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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3.0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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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신학동향 - 정일권.jpg▲ 정일권 박사
2015년 겨울에 타계한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기독교의 헤겔”로 평가되기도 한다. 미국의 로버트 베론 주교는 마녀사냥의 텍스트로서의 신화의 수수께끼를 풀고 십자가의 승리를 인문학적으로 논증한 지라르가 20세기와 21세기 세계교회에 공헌한 바가 너무 크기에 지라르를 21세기의 교부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은 예수도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같은 신화라고 주장하기 위해 켈수스를 인용하는데, 켈수스는 예수도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와 같은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켈수스 이후로 오랫동안 기독교 신학과 교회를 공격하는 주장을 지라르가 신화의 수수께끼를 해독함으로 결정적으로 반박하게 된 것이다. 이후 상술하겠지만, 지라르 자신도 켈수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왜 예수가 디오니소스, 오시리스, 이시스와 같은 신화가 아님을 논증했다.
 

지라르는 니체, 레비-스트로스 그리고 프로이트의 대척점에 서 있는 대학자다.
  2010년 경에 이루어진  저명한 기포드 강좌에서 어느 학자는 지라르의 이론이 니체 철학을 한 번 더 전복하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라르의 이론은 그의 죽음 이후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신들은 잔인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다. 지라르가 기독교를 구했다”라고 독일 유력 일간지 <디 벨트>는 당대의 최고의 기독교 변증학자 지라르를 소개한다. 이 신문에 의하면 지라르가 기독교를 구한게 된 이유는 그의 비교신화학을 통해서 소위 이교적 신들과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을 명확하게 구분했기 때문이다. 신들이 잔인하고 악마적인 폭력적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그들이 인간 제사공동체에 의해서 희생양으로 몰려서 집단적이고 폭력적으로 살해 된 이후에 신성화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성스러움이 그러한 야누스적이고 폭력적이고 잔인한 신들을 제작해 낸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이후로 2000년 동안 새로운 신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디오니소스라는 새로운 미래의 신의 도래를 갈망한 니체와 하이데거는 다시금 신들의 도래를 철학적으로 노래했다. 하이데거도 기독교적 하나님이 아니라, 어떤 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독일 구약학자 로핑크는 20세기 신학자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을 때, 프랑스 인문학자 지라르가 복음서를 다시 서구 정신사의 중심에 세웠다고 했다.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받은 그의 주저 <폭력과 성스러움>을
  당시 <르 몽드>지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1972년은 인문학의 연보에 하얀 십자가가 그어져야 한다.” <르 몽드>지는 또한 이 책을 인류 정신사의 위대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지라르의 야심찬 기획은 ‘인문학의 기독교화’를 위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2006년 독일 튀빙엔 개신교 신학부는 지라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변증작업에 영예로운 상을 수여했다. 이 시상식에서의 지라르 강의는 「복음서는 신화의 죽음이다」는 제목으로 소개 되었고, <학문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튀빙엔에서 신학 부분 베스트셀러였던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다>의 독일어판에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변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의 후기를 쓴 학자는 위르겐 하버마스 이후 독일의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다. 지라르의 기독교 변증론은 독일 철학계에서도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 이 책에서 지라르는 후기기독교 시대 혹은 신이교시대의 일부 신학자들의 종교다원주의적 자기세속화의 유행을 거스리면서 다시금 십자가의 승리를 인류학적으로 증명하고 선언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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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학동향] 르네 지라르의 영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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