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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3.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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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28_26_4.jpg▲ 시인 최규창
 
창백하게 여위어가는 햇살이
빈 들판을 서성거리며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다.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
하얗게 손을 흔들며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을 외우고 있다.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
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소곤거리고 있다.
앞진 겨울나무들이 바람 앞에 서서
앙상한 가지들을 쳐들고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한 해를 보내며」의 전문

이 시는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지난 한 해의 삶을 되돌아보며 드린 기도이다. 자연적인 현상속에서의 생명을 다한 빈 들판과 하얀 갈대꽃, 그리고 가랑잎과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비유로 한 해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창백하게 여위어 가는 햇살이/빈 들판을 서성거리며”나,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하얗게 손을 흔들며”, 그리고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나, “잎진 겨울나무들이 바람 앞에 서서/앙상한 가지들을 쳐들고”란 구절은.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의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화자의 회한(悔恨)으로 환원시켜 형상화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헛된 삶에 대한 회개와 간구로 신앙적인 삶을 일깨워 준다.

이 시는 연을 나누지 않았지만 임의로 나눈다면, 네 개 연으로 구분할 수 있다. 1행부터 3행까지를 제1연으로 볼수 있다. 제2연은 4행부터 7행, 제3연은 8행부터 11행, 제4연은 12행부터 마지막 행인 15행까지이다. 

제 1연에 해당할 수 있는 “창백하게 여위어가는 햇살이/빈 들판을 서성거리고”란 구절은, 화자가 한 해를 보내는 심정을 보여 준다. 한 해를 되돌아보는 삶을 비유한 것이다. 빈 들판을 서성거리는 삶은,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할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기도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고, 오늘날 기도의 표준이며 모범이다. 이 기도의 내용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고, 천국이 속히 임하기를,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일용할 양식과 죄용서, 유혹에서의 구원과 기도의 응답을 간구한 것이다.

또한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 하얗게 손을 흔들며”란 구절은, 한 해를 보내는 이별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하얗게 손을 흔들며”란 떠나보내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를 외우는 것은, 한 해동안에 지녔던 욕심이나, 모든 것을 깨끗하게 비우는 자세이다.

또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란 구절은 허무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푸른 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진 가랑잎들은 생명을 다한 것이다. 바람이나 사람의 발에 밝히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도 생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한 해의 허무한 삶을 의미한다. 그래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란 구절로 표현했다. 전도서 1장 2절인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란 구절중에서 인용했다.

이러한 이 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그리고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란 구절처럼 깊은 사유의 일깨움을 준다. 주기도문과,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은, 신앙이 생활화된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른 신앙인의 삶에서 생성(生成)된 자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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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 한 해의 삶에 대한 회개와 간구 - 유승우의 「한 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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