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실천하는 ‘기독교’ 되자
2019/03/14 08:5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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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 익
1-이정익.jpg▲ 이정익목사

우리는 몇 주전 3·1절 100주년의 역사를 보냈다. 100년 전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였고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나라는 빼앗겼고 분명 우리는 내 땅에서 살았건만 주권을 다 빼앗긴 채 일본인들의 지배를 받고 살았었다. 나라 없는 민족은 비참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초라하고 불행하다.

그럼에도 100년 전 우리 민족은 분연히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분명히 표현하였고 자주독립을 외쳤다. 그 용기 있는 자들의 뒤편에는 기독교의 후원이 있었다. 당시 기독교는 천도교나 불교에 비해 역사도 짧았고 교세도 소수였다. 그렇지만 한국 기독교는 작지만 강하였다. 그리고 백성들은 한국교회의 교세를 보지 않고 응원하고 신뢰하였고 믿어 주었다. 그것은 당시 기독교가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모습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명성황후의 처참한 죽음으로 한국민족은 자존심이 상하였고 마음의 상처가 컸으며 그럼에도 목 놓아 울지도 못하고 있을 때 한국교회는 용기 있게 나서서 성대하게 명성황후의 추모식을 거행하여 주었다. 명성황후의 시해사건 이후 민심이 흉흉할 때 정주지방을 중심으로 악질이 번져갔다. 길거리에 시체들이 나뒹굴었고 자식이 죽어도 전염될까봐 대문밖에 시체를 버리고 관에서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을 때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거리의 시체들을 수습하였다.

이 같은 기독교인들의 행동이 우리민족에게 상당한 메시지를 주었고 또한, 용기를 주는 모습들이었다. 그 결과 그 시대 우리 민족은 3·1운동을 앞장서서 이끌던 기독교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저항운동에 적극 협력하여 동참하였던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환경과 풍요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교회가 우리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는 그리 신선하지 못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본질에 아주 충실하였다.

그에 반해. 오늘날은 한국교회가 너무 커졌다. 그리고 힘이 막강하여졌다. 그런데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그리 많은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가 본질에서 너무 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선배들의 신앙과 민족 사랑을 본받아 이웃 사랑실천에 매진할 때라고 생각된다.
 /기성 증경총회장, 신촌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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