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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인 목사의 시편과 정신건강(38)

성경의 유익 - 시편 11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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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12.2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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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인목사.png▲ 최종인목사
‘시편과 정신건강’에 대한 칼럼을 쓰기로 작정한 때부터 시편 119편은 꼭 다루고 싶었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말씀이기도 했고,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듯 시인이 되지 않는가? 그 당시 내게 시상(詩想)에 영감을 주던 말씀도 바로 시편 119편이었다. 그런데 시 119편은 매우 길고 방대하다. 내용도 풍성해서 무엇을 주제로 적어야 할지 망설여진다. 그래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말씀시’이다. 말씀, 즉 성경을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하게 소개된다. 여호와의 율법(1절), 여호와의 증거(2절), 주의 도(3절), 주의 법도(4절), 주의 율례(5절), 주의 계명(6절), 주의 말씀(9절) 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많은 유익이 있다. 1절에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했다. 6절에서 말씀을 따라 살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9절에서는 청년들이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 비결은 말씀을 지킬 때 가능하다고 했다. 11절에 죄를 범하지 않으려거든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다시 사는 비결로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해야 한다. 그래서 작은 교회이지만 우리 교회에서부터 「성경의 테이블」이란 주제로 세 가지를 일으키려고 한다. 가정 식탁을 가정예배 처소로 삼은 것이다. 가정예배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살아난다. 구역과 소그룹의 테이블을 말씀으로 채우자는 것이다. 소그룹이 살아야 교회가 활력을 얻는다. 일터의 테이블을 위로와 격려, 기도와 도전의 테이블로, 영적 테이블로 바꾸어야 한다. 일터에서 복음이 확산할 때 한국교회는 다시 부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범위를 줄여서 말씀의 유익을 찾아보려고 한다. 첫째로 말씀은 소망을 준다. 49절에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고 하셨다.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소망을 가질 때 우리 인생들은 온갖 걱정과 두려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독교인이 지녀야 할 소망의 근거는 오직 말씀뿐이다. 세상의 화려하고 찬란한 약속들이 나를 지켜줄 수 없다. 

둘째로 말씀은 위로를 준다. 50절에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고 했다. 고난 없는 인생이 있을까? 단언컨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고난당한 자들이 살아나는 비결은 무엇인가? 다른 능력이나 재주가 아니다. 말씀이 나를 살린다. 큰 위로가 된다. 

셋째로 말씀은 하나님을 알게 한다. 51절에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고 했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물론 우리는 살면서 하늘을 보아도, 땅을 보아도, 나뭇잎이나 뒹구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떤 것보다도 직설적으로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다.

넷째로 말씀은 진정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56절에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매우 단호하고, 뚜렷한 말씀이 아닌가? 나는 오늘도 교회 집사님 장례를 집례하고 돌아왔다. 집도 남겼고, 가족도 남겼고, 일부 재산도 남겼다. 그런데… 죽은 후에 가져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 40:8). 인생 전체가 사라지고, 그동안 붙들었던 모든 것들이 시들고 사라지나 오직 말씀은 우리에게 남아있다. 말씀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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