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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11)

장로회신학대학교 소기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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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4.0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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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천교수.jpg▲ 소기천교수
 
예수의 두 번째 축복은 “주린 자는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마태복음 5:6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배부를 것임이라”고 선언한다. 누가복음 6:21이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다”고 한 선언에 관해 어찌 가난하여 주린 자만 복이 있을까에 질문이 집중될 수 있으므로, 마태복음은 당대의 공동체가 직면한 해석적 설교의 단면을 제시해준다. ‘의’라는 신학적 단어는 마태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이므로, 누가복음이 그냥 ‘주린 자’라고 한 표현이 원래 예수께서 하신 설교의 원형에 가깝다.

예수의 세 번째 축복은 “우는 자는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예수의 이러한 간절한 가르침을 따라서 바울은 로마서 12:15에서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권면한다. 에스겔 9:4-6에서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는 경고도 나온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바벨론에 포로된 유다백성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였는데 성전의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우상숭배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교회 안에 복음의 순수함보다는 우상숭배에 눈이 어두운 곳이 많다.

예수의 네 번째 축복은 “그들이 너희를 욕하고… 그들이… 그리고 그들이… 인자 때문에… 너희를‥ 악하다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욕하다”란 단어는 “박해”(누가복음 11:49)란 단어보다는 고난의 정도에 있어서 약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당하였을 고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점에서 같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 공동체가 처음부터 고난과 박해 속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은가?

네 번째 축복 선언에 이어지는 예수의 설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 그들이 너희 앞에 있었던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으로, 예수께서는 과거에 선지자들이 당한 고난을 근거로 해서 앞으로 제자 공동체가 당하게 될 고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것은 신명기적 사관에 입각한 동일시로써, 후에 예수말씀 공동체가 자신들의 운명과 구약 선지자들의 운명을 동일시하여 박해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첫 순교를 당한 사람은 아벨이다. 가인에 의해 희생을 당한 아벨의 억울한 피가 하나님께 호소한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의 원한을 갚아 주셨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원한을 직접 갚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심판 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자신이 나서서 복수를 하는 것은 심판 주이신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잘못된 행동이다. 그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하자(창세기 4:10), 가인은 땅에서 저주를 받아 끝없는 추방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런 심판 사상은 희생당하셨지만 마지막 때에 심판 주로 오시는 예수께 연결된다.

여기서 언급된 ‘상’은 보상 개념이다. 이런 보상 개념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인 누가복음보다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인 마태복음에 더 잘 드러난다. 유대인의 보상 개념은 천국의 상급과 잘 어울리는 단어이다. 마태는 누가의 4복과는 달리 8복으로 보상을 더 확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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