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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5.2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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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스도인은 국민배우다. ‘아브라함’이 대략 4,000년 전 인물이고 ‘모세’는 3,400년 전의 인물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 바울’은 대략 1,800년 전, 1,900년 전의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 이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경의 유명 인사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본문에 나오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는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를 피해 흩어진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십자가 신앙, 순교 신앙은 오늘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2천 년, 4천 년이라고 하는 시대적 간극을 뛰어넘어 연령과 계층, 신분과 성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국민배우다.

신데렐라는 하루아침에 될 수 있지만, 국민배우는 결코 하루아침에 될 수 없다. ‘외로움’, ‘상대적 빈곤’, ‘미래에 대한 불안’, 무명시절의 삼중고를 거쳐 마침내 국민배우, 국민가수가 된다. 앞에서 언급한 국민배우, 가수들이 그랬고,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도 그랬다. 그리스도인의 출발은 철저하게 무명한 자요 죽은 자다. 징계를 받은 자, 근심하는 자, 가난한 자, 아무것도 없는 자다(고린도후서 6장 9~10절). 이 무명의 삼중고를 거쳐 국민배우, 천국스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다. 십자가의 고독, 외로움, 불안, 고통의 과정을 거쳐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다.

본문에 나오는 그리스도인이 그렇다.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흩어져 사니 ‘고독’하다. 로마제국의 주류가 될 수 없으니 ‘상대적 빈곤’에 시달린다. 주님 재림을 고대하며 인내하지만, 그날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다. 그래서 본문은 이런 그리스도인을 ‘나그네’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나그네’는 국민배우다.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믿음의 선배들이 나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성령님께서 현재의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외로움을 극복하고 주님께 순종하게 하신다. 나는 왕이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특별한 사람이다. 앞으로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러니까 본문의 ‘그리스도인 나그네’는 대 사도 베드로와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국민배우’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은 국민배우다’라는 팡파르를 울리며 막을 올리고 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관계다. 그리스도인 나그네 한 사람을 놓고, 대 사도 베드로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축복의 떼창’을 부르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를 보면, ‘그룹 퀸’이 10만 이상의 사람들 앞에서 콘서트를 하는데 전 관객이 떼창을 부른다. 감동이다. 그러니까 ‘그룹 퀸’ 혼자 국민배우가 될 수 없다. ‘떼창’을 부르는 팬들과의 관계가 국민가수, 세기의 가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렇다. ‘그리스도인 나그네’ 한 사람을 놓고, 대 사도 베드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축복의 떼창’을 부른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나그네는 ‘나그네 설움’을 부르지 않는다. ‘나그네 설움’은 나훈아, 주현미가 부른다. 그리스도인은 ‘나그네 설레임’을 노래한다. 혼자인 줄 알고 서러웠는데 아니다. 대 사도 베드로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축복의 떼창’을 부르고 있다.

이 관계의 축복이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나그네 설레임을 노래한다’ 그리고 국민가수 그리스도인 나그네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신곡을 준비한다. 오늘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콧노래 부르며 달려간다. 
/용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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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나그네 설레임’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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