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8-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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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22
      여섯째 날(5), 먹거리를 정해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인간에게 원복음을 주신 후에 인간과 그가 창조하신 모든 동물에게 필요한 먹거리를 정해주셨다. 모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1:29)고 말씀하셨고, 인간 이외의 모든 동물에게는 “모든 푸른 풀”(כָּל־יֶרֶק עֵשֶׂב: 콜 에레크 에셰브)을 식물로 주셨다(1:30). 하나님이 ‘오클라’(אָכְלָה: 먹거리)를 정해주시니 인간과 각 동물은 그들의 먹거리를 찾아 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에 그가 창조하신 인간과 모든 동물의 생명 활동에 가장 필요한 에너지를 식물이 만든 유기물 섭취를 통해 획득하도록 섭리하셨다. 동물의 유기물 섭취 과정을 현대 생물학에서는 metabolism(신진대사, 물질대사 또는 대사)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이하 인간을 포함한다)의 물리적 구조는 약 70%의 물을 제외하면, 세 가지 생화학적 유기물 분자-아미노산, 탄수화물, 지질-와 극소량의 무기물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처음에 지구에는 무기물밖에 없었다. 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는 유기물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다. 하나님이 서둘러 식물계를 먼저 만드신 것도 광합성을 통하여 무기물을 유기물로 바꿔야 할 필요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식물의 몸체도 물론 유기물로 만들어져 있다. 초기 지구의 유기물은 대개 식물의 광합성 작용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처음에 생겨난 식물의 몸체는 하나님이 만드신 유기물질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생물이 물질대사를 통해 생명활동에 필요한 영양소와 에너지를 얻는 형태를 보면, 식물은 무기물질을 섭취하여 광합성 작용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고분자 화합물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독립영양체다. 그러나 동물은 섭취한 먹거리에서 고분자 화합물을 분해하여 저분자 화합물질로 바꿨다가 다시 자기에게 필요한 고분자 화합물로 바꾸는 종속영양체다. 물질대사 과정에는 이화작용(異化作用 catabolism)과 동화작용(同化作用 anabolism)이 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유기 화합물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이화작용은 먹거리에서 고분자 화합물을 섭취하면, 소화기관에서 분해하여 생명활동에 필요한 저분자 화합물인 영양소를 얻고, 찌꺼기는 다시 밖으로 배출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탄수화물, 지질, 단백질과 같은 큰 유기물 분자를 단당류, 지방산, 아미노산과 같은 작은 단위로 분해한다. 동화작용은 이화작용을 거쳐 획득한 저분자 화합물을 자기에게 필요한 단백질이나 핵산과 같은 고분자 화합물로 다시 바꾸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세포의 증식 등에 필요한 분자들을 합성하기 위해 복잡한 효소 반응이 일어난다. 식물의 광합성과 동물이 아미노산으로 단백질을 합성하여 자가 세포의 유지와 성장, 그리고 생명 활동에 필요한 유기물 분자를 제조하는 물질대사의 방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각 생물의 생명 정보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각 생물에게 주신 생명 정보는 각 세포 안에 있는 DNA와 RNA에서 발현되고, 각 세포는 DNA를 복제하여 새 세포에 공급한다. 생명 정보는 그런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생겨나는 DNA 변이를 수선하는 기능이 있으며, 자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리보솜에 있는 RNA는 DNA의 지시에 따라 단백질을 만든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RNA 유전체만 가진 바이러스는 자체 내에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바이러스는 반드시 다른 생물의 세포에 침투해서 그 생물의 DNA에 역전사를 통해서만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고, 자손을 증식시킬 수 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각 생물의 생명 정보인 DNA 구조와 기능을 알게 되면, 생명 정보가 물질의 화학작용으로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적 무신론을 반박할 수 있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모세 시대의 문자주의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을 반론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과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수행하는 일도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 신학/선교
    • 신학
    2020-08-10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10. 보수주의적 개혁주의 신앙 사상: 세대주의적 견해 대신 개혁신학적 창세기 해석 수용   고봉은 복음주의적 개혁주의 신학의 노선으로 초교파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1948년 야간신학교인 대한신학교(현 안양 대학교)를 세워 “헌신 전도자 양성을 지속했다. 장로교단의 분열과정에서 독자 노선을 택하여 더 이상 주류 교단과 목회자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어 부득히 대신교단을 설립하게 되었다. 김치선 목사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혼란 가운데 1951년 5월 30일에 열렸던 총회신학교 이사회에서 교수로 결정되었다. 1961년 총회신학교를 떠나기까지 총신에서 구약학을 가르쳤다. 원용국교수는 “예과 학년 때는 에스겔서 강해였고, 본과 학년때는 소선지서 강해”였다고 회고하고 있다.(원용국, “김치선 목사와 나,” 「신학지평J 13 (2000), 3.). 현재 그의 강의 원고들이 남아 있는데 구약과 관련하여, 구약사 강의안, 예레미야서 강의안, 소선지서 강의안의 권이 남아 있고 출판된 『구약사기(舊約史記)』. (서울: 복음세계사, 1955)가 남아 있다.   고봉은 구약학 교수이면서도 「신학지남」이나 다른 학술지에 구약에 관련된 글을 전혀 기고하지 않았다. 그는 1954년에서부터 1960년까지 「신학지남」에 4편의 글을 기고하였는데,신약학과 조직신학에 속하는 글들이었다. 1954년부터 1955년에 걸쳐 “그리스도의 4초상(肖像)”,“기독교의 본질,” “기독교란 무엇인가?(설교)"를 계속적으로 발표하였고,1960년에 “복음의 진수에 대한 도전자들”이란 글을 기고하였다. 이 논문은 1960년도에 출판된 『복음의 진수』의 내용 요약과 도전자들을 첨부한 내용이었다. “그리스도의 4초상(肖像)”은 신약학 논문, 나머지 3논문들은 조직신학 논문이었다. 고봉은 1961년 총신을 떠난 후 대한신학교에서 보수적 정통개혁신학을 주도적 이념으로 가르쳤다.   고봉은 달라스 소재 복음주의신학교(달라스신학교의 옛 이름)에서 구약학을 전공하였고 모세오경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썼고 1935년 귀국 당시 복음주의신학교 등 미국 보수주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지배한 자유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항하여 기독교 복음의 근본진리를 수호하는 보수주의적 개혁신학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의 완전 축자 영감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신체적 부활과 재림, 지옥의 실재성, 사탄과 귀신의 실재성 등 성경적 근본진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를 이해하고 수용하였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건과 인간 운명이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스코필드의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를 받아들이지 않고 개혁신학의 구속사 중심의 성경해석을 수용하였다. 고봉은 그의 저서 『구약사기』에서 구약성경을 세대주의적 7세대(무죄 세대, 양심 세대, 인생 정치의 세대, 약속의 세대, 율법의 세대, 은혜의 세대, 천년왕국 세대)로 구분하지 않고 구속사적으로 나눈다. 그것은 1) 원시시대(창 1-11 장) 2) 족장시대(창 12-13장) 3) 이스라엘 민국시대(출애굽14 장 -삼상장) 4) 왕국시대 (삼상8장, 역대하 성문서 선지서 대부분) 5) 무정부시대 이 시기는 다시 (1) 포로 시대 (2) 귀국 시대 (3) 중간 시대의 세 시기로 나누고 있다.   고봉은 한국 장로교 정통신학의 역사적 전천년설(premillennialism)을 수용하였고 당시의 자유주의 사상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참가와 협력을 신앙의 타협과 동화라고 비판하였다. 고봉은 구약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도 스코필드의 세대주의 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독론적 구속사적 해석을 일관되게 하고 있다. 창세기 3장 15절을 원복음(최초의 은혜 언약이며 메시아 약속)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의 의로 믿음으로 구원 얻는 구속사적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인류 중에 한 가족을 하나님이 선택하사 당신이 우주에 주인이 되시며 구원자 되심을 보이려는 것이다." “그 가족으로 하여금 세계 만방과 만민을 구원하실 이는 오직 독일무이하신 삼위일체니 하나님뿐인 것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손을 통하여 구주되신 그리스도를 보내시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봉은 대한신학교에서는 구약학과 신약학과 조직신학을 강의하였는데, 그의 조직신학 강의 내용은 화란 개혁주의 출신의 미국 신학자 벌코프(Berkhof)와 답네(Dabney)의 미국 남북 장로교의 개혁신학에 일치한다. 고봉의 조직신학 총론은 3장에서 6장까지의 내용은 답네 총론 가운데 7장부터 12장까지와 상당히 겹치고있다. 특히 답네의 조직신학을 많이 참고한 것은 고봉이 미국 남장로교회가 세운 고베중앙신학교 졸업생이기 때문이다. 고봉의 신학서론은 벌코프 조직신학과 남장로교의 답네 의 조직신학 서론을 주로 이용하여 총론을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고봉의 신학 사상은 근본주의 신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개혁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고봉은 벌코프와 답네의 신학을 우리 상황에 맞게 가져다 놓았다. 고봉의 부흥신학을 보면 부흥이란 사람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의 부흥이라는 것을 피력하는 데서도 그의 부흥 신앙사상이 인본주의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 절대주권의 개혁신학에 근거하고 있다. 그의 신학은 고등 비평의 역사비평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는 정통개혁신학이었다.   고봉은 함경도 출신이었으나 동향인 김재준, 송창근이 신정통주의 신학노선과는 달리 길선주, 박형룡, 박윤선으로 이어지는 정통 보수주의 신학을 견지하였다. 그는 성경과 신조의 관계에 있어서 ‘성경이 신조 규범성이 된다’는 정통 보수주의 사상을 천명하였다; 성경은 ‘규범을 주는 규범’(norma normans)이요 신조는 ‘규범화된 규범’(norma narmata)이다. 고봉은 신학과 신조의 상호보완을 언급하였다: “신학은 신조를 무시할 수 없고 신조는 신학을 갖지 아니할 수 없다. 이 둘이 완전히 서 있을 때 기독교는 생명이 있고, 또한 신학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고봉은 박형룡과 친분도 있었다. 그가 성공적으로 목회하는 중 박형룡으로부터 온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에서 박형룡은, 고봉에게 자신이 일본으로 건너 올 것이니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1938년 일본이 신사참배 강요로 평양신학교가 폐교되자 고봉은 이러한 박해를 피하여 중국으로 피신하였다가 그 곳보다는 일본이 더욱 안전하다는 소문을 듣고 일본으로 피신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고봉은 자신이 사는 집에서 몇 집 건너에 집을 마련하고 그곳으로 박형룡의 가정을 안내했다. 이 때로부터 고봉은 일본을 떠나기 전까지 박형룡과 한 집안 식구처럼 가까이 지냈다. 고봉이 동경신숙중앙교회애서 메구로 교회의 사역지를 옮겼을 때 박형룡도 고봉이 목회하는 메구로 교회에 출석하였다.   11. 복음만 전파하는 초교파의 제3의 장로교 신학 사상: 보수적 개혁신학   1948년 8월 고봉의 주도(主導)로 '대한신학교(現, 안양대학교)'가 '장로교 야간 신학교'라는 이름으로 남대문 교회당에서 개교하게 되었다. 초대 교장에 평양여자신학교 교장을 지낸 윤필성 목사가 취임하였다. 신학교 설립은 300만부흥전도운동의 일환이었으며,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대한신학교의 교훈은 ‘주님께 충성, 타인에게 겸손, 자신에게 진실’이었다.”   이듬해인 1949년 1월 서울 서소문구(현 중앙일보사 근처)에 건물을 얻어 신학교를 이전한 후 고봉 자신이 친히 2대 교장으로 취임하였으며, 그 다음 해인 1950년 1월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대한신학교(大韓神學校)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피난 시절 대한신학교는 부산과 제주에 분교를 설립하고 계속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분교장으로는 윤필성, 이환수 목사가 각기 임명되었고 얼마 후 부산중앙교회의 노진현 목사가 부산분교의 분교장이 되었다. 그러다가 1952년 9월에 문교부로부터 4년제 신학교 인가를 받게 되자 고봉은 인가된 대한신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1953년 7월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지자 1953년 9월에는 부산분교와 제주분교를 서울로 복귀시켰다. 1961년 〈대한예수교 성경장로회〉 (현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총회)를 조직하고 대신교단의 초대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62년 서울중앙교회(현 청파중앙교회) 목사로 시무하고 1965년에는 대한신학교명예교장이 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가 남산의 대한신학교 땅을 빼앗아 그 자리에 KBS TV 방송국, 중앙정보부 건물을 지어버린 것이다. 학교를 빼앗긴 고봉은 난감해하다가 반(反)WCC단체인 ICCC(국제기독교연합)의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총재를 만나 한국에서 성경장로회를 창립한다는 조건으로 용산구에서 신학교 건물을 매입했다. 이후 ICCC와의 계약 내용에 따라 1961년 대한예수교성경장로회를 설립하고 초대총회장에 오르게 된다. 대한예수교성경장로회는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이하 예장대신)으로 개칭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가 극심한 분립 과정을 겪는 동안, 예장 대신은 순전히 김치선 목사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교단이라 예장 계열 교단 중 분립 과정과 상관 없는 자생 교단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1970년 성경장로회가 탈퇴하여 교단이 없어지려 한 위기를 겪는다. 그 후 고봉은 더 이상 외국의 선교비를 받지 않고, 한국 내의 자본으로 대한신학교 중흥의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의 돈’으로 대한신학교 건물을 세우려고 했다. 나름 ‘한국인의 힘으로 세워진 자생교단’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게 된다. 대신 증경총회장과 현 안양대학교(구대한신학대학교) 학장 등을 역임한 이의완 목사는 1975-76년도에는 당시 합동 통합으로만 분리되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순수 대신 출신 후학인 고창곤(함양), 강경원(가례), 이재호 목사(하동), 이병부(부산), 이재봉 목사(남해 상주) 등으로 지방으로 직접 파송해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 30여 개 교회에 선교비를 개인적으로 지원해가면서 학교와 교단을 지켜온 분이다. 교단 설립자는 김치선 목사이고 이의완 목사는 대신교단의 이름이 지금까지 있게 한 대신교단을 키워주신 교단지도자로 평가받는다(대신총회, 김치선 목사가 세웠고, 이의완 목사 지키고, 성장 디딤돌. 신현기 목사 “대신교단 30여개 남았을때, 매달 백불씩 후원으로 지켜낸 산증인”, 뉴스에이).   고봉이 세운 대한신학교는 다음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처음부터 야간신학교로 출발하였다. 북에서 내려 온 사람들 중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주의 일에 헌신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낮에 일하지 않고는 생계를 이을 길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고봉은 이들이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도록 하기 위하여 대한신학교를 야간 신학교로 운영하였던 것이다. 둘째, 이 신학교는 처음부터 지적인 추구보다는, 복음 전도를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라는 점이다. 학교에서 가르쳤던 과목들은 고차원적인 학문성을 추구하는 과목보다는 복음전도와 성도 양육을 위하여 실질적으로 필요한 과목들이었다. 고차원적인 신학 교육보다는 순수한 성경공부와 전도 운동을 위주로 교과가 편성되었는데, 거기에는 심지어 영농법과 침술법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셋째, 이 학교가 초교파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학교의 강사진은 초기부터 장로교인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감리교회의 변홍규 박사를 비롯한 다수의 타교단 출신 교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초교파적인 이유로는 3가지를 들 수 있다. ① 대한신학교가 300만 구령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학교였다. 3천만의 십일조 300만 구령운동은 실로 거국적이었고, 당연히 초교파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② 고봉이 열정적인 복음운동가였다. 유일한 관심사는 신학의 성향보다는 민족의 복음화에 있었다. 복음전도를 위하여 누구든지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초교파적이었던 것이다 ③ 당시 초교파는 복음주의와 동일시되는 때였다. 아직 자유주의 신학이 크게 부각 되지 아니했으므로 교파적으로 복잡하지 아니하였다. 장로교가 합동과 통합으로 나누어졌을 때 그는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제3의 길을 걸었다. 이 제3의 길은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이었다. 고봉이 세운 대신 교단과 대한신학교는 오늘날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을 대변하는 신학의 전당과 교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맺음말   고봉은 오늘날 신학계와 교계에 큰 지식의 강단신학자로서 보다는 개혁신학 정신을 설교한 목회자와 교회지도자로서 복음주의적 개혁신학의 실천, 회개와 논물과 기도를 그의 목회와 신학교 강의에서 하나의 화신(化身)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한국교회에서 강단 신학자라기 보다는 눈물의 선지자요 한국의 예레미아로 더 각인된 것이다.   고봉은 300만구령운동을 지속하면서 그는 신학도들에게 "2만 8,000여 우물을 파는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오늘 여러분이나 내가 할 일은 이 우물 파는 사업이다"라고 했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설교했다. 민족복음화를 필생의 과제로 삼고 ‘300만 구령운동, 2만 8,000 동네에 우물을 파라’는 그의 열정에서 그의 복음주의적인 개혁신학이 가장 목회실천적인 부흥신학적으로 구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것 다 준다 해도 나는 30명 양(羊)을 바꿀 수 없다. 나는 평생 선한 목자 되기 원한다.”라는 그의 고백처럼 고봉은 참으로 목자의 삶을 살았다. 그의 묘비에 쓰여진 성구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다”(히 11:38)가 그의 신앙적 열정과 헌신을 말해준다. 고봉의 확고한 삶의 중심에는 예수. 성경. 교회가 있었다. 그에게는 눈물의 기도와 열심, 겸손, 사랑이 따라다녔다. 고봉은 강단 신학자라기 보다는 민족 복음화를 최초로 제창한 기독교 선구자요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교단)과 대신신학교를 세운 개혁신학정신의 지주로 자리매김한다.   이은선이 고봉의 예레미아 성경주석에 대한 훌륭한 논문에서 밝힌바 같이 그의 구약학 강의안은 성경의 완전 영감성과 무오성을 믿는 신학적 태도에서 만이 아니라 학문적 우수성에 있어서 귀하게 평가받고 있다. 이제 복음주의적 개혁신학의 구약학자들이 고봉의 구약학자로서의 위상과 공헌을 밝혀내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끝)   ◇고봉이 설립한 대한신학교의 명맥을 잇고 있는 대신총회신학연구원(학장=이종전박사)   대신총회신학연구원 http://daeshints.org/  정통신학 이어가는 대신총회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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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0
  • 시인 최 선박사의 행복칼럼-20
      (사단법인)한국작은도서관협회 소속으로 독서 동아리를 통해 국내외에 기독교 독서리뷰를 널리 전하고, 독서운동과 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계시는 송광택 목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어린 시절에는 항상 곁에 계셨던 주님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송목사의 어머니는 결혼 전부터 교회를 다니셨기에 그가 살던 집에는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지고 오신 손때 묻은 작은 성경과 찬송이 있었다. 찬송가는 실로 묶인 무곡 찬송가였는데, 어머니는 특히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라는 찬송을 즐겨 부르셨다. 젊은 시절에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에서 그 찬송을 제일 많이 불렀다. 송목사는 고등학교 시절, 참고서 하나 마음대로 살 수 없었고, 학원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고3 시절을 붙들어 준 짧은 이야기가 있었다. 스파르타의 소년들은 짧은 창으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훈련을 받을 때, 짧은 창을 가지고 긴 창을 가진 자를 이길 수 있어야,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라고 말이다.   1971년 2월 어느 주일 아침, 송목사는 일신교회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일신교회는 그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때에 안길옹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였다. 예배 시간 오래 전부터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기에 발이 저려 왔으나, 꾹 참고 두 시간 이상을 그 자세로 예배를 드렸다. 담임목사님은 누가복음 19:1-10을 본문으로 하여, <지나가시는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셨다. 말씀의 요지는 2천 년 전에 여리고를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에도 우리 앞을 지나가신다는 것이요, 우리 각 사람이 그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설교 후에 회중은 조용히 묵상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날 송광택은 정직한 기도의 첫 마디를 생각해 내려고 끙끙거렸다. 이제 막 입을 열어 “만일...”이라고 기도 첫마디를 입 밖으로 내놓으려는 순간, 정말 순간이었다. 그의 망가지고 상처 난 영혼 깊은 곳을 향해 큰 꾸지람의 소리가 임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이 무엇이냐?” 그의 부끄러운 내면이, 가장 약한 부분이 그대로 노출되고 지적당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엄중한 책망의 말씀은 차갑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까지 접해본 적이 없는 ‘거룩한 무게’를 지닌 사랑의 음성이었다. 그 책망의 말씀이 광택의 영혼에 임하는 순간, 그의 안에서 그 무엇인가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거의 동시에 그는 고백하고 있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그 분의 사랑.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그에게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감히 고백한다. 그 순간 빛을 경험했다고 말이다.   그 후 송광택은 신학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1971년 10월 24일 세례를 받은 그는 이미 성경을 공부하고 그 말씀을 전해야한다는 소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1973년 총신대학교 신학과에 합격했지만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수중에는 교통비도 없었다. 이모저모로 궁리하다가 손목시계를 들고 전당포를 찾아갔다. 시계를 맡기고 천 원을 받고 그 길로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동태를 샀다. 동태장사를 한지 십여 일이 지났을 때, 그는 “동태를 사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학비를 보태 주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이 동태를 사는 사람은 복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동태를 사는 분이 복을 받으라고 ‘복(福)동태’ 라고 이름을 붙였다. “복동태 사려”라고 외치며 골목골목을 다닐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동태 장수가 아니라, 복을 전하는 전도자가 된 기분이었다, 송목사는 책사랑에서 독서운동으로, 80년대 말 한 신학교에서 독서모임 <글사랑>, <코람 데오>를 조직하였다. 그 모임을 통해 독서의 신앙적 의미를 조금씩 인식하면서 독서회원들의 책사랑은 뜻을 같이하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일종의 독서운동으로 발전하였고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는 13년간 독서지도사 과정을 운영하기도 했다(2004-2016년).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책을 읽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며 살아야 한다. 기독서적들도 읽으며 책의 주인공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발자취들을 통해 교훈을 삼고 자신도 후대에 물려 줄 수 있는 그릇으로 성장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독서와 인문 관련 책들을 계속 적으로 읽어야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바로 지금이 기독교 지성의 책임이 매우 큰 시대다. 내 손 가까이 책을 둔 영적 지도자들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성경과 인문학 서적들을 즐겁게 읽으며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같이하는 독자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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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0
  • 10일, CTS서 특별기획 「TV 여름성경학교」 방영
    ▲CTS는 특별기획 「TV 여름성경학교」를 한 주간 송출해 코로나19로 여름성경학교 사역을 펼치지 못하는 개교회를 지원한다.   성경 애니메이션·웹드라마 등 기독 영상 콘텐츠를 송출 “코로나19를 극복하며 다음세대 신앙이 이어지길 희망”   CTS기독교TV(회장=감경철)는 오는 10일 동 방송국에서 TV 여름성경학교를 송출하고, 코로나19 상황에 믿음의 다음 세대를 세우는 한국교회의 여름 사역을 지원한다.   이번 TV 여름성경학교는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거나 축소하여 진행되는 개교회 여름성경학교 현황에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특별 편성하여 준비됐다.   동 방송국은 8월 둘째 주를 다음 세대 특별주간으로 편성해 다채로운 기독 영상 콘텐츠를 바탕으로 여름성경학교 프로그램을 지원할 방침으로 한 주 동안 방영된 TV 여름성경학교는 기독 자녀들을 위한 다채로운 영상 콘텐츠와 더불어 믿음의 양육을 책임질 부모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 방영한다.   다음 세대 프로그램으론 큐티엠의 「어린이 큐티 시간」과 「큐티인과 날마다 어큐」를 시작으로 3D 성경 애니메이션 「슈퍼북」이 방영한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승리해요」란 주제로 「히즈쇼와 함께하는 TV 여름성경학교」가 방송한다. 또한 TV 여름성경학교 주제찬양과 율동영상, 챌린지 이벤트와 함께 방송 중 돌발 성경 퀴즈를 풀어보며 방송에 직접 참여하는 여름성경학교로 방송을 기획해 어린이들의 참여를 독려하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이어 비대면 화상 연결을 통해 원동연박사(카이스트)가 진행하는 「지혜가 자라는 5차원 성경 여행」을 송출하며 팻머스문화선교단에서 제작한 어린이 웹드라마 「엉클존스」와 「팻머스 예꼬클럽」이 방영한다.   다음세대 신앙교육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데에 고민을 품고 있는 부모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 방영한다. 성경적인 자녀교육을 위한 「이기복교수의 부모특강」 9강이 방영하며, 콜링갓은 다음 세대 특집으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으로 준비했다. 큐티 가족뮤지컬 「갈멜 : 아합과 이세벨」과 특선영화 「일사각오」가 방영한다.   그리고 「7000미라클」과 「내가매일기쁘게」가 다음세대 특집으로 방영하며 특집 다큐 「교육이 희망이다」가 자녀 양육을 위한 부모들을 위해 특별 편성됐다.   방송국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여름성경학교 개최가 어렵거나 개척교회에서 진행하기 어려웠던 올해 여름성경학교가 한국교회에서 계속 이어지고 다음세대의 신앙이 계속 부흥되길 바란다”며, “이번 TV 여름성경학교를 시작으로 CTS는 다음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제작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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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 [쉽게 배우는 한의학 23] 소아는 보약이 필요하다
      소아기 때는 성장위해 충분한 영양공급 필수 영양상태 부실한 아이 총명할 가능성도 적어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소아는 신체적으로 장부와 조직이 형성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연약할 뿐 아니라, 특히 정신적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여 성인과는 판이하다. 즉 소아는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며, 동의보감에 의하면 10명의 부인을 치료하는 것이 소아 1명을 치료하는 것보다 쉽고, 10명의 남자를 치료하는 것이 1명의 부인을 치료하기가 쉽다고 했다.   옛부터 한방에서는 소아기를 소양지기(少陽之氣)가 왕성하여 생리적인 자연발육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기로 보았다. 소양(少陽)이란 陽(양)의 기운은 왕성하고 陰(음)의 기운은 부족한 상태(陽有餘 陰不足)로 소아기에는 발육하려는 체내의 기운이 인생의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왕성하고(陽有餘), 이에 따라 충분한 영양분이 계속 공급되어야하므로 항상 영양분이 필요하다고(陰不足) 여기는 관점이다. 이런 상태이므로 다른 시기에 비해 열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열성질환에 유달리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흔히 쓰이는 처방이 귀룡탕(歸茸湯)이라는 것으로 當歸(당귀)와 鹿茸(녹용)을 포함한 여러가지 약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귀룡탕은 감기에 잘 걸리고, 밥을 잘 안먹어 식사 시간이면 밥과의 전쟁을 하는 아이, 잔병치레가 많으며, 알러지성 비염을 앓고 있거나, 성장발육이 느려서 걸음이나 말이 늦고, 소변을 자주 보거나 야간에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 간혹 코피를 흘리는 아이 등의 몸의 氣血(기혈)이 약하여 생체의 정상적 기능이 발휘되지 않을 때 흔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當歸(당귀)와 鹿茸(녹용)을 포함한 여러가지 약재로 구성되어 있다.    녹용의 주된 성분은 성장 발육의 기운을 돕는 작용이 강하고, 신진대사의 항진과 강장효과가 있어 조혈기관을 보익하고, 근골을 튼튼히 하며, 빈혈, 심장쇠약, 퇴행성관절질환, 성기능감퇴, 산전산후의 빈혈등에 주로 쓰이는 약이다. 당귀는 보혈작용을 대표하며, 빈혈이나 생리불순을 조절하며, 혈중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체내가 건조한 것을 윤택하게 하여 대장의 배변을 원활하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귀룡탕은 발육부전과 영양장애에 주로 사용되는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소아에 있어 체력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보약을 복용할 시기를 꼽아 본다면, 걷기 시작하는 시기로 소비되는 에너지가 급격히 증가하는 첫 돌 무렵과 3세 전후, 그리고 6-7세 경이라고 할 수 있다. 3세 경에는 외부 활동량이 많아짐에 따라 소비량은 물론 충분한 영양섭취를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며, 6-7세 경에는 두뇌 활동의 증가로 역시 영양보충이 필요한 때이며, 3-7세 정도인 유아기는 두뇌도 가장 왕성하게 발달하는데 이 시기에 적절한 영양공급이 안되고 열성경련(驚氣)를 하는 아이는 총명해질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는 약의 힘을 빌어 영양섭취를 증가시키는 것이 좋으나, 복용량이나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므로 전문적인 한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나이의 반을 먹인다든가, 나이 수(數)대로 먹인다든가 하는 속설이 있지만, 용량은 전적으로 아이의 건강 상태에 따라 자기 나이보다 적게 먹이기도 하고 나이의 몇 배를 먹이기도 한다.  /경희신창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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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 하나님이 계획하신 비전
    고등학교 시절 하루빨리 군대에 가서 국방의 의무를 마친 후 영미권으로 유학을 하러 가기로 다짐했었다. 성공적인 유학길을 준비하고자 군대에 들어가기 전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목사님에게 영어를 배우고 전역 후 유학원을 찾아다니면서 유학을 준비했다. 유학 비용을 모으고자 일을 하다가 잠시 쉬던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중국어를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영미권 유학을 준비하고자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계신 어머니가 중국어 공부를 권했다는 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머니의 제안을 따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 있는 선교중국어학과를 지원했지만, 지금까지 영어공부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 이를 포기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지금까지 한자 공부를 소홀히 한 것도 중국어를 선뜻 선택하기 힘들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   어떻게 중국어 공부를 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에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학과장을 맡고 있던 우심화교수님의 수업을 듣던 도중 지금까지 품고 있던 걱정을 모두 날려버릴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너희가 4년을 나에게 바치면, 40년을 주겠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중국어 공부에 관한 막연한 공포심이 있어 선뜻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었다. 한자 한 글자를 익히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매일 수업 퀴즈로 중국어 시험을 치르느라 우심화교수님이 남긴 말은 자연스럽게 의식 뒤편으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학교에서 진행하는 어학연수를 통해 방학 동안 중국과 대만을 방문하게 된 일을 계기로 중국어에 흥미를 붙일 수 있게 됐다.    공부에 재미를 느끼니 자연스레 중국어 실력이 향상하게 됐고, 처음 학교에 입학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공부에 임했다. 처음에는 포기할 줄 알았던 대학 생활 4년을 모두 마치면서 큰 만족 속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한 가지 더 만족스러운 것은 중국어를 배우고자 들어오긴 했지만, 신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면서 4년간 중국어 공부에 매진한 만큼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시간이 생겨났다. 이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삶을 다루시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과 삶의 목표에 관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우심화교수님이 남기셨던 말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심어져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중국어를 배우는 원동력이 되었던 듯싶다. 그리고 4년을 신학교에서 지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과 목표가 우리를 이끄는 삶에 얼마나 존귀한지 배울 수 있었다.   정말 뻔한 말이지만 일상에 지쳐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내려주신 비전과 우리 삶의 목표를 잊고 산다. 졸업을 한다면 사회라는 거친 현실의 벽을 마주치게 될 터이다. 4년이라는 배움의 시절 속에서 깨달은 것을 소중하고 여겨 사회로 나가 세상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을 지키는 마음의 기둥이 될 수 있길 희망한다. /양평교회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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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8-06
  • 창대머신테크 회장 이현수장로
      일회용 마스크 소비문화 근절통해 자연보호 앞장 촉구 “마스크를 해외에 보내는 사역에 지속적으로 힘써야”   성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현수장로(물댄동산교회·사진)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정직과 소명 의식을 바탕으로 이익 창출을 추구하는 건강한 기업을 운영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   결혼한 직후까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가정에 헌신적이었던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화목한 가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교회를 접하게 됐다고 밝힌 이장로는 “평소 친구들과 밤새워 노는 일만을 좇았던 와중에 가정의 화목을 위해 헌신하는 아내를 보면서 과거를 뉘우치게 됐다”며, “지금까지의 삶을 살면서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각했고 새로운 삶을 위해 방법을 찾던 중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서 처음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와 함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한날한시에 세례와 집사, 장로와 권사 안수를 받으면서 신앙의 발맞춤을 이루는 기적과 같은 일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접했다”며, “신앙생활 속에서 큰 시험에 들지 않고 항상 기도와 묵상으로 굳건히 믿음을 지킬 수 있어서 ‘주님께 항상 감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어난 위기 상황을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아  마스크 생산 사업에 뛰어든 이장로는 “현재 시장에서 판매 중인 마스크는 입 주위에 공기층을 형성해 갑갑한 느낌을 준다. 특히 여름철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커져 코로나19를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고 있더라도 답답한 느낌 때문에 마스크를 벗거나 안 쓰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며, “통풍과 코로나19 차단 효과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마스크를 개발해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식약청 등 해외 기관의 인증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이어 “시중에서 판매 중인 일회용 마스크는 쓰레기로 버리게 되면 부패가 늦어 자연적으로 분해되기까지 약 100년이 소모된다. 이 때문에 소각 처리하는 경우에는 공해가 발생하고 혹여나 길거리나 하수도에 버려진 마스크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양 생태계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며, “코로나19로 일상생활 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일이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자리잡은 지금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지키고 변화에 적응하는 삶을 위해 일회용품을 지양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데에 선도적으로 나서는 일이 기독교인으로서 지켜야 할 소명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마스크를 절실히 필요한 해외에 교회가 중심이 되어 보내는 사역을 지속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이장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 삼으시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고 하셨듯 우리 또한 사람을 구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며, “복음을 전하고 신앙인으로 양육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인의 일상이 주님의 보호 아래 있고 하나님 품에서 가족처럼 살아가는 신앙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도록 우리가 지닌 것을 나누는 일에 매진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주님께서 인도하신 삶 가운데에서 받은 은총이 정말로 값지기에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성취하는 일에 힘쓰고자 한다”며,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조기 종식을 위하여 기도하고 마스크 전도·선교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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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 [성경의 죽음 23] 아하스 왕의 죽음
      아하스 왕의 기사는 열왕기하 16장과 역대하 28장에 나온다. 아하스가 유다의 왕이 될 때에 나이는 이십 세라고 했다(열왕기하 16장 2절). 그는 16년 동안 다스렸으나 다윗 왕과 같지 않아 하나님 여호와께 정직하게 행하지도 않았고 우상 숭배하는 자였다. 대표적인 악행들을 성경은 기록하여 그의 인생을 악하게 표현한다. 첫째는 바알들의 우상을 만든 것이다(역대하 28장 2절). 둘째는 그의 자녀들을 불살라 인신제물로 바친 것이다(역대하 28:3). 셋째는 산당들과 작은 산 위에서, 그리고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한 것이다(열왕기하 16장 4절; 역대하 28장 4절).   이런 악행 때문에 결국 하나님은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셨다. 아람 왕은 많은 무리들을 사로 잡아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 베가의 손에 넘겨 죽게했다(열왕기하 16장 5절; 역대하 28장 5절). 특히 이스라엘 왕 베가는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다고 했다(역대하 28장 6절). 이 전쟁에서 왕은 아들을 잃고, 궁내대신과 총리대신을 잃게 된다. 그리고 약 20만 명의 백성들이 사마리아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스라엘에는 오뎃이라는 선지자가 있어, 형제인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오는 것을 반대하여 결국 돌려보내게 되었다(역대하 28:15).   하나님의 은혜로 백성들이 돌아오게 된 것을 모르고 아하스 왕은 도리어 앗수르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청한다(열왕기하 16장 7절; 역대하 28장 16절). 이때 에돔 사람들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그의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기 때문에 아하스 왕은 사방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역대하 28장 16절). 성경은 이런 재앙들이 모두 아하스 왕의 우상숭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유다 왕인 그를 ‘이스라엘 왕’이라고 불러 우상숭배자들인 이스라엘 왕들처럼 행했다고 조롱한다(역대하 28장 19절). 도움을 요청하여 지원에 나선 앗수르 왕은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한다(역대하 28장 20절).   결국 아하스 왕은 죽어 왕들의 무덤에 들어가지 못하고 예루살렘 성에 장사되었고,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역대하 28장 27절). 아하스 왕의 모습을 보며, 오늘의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한국 사회가 발전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여전히 사람들은 아하스 왕과 같이 어리석게 우상숭배와 온갖 죄에 빠지고 있다. 국가 지도자들은 속히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희망이 있다. 한국교회는 아하스 왕의 전철을 밟지 말고 과감하게 개혁하고 변해야 소망이 있다.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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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 [마라나타 9] 아담 유감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을 때 이미 청년이었다. 어린 시절도 없었으며 태아로 열 달을 기다려야 하지도 않았다. 기다림이 무엇인지 모르니 그리움을 알까, 서러움을 이해할까. 미어질 가슴도, 쓸어내릴 한숨도 없었을 터이다. 그가 혼자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으셔서, 깊이 잠들게 하고, 갈비뼈 하나로 돕는 배필 하와를 빗으셨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 최상의 사랑을 고백하였지만, 유일하게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후 변명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여자가 나무 열매를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약속은 하와 이전에 하나님과 아담 둘이서 맺은 사랑의 언약이다. 매일 아침 바람과 함께 동산에 오신 하나님은 약속한 선악과가 여전히 나무 위에 달려있는 것을 보시며 기뻐하셨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사랑을 이어가는 행복의 증표이다.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에게 전해 들은 하와는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에게 말했다. 에덴에서는 하나의 언어였다. “너희는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빛을 등지면 그림자가 보인다. 갑자기 죄의식이 생겨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었다. 아담 대신 죽은 것은 양이었다. 에덴에서 첫 번째 피 흘림은 대속의 결과였다. 기다림의 훈련이 없었던 아담이 시간 속에 살게 되니 필연적으로 선악과를 따먹게 되어 있었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으나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으니, 호기심 발동한 하와를 앞세워 단 하나의 계명을 어기고, 어느 날 손을 들어 따 먹을 수밖에 없었겠지. 아담 유감입니다! 마라나타 주여 이제 오시옵소서.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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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 요한계시록 전문가 최모세목사
    ◇요한계시록 해석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모세목사는 신간 〈진리로 사역하라〉를 발간하며 한국교회의 자성을 촉구했다. 문자적·역사적 해석 넘어 은사통한 계시록 강좌를 추진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를 함께 행하시는 분으로 기억해야”     세계 최초로 성경 전체와 요한계시록을 비교·분석하며 성경해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모세목사(사진)는 요한계시록 강좌 사역을 통해 한국교회가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를 명료하게 풀이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쓰고 있다.   기존의 문자적·역사적·원어 중심적 해석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계시와 은사를 바탕으로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를 열어주는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 최목사는 최근 신간 〈진리로 사역하라〉를 통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불순종한 이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책을 발간했다.   요한계시록 강좌를 통해 성경 속 진리를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최목사는 “성경을 계란으로 비유하면 껍질과 흰자, 노른자로 구분이 된다. 껍질은 성경의 문자로 사람이 계란을 먹을 때 껍질을 버리듯 성경을 볼 때도 문자 그 자체에 얽매이지 말고 해석해서 알아야 한다”며,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실 때 구약을 인용하시면서 문자를 해석하시어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이는 그 속에 하나님의 경륜을 바로 알고 깨달아야 비로소 진리를 참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은 지식 정보를 접하는 것이 쉬운 사회가 되다 보니 말씀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홍수 때에 물은 주변에 많지만 마실 물을 구하는 것은 어렵듯 말씀이 홍수처럼 쏟아지더라도 참되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이 시대와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참된 양식인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알고 이를 전하기 위해서는 애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이들의 사역이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역설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강론한 강좌 내용을 바탕으로 성경 속 진리를 지키기 위해 신간 〈진리로 사역하라〉를 발간하게 됐다고 전한 최목사는 “약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선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올바르게 알려주지 못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책망하시는 구절이 많이 나온다”며, “그들을 책망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사의 자식으로 힐난하실 정도로 그들을 질책하셨는데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이어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을 강조하셨던 예수님께서 이들을 모질게 대하신 모습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모습과 상이하게 느껴진다”며, “이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으로 영생복락의 복을 주시면서 영원한 저주인 지옥의 벌을 우리에게 내리시는 심판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고자 하신 일이다”고 덧붙였다.   베드로와 엘리야, 엘리사, 여호수아, 모세 등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인류 역사 속에서 참된 예언자와 사도로서 활동했다고 강조한 최목사는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다”며,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생의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영위하도록 권면하며 책망과 질책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또 “한국교회가 어두워진 오늘날 이들의 사역을 면면이 들여다본다면 이들이 보였던 사랑의 채찍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며,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모두 떨치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한국교회에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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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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