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9.03.10 15:37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18-1.JPG▲ 임준식목사는 ‘진리의 재발견’을 강조하며 날마다 새롭게 되는 목회를 추구한다.
 
목양교회 임준식목사의 목회여정은 1972년 강원도 양구의 군생활에서부터 시작됐다. 650미터 코앞에 적과 대치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임목사는 군종부사관으로 복무했다. “사방이 산밖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됐다. 오직 말씀, 오직 기도로 신앙의 훈련을 받았다”고 임목사는 전했다.

전역 후에 임목사는 그동안 자랐던 모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다가 1978년 부르심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1979년부터 모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7년, 부목사로 3년, 모두 10년을 사역했다. 그러던 중 1987년 임목사의 목회여정에 결정적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다. “부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마음에 심한 곤고함을 느끼게 됐다. 도무지 사역의 기쁨을 찾을 수 없었다. 완전히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는 생각이 찾아왔고 결국 목회를 접고 그냥 평신도로 섬겨야겠다는 마음까지 먹게 됐다”고 임목사는 회상했다. 1987년 11월 22일 임목사는 설교하던 중 주체할 수 없는 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밖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 정도의 대성통곡이었다.

다음날 임목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경만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갈라디아서 4장 15절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을 읽다가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됐다. “이 말씀이 갑자기 나의 온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물론 수없이 읽었던 구절이었지만 이날 말씀이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동안의 곤고함과 괴로움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루터가 로마서 말씀을 읽다가 근본적으로 변화됐던 것처럼 진리의 재발견이었다”고 임목사는 회상했다.

말씀을 통해 놀라운 체험을 한 임목사는 1988년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운영하던 체육관을 정리했고, 살던 아파트와 부모님이 유산으로 물려주신 땅까지 팔아서 교회에 헌금했다. 임목사는 “그 재산을 그냥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엄청난 가격이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게 목양교회는 설립됐고, 임목사의 열정적 목회는 시작됐다.

임목사는 ‘성막론’의 권위자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61회 성막론 세미나를 열었고, 외국에서는 15회 정도 진행했다. 또 서울장신대에서 12년 동안 겸임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성막론을 강의했다. “성막론은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구약의 성막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으로 성막을 통해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것이다. 87년에 내가 체험했던 진리의 재발견을 지금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전하는 것이다”고 임목사는 설명했다. 이렇게 성막론을 통해 목양교회는 성장했고, 성도들은 말씀으로 자라났다.

임목사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너무나 기복적인 번영신학을 맹목적으로 추구했다”며, “진짜 부흥은 복음이 거룩한 씨가 되고 제자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부흥운동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임목사는 다짐했다.

18-2.jpg▲ 목양교회는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는 사역에도 힘을 쏟고 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진리의 재발견’ 으로 부흥하는 목회추구 - 목양교회 임준식목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