 말씀처럼 악한 자의 모습을 떠날 때 소수의 길을 가게 되고 나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것에 대해 떠나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셋째:참여하라(28~30)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으니라”(30절)고 말씀하시만 문제는 처음이냐 나중이냐가 아니라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수 도 있기에 참으로 두려운 마음도 든다.   예수님이 천사와 함께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 오른편에 있는 이들에게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소수의 길을 가는 자는 자기에게 어떤 것도 되돌려 줄 수 없는 이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는 자이며 이런 자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내 인생의 마지막 잔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되어야 함을 명심하자.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다수의 삶은 물 흘러가듯이 살면 되지만 소수의 삶은 선택에 따른 책임과 대가를 치러내야 한다. 그렇기에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소수가 될 수밖에 없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막13:13)는 말씀처럼 믿음의 소수로 사는 것은 다수인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만 구원받는 소수의 축복을 믿으며 구원받는 소수가 되길 위해 날마다 거룩한 삶을 살아내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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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2-05-30
  • 쭉 펴고 살자 (눅13:10~17)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얼마나 많은 혼란이 있는가?   그 혼잡함 속에서 다른 이의 판단은 무조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는 아집을 버리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성경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2:1)고 책망한다.   말씀을 통해서 문제와 상황에 쪼그라져 사는 인생이 아니라 믿음 안에 가슴을 펴고 사는 축복의 자리에 머물기를 축원한다.  첫째:꼬부라진 육체(10~13)  18년 동안 꼬부라진 몸을 가진 여인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듣는 것은 투병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여인처럼 오랜 시간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12:8~9)는 응답을 받는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삶의 꼬부라진 것들만 바라보며 살 것인지 아니면 그 문제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살 것인지 그 선택은 언제나 나의 것임을 기억하며 눈을 들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참된 신앙인이 되길 바란다.  둘째:꼬부라진 마음(14~16)  회당장은 만만한 무리들을 향해서만 화를 낼 뿐 능력을 행하신 예수님에게는 왜 안식일을 범하느냐고 따지지 못한다(14절). 오랜 세월 고통을 받았던 여인의 마음보다 자신이 처하게 될 상황의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시대를 불문하고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의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잠29:25~26)고 말씀하신다.   꼬부라진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 여인보다 더 큰 질병을 가지고 있던 자는 바로 회당장이였고 그 회당장이 오늘을 사는 나의 모습이다. 셋째:꼿꼿해진 영혼(17)  예수님이 책망하시자 반대하던 이들이 깨닫고 부끄러워하는데,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증거이다.   40일 동안이나 하나님을 모욕하고, 그 군대를 우습게 여기는 골리앗을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삼상17:26)이 전달되었음에도 부끄러움을 가지지 않지만, 이사야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사6:5)라고 고백할 때 제단의 숯불로 그 입을 깨끗하게 하여 주신다.   부끄러움을 감추는 것이 예수님이 책망하셨던 외식하는 자의 모습이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죄의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비결임을 잊지 말자. 사명을 따라 살아갈 때 홍해 앞에도 서고 십자가도 지어야 하기에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는 은혜가 주어지는 기회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인생의 한계 앞에 쪼그라드는 삶이 아니라 믿음 가운데 당당하게 쭉 펴는 승리의 인생으로 변화되길 축원한다.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2022-05-23
  • 악한 세대의 특징(눅 11장 29절~32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딤후3:5)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고 권면하고 있다. 본문의 무리들은 말씀을 듣는 것처럼 보이고,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예수님이 단호하게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요2:25)을 정확하게 아시기 때문이다.    말씀을 통해 악한 세대의 특징을 살펴보며 시대도 악하고, 나의 믿음도 연약하지만 새롭게 각오를 세우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 표적을 구한다. 악한 세대라고 책망을 받는 이유는 “표적만”구하는 자세 때문이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바알세불의 힘입은 것(15절)이라 주장하거나 의심할 여지가 없는 하늘로부터 오는 분명한 표적(16절)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표적만을 구하기 때문에 악한 세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악한 세대이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고 하신다. 표적을 쫓아다니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실한 믿음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믿음 없이 사는 것이 악한 세대의 모습이다.     둘째 사모함이 없다. 남방 여왕은 열왕기상 10장에 솔로몬을 찾아온 스바(에티오피아)의 여왕으로 예수님이 땅 끝(31절)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의 먼 곳이지만 직접 찾아올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악한 세대를 안타까워하시면서 스바 여왕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진리에 대해서는 사모함이 없고 자기 눈에 보이는 표적만을 요구하는 어리석은 모습 때문이다.    사모함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세로서 하나님은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시107:9)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인이지만 진리에 대한 열정과 사모함 없이 예수님 주변만 얼쩡거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셋째 찔림이 없다. 예수님이 니느웨의 회개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시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지만 사람들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까에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5~16)고 말씀하고 있다. 악한 시대를 살기에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악한 세대의 특징은 찔림이 없는 것이다. 찔림이 없기에 처절한 회개도 따라오지 않는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오늘 이 시대는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없지만 보혜사 성령과 함께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찌 보면 예수님 시대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세대임이 분명하다. 베드로 사도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는 선포가 악한 세대를 벗어나 선한 세대를 살고자 하는 이들의 행동 강령이 되어야 한다. 한 주간 악한 세대의 잘못된 습성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서서 승리하는 시간들이 되길 축원한다. /길목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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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8
  •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방식 (눅12:49~59)
    길목교회 주재훈목사  본문을 깊이 묵상해 보면 믿음을 가진 자의 분명하고 정확한 길을 제시해 주신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을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고 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좁은 길, 좁은 문을 선택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선으로 힘들고 어려운 삶 가운데 멸망이 아닌 참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첫째:분쟁을 인정하라(49~53)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불은 화평이 아니라 분쟁의 출발점 이였으며(51절), 마태는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고 기록한다.   세상을 따라 살며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큰 성읍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이 없어 심판 받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선포하셨다.   분쟁이 있기에 힘든 시간들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분쟁이 있다는 것은 죄에 때 묻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분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며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삶이되길 바란다.   둘째:어리석음을 인정하라(54~56)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모스는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고 선포한다.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 책망 받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도 다를 바 없이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바울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는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셋째:잘못을 인정하라(57~59)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어 판결을 받으러 가야 한다면 길에서라도 화해하기를 힘쓰라(58절)고 하시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용서를 구하라는 말씀이다.   베드로에서 천국의 열쇠를 주시면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고 하셨고, 믿음의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주셨다(마18:18).   나의 실수와 잘못이 이 땅에서 당사자와 온전하게 풀어지지 않으면 그 문제는 하늘에서 묶여 있는 상태가 된다. 철저한 회개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에게는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고, 그 이후에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말은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변함없이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어리석은 모습을 회개하며 한 주간도 말씀 안에서 승리하는 순간들이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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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2-05-16
  •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눅12:29~34)
    길모교회 주재훈 목사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이라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마음에 무엇을 담고 사느냐에 따라 구별된다.   예수님은 온통 이 땅의 풍요로움만을 마음에 담고 살기에 믿음 없이 살 수 밖에 없음을 책망하신다.   말씀을 통해서 나의 마음은 지금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점검해 보고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깨끗이 비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채우기를 축원한다. 첫째:채우지 말아야 할 것(29~30)  이 세상의 것들로 마음을 채우면 찾아오는 것은 ‘근심’(29절)이다.   근심은 내 힘으로 살고자 할 때 찾아오는 마음이므로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고 성경은 말한다. 이렇듯 매일의 삶 속에서 근심의 무거운 짐에 눌려 사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시기에(30절)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닌 일용할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근심은 내 손에 들려진 것보다 남의 손에 들려진 것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생긴다. 따라서 근심은 감사가 없기에 자리 잡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채워야 할 것(31~32)  마음이 세상의 근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의 나라를 구하라”(31절)는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나마 내 손의 있는 모든 것조차 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는 것 같고 현실은 당장 내 눈 앞에 있으니 용기 있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맞아들이고 가득 채우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32절)이기에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최우선으로 삼아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채우는 비결(33~34)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사는 자는 이 땅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보물을 쌓는 자이다.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이에게 흘려보내는 것이 하늘의 보물을 쌓는 일이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전11:1~2)   이것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지혜로운 삶을 사는 자의 모습이다. 썩어질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하늘의 것에 투자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11:25)는 말씀에서 보듯이 나의 물질을 흘려보내는 것이 더 많은 것들을 하늘에 쌓아두는 최고의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으니라”(34절)는 말씀은 내 마음이 어떤 보물로 채워져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신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12:34)고 하신다.   이 세상의 것들로 마음이 채워져 있으면 절대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이 땅의 보물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속에 차고 넘쳐서 세상에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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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주의 말씀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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