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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5.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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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오장경.jpg▲ 오장경목사
 
스승의 날은 1958년 5월 8일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세계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위문하기 시작하면서 1963년 제12차 청소년적십자사 중앙학생협의회에서 5월 24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여 기념할 것을 권장하였고, 1964년에는 명칭을 ‘스승의 날’로 변경하여 5월 26일로 정하였다가 1965년에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 정하여 38회에 이르렀다.

옛 문헌인 동언교략(東言巧略)에는 사(師)의 중국 발음이 ‘스’라는 점으로 미루어 가르침을 이어간다는 사승(師承)이 스승의 어원이라 했다. 흔히 가르치지 못할 사람도 없고, 배우지 못할 사람도 없다고 한다. 사제 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선생은 있어도 스승이 없다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스승을 만난 경험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진정한 스승과 참다운 제자 그리고 사제 간의 남다른 만남의 흔적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이다.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배운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며, 스승의 삶을 따라 이를 실천하는 것은 더욱 소중하다. 더욱이 제자가 스승의 삶을 배워 새로운 인생의 길로 나아간 경우도 있고, 스승의 삶을 평생 인생의 길라잡이로 삼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제자의 삶을 바꾸게 만드는 진정한 사표일 터, 어떤 관계나 그러하듯 요즘은 스승과 제자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지금은 누구나 ‘선생(先生)’이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지만 전근대에는 ‘선생’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할 수 없었다. ‘선생’이란 학문과 인품으로 당대에 두루 인정받고 제자로부터 진정으로 존경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용어였기 때문이다.

요즈음에는 참된 제자도 거의 없지만 참된 스승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마음 깊이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와 제자를 진심으로 아끼는 스승의 만남에 깊은 감동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사제 관계가 시대를 뛰어넘는 울림을 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성서에서 소개되는 사제 간의 이야기는 내용이 다르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예수는 ‘선생’은 한 분 뿐이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사제관계의 이해를 넘어서는 주장이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태복음 23장 8절) 이는 사람은 스승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대리인(messenger)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제자(disciple;follower)의 의미는 “오라, 쉬게 하리라”로 이해하고, 사도(apostle;ambassador)의 의미는 “가라, 함께하리라”로 해석 할 수 있겠다. 인간의 속성을 벗어난 사람이 하나님의 대리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간에 회자되는 ‘선생님에 대한 명언’을 소개한다.
 
△평범한 교사는 말을 한다.
△좋은 교사는 알기 쉽게 설명한다.
△훌륭한 교사는 직접 보여준다.
△그러나, 위대한 교사는 감동을 준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장 13절) 예수의 모습은 언제나 감동의 연속이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어떤 감동을 준비하고 있는가? 스승이 없는 시대이기에 ‘성도’라는 명칭에 ‘대리인’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본다.

 /예장호헌 총회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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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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