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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3.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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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28_26_4.jpg▲ 시인 최규창

하늬바람 눈뜨는 우이동 골짜기
4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면증 끌어안고
절뚝거리며 일어서는 진달래꽃을 보라
삼각산 이슬 머금고
태고의 생기 품는 고깔제비꽃
풍상에도 꺾이지 않는
시리도록 투명한 미소를 마주하라
변변한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끈질긴 목숨 연명하는 잡초
땅의 풍식(風蝕)을 막아 옥토로 가꾸는
소중한 땅방울을 기억하라
수목들과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곤줄박이, 접동새
일용할 양식으로 풍족한
피조물의 감사기도를 들어라

그러므로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지니라
- 「산상수훈(山上垂訓)·1」

이 시는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현상을 통해 섭리하심에 대한 삶의 길을 일깨워 준다. 산에서 피어나는 진달래꽃과 고깔제비꽃, 그리고 잡초와 접동새 등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승화시켰다. 꽃과 잡초의 현상, 소중한 땀방울의 결과, 수목과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새들의 존재가 무한한 일깨움의 지혜를 주는 메시지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처럼 오늘의 삶을 위한 잠언적인 메시지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첫 연은 자연현상의 식물과 새 등에 신앙의 삶이 육화(肉化)된 성서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제2연은 마태복음 6장 34절을 재구성해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한다. 첫 연은 산에 서식하는 식물과 나무, 새를 통해 바른 삶의 길을 일깨워 준다. ‘진달래꽃’은 불면증을 끌어안고 절뚝거리며 일어선다고 의인화했다. 절망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이다. 또한 우이동 근처인 수유리 4·19 묘지도 함께 떠올려 주는 구절이다. 그리고 고깔제비꽃은 삼각산의 이슬을 머금고 태고적인 생기를 품었다고 형상화했다. 그래서 풍상에도 꺾이지 않고 시리도록 투명한 미소를 머금었다. 70년대의 성지처럼 여겼던 삼각산의 이슬을 머금었으니, 태고적인 생기를 품었다고도 볼수 있다. 풍상에도 꺾이지 않은 꽃의 미소는 시리도록 투명할 수밖에 없다. 잡초는 이름도 얻지 못한 채로 끈질긴 목숨을 연명하고 옥토로 가꾸는 땀방울을 기억하도록 일깨운다. 바람에 의하여 암석이나 지대가 침식되지만, 농부의 땀방울은 침식을 막아주고 옥토로 가꾸기 때문이다. 곤줄박이나 접동새는 나무와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것은 공동체적인 삶의 길을 가르쳐 준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가고, 이러한 삶을 지닌 피조물은 감사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풍족하게 주셨기 때문이다.

제2연은 마태복음 6장 34절인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란 구절을 시적인 발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첫 행인 “그러므로”는 첫 연의 잠언적인 메시지를 구체화시키고 전환시키기 위한 방법의 구절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란 구절의 ‘괴로움’은 인간이 감내(堪耐)하기 힘든 고초와 역경을 뜻한다. ‘한 날 괴로움’이란 우리의 현실에서 마주치는 온갖 어려움을 의미한다. ‘그 날에 족하니’란 그날에 주어진 것은 그날의 고통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지니라”란 구절은 아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도 않은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내일은 언제나 다시 다가오며 따라서 내일의 문제는 결코 오늘에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오늘의 은혜는 오늘에 족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 하면 새로운 은혜를 입어서 살아가야 할 것임을 암시하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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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9] 오늘의 삶을 위한 잠언 - 김석림의 「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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