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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5.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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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천교수.jpg▲ 소기천교수
 
예수말씀은 “너희에게 구하는 사람에게 주어라. 빌려준 사람에게 다시 갚으라고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잘 알려진 613개의 유대 율례 중에서 부정적인 율례 365개(참고로 긍정적인 율례는 248개) 중에서 234번째에 해당하는 가르침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데 자꾸 갚으라고 하지 말라’는 교훈은 ‘다시 갚으라고 하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과 구분된다. 유대 율례는 단지 금전적인 채무에만 국한하고 있지만, 예수말씀에서 ‘구하는 사람’은 궁핍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전반을 가리킨다. 그는 단지 금전적인 빚이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 걸쳐서 도움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의식주 가운데 무엇보다도 당장 하루 끼니가 없는 사람의 처지가 가장 다급하다.

옛날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에 농촌에서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너무 풍요로워져서 보릿고개가 어느 언덕인 줄로 아는 젊은이가 있을까 봐 구차하게 사족을 달아본다. 묵은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가 아직 여물지 않아 농가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음력 4~5월경이 춘궁기 혹은 맥령기이다. 농민들은 지난 추수 때 걷은 농작물 가운데 소작료·빚·이자·세금 등을 뗀 다음, 남은 식량을 가지고 초여름 보리 수확 때까지 견뎌야 했다. 이때는 대개 풀뿌리나 소나무껍질로 끼니를 때우고, 유랑민이 되어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근래에 와서는 경제성장과 함께 농민들의 소득도 늘어나고, 생활환경도 나아짐에 따라서 보릿고개라는 말이 실감 나지 않으나, 일제강점기와 8·15해방을 지내고 한국전쟁을 치른 1950년대까지만 해도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보릿고개 때문에 농민들은 큰 어려움을 겪어서 실컷 배불리 먹어보겠다고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인구가 대거 몰려들었다.

식구들마저 굶어 죽는 판에 과연 예수말씀대로 빌려준 것을 다시 갚으라고 이웃에게 말하지 않는 삶이 쉬울까? 레위기 19장을 읽어 보라. 예수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대로, 그들에게 그렇게 해주어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황금률로 널리 알려진 말씀이다. 이런 황금률도 마태복음 7장 12절과 누가복음 6장 31절이 각각 해석을 달리하고 있지만, 예수말씀은 단지 아주 진솔한 언어로 ‘이웃이 네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이웃에게 하라’는 가르침이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장 39절)고 권면을 이어가신다. 정작에 자신을 의롭다고 여긴 한 율법사에게 주신 이 말씀은 예수말씀 복음서에는 없는 가르침이지만, 누가복음 10장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께서 ‘누가 너의 이웃이 되겠느냐?’는 질문으로 집약되기도 한다.

이웃이 내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랄까? 이 질문은 곧바로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될까?’라는 질문으로 바꾸며, 우리가 이웃에게 받고 싶은 대로 이웃에게 그대로 해주라는 말씀이 된다. 그야말로 내 몸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이웃을 귀하게 여기고, 다시 갚으라 하지 말고 빌려주고, 이웃이 내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해주라는 것이 예수말씀이다.

이 황금률을 공자나 부처 혹은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비교하여 성현들의 가르침에는 통하는 바가 있다고 일반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예수의 황금률은 말 만하고 삶을 전혀 다르게 산 여타 종교의 창시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 그대로 삶의 모범을 보이셨고, 마침내 십자가를 통하여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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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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