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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0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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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19-07-02 오후 3.04.24.png▲ 오성주
 
오늘날 한국 청소년들은 과거 어느 청소년들보다 급변하는 시대를 보내고 있다. 청소년문화의 핵심에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문화는 더 이상 모던하지 않다. 그들 사회는 정해진 규칙과 개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겉으로 보기에는 무질서에 가까울 정도로 자유 분방하다. 

우리 세대가 아무리 온라인 정보들을 활용한다고 해도 청소년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다. 마치 어른이 외국어를 배울 때 한계가 있듯이 어른 세대는 인터넷 사용에서 젊은 세대와 비교해 그 한계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쯤 되면 청소년의 디지털문화는 우리 세대의 이해를 초월해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인터넷 언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우리 세대가 아니다. 청소년들이 각종 합성어들을 생산하며 그들만의 자유분방한 담론생성으로 우리 사회를 주도한다. 그런데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회적 계층이 높다는 이유로 그들을 교육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당위적으로 청소년교육의 의무가 주어져 있다. 결코 ‘포스트모던’하기 쉽지 않은 우리 시대의 ‘모던선생들’이 더는 ‘모던’하지 않은 우리 시대의 ‘포스트모던 청소년들’을 교육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하기 이전에 청소년과 소통이 먼저다. 우리는 청소년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하지만 너무도 멀어져 버린 서로간의 언어장벽으로 인해 인스턴트식의 만남으로는 이야기가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 

사실 청소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캠프를 통해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의 말을 경청하며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그 초월의 간격을 온전히 메울 수는 없겠지만 가까워짐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름을 인내심으로 견디며 ‘초월’에서 ‘가까움’으로 청소년들과의 관계를 개선했다면 이제는 그들을 우리 세대의 아날로그 감성으로 초대할 차례이다. 그것이 우리 세대가 청소년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교육의 본질이다. 신앙의 감수성, 사람들끼리 서로 몸을 부대끼며 느껴온 수많은 내밀한 이야기들. 애석하게도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부재한다. 모든 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쉽게 얻어내는 우리 청소년들은 밤낮을 무릎 꿇고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던 우리 세대의 간절함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교육이 단순히 정보의 전달이라면 우리 세대는 더 이상 청소년들에게 교육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만큼 훌륭한 정보교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사람이란 단순히 정보가 축적된 덩어리가 아니다. 사람이란 다른 이들을 사랑할 줄 알고, 때론 참고 기다질 줄도 알며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온라인 정보통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이러한 가르침들이야말로 우리가 사명감을 가지고 다음세대에 전달해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교육이야 말로 디지털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고, 어쩌면 그 어떤 교육기관보다 우리 교회가 감당해야만 하는 분야의 교육이다. 우리 교회의 모든 여름캠프가 서로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청소년과 어른세대를 이어주는 소중한 소통의 장, 교육의 장이 되길 기도한다. 
/감신대 총장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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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캠프통해 청소년들 교육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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