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는 리더십
2017/06/14 14: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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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는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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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승 룡 


 서울의 동서남북의 한 중심을 찍으면 장충단이 된다. 장충단과 얽힌 이야기는 참 많다. 재미있는 단어가 탄생된다. 바로 깡패란 말이다. 이 말의 유래는 자유당시절 선거를 할 때 야당지도자 조병옥이 워낙 연설을 잘하자 이에 겁을 먹을 자유당이 어깨들을 동원한다. 그리고 이 어깨들은 깡통을 들고 와서 연설할 때 막 두들겨서 연설을 방해했다. 

 즉 깡패란 말은 깡통을 든 패거리들이란 말이 이때 나오게 된 것이다. 며칠 전 용인문화유적전시시관에서 열린 용인의 독립운동전을 보았다. 지역을 중심으로 이렇게 독립운동전을 보는 것은 지역단위로 독립운동이 실제 활발했기에 독립운동가들의 인맥도 알 수 있기 때문에 들어가서 보았다. 

 “오호라! 나라의 주권이 없어지고 사람이 평등을 잃으니, 무릇 모든 교섭에서 치욕이 망극할 따름이라. 진실로 핏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찌 견디어 참으리오. 슬프다! 종사가 장차 무너질 것이요, 온 겨레가 모두 남의 종이 되리로다. 구차히 한다 한들 욕됨만이 더 할 따름이라. 이 어찌 죽어짐보다 나으리요. 뜻을 매듭지은 이 자리에 다시 이를 말 없노라”

 이 결기 있는 유서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유서를 쓴 분은 1905년 31살 나이로 순국 자살한 이한응 열사다. 1874년 용인에서 태어난 이한응은 조선시대 양반집 자제들이 수학했던 것과 같이 다섯 살 때부터 한학을 배웠다. 그러나 15살 되던 해인 1889년 서울로 올라와 관립 육영공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한응이 왜 ‘육영공원’이라는 근대학교에 입학하였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그의 사형 이한풍이 쓴 초혼사에 보면, “군이 본래 외국 유람에 뜻을 두어 구주의 문명정치를 배워 우리나라의 몽매한 상속을 열어 나라의 힘을 북돋우고 문합의 빛을 나타내려 함”이라고하였다. 이를 보아, 이한응은 어려서부터 서구문명을 배워 근대국가로 만들어 보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16세에 1889년에 관립영어학교에 입학하여 영어를 읽히고 1894년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1901년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영국런던에 참사관으로 부임한다. 당시 최대강국이 영국이었기에 영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했다. 늘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던 그에게 영국은 세계의 큰 흐름에 일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영일조약을 맺고 일본이 조선 침략을 정당화 시키고 영국은 오히려 우리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한다. 이에 세계 최대 강대국에게 조선의 영혼을 전하고 세계역사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위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하게 된다.

 이한응 열사의 유해는 주영명예총영사 모건에 의해 국내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유해를 국내에 보낸 이후 모건이 보낸 1905년 5월 24일자 편지에 의하면, “불쌍한 친구. 그는 매우 극동에서 진행의 결과에 대해 매우 상심하고 있었고, 그의 외교관 생활이 끝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라고 마지막에 적고 있다.

 이한응이 영국 런던에서 자결 순국하였다는 소식은 국내에도 전해지고, 그의 순국에 대한 추도회가 개최되었다. 추도회는 상동청년회에서 주도하였다. 〈대한매일신보〉 1905년 7월 31일자 기사에 의하면, “이한응씨 추도회 처소는 돈화문외 전의전부 조방으로 이정함”이라고 하고, 추도회 주최는 “의법회 고백”이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이한응의 추도회는 상동교회의 엡워스청년회가 담당하고 있었다.

 이한응의 유해는 고종황제의 특별지시로 당시 런던주재 한국명예총영사 모건의 노력으로 그해 7월 고국에 반장되어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덕성리 금현에 모셔졌다.

 그리고 장충단에 가면 이한응의 순국기념비가 있다. 고종은 을미사변으로 아내를 잃었고 명성황후를 지킨 조선군인과 문인들을 위해 장충단을 세워 제사를 드렸다. 항일정신이 있는 장충단을 곱게 보지 못한 조선총독부는 신아치라는 공창을 만들고 또 놀이시설로 활용한다. 장충단제사를 못 지내게 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을 딴 博文寺(박문사)란 절을 짓는다. 후일 이 절이 헐리고 들어선 것이 신라호텔이다.

 두려움 없는 리더십, 젊은 외교관 이한응은 우리의 영혼이다.  

/목사·귀납법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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