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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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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50만분의 1이라고 한다. 850만 명 중에 한 사람밖에 당첨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경마나 다른 카지노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 구조를 알면서도 사람들이 사행사업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미래가 불안전하니 한 번 대박을 터트려 인생 한번 바꾸어 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탕주의요 요행 심리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쉽게 살아가려고 한다. 쉽게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한다. 하지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냥 되는 것은 없다. 쉽게 이룬 것은 쉽게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한탕주의와 요행 심리는 세상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런 요행 심리를 가지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 기도 잘해서 대박을 터트리려고 한다. 한번 헌금 잘해서, 한번 예배 잘 드리고 대박을 터트리려고 한다. 이런 심리는 신앙이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일본 나라현에 가면 호류사라는 절이 있다. 이 호류사는 천 년 된 소나무로 지어졌다. 이 절을 1,400여 년 동안 대대로 지켜온 ‘궁목수’ 가문이 있다. 일본에서는 천 년 이상 갈 수 있는 절이나 궁궐을 짓는 목수를 ‘궁목수’라고 한다. 니시오카 가문이 바로 궁목수 가문이다. 이 가문에서는 후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천 년 이상 갈 수 있는 건물을 지으려면 천 년 된 노송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나무로 건물을 짓는다면 모름지기 천 년은 갈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궁목수로서 그 나무에게 면목이 서는 일이다” 이는 나무의 자연적 생명으로서의 수명과 목재로 사용된 뒤부터의 생명 연수가 같다는 뜻이다. 곧 견딤의 시간이 쓰임의 기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천년을 견딘 나무니까 천 년의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다. 견딤은 인생이라는 나무의 강도를 나타내는 인생의 나이테이다. 견딤은 인생이라는 나무를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과정이다.

소설가 박완서선생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해에 남편을 병으로 잃고 넉 달 뒤에는 스물여섯 살 사랑하는 아들을 사고로 또 잃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한번은 잡지사 기자가 박완서 선생님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그러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것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가 고통에 대해 저항할수록 고통스러워진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만큼 쓰임 받는 것이다.

욥은 견딘 만큼 쓰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온전한 사람이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이런 욥에게 갑작스러운 고난이 닥쳤다. 자녀들도 재산도 다 잃어버렸다. 건강도 잃어버렸다. 그의 아내마저 고통받는 욥을 보면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까지 말했다. 그의 친구들도 욥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욥을 비난했다. 그 무엇보다 욥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었다. 그러나 욥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장 10절) 욥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과정이 하나님께서 연단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욥은 이 연단의 과정을 잘 견디어 놓게 더 귀하게 쓰임 받는 인물이 되었다. 모세도 요셉도 다윗도 견딤을 통해서 쓰임 받았던 인물들이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쓰임 받고 싶은가? 견뎌라. 
/대구 아름다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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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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