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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4.2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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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신학동향 - 양신혜.jpg▲ 양신혜 박사

성경의 신적 본질을 담보하는 객관적 증거로서의 자증성(autopistos)은 개혁교회의 교리로서 그 자리매김을 하여왔다. 하지만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에는 성경의 자증성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단지 성경의 권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교회의 증언에서 감동과 권유를 받아 성경을 높이 평가하며 존경하게 될 수 있으며, 그 내용이 천상적이며, 그 가르침에 효력이 있으며, 그 문체가 숭엄하며, 그 모든 부분이 서로 일치하며 그 전체가 광대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사람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을 완전히 밝혀 주며, 그 밖에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점들이 많으며, 전체가 비할 나위 없이 완전해서 이 모든 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풍성하게 증명하는 논거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틀림없는 진리와 하나님에게서 온 그 권위가 우리가 완전히 깨달으며 확신하는 것은, 성령이 내면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말씀으로 또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첫째, 교회의 증언이 성경의 권위를 깨닫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는 성경의 권위를 깨닫도록 인도하는 교회의 역할을 명시한 것이다. 둘째, 성경의 권위를 증거하는 성경 자체의 객관적 논거들을 제시한다. 이것들은 이미 칼빈이 그의 강요 I.8에서 언급한 것으로, 이 증거들을 개혁교회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성경의 객관적 권위를 나타내는 증거들이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 확증된다는 점이다. 이는 성령의 내적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그리고 말씀과 더불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성경의 신적 근거로서의 자증성이 ‘어떻게’ 성령을 통해서 내적으로 확증에 도달하게 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외에 다음의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루터는 성경해석학의 원리로 ‘성경은 스스로 해석한다’는 원리를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칼빈은 루터의 해석학적 원리를 그의 문헌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그렇게 한 것일까? 그렇다면, 칼빈은 무엇을 성경해석의 원칙으로 삼은 것일까?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칼빈이 성경의 신적 권위를 증명하기 위해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그리스어 자증성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단어는 루터의 문헌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쯔빙글리나 부처의 글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용어가 칼빈의 성경해석의 독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리라 사료된다. 왜 칼빈은 루터의 ‘성경은 스스로 해석한다’는 해석학적 원리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증성’이라는 그리스 단어를 사용하여 성경해석의 문제에 접근한 것일까? 이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선, 칼빈의 자증성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문헌을 분석하여 자증성이라는 의미를 칼빈이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분석을 토대로 칼빈이 자증성을 성경과 연결하여 자증성이란 단어를 강요 최종판에서 성경과 연결하여 사용하는데, 그 경우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칼빈의 자증성의 의미가 해석학의 출발점으로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설명하고 해석학적 원칙으로의 그 활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토대로 칼빈의 자증성이 지닌 해석학적 의미가 지금 이 자리에서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으며, 어떻게 성경해석에 적용될 수 있을지를 서술하면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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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학동향 - 교회사] 칼빈의 성경의 권위로서의 자증성에 대한 이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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