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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10.1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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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홍렬.jpg▲ 이홍렬목사
  한반도 해빙의 무드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듯하다. 이제 평화, 화해, 비핵화, 정상회담, 대화, 상생 등등의 단어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한 도도한 흐름이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지 않은가 하는 조심스러운 짐작을 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평화는 아니다. 참되고 완전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 신앙인이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 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인위적인 수단이 참 평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매일 싸움을 하는 부부가 있었다. 하루는 두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었다. 남편이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 집에 들어올 때는 부인이 조심하도록 미리 모자를 삐뚤게 쓰기로 했다. 또한 부인이 화가 나 있을 때는 앞치마를 돌려차기로 했다. 그렇게 평화협정을 맺으니 한동안 부부싸움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모자를 삐뚤게 쓰고 들어왔다. 대문을 열고 보니 아내가 앞치마를 돌려차고 있었다. 도리가 없었다. 또 옛날처럼 싸웠다는 우스개 이야기이다.

 평화협정이, 싸우지 말자고 하는 말 몇 마디가 우리 세상을 참 평화로 인도하지 못한다. 참 평화는 하나님께서 주심을 깨닫고 주님의 평화를 우리는 간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평화를 위해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 먼저는 인내로 기다려 주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고 걸음걸이가 더디더라도 정부를 믿고 기다려 주는 인내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 급하다고 벼 이삭을 뽑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 한반도 평화 만들기를 위한 절대적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양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라는 자리를 양보했다. 십자가 위에서 생명까지 양보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만드셨다.

  내 것만을 주장하는 한 진정되고 영원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나에게만 이익이 되고 너는 손해가 되는 것을 요구해서는 평화의 발걸음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기 어렵다. 남북의 평화 만들기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가슴에 칼을 품고 있는 한, 남북회담을 천 년 동안 해도 평화는 어렵다. 마음속의 칼을 버리는 양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한반도의 평화의 물결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기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루터회 증경총회장·새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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